가정의 행복을 짓밟는 여우를 잡으라 (아2:10-15)
본문
5월을 계절의 여왕이라고 한다. 5월은 꽃의 계절이요, 향기의 계절이다. 특히 제주의 5월은 감귤 향으로 가득 채워진 너무 아름다운 계절이다. 요즈음 은 새벽기도회를 갖기 위하여 문을 열고 나서면 감귤의 짙은 향에 취하고, 행복한 하루를 시작한다. 그럴 때마다 "제주는 참 복된 땅이다" 하는 생각 을 자연스럽게 갖게 한다. 이렇게 5월은 아름다운 계절이다. 5월에는 어린이날과 어버이 날, 그리고 스승의 날이 있다. 5월에는 우리의 장래인 어린이를 생각하고, 우리를 있도록 하신 부모님과 어른들께 감사드 리고, 우리를 사람 되라 가르치신 선생님들께 고마운 인사를 드리는 계절이다. 그런가 하면 5월은 가정의 소중함을 생각하게 하는 계절이다. 그리고 가 정을 인간에게 선물로 주신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계절 역시 5월이다. 따라서 5월이 아름다운 것은 꽃이 있고 향기가 있어서라기 보다는 이런 아름다운 마음이 있기 때문이요, 또 가정을 생각하게 하는 계절이기 때문이다. 가정은 세상에서 피어나는 가장 아름다운 꽃이요, 가장 향기로운 꽃이다. 만 일 인간에게 가정이 없다면 이 세상은 삭막한 사막과 같을 것이다. 따라서 가정은 삭막한 사막에 숨겨져 있는 오아시스와 같은 곳이다. 삭막한 세상을 살아가는 사람들은 가정에서 참된 안식을 누리고, 진실된 사랑을 나누며, 세상에서 입은 상처들을 치료받고, 위로받으며, 장래에 대한 소망을 본다. 그러므로 가정이 불행하면 인간에겐 안식도 없고, 사랑도 없으며, 위로도 없 고, 영육간에 입은 상처의 치료도 받을 수 없다. 세상에서 성공했다고 모든 사람들에게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다고 하더라도 그에게 행복한 가정이 없으 면 그 인생은 실패한 인생이요, 가장 불행한 인생이다. 잡초는 아무렇게 놔두어도 잘 자란다. 그러나 값진 화초는 세심한 관심과 수고, 정성을 쏟아 가꾸어 주어야 한다. 제 동서가 난을 아주 좋아한다. 그 집의 거실은 온통 난으로 채워져 있는 난원과 같다. 난이 굉장히 비싼 것도 있다. 한 촉에 몇십 만원 몇백 만원 하는 것도 있다.
그런데 이 난은 얼마나 까다로운지 보통 정성을 기울이지 않고는 기를 수 없는 것이다. 날마다 씻 어주고 닦아주고 한다. 건조하면 가습기 틀어 습도를 조절해주고, 영양이 부 족한 것 같으면 영양제를 뿌리에 꽂아주고 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못하겠 다'고 했다. 이렇게 정성을 쏟아 가꾸어야 난은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향기 로운 꽃망울을 터뜨리게 된다는 것이다. 가정은 난과 비교할 수 없이 아름 답고 소중한 꽃이다.
그런데 우리는 가정의 행복은 저절로 피어난다고 생각 한다. 분명한 것은 가정은 저절로 행복이 피어나는 잡초와 같은 것이 아니다. 모두가 정성을 다하여 가꾸어야 행복의 꽃이 피는 섬세하고 값비싼 꽃 이다. 그러면 어떻게 가정을 가꾸어야 행복의 꽃을 피울 수 있을까 오늘 말씀 15절은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 이 피었음이니라"고 한다. 즉 "행복의 꽃이 피어있는 우리의 포도원을 짓밟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고 한다. 행복한 가정을 가꾸는 일은 가정의 행복을 짓밟는 여우를 잡는 일이다. 우리 가정에는 행복의 꽃을 짓밟는 여우가 들 어와 있다. 이것을 잡아야 한다. 그러면 우리 가정의 행복을 짓밟고 있는 여 우가 무엇이며, 이 여우를 어떻게 잡을 수 있는지를 함께 생각하면서 은혜 를 나누자. 먼저 우리 가정에 들어와 있는 여우는 독선과 아집과 이기심이다. 시카고 대학의 돈 브라우닝이라고 하는 유명한 교수가 지난 해 우리 한국에 와서 "Globalization of Family"라는 논문을 발표한 바가 있다. 이분은 이 논 문에서 가정이 점점 문제되고 있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라는 것이다. 대표적 으로 미국을 들어 이렇게 말했다. 50%의 가정이 이혼을 하고, 30%의 아이 들은 부모가 누군지를 모르고 자라고, 30%는 결손 가정에서 자란다. 미국의 아이들 가운데 30%만이 그런대로 형식적으로나마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란 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 이 세대가 어디로 갈 것이냐 하는 것이다. 인간성 이니, 정보화니, 과학화니, 교육이니 뭐니, 다 헛된 소리이다. 가정의 문제를 이 상태로 놔두고 그런 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아무 것도 소용없는 일이 아닌가 그러면 우리 나라는 어떤가 지난 해 통계청이 발표한 95년 인구동태통 계 에 따르면 95년도에 6만 7천쌍의 부부가 이혼했다. 이는 하루 평균 1백 90쌍의 부부가 이혼한 것이다. 이 이혼으로 인하여 연간 6만3천명이 넘는 미성년자녀들이 부모를 잃어버리고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은 경제위기로 인하여 이혼이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지금은 이혼하는 부부 가 하루 평균 200쌍을 훨씬 넘을 것이다. 그리고 이혼으로 인하여 버려진 미성년자녀들의 숫자도 95년도와 비교할 수 없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되었는가 서울리서치 라는 조사기관에서 이혼한 부 부를 대상으로 이혼에 이르게 된 이유를 조사했다. 그 결과를 보면, 응답자 의 30.2%는 두사람의 성격차이, 17.8%는 시댁식구들과의 갈등, 17.6%는 서 로에 대한 대화나 관심부족, 16.3%는 부인이나 남편의 외도, 7.5%는 성적인 불만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우리는 상식적으로 이혼의 원인이 남편이나 아내의 부정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통계를 보면 부정이 이유가 된 것은 전 체 이혼의 16%정도이고, 나머지는 독선과 아집, 이기심 때문이다. 가정은 부모, 부부, 자녀들이 함께 사는 공동체이다. 가정은 그 어느 누구 한 사람의 소유물도 아니다. 따라서 가족간에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고 부족 한 것도 받아들여주는 그런 미덕이 있어야 되는 곳이 가정이다. 오늘날 이 미덕이 사라지고 이기주의와 독선이 가정을 채워가고 있다. 이기주의와 독 선과 아집이라는 여우가 우리 가정의 행복을 짓밟고 있는 것이다. 돈 브라 우닝 교수는 가정이 잘못되는 뿌리는 극단적 이기주의에 있고, 또 헌신이 사라지는 데 있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므로 가정의 행복을 지키려면 독선과 아집, 이기심이라는 여우를 잡아야 한다. 이 여우를 가정에서 몰아내야 한다. 그러면 독선과 아집이라는 여우는 어떻게 잡을 수 있는가 사랑의 회복이다. 사랑은 희생이다. 사랑이란 너를 위한 나의 희생이다. 예수께서 말씀하 셨다. "가장 큰사랑은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요15:13)이라고 하 셨다. 결혼이란 사랑하기 위해서 한다. 이 말은 결혼이란 저를 위해 내가 희 생하기 위해서 한다는 말로 바꿀 수 있다. 가정은 이 사랑을 먹고 자라고 행복의 꽃을 피운다.
그런데 요즈음 사람들은 결혼을 종만들기 위하여 한다. 그래서 결혼하면 남편을 종만들려고 하고, 아내를 종만들려고 한다. 심지어 태어나는 자녀까지도 내 만족을 채우기 위한 도구로 만들려고 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파생되는 모든 문제들을 돈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돈만 있으면 모 든 것이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여러분, 내 가족 들은 종이 아니기 때문에 몇 푼의 품삯으로 만족할 수 없다. 따라서 가정은 돈으로 행복이라는 꽃을 피울 수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여러분, 가정을 만드는 것은 학벌도 아니요, 책도 아니요, 가구도 침대도 아니다. 그렇다고 벽에 걸린 그림도 아니다. 새장에서 노래하는 새나 풍성한 음식도 아니다. 권력이나 돈은 더군다나 아니다.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것은 방안에서 울려 퍼지는 웃음소리요, 밤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얼굴에서 피어 나는 미소요, 어린아이의 눈에 그윽하게 담겨있는 기쁨이다. 이 기쁨은 사랑 하고 희생하는 곳에 피어나는 화초요, 이 기쁨이 따뜻하고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자양분이다. 따라서 사랑을 회복하는 길만이 우리 가정의 행복을 짓 밟는 여우를 잡는 길이다. 돈으로 잡아지거나 음식으로 잡아지는 것이 아니다. 아집과 독선, 이기심을 버리고 오직 희생이 있는 진정한 사랑을 회복할 때 여우는 잡히고, 쫓겨간다는 것을 기억하자. 두 번째 우리가 잡아야 할 여우는 권리만 있고 의무가 없는 행동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실 때 축복을 누릴 권리를 주시면서 동시에 그 축복을 온전하게 지킬 의무를 주셨다. 사람이 누릴 마땅한 권리는 의무를 다한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이다. 우리 가정도 예외가 아니다. 모든 가족들 은 권리를 누리기 위하여 가족으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삶속에는 자기 권리는 강하게 주장하면서 자기가 담당해야 할 의무에는 소홀히 여기는 풍조가 만연해 있다. 이런 현상은 우리 사회 구 석구석에 퍼져있고, 가정에도 깊숙히 들어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실 때에 축복을 누릴 권리를 주시되 먼저 의 무에 충실하라고 하셨다. 그래서 성경에는 축복을 말씀하시면서 먼저 "나의 규례와 율례를 지키고 순종하면" 이라는 말씀을 반드시 하셨다.
그러므로 권리를 주장하기에 앞서 내가 마땅히 담당해야 할 의무는 다하고 있는지를 살펴야 할 것이다. 가정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남편은 남편으로서의 권리와 의무가 있고, 아내는 아내로서의 권리와 의무 가 있으며, 자녀는 자녀로서의 권리와 의무가 있다. 성경은 이를 명확하게 가르치고 있다. 엡5:22절은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 듯 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렇게 남편은 아내에게 존경받고 순종을 요구 할 권리가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남편에게 주신 큰 특권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를 위하여 남편에게는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과 같이 하라"는 의무를 주셨다. 가정에서 남편이 아내에게 그저 존경과 순종과 복종만 요구하고 호령만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남편에게 주신 축복을 누릴 권리 가 없다.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기 위하여 피흘려 죽으신 것처럼 아내의 행복을 위해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남편은 남편 으로서의 권리를 누릴 자격이 없다. 또 아내는 아내로서의 권리가 있다. 아내의 권리는 남편의 사랑을 받을 권 리가 있고 남편의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다. 아내에게도 의무가 있다. 남편 을 존경하고 복종하며 내조하며 자녀를 돌볼 그러한 의무가 있는 것이다. 엡5:23-24절은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 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 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복종의 미덕은 하나님께서 이 시대의 아내들에게 원하시는 의무이다. 자녀에게도 권리와 의무가 있다. 자녀의 권리는 부모의 사랑과 보호와 후원 과 돌봄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하나님이 자녀를 우연히 태어나게 하신 것은 아니다. 자녀는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다. 하나님께서 "나 대신해서 맡아 서 돌보라"고 하신 하나님의 사업이 자녀이다.
그러므로 자식은 부모님에게 돌봄을 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자녀들에게도 마땅히 해야 할 의무 가 있다. 골3:20절은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 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자녀들의 의무는 부 모님에 대한 순종이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일이다.
그런데 오늘 우리 가정에는 권리만 주장하고 의무는 하지 않으려는 여우가 들어와 있다. 이 여우로 인하여 가정의 행복이 짓밟히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권리를 주시면서 의무를 다한 사람에게 그것을 누리게 하셨다. 아담과 하와 가 선악과를 따먹었을 때 그들에게 주어진 복된 권리는 순간적으로 사라지 고 말았다.
그러므로 우리 가정에 행복의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가족 상호 간에 먼저 의무를 다해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의무에 충실할 수 있는가 이것도 역시 사랑이다. 포르투갈의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 마을 성당에 리베이라 라는 신부가 있었다. 어느 날 자정, 초인종 소리에 잠이 깨어 문을 열자 성 당 안으로 모자를 깊이 눌러쓴 남자가 달겨들듯이 들어섰다. "신부님, 밤이 깊었지만 고해성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오늘밤을 넘겨서는 안 될 일이기에 무릅쓰고 찾아왔으니 받아주십시오." 이렇게 해서 심야에 고해 성사를 받게 되었다. 그는 "신부님, 제가 돈이 필요해서 사람이 많은 기차역으로 나갔습지요. 적 당한 사람을 물색하여 옆구리에 총구를 찌르고 조용히 돈을 내어놓으라고 했어요.
그런데 글쎄 그 돈 많아 보이는 부자가 앙탈을 하지 않겠습니까. 곧 들켜서 순경이 쫓아 올 것 같아 그만 총을 쏘고 말았어요. 그리고 그 사람 의 주머니에서 돈이 두둑하게 든 지갑을 빼왔지 뭡니까.용서받을 수 없는 큰 죄를 지었군요. 뉘우치고 죄 사함 받는 보속 기도를 하시오.예" 그리고는 "신부님, 고해의 비밀을 지키는 것은 신부의 의무인줄 알고 있습니다. 신분의 입장에서 설마 나를 고발하지는 못하시겠지요 여기 돈을 빼낸 지갑과 총을 두고 갑니다." 하고는 범인은 성당을 나가 도망하였다. 조 금후 경찰이 들이닥쳤다. "신부님 우리는 살인자를 찾고 있습니다. 범인이 이쪽으로 들어간 것 같다는 제보가 있었는데요." 신부는 잠깐 눈을 감았다. 그 순간 기도했다. 문득 내면 깊은데서 그런 소리를 들었다. "신부의 의무는 사랑이다" 빈 지갑과 총 을 던져버리고 간 사내가 한순간 미웠으나 신부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모르는 일이오." 경찰이 말했다. "정
그렇다면 성당이라도 수색을 해야만 합니다." 성당 안을 구속구석 수색 하던 경찰은 고해소에서 권총과 빈 지갑을 찾아냈다. 이 때 범인이 고해성사를 하러 왔었다는 한마디면 모든 일이 간단하게 풀릴 순간이었다. 그러나 신부는 마음 속으로 다시 주님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신부는 강도 살인죄로 체포되어 재판에 회부되고 중노동에 무 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를 향한 엄청난 비난과 저주스런 원망까지 모두 들 어야 했다. 그리고 그 혹독한 중노동을 시작했다. 6년이 지났다. 그리고 제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심한 부상을 입은 병사 한 사람이 사제신부를 만나게 해 달라고 청했다. 신부가 왔을 때, 그는 눈물 을 흘리며 말했다. "고해성사를 받아주십시오. 일평생 처음으로 드리는 진실 한 고해성사입니다." 그리고 그는 6년전 저지른 강도살인과 그날밤의 고해 성사 때문에 리베이라 신부가 지금까지 감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 백했다. 사내는 고해성사를 마친 뒤에 숨을 거두었다. 리베이라 신부는 누명을 벗고 자유의 몸이 되었다. 사람들은 신부를 대신하 여 눈물을 흘렸다. 그 억울함을 생각하며 많은 사람이 울었다. 그때 리베이 라 신부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나도 예수를 못박았던 자 중의 하나요. 6년의 중노동이나 오해를 억울해 할 것이 아니요, 묵묵하게 견딜 수 있게 도와주신 주님께 감사할 뿐이지요, 이 땅 위에서의 그 어느 것도 나의 삶이 아닌 것이 없고, 그 어떤 고난도 주님의 것이 아닌 것이 없으니 나는 오직 주와 함께 살고 있는 기쁨을 더욱 깊이 배웠으니 주의 은혜일 뿐이지요." 우리가 의무에 충실할 수 잇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아는 것이다. 그 사랑이 우리를 의무에 충실하게 하면서도 억울하게 하지 않고, 의무를 다하면서도 손해봤다 생각하지 않게 하고, 오히려 어렵고 힘든 시간들을 주님과 동행하는 행복한 시간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의 사랑으로 의무를 다하고 있는 곳에 여우는 잡히고, 마귀는 물러간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사랑보다 더 큰 능력은 없다. 우리 가정이 행복하기를 원하는가 그러면 가정 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있게 하라. 그리고 우리 각자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풍성해지도록 기도하라. 그리하여 우리가 그 사랑에 감격하고, 그 사랑에 젖 을 때 우리는 의무를 다하되 억울하지 않고 기쁨을 얻고, 거기에서 풍성한 행복을 누리게 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가정에 행복의 꽃이 피고, 행복의 향기가 가득 하게 하자. 이는 우리가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이다. 이제 가정의 행복을 짓밟는 이기심과 독선과 아집, 그리고 의무를 게을리하는 더러운 여우를 잡아야 한다. 이를 잡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사랑, 섬김의 사랑, 너를 위해 내가 희생할 수 있는 사랑, 너의 죄를 내가 대신 지고 강제노역의 현장으로 끌려갈 수 있는 사랑의 사람이 되자. 바로 내가 그렇게 서 있는 그곳에는 이미 행복을 짓밟으려는 여우는 사라지고,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어 풍성하고, 포도나무는 꽃이 피 어 향기를 토하는 행복한 가정,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와 일어나 인생을 함께 걷는 행복한 사람이 될 것이다." 이것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겠는 가 이 축복을 온전히 누리는 복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준미의 이름으로 기도드린다.
그런데 이 난은 얼마나 까다로운지 보통 정성을 기울이지 않고는 기를 수 없는 것이다. 날마다 씻 어주고 닦아주고 한다. 건조하면 가습기 틀어 습도를 조절해주고, 영양이 부 족한 것 같으면 영양제를 뿌리에 꽂아주고 하는 것을 보면서 '나는 못하겠 다'고 했다. 이렇게 정성을 쏟아 가꾸어야 난은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향기 로운 꽃망울을 터뜨리게 된다는 것이다. 가정은 난과 비교할 수 없이 아름 답고 소중한 꽃이다.
그런데 우리는 가정의 행복은 저절로 피어난다고 생각 한다. 분명한 것은 가정은 저절로 행복이 피어나는 잡초와 같은 것이 아니다. 모두가 정성을 다하여 가꾸어야 행복의 꽃이 피는 섬세하고 값비싼 꽃 이다. 그러면 어떻게 가정을 가꾸어야 행복의 꽃을 피울 수 있을까 오늘 말씀 15절은 "포도원을 허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 우리의 포도원에 꽃 이 피었음이니라"고 한다. 즉 "행복의 꽃이 피어있는 우리의 포도원을 짓밟는 작은 여우를 잡으라"고 한다. 행복한 가정을 가꾸는 일은 가정의 행복을 짓밟는 여우를 잡는 일이다. 우리 가정에는 행복의 꽃을 짓밟는 여우가 들 어와 있다. 이것을 잡아야 한다. 그러면 우리 가정의 행복을 짓밟고 있는 여 우가 무엇이며, 이 여우를 어떻게 잡을 수 있는지를 함께 생각하면서 은혜 를 나누자. 먼저 우리 가정에 들어와 있는 여우는 독선과 아집과 이기심이다. 시카고 대학의 돈 브라우닝이라고 하는 유명한 교수가 지난 해 우리 한국에 와서 "Globalization of Family"라는 논문을 발표한 바가 있다. 이분은 이 논 문에서 가정이 점점 문제되고 있는 것은 세계적인 추세라는 것이다. 대표적 으로 미국을 들어 이렇게 말했다. 50%의 가정이 이혼을 하고, 30%의 아이 들은 부모가 누군지를 모르고 자라고, 30%는 결손 가정에서 자란다. 미국의 아이들 가운데 30%만이 그런대로 형식적으로나마 부모의 사랑을 받고 자란 다는 것이다. 그러니 이제 이 세대가 어디로 갈 것이냐 하는 것이다. 인간성 이니, 정보화니, 과학화니, 교육이니 뭐니, 다 헛된 소리이다. 가정의 문제를 이 상태로 놔두고 그런 것들이 무슨 의미가 있겠는가 아무 것도 소용없는 일이 아닌가 그러면 우리 나라는 어떤가 지난 해 통계청이 발표한 95년 인구동태통 계 에 따르면 95년도에 6만 7천쌍의 부부가 이혼했다. 이는 하루 평균 1백 90쌍의 부부가 이혼한 것이다. 이 이혼으로 인하여 연간 6만3천명이 넘는 미성년자녀들이 부모를 잃어버리고 고통을 당하고 있다고 한다. 지금은 경제위기로 인하여 이혼이 증가하고 있다고 한다. 따라서 지금은 이혼하는 부부 가 하루 평균 200쌍을 훨씬 넘을 것이다. 그리고 이혼으로 인하여 버려진 미성년자녀들의 숫자도 95년도와 비교할 수 없이 많을 것입니다. 그러면 왜 이렇게 되었는가 서울리서치 라는 조사기관에서 이혼한 부 부를 대상으로 이혼에 이르게 된 이유를 조사했다. 그 결과를 보면, 응답자 의 30.2%는 두사람의 성격차이, 17.8%는 시댁식구들과의 갈등, 17.6%는 서 로에 대한 대화나 관심부족, 16.3%는 부인이나 남편의 외도, 7.5%는 성적인 불만이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우리는 상식적으로 이혼의 원인이 남편이나 아내의 부정이라고 생각하는데, 이 통계를 보면 부정이 이유가 된 것은 전 체 이혼의 16%정도이고, 나머지는 독선과 아집, 이기심 때문이다. 가정은 부모, 부부, 자녀들이 함께 사는 공동체이다. 가정은 그 어느 누구 한 사람의 소유물도 아니다. 따라서 가족간에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고 부족 한 것도 받아들여주는 그런 미덕이 있어야 되는 곳이 가정이다. 오늘날 이 미덕이 사라지고 이기주의와 독선이 가정을 채워가고 있다. 이기주의와 독 선과 아집이라는 여우가 우리 가정의 행복을 짓밟고 있는 것이다. 돈 브라 우닝 교수는 가정이 잘못되는 뿌리는 극단적 이기주의에 있고, 또 헌신이 사라지는 데 있다고 결론지었다.
그러므로 가정의 행복을 지키려면 독선과 아집, 이기심이라는 여우를 잡아야 한다. 이 여우를 가정에서 몰아내야 한다. 그러면 독선과 아집이라는 여우는 어떻게 잡을 수 있는가 사랑의 회복이다. 사랑은 희생이다. 사랑이란 너를 위한 나의 희생이다. 예수께서 말씀하 셨다. "가장 큰사랑은 친구를 위하여 목숨을 버리는 것"(요15:13)이라고 하 셨다. 결혼이란 사랑하기 위해서 한다. 이 말은 결혼이란 저를 위해 내가 희 생하기 위해서 한다는 말로 바꿀 수 있다. 가정은 이 사랑을 먹고 자라고 행복의 꽃을 피운다.
그런데 요즈음 사람들은 결혼을 종만들기 위하여 한다. 그래서 결혼하면 남편을 종만들려고 하고, 아내를 종만들려고 한다. 심지어 태어나는 자녀까지도 내 만족을 채우기 위한 도구로 만들려고 한다. 그리고 여기에서 파생되는 모든 문제들을 돈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돈만 있으면 모 든 것이 해결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여러분, 내 가족 들은 종이 아니기 때문에 몇 푼의 품삯으로 만족할 수 없다. 따라서 가정은 돈으로 행복이라는 꽃을 피울 수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여러분, 가정을 만드는 것은 학벌도 아니요, 책도 아니요, 가구도 침대도 아니다. 그렇다고 벽에 걸린 그림도 아니다. 새장에서 노래하는 새나 풍성한 음식도 아니다. 권력이나 돈은 더군다나 아니다.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것은 방안에서 울려 퍼지는 웃음소리요, 밤에 아버지와 어머니의 얼굴에서 피어 나는 미소요, 어린아이의 눈에 그윽하게 담겨있는 기쁨이다. 이 기쁨은 사랑 하고 희생하는 곳에 피어나는 화초요, 이 기쁨이 따뜻하고 행복한 가정을 만드는 자양분이다. 따라서 사랑을 회복하는 길만이 우리 가정의 행복을 짓 밟는 여우를 잡는 길이다. 돈으로 잡아지거나 음식으로 잡아지는 것이 아니다. 아집과 독선, 이기심을 버리고 오직 희생이 있는 진정한 사랑을 회복할 때 여우는 잡히고, 쫓겨간다는 것을 기억하자. 두 번째 우리가 잡아야 할 여우는 권리만 있고 의무가 없는 행동이다. 하나님이 사람을 만드실 때 축복을 누릴 권리를 주시면서 동시에 그 축복을 온전하게 지킬 의무를 주셨다. 사람이 누릴 마땅한 권리는 의무를 다한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축복이다. 우리 가정도 예외가 아니다. 모든 가족들 은 권리를 누리기 위하여 가족으로서의 의무를 다해야 하는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우리의 삶속에는 자기 권리는 강하게 주장하면서 자기가 담당해야 할 의무에는 소홀히 여기는 풍조가 만연해 있다. 이런 현상은 우리 사회 구 석구석에 퍼져있고, 가정에도 깊숙히 들어와 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창조하실 때에 축복을 누릴 권리를 주시되 먼저 의 무에 충실하라고 하셨다. 그래서 성경에는 축복을 말씀하시면서 먼저 "나의 규례와 율례를 지키고 순종하면" 이라는 말씀을 반드시 하셨다.
그러므로 권리를 주장하기에 앞서 내가 마땅히 담당해야 할 의무는 다하고 있는지를 살펴야 할 것이다. 가정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남편은 남편으로서의 권리와 의무가 있고, 아내는 아내로서의 권리와 의무 가 있으며, 자녀는 자녀로서의 권리와 의무가 있다. 성경은 이를 명확하게 가르치고 있다. 엡5:22절은 "아내들이여, 자기 남편에게 복종하기를 주께 하 듯 하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렇게 남편은 아내에게 존경받고 순종을 요구 할 권리가 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남편에게 주신 큰 특권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를 위하여 남편에게는 "아내 사랑하기를 제 몸과 같이 하라"는 의무를 주셨다. 가정에서 남편이 아내에게 그저 존경과 순종과 복종만 요구하고 호령만 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남편에게 주신 축복을 누릴 권리 가 없다. 그리스도가 교회를 사랑하기 위하여 피흘려 죽으신 것처럼 아내의 행복을 위해 희생할 수 있어야 한다. 이 의무를 다하지 못하는 남편은 남편 으로서의 권리를 누릴 자격이 없다. 또 아내는 아내로서의 권리가 있다. 아내의 권리는 남편의 사랑을 받을 권 리가 있고 남편의 도움을 받을 권리가 있다. 아내에게도 의무가 있다. 남편 을 존경하고 복종하며 내조하며 자녀를 돌볼 그러한 의무가 있는 것이다. 엡5:23-24절은 "이는 남편이 아내의 머리됨이 그리스도께서 교회의 머리됨 과 같음이니 그가 친히 몸의 구주시니라. 교회가 그리스도에게 하듯 아내들 도 범사에 그 남편에게 복종할지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복종의 미덕은 하나님께서 이 시대의 아내들에게 원하시는 의무이다. 자녀에게도 권리와 의무가 있다. 자녀의 권리는 부모의 사랑과 보호와 후원 과 돌봄을 요구할 권리가 있다. 하나님이 자녀를 우연히 태어나게 하신 것은 아니다. 자녀는 하나님이 주신 기업이다. 하나님께서 "나 대신해서 맡아 서 돌보라"고 하신 하나님의 사업이 자녀이다.
그러므로 자식은 부모님에게 돌봄을 받아야 할 권리가 있다. 그러나 자녀들에게도 마땅히 해야 할 의무 가 있다. 골3:20절은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 이는 주 안에 서 기쁘게 하는 것이니라"고 말씀하고 있다.
그러므로 자녀들의 의무는 부 모님에 대한 순종이다. 부모님을 공경하는 일이다.
그런데 오늘 우리 가정에는 권리만 주장하고 의무는 하지 않으려는 여우가 들어와 있다. 이 여우로 인하여 가정의 행복이 짓밟히고 있다. 하나님께서는 권리를 주시면서 의무를 다한 사람에게 그것을 누리게 하셨다. 아담과 하와 가 선악과를 따먹었을 때 그들에게 주어진 복된 권리는 순간적으로 사라지 고 말았다.
그러므로 우리 가정에 행복의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가족 상호 간에 먼저 의무를 다해야 한다. 그러면 어떻게 의무에 충실할 수 있는가 이것도 역시 사랑이다. 포르투갈의 작은 마을에서 일어난 일이다. 그 마을 성당에 리베이라 라는 신부가 있었다. 어느 날 자정, 초인종 소리에 잠이 깨어 문을 열자 성 당 안으로 모자를 깊이 눌러쓴 남자가 달겨들듯이 들어섰다. "신부님, 밤이 깊었지만 고해성사를 드리고 싶습니다. 오늘밤을 넘겨서는 안 될 일이기에 무릅쓰고 찾아왔으니 받아주십시오." 이렇게 해서 심야에 고해 성사를 받게 되었다. 그는 "신부님, 제가 돈이 필요해서 사람이 많은 기차역으로 나갔습지요. 적 당한 사람을 물색하여 옆구리에 총구를 찌르고 조용히 돈을 내어놓으라고 했어요.
그런데 글쎄 그 돈 많아 보이는 부자가 앙탈을 하지 않겠습니까. 곧 들켜서 순경이 쫓아 올 것 같아 그만 총을 쏘고 말았어요. 그리고 그 사람 의 주머니에서 돈이 두둑하게 든 지갑을 빼왔지 뭡니까.용서받을 수 없는 큰 죄를 지었군요. 뉘우치고 죄 사함 받는 보속 기도를 하시오.예" 그리고는 "신부님, 고해의 비밀을 지키는 것은 신부의 의무인줄 알고 있습니다. 신분의 입장에서 설마 나를 고발하지는 못하시겠지요 여기 돈을 빼낸 지갑과 총을 두고 갑니다." 하고는 범인은 성당을 나가 도망하였다. 조 금후 경찰이 들이닥쳤다. "신부님 우리는 살인자를 찾고 있습니다. 범인이 이쪽으로 들어간 것 같다는 제보가 있었는데요." 신부는 잠깐 눈을 감았다. 그 순간 기도했다. 문득 내면 깊은데서 그런 소리를 들었다. "신부의 의무는 사랑이다" 빈 지갑과 총 을 던져버리고 간 사내가 한순간 미웠으나 신부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모르는 일이오." 경찰이 말했다. "정
그렇다면 성당이라도 수색을 해야만 합니다." 성당 안을 구속구석 수색 하던 경찰은 고해소에서 권총과 빈 지갑을 찾아냈다. 이 때 범인이 고해성사를 하러 왔었다는 한마디면 모든 일이 간단하게 풀릴 순간이었다. 그러나 신부는 마음 속으로 다시 주님을 바라보며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신부는 강도 살인죄로 체포되어 재판에 회부되고 중노동에 무 기징역을 선고받았다. 그를 향한 엄청난 비난과 저주스런 원망까지 모두 들 어야 했다. 그리고 그 혹독한 중노동을 시작했다. 6년이 지났다. 그리고 제 1차 세계대전이 일어났다. 심한 부상을 입은 병사 한 사람이 사제신부를 만나게 해 달라고 청했다. 신부가 왔을 때, 그는 눈물 을 흘리며 말했다. "고해성사를 받아주십시오. 일평생 처음으로 드리는 진실 한 고해성사입니다." 그리고 그는 6년전 저지른 강도살인과 그날밤의 고해 성사 때문에 리베이라 신부가 지금까지 감옥살이를 하고 있다는 사실을 고 백했다. 사내는 고해성사를 마친 뒤에 숨을 거두었다. 리베이라 신부는 누명을 벗고 자유의 몸이 되었다. 사람들은 신부를 대신하 여 눈물을 흘렸다. 그 억울함을 생각하며 많은 사람이 울었다. 그때 리베이 라 신부가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나도 예수를 못박았던 자 중의 하나요. 6년의 중노동이나 오해를 억울해 할 것이 아니요, 묵묵하게 견딜 수 있게 도와주신 주님께 감사할 뿐이지요, 이 땅 위에서의 그 어느 것도 나의 삶이 아닌 것이 없고, 그 어떤 고난도 주님의 것이 아닌 것이 없으니 나는 오직 주와 함께 살고 있는 기쁨을 더욱 깊이 배웠으니 주의 은혜일 뿐이지요." 우리가 의무에 충실할 수 잇는 것은 그리스도의 사랑을 아는 것이다. 그 사랑이 우리를 의무에 충실하게 하면서도 억울하게 하지 않고, 의무를 다하면서도 손해봤다 생각하지 않게 하고, 오히려 어렵고 힘든 시간들을 주님과 동행하는 행복한 시간으로 만드는 것이다. 그리고 주님의 사랑으로 의무를 다하고 있는 곳에 여우는 잡히고, 마귀는 물러간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사랑보다 더 큰 능력은 없다. 우리 가정이 행복하기를 원하는가 그러면 가정 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있게 하라. 그리고 우리 각자가 그리스도의 사랑으로 풍성해지도록 기도하라. 그리하여 우리가 그 사랑에 감격하고, 그 사랑에 젖 을 때 우리는 의무를 다하되 억울하지 않고 기쁨을 얻고, 거기에서 풍성한 행복을 누리게 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가정에 행복의 꽃이 피고, 행복의 향기가 가득 하게 하자. 이는 우리가 온전한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할 때 하나님이 주시는 축복이다. 이제 가정의 행복을 짓밟는 이기심과 독선과 아집, 그리고 의무를 게을리하는 더러운 여우를 잡아야 한다. 이를 잡기 위해서는 그리스도의 사랑, 섬김의 사랑, 너를 위해 내가 희생할 수 있는 사랑, 너의 죄를 내가 대신 지고 강제노역의 현장으로 끌려갈 수 있는 사랑의 사람이 되자. 바로 내가 그렇게 서 있는 그곳에는 이미 행복을 짓밟으려는 여우는 사라지고, "무화과나무에는 푸른 열매가 익어 풍성하고, 포도나무는 꽃이 피 어 향기를 토하는 행복한 가정, 나의 사랑, 나의 어여쁜 자와 일어나 인생을 함께 걷는 행복한 사람이 될 것이다." 이것보다 더 큰 축복이 어디 있겠는 가 이 축복을 온전히 누리는 복된 그리스도인이 되기를 준미의 이름으로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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