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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를 알지 못하는 세대 (삿2:6-10)

본문

사사기 말씀은 이스라엘 민족을 이끌고 홍해를 건너고 광야를 지난 모세의 후계자로서 가나안을 정복하고 정착한 이스라엘의 지도자였던 여호수아의 죽음 부터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호수아가 일백십세를 살다가 죽었을 그 때, 후계자도 없는 때에 그 남은 백성들은 암담했습니다. 그러나 그 세대는 그래도 하나님께 자기들의 나아갈 길을 물어서 가나안을 정복하는 일을 계속했습니다. 그랬는데, 오늘 읽은 본문에는 (삿2:10) 그 세대 사람도 다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라고 했습니다. 여호수아와 함께하던 사람들이 다 죽은 이후 신세대에는 여호와르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했다고합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였다”는 것은 이 새로운 세대는 하나님에 대한 경험적인 지식을 상실했다는 의미입니다. 또 이 새로운 세대는 하나님에 대한 무관심하고 나아가서 하나님을 대적하는 행위를 나타내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선조들이 하나님을 잘 경외했는데, 그 후 세대가 여호와를 알지도 못했다는 말씀은 참 비극적인 일이었습니다. 여러분들은 이 말씀을 들을 때에 여기에 동감하십니까 그들이 믿음을 잃어버렸으니 참으로 모든 것을 잃어버린 불쌍한 세대라는 인식말입니다. 믿음은 상관 없지 않습니까 그저 공부 잘하면 되고 좋은 직장 취직하고, 좋은 대학 들어가면 다 되는 것 아닙니까 이들이 하나님을 알지 못한 것은 자녀들에게 후세대에게 신앙을 제일 귀한 것으로 여겨 이 믿음을 물려주어야하는데 그렇지 못한 선조들의 책임이고, 또 그 새로운 세대가 그 조상들의 믿음을 본받지 않고, 믿음에 가치를 두지 않고 무시하고 신앙지도를 받아들이지 않은 이유이기도합니다 이런 모습은 제사장이요, 이스라엘의 마지막 사사라고 할 수 있는 엘리제사장의 집을 보면 잘 압니다. 삼상 2:12절의 말씀입니다. “엘리의 아들들은 불량자라 하나님을 알지 아니하니라” 그 아버지는 제사장입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목회자입니다. 그는 하나님께 헌신한 사람입니다. 그 가정도 헌신한 가정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엘리의 두 아들은 어느 누구보다도 하나님의 말씀을 많이 듣고 자랐을 것입니다. 그들이 열심히 종교행위를 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을 알지 아니하였다”는 말씀은 그들이 지적으로는 하나님을 알았고, 습관적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행위는 했지만, 진정 하나님이 어떤 분이시며,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귀중한 것인가를 몰랐습니다. 그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하지 못했습니다. 두 아들이 방종한 일을 했으나 엘리는 그들을 책망하지 않고 그들을 징계하지 않아서 하나님께서 그 가정을 다 멸하시기에 이르렀습니다. 다음 세대를 양육해야할 책임을 지고 있는 우리들에게 중대한 경고의 말씀입니다. 믿음 좋다는 가정의 자녀들이 커서 신앙을 버리고 세상으로 달려나가고 맛 잃은 소금이 되는 일을 종종 보게 되는데, 이는 자녀들을 신앙으로 바로 양육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그저 형식적인 신앙을 가르쳤지, 하나님이 누구신지를 알게 하지 않아서 그렇습니다. 또 바로 가르친다고 해도 그 자녀들이 듣지 않는 때에는 돌이킬 수 없습니다. 우리는 본문을 통해 신앙교육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생각해 보고자 합니다.
(1) 여호수아 세대는 사는 날 동안 여호와를 섬겼습니다.(2:6-7) 여호수아 세대의 사람들은 여호수아, 갈렙 외에는 다 광야에서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그들 이전 세대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능력과 구원하시고 보호하시는 은혜를 듣고, 배웠습니다. 애굽을 치신 역사와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의 능력을 여호수아와 갈렙은 직접 체험도 했고, 많은 백성들은 부모들의 가르침을 통해서 배웠습니다. 하나님께서 반석에서 물을 내시고, 만나와 메추라기를 먹이시며, 광야를 지나는 동안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인도, 보호하신 일들을 그들 세대는 보고 알았습니다. 또 자기들 부모들이 하나님께 불순종하므로 광야에서 다 멸망을 받은 일로서 하나님이 얼마나 두려우신 분인가를 압니다. 저희들이 요단을 하나님의 능력으로 건넜으며, 가나안의 여리고 성, 아이성, 많은 대적들을 믿음으로,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취하게 된 것을 경험했습니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 말보다 몸으로 체험한 그들이기에 사는 날 동안에 하나님을 전심으로 섬겼습니다. (삿2:7) 백성이 여호수아의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의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
(2) 여호수아가 죽었을 때에도 여호수아 뒤에 생존하던 장로들이 있어서 그들이 사는 날 동안은 여호와를 섬기는 일이 계속되었다고 했습니다. 그 하나님을 의지하여 담대하고 용감하여 그 앞에 누구도 막아 설 자 없었던 여호수아, 85세에 가나안을 정복하겠다고 나섰던 갈렙, 또 여호수아를 따르던 많은 장로들, 그들은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친히 본자 들입니다. 그들도 사는 동안은 여호와를 섬겼지만, 그들도 다 그들의 열조가 묻힌 곳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러나
(3) 그 후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했습니다.(2:10)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옵니다. 여호수아 이후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했고, 여호와께서 자기들 조상들에게 행하신 일도 다 잊었습니다. 그들은 여호와 신 대신에 오히려 가나안의 신인 바알신을 섬겼고, 아스다롯을 섬겼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진노를 받아 재앙을 받았습니다. 이 후세대가 왜 하나님을 몰랐습니까 왜 바알 신을 섬겼습니까
첫째로, 여호수아 시대의 사람들이 그들의 자녀, 후손들에게 신앙교육을 바로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아버지 어머니를 통해서 하나님의 행사는 들었을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배우지 못했고, 하나님께서 지금도 역사하시는 분이심을 가르치지 못했습니다.
둘째로, 여호수아 시대의 사람들이 가나안을 정복할 때에 하나님께서 그들을 하나도 남기지 말고 다 쫒아 내라고 명하셨으나, 그들은 하나님 말씀에 순종은 했으나, 온전히 다 쫒아내지 않고 남겨두었습니다. 1:19에는 쫒아내지 못했다. 1:21에도 쫒아내지 못했다. 1:28,31,32,33,에도 그들을 다 쫒아 내지 못한 것을 말씀합니다. 그들 선조가 온전히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그들을 쫒아 내었으면 그 후 세대가 바알을 섬기지 않았을 것인데 그들을 다 쫒아내지 못한 결과가 그들이 섬기는 신을 섬기는 결과를 가져 왔습니다. 2:21에는 하나님께서 그 쫒아내지 못한 자들을 그대로 두시고,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도를 지키나 안 지키나 시험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3:2에서는 전쟁을 알지 못하는 세대에게 전쟁을 가르쳐 알리려 하셨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왕하17:33) 이와 같이 저희가 여호와도 경외하고 또한 어디서부터 옮겨왔든지 그 민족의 풍속대로 자기의 신들도 섬겼더라 하나님 말씀에 순종은 철저하고, 온전한 순종이 되어야합니다. 회개하고 고칠 것을 찾아 고치는 것도 대충하고 마는 일, 인본주의, 현실타협주의, 안일주의는 이렇게 무섭습니다. “우리가 이만하면 되었지 더 이상 피흘릴 필요가 있겠느냐”하면서 그 현실에서 하나님의 명령에 온전히 순종하려 않고 안주하려는 생각이 들어 이들을 망쳤던 것입니다. 현실에 타협하고 안일하게 그만 주저 앉아버린 나의 신앙생활은 아닙니까 처음 신앙생활을 시작할 때의 그 뜨거움도 지금 생각해보면 유치하기도하고, 그래서 지금 열심히 신앙생활한다고 좇아 다니는 후배를 볼때에 불쌍한 생각도 듭니다. 강단에서 말씀을 전하면, 뭐 그렇게 까다롭게 성경을 분해하고 설교하나,그렇게 어렵고 복잡하게 신앙생활을 해야하나 그저 예수 잘 믿으면 되는 것이지, 또 성경을 매일 읽으라고하지, 항상 깨어서 기도하라고 하지 충성을 이만하면 족하다 싶은데, 무익한 종이라 하고 죽도록 하라지, 우리들에게 무슨 원수가 많다고 밤낮 영적전투를 하라고 하나 회개할 죄가 그렇게 많다 말인가 그저 오늘 우리 교회 같이 앉을 자리 없으면 되었지 또 전도해야한다 하고 말하나 차든지 더웁든지 하여야합니다. 이렇게 미지근한 신앙생활, 이중적인 생활을 하나님은 미워하십니다. 우리 신앙생활이 날마다 새로워지지 않으면 그 현실에 잘 적응되어 죽는 줄도 모르고 죽어갑니다. 개구리를 물에 넣고 불을 가하면 삶겨 죽을 때 까지 모르고 죽는다고 합니다. 이렇게 현실에 속화걸음은 잘 순응되는 것입니다. 이 안일하고 나태한 신앙생활 때문에 오늘 우리에게 하나님의 징계로 이런 어려움이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자녀들이 무엇을 보고 배웁니까 하나님이 쓰시는 위대한 인물들의 배후에는 신앙의 어머니 아버지가 있습니다. 어떻게 하든지 독실한 신앙을 가르쳐야합니다. 우리 자녀들은 부지런히 배우고 실천하는 독실한 신앙생활을 해야합니다. 현실에 적당하게 타협하고 사는 것은 하나님이 미워하십니다.
셋째로 이들이 여호와를 알지 못했다고 하는 것은 신앙의 체험이 없는 것입니다. (삿2:10) 그 세대 사람도 다 그 열조에게로 돌아갔고 그 후에 일어난 다른 세대는 여호와를 알지 못하며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일도 알지 못하였더라 (삿2:7) 백성이 여호수아의 사는 날 동안과 여호수아 뒤에 생존한 장로들 곧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위하여 행하신 모든 큰 일을 본 자의 사는 날 동안에 여호와를 섬겼더라 라고 했습니다. 1세대는 하나님의 위대하신 역사를 경험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위해서 행하신 큰 일을 체험한 자들은 하나님을 섬겼다고 합니다. 그들은 어려움에서 하나님을 찾아 간구했고 하나님께서 들으시는 것을 경험했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가면서 역경속에서 그들을 도우시는 하나님의 능력과 손길을 경험했습니다. 이것이 1세대의 경험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가면서 새로운 세대는 하나님을 보는 눈이 감기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귀가 막힙니다. 그들이 보는 것은 현실 뿐입니다. 신앙의 실제성을 잃어버린 것입니다. 그들은 형식주의에 빠집니다. 부모가 살아있는 동안에 교회 출석은 잘 할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신앙은 그 이상 더 자라지 않습니다. 신앙은 그들에게 더 이상 능력이 아닙니다. 신앙은 그들에게 더 이상 축복이 아닙니다. 신앙은 더 이상 그들에게 최고의 것이 아닙니다. 신앙은 그들에게 소망이 되지 못합니다. 신앙의 체험의 상실, 그것은 결국 눈에 번쩍이는 세상과의 타협과 불순종의 범죄를 초래합니다. 어릴 때에 신앙생활에 많은 경험을 하도록 해 주어야합니다. 하나님이 살아계심과 하나님의 그 크신 사랑과 그 두려우심을 깨닫도록 해야합니다. 어릴 때에부터 신앙생활을 형식적으로 한 아이는 자라서 신앙생활을 결코 유지 못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부모들이 이중적인 형식 신앙생활을 해서는 안됩니다. 오늘에는 어려움을 모르는 세대입니다. 자율의 시대입니다. 이들의 미래가 어떠할까 두렵습니다. 여호수아 다음 세대들이 그 조상들이 섬기던 하나님을 까맣게 잊어버리고, 우상을 음란히 섬긴 것 같이 우리 다음 세대에 하나님을 섬기는 일이 계속될까 염려가 되지 않습니까 용감히 싸웠던 여호수아도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하신 일을 경험했던 뒤에 남았던 장로들도 다 죽었습니다. 이 말씀에서 우리들은 어떠할 것인가를 생각해야합니다.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고,(전1:11) 이전 세대를 기억함이 없으니 장래 세대도 그 후 세대가 기억함이 없으리라 우리들 이전 세대의 신앙을 우리가 다 잊어버렸습니다. 우리 선조들은 그 어려운 현실에서도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래도 그나마 하나님을 알고 열심히 순종하며,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것을 그들에게서 배운 우리들이라도 이 세상에 오래 있으면서 우리들의 자녀와 후배들의 신앙생활하는 모습을 가르치면 좋겠지만, 그들의 신앙생활하는 모습을 우리들이 다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별 수 없이 우리들도 하나님 부르시면 모세 같이 여호수아 같이 다 하나님께로 갑니다.
그런데 오늘 우리가 우리 이후 세대를 바로 가르치지 않으면 이들은 별 수 없이 이 세상의 바알신, 과학신, 물질의 신, 음란한 쾌락의 신을 섬기고,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 할 것입니다. 우리들이 눈을 뜨고 있는 때에도 벌써 나이만 들고 세상물정 조금만 알고, 세상취미 조금만 맛봐도, 하나님을 무시하고, 어른들의 간섭과 지도를 거역하는 세대인데, 앞으로 어떠하겠습니까 우리 세대만 해도 이렇게 악하고 음란하여 심히 두려운 때인데, 앞으로 우리 후 세대가 겪을 세대는 어떻겠습니까 여호수아 시대의 사람들이 순종에 철저하지 못한 것 때문에 후세대가 하나님께 징벌을 당하는 것이 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온전히 순종 못한 것, 믿음을 지켜도 온전히 지키지 못한 것이 이렇게 무섭습니다. (삿21:25) 그 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각 그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그들은 제 마음대로 했습니다. 그들을 다스리는 자가 없었습니다. 하나님도 그들의 왕이 아니고, 하나님의 법도 그들은 몰랐습니다. 단지 그들의 생각, 그 육신의 생각이 그들 행위의 규범입니다. 제 맘대로입니다. 하나님께서 시내산에서 언약을 맺을 때에 “너희가 내말에 순종하면 내가 너희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는 내 백성이 되리라”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은 잊고 제 마음대로입니다. 어떤 선행도 제가 하기 좋으면 하고, 제가 하기 싫으면,어떤 것도 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악입니다. 제가 선악의 기준이 되고 제 생각이 절대법칙이 되는 것. 이것이 오늘 세대입니다. 앞으로 마지막이 가까워지면서 더욱 이 사상이 가득할 것입니다. 자기가 선악의 기준입니다. 이것이 왜 일어납니까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 말씀은 절대 지켜야하는 진리의 말씀으로 두려워 떠는 모습을 보여줬으면, 후 세대가 보고 배울 것이지만, 하나님 말씀을 절대 순종하지 않고, 에누리하는 모습을 가르쳤기 때문에 그 다음 세대는 하나님을 경외함이나, 하나님 말씀 두려워함이 없는 것입니다. 제가 하나님이요, 제 생각이 진리입니다. 자녀가 부모의 말을 순종하지 않을 때에 그 자녀를 징계하고, 탄식하기 이전에 내가 하나님께 어떠했는가 하는 것을 보여줘야합니다. 만일 집에서 어머니가 아이들 보는 앞에서 아버지를 무시하고, 아버지 흉이나 본다면 그 집에 아버지 권위가 서겠습니까 아버지가 그래도 권위로 다스림이 자녀교육에 있어야하는데, 그 어머니가 스스로 아버지의 권위를 떨어드렸다면, 그 자녀는 아버지의 말도 순종하지 않을 것이고, 그 어머니의 말도 순종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께도 이러합니다. 우리가 후 세대에게 하나님 두려우심을 가르치고, 하나님말씀에 순종하는 모습을 보인다면 우리 후세대는 그래도 이전 세대를 존경할 것이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복된 세대가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를 가르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이라도 때를 따라서는 거역해도 상관없고, 아무런 하나님의 징계도 없었다는 것을 아이들에게 보인다면, 그 아이들에게는 독약을 먹이는 것보다 더 큰 해독을 끼치는 것입니다.
이래서 가정교육이 중요하고, 교회교육이 중요합니다. 여호수아 시대가 아무리 하나님께 쓰임받은 일을 많이 했어도 그들이 자녀들을 가르치지 않았기 때문에 그들 자녀세대에서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그들이 남겨 두었던 이방의 풍속을 따랐고, 신들을 섬기므로 망한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오늘 제 소견대로하는 세대. 이방신을 따르는 세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모르는 세대입니다. 그러나 우리들은 결국 다 갑니다. 어떻게 해야합니까 방송국에서는 “다음 세대를 생각합니다”하는데, 우리들은 무엇을 남길 것인지. 오늘 학교에 이들의 인성교육까지 맡기고 안심할 것입니까 가정에서의 신앙교육의 중요성을 생각합시다. 신앙교육은 가정에서 시작합니다. 신앙교욱은 모든 교육에 다 영향을 미칩니다. 디모데는 그의 외조모와 어머니에게서 어릴 때부터 성경을 배웠습니다. 신앙의 교육은 단지 지적인 학습활동만이 압니다. 영적이며, 인격적인 삶의 교육이기 때문에 부모님의 삶의 모습을 통해서 그리고 부모님의 애정어린 가릋밍르 통해서 하나님을 배우고, 체험하면서 참된 인격으로 자라갑니다. 여호수아 후 세대의 타락한 모습을 생각하면서 우리가 사는 이후 세대를 걱정해야합니다. 바른 신앙교육은 가정에서 시작되고, 완성됩니다. 교회 교육의 중요성을 생각합시다. 오늘날에는 지식을 얻기 위해서 필요로하는 많은 교육기관이 있습니다. 그러나 교회에서의 교육은 이런 교육기관의 한 모습이 아닙니다. 오늘 믿는 집의 부모조차도 이 교회 교육의 귀중성은 무시합니다. 입시를 준비하는데만 붙잡혀서 학교에서 교육은 귀중하지만, 교회출석이나, 학생회의 교육은 뒷전입니다. 믿는 집에 자녀들도 주일되면 차에 태우고 멀리 야외로 데리고 나가는 일을 예사로 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학교 공부에 방해된다고해서 고
2, 3학년이면 회장, 임원은 맡을 생각도 않고, 출석도 대학진학 까지도 보류한다고합니다. 요즘 교회학교의 수가 자꾸 줄어드는 추세입니다. 그
렇게해서 좋은 대학을 가겠습니까 그래서 좋은 대학을 진학 했으면 그것이 그 아이에게 얼마나 복될 것입니까 하나님께서 복을 주실 수 있는 인격을 만들고, 세상 지식도, 학문도, 대학도, 취직도 귀한 것입니다. 선악과를 먹이지 말고, 하나님께 절대순종을 가르칩시다. 하나님이 무엇을 기뻐하시는가를 고등학생 때 까지 가르치지 않으면, 그 이후에는 제 소견대로 하는 사람이 됩니다. 교회에서 교사들부터 인식이 바뀌어야합니다. 얄팍한 인본주의 써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근본입니다. 모든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데서 나오게 된다는 말이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이 지혜의 목적이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우리 후 세대를 생각하고 삽시다. 후 세대의 학교교육을 위해서 얼마나 많은 투자를 아끼지 않고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신앙을 위한 투자는 얼마나 하고 있습니까 중 고등학생이 되어도 변변한 성경책 한 권도 사도록 가르치지 않고, 교회 나오면서 찢어지고 낡은 책을 들고 옵니다. 그것도 제것이 없는 학생도 많습니다. 오늘 우리 신앙교육의 현실이 이렇습니다. 이들을 바로 양육하기 위해서 가정과 교회가 마음을 합해야합니다. 우리들이 변해져야합니다. 투자를 해야합니다. 신앙교육을 위한 교회의 투자를 과감히 해야합니다. 이들이 교회에서 배울 것이 있어야합니다. 교회가 제 집과 같아야합니다. 선생님들이 먼저 사명감을 가져야합니다. 선생님들이 이들을 위해 얼마나 기도하면, 관심으로 찾아 심방하며, 가르치는 교재를 들고 연구합니까 가르쳐야합니다. 먼저 우리가 하나님을 경외하며, 온전히 순종하는 모습을 보여야합니다. 우리가 무엇을 남겨주고 가겠습니까 은입니까 금입니까 흔히 말하는 세상 출세를 위한 교육입니까 출세 밑자리 역할을 하고 가렵니까 이것들도 우리가 해야할 일 중에 하나입니다. 이것을 않는다면 자기 가정을 돌아보지 않는 자는 불신자 보다 더 악하다 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것은 잠시 누리는 것입니다. 오히려 이것이 그들에게 화가 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영원한 유산입니다. 믿음으로 이런 것을 누리게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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