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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이 쓰시는 사람-에훗, 삼갈 (삿3:12-31)

본문

오늘 살펴보고자 하는 사사는 에훗과 삼갈 두 사람입니다. 지난 주일에도 첫 사사인 옷니엘을 쓰신 하나님에 대하여 살펴보았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나타난 이 두 사람을 볼 때에 과연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람은 어떤 사람이라 하는 것이 확실하게 드러나게 됩니다. 이 말씀이 들려지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어떤 사람에게 이 말씀이 들려지고 아멘이 되겠습니까 하나님께 쓰임받기를 원하시는 분입니다. 그 삶이 가치가 있고 그것이 하나님의 은혜인줄 알아서 항상 주여, 나를 써 주소서 하는 삶의 자세로 사는 사람은 이 말씀이 귀하게 여겨질 것이고, 그렇지 않는 사람, 신앙생활을 해도 아직 받는 것만 복이요 은혜인줄 알고 자기 중심적인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은 눈은 뜨고 있어도 이 말씀이 도무지 이해가 안되고 깨달음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어차피 누구엔가 붙잡혀 쓰임 받는 존재입니다. 지난 주 말씀 같이 하나님께 붙잡혀 종되어 살든지 아니면 구산리사다임에게 붙잡혀 종되어 살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하나님께 쓰임받는 종되지 않으면 구산리사다임, 곧 악한 세상에게 마귀에게 종되어 섬길 수 밖에 없습니다. (삿3:8)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에게 진노하사 그들을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의 손에 파셨으므로 이스라엘 자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팔 년을 섬겼더니 (삿3:10) 여호와의 신이 그에게 임하셨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사사가 되어 나가서 싸울 때에 여호와께서 메소보다미아 왕 구산 리사다임을 그 손에 붙이시매 옷니엘의 손이 구산 리사다임을 이기니라 하나님은 우리를 잡고 쓰시려는 분입니다. 전도대상자들을 위해서 기도하면서 어떤 세상적으로 학식있고, 재능있는 사람을 만나면 아주 단순하게 생각하기를, “이 사람이 전도가 되면 아마 하나님께서 대단히 크게 쓰실 것이다. 하나님의 일에 크게 유익할 것이니까 이런 사람은 꼭 전도되도록 해야한다”고 생각하여 다른 사람 보다도 전도하는데 더 많이 애를 쓰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런데 막상 전도를 하면 잘 되지 않은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때에 안타까와 합니다. 또 그런 사람이 전도되었을 때에 “이제 이 사람을 하나님께서 쓰셔서 많은 사람을 구원할 것이다” 큰 기대합니다. 교회에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이 도무지 하나님의 일에 관심조차 없는 경우에 우리들은 크게 실망하기도 합니다. 우리가 여기서 하나 짚고 넘어갈 것은 하나님은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무엇이 부족하시거나 약하여서 우리에게 무엇을 필요로 하시고 요구하시는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합니다. (행17:25)에 바울이 아덴의 사람들을 전도하면서 하나님을 소개할 때에,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심이라” 했습니다. 하나님이 부족하셔서 섬김을 받으려하심이 아닙니다. 오히려 인생과 모든 피조물들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우리들을 쓰실 때에 우리에게 있는 장점을 들어 쓰십니다. 그러나 그 장점 때문에 우리를 부르시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명심해야합니다. 그 장점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은혜입니다. 풍성한 달란트와 재력과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을 쓰시기도 하지만, 결코 하나님께서 그것들이 없어서 그것이 하나님께 모자라므로 그를 부르신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인생을 불러 쓰실 때에는 그들의 중심, 또 그들의 삶의 태도를 보고 부르십니다. 그들의 거룩한 삶, 진실한 마음과 믿음, 그 충성된 행위를 보고 부르시는 것일 뿐입니다. 교회사를 들추어 보면 예수 믿기 전에 큰 재능과 재력과 영향력을 가진 사람들이 예수를 믿은 이후에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오히려 초라하게 그 생을 마친 사람들이 많습니다. 교회에 그 가진 것을 쓰지않고 교만했기 때문에 교회에 손해가 된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 한국교회가 회개해야할 것은 장로 대통령을 뽑으면 어떻게 교회를 돕는 일을 하리라 해서 선거운동을 하다시피 했던 일입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어떠합니까 그러나 세상의 기준으로 볼 때에 굉장히 약점이 많은 사람, 누가 보아도 아주 평범한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하나님께서 쓰시기를 즐겨하시는데, 능력 주시는 자이신 그리스도께 발견되어 놀랍게 귀히 쓰임받은 사람들이 많습니다. 지난 주일 살핀 옷니엘은 그래도 장점이 많은 사람입니다. 전쟁에도 능하고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사람들도 쓰십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것 때문에 그를 부르신 것은 아닙니다. 오늘 읽은 본문에 나타나는 에훗이나 삼갈은 전혀 그렇지 않은, 참으로 아무 것도 내 놓을 것이 없는 약점이 많고 지극히 평범한 우리 같은 사람들임에도 사사로 쓰임을 받은 하나님의 놀라운 등용의 은혜를 살피려합니다. 약점이 많다고, 지극히 평범하여 주늑들거나 기가 죽어 살 이유는 없습니다. 세상에는 그럴지라도 하나님께는 오히려 귀하게 쓰임을 받을 수도 있습니다. (삿3:15)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우셨으니 그는 곧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왼손잡이 에훗이라 이스라엘이 패역해서 모압을 붙여서 이스라엘을 18년 동안이나 괴롭게 하셨는데, 이 때에 이스라엘이 다시 하나님께 돌아와서 부르짖습니다. 하나님은 긍휼에 풍성하셔서 베냐민 사람 옷니엘을 사사로 세우시는데 그는 왼손잡이입니다. 우리들 가운데도 왼손잡이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것이 약점이 되지는 않습니다. 대개가 왼손잡이들이 재주가 있다고 합니다. 또 실은 그들은 양손잡이입니다. 글은 오른손으로 쓰고, 밥은 왼손으로 먹고, 다른 사람들이 한 손으로 밥을 먹을 때 왼손잡이들은 양손으로 포크와 나이프를 들 듯이 숟가락과 젖가락을 들고서
그런데 여기 에훗은 그것이 약점이었습니다. 군인으로서 왼손잡이라는 것은 큰 결격사유가 될만한 약점입니다. 에훗이 왼손잡이라는 것은 왼손을 더 잘 사용한다는 뜻이 아니라, 오른 손이 없다는 것입니다. 한 손잡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사람을 들고 쓰시면서 왜 하필 이 사람을 소개하시면서 왼손잡이라 했습니까 이런 약점을 가진 자라도 하나님께서 쓰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베냐민 지파의 에훗”이라고 했는데, 벤냐민의 뜻은 온른 손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벤’은 아들, ‘야민’은 오른손이라는 것입니다. 오른 손은 성경에서 능력을 상징합니다. 베냐민 지파에서는 오른 손을 잘 쓰는 무사들이 많았습니다.
그런데 이 유명한 “오른 손을 잘 쓰는 무사 지파”라 할 수 있는 베냐민 지파에서 그 자손 가운데 에훗이 왼손잡이였는데 그가 사사로 세움을 입었다는 것은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또 삿 20:15-16에 보면 세월이 흐른 후에 일인데 한 번 더 왼손잡이들이 나타나는데, 그 사람들도 베냐민 지파의 사람들입니다. 700명이나 되는 무사들이 다 왼손잡이 였습니다. 전국왼손잡이협의회(전좌협)이라도 구성했는지 몰라도 이들은 베냐민 지퍄 사람이니 당연히 오른 손잡이들일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깨고 그들은 왼손잡이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오른 손 잡이, 곧 무술에 뛰어난 무사들을 쓰실 것이라는 고정관념을 깨라는 것입니다. 묻겠습니다. 에훗이나 700명 무사의 오른 손은 누구라는 뜻입니까 하나님께서 에훗이나 700명 무사의 오른 손이 되어 주셨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약점이 많고, 부족하여서 하나님의 일에 나는 쓰임 받지 못한다고 낙심하십니까 당신의 약점이 하나님께로 당신을 이끄는 귀한 도구가 되었다면 그것을 불행이라고 하겠습니까 약점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을 더 의지하게 되지 않습니까 당신의 오른 손이 되어 주시겠다고 하신 하나님이 계시지 않습니까 당신이 왼손잡이라서 하나님을 의지하였다면, 하나님을 의지함이 없는 오른 손 잡이보다 더 능하고 강하지 않겠습니까 (사41:10)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니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니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했습니다. 사람들이 가진 장점이 바로 사용되면 좋은 것이지만, 본인에게 복이 되지 못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식을 가진 것이 나쁜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그 지식 때문에 성경말씀을 부인하고 교만하여 하나님을 보지 못한다면 그 지식은 복되지 못한 것입니다.
재물을 가진 것 땜에 오만하다면 그 부가 그에게 유익이 되지 못하는 것입니다. 건강도 좋은 것 같으나 건강하기 땜에 하나님을 무서워하지 않고 악을 행하는데 용감하다면 그 건강이 무슨 복이 되겠습니까 또 31절의 삼갈은 농부였습니다. (삿3:31) 에훗의 후에 아낫의 아들 삼갈이 사사로 있어 소 모는 막대기로 블레셋 사람 육백 명을 죽였고 그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였더라 그의 기사는 한 절 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또 4;1을 보면 (삿4:1) 에훗의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매 한 기사를 보면 삼갈은 사사로도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이런 사람들을 소사사라고 합니다. 이름도 없고 빛도 없이 하나님께 쓰임을 받은 사사삼갈입니다. 그는 농부로서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은 소 모는데 쓰는 막대기 하나입니다. 그가 이것을 가지고 원수들을 멸하고 이스라엘을 구원했다는 것입니다. 지극히 평범한 사람, 이 사람이 가지고 있는 도구라야 소모는 막대기 뿐입니다. 군인이 갖추어야할 무기조차 갖추지 못한 삼갈, 그러나 그에게 있어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고, 하나님께서 그를 붙드시고 쓰신다는 사실이었습니다. 그에게 대포가 있었다고 해도, 하나님께서 함께 하지 않는다면 그것이 무슨 힘이 되겠습니까 세상적인 구비를 무시하는 성경이 아닙니다. 또 말씀드립니다.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옷니엘 같이 장점이 있으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쓰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그것 때문은 아닌 것입니다. 또한 우리에게 장점이라고는 없고, 오히려 에훗같이 약점이 있을지라도, 삼갈 같이 내게 갗춘 것은 무기도 되지 않을 다윗의 물매돌 같은 빈약한 것들만 있을지라도 있는 그것도 의지하지 않고 하나님을 의지한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쓰셔서 위대한 일을 이루시고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것이라는 것입니다. 세상은 가문과 재럭과 재능과 학문과 외모를 보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것보다도 우리 중심을 보시고 충성됨을 귀히 여기신다는 사실을 알아야합니다. 하나님께 쓰임받기를 원하시는 분들은 옷니엘 같이 에훗과 삼갈 같이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믿음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본문말씀을 살펴보면 에훗이 얼마나 충성되이 지혜롭게 하나님의 일에 순종했는 지를 알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울왕에게 진노하신 것은 제가 하나님보다 더 의롭고, 하나님께 순종함보다는 주관적으로 행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에훗을 보면 철저하게 하나님의 뜻대로 순종했습니다. 지난 주에는 옷니엘이라는 사사를 하나님이 쓰심을 살펴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각 시대마다 당신이 쓰실 사람을 세우시고 그들을 붙들고 구원의 역사를 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는 누구나 쓰임을 받을 수 있지만 아무나 다 귀하게 쓰임을 받는 것은 아니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다 하나님께 쓰임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로 거룩하게 하셨고, 우리들을 쓰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우리를 쓰실 때에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인간적인 어떤 실력이나, 어떤 재능이 아닙니다. 옷니엘을 통해서 하나님은 어떤 사람을 쓰신다고 했습니까 하나님은 순종하는 자를 쓰십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귀중한 줄 알고 부족하지만, 즉각적으로 순종할 때에 그 사람을 붙들고 쓰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부족한 자라도 성령님의 충만한 능력을 입히신다고 했습니다. 먼저는 하나님의 명령에 겸손히 순종하는 자를 쓰십니다. 하나님께 쓰임 받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께 쓰임 받는 것이 가장 큰 은혜인줄 믿으십니까
그렇다면 자기를 부인하여야합니다. 자기 주관, 자율, 자기 영광, 명예 모든 것을 다 부인하고 주님의 뜻을 좇아야 하나님께서 그에게 은혜입혀서 쓰시는 것입니다. 에훗은 모압을 치되 철저하게 진멸했습니다. 모압의 에글론을 지혜롭게 살해하므로 모압 세력을 단숨에 몰아내고 무려 80년을 이스라엘에게 하나님께서 평강하도록 하는데 쓰임을 받았습니다. 우리들이 이 에훗의 기사를 인간윤리의 측면만으로 보면 이해할 수 없이 잔인한 것이지만 이는 영적으로 가나안의 이방신과 우상을 멸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실로 우리를 멸망으로 이끌 죄악에 대하여 우리는 동정하거나 연민의 대상으로 삼아서는 안됩니다. 멸절시키고 뿌리 뽑아서 하나님의 평화가 우리들의 삶에 깃들게 해야 합니다. 사사시대 전 기간에 걸쳐 가장 긴 시간 동안 이스라엘에 평화가 온 것은 모압으로 대표되는 죄악을 몰아내었기 때문입니다. 실로 죄악과 부패를 몰아내기 전에는 우리 삶에는 참된 평화와 안식은 없는 것입니다. 이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주신 선물입니다. 우리들의 삶에서 죄악을 뿌리 뽑읍시다. 우리 삶에서 부패된 것들, 하나님께서 진노하실만한 악한 일들을 다 멸해야합니다. 그러면 우리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평강이 남칠 것입니다. 에훗은 이렇게 하나님께 순종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순종하는 그를 쓰셔서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이스라엘에 크게 평강을 주신 것 같이 오늘 우리들도 하나님께서 부르실 때에 순종으로 겸손으로 나아가면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평범한 삶을 통하여서도 영광받으실 것입니다. 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태 가나안 정복 전쟁의 영도자 여호수아가 죽자, 이스라엘은 통치의 공백이 생겼습니다. 모세와 여호수아 같은 권위를 가진 강력한 지도자가 더 이상 나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왕이 없으므로 각 지파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각자 자기들 소견에 좋은대로 행동했습니다. 이처럼 여호수아의 죽음 이후부터 왕정 시대의 체제가 확립되는 때까지를 사사시대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사들을 세우셔서 이스라엘을 통치하셨습니다. 이 사사들은 국가지도자, 군사지도자격이지만, 실은 하나님께서 그들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보호하시기 위해서 세운 자들이기 때문에 ‘구원자’라고도 불리웁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사사 시대 동안에 무려 12명의 사사를 세우셨습니다. 지난 주에도 말씀드린대로 사사기를 읽어 보면 사사시대의 신앙적인 면에서 독특한 순환 구조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평강과 형통을 주셔서 그 삶이 편안한 가운데 있으면 그들이 더욱 더 하나님을 잘 섬겨야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그렇지 못하고 그럴 때에 교만하고 방심하고 안일하여 이방 풍속을 따라서 우상과 이방신을 섬기는 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노엽게하는 죄를 범하게 됩니다.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징계하십니다. 그 징계는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로 돌아오게 하시려는 채찍질입니다. 그러면 그들은 다시 그 고통을 인하여 회개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또 구원자를 보내셔서 구원하시는 일을 하십니다. 그러면 다시 그 땅에 평화가 찾아오게 되는데, 이 평강이 계속되지 못하고 다시 징계를 받고 다시 돌아오고 하는 신앙형태가 악순환되는 것은 그들의 패역함 때문입니다. 본문 말씀에도 (삿3:11) 그 땅이 태평한 지 사십 년에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 죽었더라-하나님께서 그 땅을 사사가 있는 동안에 태평하도록 했습니다. 옷니엘 때는 40년간입니다. 그러나 (삿3:12)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니라-악을 행하는 이스라엘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므로 여호와께서 모압 왕 에글론을 강성케 하사 그들을 대적하게 하시매 (삿3:13) 에글론이 암몬과 아말렉 자손들을 모아 가지고 와서 이스라엘을 쳐서 종려나무 성읍을 점령한지라 (삿3:14)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왕 에글론을 십팔 년을 섬기니라-이는 악을 행하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그들이 모압의 침략을 받아 18년을 섬깁니다. (삿3:15)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그들이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옵니다.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우셨으니 그는 곧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왼손잡이 에훗이라-하나님께서 구원자를 내십니다. (삿3:30) 그 날에 모압 사람이 이스라엘의 수하에 항복하매 그 땅이 팔십 년 동안 태평하였더라-다시 태평한 세월이 80년간 계속됩니다. 이 사시기의 신앙 상태의 순환고리는 오늘 우리들에게도 있는 것입니다. 이를 우리에게 거울로 주신 것입니다. 우리들이 이 사사기에서 교훈 받을 말씀은,
첫째로 우리가 평안한 때에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알고 하나님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한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도 이스라엘은 옷니엘 사사가 있을 때에 평화를 누립니다. 또 그 이후 에훗의 활약으로 80년간을 태평한 세월을 보냅니다. 지금과는 상황이 많이 다르겠지만, 그래도 우리나라 역사를 봐도 그 때 40년간을 평화를 누린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형통의 삶이 계속 될 때에 그들을 구원하시고 보호하신 고마우신 하나님의 그 은혜를 다 잊어버리고 이방신을 섬기고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노를 쌓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이미 모세를 통하여 경고한 말씀입니다. (신31:20) 내가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한 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인 후에 그들이 먹어 배부르고 살찌면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나를 멸시하여 내 언약을 어기리니 (신31:21) 그들이 재앙과 환난을 당할 때에 그들의 자손이 부르기를 잊지 아니한 이 노래가 그들 앞에 증인처럼 되리라 나는 내가 맹세한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이기 전 오늘날에 나는 그들의 상상하는 바를 아노라 (신32:15) 그러한데 여수룬이 살찌매 발로 찼도다 네가 살찌고 부대하고 윤택하매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며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경홀히 여겼도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간사합니다. 환난의 때에 찾던 하나님, 그 하나님을 환난이 지나면 그만 잊어버립니다. 그 크신 은혜와 손길을 까맣게 잊고, 그 때에 하나님게 서원한 것들도 다 잊어버립니다. 그리고는 제가 잘나서 무엇인가 이루었다고 교만합니다. 이스라엘이 살이 찌매 하나님까지도 발로 차버립니다. 하나님도 버리며, 하나님을 업신여깁니다. 이것을 모세가 광야에 있을 때에 경고하였는데, 그들은 이 말씀에 경고한대로 하나님을 너무도 빨리 잊어 버렸습니다. 여러분, 지혜로운 자는 바로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 앞에 겸손한 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 은혜를 항상 기억하고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하나님께 겸손한 자는 하나님께서 버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무엇이 조금 있다고 제가 한 줄 알고 그것을 의지하고 그것을 자랑하므로 오히려 그것을 주신 하나님을 배반하여 발로 차 버리고 말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있는 모든 것을 다 빼앗아야 할 것입니다. 그 주신 은혜와 복을 빼앗기기 싫습니까 그것을 계속적으로 누리려면 이전에 자기가 어떤 자였고, 지금은 자신이 어떻게 복을 받은 자인지, 어떻게 부요한 자, 성공한 자가 되었는데, 이것이 누구에게로부터 온 것을 깨닫고 잊지 말아야합니다.
둘째로, 환난의 때에 하나님께 부르짖어야합니다. 평안의 때에 하나님을 바로 섬겨서 복을 받을지라도 죄악 때문에 징계의 고난은 받지 않아야합니다. 죄와 불순종으로 인한 환난과 시련의 때에는 빨리 그 고통에서 떠나기 위해서는 그 죄악에서 떠나야합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어야합니다. 하나님을 사모하면서 이 모든 낭패와 실패가 자신의 죄와 허물로 인한 것인 것을 깨닫고 돌아서는 일을 해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때에 그 어떤 죄도 용서하시고 징계도 거두어 주실 것을 말씀하는 것이 사사기입니다. 그러나 환난의 때에 사람들이 다 하나님께 돌아갈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이렇게 많은 어려움이 있어도 이것이 하나님을 떤나 죄 때문이라고 깨닫는 사람이 믿는 사람 가운데도 많지 않습니다. 원망하기가 빠르고, 인간의 수단과 방법을 찾아가는 일이 급선무라고 하지만, 실은 제일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환난 날에 하나님께 부르짖어 회개하게 되고 그래서 하나님의 긍휼을 입는 것이 얼마나 크신 하나님의 은혜인지 모릅니다. 환난의 때에 부르짖지 않고 더욱 더 패역하고 고집을 부리면 매만 더 맞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환난이 이르면 빠르면 빠를수록 하나님께 부르짖어야합니다. (시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쓰시는 구원자를 보내십니다. 이전 이스라엘에게는 사사를 구원자로 보내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오늘 부르짖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누구를 보내주십니까 오늘에는 우리들에게 피할 길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환난의 때에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그 어려운 환난을 능히 이기고 감당할 수 있는 피난처를 주십니다. 이 피난처가 누구십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사시대는 사사들을 의지하고 바라보며 그의 통치를 받고 그의 인도하심을 따라 구원을 받고, 평강의 삶을 살았던 것 같이 오늘 우리들이 환난을 당하면 그리스도의 품안으로 피해야합니다. (시91:1)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시91:2)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시91:3) 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시91:4) 저가 너를 그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 날개 아래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나니 (시91:5) 너는 밤에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시91:6)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시91:7)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 (시91:8) 오직 너는 목도하리니 악인의 보응이 네게 보이리로다 (시91:9)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로 거처를 삼았으므로 (시91:10)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시91:11)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시91:12) 저희가 그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시91:13)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로다 (시91:14)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시91:15)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 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시91:16) 내가 장수함으로 저를 만족케 하며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하시도다 그 때 사사들은 하나님께 쓰임 받고 그 나라를 구원했으나, 죽으므로 이스라엘은 다시 그들의 사사를 구해야했습니다. 그들의 구원자는 인간이기에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반석이십니다. 그분은 주무시지도 않고, 우리 안에 계시면서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진리 말씀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당한 어려움이 하나님의 징계라면 우리가 어디로 피하며, 어디로 도망하겠습니까 이 징계의 그물이 서서히 다가오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것을 감지하지 못하지만, 이는 전쟁과 같습니다. (시139:1)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시139:2)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시139:3)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시139:4)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시139:5) 주께서 나의 전후를 두르시며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시139:6)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시139:7)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시139:8)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시139:9)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시139:10)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차라리 하나님께 피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하나님을 원수를 삼으면 우리가 도무지 피할 곳이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우리의 원수가 되어도 하나님의 품에 있으면 우리는 안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의 환난 날에 피난처 되어 주시겠다고 하셨으니 우리는 감사하고 이 분을 의지해야합니다. 우리의 구원자는 주님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사들을 통하여 구원과 평강과 은혜를 주십니다. 그러나 사사가 죽으면 다시 이스라엘이 죄를 범하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것인데, 우리에게 하나님의 진리의 인도가 끊기면 말씀에 대한 갈급이나, 사모가 없으면 사사가 없는 이스라엘 같이 다시 세속화되고 하나님께 진노를 쌓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한 신앙생활이 되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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