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쓰시는 사람 (삿3:9-11)
본문
16장까지는 12명의 사사들의 구원 역사가 파노라마처럼 펼쳐진다. 옷니엘, 에훗, 삼갈 등 3명의 사사가 등장하여 각각 메소포타미아, 모압, 블레셋으로부터 이스라에을 구원하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다. 사사란 재판관 역할뿐만 아니라 군사 지도자, 정치 지도자 등의 역할을 한 팔방미인 격의 지도자로서 아직 안정되지 못한 사회의 일시적인 지도자였다. 이런 사사들은 전국을 다 통치한 것이 아니라 필요에 따라 관련 지파만 다스렸으며 동 시대에 여러 병이 각각 다른 지역을 다스리기도 했다. 이런 지도자의 자격을 옷니엘 사사를 통해서 살펴본다.
1. 순종의 사람이다. 본문 9절에서 옷니엘을 소개하기를 “.그는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리라”고 기술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성경 소개의 형식에 따르자면 “그나스의 아들”이 먼저 나와야 할 것이다.
그런데 “갈렙의 아우”라는 사실이 먼저 소개되고 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일 것이다. 옷니엘을 갈렙의 아우로 소개한 이유는 단순히 갈렙의 유명도 때문만은 아니다. 아마도 옷니엘과 갈렙이 공유했던 삶의 특성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단순히 피를 나눈 형제의 관계를 뛰어넘어 전투에서 사선을 넘어가면서 싸웠던 동지였다.
그러므로 형이 추구했던 삶의 가치관과 목적을 공유한 것이다. 갈렙의 신앙에 대하여 표현하기를 신 1:36에서는 “오직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온전히 여호와를 순종하였은즉.”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옷니엘 또한 갈렙의 신앙의 모습과 본질적인 면에서 동일할 것으로 보아 순종의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도 예외 없이 실력과 내능과 학식의 정도로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믿음의 자세, 즉 순종의 사람을 사용하신다. 성령님의 사람이다. 본문 10절에서는 옷니엘이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사가 된 이유에 대해서 언급하기를 “여호와의 신이 그에게 임하였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사사가 되어 나가서 싸울 때에”라고 기술하고 있다. 옷니엘은 괸장히 재능이 있는 사람이었다. 무사로서도 아주 뛰어난 사람이다. 그는 여호수아서에서 보듯이 전쟁에 능한 경험 있는 무사였고 지혜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님께서 옷니엘을 쓰신 이유는 그 때문이 아니었다. 성경은 말씀하시길 “여호와의 신이 그에게 임하엿으므로.여호와께서 .그 손에 붙이매 옷니엘의 lths이 구산리사다임을 이기니라(10)”고 강조하고 있다. 이 말씀의 중심은 “여호와의 신”이 그에게 임한 사실을 힘주어 강조하고 있다. 실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분의 백성을 구원해야 할 사명을 맡은 하나님의 사람은 무엇보다도 먼저 성령님의 권능을 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역사는 사람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권능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슥 4:6).
3. 희생의 사람이다. 여호수아 사후의 이스라엘은 여호수아를 뒤이은 뚜렷한 후계자가 없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일종의 무정부 상태가 되었다. 더욱이 전쟁을 알지 못하는 새세대로 바뀜에 따라 이스라엘은 종교적으로도 여호와 공동체의 윤리가 붕괴될 상황에 이르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옷니엘을 부르신 것이다. 그의 나이 80세였다. 그는 유대 남방 헤브론에 정착해서 목축을 하면서 안락하고 평온한 삶을 누리고 있었다. 노년기에 모험을 해야 하는 어려운 결단의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노년기에 자신의 안락을 추구한다고 해서 아무도 시비할 사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기꺼이 하나님의 부름에 응답하여 자원해서 고통을 택한 것이다. 그 결과 11절에 보면 “ 그 땅이 태평한 지 사십 년에”라고 기록하고 있다. 옷니엘 한 사람의 희생과 헌신으로 그 땅에 40년간 평화가 도래한 것이다. 위대한 역사를 창조한 사건의 배후에는 언제나 한 알처럼 썩어져 희생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 있었음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이런 믿음의 주인공을 하나님의 나라 건설을 위해 사용하신다.
1. 우리는 내 중심으로 야망을 펼치고 있는지,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게 순종하는 믿음의 자세를 가지고 있는지 점거해 보자.
2.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함에 있어서 나의 재능과 지혜로 하는지, 성령님의 능력과 임재를 인정하고 그를 모시고 환영하는 자세로 임하는지 살펴보자.
3. 이기주의적 가치관이 팽배한 사회 속에서 세태를 거슬러 가는 영적 모습을 가지고 과연 한 알의 썩어져 가는 밀알이 되고 있는지 나 자신을 점검해 보자.
1. 순종의 사람이다. 본문 9절에서 옷니엘을 소개하기를 “.그는 곧 갈렙의 아우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리라”고 기술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성경 소개의 형식에 따르자면 “그나스의 아들”이 먼저 나와야 할 것이다.
그런데 “갈렙의 아우”라는 사실이 먼저 소개되고 있다.
왜냐하면 사람들이 쉽게 알아볼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일 것이다. 옷니엘을 갈렙의 아우로 소개한 이유는 단순히 갈렙의 유명도 때문만은 아니다. 아마도 옷니엘과 갈렙이 공유했던 삶의 특성 때문일 것이다. 그들은 단순히 피를 나눈 형제의 관계를 뛰어넘어 전투에서 사선을 넘어가면서 싸웠던 동지였다.
그러므로 형이 추구했던 삶의 가치관과 목적을 공유한 것이다. 갈렙의 신앙에 대하여 표현하기를 신 1:36에서는 “오직 여분네의 아들 갈렙은 온전히 여호와를 순종하였은즉.”이라고 언급하고 있다. 옷니엘 또한 갈렙의 신앙의 모습과 본질적인 면에서 동일할 것으로 보아 순종의 사람임에는 틀림이 없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도 예외 없이 실력과 내능과 학식의 정도로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라 기본적인 믿음의 자세, 즉 순종의 사람을 사용하신다. 성령님의 사람이다. 본문 10절에서는 옷니엘이 하나님께서 쓰시는 사사가 된 이유에 대해서 언급하기를 “여호와의 신이 그에게 임하였으므로 그가 이스라엘 사사가 되어 나가서 싸울 때에”라고 기술하고 있다. 옷니엘은 괸장히 재능이 있는 사람이었다. 무사로서도 아주 뛰어난 사람이다. 그는 여호수아서에서 보듯이 전쟁에 능한 경험 있는 무사였고 지혜가 있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님께서 옷니엘을 쓰신 이유는 그 때문이 아니었다. 성경은 말씀하시길 “여호와의 신이 그에게 임하엿으므로.여호와께서 .그 손에 붙이매 옷니엘의 lths이 구산리사다임을 이기니라(10)”고 강조하고 있다. 이 말씀의 중심은 “여호와의 신”이 그에게 임한 사실을 힘주어 강조하고 있다. 실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 그분의 백성을 구원해야 할 사명을 맡은 하나님의 사람은 무엇보다도 먼저 성령님의 권능을 받아야 한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역사는 사람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성령님의 권능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슥 4:6).
3. 희생의 사람이다. 여호수아 사후의 이스라엘은 여호수아를 뒤이은 뚜렷한 후계자가 없었기 때문에 정치적으로 일종의 무정부 상태가 되었다. 더욱이 전쟁을 알지 못하는 새세대로 바뀜에 따라 이스라엘은 종교적으로도 여호와 공동체의 윤리가 붕괴될 상황에 이르렀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하나님은 옷니엘을 부르신 것이다. 그의 나이 80세였다. 그는 유대 남방 헤브론에 정착해서 목축을 하면서 안락하고 평온한 삶을 누리고 있었다. 노년기에 모험을 해야 하는 어려운 결단의 순간이 찾아온 것이다. 노년기에 자신의 안락을 추구한다고 해서 아무도 시비할 사람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는 기꺼이 하나님의 부름에 응답하여 자원해서 고통을 택한 것이다. 그 결과 11절에 보면 “ 그 땅이 태평한 지 사십 년에”라고 기록하고 있다. 옷니엘 한 사람의 희생과 헌신으로 그 땅에 40년간 평화가 도래한 것이다. 위대한 역사를 창조한 사건의 배후에는 언제나 한 알처럼 썩어져 희생을 아끼지 않는 사람이 있었음을 볼 수 있다. 하나님은 이런 믿음의 주인공을 하나님의 나라 건설을 위해 사용하신다.
1. 우리는 내 중심으로 야망을 펼치고 있는지, 하나님의 뜻에 부합되게 순종하는 믿음의 자세를 가지고 있는지 점거해 보자.
2. 하나님의 사역을 감당함에 있어서 나의 재능과 지혜로 하는지, 성령님의 능력과 임재를 인정하고 그를 모시고 환영하는 자세로 임하는지 살펴보자.
3. 이기주의적 가치관이 팽배한 사회 속에서 세태를 거슬러 가는 영적 모습을 가지고 과연 한 알의 썩어져 가는 밀알이 되고 있는지 나 자신을 점검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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