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쓰시는 사람- 여선지자 드보라 (삿4:1-10)
본문
우리는 사사기 3장에서 에훗과 삼갈이라는 두 사사의 행적을 살펴보았습니다.에훗은 왼손잡이였습니다.더 정확하게 말하면 오른손을 못쓰는 장애인이었습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그를 사용하셨습니다. 삼갈은 또 지극히 평범한 농부였습니다.놀랍게도 하나님은 평범한 그와 그가 가진 도구인 소모는 막대기를 사용하여 이스라엘을 구하셨습니다. 인간의 약점이나 평범함은 하나님께 쓰임 받지 못할 방해요인이 결코 될 수 없습니다.오히려 우리가 우리의 가진 장점이 있다해도 그것만을 의지하고 자랑하고 교만한다면 약점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보다 못한 것입니다. 자기의 약점 때문에 하나님만을 의지할 수 있게 되었다면 그 약점이 변하여 오히려 강점이 될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은 이전에 의지하고 자랑하던 인간적인 것들에 대하여는 다 버렸고, 부끄럽게 여기기 까지한다고 했습니다. 그가 자랑하는 것이 있다면, 자신의 약한 점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약한 것을 자랑한다고 했습니다. 왜 자신이 약할 때에 주님으로 강해지는 비결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이제자신으로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이지만, 하나님께서 능력 주실 때에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자신은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외쳤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우리의 평범성 때문에 삶을 포기하거나 꿈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을 참으로 신뢰하고 의지할 수 있다면,우리들의 평범한 삶이 하나님을 통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에훗과 삼갈의 예를 보고서도 하나님 앞에 쓰임받기를 주저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나는 아니다.나같이 부족하고 쓸모 없는 사람은 하나님이 사용하실 수 없다’고 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쓰실 수 없는 사람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제가 잘난 줄 알고 제 힘으로 무엇인가 하리라 하는 교만하고 자만에 빠진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께서 결코 쓰시지 않습니다. 이 사람을 쓰시려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하나님 쓰시기에 좋도록 빚어야합니다.
먼저 교만함부터 깨뜨리실 것입니다. 또한 부류는 하나님께서 쓰시겠다고 하시는데도 계속해서 자신은 너무 부족해서 응할 수 없다고 거절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그것이 겸손인줄 알지만, 그것은 겸손이 아닙니다. 참 겸손은 자신으로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임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힘도 주시고 지혜도 주시는 줄 알아 감사하고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지도 않으시는데 나서서 하나님일 하겠다고 교만하여 한번 물리침 받았고, 또 그 다음에 하나님께 너무 지나친 사양으로 하나님께 크게 책망들었던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인줄 아십니까 모세입니다. 모세는 자신이 애굽의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서 공부도 했고, 무술도 했고, 민족정신도 투철하고 해서 얼마든지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리라 해서 애굽사람에게 학대 당하는 자기 백성을 위해 애굽사람을 죽였다가 그 일이 탄로나서 바로 왕에게까지 들리게 되므로 왕의 낯을 피해서 광야로 도망했습니다. 자신있고, 무엇인가 자랑할만한 것이 자신에게 있다고 할 때에 하나님은 그를 쓰시지 않았습니다. 광야에서 모세는 그의 장인의 집에서 처가살이하며 장인의 양을 치는 목자의 생활을 40년이나 하게됩니다. 그의 나이가 80세 되었을 때입니다. 이제 늦어서 아무 것도 할수 없다는 황혼 때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모세를 부르십니다. 이제 네가 가서 이스라엘백성을 구원하라는 것입니다. 그 때에는 모세가 어떻게 응답했습니까 그는 5번이나 사양했습니다. 자신이 어떻게 바로에게 가며, 강팍한 이스라엘에게 가겠느냐고, 자신은 입이 뻣뻣하고 둔하여 말 할 줄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핑계합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노하셨습니다. “나는 너무 부족하고 아무 것도 없어서 나를 통해서 하나님이 무슨 일을 하신다는 것은 기대할 수 없다”는 이런 사람을 들어쓰시는 하나님께 겸손히 나아갑시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무 자격이 갖추어지지 않은 또한 사람을 들고 쓰심을 우리들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혀 상상도 못할 연약하고 못난 사람이라도 들어 쓰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그 주인공은 여성인 드보라 사사입니다. 발달된 오늘 현대 사회의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여성들은 남성들에 비해 불리한 점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여성은 남성보다 여러 가지 면에서,특히 사회적 지위나 특권을 누리는 일에서 열등한 위치에 있습니다.여성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각 방면에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며 일하고 있습니다. 그 옛날 사사 시대의 이스라엘 여자들의 지위는 실로 노예를 방불케 하는 것이었습니다.예수님 당시만 해도 유대인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세 가지 감사 기도를 드렸다고합니다.
첫째는 이방인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을 감사하고,
둘째는 종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을 감사하고,
셋째는 여자로 태어나지 않은 것을 감사했습니다. 그만큼 여인들은 역사적으로 심각한 성차별을 받아 왔습니다. 이런 사회,이런 문화적 배경 속에서 한 평범한 주부가 나라를 위해서 무엇을 하겠다고 일어선다는 것,그것도 오늘 같이 자유로운 때도 아니고 그 이전 사사 시대에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당시 이스라엘은 가나안 왕 야빈이 통치하고 있었습니다.백성들은 다시 하나님께 범죄했고,하나님은 범죄한 이 백성을 다시 돌아오게 하기 위해 가나안 왕 야빈의 지배 아래 두셨습니다.이십 년 동안 노예 생활을 지속했습니다. 가나안 왕 야빈의 수하에는 시스라라고 하는 소문난 명장이 있었습니다.그는 군대장관이었는데,그의 군대는 철병거 구백 승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요즘 식으로 하면 탱크 구백 대의 병력을 갖추었다는 말입니다. 이런 가나안 왕에 대항하여 드보라라는 여인에게 전쟁을 하도록 하나님께서 명하십니다. 이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그러나 이 여인은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 불가능에 도전하기로 결심했습니다.드보라는 사람의 눈으로 볼 때는 엄두도 낼 수 없고 어리석어 보이기까지 하는 일을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무엇이 드보라를 이토록 용감하게 나서도록 만들었습니까 다음 세 가지 이유를 들 수 있습니다.
첫째로, 그녀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입니다. 4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 때에 랍비돗의 아내 여선지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는데 성경이 드보라를 소개하면서 강조하는 내용이 그가 여 선지자였다는 사실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전하는 사람입니다. 드보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바락에게 그 말씀을 전합니다. 6절:드보라가 보내어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을 납달리 게데스에서 불러다가 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하지 아니하셨느냐 드보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고난에 처한 백성들에게 그분의 말씀을 전달하는 선지자의 역할을 감당했습니다.하나님의 음성이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여인에게 들려졌습니다.드보라는 가정주부의 자리에서 위기와 절망에 처한 한 시대를 치유하기 위한 사사의 자리로 불려 나왔습니다. 여러분이 만난 현싱이 역경이라고 느낍니까 혹은 위기라고 여겨집니까 당신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 보십시오. 당신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때로 우리는 우리의 삶이 난관에 부닥칠 때 주변 사람들의 말에 귀가 솔깃해집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말은 더 큰 낙심과 더 큰 절망의 심연으로 끌고 들어갑니다. 여러 사람의 말은 우리를 혼란에 빠지게 하고 갈피를 잡지 못하게 합니다.이럴 때 주께서는 무엇이라 말씀하실까요 애굽 바로의 손에서 벗어나 기뻐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가 가로막혔을 때 그들을 이끌던 모세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한번 느껴 보십시오.사람들은 애굽 땅으로 돌아가자고 아우성입니다. 매장지가 없어서 우리를 이 광야에서 죽어야 하느냐고 모세를 원망합니다.앞에는 홍해가 길을 막고 있는데 뒤에서는 바로의 군대가 추격하고 있습니다.오도 가도 못하는 사면초가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백성들의 절규와 아비규환 속에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모세의 모습을 한번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출14:13,14)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인생의 걸음에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당신의 삶이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이라 해도 좌절하지 마십시오. 주변 사람들의 훈수보다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십시오. 삶이 고달프다고 느낄 때 주님 앞에 엎드리십시오.그리고 주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여인 드보라가 불가능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은 간단한 사건 한 가지 때문이었습니다.그녀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이 주실 승리에 대해 확신을 가졌습니다. 7절 말씀을 보십시오. 드보라가 바락에게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내가 야빈의 군대장관 시스라와 그 병거들과 그 무리를 기손 강으로 이끌어 네게 이르게 하고 그를 네 손에 붙이리라. 하나님이 드보라를 통해 바락에게 말씀하셨습니다.원수를네 손에 붙일 것이라는 말이 곧 승리는 당신 것이라는 뜻입니다. 드보라는 자신이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확신하며 바락에게 말했습니다. 주께서 원수를 당신 손에 붙이실 것입니다 승리를 확신했습니다. 삶에 대한 시각이 부정적이면 부정적인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삶을 창조적이고 적극적인 눈으로 바라보면 그 삶은 창조적이고 적극적인 삶이 됩니다.그러나 세상에서 아무리 인생이 창조적이고 적극적인 사고로 삶을 보려고 해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들은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능치 못함이 없음을 말씀합니다. 어떤 사람이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그러면 행복한 사람처럼 생각하시고, 행복한 사람처럼 행동하십시오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주관적인 신념으로서도 도무지 불가능한 것은 어떻게합니까 신념은 신앙이 아닙니다. 이는 자신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자신으로서는 도무지 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능력 주시면, 함께 하시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믿음 뿐입니다. 우리 자신의 명철과 지혜를 의지할 것이 아닙니다. “너는 스스로 지혜롭게여기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의뢰하는 것이 기독자들의 삶의 방식입니다. 마르다와 마리아의 가정에 최대의 절망이 닥쳤습니다. 오빠 나사로가 죽은 것입니다.이 절망의 자리에 나타나신 예수께서 나사로를 일으키기 직전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요 11:40)
이 말씀에서 중요한 두 단어가 나옵니다.믿으면…보리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그 순서를 바꿀려고 합니다.믿으면 그 믿음은 (히11:1)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가 되는 것인데, 믿음으로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는 것인데, “보여 주십시오.그러면 믿겠습니다”합니다. “주변 환경이 좋아지면 그때 제가 믿겠습니다.좋은 결과가 나타나면 그때 감사하겠습니다합니다. 그러나 주께서 하신 말씀은 이런 의미입니다. 아직 나사로가 일어나지 않았어도 먼저 믿을 수 있느냐 믿음의 눈으로 살아난 나사로를 볼 수가 있느냐 믿음의 눈으로 좋아진 환경을 볼 수가 있느냐 믿음으로 너희 장래를 볼 수 있느냐 너희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당신은 당신의 미래,당신 가정의 미래에 대해서 왜 미리 절망합니까승리를 확신할 수는 없습니까 당신으로는 안되지만 믿으면 영광을 보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믿음이 귀한 때입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당신을 둘러싸고 있는 캄캄한 어둠과 안개 속에 헤매는 것 같은 방황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당신에게 주실 승리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당신을 구원하여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까지하신 당신을 사랑하는 주님께서는 당신을 결코 저버리지 않을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롬8:32) (사49:15)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이 세상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드보라가 불가능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이 주실 승리를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자신이 지금 해야 할 일을 찾았습니다. 사람들은 불가능한 일에 맞닥뜨리면 일단 포기부터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포기하는 것이 가장 쉬운 해결책일 수도 있습니다. 골치 아프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를 바로 해결하는 것은 아닙니다. 드보라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그 시대가 어둡고 위기와 절망에 처해 있었지만 드보라는 용기를 잃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나 같은 여인이 이 전쟁에서 무엇을 하겠는가라고 낙망하지 않았습니다.‘하나님께서 명하셨으면, 되는 것인데,
그렇다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이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습니다.자신의 할 일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너희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라”는 말씀을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믿음은 맡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맡기는 삶은 순종의 삶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너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감 나무 밑에서 하늘쳐다 보면서 입벌리고, 감 떨어지기를 기다려라는 지극히 안일하고, 나태한 사람, 무책임한 운명론자를 만드는 것이 기독교의 진리가 아닙니다. 기다리고만 있으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려움의 때에 기도하라고 하시면서 어떤 말씀에는 너는 왜 기도만 하고 있느냐 하신 때도 있습니다. 그 때가 언제입니까 홍해 앞에서 기도만 하고 있는 모세를 책망하셨습니다.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기만 하느냐, 앞으로 나아가라. 네가 들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했습니다. (출14:1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뇨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앞으로 나가게 하고 (출14:16)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리라 모세에게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신뢰하도록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시고난 다음에 네가 들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 지팡이를 바다로 가리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믿음이 좋은 사람은 모든 것을 다 맡긴 사람이니까 아무 것도 않는 사람으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이제 다 맡겼으면 이전 같이 자신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하여 한 걸음, 한 사건을 진행하는 것입니다. 드보라는 전쟁을 위해서 먼저 사람을 찾았습니다.
자신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지만 바락이란 사람이 장군감임을 발견했습니다. 드보라는 바락을 찾아가 함께 일할 것을 권유했습니다. 함께 일어나 싸우자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할 수 있는 일을 해 보자고 독려했습니다.여기서부터 기적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심으로 상황이 변하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오병이어의 현장을 되새겨 봅시다. 예수께서 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기적을 일으키셨던 장면을 머리에 그려 보십시오.해는 져서 어두운데 군중들은 배가 고파 아우성입니다. 제자들은 무리를 돌려 보내자고 말합니다. 예수께서는 무리를 다 먹이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를 빌립에게 물으셨습니다.빌립은 당시 1년치 월급인 200데나리온으로도 모자란다고 대답하였습니다.이때 안드레가 어린아이가 싸 온 도시락을 발견했습니다.안드레는 자신이 보아도 이것으로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하면서도 자신이 그 현실에 해야 할 일을 했습니다. 아이를 예수님께로 인도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모든 것을 포기했을 때 어린아이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했습니다.자신이 가져온 작은 도시락을 주님께 바쳤습니다.그러자 주님이 그 도시락을 가지고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먼저 당신을 둘러싸고 있는 난감하고 혼란스런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주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을 믿고 확신하면서 맡기셔야합니다. 그리고 할 일을 찾아보십시오. 당신은 정말 해야 할 일을 다했습니까 드보라는 자기가 직접 하지 못하는 일이 주어지자 그 일을 할 만한 적당한 사람을 찾았습니다.바락에게 같이 일하자고 했습니다. 사람의 협조를 구하는 것, 병들었을 때에 병원을 찾는 것, 그 자체를 성경이 악하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사람이나, 어떤 과학이나, 어떤 세력들을 더 의지할 때에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면서 할 일 가운데서는 사람을 만나고 부탁도 하고, 협조도 구하는 일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만을 하는 것입니다.
8절에 바락의 응답을 들어 보십시오.그는 모든 남성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창피한 말을 하였습니다. 바락이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내가 가려니와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나는 가지 않겠노라. 바락은 사내 대장부답지 못하게 여자인 드보라에게 전쟁터에 같이 가자고 졸랐습니다.드보라가 안 가면 자기도 가지 않겠답니다. 세상에 이렇게 용기 없는 남자가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이 바락을 바보 취급하지는 마십시오.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믿음의 영웅들 가운데 바락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믿음으로 인생을 살았고,믿음으로 기적을 일으킨 사람들 가운데 바락도 들어 있습니다. 어떤 성경학자는 말하기를,바락이 드보라에게 동행을 요청한 것은 드보라에게 의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드보라와 함께하신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바락은 드보라를 통해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했습니다. 드보라를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드보라의 기도가 있다면 승리가 확실할 것을 알았습니다.이런 사람이 협조자의 자격이 되는 사람입니다. 드보라는 바락을 바로 선택했습니다. 때때로 신앙 좋은 아내를 알아보지 못하는 못난 남편들이 있습니다. 아내의 기도 때문에 그 가정이 지탱해 나가고,하나님을 향한 아내의 사랑 때문에 그 가정이 평안한 것을 모릅니다.아내에게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드보라는 바락과 함께 전쟁터에 나갔습니다.그리하여 역사가 바뀝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드디어 자유를 되찾았습니다. 그들은 위대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평범한 가정주부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까 이제부터라도 생각을 바꾸십시오.여자가 무슨 일을 하겠느냐는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쓰시면 어떤 일이든 감당할 수 있음을 믿으십시오.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을 신뢰할 수만 있다면 겁낼 것이 없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음성을 듣어야합니다. 하나님이 주실 빛나는 승리를 신뢰하십시오. 그리고 오늘 해야 할 일들을 찾아 주님 앞에 헌신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일으키실 기적에 동참하십시오. 오늘도 그가 약하든지, 강하든지, 평범하든지, 유명하든지 하나님께서는 헌신된 자를 찾아서 이 세대를 구원하시는 역사를 하심을 믿읍시다. 하나님께 붙잡힌바되면 우리의 연약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극복될 수 있고, 하나님께서 승리케 해주실 것을 믿는 믿음을 가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그를 사용하셨습니다. 삼갈은 또 지극히 평범한 농부였습니다.놀랍게도 하나님은 평범한 그와 그가 가진 도구인 소모는 막대기를 사용하여 이스라엘을 구하셨습니다. 인간의 약점이나 평범함은 하나님께 쓰임 받지 못할 방해요인이 결코 될 수 없습니다.오히려 우리가 우리의 가진 장점이 있다해도 그것만을 의지하고 자랑하고 교만한다면 약점 때문에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 보다 못한 것입니다. 자기의 약점 때문에 하나님만을 의지할 수 있게 되었다면 그 약점이 변하여 오히려 강점이 될 수 있습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은 이전에 의지하고 자랑하던 인간적인 것들에 대하여는 다 버렸고, 부끄럽게 여기기 까지한다고 했습니다. 그가 자랑하는 것이 있다면, 자신의 약한 점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의 약한 것을 자랑한다고 했습니다. 왜 자신이 약할 때에 주님으로 강해지는 비결을 배웠기 때문입니다. 이제자신으로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이지만, 하나님께서 능력 주실 때에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자신은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외쳤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우리의 평범성 때문에 삶을 포기하거나 꿈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전능하신 하나님을 참으로 신뢰하고 의지할 수 있다면,우리들의 평범한 삶이 하나님을 통해 전혀 다른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습니다. 에훗과 삼갈의 예를 보고서도 하나님 앞에 쓰임받기를 주저하는 사람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나는 아니다.나같이 부족하고 쓸모 없는 사람은 하나님이 사용하실 수 없다’고 하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쓰실 수 없는 사람 두 종류가 있습니다. 하나는 제가 잘난 줄 알고 제 힘으로 무엇인가 하리라 하는 교만하고 자만에 빠진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께서 결코 쓰시지 않습니다. 이 사람을 쓰시려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하나님 쓰시기에 좋도록 빚어야합니다.
먼저 교만함부터 깨뜨리실 것입니다. 또한 부류는 하나님께서 쓰시겠다고 하시는데도 계속해서 자신은 너무 부족해서 응할 수 없다고 거절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그것이 겸손인줄 알지만, 그것은 겸손이 아닙니다. 참 겸손은 자신으로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자임을 고백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부르시면 힘도 주시고 지혜도 주시는 줄 알아 감사하고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지도 않으시는데 나서서 하나님일 하겠다고 교만하여 한번 물리침 받았고, 또 그 다음에 하나님께 너무 지나친 사양으로 하나님께 크게 책망들었던 사람이 있습니다. 그 사람이 누구인줄 아십니까 모세입니다. 모세는 자신이 애굽의 바로의 공주의 아들로서 공부도 했고, 무술도 했고, 민족정신도 투철하고 해서 얼마든지 이스라엘의 지도자가 되리라 해서 애굽사람에게 학대 당하는 자기 백성을 위해 애굽사람을 죽였다가 그 일이 탄로나서 바로 왕에게까지 들리게 되므로 왕의 낯을 피해서 광야로 도망했습니다. 자신있고, 무엇인가 자랑할만한 것이 자신에게 있다고 할 때에 하나님은 그를 쓰시지 않았습니다. 광야에서 모세는 그의 장인의 집에서 처가살이하며 장인의 양을 치는 목자의 생활을 40년이나 하게됩니다. 그의 나이가 80세 되었을 때입니다. 이제 늦어서 아무 것도 할수 없다는 황혼 때에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모세를 부르십니다. 이제 네가 가서 이스라엘백성을 구원하라는 것입니다. 그 때에는 모세가 어떻게 응답했습니까 그는 5번이나 사양했습니다. 자신이 어떻게 바로에게 가며, 강팍한 이스라엘에게 가겠느냐고, 자신은 입이 뻣뻣하고 둔하여 말 할 줄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핑계합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 노하셨습니다. “나는 너무 부족하고 아무 것도 없어서 나를 통해서 하나님이 무슨 일을 하신다는 것은 기대할 수 없다”는 이런 사람을 들어쓰시는 하나님께 겸손히 나아갑시다. 오늘 본문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무 자격이 갖추어지지 않은 또한 사람을 들고 쓰심을 우리들에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전혀 상상도 못할 연약하고 못난 사람이라도 들어 쓰시기를 기뻐하십니다. 그 주인공은 여성인 드보라 사사입니다. 발달된 오늘 현대 사회의 민주주의 국가에서도 여성들은 남성들에 비해 불리한 점을 많이 갖고 있습니다.여성은 남성보다 여러 가지 면에서,특히 사회적 지위나 특권을 누리는 일에서 열등한 위치에 있습니다.여성들은 자신들의 권리를 보장받기 위해 각 방면에서 최선의 노력을 기울이며 일하고 있습니다. 그 옛날 사사 시대의 이스라엘 여자들의 지위는 실로 노예를 방불케 하는 것이었습니다.예수님 당시만 해도 유대인들은 아침에 일어나면 세 가지 감사 기도를 드렸다고합니다.
첫째는 이방인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을 감사하고,
둘째는 종으로 태어나지 않은 것을 감사하고,
셋째는 여자로 태어나지 않은 것을 감사했습니다. 그만큼 여인들은 역사적으로 심각한 성차별을 받아 왔습니다. 이런 사회,이런 문화적 배경 속에서 한 평범한 주부가 나라를 위해서 무엇을 하겠다고 일어선다는 것,그것도 오늘 같이 자유로운 때도 아니고 그 이전 사사 시대에 상상이나 할 수 있는 일이겠습니까 당시 이스라엘은 가나안 왕 야빈이 통치하고 있었습니다.백성들은 다시 하나님께 범죄했고,하나님은 범죄한 이 백성을 다시 돌아오게 하기 위해 가나안 왕 야빈의 지배 아래 두셨습니다.이십 년 동안 노예 생활을 지속했습니다. 가나안 왕 야빈의 수하에는 시스라라고 하는 소문난 명장이 있었습니다.그는 군대장관이었는데,그의 군대는 철병거 구백 승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요즘 식으로 하면 탱크 구백 대의 병력을 갖추었다는 말입니다. 이런 가나안 왕에 대항하여 드보라라는 여인에게 전쟁을 하도록 하나님께서 명하십니다. 이것은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그러나 이 여인은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 이 불가능에 도전하기로 결심했습니다.드보라는 사람의 눈으로 볼 때는 엄두도 낼 수 없고 어리석어 보이기까지 하는 일을 하겠다고 나섰습니다. 무엇이 드보라를 이토록 용감하게 나서도록 만들었습니까 다음 세 가지 이유를 들 수 있습니다.
첫째로, 그녀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입니다. 4절 말씀을 보십시오. 그 때에 랍비돗의 아내 여선지 드보라가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는데 성경이 드보라를 소개하면서 강조하는 내용이 그가 여 선지자였다는 사실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전하는 사람입니다. 드보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바락에게 그 말씀을 전합니다. 6절:드보라가 보내어 아비노암의 아들 바락을 납달리 게데스에서 불러다가 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하지 아니하셨느냐 드보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고난에 처한 백성들에게 그분의 말씀을 전달하는 선지자의 역할을 감당했습니다.하나님의 음성이 어려운 시대를 살아가는 평범한 여인에게 들려졌습니다.드보라는 가정주부의 자리에서 위기와 절망에 처한 한 시대를 치유하기 위한 사사의 자리로 불려 나왔습니다. 여러분이 만난 현싱이 역경이라고 느낍니까 혹은 위기라고 여겨집니까 당신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 보십시오. 당신에게 말씀하시는 주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 보십시오. 때로 우리는 우리의 삶이 난관에 부닥칠 때 주변 사람들의 말에 귀가 솔깃해집니다. 그러나 사람들의 말은 더 큰 낙심과 더 큰 절망의 심연으로 끌고 들어갑니다. 여러 사람의 말은 우리를 혼란에 빠지게 하고 갈피를 잡지 못하게 합니다.이럴 때 주께서는 무엇이라 말씀하실까요 애굽 바로의 손에서 벗어나 기뻐하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가 가로막혔을 때 그들을 이끌던 모세의 심정이 어떠했을지 한번 느껴 보십시오.사람들은 애굽 땅으로 돌아가자고 아우성입니다. 매장지가 없어서 우리를 이 광야에서 죽어야 하느냐고 모세를 원망합니다.앞에는 홍해가 길을 막고 있는데 뒤에서는 바로의 군대가 추격하고 있습니다.오도 가도 못하는 사면초가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백성들의 절규와 아비규환 속에서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는 모세의 모습을 한번 떠올려 보시기 바랍니다. 두려워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날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여호와께서 너희를 위하여 싸우시리니(출14:13,14)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것이 인생의 걸음에서 가장 중요한 일입니다. 당신의 삶이 아무리 어렵고 힘든 상황이라 해도 좌절하지 마십시오. 주변 사람들의 훈수보다 하나님의 음성에 귀 기울이십시오. 삶이 고달프다고 느낄 때 주님 앞에 엎드리십시오.그리고 주님의 말씀을 들으십시오. 여인 드보라가 불가능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은 간단한 사건 한 가지 때문이었습니다.그녀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습니다.
둘째로, 하나님이 주실 승리에 대해 확신을 가졌습니다. 7절 말씀을 보십시오. 드보라가 바락에게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내가 야빈의 군대장관 시스라와 그 병거들과 그 무리를 기손 강으로 이끌어 네게 이르게 하고 그를 네 손에 붙이리라. 하나님이 드보라를 통해 바락에게 말씀하셨습니다.원수를네 손에 붙일 것이라는 말이 곧 승리는 당신 것이라는 뜻입니다. 드보라는 자신이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확신하며 바락에게 말했습니다. 주께서 원수를 당신 손에 붙이실 것입니다 승리를 확신했습니다. 삶에 대한 시각이 부정적이면 부정적인 삶을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삶을 창조적이고 적극적인 눈으로 바라보면 그 삶은 창조적이고 적극적인 삶이 됩니다.그러나 세상에서 아무리 인생이 창조적이고 적극적인 사고로 삶을 보려고 해도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합니다. 우리들은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믿음은 능치 못함이 없음을 말씀합니다. 어떤 사람이행복한 사람이 되고 싶습니까 그러면 행복한 사람처럼 생각하시고, 행복한 사람처럼 행동하십시오하였습니다. 그러나 이런 주관적인 신념으로서도 도무지 불가능한 것은 어떻게합니까 신념은 신앙이 아닙니다. 이는 자신을 신뢰하는 것입니다. 신앙은 자신으로서는 도무지 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능력 주시면, 함께 하시면 모든 것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믿음 뿐입니다. 우리 자신의 명철과 지혜를 의지할 것이 아닙니다. “너는 스스로 지혜롭게여기지 말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을 인정하고 하나님을 의뢰하는 것이 기독자들의 삶의 방식입니다. 마르다와 마리아의 가정에 최대의 절망이 닥쳤습니다. 오빠 나사로가 죽은 것입니다.이 절망의 자리에 나타나신 예수께서 나사로를 일으키기 직전에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요 11:40)
이 말씀에서 중요한 두 단어가 나옵니다.믿으면…보리라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나 그 순서를 바꿀려고 합니다.믿으면 그 믿음은 (히11:1)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지 못하는 것들의 증거가 되는 것인데, 믿음으로 보지 못하는 것들을 보는 것인데, “보여 주십시오.그러면 믿겠습니다”합니다. “주변 환경이 좋아지면 그때 제가 믿겠습니다.좋은 결과가 나타나면 그때 감사하겠습니다합니다. 그러나 주께서 하신 말씀은 이런 의미입니다. 아직 나사로가 일어나지 않았어도 먼저 믿을 수 있느냐 믿음의 눈으로 살아난 나사로를 볼 수가 있느냐 믿음의 눈으로 좋아진 환경을 볼 수가 있느냐 믿음으로 너희 장래를 볼 수 있느냐 너희가 믿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보리라 당신은 당신의 미래,당신 가정의 미래에 대해서 왜 미리 절망합니까승리를 확신할 수는 없습니까 당신으로는 안되지만 믿으면 영광을 보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믿음이 귀한 때입니다. 끝까지 하나님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당신을 둘러싸고 있는 캄캄한 어둠과 안개 속에 헤매는 것 같은 방황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 당신에게 주실 승리를 믿으시기 바랍니다. 당신을 구원하여 영원한 생명을 주시기 까지하신 당신을 사랑하는 주님께서는 당신을 결코 저버리지 않을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은사로 주지 아니하시겠느뇨(롬8:32) (사49:15)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 하나님을 신뢰한다면, 이 세상에서 승리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드보라가 불가능에 도전할 수 있었던 것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이 주실 승리를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자신이 지금 해야 할 일을 찾았습니다. 사람들은 불가능한 일에 맞닥뜨리면 일단 포기부터 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포기하는 것이 가장 쉬운 해결책일 수도 있습니다. 골치 아프지도 않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문제를 바로 해결하는 것은 아닙니다. 드보라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그 시대가 어둡고 위기와 절망에 처해 있었지만 드보라는 용기를 잃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나 같은 여인이 이 전쟁에서 무엇을 하겠는가라고 낙망하지 않았습니다.‘하나님께서 명하셨으면, 되는 것인데,
그렇다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을까,이 나라를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까’를 고민했습니다.자신의 할 일을 찾기 시작했습니다. 우리가 “너희 모든 염려를 하나님께 맡기라”는 말씀을 오해해서는 안됩니다. 믿음은 맡기는 것입니다. 그러나 맡기는 삶은 순종의 삶임을 잊어서는 안됩니다. 너는 아무 것도 하지 않고 감 나무 밑에서 하늘쳐다 보면서 입벌리고, 감 떨어지기를 기다려라는 지극히 안일하고, 나태한 사람, 무책임한 운명론자를 만드는 것이 기독교의 진리가 아닙니다. 기다리고만 있으라는 말씀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려움의 때에 기도하라고 하시면서 어떤 말씀에는 너는 왜 기도만 하고 있느냐 하신 때도 있습니다. 그 때가 언제입니까 홍해 앞에서 기도만 하고 있는 모세를 책망하셨습니다.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기만 하느냐, 앞으로 나아가라. 네가 들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했습니다. (출14:15)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어찌하여 내게 부르짖느뇨 이스라엘 자손을 명하여 앞으로 나가게 하고 (출14:16) 지팡이를 들고 손을 바다 위로 내밀어 그것으로 갈라지게 하라 이스라엘 자손이 바다 가운데 육지로 행하리라 모세에게도 하나님께서는 당신을 신뢰하도록 하나님의 음성을 들려주시고난 다음에 네가 들고 있는 것이 무엇이냐 그 지팡이를 바다로 가리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믿음이 좋은 사람은 모든 것을 다 맡긴 사람이니까 아무 것도 않는 사람으로 생각하면 안됩니다. 이제 다 맡겼으면 이전 같이 자신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순종하여 한 걸음, 한 사건을 진행하는 것입니다. 드보라는 전쟁을 위해서 먼저 사람을 찾았습니다.
자신은 아무 것도 할 수 없지만 바락이란 사람이 장군감임을 발견했습니다. 드보라는 바락을 찾아가 함께 일할 것을 권유했습니다. 함께 일어나 싸우자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할 수 있는 일을 해 보자고 독려했습니다.여기서부터 기적이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역사하심으로 상황이 변하는 놀라운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오병이어의 현장을 되새겨 봅시다. 예수께서 떡 다섯개와 물고기 두 마리로 기적을 일으키셨던 장면을 머리에 그려 보십시오.해는 져서 어두운데 군중들은 배가 고파 아우성입니다. 제자들은 무리를 돌려 보내자고 말합니다. 예수께서는 무리를 다 먹이려면 어떻게 하는 것이 좋을지를 빌립에게 물으셨습니다.빌립은 당시 1년치 월급인 200데나리온으로도 모자란다고 대답하였습니다.이때 안드레가 어린아이가 싸 온 도시락을 발견했습니다.안드레는 자신이 보아도 이것으로 어떻게 할 수 있을까 하면서도 자신이 그 현실에 해야 할 일을 했습니다. 아이를 예수님께로 인도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모든 것을 포기했을 때 어린아이는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했습니다.자신이 가져온 작은 도시락을 주님께 바쳤습니다.그러자 주님이 그 도시락을 가지고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먼저 당신을 둘러싸고 있는 난감하고 혼란스런 상황 가운데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십시오.주님이 함께하신다는 것을 믿고 확신하면서 맡기셔야합니다. 그리고 할 일을 찾아보십시오. 당신은 정말 해야 할 일을 다했습니까 드보라는 자기가 직접 하지 못하는 일이 주어지자 그 일을 할 만한 적당한 사람을 찾았습니다.바락에게 같이 일하자고 했습니다. 사람의 협조를 구하는 것, 병들었을 때에 병원을 찾는 것, 그 자체를 성경이 악하다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사람이나, 어떤 과학이나, 어떤 세력들을 더 의지할 때에 하나님께서 미워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면서 할 일 가운데서는 사람을 만나고 부탁도 하고, 협조도 구하는 일도 있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일만을 하는 것입니다.
8절에 바락의 응답을 들어 보십시오.그는 모든 남성들의 자존심을 건드리는 창피한 말을 하였습니다. 바락이 그에게 이르되 당신이 나와 함께 가면 내가 가려니와 당신이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면 나는 가지 않겠노라. 바락은 사내 대장부답지 못하게 여자인 드보라에게 전쟁터에 같이 가자고 졸랐습니다.드보라가 안 가면 자기도 가지 않겠답니다. 세상에 이렇게 용기 없는 남자가 어디 있습니까 그러나 이 바락을 바보 취급하지는 마십시오. 히브리서 11장에 보면 믿음의 영웅들 가운데 바락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믿음으로 인생을 살았고,믿음으로 기적을 일으킨 사람들 가운데 바락도 들어 있습니다. 어떤 성경학자는 말하기를,바락이 드보라에게 동행을 요청한 것은 드보라에게 의지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드보라와 함께하신 것을 알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바락은 드보라를 통해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자 했습니다. 드보라를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드보라의 기도가 있다면 승리가 확실할 것을 알았습니다.이런 사람이 협조자의 자격이 되는 사람입니다. 드보라는 바락을 바로 선택했습니다. 때때로 신앙 좋은 아내를 알아보지 못하는 못난 남편들이 있습니다. 아내의 기도 때문에 그 가정이 지탱해 나가고,하나님을 향한 아내의 사랑 때문에 그 가정이 평안한 것을 모릅니다.아내에게 감사해야 할 일입니다. 드보라는 바락과 함께 전쟁터에 나갔습니다.그리하여 역사가 바뀝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드디어 자유를 되찾았습니다. 그들은 위대한 승리를 거두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 평범한 가정주부에 불과하다고 생각합니까 이제부터라도 생각을 바꾸십시오.여자가 무슨 일을 하겠느냐는 소극적인 자세에서 벗어나 하나님께서 우리를 쓰시면 어떤 일이든 감당할 수 있음을 믿으십시오. 우리가 참으로 하나님을 신뢰할 수만 있다면 겁낼 것이 없습니다. 먼저 하나님의 음성을 듣어야합니다. 하나님이 주실 빛나는 승리를 신뢰하십시오. 그리고 오늘 해야 할 일들을 찾아 주님 앞에 헌신하십시오. 하나님께서 일으키실 기적에 동참하십시오. 오늘도 그가 약하든지, 강하든지, 평범하든지, 유명하든지 하나님께서는 헌신된 자를 찾아서 이 세대를 구원하시는 역사를 하심을 믿읍시다. 하나님께 붙잡힌바되면 우리의 연약도 하나님의 능력으로 극복될 수 있고, 하나님께서 승리케 해주실 것을 믿는 믿음을 가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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