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라엘의 영적인 상태 (삿4:1-5)
본문
가나안 정복 전쟁의 영도자 여호수아가 죽자, 이스라엘은 통치의 공백이 생겼습니다. 모세와 여호수아 같은 권위를 가진 강력한 지도자가 더 이상 나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왕이 없으므로 각 지파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각자 자기들 소견에 좋은대로 행동했습니다. 이처럼 여호수아의 죽음 이후부터 왕정 시대의 체제가 확립되는 때까지를 사사시대라고 합니다. 그 때는 하나님께서는 사사들을 세우셔서 이스라엘을 통치하셨습니다. 이 사사들은 국가지도자, 군사지도자격이지만, 실은 하나님께서 그들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보호하시기 위해서 세운 자들이기 때문에 ‘구원자’라고도 불리웁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대적의 손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사사 시대 동안에 무려 12명의 사사를 세우셨습니다. 지난 주에도 말씀드린대로 사사기를 읽어 보면 사사시대의 신앙적인 면에서 독특한 순환 구조를 알 수 있습니다.
1.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평강과 형통을 주십니다. 그 삶이 편안한 가운데 있으면 그들이 더욱 더 하나님을 잘 섬겨야합니다.
2. 그러나 그들은 그렇지 못하고 그럴 때에 교만하고 방심하고 안일하여 이방 풍속을 따라서 우상과 이방신을 섬기는 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노엽게하는 죄를 범하게 됩니다.
3.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징계하십니다. 그 징계는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로 돌아오게 하시려는 채찍질입니다.
4. 그러면 그들은 다시 그 고통을 인하여 회개하게 됩니다.
5.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또 구원자를 보내셔서 구원하시는 일을 하십니다. 6. 그러면 다시 그 땅에 평화가 찾아오게 되는데, 이 평강이 그 사사가 죽은 이후에 까지 계속되지 못하고 다시 악행을 하고 그래서 다시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또 다시 돌아오고 하는 신앙형태가 악순환되는 것은 그들의 패역함 때문입니다.
1. (삿3:11)에도 보면, 그 땅이 태평한 지 사십 년에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 죽었더라-하나님께서 그 땅을 사사가 있는 동안에 태평하도록 했습니다. 옷니엘 때는 40년간 평안했습니다.
2. 그러나 (삿3:12)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니라-악을 행하는 이스라엘입니다.
3. (삿3:12) 여호와께서 모압 왕 에글론을 강성케 하사 그들을 대적하게 하시매 (삿3:13) 에글론이 암몬과 아말렉 자손들을 모아 가지고 와서 이스라엘을 쳐서 종려나무 성읍을 점령한지라 (삿3:14)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왕 에글론을 십팔 년을 섬기니라-이는 악을 행하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그들이 모압의 침략을 받아 18년을 섬깁니다.
4.(삿3:15)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그들이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옵니다.
5.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우셨으니 그는 곧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왼손잡이 에훗이라-하나님께서 구원자를 내십니다. 6.(삿3:30) 그 날에 모압 사람이 이스라엘의 수하에 항복하매 그 땅이 팔십 년 동안 태평하였더라-다시 태평한 세월이 80년간 계속됩니다. 이 사시기의 신앙 상태의 순환고리는 오늘 우리들에게도 있는 것입니다. 이를 우리에게 거울로 주신 것입니다. 우리들이 개인의 신앙걸음도 이와 같이 순환되는 것을 보게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이런 삶을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살라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 순간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회개와 순종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줄 알고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힘써야합니다.
첫째로 우리가 평안한 때에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알고 하나님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한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도 이스라엘은 옷니엘 사사가 있을 때에 평화를 누립니다. 또 그 이후 에훗의 활약으로 80년간을 태평한 세월을 보냅니다. 지금과는 상황이 많이 다르겠지만, 그래도 우리나라 역사를 봐도 그 때 40년간을 평화를 누린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형통의 삶이 계속 될 때에 그들을 구원하시고 보호하신 고마우신 하나님의 그 은혜를 다 잊어버리고 이방신을 섬기고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노를 쌓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이미 모세를 통하여 경고한 말씀입니다. (신31:20) 내가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한 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인 후에 그들이 먹어 배부르고 살찌면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나를 멸시하여 내 언약을 어기리니 (신31:21) 그들이 재앙과 환난을 당할 때에 그들의 자손이 부르기를 잊지 아니한 이 노래가 그들 앞에 증인처럼 되리라 나는 내가 맹세한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이기 전 오늘날에 나는 그들의 상상하는 바를 아노라 (신32:15) 그러한데 여수룬이 살찌매 발로 찼도다 네가 살찌고 부대하고 윤택하매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며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경홀히 여겼도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간사합니다. 환난의 때에 찾던 하나님, 그 하나님을 환난이 지나면 그만 잊어버립니다. 그 크신 은혜와 손길을 까맣게 잊고, 그 때에 하나님게 서원한 것들도 다 잊어버립니다. 그리고는 제가 잘나서 무엇인가 이루었다고 교만합니다. 이스라엘이 살이 찌매 하나님까지도 발로 차버립니다. 하나님도 버리며, 하나님을 업신여깁니다. 이것을 모세가 광야에 있을 때에 경고하였는데, 그들은 이 말씀에 경고한대로 하나님을 너무도 빨리 잊어 버렸습니다. 여러분,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고 하나님 앞에 겸손한 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 은혜를 항상 기억하고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하나님께 겸손한 자는 하나님께서 버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무엇이 조금 있다고 제가 한 줄 알고 그것을 의지하고 그것을 자랑하므로 오히려 그것을 주신 하나님을 배반하여 발로 차 버리고 말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있는 모든 것을 다 빼앗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복을 빼앗기기 싫습니까 그것을 계속적으로 누리려면 이전에 자기가 어떤 자였고, 지금은 자신이 어떻게 복을 받은 자인지, 어떻게 부요한 자, 성공한 자가 되었는데, 이것이 누구에게로부터 온 것을 깨닫고 잊지 말아야합니다.
둘째로, 환난의 때에는 하나님께 부르짖어야합니다. 평안의 때에 하나님을 바로 섬겨서 복을 받을지라도 죄악 때문에 징계의 고난은 받지 않아야합니다. 죄와 불순종으로 인한 환난과 시련의 때에는 빨리 그 고통에서 떠나기 위해서는 그 죄악에서 떠나야합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어야합니다. 하나님을 사모하면서 이 모든 낭패와 실패가 자신의 죄와 허물로 인한 것인 것을 깨닫고 돌아서는 일을 해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때에 그 어떤 죄도 용서하시고 징계도 거두어 주실 것을 말씀하는 것이 사사기입니다. 그러나 환난의 때에 사람들이 다 하나님께 돌아갈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이렇게 많은 어려움이 있어도 이것이 하나님을 떤나 죄 때문이라고 깨닫는 사람이 믿는 사람 가운데도 많지 않습니다. 원망하기가 빠르고, 인간의 수단과 방법을 찾아가는 일이 급선무라고 하지만, 실은 제일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환난 날에 하나님께 부르짖어 회개하게 되고 그래서 하나님의 긍휼을 입는 것이 얼마나 크신 하나님의 은혜인지 모릅니다. 환난의 때에 부르짖지 않고 더욱 더 패역하고 고집을 부리면 매만 더 맞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환난이 이르면 빠르면 빠를수록 하나님께 부르짖어야합니다. (시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쓰시는 구원자를 보내십니다. 이전 이스라엘에게는 사사를 구원자로 보내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오늘 부르짖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누구를 보내주십니까 오늘에는 우리들에게 피할 길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환난의 때에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그 어려운 환난을 능히 이기고 감당할 수 있는 피난처를 주십니다. 이 피난처가 누구십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사시대는 사사들을 의지하고 바라보며 그의 통치를 받고 그의 인도하심을 따라 구원을 받고, 평강의 삶을 살았던 것 같이 오늘 우리들이 환난을 당하면 그리스도의 품안으로 피해야합니다. (시91:1)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시91:2)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시91:3) 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시91:4) 저가 너를 그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 날개 아래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나니 (시91:5) 너는 밤에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시91:6)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시91:7)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 (시91:8) 오직 너는 목도하리니 악인의 보응이 네게 보이리로다 (시91:9)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로 거처를 삼았으므로 (시91:10)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시91:11)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시91:12) 저희가 그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시91:13)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로다 (시91:14)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시91:15)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 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시91:16) 내가 장수함으로 저를 만족케 하며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하시도다 그 때 사사들은 하나님께 쓰임 받고 그 나라를 구원했으나, 죽으므로 이스라엘은 다시 그들의 사사를 구해야했습니다. 그들의 구원자는 인간이기에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반석이십니다. 그분은 주무시지도 않고, 우리 안에 계시면서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진리 말씀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당한 어려움이 하나님의 징계라면 우리가 어디로 피하며, 어디로 도망하겠습니까 이 징계의 그물이 서서히 다가오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것을 감지하지 못하지만, 이는 전쟁과 같습니다. (시139:1)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시139:2)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시139:3)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시139:4)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시139:5) 주께서 나의 전후를 두르시며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시139:6)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시139:7)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시139:8)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시139:9)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시139:10)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차라리 하나님께 피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하나님을 원수를 삼고는 우리가 도무지 피할 곳이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우리의 원수가 되어도 하나님의 품에 있으면 우리는 안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의 환난 날에 피난처 되어 주시겠다고 하셨으니 우리는 감사하고 이 분을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의 구원자는 주님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사들을 통하여 구원과 평강과 은혜를 주십니다. 그러나 사사가 죽으면 다시 이스라엘이 죄를 범하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것인데, 우리에게 하나님의 진리의 인도가 끊기면 말씀에 대한 갈급이나, 사모가 없으면 사사가 없는 이스라엘 같이 다시 세속화되고 하나님께 진노를 쌓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한 신앙생활이 되어야합니다.
1.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평강과 형통을 주십니다. 그 삶이 편안한 가운데 있으면 그들이 더욱 더 하나님을 잘 섬겨야합니다.
2. 그러나 그들은 그렇지 못하고 그럴 때에 교만하고 방심하고 안일하여 이방 풍속을 따라서 우상과 이방신을 섬기는 일로 하나님을 대적하고 하나님을 노엽게하는 죄를 범하게 됩니다.
3. 그럴 때에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백성들을 징계하십니다. 그 징계는 하나님께서 그 백성들로 돌아오게 하시려는 채찍질입니다.
4. 그러면 그들은 다시 그 고통을 인하여 회개하게 됩니다.
5.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또 구원자를 보내셔서 구원하시는 일을 하십니다. 6. 그러면 다시 그 땅에 평화가 찾아오게 되는데, 이 평강이 그 사사가 죽은 이후에 까지 계속되지 못하고 다시 악행을 하고 그래서 다시 하나님의 징계를 받고 또 다시 돌아오고 하는 신앙형태가 악순환되는 것은 그들의 패역함 때문입니다.
1. (삿3:11)에도 보면, 그 땅이 태평한 지 사십 년에 그나스의 아들 옷니엘이 죽었더라-하나님께서 그 땅을 사사가 있는 동안에 태평하도록 했습니다. 옷니엘 때는 40년간 평안했습니다.
2. 그러나 (삿3:12) 이스라엘 자손이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니라-악을 행하는 이스라엘입니다.
3. (삿3:12) 여호와께서 모압 왕 에글론을 강성케 하사 그들을 대적하게 하시매 (삿3:13) 에글론이 암몬과 아말렉 자손들을 모아 가지고 와서 이스라엘을 쳐서 종려나무 성읍을 점령한지라 (삿3:14) 이에 이스라엘 자손이 모압 왕 에글론을 십팔 년을 섬기니라-이는 악을 행하는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그들이 모압의 침략을 받아 18년을 섬깁니다.
4.(삿3:15)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부르짖으매-그들이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옵니다.
5. 여호와께서 그들을 위하여 한 구원자를 세우셨으니 그는 곧 베냐민 사람 게라의 아들 왼손잡이 에훗이라-하나님께서 구원자를 내십니다. 6.(삿3:30) 그 날에 모압 사람이 이스라엘의 수하에 항복하매 그 땅이 팔십 년 동안 태평하였더라-다시 태평한 세월이 80년간 계속됩니다. 이 사시기의 신앙 상태의 순환고리는 오늘 우리들에게도 있는 것입니다. 이를 우리에게 거울로 주신 것입니다. 우리들이 개인의 신앙걸음도 이와 같이 순환되는 것을 보게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서 이런 삶을 보이는 것은 어쩔 수 없이 이렇게 살라는 것이 아니라 그 순간 순간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회개와 순종으로 나아갈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줄 알고 하나님께 나아가기를 힘써야합니다.
첫째로 우리가 평안한 때에 하나님의 은혜인 줄 알고 하나님을 잊지 말고 기억해야한다는 것입니다. 본문에서도 이스라엘은 옷니엘 사사가 있을 때에 평화를 누립니다. 또 그 이후 에훗의 활약으로 80년간을 태평한 세월을 보냅니다. 지금과는 상황이 많이 다르겠지만, 그래도 우리나라 역사를 봐도 그 때 40년간을 평화를 누린다는 것은 참 어려운 일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형통의 삶이 계속 될 때에 그들을 구원하시고 보호하신 고마우신 하나님의 그 은혜를 다 잊어버리고 이방신을 섬기고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노를 쌓는 것입니다. 이 사실은 이미 모세를 통하여 경고한 말씀입니다. (신31:20) 내가 그들의 열조에게 맹세한 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인 후에 그들이 먹어 배부르고 살찌면 돌이켜 다른 신들을 섬기며 나를 멸시하여 내 언약을 어기리니 (신31:21) 그들이 재앙과 환난을 당할 때에 그들의 자손이 부르기를 잊지 아니한 이 노래가 그들 앞에 증인처럼 되리라 나는 내가 맹세한 땅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들이기 전 오늘날에 나는 그들의 상상하는 바를 아노라 (신32:15) 그러한데 여수룬이 살찌매 발로 찼도다 네가 살찌고 부대하고 윤택하매 자기를 지으신 하나님을 버리며 자기를 구원하신 반석을 경홀히 여겼도다 그렇습니다. 인간은 간사합니다. 환난의 때에 찾던 하나님, 그 하나님을 환난이 지나면 그만 잊어버립니다. 그 크신 은혜와 손길을 까맣게 잊고, 그 때에 하나님게 서원한 것들도 다 잊어버립니다. 그리고는 제가 잘나서 무엇인가 이루었다고 교만합니다. 이스라엘이 살이 찌매 하나님까지도 발로 차버립니다. 하나님도 버리며, 하나님을 업신여깁니다. 이것을 모세가 광야에 있을 때에 경고하였는데, 그들은 이 말씀에 경고한대로 하나님을 너무도 빨리 잊어 버렸습니다. 여러분, 지혜로운 자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고 하나님 앞에 겸손한 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를 버리지 않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그 은혜를 항상 기억하고 하나님을 떠나지 않고 하나님께 겸손한 자는 하나님께서 버리지 않습니다. 그러나 무엇이 조금 있다고 제가 한 줄 알고 그것을 의지하고 그것을 자랑하므로 오히려 그것을 주신 하나님을 배반하여 발로 차 버리고 말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에게 있는 모든 것을 다 빼앗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은혜와 복을 빼앗기기 싫습니까 그것을 계속적으로 누리려면 이전에 자기가 어떤 자였고, 지금은 자신이 어떻게 복을 받은 자인지, 어떻게 부요한 자, 성공한 자가 되었는데, 이것이 누구에게로부터 온 것을 깨닫고 잊지 말아야합니다.
둘째로, 환난의 때에는 하나님께 부르짖어야합니다. 평안의 때에 하나님을 바로 섬겨서 복을 받을지라도 죄악 때문에 징계의 고난은 받지 않아야합니다. 죄와 불순종으로 인한 환난과 시련의 때에는 빨리 그 고통에서 떠나기 위해서는 그 죄악에서 떠나야합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어야합니다. 하나님을 사모하면서 이 모든 낭패와 실패가 자신의 죄와 허물로 인한 것인 것을 깨닫고 돌아서는 일을 해야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때에 그 어떤 죄도 용서하시고 징계도 거두어 주실 것을 말씀하는 것이 사사기입니다. 그러나 환난의 때에 사람들이 다 하나님께 돌아갈 것 같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오늘 이렇게 많은 어려움이 있어도 이것이 하나님을 떤나 죄 때문이라고 깨닫는 사람이 믿는 사람 가운데도 많지 않습니다. 원망하기가 빠르고, 인간의 수단과 방법을 찾아가는 일이 급선무라고 하지만, 실은 제일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입니다. 환난 날에 하나님께 부르짖어 회개하게 되고 그래서 하나님의 긍휼을 입는 것이 얼마나 크신 하나님의 은혜인지 모릅니다. 환난의 때에 부르짖지 않고 더욱 더 패역하고 고집을 부리면 매만 더 맞을 뿐입니다.
그러므로 환난이 이르면 빠르면 빠를수록 하나님께 부르짖어야합니다. (시50:15) 환난 날에 나를 부르라 내가 너를 건지리니 네가 나를 영화롭게 하리로다
셋째로,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쓰시는 구원자를 보내십니다. 이전 이스라엘에게는 사사를 구원자로 보내주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면, 오늘 부르짖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누구를 보내주십니까 오늘에는 우리들에게 피할 길을 주신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환난의 때에 부르짖으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그 어려운 환난을 능히 이기고 감당할 수 있는 피난처를 주십니다. 이 피난처가 누구십니까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사사시대는 사사들을 의지하고 바라보며 그의 통치를 받고 그의 인도하심을 따라 구원을 받고, 평강의 삶을 살았던 것 같이 오늘 우리들이 환난을 당하면 그리스도의 품안으로 피해야합니다. (시91:1) 지존자의 은밀한 곳에 거하는 자는 전능하신 자의 그늘 아래 거하리로다 (시91:2) 내가 여호와를 가리켜 말하기를 저는 나의 피난처요 나의 요새요 나의 의뢰하는 하나님이라 하리니 (시91:3) 이는 저가 너를 새 사냥꾼의 올무에서와 극한 염병에서 건지실 것임이로다 (시91:4) 저가 너를 그 깃으로 덮으시리니 네가 그 날개 아래 피하리로다 그의 진실함은 방패와 손 방패가 되나니 (시91:5) 너는 밤에 놀램과 낮에 흐르는 살과 (시91:6) 흑암 중에 행하는 염병과 백주에 황폐케 하는 파멸을 두려워 아니하리로다 (시91:7) 천인이 네 곁에서, 만인이 네 우편에서 엎드러지나 이 재앙이 네게 가까이 못하리로다 (시91:8) 오직 너는 목도하리니 악인의 보응이 네게 보이리로다 (시91:9)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는 나의 피난처시라 하고 지존자로 거처를 삼았으므로 (시91:10) 화가 네게 미치지 못하며 재앙이 네 장막에 가까이 오지 못하리니 (시91:11)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자들을 명하사 네 모든 길에 너를 지키게 하심이라 (시91:12) 저희가 그 손으로 너를 붙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시91:13) 네가 사자와 독사를 밟으며 젊은 사자와 뱀을 발로 누르리로다 (시91:14) 하나님이 가라사대 저가 나를 사랑한즉 내가 저를 건지리라 저가 내 이름을 안즉 내가 저를 높이리라 (시91:15) 저가 내게 간구하리니 내가 응답하리라 저희 환난 때에 내가 저와 함께 하여 저를 건지고 영화롭게 하리라 (시91:16) 내가 장수함으로 저를 만족케 하며 나의 구원으로 보이리라 하시도다 그 때 사사들은 하나님께 쓰임 받고 그 나라를 구원했으나, 죽으므로 이스라엘은 다시 그들의 사사를 구해야했습니다. 그들의 구원자는 인간이기에 한계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영원한 반석이십니다. 그분은 주무시지도 않고, 우리 안에 계시면서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십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것은 바로 하나님의 진리 말씀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그리스도의 사랑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가 당한 어려움이 하나님의 징계라면 우리가 어디로 피하며, 어디로 도망하겠습니까 이 징계의 그물이 서서히 다가오기 때문에 사람들이 그것을 감지하지 못하지만, 이는 전쟁과 같습니다. (시139:1)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감찰하시고 아셨나이다 (시139:2) 주께서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며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통촉하시오며 (시139:3) 나의 길과 눕는 것을 감찰하시며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시139:4)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 (시139:5) 주께서 나의 전후를 두르시며 내게 안수하셨나이다 (시139:6) 이 지식이 내게 너무 기이하니 높아서 내가 능히 미치지 못하나이다 (시139:7) 내가 주의 신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시139:8)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음부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시139:9)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할지라도 (시139:10) 곧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차라리 하나님께 피하는 것이 상책입니다. 하나님을 원수를 삼고는 우리가 도무지 피할 곳이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이 우리의 원수가 되어도 하나님의 품에 있으면 우리는 안심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의 환난 날에 피난처 되어 주시겠다고 하셨으니 우리는 감사하고 이 분을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의 구원자는 주님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사들을 통하여 구원과 평강과 은혜를 주십니다. 그러나 사사가 죽으면 다시 이스라엘이 죄를 범하고 그래서 하나님께서 진노하시는 것인데, 우리에게 하나님의 진리의 인도가 끊기면 말씀에 대한 갈급이나, 사모가 없으면 사사가 없는 이스라엘 같이 다시 세속화되고 하나님께 진노를 쌓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중심한 신앙생활이 되어야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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