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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칼 기드온 (삿6:36-7:23)

본문

기드온은 기름 부음을 받았습니다. 이제 그는 용기 있게 나팔을 불며 전령을 보내어 이스라엘 각 족속들을 불러 모습니다. 이것은 마치 우리가 매 해마다 수 련회에서 큰 비젼을 받고 ㅊ터 켐프를 하며 기대와 소망을 가지고 신입생들을 모 집하고 사람들을 독려하여 모이기를 힘쓰는 것과 같은 모습입니다. 이스라엘의 각 족속들이 기름부음 받은 기드온에게 속속들이 모여 들고 있습니다. 참으로 이것은 기드온의 은혜받은 자,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한자로서의 모습 입니다. 사람들은 어떤 사람을 ㅉ아 갑니까 은혜받은 사람, 하나님의 임재 가운 데 있는 사람에게 나아갑니다. 리더란 한 마디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입니다. 두 려움에 있다가도 은혜가운데 있는 사람을 보면 왠지 나도 알 수 없는 용기가 생 겨 납니다. 잘못 살고 있다가도 하나님의 임재속에서 살아가는 사람을 보면 왠지 이렇게 살아서는 않되는데 하며 돌이키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도 합니다. 두려움에 떨고 있던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임재에 사로잡혀 있는 기드온의 모습을 보며 그들의 두려움을 떨쳐낼 수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기드온의 열등감의 원인 이며 비교 대상 이었던 혹시 기드ㅗ을 업신여겼을지도 모르는 므낫쎄 지파마저도 그에게 순종하기 위해 나아갑니다.
 기드온의 모습은 전 이스라엘 공동체에 상승 효과를 가져 왔습니다. 은혜받은 자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그는 자신의 한계와 연약함을 뛰어넘습니다. 때로는 도저히 않될 것 같은 일인데도 무서운 열정으로 도전해 갑니다. 이것이 그 주위에 잠자는 자를 깨어나게 합니다. 마치 꼬마 다윗이 거인 골리앗을 향하여 평원을 가로질러 단지 조약돌 다섯개를 들고 달려가는 모습입니다. 그에게는 두려움이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을 대적하고 조롱하는 블레셋과 골리앗을 향한 거룩한 분노가 그를 사로잡을 뿐입니다. 그의 가슴에는 하나님의 명예에 대한 열정이 타오르고 있습니다. 골리앗을 넘어뜨린 것은 강한 칼이 아닙니다. 단지 조약돌 5개 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임재와 확신에 사로잡힌 다윗은 보잘 것 없는 조약돌로 골리앗을 쓰러 뜨리고 그가 자랑하던 강한 칼을 빼앗아 골리앗과 블레셋의 전의를 꺽어 버립니다. 이것이 바로 정확히 이 세상에서 우리가 싸워야할 방법이며 승리하는 모습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임재에 사로잡힌자의 모습입니다. 이 시대에 필요한 것은 지식 보다는 확신입니다. 사람들이IVF운동의 중요성과 좋은 것을 몰라서 헌신하기를 머뭇거리는 것이 아닙니다.IVF에서 제공하는 훈련 은 어느 단체보다 탁월합니다. 그러나IVF운동론을 안다고 해서 좋은 것을 배운 다고 해서 다 헌신하는 것은 아닙니다. 알고는 있습니다. 배우기도 합니다. 그러나 확신이 없는 것입니다. 어제는 리더쉽이 전수 되기 위해서는 사랑이 있어야 한다고 말 했습니다. 사랑이 있는 자만이 멤버를 리더로 세우기를 기뻐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한 가지 더 리더는 우리 운동에 대한 하나님이 시작하신 일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라는 확신가운데 그를 사랑하여 합니다. 사랑은 그를 리더가 되는 것을 받아들이게 합니다. 그러나 확신은 그가 참으로 어려울 때 그를 지탱해주며 그의 헌신을 더욱 일관성있게 할 수 있는 힘이 되어 집니다. 이 시대의 젊은 이들이 표류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들의 신앙의 일관성을 잃어버리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우리 공동체가, 교회마다 청년부가 이처럼 열악 해져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교회가, 지도자들이 그들이 이 불안한 세상에서 붙 잡고 나아갈 확신을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확실한 하나님의 임재와 역사를 보여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의 가슴을 움직이는 것은 확신입니다. 우리 공동체에는 확신을 가진리더가 필요합니다. 손 에 든 것이 조약돌 다섯개 뿐이라도 좋습니다. 우리 젊은이 들에게는 확신이 필 요합니다. 자신의 젊을 내던져도 전혀 아까울 것이 없는 확신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우리의 확신은IVF의 탁월함이 근거가 아닙니다. 우리의 확신은 하나님의 임재에서 와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가 없는 이시대의 교회가 그렇게도 많은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 이유는 하나님의 임재로부터 오는 확신을 그것에서 부터 찾으려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프로그램으로 대치하고 있습니다. 혹시 이것이 우리의 모습은 아닙니까 리더들이 가져야 할 확신은 잘 짜여진 POGS가 아닙니다. 그것이 공동 체에 힘을 주는 것이 아닙니다. 블레셋의 대군과 거인 골리앗에 떨고 있던 이스라엘이 어떻게 전쟁에 나아가 승 리할 수 있었습니까 그것은 소년 다윗이 조약돌로 골리앗을 쓰러뜨리는 것으로 부터 온 하나님에 대한 확신 때문 이었습니다. 기드온의 확신은 어떻게 왔습니까 비록 두려웠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순종 했을 때 도저히 변할 것 같지 않은 아버지가 변화되었을 때 왔습니다. 두려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확신은 자신의 능력으로는 두려운일을 순종했을 때 경험되어지는 하나님의 역사하심에서 오는 것입니다. 이 확신이 이스라엘을 불러 모으고 있습니다. 교회에 안에 진리가 있고 하나님이 계시다는 확신이 있으면 청년들은 모 일 것입니다. 아니 이세상이 교회를 향할 것입니다. 이제사람들이 기드온을 영접하며 그를 연호하고 모여 들었습니다. 기드온은 명 실상부하게 이스라엘의 리더가 되었습니다. 이제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여 미디안 을 향해서 나아가면 됩니다. 하나님이 친히 싸우실 것입니다. 그러나 기드온은 다시 머뭇거립니다. 의심합니다. 두려워 합니다. 그는 다시 하나님에게 표징을 요구하고 있습니다. 눈에 보여주지않으면 믿지 못하는 기드온의 두려움은 다시 살아 났습니다. 그 두려움은 양털 한 뭉치를 꺼내어 하나님께 표 징을 요구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역시 사람은 잘변하지 않습니다. 심지어는 하나님의 기름 부으심도 우리를 완전 히 변화 시키지는 않으십니다.
우리의 확신이 얼마나 쉽게 희석 되는 지 알 수 없습니다. 왜 기드온은 다시 주춤거립니까 기드온은 오히려 그를 향해 몰려든 이스라엘을 보며 다시금 옛 망령에 사로 잡힙니다. 그것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문제는 새로운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만나는 어려움과 살패는 그것이 낫선 것이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것은 항상 똑같은 문제입니다. 그것은 주여 내가 무엇으로 이스라엘을 구원하리이까 입니다. 기드온은 그 앞에 모여든 수 많은 사람들을 보며 또다시 자신의 지도력 없슴과 리더로서의 부적절함을 발견합니다. 그는 다시 두려워 졌습니다. 그의 마음에 일 어난 것은 옛 망령, 나의 집은 므낫세 중에 극히 약하고 나는 내 아비 집에서 제 일 작은 자라는 비교의식입니다. 열등감입니다. 비교의식과 열등감은 정작 해야할 때에 우리를 묶어 버립니다. 이것은 아마도 리 더를 하는 한은 우리가 계속적으로 만나게 될 문제 일 것입니다. 처음에는 잘 해 나갑니다. 그러나 자기가 가장 자신 없어하는 일이 일어나면 우리는 꼼짝없이 굳어 버립니다. 그것이 지체들과의 관계의 문제일수 있습니다. 사랑없이 섬기는 자신의 모습일 수도 있습니다. 리더라고 하기에는 부족한 인격적 미성숙, 자신의 게으름에대한 실망감, 자신의 지식의 부족함, 내것을 잃고 있는 것 같은 피해의식, 사람들에게서 오는 참을 수 없는 거절감들, 아무리해도 도저히 않될 것 같은 상황. 기드온을 굳어 버리게 한 것은 사람들로 부터오는 두려움 이었습니다. 그 안에 있던 비교의식과 열등감이 사람들을 두렵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하나님께 다시 표징을 요구 합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이라면 기드온의 요구에 어떤 반응을 보일 것 같습니까 하나님 은 역시 인내의 대가이십니다. 다시 순순히 그가 해 달라는 요구를 들어 주십니다. 그것은 기드온이 요구하는 것이 우리가 본받을만한 것이어서가 아닙니다. 기 드온의 요구를 들어주시는 것은 순전히 기드온의 연약함을 용납하시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기드온을 포기하지 않으시려는 하나님의 사랑 때문입니다. 기드온의 요구는 어쩌면 포기를 위한 준비작업이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눈 에 보이는 증거를 보여주시지 않으면 포기 할려는 마음이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포기하고 싶고 쓰러질 때 하나님은 다시 시작하실 준비를 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언제든지 다시 시작하실 것입니다. 어느날은 저녁에 자다가 1시간 동안 하염없이 눈물을 흘린 적이 있었습니다. 왜 그런지 몰랐습니다. 그것은 떠나간 사람들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그들이 떠나갔기 때문이 아닙니다. 7년동안이나IVF에서 자란 이들이 이정도밖에 않되는가하는 생각이 들면서IVF사역이 너무나 의미없게 느껴졌습니다. 해서 뭐하는 가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포기하고 싶었습니다. 8년간IVF에서 수고 했던 모 든 것이 허무하게 느껴졌습니다. 포기하겠다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러나 어느날 하나님께서는 기도 가운데 기다려야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일은 성취하기위해 무언가를 시작해야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이 성 취하신 그 일을 기다리는 것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셨습니다. 마치 10처녀가 신랑을 기다리듯이, 주께서 이루신 그 구원을 완성하시기 위해서 주께서 이 땅에 오실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오히려 나의 일이라고 말씀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의 사랑으로 내 눈물을 이해한다고 말씀해 주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나의 마음을 만져 주시고 보이지않는 가운데 사람들의 마음을 일으키고 계셨습니다. 하나님은 다시 시작을 하고 계셨습니다. 우리의 유일한 소망은 하나님 이십니다.
결코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은 우리가 두 려워하고 실패한다고 해서 포기 되어지는 법이 없습니다. 우리가 포기를 준비할 때 하나님은 바로 그때 우리를 다시 일으킬 준비를 하십니다. 하나님의 그 인자 하심과 자비로우심을 저는 측량할 수 없습니다. 이 하나님의 사랑이 여러분을 여기까지 이끌어 오신 것입니다. 여러분의 지부를 붙잡아 오신 것입니다. 신학대 사역부가 있게 하신 것입니다. 폭풍우에 놓여있는 촛불같은 우리의 바람막이가 되어주시는 하나님이 계시는 한 결코 우리는 꺼지는 불이 아닙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 없이는 하루도 살아갈 수 없는 자들입니다. 그래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은 하나님의 사랑의 증거들입니다. 여러분 여러분 의 실패만을 보지 마시고 여러분에게 임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아픔과, 상처와 두려움만 보지 마시고 상처난 여러분을 포기치 않는 하나님의 사랑을 보십시오. 이 사랑이 기드온을 다시 일으켰습니다. 젖은 양털이 기드온에게 용기를 준 것이 아닙니다. 양털은 아무 힘이 없습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인내와 사랑으로 일어 난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실패했을때 그 두려움에 휩싸여 포기하고 싶을 때 도망가고 싶을 때 우리는 어떻 게 해야 합니까 하다가 하다가 내가 할 수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어보이는 무력 감과 절망감이 몰려올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합니까 우리 소그룹이 우리 지부가 폭풍가운데 곧 꺼져버릴 촛불 같은 두려움과 위기에 봉착할 때 나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때라도 할 수 있는 것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 앞에 나아 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임재 앞에 나아가는 것십니다.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 다 시한번 확신을 다라고 간청하는 것입니다.우리에게는 포기치 않고 기다리시는 하나님이 계십니다. 이것이 기드온이 배워야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은 기드온을 순간에 위대한 지도 자로 만드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허다한 일보다도 우리가 당신을 의지하며 당신 앞에 나아가는 것을 기뻐 하십니다. 이제 기드온은 다시 여룹바알이라는 이름을 회복합니다. 이제 이름 그대로 바알 과 싸우는 자로서 준비가 된 것입니다. 기드온이 일어나자 잠시 주춤했던 이스라 엘 공동체도 함께 일어납니다. (7:1)
싸울 준비가 되었습니다. 지도자인 기드온도 확신 가운데 일어났고 3만 2천의 이 스라엘 백성들도 일어나 싸우기 위해 진을 치고 있습니다. 이제 남은 것은 전쟁 입니다. 나아가 싸우는 것입니다. 가자! 이런 분위기 입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하나님 쪽에서 지체 하십니다. 왜 그러실 까요 지금까지는 기드온의 요구를 순순히 들어주시던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오히려 멈 추어 서게 하시고요구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기드온을 향한 두 번째의 요구 입니다. 처음의 요구는 기드온과 이스라엘이 외적인 문제에 나아가기에 앞 서 자신의 내면의 문제를 먼저 점검해야 할 것을 요구 하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기드온의 가정과 이스라엘 안에 들어와 있던 가나안적인 것과 바알 과 아세라의 우상을 제거하는 것이 었습니다. 그리고 이 과정을 통하여 하나님은 기드온의 열등감과 내면의 문제를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이제 하나님이 기드온과 이스라엘을 지체시키시고 요구하는 두 번째 것은 무엇입 니까 그리고 이것을 통해 하나님은 기드온에게 무엇을 가르치시려고 합니까 여기에서 하나님의 기드온을 온전케 하기를 원하시는 새로운 계획이 펼쳐집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내용에서 알 수가 있습니다. 이제 하나님은 그에게 전쟁에 나가기 바로 전에 배워야 할 것을 가르쳐 주시기 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내용은 무엇입니까 (7:3)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은 무장해제 였습니다. 그리고 무기도 다 버리고 나팔과 횟불과 항아리만 가지고 가라는 것입니다. 3만2천 명이 너무 많으니 3백명만 전쟁에 나가라는 것입니다. 그러나 3만2천의 이 숫자도 미디안에 비하면 결코 충분한 것이 아닙니다. 미디안의 군대는 연합군 이었습니다. 아말렉과 동방의 모든 족속들이 연합한 군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당시에는 현대전쟁에서 탱크와 같은 약대도 해변의 모래같이 많다고 하였습니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여 사람들을 돌려보냅니다. 2만 2천명이 돌아 가고 1만이 남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직도 수가 너무 많다고 하십니다. 사 라들을 물가로 데려가 물 마시는 모습을 통해서 3백명만 남겨두고 다 돌아가게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손에 무기를 지워주는 데 그것은 고작 항아리와 나팔과 횟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창과 칼은 커녕 항아리와 나팔과 횟불을 든 3백명의 군사를 이끌고 무시무시하고 강한 무기로 무장된 수십만의 이방 연합군을 향해 싸우러 나가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마치 항공모함을 향해서 통통배 타고 덤비라는 말씀과 같은 것입니다. 도데체 이게 말이 됩니까 가서 그냥 죽으라는 이야기 입니까 저 같으면 따질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기드온은 아무말 없이 순종합니다. 갑자기 믿음이 좋아진 것 입니까 왜 기드온은 순순히 있을 까요 그 이유는 기드온 자신은 스스로 무엇을 할 능력 도 여력도 없었던 것입니다. (10) 지금 기드온은 두려워 정신이 없는 것입니다. 이 말도 않되는 상황을 그저 보고만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리더의 모습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기드온의 자발적 순종은 어디에서 볼 수 없습니다. 두려움가운데 아무것도 할 수 없어서,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가고 있는 기드온에게 하나님은 부하 부라를 데리고 적진으로 가서 그들의 하는 말을 듣 고 오라고 하십니다. 그러면 네가 나의 말을 믿을 것이고 이 상황에서 두려워하 지 않고 전쟁에 나갈 힘을 얻게 될 것이라고 말씀 하십니다.(10-11) 여기에서 겨렁적으로 기드온은 진정한 리더로세워지게 됩니다. 하나님은 이방 군 사의 꿈을 통하여 기드온이 두려움 없이 전쟁에 나아갈 수 있는 이유를 가르쳐 주셨습니다.그가 무장해제된 3백명의 숫자라도 두려워하지 않고 전쟁에 나가서 싸울 수 있는 담대함을 얻게 하십니다. 기드온은 무엇을 깨달은 것입니까 이것은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 의 일을 수행할 모든 이들이 알아야 할 것입니다. 이땅의 교회와 모든 하나님의 공동체들이 알아야할 것입니다.바로 저와 여러분이 알아야 할 것입니다.(7:14) 이방적군이 말하기를 기드온의 칼날이 미디안의 연합군을 쓰러뜨릴 것이라고 말 합니다. 이말을 들은 기드온이 깨달은 것은 무엇입니까 자기도 몰랐던 자기안의 능력을 이방적군이 말해주는 것을 들으니 갑자기 자신감이 생긴 걸까요 자신에 대한 확신과 능력을 발견한 것입니까 기드온의 칼날이 자신들을 쓰러뜨릴 것이라는 말을 들은 기드온은 싸울 칼날을 본 것이 그 칼을 쥐고 계신 하나님을 본 것입니다.
이제야 기드온은 항상 초라한 자신만을 향하던 시선을 최초로 그를 부르신 하나님을 향하게 됩니다. 우리가 문제에 부딪힐 때 우리의 습성은 꼭 기드온과 같습니다. 자기밖에 볼줄 모릅니다. 자기감정에 충실해집니다. 자기안에 점점 파고 들어 끝내는 자신을 가 두어 버립니다. 스스로 구덩이를 파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언제 우리의 문제를 극복할 수 있습니까 하나님을 바라볼 때입니다. 나를 붙들고 계신 하나님을 발견할 때입니다. 그 신실하신 하나님의 꽉잡은 손을 느낄 때입니다. 이방적군의 말을 들은 기드온이 깨달은 것은 이스라엘의 진정한 장수는 누구인 가 이스라엘의 진정한 사사는 누구인가 였습니다. 기드온이 지금까지 가진 부담 감은 무엇이었습니까 자기가 이스라엘의 장수로 나가야 한다는 부담감 때문이었 습니다. 자신 같이 보잘 것 없는 자가 이스라엘의 사사로 나서야 한다는 것 때문에 두려워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나 사사기 전체에서 뿐만아니라 오늘 날에도 영 원한 미래에도 참 사사는 하나님 이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은, 하나님 이 십니다. 바로 그 하나님이 우리를 사용하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요 감사의 제목입니다. 우리를 존중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십니다. 오늘 우리가 이토록 훈련 받으며 최선을 다해서 리더로 섬겨야할 이유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강한 손에 들려 있는 칼이 보이십니까 하나님이 사용하시는 칼은 바로 기드온입다. 바로 여러분들 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이 세상과의 전쟁에서 사용하실 칼을 고르신다. 그러나 그 칼은 세상이 보기에 날카롭고 강해 보이는 칼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날이 녹슬고 날이 상하여 풀 한포기 벨 수 없을 것 같은 칼을 고르십니다. 그리고 인내로 하나님의 방법으로 그 칼을 서서히 갈아가시는 것입니다. 아무리 녹슨 칼이라 할지 라도, 아무리 버려질 칼이라 할지라도 하나님의 손에 붙잡히면 더 이상 녹슨 칼 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인내로 천성적으로 소심하고 두려움이 많으며 아무런 내 놓을 것이 없는 기드온을 결국에는 당신의 강하고 예리한 칼로 만들어 내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을 우리를 리더로 세워가시는 방법이다. 이것이 하나님이 세상을 이기시는 방법이다. 이것을 깨달은 기드온은 이제야 리더의 모습을 갖게 됩니다. (16-18)
이제 기드온 이전의 기드온이 아닙니다. 아무것도 모른체 두려움 가운데 시키는 데로만 하는 기드온이 아닙니다. 삼백명을 3대로 나눕니다. 그들에게 있는 항아리안에는 횟불을 감추게 합니다. 전 략을짜는 것입니다. 그리고 말하기를 너희는 내가 하는데로 하라고 말합니다. 이 스라엘이 취해야 할 행동을 리드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결코 기드온은 자신의 생각대로만 한 것이 아닙니다. 그의 모든 생각과 행동은 바로 하나님의 함께 하심 가운데 되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중요한 것 입니다. 우리가 무슨 열심을 내고 계획을 세우더라도 참으로 중요한 것은 하나님 의 함께 하심 가운데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이해한 기드온은 이제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무엇을 해야할 지 분명히 보이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제 기드온은 하나님의 계획을 자신의 군대에 가장 적합하고 효과적인 계획을 세웁니다. 기드온의 계획은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계획의 성취 여부는 그 계획의 논리성과 합리성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계획을 이해하고 있는 계획인가가 중요한 것입니다. 이 원칙은 내인생의 계획을 세우는 것에서부터 모든 공동체안에서 세워지는 계획에 대해서 동일한 원칙입니다. 이 행동은 하나님이 시킨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계획을 이해한 기드 온이 자발적으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달라진 기드온의 모습입니다. 기드 온은 드디어 사사가 된 것입니다. 리더가 된 것입니다. 기드온을 사사되게 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그의 사랑과 그의 지혜가 얼마나 놀라우신지요. 기드온을 사사되게 하신 그 하나님이 동일하게 오늘도 우리의 삶가운데서 역사하 고 계십니다. 그 강하신 손이 이내로 우리를 붙잡고 계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손에 그 포기치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졸지아니하시는 그분의 열심있는 손에 우리의 녹슨 몸을 맡겨 들입시다. 우리의 보잘 것 없는 인생을 맡겨 들입시다. 우리 의 보잘것없은 계획을 맡겨들입시다. 우리의 보잘 것 없는 지성과 우리의 보잘 것 없는 영성과 인격을 맡겨들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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