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손의 승리 (삿15:14-19)
본문
사사 시대 당시 삼손이 사사로서의 활약이 두드러지게 되자 블레셋인들은 삼손을 붙잡기 위해 삼손의 동족 이스라엘에게 핍박을 가했습니다. 이에 대적자의 핍박을 견디다 못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삼손을 붙잡아 블레셋 사람에게 넘겨 주려고 그를 결박한 채로 레히까지 끌고 왔습니다. 그러자 이를 본 블레셋 사람들은 환호성을 지르며 열광했습니다. 하지만 그 기쁨도 잠시뿐 삼손은 곧 묶인 줄을 끊고 나귀 턱뼈로 오히려 블레셋인 일천 명을 죽였습니다. 이를 통하여 귀한 영적 교훈을 얻도록 합시다.
1. 성령님의 능력이 임하면 불가능을 가능케 합니다. 삼손은 이제 낡은 줄이 아닌 두 개의 새 줄로 결박당한 채로 블레셋 사람들 앞에 끌려 왔습니다. 아마도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이 그같이 결박당한 모습을 보고 완전히 자기들의 수중에 들어왔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의기양양하게 삼손이 결박된 모습을 보고는 기쁨과 놀라움에 벅차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동안이었을 뿐 여호와의 권능이 임했습니다. 성령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삼손을 결박한 새 밧줄이 아주 손쉽게 끊어져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이 어긋나는 인간의 어떠한 노력도 결코 성공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성령님이 임하면 불가능한 사건도 가능케 되는 역사가 나타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을 에워싸고 있는 악의 세력이 아무리 견고하다 할지라도 성령님의 권능을 힘입은 자들에게는 불에 탄 삼줄과 같이 소멸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작은 것을 들어 크게 사용하십니다. 본문 15절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삿15:15) 삼손이 나귀의 새 턱뼈를 보고 손을 내밀어 취하고 그것으로 일천 명을 죽이고” 여기에서 “새 턱뼈”란 ‘축축한’이란 의미로 죽은 지 얼마 안 되는 나귀의 턱뼈를 가리킵니다. 시로 그것은 무기로서의 효용 가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손이 이 작은 도구를 가지고 일천명을 죽이고도 남는 위협적인 무기가 된 것은 무슨 이유일까요 이는 나귀 턱뼈가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가장 약한 것을 들어서 가장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는 역사를 일으키실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고전1: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하였습니다. 또한 이 세상에서 천한 것, 멸시받는 것, 없는 것들을 택하셔서 있는 것들을 폐하기도 하십니다. “(고전1: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부족과 무능을 핑계로 하나님께 불충성할 이유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것만이 우리에게는 요구될 뿐입니다.
3. 하나님은 당신의 사역자를 끝까지 붙드십니다. 삼손은 혼자의 힘으로만 수많은 블레셋 사람들을 대적하다 보니 거의 탈진 상태에 이르렀으며, 특히 땀을 많이 흘린 까닭은 몹시도 목이 말라 죽을 위기에 처해 있게 됐습니다. 이처럼 모든 블레셋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삼손도 목이 타는 듯한 갈증에는 보통 사람들과 같은 유한하고 연약한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이는 마치 갈멜산에서 바알의 제사장들을 이기고 이스르엘 광야에까지 도망갔던 엘리야가 로뎀나무 아래서 하나님께 죽기를 간구했던 그러한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왕상19:4)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행하고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견딜 수 없는 갈증 속에서 부르짖는 삼손의 기도에 하나님께서는 ‘레히’의 한 우묵한 땅을 트셔서 그곳에서 셈물이 나오게 하셨습니다. 삼손은 이 샘물을 마시고 기력을 회복하여 소생하였는데, 이러한 자신의 구원을 기념하기 위하여 그 샘 이름을 ‘엔학고레’라고 불렀습니다. “(삿15:19) 하나님이 레히에 한 우묵한 곳을 터치시니 물이 거기서 솟아 나오는지라 삼손이 그것을 마시고 정신이 회복되어 소생하니
그러므로 그 샘 이름은 엔학고레라 이 샘이 레히에 오늘까지 있더라 ” 이는 히브리어로 ‘부르짖는 자의 샘’으로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행하다 위기에 처함 삼손이 하나님께 부르짖은 사실을 기억하게 하십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선한 일을 수행하는 가운데 종종 환란과 위기를 만나게 되는데, 그때마다 하나님은 그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시는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1. 성령님의 능력이 임하면 불가능을 가능케 합니다. 삼손은 이제 낡은 줄이 아닌 두 개의 새 줄로 결박당한 채로 블레셋 사람들 앞에 끌려 왔습니다. 아마도 블레셋 사람들은 삼손이 그같이 결박당한 모습을 보고 완전히 자기들의 수중에 들어왔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의기양양하게 삼손이 결박된 모습을 보고는 기쁨과 놀라움에 벅차 환호성을 질렀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동안이었을 뿐 여호와의 권능이 임했습니다. 성령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삼손을 결박한 새 밧줄이 아주 손쉽게 끊어져 버리고 말았던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뜻이 어긋나는 인간의 어떠한 노력도 결코 성공할 수 없으며, 하나님의 성령님이 임하면 불가능한 사건도 가능케 되는 역사가 나타난다는 것을 가르쳐 줍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을 에워싸고 있는 악의 세력이 아무리 견고하다 할지라도 성령님의 권능을 힘입은 자들에게는 불에 탄 삼줄과 같이 소멸되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작은 것을 들어 크게 사용하십니다. 본문 15절은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삿15:15) 삼손이 나귀의 새 턱뼈를 보고 손을 내밀어 취하고 그것으로 일천 명을 죽이고” 여기에서 “새 턱뼈”란 ‘축축한’이란 의미로 죽은 지 얼마 안 되는 나귀의 턱뼈를 가리킵니다. 시로 그것은 무기로서의 효용 가치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삼손이 이 작은 도구를 가지고 일천명을 죽이고도 남는 위협적인 무기가 된 것은 무슨 이유일까요 이는 나귀 턱뼈가 하나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가장 약한 것을 들어서 가장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는 역사를 일으키실 수 있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고전1:27) 그러나 하나님께서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하였습니다. 또한 이 세상에서 천한 것, 멸시받는 것, 없는 것들을 택하셔서 있는 것들을 폐하기도 하십니다. “(고전1:28)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부족과 무능을 핑계로 하나님께 불충성할 이유는 없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것만이 우리에게는 요구될 뿐입니다.
3. 하나님은 당신의 사역자를 끝까지 붙드십니다. 삼손은 혼자의 힘으로만 수많은 블레셋 사람들을 대적하다 보니 거의 탈진 상태에 이르렀으며, 특히 땀을 많이 흘린 까닭은 몹시도 목이 말라 죽을 위기에 처해 있게 됐습니다. 이처럼 모든 블레셋 사람들에게 공포의 대상이었던 삼손도 목이 타는 듯한 갈증에는 보통 사람들과 같은 유한하고 연약한 모습을 보이게 됩니다. 이는 마치 갈멜산에서 바알의 제사장들을 이기고 이스르엘 광야에까지 도망갔던 엘리야가 로뎀나무 아래서 하나님께 죽기를 간구했던 그러한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왕상19:4) 스스로 광야로 들어가 하룻길쯤 행하고 한 로뎀나무 아래 앉아서 죽기를 구하여 가로되 여호와여 넉넉하오니 지금 내 생명을 취하옵소서 나는 내 열조보다 낫지 못하니이다 하고” 견딜 수 없는 갈증 속에서 부르짖는 삼손의 기도에 하나님께서는 ‘레히’의 한 우묵한 땅을 트셔서 그곳에서 셈물이 나오게 하셨습니다. 삼손은 이 샘물을 마시고 기력을 회복하여 소생하였는데, 이러한 자신의 구원을 기념하기 위하여 그 샘 이름을 ‘엔학고레’라고 불렀습니다. “(삿15:19) 하나님이 레히에 한 우묵한 곳을 터치시니 물이 거기서 솟아 나오는지라 삼손이 그것을 마시고 정신이 회복되어 소생하니
그러므로 그 샘 이름은 엔학고레라 이 샘이 레히에 오늘까지 있더라 ” 이는 히브리어로 ‘부르짖는 자의 샘’으로서 하나님의 구원 역사를 행하다 위기에 처함 삼손이 하나님께 부르짖은 사실을 기억하게 하십니다. 우리도 하나님의 선한 일을 수행하는 가운데 종종 환란과 위기를 만나게 되는데, 그때마다 하나님은 그 어려움을 극복할 수 있도록 힘을 주시는 우리의 피난처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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