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 암흑기의 신앙 형태 (삿18:1-4)
본문
본 장에는 단 지파가 블레셋의 압제 때문에 쫒겨나 북쪽으로 이주한 사건이 기록되어 있다. 이러한 본 장의 역사적 배경을 살펴보면 단 지파는 아모리인들로 인해 산지로 물러나면서(1:34) 그들이 거할 영토가 너무 협소해지자 기업을 확장할 필요성이 절실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막강한 아모리인들을 대항해서 싸울 힘과 용기가 없었기 때문에 여호수아로부터 할당받은 기업의 경계(수 19:40-46)를 다 확보하지 못하고 방비가 허술한 라이스 땅을 정복하며 영토를 확장해 갑니다. 또한 단 지파는 북으로 이주하는 중에 레위 제사장과 미가의 우상을 훔치면서 전국 각지에 종교적인 무법성을 적나라하게 보여주고 있는데, 이는 사사시대의 영적 암흑기를 말해 주고 있는 예라 볼 수 있습니다.
1. 안일주의적 신앙 여호수아가 열두 지파에게 땅을 분배할 때 단 지파에게는 비교적 적은 땅이 할당되었고 그것도 대부분 팔레스틴과 아모리 족속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땅을 소유하기 위해서 이방 족속과 싸워야 하는 용기도 없었을뿐더러 적들은 철병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더욱이 중요한 것은 이들을 몰아내고자 하는 열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지금 다른 땅을 얻고 있는 중인 것입니다. 이들이 싸움을 기피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단 지파가 평화를 사랑하는 집단이기 때문이 아니라 싸우는 과정 속에서 치러야 할 고난이나 희생이 싫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안일주의적인 삶의 양식입니다. 이 시대의 신앙의 양태 또한 편리성만을 추구하다 보면 모험과 고난에 대처하는 면역성이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안일한 신앙의 모습으로는 그리스도의 정예 군사가 되기 힘듭니다.
2. 우상적 신앙 단 지파의 우상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무지의 소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미가의 신전에 있던 에봇과 드라빔을 자신들이 취하게 되면 그들의 앞날이 번영하고 라이스를 점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동족을 충동질하였습니다. 영혼의 눈이 어두워진 그들은 이제 이 신상들을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으로 삼으려 했으며, 그 신상들로부터 무언가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였습니다. 단 지파의 이런 무지한 행동은 하나님의 성품과 그분의 본질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데서 온 착각이었습니다. 결코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형체로도 대치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무지한 신앙의 발로인 것입니다.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으로 대치하려 할 때 그것이 우상 숭배입니다. 현대에는 합리주의, 과학주의, 쾌락주의, 물질주의 등이 현대판 우상으로 자리매김하여 무섭게 현대인들을 무신론적 상황으로 유도하고 있습니다.
3. 이기적 신앙 미국에 유명한 신학자요 기독교 윤리학자인 라인홀드 니버는 ‘우리들 개개인은 상당히 도덕적일 수 있지만, 한 공동체나 한 집단이 도덕적이 되기는 매우 어렵다’고 했습니다. 이는 개인의 이기심보다 집단의 이기심을 치유하기가 훨씬 더 어렵다는 진단입니다. 본문에 나타난 단 지파의 정탐꾼은 바로 집단 이기주의의 대표적인 모습입니다(10). 이는 정탐꾼들이 백성들로 하여금 지체하지 않게하기 위한 선동적인 표현법입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여호수아나 사사들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방 민족들을 물리칠 때 자주 사용하였던 “(수2:24) 여호와께서 그 온 땅을 우리 손에 붙이셨으므로”라는 말을 인용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원래의 의미와는 다른 것으로, 정탐꾼들이 단순히 아전인수격으로 하나님의 뜻이라고 고집하며 선동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태도가 집단 이기주의적 모습입니다. 다원화된 사회 속에서 각기 자기 집단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신앙인의 모습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적용
1. 우리는 우리의 삶의 모습 속에서 정말 정당한 길을 추구하고 있는가 아니면 단순히 쉽다는 사실 때문에 잘못된 길을 선택하는가
2.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현대적 우상인 ‘유신론적 실용주의’ 사상에 물들어 가고 있지는 아니한가
3. 예수님의 ‘타자를 위한 삶’의 모습과 거리가 먼 집단 이기주의 모습으로 가정, 사회, 교회가 과오를 범하고 있지는 아니한지 한 번 생각해 보자.
1. 안일주의적 신앙 여호수아가 열두 지파에게 땅을 분배할 때 단 지파에게는 비교적 적은 땅이 할당되었고 그것도 대부분 팔레스틴과 아모리 족속이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들에게는 땅을 소유하기 위해서 이방 족속과 싸워야 하는 용기도 없었을뿐더러 적들은 철병거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더욱이 중요한 것은 이들을 몰아내고자 하는 열의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지금 다른 땅을 얻고 있는 중인 것입니다. 이들이 싸움을 기피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단 지파가 평화를 사랑하는 집단이기 때문이 아니라 싸우는 과정 속에서 치러야 할 고난이나 희생이 싫었기 때문입니다. 이는 안일주의적인 삶의 양식입니다. 이 시대의 신앙의 양태 또한 편리성만을 추구하다 보면 모험과 고난에 대처하는 면역성이 떨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안일한 신앙의 모습으로는 그리스도의 정예 군사가 되기 힘듭니다.
2. 우상적 신앙 단 지파의 우상을 하나님으로 섬기는 무지의 소치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미가의 신전에 있던 에봇과 드라빔을 자신들이 취하게 되면 그들의 앞날이 번영하고 라이스를 점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동족을 충동질하였습니다. 영혼의 눈이 어두워진 그들은 이제 이 신상들을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으로 삼으려 했으며, 그 신상들로부터 무언가 힘을 얻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였습니다. 단 지파의 이런 무지한 행동은 하나님의 성품과 그분의 본질을 온전히 이해하지 못한 데서 온 착각이었습니다. 결코 하나님께서는 어떠한 형체로도 대치될 수 없다는 사실을 알지 못한 무지한 신앙의 발로인 것입니다. 하나님 아닌 것을 하나님으로 대치하려 할 때 그것이 우상 숭배입니다. 현대에는 합리주의, 과학주의, 쾌락주의, 물질주의 등이 현대판 우상으로 자리매김하여 무섭게 현대인들을 무신론적 상황으로 유도하고 있습니다.
3. 이기적 신앙 미국에 유명한 신학자요 기독교 윤리학자인 라인홀드 니버는 ‘우리들 개개인은 상당히 도덕적일 수 있지만, 한 공동체나 한 집단이 도덕적이 되기는 매우 어렵다’고 했습니다. 이는 개인의 이기심보다 집단의 이기심을 치유하기가 훨씬 더 어렵다는 진단입니다. 본문에 나타난 단 지파의 정탐꾼은 바로 집단 이기주의의 대표적인 모습입니다(10). 이는 정탐꾼들이 백성들로 하여금 지체하지 않게하기 위한 선동적인 표현법입니다. 이 과정에서 그들은 여호수아나 사사들이 하나님의 뜻에 따라 이방 민족들을 물리칠 때 자주 사용하였던 “(수2:24) 여호와께서 그 온 땅을 우리 손에 붙이셨으므로”라는 말을 인용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원래의 의미와는 다른 것으로, 정탐꾼들이 단순히 아전인수격으로 하나님의 뜻이라고 고집하며 선동하는 것입니다. 바로 이러한 태도가 집단 이기주의적 모습입니다. 다원화된 사회 속에서 각기 자기 집단의 이익만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신앙인의 모습도 예외일 수 없습니다. 적용
1. 우리는 우리의 삶의 모습 속에서 정말 정당한 길을 추구하고 있는가 아니면 단순히 쉽다는 사실 때문에 잘못된 길을 선택하는가
2. 우리는 신앙인으로서 현대적 우상인 ‘유신론적 실용주의’ 사상에 물들어 가고 있지는 아니한가
3. 예수님의 ‘타자를 위한 삶’의 모습과 거리가 먼 집단 이기주의 모습으로 가정, 사회, 교회가 과오를 범하고 있지는 아니한지 한 번 생각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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