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불평은 멸망의 원인 (삿12:1-6)

본문

사람은 누구나 불평이나 원망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불평은 자신에게나 타인에게 유익을 주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에브라임 지파는 특별나게 시기심이 많고 타인들의 성공의 대해서 더욱 불평이 많은 병패를 가지고 있습니다.
1. 전쟁에 참가시키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본문 “(삿12:1) 에브라임 사람들이 모여 북으로 가서 입다에게 이르되 네가 암몬자손과 싸우러 건너갈 때에 어찌하여 우리를 불러 너와 함께 가게 하지 아니하였느냐 우리가 반드시 불로 너와 네 집을 사르리라 ”하였습니다. 전쟁하려고 나아가는데 참전시키지 아니하였가도 불평하는 것도 이해가 안되지만 행패를 부리는 것은 불평의 차원을 넘어서 악인들의 소행인 것입니다.
2. 입다의 집에 불을 놓겠다는 것입니다. 본문 “(삿12:1)···우리가 반드시 불로 너와 네 집을 사르리라 ”하였습니다. 이는 불평의 정도가 아니고 불량배들의 행패입니다. 불량배들은 언제나 행패를 일 삼고 타인의 흠을 잡아 행패를 정당화 하려는 못된 습관이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불량배라고 하는 것입니다. 남의 집에 불을 놓겠다는 것은 위협이요 협박인 것입니다. 이래서야 어찌 사회생활을 해 나갈 수 있습니까. 살벌해서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서로 이해하고 양보하며 희생하는 사회가 정상적인 사회가 되는 것입니다.
3. 불평한 결과로 죽었습니다. 본문 “(삿12:4) 입다가 길르앗 사람을 다 모으고 에브라임과 싸웠더니 길르앗 사람들이 에브라임을 쳐서 파하였으니 이는 에브라임의 말이 너희 길르앗 사람은 본래 에브라임에서 도망한 자로서 에브라임과 므낫세 중에 있다 하였음이라 (삿12:5) 길르앗 사람이 에브라임 사람 앞서 요단 나루턱을 잡아 지키고 에브라임 사람의 도망하는 자가 말하기를 청컨대 나로 건너게 하라 하면 그에게 묻기를 네가 에브라임 사람이냐하여 그가 만일 아니라 하면 (삿12:6) 그에게 이르기를 십볼렛이라 하라하여 에브라임 사람이 능히 구음을 바로 하지 못하고 씹볼렛이라면 길르앗 사람이 곧 그를 잡아서 요단 나루턱에서 죽였더라 그 때에 에브라임 사람의 죽은 자가 사만 이천 명이었더라 ”하였습니다. 언제나 불평이나 비난을 좋아하면 결국 좋은 것은 없다는 것입니다.
1). 패배자가 되었습니다. 에브라임과 길르앗의 전쟁은 길르앗 사람들의 승리였습니다. 에브라임 사람들이 ‘길르앗 사람들은 우리의 도망자’라고 주장했음에도 사태는 길르앗 쪽으로 기울었고, 오히려 그들은 도망자가 되었습니다. 영광을 구하는 시기와 질투는 결국 도망자요 패배자라는 처지가 될 뿐입니다. 다른 이를 이기고 높임을 받으려하지 말아야 합니다.
2). 곤난에 처했습니다. 도망가는 에브라임 사람들에게 닥친 상황은 발음 문제였습니다. 본래 여린 ‘人’발음을 못하는 그들에게 ‘십볼렛’발음은 전혀 불가능했고 길르앗 사람들은 이것으로 에브라임 사람들을 구별해 냈습니다. 살아 남을 수 있다는 유일한 소망조차 끊어진 셈입니다. 이같이 하나님의 일과 타인에 대한 불평은 매우 위험한 것입니다.
3). 죽임을 당했습니다. 에브라임 사람들의 질투는 6절에서 매듭지어 집니다. ‘씹볼렛’이라 하면 길르앗 사람이 곧 그를 잡아서 요단 나루턱에서 죽였고 그 죽은 자는 사만 이 천명이나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절대적인 주권을 보여줍니다. 즉, 하나님의 하신 일에 대한 불평과 질투는 죽음만을 부를 뿐이라는 교훈을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결론 불평이나 원망을 좋아하면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타인에게도 유익이 안되지만 본인에게도 유익이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불평은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성도는 교회와 가정의 모든 일에 행하시는 하나님의 방법과 계획에 대해 순종하는 자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768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