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셨습니다 (창45:1-15)
본문
인간이 이해하기 힘든 것 중에 하나가 하나님의 섭리이다. 그것은 하늘이 땅보다 높음같이 하나님의 생각이 우리 생각 보다 높기 때문이다 (사 55:8,9 ). 신앙이 깊은 자 일수록 하나님의 섭리를 받아 드리고 이해 하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지 못할때 원망과 불평을 많이 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깨달은 자는 감사와 찬송을 할 뿐입니다. 요셉은 야곱의 11째 아들로 태어났다 야곱에겐 네 아내가 있었습니다. 요셉은 야곱이 가장 사랑한 아내 라헬의 몸에서 태어난 아들입니다. 아버지가 요셉만 사랑하는것을 보고 형들이 시기 질투가 나서 동생을 죽이려다가 은돈 20량에 상인에게 인신매매를 하였던 사람입니다.(노예로 팔았다 ) 13년후에 노예로 팔린 요셉이 애급나라의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온 중동 지방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흉년 2 년째에 자기를 판 형들과 총리 관저에서 만났습니다. 형들은 얼마나 놀랐습니까 요셉은 형들을 위로하고 격려합니다.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섭리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뜻 이라고 하였습니다. 요셉은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낙심하지 않고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고 인내하며 열심을 다하여 살았던 결과 30세에 외국에서 국무총리가 되었습니다. 그는 고난 가운데서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근대에 들어서의 노예의 삶이 그러했다면, 수천 년 전 노예 생활은 더욱 비참하고 비극적이었으며 절망적이었을 것이었다. 자기 잘못 때문에 그렇게 되었고 나라가 망해서 그렇게 되었다 해도 억울하고 통탄할 노릇인데, 형제들의 시기의 대상이 되어 한 피 나눈 형제들에 의해서 그러한 노예로 전락되었다면 그 절망과 분노는 극에 이르렀을 것입니다. 복수의 칼을 갈아 본다고 할지라도 도무지 다시 만날 기약도 할 수 없는 짐승과 다름 없는 노예의 신세였기에 그 원통함을 이루 말로 다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믿음을 가지고 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살아 계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섬겼던 아버지와 할아버지와 증조 할아버지를 놀랍도록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결코 자신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요셉은 가지고 있었습니다.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놀라운 역사하심을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요셉은 환경을 바라보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환경 너머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환경을 바라보는 사람은 절망도 하고 좌절도 하지만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결코 좌절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내 영혼아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시 42)”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그의 기다림은 실로 길었고 그 기다림의 시간들은 참혹했지만, 그는 믿음이 흔들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강하게 믿었기 때문에 노예 생활에서도, 그리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도 그의 믿음이 흔들이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앞서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이제 막강한 권력을 가지게 되었고 꿈에도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이 그에게 이루어졌을 때 그의 신앙은 더욱 깊어 갔고, 아버지를 통해서 들었던 하나님께서 이루실 일들을 그는 기대하며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실지를 묵상 가운데 찾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최고의 강대국이었던 애굽 제국에 최고의 권력자인 왕이 있었지만, 실질적인 권력은 왕이 스스로 요셉에게 다 일임해 주었기 때문에 그의 권력은 하늘을 찌를 듯이 막강했습니다. 그러한 때에 어느날 그의 눈에 초라하게 보이는 10명의 외국인들이 눈이 띄었습니다. 그들의 복장을 보면서 한눈에 팔레스틴에서 온 사람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그의 생을 그토록 비참하게 만들었던 그 장본인들이 그의 눈 앞에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원수를 갚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었습니다. 그들을 혼내 주거나 그들을 죽이는 것도 그에게는 너무나 쉬운 있이었습니다. 용서하기는 어려웠어도 그들에게 그가 원하는 방법으로 원수를 갚는 것은 너무도 쉬운 일이었습니다. 나의 인생을 송두리째 짓밟았던 사람들, 그들 때문에 울어야 했던 날들이 얼마였으며 그리움과 외로움에 몸을 떨어야 했던 날은 얼마나 길었습니까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앞설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악을 선으로 바꾸시고 그의 생의 환란을 사용하셔서 오늘의 축복으로 바꾸어 주셨는데, 어찌 환란의 제공자를 원망할 수 있겠습니까 이 사건의 배후에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셨는데 어찌 그 하나님을 앞설 수 있다는 말입니까 요셉은 이러한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원수 갚는 일은 생각도 하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속에서 분노와 미움이 움터 오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에 사로잡힌 것이 아니었고, 마음 다른 한편에서 솟구쳐 오는 믿음의 소리에 마음을 쏟을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마음을 지배하는 것은 믿음의 소리었습니다. 그 한 많은 세월을 보낸 것은 못된 형들의 시기 때문이 아니고, 오늘을 있게 하시기 위해서 나를 연단시키신 하나님의 섭리로 된 것이었음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형들에게 그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믿었던 사람이었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었던 사람이었기에, 확신 있게 그리 말할 수 있었습니다. 보복하고 싶은 마음까지는 아니라도 어찌 미운 생각이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앞서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받아드리는 자는 어떻게 생활하나
1 ) 모든 자를 사랑할 수가 있습니다. (:5 ) 요셉은 자기의 형들에 의하여 팔려 왔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이리로 보낸 분은 형들이 아니고 하나님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그는 형님들을 원망하지 않았다 신세 한탄하지 않았습니다. 예 ) 이산가족 찾을 때 형제끼리 부모 자식끼리 만나 모두가 한결 같이 하는 말들:"왜 나를 버렸어요 이제 찾아왔어요 내가 그동안 얼마나울었는지 알아요" . 그동안 고생스러운 인생살이를 생각하면서 원망하는 말일것입니다. 요셉은 완전히 계획적으로 자기를 죽일려다가 노예로 돈주고 판 형들을 그는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두려워 떠는 형들을 위로 하였습니다. 예 )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고달프게 살아가고 있는 것은 남편 때문입니까가 부모 때문닙니까 자식 때문입니까 대통령 때문입니까 잘되면 괜찮지만 못되면 서로 원망하고 불평하기가 쉽습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같이 말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는 자는 사람들에 대하여 불평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 드리며 원수 까지라도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르면서 오히려 어려운 현실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가 됩시다. 요셉은 형님들께 자기의 정체를 밝혔습니다. 그는 형제들과 식구들의 생계를 책임졌습니다. 아직도 기근은 앞으로 5년이나 더 남아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책임 진다는것은 바로 사랑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의 말씀(북한 동포에게 약속했던 대로 경수로 지원과 식량원조는 어렵지만 이행한다.) 예 )모세: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함:무거운 책임을 지고감 예 )예수님:우리 인생을 사랑하셔서 십자가를 지심 (나는 선한 목자라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
2 ) 범사가 유익함을 믿는다 (:7 ) 사실 요셉이 이곳에 팔려온 것은 1) 7년의 대 흉년때 가족과 민족의 육의 생명이 구원을 위함이며 2) 후손들을 통하여 오실 메시야의 영적인 구원을 이루기 위함이며 3) 애굽의 총리로 삼으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간혹 우리의 실수가 선한 결과를 가져다 주며 고통 속에서 파멸 할 수 밖에 없을 때에도 하나님의 기이한 축복의 손길이 우리에게 뻐치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특이한 상황에서 역사 하심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와같이 하나님의 섭리속에서 움직이며 살아가고 있다 마 10:29 참새 한 마리도, 우리의 머리카락 하나라도 하나님의 허락없이는 떨어지지 아니합니다. 인간의 힘으로 인간의 수단으로써 무엇이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 ) 예수님의 고난을 보십시오. 우리는 이해하지 못하지만 온 인류를 구원하게 하신것입니다. 십자가의 진리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고전1:18-24) 예 ) 베토벤 , 에디슨:불구의 몸 이었습니다. 그 고난을 통하여 음악에 전념하고, 발명에 전념 하였습니다.
예 )페니 크로스비:소경이었다:오로지 영원한 세계를 보면서 찬송을 지었다 (찬송가를 수천 곡을 작사한 여성임 )나와 세상은 간곳이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예 ) 바울 사도:육체의 가시가(질병) 있었다:하나님의 섭리를 받아드리며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하였다 (고후12:9)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곡 그 뜻데로 부름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8:28) 3 ) 인간의 책임을 다합니다. (창39:4)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하셨다고 해서 인간은 될데로 데라고 아무렇게나 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으니까 인간으로써의 최선을 다 하여야 합니다. 요셉은 비록 노예였으나 남의 집에서 최선을 다하여 가정 총무가 되었습니다. 요셉은 감옥에서도 최선을 다하여 감옥에서 사무장이 되었습니다. 요셉은 남의 나라에서 총리가 되었으나 최선을 다하여 어려운 시기에 총리로써 사명을 다했습니다.(국민들을 살렸습니다.) 인간세계에 일어나고 있는 모든것을, 선악간에 모든것을 하나님은 선용 하셔서 경영하고 계심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의 축복과 저주는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의지의 선용과 악용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는 자는 어떠한 환경 가운데서도 낙심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고최선을 다하는 자가 됩니다.
예 ) 자동차가 고장난 것을 알면서도 수리않고 달린다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인간의 책임 한계가 분명히 있습니다.
예 ) 가롯 유다의 죄, 유대인의 반역 , 빌라도의 엉터리 재판을 하나님은 오히려 선용하셔서 우리의 구속의 방편으로 삼아 주신 것입니다. 가롯 유다와 유대인들과 빌라도 총독이 우리들의 구원의 공로자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롯유다를 가르켜서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좋을 뻔한 자라고 하셨습니다.(마 26:24) 인간들의 책임의 한계를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결론 ) 하나님의 섭리를 겸손 한 마음으로 받아드린 자는 요셉과 같이 생활할 수가 있다. 요셉은 인간적인 면에서 (노예, 범죄자 위치에서 ) 애굽 나라의 국무총리가 될 자는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높혀 주시니 국무 총리가 되어서 자신과 가정과 나라를 구하는 위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받아드리는 자는
1) 모든 자를 원망하지 않고 사랑하는 자가 된다
2) 범사가 선하게 유익하게 될 것을 굳게 믿는다
3)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다한다 하나님의 모든 섭리를 겸손한 마음으로 받아 드려 하나님의 높히심을 받으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기원 합니다 . 어떤 고통도 기쁨도 하나님의 섬리로 귀결하는 신앙을 소유하는 것은 시금한 우리들의 과제이다. 요셉의 고백은 언제나 조용하면서도 질서있게 하나님의 섭리를 표시한다.
그러므로 요셉은 환경을 바라보는 사람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환경 너머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았던 사람이었습니다. 환경을 바라보는 사람은 절망도 하고 좌절도 하지만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결코 좌절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내 영혼아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시 42)”고 권고하고 있습니다.
그의 기다림은 실로 길었고 그 기다림의 시간들은 참혹했지만, 그는 믿음이 흔들이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강하게 믿었기 때문에 노예 생활에서도, 그리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혀 있을 때에도 그의 믿음이 흔들이지 아니하였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앞서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이제 막강한 권력을 가지게 되었고 꿈에도 상상할 수 없는 엄청난 일이 그에게 이루어졌을 때 그의 신앙은 더욱 깊어 갔고, 아버지를 통해서 들었던 하나님께서 이루실 일들을 그는 기대하며 하나님께서 어떻게 인도하실지를 묵상 가운데 찾고 있었습니다. 당시의 최고의 강대국이었던 애굽 제국에 최고의 권력자인 왕이 있었지만, 실질적인 권력은 왕이 스스로 요셉에게 다 일임해 주었기 때문에 그의 권력은 하늘을 찌를 듯이 막강했습니다. 그러한 때에 어느날 그의 눈에 초라하게 보이는 10명의 외국인들이 눈이 띄었습니다. 그들의 복장을 보면서 한눈에 팔레스틴에서 온 사람인 것을 확인할 수 있었는데, 그의 생을 그토록 비참하게 만들었던 그 장본인들이 그의 눈 앞에 서 있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에게 원수를 갚는 것은 너무나 쉬운 일이었습니다. 그들을 혼내 주거나 그들을 죽이는 것도 그에게는 너무나 쉬운 있이었습니다. 용서하기는 어려웠어도 그들에게 그가 원하는 방법으로 원수를 갚는 것은 너무도 쉬운 일이었습니다. 나의 인생을 송두리째 짓밟았던 사람들, 그들 때문에 울어야 했던 날들이 얼마였으며 그리움과 외로움에 몸을 떨어야 했던 날은 얼마나 길었습니까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앞설 수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악을 선으로 바꾸시고 그의 생의 환란을 사용하셔서 오늘의 축복으로 바꾸어 주셨는데, 어찌 환란의 제공자를 원망할 수 있겠습니까 이 사건의 배후에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셨는데 어찌 그 하나님을 앞설 수 있다는 말입니까 요셉은 이러한 믿음의 확신을 가지고 있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원수 갚는 일은 생각도 하지 않은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속에서 분노와 미움이 움터 오지 않은 것은 아니었지만 그것에 사로잡힌 것이 아니었고, 마음 다른 한편에서 솟구쳐 오는 믿음의 소리에 마음을 쏟을 수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그의 마음을 지배하는 것은 믿음의 소리었습니다. 그 한 많은 세월을 보낸 것은 못된 형들의 시기 때문이 아니고, 오늘을 있게 하시기 위해서 나를 연단시키신 하나님의 섭리로 된 것이었음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그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형들에게 그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셨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섭리하심을 믿었던 사람이었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믿었던 사람이었기에, 확신 있게 그리 말할 수 있었습니다. 보복하고 싶은 마음까지는 아니라도 어찌 미운 생각이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앞서지 않는 사람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받아드리는 자는 어떻게 생활하나
1 ) 모든 자를 사랑할 수가 있습니다. (:5 ) 요셉은 자기의 형들에 의하여 팔려 왔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이리로 보낸 분은 형들이 아니고 하나님이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니 그는 형님들을 원망하지 않았다 신세 한탄하지 않았습니다. 예 ) 이산가족 찾을 때 형제끼리 부모 자식끼리 만나 모두가 한결 같이 하는 말들:"왜 나를 버렸어요 이제 찾아왔어요 내가 그동안 얼마나울었는지 알아요" . 그동안 고생스러운 인생살이를 생각하면서 원망하는 말일것입니다. 요셉은 완전히 계획적으로 자기를 죽일려다가 노예로 돈주고 판 형들을 그는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두려워 떠는 형들을 위로 하였습니다. 예 )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렇게 고달프게 살아가고 있는 것은 남편 때문입니까가 부모 때문닙니까 자식 때문입니까 대통령 때문입니까 잘되면 괜찮지만 못되면 서로 원망하고 불평하기가 쉽습니다. 마치 이스라엘 백성들같이 말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이해하는 자는 사람들에 대하여 불평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섭리로 받아 드리며 원수 까지라도 사랑하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르면서 오히려 어려운 현실을 허락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자가 됩시다. 요셉은 형님들께 자기의 정체를 밝혔습니다. 그는 형제들과 식구들의 생계를 책임졌습니다. 아직도 기근은 앞으로 5년이나 더 남아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사랑입니다. 책임 진다는것은 바로 사랑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김대중 대통령 당선자의 말씀(북한 동포에게 약속했던 대로 경수로 지원과 식량원조는 어렵지만 이행한다.) 예 )모세: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함:무거운 책임을 지고감 예 )예수님:우리 인생을 사랑하셔서 십자가를 지심 (나는 선한 목자라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노라 )
2 ) 범사가 유익함을 믿는다 (:7 ) 사실 요셉이 이곳에 팔려온 것은 1) 7년의 대 흉년때 가족과 민족의 육의 생명이 구원을 위함이며 2) 후손들을 통하여 오실 메시야의 영적인 구원을 이루기 위함이며 3) 애굽의 총리로 삼으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간혹 우리의 실수가 선한 결과를 가져다 주며 고통 속에서 파멸 할 수 밖에 없을 때에도 하나님의 기이한 축복의 손길이 우리에게 뻐치는 것을 체험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섭리가 특이한 상황에서 역사 하심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와같이 하나님의 섭리속에서 움직이며 살아가고 있다 마 10:29 참새 한 마리도, 우리의 머리카락 하나라도 하나님의 허락없이는 떨어지지 아니합니다. 인간의 힘으로 인간의 수단으로써 무엇이되는 것이 아닙니다.
예 ) 예수님의 고난을 보십시오. 우리는 이해하지 못하지만 온 인류를 구원하게 하신것입니다. 십자가의 진리는 하나님의 지혜입니다.(고전1:18-24) 예 ) 베토벤 , 에디슨:불구의 몸 이었습니다. 그 고난을 통하여 음악에 전념하고, 발명에 전념 하였습니다.
예 )페니 크로스비:소경이었다:오로지 영원한 세계를 보면서 찬송을 지었다 (찬송가를 수천 곡을 작사한 여성임 )나와 세상은 간곳이 없고 구속한 주만 보이도다.
예 ) 바울 사도:육체의 가시가(질병) 있었다:하나님의 섭리를 받아드리며 오히려 하나님께 감사하였다 (고후12:9)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곡 그 뜻데로 부름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8:28) 3 ) 인간의 책임을 다합니다. (창39:4)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하셨다고 해서 인간은 될데로 데라고 아무렇게나 사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의 뜻이 있으니까 인간으로써의 최선을 다 하여야 합니다. 요셉은 비록 노예였으나 남의 집에서 최선을 다하여 가정 총무가 되었습니다. 요셉은 감옥에서도 최선을 다하여 감옥에서 사무장이 되었습니다. 요셉은 남의 나라에서 총리가 되었으나 최선을 다하여 어려운 시기에 총리로써 사명을 다했습니다.(국민들을 살렸습니다.) 인간세계에 일어나고 있는 모든것을, 선악간에 모든것을 하나님은 선용 하셔서 경영하고 계심을 알아야 합니다. 인간의 축복과 저주는 인간에게 주어진 자유의지의 선용과 악용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는 자는 어떠한 환경 가운데서도 낙심하지 않고 절망하지 않고최선을 다하는 자가 됩니다.
예 ) 자동차가 고장난 것을 알면서도 수리않고 달린다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섭리와 인간의 책임 한계가 분명히 있습니다.
예 ) 가롯 유다의 죄, 유대인의 반역 , 빌라도의 엉터리 재판을 하나님은 오히려 선용하셔서 우리의 구속의 방편으로 삼아 주신 것입니다. 가롯 유다와 유대인들과 빌라도 총독이 우리들의 구원의 공로자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가롯유다를 가르켜서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좋을 뻔한 자라고 하셨습니다.(마 26:24) 인간들의 책임의 한계를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이다
결론 ) 하나님의 섭리를 겸손 한 마음으로 받아드린 자는 요셉과 같이 생활할 수가 있다. 요셉은 인간적인 면에서 (노예, 범죄자 위치에서 ) 애굽 나라의 국무총리가 될 자는 아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높혀 주시니 국무 총리가 되어서 자신과 가정과 나라를 구하는 위대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받아드리는 자는
1) 모든 자를 원망하지 않고 사랑하는 자가 된다
2) 범사가 선하게 유익하게 될 것을 굳게 믿는다
3) 자신에게 주어진 책임과 의무를 다한다 하나님의 모든 섭리를 겸손한 마음으로 받아 드려 하나님의 높히심을 받으시는 성도님들이 되시길 기원 합니다 . 어떤 고통도 기쁨도 하나님의 섬리로 귀결하는 신앙을 소유하는 것은 시금한 우리들의 과제이다. 요셉의 고백은 언제나 조용하면서도 질서있게 하나님의 섭리를 표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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