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셉의 형제용서 (창45:1-8)
본문
요셉이 그 형들에게 이르되 내게로 가까이 오소서 그들이 가까이 가니 나는 당신들의 아우 요셉이니 당신들이 애굽에 판자라 당신들이 나를 이 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창세기 45:4,5) 1995년을 넘겨 보내면서도 우리들 마음에 찜찜한 것은 외국 유학을 보낼 정도로 가정이 부유할 뿐만 아니라 자식 사랑이 극진한 부모가 자기가 낳아서 키운 유학생과 대학교 교수인 아들에 의해서 죽임을 당한 사건이 아직도 마음에 가시지 않은 채로 이 해를 넘기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세상이 이렇게도 악하여 졌을까 하는 허탈감에 마음 둘 바를 모르고 있습니다. 하물며 형제간의 의리는 어떻게 기대하며, 부부간의 이혼은 어떻게 막으라는 말입니까 이러 저러한 사건들이 줄을 잇는 시대에 요셉의 형제를 용서하는 자세는 우리에게 큰 빛을 던저 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을 통해서 거울삼아야 할 것입니다.
1. 요셉은 믿음으로 형제를 용서했습니다. 창세기 45:5에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8절에는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 요셉은 형들에 의해서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리어졌고 이스마엘 사람들에 의해서 다시 애굽왕 바로의 시위대장 보디발에게 노예로 팔리었습니다. 그 집에서 가정 총무까지 되면서 보디발의 신임이 두터워 졌을 때 보디발의 아내의 중상 모략에 의해서 왕의 죄수들이 갇히는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두려움과 분함과 억울함이 그를 짓눌렀을 것이나, 요셉은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이라 믿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의 지식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고, 인간의 힘으로는 되돌릴 수 없는 운명의 구물속에 갇혀 살고 있습니다. 부모와 형제의 관계, 민족과 국가와의 관계, 시대와 입지의 조건들 전부가 인간의 힘으로는 어째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누구도 그 운명의 틀을 바꿔 놓거나 되돌려 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계를 어떤 철학자는 역사의 과정을 형성하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의 구물망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운명의 구물망을 대하는 태도는 완전히 두 가지 태도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불신앙적인 태도로서 원망과 좌절과 반항으로 나타납니다. 가인의 자세가 그런 것입니다. 또 하나는 신앙적인 태도로서 하나님의 섭리로 보며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찾아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삶의 자세인 것입니다. 욥의 자세가 그렇고 요셉의 자세가 그런 것입니다. 자기의 형제들은 자기를 애굽에 팔아 넘겼지만, 그것이 인연이 되어 자신은 애굽의 총리가 되었고, 그 덕으로 이스라엘 민족은 이 땅에서 7년의 대 흉년을 극복하고 살아 남을 수 있게 된 것은 인간의 지혜로는 판단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인 것을 믿었기 때문에 요셉은 자기를 애굽으로 팔아 넘긴 형들의 태도나, 자기를 모략하여 죄수가 아닌 죄수 생활을 하게 한 보디발과 그의 아내에 대해서 너그럽게 용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이 없이는 진정한 의미에서 용서란 불가능한 것입니다. 형제를 용서하고자 하는 모든 성도들은 이것을 본받아야 합니다. 할렐루야.
2. 요셉은 성화된 성품으로 형제를 용서했습니다. 창세기 45:10,11 “아버지의 아들들과 아버지의 손자들과 아버지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고센 땅에 있어서 나와 가깝게 하소서 흉년이 아직 다섯 해가 있으니 내가 거기서 아버지를 봉양하리이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가속과 아버지의 모든 소속이 결핍할까 하나이다 하더라 하소서” 이 말속에는 요셉의 성품이 얼마나 성화 되었느냐 하는 것을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4:2에서 성화된 성도들의 성품을 다섯 가지 모습으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서로 용납하고 화평의 줄로 성령님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 속에 깊이 살펴보면 성화된 성품의 다섯가지 용어가 들어 있습니다.
첫째는 '모든 겸손'입니다. 상대방을 나의 운명과 띠어 놓고 생각하지 못하는 마음 자세를 말합니다. “당신이 없으면 내가 못산다”는 자세인 것입니다. 이런 마음 자세로 서로 바라 볼 때 상대방을 존귀하게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온유'입니다. 상대방에게 필요하고 합당한 자세로 대하는 마음 자세를 말합니다. 요셉이 나는 우리 민족에게 중요한 존재입니다 하는 자세가 온유한 자세입니다.
셋째 '오래 참음'입니다. 형들이 요셉에게 돌아와 함께 거하게 될 때까지 참고 기다린 것입니다.
넷째 '서로 용납하고'했습니다. 요셉은 형들이 부족과 잘 못을 다 용납했습니다. 다섯째 '화평의 매는 줄'입니다. 성화된 사람에겐 서로 대립하거나 불화해야 될 이유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성화된 성품 즉 거룩한 성품은 역시 예수님의 성품입니다. 영광의 보좌를 떠나 종의 형체를 입어 세상에 오신 겸손과 인류를 위해 당신의 생명을 주신 온유하심과 죄인들이 회개하여 돌아올 때를 기다리시는 오래 참음과 모든 약한 자와 병든 자와 죄인과 원수된 자들까지 용납하심과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이 주님의 무릅앞에 굴복하여 하나 되게 하신 것이 주님의 성화된 성품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성품이 성화되지 못하면 진정한 용서가 어려운 것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이 시간에도 우리 안에서 우리의 성품이 성화되어 요셉과 같이, 예수님과 같이 거룩한 성품을 회복시켜 주시려고 역사 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말씀은 우리의 평생의 과제로 주신 말씀입니다. 천국 건설의 과정에는 반듯이 용서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용서가 없이는 천국이 임하지 않습니다.
3. 요셉은 책임자적인 자세로 용서했습니다. 창세기 45:11 “흉년이 아직 다섯 해가 있으니 내가 거기서 아버지를 봉양하리이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가속과 아버지의 모든 소속이 결핍할까 하나이다 하더라 하소서” 그 후 야곱을 따라 애굽으로 내려온 가족의 수는 70명이나 되는데 그 가족을 전부 책임지고 봉양하겠다는 책임자적 자세를 피력하는 말입니다. 요셉이 이러한 책임지는 마음의 자세가 없었다면 형들을 용서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용서에 따른 후처리에는 요셉이 저야 할 책임이 컸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사에 있어서 애굽에서 지낸 430년간은 결단코 지워 버릴 수 없는 기간이었습니다. 가족으로서는 대 가족인 70명이지만 국민으로서는 아직 수에 칠 정도도 못된 적은 인원이지만 애굽에서의 430년 동안에 장정만 60만명으로서 약 200만에 가까운 국민으로 성장하는데 중요한 장소와 기간이 애굽에 있어서의 고센 땅과 430년의 기간이었습니다. 그 기간을 책임졌던 것이 요셉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요셉은 이스라엘 민족사에 없어서는 안될 역사적 인물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역사적 인물은 그 시대를 책임지는 마음이 없이는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대의 모든 어려움을 용납하고 용서하는 너그러운 자세가 없이는 역사적 인물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정신은 골리앗을 대하는 다윗의 정신이었고, 인류의 죄를 담당하여 십자가의 길을 자원하여 가신 예수님의 자세인 것입니다. 용서하는 길에만이 삶이 있고, 역사의 발전이 있는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여러분, 요셉은 하나님의 사람들의 삶을 가장 잘 보여준 신앙의 조상입니다. 어려운 생애를 살면서도 낙심하거나 두려워함이 없었고, 어떠한 어려움에 직면해도 언제나 신앙과 인내로서 그 어려움을 극복하며 끝내는 애굽의 총리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길에는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 요셉의 생애 속에 자신을 애굽에 팔아 넘긴 형제들을 용서하고 용납한 사실은 결코 과소 평가하거나 묵과하여 넘겨 버릴 수 없는 위대한 역사의 순간들입니다. 그런 점에서 창세기 45장은 요셉의 신앙과 성품과 자세에 있어서 최고봉을 이룬 장면을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생애에 있어서 최고봉의 순간은 어떻게 장식하렵니까 그리고 무엇으로.
1. 요셉은 믿음으로 형제를 용서했습니다. 창세기 45:5에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으므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 앞서 보내셨나이다.” 8절에는 “그런즉 나를 이리로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 하나님이 나로 바로의 아비를 삼으시며 그 온 집의 주를 삼으시며 애굽 온 땅의 치리자를 삼으셨나이다.” 요셉은 형들에 의해서 이스마엘 사람들에게 팔리어졌고 이스마엘 사람들에 의해서 다시 애굽왕 바로의 시위대장 보디발에게 노예로 팔리었습니다. 그 집에서 가정 총무까지 되면서 보디발의 신임이 두터워 졌을 때 보디발의 아내의 중상 모략에 의해서 왕의 죄수들이 갇히는 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러한 과정에서 두려움과 분함과 억울함이 그를 짓눌렀을 것이나, 요셉은 그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이라 믿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인간의 지식으로서는 이해할 수 없고, 인간의 힘으로는 되돌릴 수 없는 운명의 구물속에 갇혀 살고 있습니다. 부모와 형제의 관계, 민족과 국가와의 관계, 시대와 입지의 조건들 전부가 인간의 힘으로는 어째 볼 수 없는 것입니다. 누구도 그 운명의 틀을 바꿔 놓거나 되돌려 놓을 수 없는 것입니다. 이러한 관계를 어떤 철학자는 역사의 과정을 형성하는 피할 수 없는 운명의 구물망으로 보았던 것입니다. 이러한 운명의 구물망을 대하는 태도는 완전히 두 가지 태도로 나타납니다. 하나는 불신앙적인 태도로서 원망과 좌절과 반항으로 나타납니다. 가인의 자세가 그런 것입니다. 또 하나는 신앙적인 태도로서 하나님의 섭리로 보며 긍정적이고 적극적으로 자신을 향한 하나님의 뜻을 찾아 삶의 의미를 추구하는 삶의 자세인 것입니다. 욥의 자세가 그렇고 요셉의 자세가 그런 것입니다. 자기의 형제들은 자기를 애굽에 팔아 넘겼지만, 그것이 인연이 되어 자신은 애굽의 총리가 되었고, 그 덕으로 이스라엘 민족은 이 땅에서 7년의 대 흉년을 극복하고 살아 남을 수 있게 된 것은 인간의 지혜로는 판단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인 것을 믿었기 때문에 요셉은 자기를 애굽으로 팔아 넘긴 형들의 태도나, 자기를 모략하여 죄수가 아닌 죄수 생활을 하게 한 보디발과 그의 아내에 대해서 너그럽게 용서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믿음이 없이는 진정한 의미에서 용서란 불가능한 것입니다. 형제를 용서하고자 하는 모든 성도들은 이것을 본받아야 합니다. 할렐루야.
2. 요셉은 성화된 성품으로 형제를 용서했습니다. 창세기 45:10,11 “아버지의 아들들과 아버지의 손자들과 아버지의 양과 소와 모든 소유가 고센 땅에 있어서 나와 가깝게 하소서 흉년이 아직 다섯 해가 있으니 내가 거기서 아버지를 봉양하리이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가속과 아버지의 모든 소속이 결핍할까 하나이다 하더라 하소서” 이 말속에는 요셉의 성품이 얼마나 성화 되었느냐 하는 것을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4:2에서 성화된 성도들의 성품을 다섯 가지 모습으로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서로 용납하고 화평의 줄로 성령님이 하나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 속에 깊이 살펴보면 성화된 성품의 다섯가지 용어가 들어 있습니다.
첫째는 '모든 겸손'입니다. 상대방을 나의 운명과 띠어 놓고 생각하지 못하는 마음 자세를 말합니다. “당신이 없으면 내가 못산다”는 자세인 것입니다. 이런 마음 자세로 서로 바라 볼 때 상대방을 존귀하게 여기게 되는 것입니다.
둘째는 '온유'입니다. 상대방에게 필요하고 합당한 자세로 대하는 마음 자세를 말합니다. 요셉이 나는 우리 민족에게 중요한 존재입니다 하는 자세가 온유한 자세입니다.
셋째 '오래 참음'입니다. 형들이 요셉에게 돌아와 함께 거하게 될 때까지 참고 기다린 것입니다.
넷째 '서로 용납하고'했습니다. 요셉은 형들이 부족과 잘 못을 다 용납했습니다. 다섯째 '화평의 매는 줄'입니다. 성화된 사람에겐 서로 대립하거나 불화해야 될 이유가 있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성화된 성품 즉 거룩한 성품은 역시 예수님의 성품입니다. 영광의 보좌를 떠나 종의 형체를 입어 세상에 오신 겸손과 인류를 위해 당신의 생명을 주신 온유하심과 죄인들이 회개하여 돌아올 때를 기다리시는 오래 참음과 모든 약한 자와 병든 자와 죄인과 원수된 자들까지 용납하심과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이 주님의 무릅앞에 굴복하여 하나 되게 하신 것이 주님의 성화된 성품을 나타내시는 것입니다. 성품이 성화되지 못하면 진정한 용서가 어려운 것입니다. 성령님께서는 이 시간에도 우리 안에서 우리의 성품이 성화되어 요셉과 같이, 예수님과 같이 거룩한 성품을 회복시켜 주시려고 역사 하시고 계신 것입니다. “내가 거룩하니 너희도 거룩하라”는 말씀은 우리의 평생의 과제로 주신 말씀입니다. 천국 건설의 과정에는 반듯이 용서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입니다. 용서가 없이는 천국이 임하지 않습니다.
3. 요셉은 책임자적인 자세로 용서했습니다. 창세기 45:11 “흉년이 아직 다섯 해가 있으니 내가 거기서 아버지를 봉양하리이다 아버지와 아버지의 가속과 아버지의 모든 소속이 결핍할까 하나이다 하더라 하소서” 그 후 야곱을 따라 애굽으로 내려온 가족의 수는 70명이나 되는데 그 가족을 전부 책임지고 봉양하겠다는 책임자적 자세를 피력하는 말입니다. 요셉이 이러한 책임지는 마음의 자세가 없었다면 형들을 용서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용서에 따른 후처리에는 요셉이 저야 할 책임이 컸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사에 있어서 애굽에서 지낸 430년간은 결단코 지워 버릴 수 없는 기간이었습니다. 가족으로서는 대 가족인 70명이지만 국민으로서는 아직 수에 칠 정도도 못된 적은 인원이지만 애굽에서의 430년 동안에 장정만 60만명으로서 약 200만에 가까운 국민으로 성장하는데 중요한 장소와 기간이 애굽에 있어서의 고센 땅과 430년의 기간이었습니다. 그 기간을 책임졌던 것이 요셉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요셉은 이스라엘 민족사에 없어서는 안될 역사적 인물인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역사적 인물은 그 시대를 책임지는 마음이 없이는 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시대의 모든 어려움을 용납하고 용서하는 너그러운 자세가 없이는 역사적 인물이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이 정신은 골리앗을 대하는 다윗의 정신이었고, 인류의 죄를 담당하여 십자가의 길을 자원하여 가신 예수님의 자세인 것입니다. 용서하는 길에만이 삶이 있고, 역사의 발전이 있는 것입니다.
결론입니다. 여러분, 요셉은 하나님의 사람들의 삶을 가장 잘 보여준 신앙의 조상입니다. 어려운 생애를 살면서도 낙심하거나 두려워함이 없었고, 어떠한 어려움에 직면해도 언제나 신앙과 인내로서 그 어려움을 극복하며 끝내는 애굽의 총리의 자리에까지 오르게 되었습니다. 물론 그 길에는 측량할 수 없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런 요셉의 생애 속에 자신을 애굽에 팔아 넘긴 형제들을 용서하고 용납한 사실은 결코 과소 평가하거나 묵과하여 넘겨 버릴 수 없는 위대한 역사의 순간들입니다. 그런 점에서 창세기 45장은 요셉의 신앙과 성품과 자세에 있어서 최고봉을 이룬 장면을 소개하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생애에 있어서 최고봉의 순간은 어떻게 장식하렵니까 그리고 무엇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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