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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와 기드온의 칼 (삿7:20-23)

본문

처음 미국에 갔을 때 사람들이 내 이름을 물었다. 한국 이름이 서툴러서 아 무도 내 이름을 기억하는 이가 없었다. 그래서 영어 이름을 잠시 사용한 적이 있 었다. 무엇을 내 이름을 할 것인가 성경의 다윗, 바울, 요한, 베드로의 영어식 발음이었던 데비드나 폴, 죤, 피터는 너무 흔하다는 느낌이었다. 생각 끝에 그래 도 내 이름 비슷한 기짜 돌림으로 성경에서 찾아낸 것이 바로 기드온이었다. 그래서 한동안 기디언 킴은 유명 인사가 되었다. 영어는 너무도 못했지잠 텍 사스에 동양인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나중에는 학교에 가도 교수들이 "기디언 기디언" 하고 부르게 되었다. 그러면서 차츰 이 이름이 얼마나 중요한지도 알게 되었다. 기드온은 누구든지 하나님에게 선택될 수 있고 그래서 지도자가 될 수 있을뿐 아니라, 그것도 뛰어난 지도자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모형이었다. 기드온은 평범한 사람으로 최고의 경지에 올라갔던 사람중 하나였다. 하나님 은 자주 그런 일을 하신다. 기드온은 농부였고 힘 없는 므낫세 지파 중에서도 제 일 보잘 것 없는 가문에서 그것도 말째 아들로 태어났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신 의 섭리에 의해서 그를 선택하고 그에게 사명을 주고 그 일을 위해서 그를 훈련 시킨다. 그의 사명은 지배자인 미디안 군을 대항해 나라를 해방시키는 일이었다. 그가 나라를 구원하는 일은 순전히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된다. 어느 누가 자 기 나라를 위해서 일어나지 않겠는가 하지만 그의 출발점은 하나님의 말씀이었다. 그가 미디안 사람들 몰래 먹을 것을 준비하느라 포도주 틀 속에 밀을 넣고 타작하고 있었다.(6:12) 그때 여호와의 사자가 그에게 말한다. "큰 용사여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시도다." 바로 이 말씀이 그의 행동의 출발점이었던 것이다. 사람들은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서 무엇이라고 말씀하시던간에 자신의 힘을 따라서 무슨 일을 하려고 한다. 모세도 처음에는 자신의 실력을 믿고 그것으로 자기 백성을 구원하려고 일어선다. 그 결과는 애굽 사람에 대한 살인이었고 그는 도망자가 되었을뿐이다.
40년 뒤에나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다. 그때 그는 하나님 께 반문한다. "내가 누구관대 적에게서 이스라엘 자손을 인도하여 내리이까" 이때 하나님은 그에게 새로운 정체를 주신다. 그가 누구라는 말은 하지도 않 은채 놀라운 말씀을 주신다. "내가 정녕 너와 함께 있으리라!"(출 3:12) 모세는 자신의 정체를 하나님의 말씀에서 보고 새롭게 일어난다. 그리하여 그는 하나님 이 함께 하는 사람이 된 것이다. 이것이 신자의 모범이다. 신자는 하나님이 자신 에게 하신 말씀을 따라 자신을 본다. 모세도 기드온도 똑같이 했던 것이다. 이제 미디안 사람들의 눈치나 보던 한 농부가 하나님의 부름과 말씀으로 새 로운 사람이 된다. 이것은 누구나 다 마찬가지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것 으로 새롭게 자신을 정의하면 되는 것이다. 기드온은 사람들을 모으고 300명의 정예군을 세 때로 나누어서 항아리 속에 나팔과 횃불을 집어넣고는 한 밤중에 적 진에 이르른다. 그리고는 항아리를 깨고 횃불을 들고 나팔을 불어제켰다. 생각해 보라 한 밤중에 횃불과 함께 나타난 300명의 나팔 소리를! 참으로 이 렇게 적은 숫자니까 적진 속에 들어갈 수 있었지만 300의 나팔은 수백만의 대군 을 움직이는 것 같았지 않겠는가! 수십만 대군이 졸지에 자다가 일어나서 자기 편끼리 싸워서 12만 이상이 죽어넘어진다. 그리하여 이 한 번 싸움에서 전군이 패하고 이스라엘 전역에서 의용군이 일어나 패주하는 미디안을 격멸시킨다.
그런데 촛점은 군대가 외친 말에 있었다. "여호와와 기드온의 칼이여!" 왜 "여호와의 칼이여"하지 않았던가 여기 사람의 영광도 하나님과 함께 포함이 되 어야만 했던가 또한 "여호와의 칼이여"하고 외친다고 해도 사실상 사람들의 행 동은 "기드온의 칼이여"하는 것이 대부분의 경우이다. 그러나 여기 성경에는 두 이름이 동시에 불리어진다.
그렇다면 왜 그러하며 그것이 주는 교훈은 무엇인가 누구나 평범하게 살고 싶지 않고 평범하게 일하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렇다 면 기드온처럼 하라. 그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을 일치시켰다. "너는 큰 용사라!" 그는 자신을 용사로 생각하였다. 그리고 거기에 맞추어 자신의 모습을 만들어나갔다. 하나님은 누구나 성경의 말씀을 가지고 자신을 만들어가는 사람들 에게 같은 일을 행하신다. 수천 수만의 신자들은 그렇게 하늘까지 자라갔다. 두 이름은 하나님과 기드온 둘이서 서로 파트너임을 보여준다. 하나님은 일 을 하실 때 혼자 않고 함께 하신다. 하나님 만큼이나 확실한 동업자는 없다. 절 대로 배반하지 않고 어려운 일은 혼자 도맡아 하며 불평도 없다. 너무도 확실하 고 너무도 진실한 동업자이다. 어떻게 하면 이 일이 일어나겠는가 하나님과 동 업자로 남아 있게 되는 것은 계약관계에 의하여 일어나게 된다. 차칫하면 사람들이 모세의 첫 번 실수를 반복한다. 자기가 스스로 자신을 바 라보고 위대하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그 결과는 혼자 일하는 셈이 된다. 그러면 보통 인간의 삶으로 그치고 만다. 계약은 반드시 말씀을 받아서 믿을 때 일어난다. 기드온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그대로 복종하기로 결정한다. 그리하여 하나님과 기드온은 거룩한 계약관계에 들어간다. 다른 성경 인물들도 그러했다. 그 계약은 말씀을 믿고 행동함으로 더욱 깊은 계약관계로 들어가며 계속 힘 을 발휘하게 되는 것이다. "네 죄 사함을 받았느니라.내가 네 속에 영원한 생 명과 능력을 넣어주었느니라.너는 하나님의 의를 받아 의인이 되었느니라.무엇이든지 내게 구하면 내가 주리라.나를 향하여 심지를 견고히 가지라.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내 뜻이다." 계약에는 서로가 하는 일의 구분도 보여준다. 둘이서 같은 일을 하는게 아니다. 둘의 일은 분명하게 구분이 된다.
하나님과 동업하는 이들은 그분의 일과 자 기 일을 구분해야 한다. "너는 네 일을 하라. 나는 내 일을 하리라." 사람들은 서로 일을 바꾸어서 한다. 일은 안하고 걱정만 한다. 마음이 캄캄하니 일도 힘이 않난다. 반대로 해야한다. 일은 내가 할 부분이요 걱정은 하나님이 할 부분이다. 그것뿐이 아니다. 하나님의 일과 자신의 일을 구분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또한 자신이 할 일과 남이 할 일도 나눌줄 알아야 한다. 기드온은 그 일을 아주 분 명하게 처리하였다. 자 이제 살펴보자. 기드온은 군대를 지휘하고 그들에게 비젼 을 보여주고 할 일을 주었다. 그리고 실제로 시범을 보여서 군대를 데리고 적진 속으로 들어가는 훈련까지 마치고 작전을 세워 사람들을 움직여 나갔다. 다음에 그의 군사들은 각자의 맡은 일을 처리하여 횃불을 높이고 고함을 지 르며 일제히 나팔을 불었다. 그리하여 최소의 숫자로 최대한 효과를 본 것이다. 각자는 비록 한 사람이 했지만 세 사람이 할 일을 해 낸 것이다. 이 300명은 다 른 군사 수만명의 몫을 해 낼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들은 모두가 정예군이었다. 이것도 모두 하나님의 지시를 따라 기드온이 지휘관으로 만들어 낸 작품이었다. 하나님은 무슨 일을 하셨는가 잘 방어된 성 안 적군의 마음을 움직인다. 두 려움이 임하게 한다. 전투가 벌어지자 같은 편끼리 서로 죽이게 한다. 생각해 보라. 300명이 모든 힘을 내봐야 얼마나 죽이겠는가 미디안 군의 전사자만 12만이 었다고 한다.(8:10) 한 사람이 가만히 서있는 사람 400명을 죽인 셈인데 이것이 과연 가능한 일인가 그러나 하나님이 함께 싸우면 이런 엄청난 결과가 나온다. 이제 우리의 삶을 이 교훈에 적용시켜 보자. 만약 일하면서 너무도 힘들다는 불평이 절로 나온다면 일의 분담이 잘 못된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람들은 하나님 이 하실 일과 내가 할 일 그리고 남이 할 일을 곧 잘 혼돈한다.
그 결과는 무엇 인가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일을 가지고 않된다고 말 할 수 없이 고민한다. 믿음으로 내가 할 일을 하는 동안 하나님은 자신이 맡은 일을 기막히게 하신다. 또 남들에게 일을 맡기지 못하고 혼자 다 하거나 맡겨도 계속 간섭해서 결국 자기 혼자 하는 셈이 되기도 한다. 이런 경우에는 아무리 직원이 많아도 결국은총지휘자만 죽어나고 일은 제대로 되지 않는다. 어느 학교의 경우이다. 학장이 청소부부터 경리와 교수들과 학교 외의 모든 문제를 다 간섭하는데 본인은 정신 을 차리지 못하고 일하지만 돌아가는 것을 보면 완전 주먹구구 식이다. 하지만 일을 잘하는 학장은 일을 각 부서의 장들과 분담한다. 그리고 그들에 게 많은 재량권을 주며 격려한다. 물론 장의 입장에서 보면 그보다 더 일을 잘 알고 실력이 좋으며 관심을 많이 쏟는 사람도 없다. 하지만 한 사람은 모든 사람 보다 더 잘할 수는 없다. 마치 기드온 혼자서 300명의 일을 다 해낼 수 없는 것 과 같다. 경영은 거의 모두 사람쓰는 문제라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그러나 이것으로 그치면 않된다. 인간의 차원을 넘어서는 경영은 하나님을 동업자로 삼아야 한다. 하나님은 상황을 만드신다. 하나님은 안보이는 세계를 움 직이신다. 그리고 하나님은 사람의 마음도 움직이신다. 그렇다고 한다면 이제 더 욱 분명해 진다. 경영을 잘하는 이들은 일하기 전에 기도하고 일하면서 기도한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 동업자와 의논하고 엄청난 역할을 부탁드리는 일이다. 무엇이 엄청난 일인가 미디안의 수십만 대군을 상대로 싸우려면 적어도 십 만의 군사는 필요하다. 그러면 그들에게 숙소를 주고 훈련시키고 먹이고 입히고 무기주고. 그럴 힘이 있으면 무슨 문제가 있겠는가 기드온이 모을 수 있는 건 기껏해야 오합지졸 3만 2천이었다. 그러나 그의 동업자 하나님은 300명의 군사를 만들어 수십만을 상대로 이기게 한다. 세상의 사업도 이와 똑같은 것이다. 돈 많고 사람 많아서 사업 잘하는 것이야 누가 못하는 것인가 그럼에도 불 구하고 거대한 회사가 넘어지기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동업자로 삼은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와 의논하기 위해서 조용한 시간을 가지고 마음의 평정 을 유지한다. 혹자는 말할 것이다. 구체적인 방안을 달라. 그러면 어떻게 해야 적은 자본으로 큰 일을 해낼 것인가 그 대답은 동업자 하나님만이 줄 수 있다. 미국의 어느 장로님에게 들은 이야기다. 담임 목사는 십년 정도 목회를 한 뒤에 완전히 녹초가 된다. 교회 사람들은 마음이 식을대로 식어서 냉정해졌고 서 로 비판하고 미움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비협조적이고 재정은 빈약하였다. 목사는 열심히 심방하고 설교했지만 교회는 생기가 없었고 교인들의 얼굴은 모두 굳어있었다. 물론 교인도 늘지 않았다. 목사는 지쳐서 사의를 표하게 되었다. 교회에서는 목사에게 목회학 박사 과정을 하라고 권했다. 목사는 머리도 식 힐겸 신학교로 갔다. 한 달 쯤 지나서 돌아온 그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었다. 그는 전처럼 힘을 다해서 심방하고 교인을 설득하고 사람들을 들볶지 않았다. 오히려 그는 전보다 더 열심을 내지 않는 것 같았다.
사람들은 걱정하였다. 이렇게 해도 될 것인가 그러나 그는 더 많은 시간을 기도하며 하나님과 대화하였다. 전에는 자기 힘으로 모든 것을 했지만 이제는 달랐다. 좀 부족해도 걱정 않 하고 하나님께 맡기게 되었다. 이상한 일이었다. 사람들의 마음이 조금씩 순화되 며 분위가 달라지는 것이다. 차츰 다른 소그룹들도 조용히 성경을 읽고 기도하는 시간을 갖게 된다. 모여 잡담과 비판하는 일은 줄어갔다. 사람들은 말씀으로 자 신의 모습을 살피고 일하며 기도하였다. 삶에는 알 수 없는 힘이 있었다. 그러면서 사람들의 얼굴은 부드러워져 갔다. 그렇게 문제 많고 말 많던 교회 가 안정이 되는 것이었다. 교인들은 서로를 가족처럼 보기 시작했다. 장로들은 예배시간 한 시간 전에 교회에 나와서 기도하면서 예배를 준비하였다. 한 시간 기도하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러나 조용히 성경도 읽고 기도도 하면서 말없이 하나님 앞에 그냥 있기도 했다. 많은 개인의 문제도 해결되어 갔다. 그 장로도 변하였다. 전에는 주일마다 전쟁을 치루었다. 차 안에서 빨리 나 오라고 빵빵 거리고 있었다. 여자들은 언제나 꾸물거렸다. 일단 모두 타고 나면 차 안에는 화난 얼굴들뿐이었다. 아무 말도 않하고 있지만 모두의 마음은 분노로 차 있게 되었다. 그리고 마구 밟아대면서 교회로 달려갔다. 전혀 예배할 마음이 아니었다. 화난 얼굴로 하나님 앞에 엎드리니 죄송한 마음이 일어날뿐이었다. 그러나 이제는 달랐다. 한 시간 동안 교회에서 기도하고 준비하다가 온유한 마음으로 집으로 가족들을 데리러 갔다. 그리고 예배 준비는 이미 다 되었으니 늦더라도 차분한 마음으로 올 수 있었다. 가족들도 가장이 신경질을 안부리니 좋 고 그러다 보니 자기들도 일찍 나와서 기도하는 시간을 가지고 싶어하게 되었다. 이제 예배하는 시간은 그들에게 참으로 축복이 되었다. 삶은 질서를 잡아갔다. 만약 정신 없이 바쁘고 너무 피곤하기만 한가 그러면 가장 중요한 일부터 종이 위에 써보라. 반드시 할 일부터 쓰고 다음 일들을 써보라. 그대로 하는 것이다. 그러나 맨 위에 예배 시간과 말씀보는 시간이 없다면 하나님과 동업하는게 아니다. 한 시간 예배하면서 허비하는 것 같다면 나머지 시간의 질이 어떠한 것 인지 스스로 깨달아야 한다. 엄청나게 멋진 삶을 살자면 그 분과 동업하라. 그리고 무슨 일을 하려할 때 먼저 기도하라. 그리고는 백지에다 써 보라. 한 편에는 내가 할 일을 다른 편에는 하나님이 할 일을.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대접 하려면 어려운 일일수록 맡기라. 그리고 언제나 말씀으로 자신을 정의하고 그 말씀대로 행동하도록 하라. 이것이 바로 계약을 지키는 일이다. 이제 장래 문제는 다 맡기고 성실하게 일하면 된다. 하나님과 나는 함께 칼을 잡고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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