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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병들 (삿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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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스라엘 사람들을 이스라엘로 만든 것이 무엇인가 무엇이 그들을 그렇게 강하고 끈질기게 만드는가선택된 백성이라는 자부심이다.어떠 한 역경에 눌려도 이들은 이 자부심만은 잃지 않앗따. 그러기에 수천 년 전 세계에 흩어져 유랑하면서도 민족이 살아 남았다. 이제 이보자 더 강하고 더 위대한 선택에 관해서 관심을 가져보자. 누가 정말로 선 택된 지도자가 되겠는가 이제 정병들로 선택된 한 무리의 사람들 이야기를 들어보자 기드온을 도와서 나라를 구하는 지도자들이 이야기다. 수십만의 적을 대항해서 군사를 모으자 3만2천이 왔다. 적에 비해 십분의 일 밖에 안되는 숫자 였다. 그러나 하나님은 너무 많다고 두려워하는 사람을 떠나게 하엿 따. 2만 2천이 돌아가고 만명만 남았다. 다시 하나님은 그들을 시험해 서 알짜만 뽑으려고 하셨다. 물가에서 마시는 자들 중 엎드려 개처럼 함는 자, 무릎을 꿔고 마시는 자들은 제외된다. 오직 손으로 물을 움켜서 마시는 자만 선택이 된다.허술하게 보아 넘길 수 있는 행동이었다. 그러나 그 무의식적인 행 동에는 신앙과 삶이 표출되고 있었다. 이 숫자는 한줌 300명이었다. 한 사람이 천명을 상대해서 이겨야 한다. 쉽게 말해 백명중 하나 꼴로 하나님의 정병은 뽑힌다는 말이다. 이들 300명이 어떻게 뽑히는지 살펴 본다면 우리에게 큰 교훈이 될것이다.누구나 부자가되고 유명해 지고 싶어한다. 그러나 선택은 백명중 하나밖에 되지 않는다.이들의 이야기를 우리에게 들려주는 이유는 단 한가지이다.우리도 그렇게 하라는 말씀이다. 그리하여 세상의 수많은 인파 속에서 선택되어 신앙인이 되었듯이 이제 하나님의 쓰시는 도구 로 구별되어야 한다. 수십만을 300명 사람들로 대항하게 하려는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가 사람의 숫자가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 이기게 한다는 교훈을 웅변으 로 주시는 것이다. 어떻게 한 사람이 천 명을 이길 수 있단 말인가 그것은 하나님의 힘으로만 가능한 일이다. 300명이 전쟁에 나갈때 무 엇을 의지할 것인가자기들의 지혜나 힘을천만에전혀 게임이 안된다. 하나님만 의지할 것이다. 그러나 여기 질문이 일어난다. 하나님이 300명이 없이는 못하시는가 혼자서 수십만명 밀어버릴 수는 없는가 여기 기가 막힌 교훈이 있다. 하나님은 반드시 인간을 통해서 당신의 일을 하신다. 기적을 행하되 선택된 사람을 통해서 하신다는 말이다. 아무리 적은 숫자라도 사람을 이용해서 위대한 일을 하신다는 말도 된다. 그리고 그 적은 사람드에 게 자신의 영광을 주신다! 이들이 어떤 사람들인가그 사람들의 세상적인 능력이 감안된 것은 아니다.그들이 싸움을 잘 했다던지 그들이 머리가 좋았다고 선택한 것은 아니다. 이것을 사용하시지만 하나님이 더 관심을 가지시는 것은 그들의 내면이다. 그들은 하나님을 전적으로 의지하는 이들이었다. 그러기에 하나님이 권능이 유감없이 이들을 통해서 그리고 이들을 도구 삼아서 쏟아져 내린 것이다. 외형적으로 볼 때 이들은 두려워하지 않았고 이들은 거룩한 자부심이 있었따. 그러기에 삼백명이 수십만을 상대로 싸우려고 했고
그러기에 개처럼 엎드려서 마실 것 먹을 것에 굴복하지 않는 자세로 임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이것이다. 하나님이 그들의 행동을 보고 선택했다고 가르치면 안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을 믿는 자부심이 능력이 되어 그런 행동을 이끌어내는 것이었다. 그들은 단지 보통 사람이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이 자기들 속에 머물게 할 수 있었다. 하나님의 힘이, 하나님의 지혜가 그리고 무엇보 다도 하나님의 용기와 하나님의 자부심이 그들 속에 머문 것이다. 하나님을 먼저 받아들였기에 하나님보다는 덜한 덕인 용기와 자부심도 함께 있게 된다. 이들이 먼저 용기와 자부심을 발휘하니까 하나님이 선택했다는 식은 오해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들이 본래 용기가 있고 본래 자부심이 있었던 것은 아닐 것이다. 만약 본래 용기가 있었고 자부심이 있었다면 하나님을 믿었을 리가 없다. 그저 세상에 흔한 인간들처럼 제 잘난 맛에 살면서 세월을 보내고 말았을 것이다. 그들이 하나님을 믿었던 것은 자신의 나약함을 보았기 때문이다.그리고 하나님을 믿었던 것은 자신의 나약함을 보았 기 때문이다.그리고 하나님을 믿어서 하나님의 강함으로 자신의 약점 을 대신한 것이다. 자 이제 우리는 이들을 보면서 어떤 교훈을 받을 것인가 우선 두가 지의 덕을 얻을 수 있겠다. 이들이 어떻게 자신 속의 하나님을 의지하 고 두려움을 용기로 바꾸었는가그리고 어떻게 열등감이나 자기의 교 만을 하나님이 주시는 자부심으로 바꾸었는가 이것이 우리의 관심이다. 근본적인 힘은 하나님으로부터 온다.그러나 그 힘을 적응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은 우리다. 어떤 젊은이의 이야기다. 그는 항상 두려워하면서 살도록 훈련이 되 었다. 그는 언제나 불안해했다. 그리고 걱정이 습관이 되었다. 그의 어머니도 그랬다.항상 세상은 악하고 항상 재난이 기다린다고 생각했다. 이러한 태도는 아들에게 전염이 되어서 그도 똑같은 것을 생각했다. 언제나 모든 생각 어디에나 불안이 스며들곤 했다. 그리고 모두다 그렇게 사는 것으로 생각했다. 어느날 그는 산속으로 차를 몰아 가고 있다. 처음 가는 일이었다.우 연히 그는 조그만 개울가로 이어지는 오솔길로 발견한다. 호기심으로 그 길을 택한 그는 인생의 전환점을 마지하게된다.한 3키로쯤 내려갔다. 교차로가 나왔는데 아무런 표시가 없었다.그는 불안해졌다. 그러 면서 두려운 일이 일어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머뭇거리고 있는데 한 말탄 노인이 나타났다. 길을 묻기 위해 노인을 불렀다. 그리고 이야기를 하게 되었다. 젊은 이는 말했다."요즘 세상은 너무도 험악합니다. 모두가 걱정거리예요 사는게 무섭습니다.그럴지도 모르지요."말탄 노인이 말했다."하지만 제가 아주 좋아하는 말이 있습니다. 들어보겠습니까" 그리고는 계속 했다. "그분이 내게 오른 손을 얹고 말씀하셨다.'두려워 말라. "노인 은 손을 흔들며 떠났다. "누가 한 말입니까" 젊은이가 물었따. "성경이요." 등 뒤로 던진 말 이다. 젊은이는 집에와 성경을 뒤져 요한계시록 1장 17절을 찾아냈다. "아버지가 걱정 많은 아들에게 손을 얹으신 것 같다!"그는 생각했다. 이 일을 계기로 그는 불안과 무서운 느낌을 없애주는 다른 귀절들을 찾기 시작했다. 성경은 그가 소망과 용기를 구하고 차츰 두려움을 삶 에서 물리치도록 도와주었다. 사람들은 자신을 잘 알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자기의 한계를 말하는 것이다.교회에서도 무얼 좀 해보라고 하면 자기는 절대로 안된다고 거 듭 주장을 한다. 그렇지 않다고 아무리 설명해도 목사의 말도 믿지 않 고 계속 아니라고 말한다. 그렇게 자신에 대한 이해가 굳어져 버렸기 때문이다. 신자들은 잘못 행동하는 것을 회개한다. 그러나 잘못 생각 하고 있는 것은 회개할 줄 모른다. 맥스웰 맬즈라는 성형외과 의사가 한 말이 있다. "금세기의 가장 중 요한 심리학적 발견은 자아상의 발견이다." 사람들은 혼자 있는 것이 아니다. 태어날 때, 아플 때, 죽을 때 혼자 그러는 것이 아니다. 자기 자신과 함께 있다는 말이다. 그 자신을 어떻게 여기느냐가 바로 자아 상이다. 지인의 눈으로보는 자아상은 형편 없는 것이다. 그저 세상의 인간과 하나도 다를게 없다.
그러므로 처음부터 세상 사람들과 똑같이 살아야 한다고 믿고 있다. 똑같이 산다는 말은 죄악이나 나쁜 습관까지도 그러하다. 남들이 다 그렇다고 말한다. 사업을 하려면 뇌물을 주고 접대를 하고 더러운 일 도 해야 한다고 미리 생각해 버린다. 일을 하고 친구들을 사귀려면 함 께 어떻게 해야 한다고 미리 양보한다. 그리고 생각한대로 일은 벌어 진다. 그리고 하나님과 멀어진다. 하나님은 개처럼 함는 이 무릎을 끓고 마시는 이를 자기의 배성에서 제외시킨다. 하나님 백성의 자부심을 가지고 사는 사람들만 백성으로 서의 삶을 살수 있게 만든다. 개처럼 살지 않아도 무릎을 꿇지 않아도 하나님의 백성은 물을 마실 수 잇따. 이 사실을 믿는 것이 신앙이다. 옛 사고를 바꾸는 것이 회개이다. 왜 악한 생각의 습관을 버리고 기드 온의 군사처럼 일어날 수는 없는가 사람들은 예수를 믿은 다음에도 한동안은 그 사고를 바꾸지 못한다. 회개란 말은 뉘우친다는 뜻으로는 부족하다. 뉘우치고 방향을 반대로 돌이키는 것이다.우선 예수를 믿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겠다는 결정이 평생을 통해 일회적인 회개이다. 그러나 회개는 단번에 일어나지만 단 번에 마쳐지는 것은 아니다. 평생을 통해서 믿음의 사고로 돌이키는 과정이 일어나는 것이다. 예수를 믿어도 율법적이거나 육신적인 경건을 중요시하는 이들이 있다. 하나님께 인정받으려고 그러는 이가 잇다. 기복적인 신앙이다. 또한 신앙 훈련으로 자기를 쳐서 복종시키려는 좋은 뜻으로 그런 이들도 많다. 여하간 한가지 분명한 것은 믿음으로 하나님의 힘을 받아서 그 힘으로 율법을 지키고 경건생활을 하는 것이지 그 반대는 아니라는 사 실을 혼동하면 안된다. 율법적인 사고는 너무도 강한 것이기에 오랜 시간이 걸려야 복음적인 사고로 바뀐다.의사들의 말에 의하면 손이나 다리를 절단한 사람들이 한동안은 그 사실을 모르고 지낸다고 한다.
그래서 없어진지도 모르고 따끔거린다던지 저리다고 호소한다. 그리고 자다가도 벌떡 일어나서 없는 다리로 걸어가려다가 넘어지는 예가 허다하다. 육신이 이러하면 생각의 습관은 어떠하겠는가! 자라면서 얻어진 사고나 오랜 경험 끝에 얻어진 생각들을 좀처럼 변 하지 않는다. 앞의 의사의 말을 뒤집어 보자. 오랜 동안 손이나 발이 없는채로 산사람들은 거기 익속해져서 실제로 손발이 생겨나온다 해도 사용하려 하지 않을 것이다. 인간의 사고는 이보다 더 강하게 우리의 삶을 장악하는 것이다. 한번 마음에서 상처를 당하고 절단이 되면 영 원히 정신적 불구가 될 수도 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회개한 사람들이다. 회개한 사람이란 하나님이 뜻 대로 그의 방법대로만 살기로 결단한 것이라는 뜻이요 회개하는 사람 이라는 그렇게 되기 위해서 매일 매일의 삶 속에 이 새 방법을 적용시 키는 사람이라는 말이다. 우리를 강하게 하고 우리를 아름답게 하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바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이라는 거룩한 자부 심이다. 이것으로 살겠다고 결심해야 한다. 사형수들이 전도를 받아서 기독교인이 되기도 하고 다른 종교인이 되기도 한다. 개종한 스님의 고백이 있었다. 기독교 신자는 죽을 때 태연하였따. 죄를 회개하고 사람들에 게 감사하며 천사처럼 죽었따. 그러나 다른 종교인들은 이미 반쯤 죽 어 교수대에 끌려 올라갔다. 거룩한 자부심은 모든 것의 출발이다. 용 기, 경건한 삶 그리고 아름다운 삶의. 무엇이 우리를 100대 일의 뽑힌 정병이 되게 하는가 무엇이 우리를 두려움에서 구원하는가 무엇이 우리를 개처럼 살지 않고 악에 무릎을 꿇지 않게 하는가 무엇이 우리의 눈을 빛나게 하고 우리의 마음을 하 늘처럼 밝고 넓게 만드는가 하나님이 주신 생명과 능력이 마음 속 깊 은데서부터 어떻게 표현되는가 바로 거룩한 자부심이다. 하나님의 사람아 이것을 찾으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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