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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셉의 승리 (창41:41-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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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드로가 자기 자신의 잘못에 의해 실패한 데 비하여 요셉은 자기가 잘못했기 때문이 아니라 나의 잘못 때문에 실패했고 고통을 겪어야 했습니다. 요셉이 17세 되었을 때 형들의 미움을 받아서 애굽의 노예로 팔려 갔습니다. 그후 고생고생하며 살다가 또한 차례의 역경을 맞게 되었습니다. 주인집 부인의 모함 때문에 요셉은 뜻하지 않게 감옥의 죄수 신세가 되었습니다. 17세에 시작해서 30세까지 무려 13년 동안입니다. 20대 젊음을 노예로 죄수로 처량한 생활을 보냈습니다. 얼마나 억울한 인생이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셉은 역경을 무난히 극복해 갔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다 보면 때로는 억울한 일도 있고 애매하게 고통을 당하거나 고생을 하거나 시련을 만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때마다 요셉을 생각하면서 위로와 소망과 새로운 힘을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요셉은 어떤 믿음의 자세를 가졌기에 억울하게 당한 고통을 무난히 잘 극복해서 승리의 인생을 살 수 있었습니까 요셉의 생애를 바라보면 세 가지 요소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1. 요셉은 꿈이 있었습니다. 요셉은 자기 자신의 장래와 나라의 장래에 대한 꿈을 여러 번 꾸었습니다. 이 꿈 때문에 때로는 형들의 미움을 받기도 했지만 그러나 이 꿈이 그로 하여금 역경을 이겨 가도록 하였습니다. 하도 꿈을 잘 꾸었기 때문에 형들은 요셉에게 꿈꾸는 자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습니다. 우리도 종종 밤에 꿈을 꿉니다. 때로는 희망찬 꿈을 꾸기도 합니다. 때로는 기분 나쁜 꿈, 때로는 마음을 뒤숭숭하게 하는 꿈을 꾸기도 합니다. 꿈이 무엇입니까 꿈에 대한 정의, 해석을 하기 위해서 많은 심리학자들, 정신의학자들, 그리고 심지어 역술가들, 철인들까지도 연구하고 분석하고자 노력하였습니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꿈은 참 신비스러운 것이다.”라는 말밖에 할 수 없습니다. 꿈에 대한 정확한 원인, 그리고 해법이 나와 있질 않습니다. 그렇지만 지금까지 학계에서 연구된 꿈에 대한 분석을 보면 대개 세 가지로 크게 정의를 내릴 수 있습니다. 첫 번째 해석은 꿈은 정신적으로나 신체적으로나 경험했던 일, 또는 생각했던 일, 또 충격 받았던 것이 무의식 속에 잠재되어 있다가 밤중에 의식으로 표현된다는 것입니다. 즉 평소에 경험했던 일, 충격 받았던 일, 또는 생각했던 일, 이런 것이 잠자리에서 의식으로 표현되는 것이 꿈이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경험을 중요시합니다. 직장생활을 하는 사람들은 직장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게 되면 도망치는 꿈을 잘 꾼다고 합니다. 누군가각 나를 쫓아오고 나는 도망치려고 정신없이 뛰어가는데
그런데 생각보다 발걸음이 느립니다. 잠힐 듯 잡힐 듯하면서도망을 치다가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는 갑자기 낭떠리지를 만나서 가슴이 철썩 내려앉습니다. 그 순간 잠을 깨고 맙니다. 또는 막다른 골목에 이르러서는 어쩔 줄을 모릅니다. 이런 사람들은 직장이나 사회, 가정에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고 있기 때문에 그 증세가 이런 꿈을 통해서 나타난다고 합니다. 아마 여러분 중에도 이런 경험을 하신 분이 없지 않아 있을 것입니다. 두 번째 해석은 꿈은 강한 소원이나 집념, 의지의 표현이라는 것입니다. 평소에 마음먹고 있던 일, 또 무엇을 꼭 하고 싶어하는 어떤 욕구, 집념 의지가 밤중에 꿈을 통해서 표현된다고 합니다. 한 젊은이가 어떤 여자를 너무나 사랑해서 결혼을 하고 싶은데 부모가 극렬하게 반대를 합니다. 그래도 결혼해야 되겠다는 의지가 강합니다. 이런 사람은 잠자리에서도 그 여자의 이름을 부르는 등 잠고대를 한다고 합니다. 또 꿈을 꾸는데 그 여자와 함께 손을 잡고 결혼식장을 들어가고 나오는 그런 꿈을 잘 꾼다고 합니다. 강한 소원의 표현으로 그런 꿈을 꾸는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세 번째 해석이 있는데 좀 특이합니다. 꿈에 영적 의미가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꿈을 통해서 어떤 징조를 본다. 또는 인생을 본다. 라는 말이 흔히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자신의 뜻을 계시할 때 종종 꿈을 통해서 계시할 때가 있습니다. 영감있는 꿈이라고도 말을 할 수 있을 것입니다. 성경에 그런 내용이 많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아기 예수를 요셉의 가문에 보내겠다고 예고하실 때 어떻게 하셨습니까 요셉이 잠자고 있을 때 꿈에 하나님께서 “메시아 예수를 보내겠다”라고 예고해 주셨습니다. 마태복음 2장에 보면 동방박사들이 아기 예수님께 경배를 한 다음에 꿈에 하나님께서 “지금까지 왔던 길로 가지 말고 다른 길로 가라.” 하고 현몽하여 말씀하신 지시를 받고 다른 길로 갔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마태복음 27장에 보면 빌라도 총독이 예수님을 재판하고 있는데 빌라도 부인이 말하기를 “내가 간 밤에 꿈을 꾸었는데 꿈자리가 사나왔습니다. 당신이 재판하고 있는 예수는 죄가 없는 옳은 사람인데 그 사람 일에 더 이상 관계하지 마십시오. 재판하지 마십시오. ” 라고 했습니다. 이 내용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빌라도의 부인을 통해서 예수님은 옳은 분이라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주고 있습니다. 그외에도 사도 바울이 꿈을 꾸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서 유럽 선교에 나섰고, 다니엘이 꿈을 통해서 세계의 현상이 어떻게 돌아갈 것인가를 예언했습니다. 이런 측면을 바라볼 때 꿈은 우리가 예측하지 못한, 또 미처 생각하지 못할 하나님의 신비로운 어떤 경험을 느끼게 할 때가 있습니다. 그러면 요셉이 꾼 꿈은 무엇입니까 그가 강렬하게 원했떤 어떤 우주의 집념, 또는 소원, 생각 이런 것이 표현된 것이라고 말을 할 수는 없습니다. 오히려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세계의 장래에 대한 꿈을 통해서 자기 뜻을 제시해 주셨습니다. 창세기 37장을 보면 요셉은 두 가지 꿈을 꾸고 있습니다. 하나는 들의 곡식단들이, 형들의 곡식단들이 자기 곡식단 주변에 둘러서서 자기에게 절을 하고 있다는 꿈입니다. 또 하나는 하늘의 해와 달과 별들이 자기 별을 향해서 절을 하는 꿈입니다. 이것은 요셉이 장차 나라의 큰 사람이 될 것이고 우두머리가 될 것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하나님의 현몽입니다. 하나님의 계시였습니다. 요셉은 그후에 “나는 장차 이 나라에서 큰 일을 할 사람이다”라는 꿈, 어떤 포부, 비전, 그런 목표를 안고 살았기 때문에 일시적으로 노예살이를 하건, 감옥에 가건 개의치를 않았습니다. 어떤 역경도 극복해 나갈 수 있는 그런 힘이 있었습니다. 꿈, 목표, 포부는 사람으로 하여금 시련을 이겨 나가게 하는 힘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어떤 사람을 불러서 자기 일을 시킬 때 “너는 이걸 해, 너는 저걸 해, ” 이렇게 직접적으로 말씀하실 경우도 있지만 오히려 영감을 통해서 우리에게 일을 해야 되겠다. 또는 일을 해야 되겠다는 어떤 소원을 일으켜서 그 소원을 통해서 자기 뜻을 펼칠 때가 많습니다. “(빌2:13)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로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 여러분, 조용히 생각해 보십시오. 어렸을 때나 나이가 들어서나 또 환경이 달라지고 시대가 달라져도 끊임없이 내 마음속에 끓어오르는 어떤 소원, “내가 이걸 해야지.” 하는 어떤 목표가 있으면 예사스럽게 생각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혹시 바로 그런 소원, 꿈을 통해서 자기의 뜻을 일으키기 위해서 그런 소원을 내게 심어 주시고 계신지도 모릅니다. 내 욕심에서 생기는 소원은 순간적이지만 하나님께서 심어 주신 소원은 변치 않고 끊임없이 내 가슴을 고동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꿈, 어떤 목표, 어떤 희망을 안고 오늘을 살고 있습니까 목표가 있어야만이 삶에 의욕이 있고 힘이 있고 건강합니다. 미국의 전국양로원협회에서 양로원에 수용된 사람들에 대해 사망률을 조사했습니다. 양로원에 수용된 사람들이 어느 때 잘 죽고, 어느 계절에 잘 죽지 않느냐 하는 것입니다. 조사한 통계에 보니까 생일이라든지, 성탄절이라든지, 신년이라든지, 결혼기념일이라든지 이런 특별한 명절, 절기를 앞두고는 전국적으로 양로원에 수용된 노인들의 사망률이 아주 낮았습니다. 그 이유는 “한 번 더 생일을 보내야지.” 즉 “70세가 되기까지는 내가 살아야지,” “이번 크리스마스는 보내고 죽어야지.” “이번 성날을 세고 죽어야지.” 하는 어떤 목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다 죽어가는 노인들도 살아 있다가 성탄절이나 생일, 설날이 다 지나고 나면 긴장이 풀어져서 많이 죽음을 맞이한다고 합니다. 연약한 사람의 신체도 그나마 나름대로 목표를 두고 살 때에 힘이 있고 건강하다는 것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어떤 목표를 두고 오늘을 살고 있습니까 어떤 꿈이 있습니까 어떤 비전이 있습니까 젊은 요셉은 비록 노예로, 죄수로 고생을 했지만 그 속에는 하나님께서 심어 주신 어떤 목표, 꿈이 있었습니다. 때문에 그 역경을 능히 극복해 갈 수 있었습니다.
2. 요셉은 항상 하나님과 동행했습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즐거울 때도 있고 괴로울 때도 있습니다. 웃을 때도 있고, 눈물 흘릴 때도 있습니다. 형편과 사정이 잘 돌아갈 때도 있고, 앞이 캄캄하게 막힐 때도 있습니다. 역경을 겪을 때가 있습니다. 서양 속담에 보면 “여름의 하루는 겨울의 열흘보다음식을 더 많이 썩게 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편안하고 따스한 여름 하루가 고통스럽고, 춥고, 배고프고, 어려운 겨울 열흘보다도 더 인생을 타락시킨다는 말입니다. 사실 그렇습니다. 고생할 때보다 돈이 좀 있고, 명예가 좀 있고, 직위가 좀 있고, 살 만하고, 건강하고 힘이 있을 때 그때 타락하기 쉽고 유혹받기 쉽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에게 말하기를 “스스로 섰다 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라고 이야기하고 있지 않습니까 돈이 있고, 힘이 있고, 권세가 있고, 직위가 있고, 환경이 좋을수록 더 겸손히 더 올바르게 살아야 합니다. 더 하나님과 동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요셉을 보십시오. 노예로 팔려가서 처음에는 고생했지만 보디발의 집에서 집안일을 할 때 하나님을 섬기듯이 집안일을 했습니다. 그래서 신임을 받아 시위대장 보디발이 요셉을 가정의 모든 가사 업무의 책임자로 맡겨 책임을 지도록 했습니다. 그 휘하에는 많은 노예도 많은 종들도 있었을 것입니다. 집안의 제2주인이 된 것입니다. 성경에 보면 “하나님께서 함께하셨다. 하나님의 은혜를 힘입었다.”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요셉이 이쯤 되면 좀 우쭐댈 만합니다. 즉 교만을 떨 만합니다. 오히려 주인집 부인 보디발의 부인까지도 요셉에게 아부할 정도입니다. 이때에 넘어지기 쉽습니다.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유혹했을 때 요셉은 한마디로 거절하고 단호하게 자기를 바로 세워 갔습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입니다. 형편이 좋아졌을 때 더욱 겸손하고 자신의 삶을 올바르게 바로 세워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 걸음 더 나아가서 형편이 어려울 때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자신있게 삶을 바로 세워가는 것이 믿음입니다. 요셉이 보디발 아내의 모함 때문에 결국 감옥생활을 하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는 감옥생활 중에도, 그 동안에도 매사에 성실하고 올바르게 살았습니다. 그래서 간수와 죄수들의 신임을 받았습니다. “(창39:22) 전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기므로 그 제반 사무를 요셉이 처리하고 (창39:23) 전옥은 그의 손에 맡긴 것을 무엇이든지 돌아보지 아니하였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셨더라 ”하였습니다. 요셉의 위대함은 형편이 좋았을 때나 어려웠을 때나 변치않는, 그야말로 전천후 신앙에 있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전천후 신앙이 그로 하여금 노예생활 할 때나 감옥생활 할 때나 어떤 역경하에서도 자신을 똑바로 세워나갈 수 있는 힘이 되었습니다. 제기의 힘이 되었습니다. 낙심하거나 형편이 어려울 때는 하나님께 매달리다가도 형편이 좀 나아지면 주일도 지키지 않고 자신의 쾌락만을 좇는다면 결국 믿음이 흔들리면 인생의 바탕이 흔들립니다. 시험받기 쉽습니다. 요셉은 좋을 때나 나쁠 때나 어떤 형편과 어떤 처지에 있을지라도 자신을 꿋꿋하게 세워나가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이 믿음이, 그야말로 전천후 믿음이 자신의 삶을 역경에서 건져내게 했습니다.
3. 요셉은 원한보다 더 큰 사랑을 가졌습니다. 요셉이 감옥에서 임금의 꿈을 해몽해 주고 그리고 장차 닥칠 흉년 7년에 대한 대책을 제시하자 임금은 요셉을 아주 기이하게 여기고 요셉을 출옥시켜서 일약 나라의 국무총리가 되게 했습니다. 국사를 모두 맡겼습니다. “(창41:41) 바로가 또 요셉에게 이르되 내가 너로 애굽 온 땅을 총리하게 하노라 하고 ” 총리가 된 요셉은 닥쳐올 기근에 대한 대비를 잘 세움으로 인해서 백성들을 흉년으로부터 구해 주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고향 땅에서 굶주리고 있는 자기 아버지와 형제들을 다 애굽 땅 고샌 지역으로 초대하여 편안하게 살게 했습니다. 온 집안을 구했습니다. 그런 다음 얼마 후 아버지 야곱이 세상을 떠나게 되었습니다. 그러니 형들이 불안해 했습니다. 왜냐하면 그래도 아버지가 살아 계실 때는 아버지의 얼굴을 봐서라도 참고 견디던 요셉이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에는 분명히 우리들에게 복수하지 않겠느냐, 과거의 원한을 갚지 않겠느냐 하는 두려운 마음속에서 불안에 떤 것입니다. 이것을 알게 된 요셉은 형들에게 이렇게 말하며 위로합니다. “(창50:20)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만민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창50:21) 당신들은 두려워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 하고 그들을 간곡한 말로 위로하였더라 ” 얼마나 멋있습니까 요셉이 개인적으로 생각해 보면 형들에 대한 증오심이 컸을 것입니다. 20대의 황금 같은 청년기 13년을 노예로 감옥에서 고생을 해야 했습니다. 이런 생활을 하게 한 그 형들이 얼마나 미웠겠습니까 참으로 원수 같았을 것입니다. 만나면 주먹으로 한 대 치고 싶고, 주먹이 안 되면 말로라도 퍼붓고 싶은 그런 심정이 가득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요셉은 어떤 원한보다도 더 큰 사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더 큰 포용력을 가졌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매달리시면서 “아버지여, 저들의 죄를 용서하소서. ”라고 하시며 십자가의 죽음 가운데서도 자기를 죽인 원수를 향해 더 큰 사랑을 가졌듯이 요셉이 이런 사랑을 가졌습니다. “(롬12:17) 아무에게도 악으로 악을 갚지 말고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라 (롬12:18) 할 수 있거든 너희로서는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평화하라 (롬12:19)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진노하심에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롬12:20)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우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롬12:21) 악에게지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 ” 이 말씀을 마음에 새겨 두어야 됩니다. 남은 나를 어떻게 대하든지 간에 나에게 향한 어떤 감정이 있든지 간에 그것보다 더 큰 사랑을 품고 사는 것이 크리스찬의 모습입니다. 우리가 한 세상을 살다 보면 섭섭한 일들도 많이 있습니다. 미운 마음이 생길 때도 있고, 저주스러운 마음이 생길 때도 있고, 원한이 생길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감정보다도 더 큰 그리스도의 사랑을 내가 품을 수 있을 때 내 품성이 예수 그리스도를 닮아 갑니다. 믿음이 자라면 내 속의 사랑도 자라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요일4:8)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은 사랑이심이라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사랑이 계신 하나님, 바로 내 속에 하나님이 계신다는 사실은 내 속에 사랑이 자라고 있다는 말씀입니다. 원한보다 더 큰 사랑이 요셉으로 하여금 과거의 질고르 벗어나서 더 큰 사람이 되게 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요셉이 어떤 자세를 가졌기에 고난을 딛고 일어설 수 있었고, 승리의 사람이 될 수 있었습니까 꿈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꿈은 어떤 역경도 이겨나갈 수 있는 힘이 됩니다. 그리고 어떤 처지와 어떤 환경에서도 하나님과 함께 살겠다는 믿음이 그로 하여금 승리의 삶을 살게 했습니다. 또한 어떤 원한, 어떤 저주스러운 마음, 어떤 섭섭한 마음보다 더 큰 사랑이 그로 하여금 과거의 고통을 이겨나갈 수 있는 힘이 되게 하였습니다. 이런 승리가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들게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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