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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인의 문화 (창4:16-24)

본문

인간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부모없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아무도 없는 것처럼 인간은 어느 누구를 막론하고 여호와 하나님의 지으심과 도우심이 없이는 세상에 존재도, 생존도 할 수 없는 하나님의 피조물임을 깨닫고 겸손히 하나님을 신뢰하고 살아가는 것만이 인간 자신이 행복 되게 사는 길인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하나님의 피조물이라는 말을 싫어하며, 마치 하나님을 믿는 것을 무슨 죄를 범하는 부끄러운 일처럼 생각하는 무신론자들과 불신앙인들이 갈 수록 많아져 가고 있는 현실은 결과적으로 인간 자신의 불행을 자초하는 일임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우리는 그같은 사실을 성경에 나타난 가인의 문화를 통해서 살펴보면서 어지러운 현실에서 바른 가치관과 문제 해결의 열쇠를 발견해야만 합니다.
1.하나님의 피조물인 인간 세상의 과학이 발달되고 인간의 지식이 더해지고 삶이 풍요로워질 수록 인간은 교 만하여져서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고 인간이 하나님의 피조물이 아니라 진화된 존재라고 말하며 또한 똑똑하다고 하는 사람들의 다수가 하나님의 창조를 부인하고 진 화론을 과학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인간이 이 지구상에 존재한 이래 태어난 사람의 수를 어림한다면 자그만 치 100억 이나 된다고 하는데 그 중에 어느 한 사람도 유전적으로 사람이 아닌 경우는 단 한 사람도 없었을 정도로 모든 인간은 단일한 피조물임을 입증해주고 있습니다. 자식은 그를 낳아 기르신 부모의 얼굴 모습을 닮고, 성격을 닮는 것처럼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실 때 (창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 라는 말씀처럼 인간은 하나님을 닮은 존재로 지으셨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지으심을 받은 피 조물 가운데 유일하게 하나님을 알 수 있는 능력을 부여하여 주셔서 하나님을 경배 하고 찬양하며 영광 돌리는 존재로 지으심으로 인간이 동물에서 진화된 존재가 아님 을 나타내 보이신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하셨다는 말은 인간의 생명의 신성함을 가르치는 말로 세상에서 무엇보다 인간의 생명을 귀중하게 여겨야하는 생명의 존엄성을 가르치는 것으로 인간의 생명은 빈부귀천을 막론하고 하나님이 보실 때 누구를 막론하고 다 귀중한 것입니다. 또한 모든 사람은 동등하게 창조되었으며 우리의 생명이 하나님으로부터 왔기 때문에 그 생명을 하나님께 드리는 삶을 살아야만 합니다. 그래서 롬12장에는 우리의 몸 을 하나님께 산 제사로 드리라고 하였습니다. 인간은 하나님을 위하여 창조된 유일한 존재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떠나서는 지속적 인 만족을 얻지 못하게 됨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물론 인간이 원하는 새집이나 새 자동차로도, 새 옷이나 직장으로도 만족감을 느낄 수 있으나 그것은 얼마가지 못하 게 될 것입니다. 마치 포도 열매는 포도나무가지가 줄기에 붙어 있을 때만이 가능한 것처럼 인간에 게 지속적인 기쁨이나 만족감은 오직 자기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과의 인격적인 관 계로 말미암아 오는 것으로 하나님에 대한 신뢰와 순종의 결실이 바로 기쁨과 만족 의 열매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욕구를 가진 존재로 창조하셨고 그 욕구는 오직 하나님 안에 서 완전하게 충족될 수 있음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1)육체적인 욕구-하나님을 믿지 않는 불신자도 세상에 잘먹고 잘살 수 있지만 사실 알고 보면 그것도 하나님이 내려주신 비와 태양 빛으로 말미암은 것임을 우리는 지 난 여름의 가뭄을 통해서 실감할 수 있었습니다.
2)도덕적인 욕구-인간은 선하게 살아가야만 한다는 것을 누구나 다 잘 알고 있으며 이를 위해서 인간은 도덕적인 규범과 법질서의 울타리를 만들어 놓고 공권력을 가지 고 죄를 다스리기도 하지만 갈 수록 범죄는 흉포화되어가고 있는 까닭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인간이 선하게 살 수 없는 존재임을 가르치고 있는 것입니다. 진정한 옳고 그름의 표준은 다수의 대중의 표수로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의 잣대로 분별하여 사람이 옳은 것을 선택하고 그른 것을 거절할 수 있 어야만 하는데 그같은 도덕적인 욕구는 하나님의 능력을 소유해야만 합니다. 그렇게 할 때 우리가 원하는 평화와 양심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을 의존하지 않는 도덕은 결국 범죄, 이혼, 낙태,구타,학대,약물중독,알코올 중독 등은 인간의 도덕적인 욕구가 하나님에 의해 채워지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3)지적인 욕구-인간은 동물과 달리 끊임없이 새로운 지식을 탐구하며 이로 말미암아 인간의 문화는 끊임없이 발전하고 있지만 그 지식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아니할 때 그 지식은 인간을 번민케 하고 맙니다. 인간에게 많은 양의 지식이 있으나 참된 지혜가 없을 때 그 지식은 혼란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러므로 (시111:10) 여호와를 경외함이 곧 지혜의 근본이라 그 계명을 지키는 자는 다 좋은 지각이 있나니 여호와를 찬송함이 영원히 있으리로다 라는 말씀처럼 인간이 여호와를 경외할 때만이 참된 지혜를 소유하게 됩니다.
2.하나님을 떠난 가인 자기 동생을 시기하여 돌로 쳐죽이고도 양심의 가책 마져 느낄 줄 몰랐던 인류 최 초의 살인자 가인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수 없는 인간이 하나님을 반역하고 스스 로 자신의 삶을 살아 보겠다고 하는 무신론자의 대표적인 조상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가인은 자기 친동생을 죽인 무자비한 자임에도 불구하고 죄로 말미암아 자기가 형 벌을 받고 죽는 것은 겁먹고 두려워하는 비겁한 자로 (창4:13) 가인이 여호와께 고 하되 내 죄벌이 너무 중하여 견딜 수 없나이다 라는 말씀처럼 하나님께 고백하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인간입니다. 사람들이 흔히 증오심에 가득 차서 악에 바칠 때는 죽으 면 그만이지 하면서 못할 짓을 다하지만 막상 그 죽음이 자기 눈앞에 박두하게 되면 누구나 다 두려워 떨게 되어있는 것이 인간의 공통점인 것입니다. 더구나 인간이 죽음으로 모든 것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죽은 후에는 지상의 감옥과는 비교가 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지옥 형벌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면 더욱 죽음에 대한 공포감에 사로잡히게 되는 것이 연약한 인간인 것입니다.
가인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동생을 죽이고나서 깊은 번민 가운데 살게 되자 (창 4:16) 가인이 여호와의 앞을 떠나 나가 에덴 동편 놋 땅에 거하였더니 라는 말씀과 같이 가인은 하나님을 떠나 에덴 동편에 있는 놋 땅이라는 곳으로 이주하였습니다. 가인이 회개를 거부하고 하나님과의 교제를 거부하고 여호와 앞을 떠나는 모습은 죄로 말미암은 하나님과의 분리를 뜻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를 회개하지 아니하 면 하나님을 떠나든지 아니면 죄를 회개하여 깨끗함을 받든지 둘 중에 하나입니다. 오늘도 마찬가지로 인간에게 있어서 죄는 사람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떠나도록 만들 고, 교회를 떠나도록 만드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으며 설령 그렇게 할지라도 육신 적 인 삶에 있어서는 별 문제가 없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어린아이가 부모를 떠나서도 생존할 수는 있는지 모르지만 행복할 수는 없는 것처럼 인간이 자기를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을 버리고 세상으로 내려가서 육신의 삶은 얼마든지 살 수는 있는지 몰라도 인간다운 삶이나 복된 삶은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에게 잘 나타내 보여 준 사람이 바로 오늘 성경의 가인 입니다. 가인이 여호와 하나님 앞을 떠나 에덴 동편으로 이주하여 정착하였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가인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그에게 사랑과 위로를 주셨으니 가인에게 사랑 하는 아내를 주셨고 또한 그의 아내에게 잉태케 하는 복을 주셨습니다. 만일 가인에게 이같은 하나님의 위로가 없었다면 참으로 가인은 놋 땅에서 공허한 삶을 살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동생을 돌로 쳐죽인 살인자인 가인이 그 죄에 대한 진정한 회개와 더불어 하나님이 주시는 사죄의 은총을 체험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의 마음에는 항상 불안이 떠나지 아니하였습니다. 그 증거가 바로 (창4:17) 아내와 동침하니 그가 잉태하여 에녹을 낳은 지라 가인이 성을 쌓고 그 아들의 이름으로 성을 이름하여 에녹이라 하였더라는 말씀과 같이 그 의 아들의 이름을 붙여서 성을 건축한 일이었습니다. 지난날의 고대 문명을 가장 잘 나타내 보여주는 유물 가운데 하나가 바로 건축 문 화입니다. 당시의 건축물을 보면 그 당시 사람들이 얼마나 지혜로웠으며, 얼마나 잘 살았었는지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가인이 이처럼 성을 쌓았다는 것은 당시 문화가 상당히 발달하였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하나님을 떠나면 못 먹고 못산다고 다 단정지을 수만은 없는 것입니다. 가인이 하나님을 떠나 에덴 동편에 살았다고 해서 당장에 그 땅에 흉년이 들고 저 주가 임한 것이 아니라 가인은 자손을 낳으면서 나름대로의 문화를 누리면서 살아가 고 있었습니다.
1)일부다처주의 하나님이 주신 가정의 질서는 일부일처주의였습니다. 하나님이 아담의 갈빗대를 취 하여 여러 명의 여자를 만든 것이 아니라 한 여인을 만들어 부부가 되게 하셨습니다. 그러나 가인의 가문은 이와 달리 (창4:19) 라멕이 두 아내를 취하였으니 하나의 이름은 아다요 하나의 이름은 씰라며 라는 말씀과 같이 라멕은 한 아내로 만족하지 못하였습니다. 여기서 가정의 화평은 깨어지고 ,성도덕은 부패하게 되고, 사회악이 싹트게 되어지는 것입니다.
2)향락주의 하나님을 떠난 인간은 자연 육체의 쾌락을 추구하며 정욕 가운데 살아가게 되며 가 인의 자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본래 아벨은 육축을 길렀지만 가인은 농사를 지었었는데 가인의 자손인 야발이 농업에서 전환하여 육축을 치는 자의 조상이 되었다고 하는 것은 아벨처럼 그 육축을 가지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목적이 아니라 육신의 정욕을 위한 목적이었음이 분명합니다. 또한 (창4:21) 그 아우의 이름은 유발이니 그는 수금과 퉁소를 잡는 모든 자의 조 상이 되었으며 라는 말씀처럼 야발의 동생인 유발은 악기를 만들어 최초의 음악가가 되었으나 그 음악조차 하나님을 찬양하는 일을 위해서 사용되어진 것이 아니라 공허 한 인간의 마음을 달래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3)과학의 발달 가인이 놋땅에 성을 건축하였다는 사실만으로도 당시의 문화가 어느 정도 발달되었 다고 하는 것을 가히 짐작하게 하는데 더욱 놀라운 것은 (창4:22) 씰라는 두발가인 을 낳았으니 그는 동철로 각양 날카로운 기계를 만드는 자요 라는 말씀처럼 최초로 기계 문명을 발달시켰다고 하는 점입니다. 가인이 하나님을 떠났지만 그의 삶은 성곽을 건축하기 위해 매우 바쁘고 분주한 삶 이었으며, 많은 돈과 사업과 여행과 오락과 성적인 즐거움을 추구하며 살았으며 그 자손들은 진보적인 사람들로 성을 건축하고 가축을 기르며 문화와 기술을 발전시켰 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과 저주의 잣대를 물량적인 것만으로 단정지어서는 안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도 얼마든지 과학이 발달하고, 경제적으로 풍요로우며, 문화가 더 발달할 수 있습니다. 그 까닭은 죄로 인한 공허함으로 인해 인간이 무엇 으로도 만족할 줄 모르기 때문에 계속적으로 새로운 것을 추구하게 되는 것이 무신 론의 문화이기 때문입니다. 지난 날의 역사를 볼지라도 로마가 하나님을 믿지 아니하였으며, 히틀러가 하나님 을 거부하였으며, 오늘의 일본이 하나님 대신 신사를 믿지만 나름대로 세계를 제패 하는 제국들이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 한 가지는 그 안에서 인간이 결코 만족함이 없으며, 평화가 없 다는 것과 그것이 결코 영원하지 못하다는 것을 가인의 가계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떠난 가인의 문화가 외형적으로 보면 놀라운 발전을 거듭한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이 중심이 되지못하고 인간이 중심이며, 쾌락 추구가 중심인 무신론의 문화입니다. 이같이 무신론적인 가인의 문화가 인간에게 미친 결과는 무엇입니까 화려한 도시 문명이 있고, 돈만 있으면 여러 명의 여자를 거느릴 수 있고, 술과 기름진 음식이 있고, 심금을 자극하는 음악이 있고, 첨단 과학이 발달하는 가인의 문화가 인간을 어떻게 만들어 갔습니까 그것이 바로 라멕의 시에 잘나 타나 있으니 (창4:23) 라멕이 아내들에게 이르되 아 다와 씰라여 내 소리를 들으라 라멕의 아내들이여 내 말을 들으라 나의 창상을 인하 여 내가 사람을 죽였고 나의 상함을 인하여 소년을 죽였도다 라고 한 것처럼 성도덕 의 부패와 무자비한 살인과 힘이 없는 어린 소년까지 죽이고도 그것을 자랑스럽게 노래하는 잔혹함을 가져다주었을 뿐입니다. 라멕은 그렇게 하고서도 라멕은 양심 의 가책을 느끼기는커녕 (창4:24) 가인을 위하여는 벌이 칠 배일진대 라멕을 위하여는 벌이 칠십 칠 배이리로다 하였더라 고 노래한 것처럼 자신의 오만을 잘 나타내 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같은 가인의 후예들의 삶을 통해서 오늘 우리들에게 교훈 하는 말씀은 하나님을 떠난 가인의 문화는 아무리 도시가 번창하고, 경제가 성장하여 삶이 윤택하게 되고, 문화가 발달하고, 사람들이 온갖 향락을 추구하며 살아간다고 할지라도 하나님의 형 상대로 지으심을 받은 인간은 그같은 무신론의 문화는
1)만족이 없는 삶이었습니다-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인간은 하나님을 떠나서는 결코 만족할 수 없습니다.
2)평화가 없는 삶이었습니다-마음의 평화는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에서만 가능합니다. 술을 마시고 약을 먹고 온갖 쾌락을 추구하지만 만족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곳은 하나님을 떠난 감옥이기 때문입니다.
3)안전이 없는 삶이었습니다-성벽을 쌓았다는 것이 불안을 나타내는 것으로 하나님 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지 않으면 안전은 없습니다.
그러므로 보다 높고 두터운 벽이 아니라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입니다. 전쟁, 범죄, 질병 등입니다. 때가 되면 직업을 일고 파산하고 건강을 잃고 명예가 실추되며 그 동안 자신을 감춰주던 모든 벽들이 무너져 내리게 되는 때가 오게 됩니다.
4)견고함이 없었습니다-하나님을 떠난 가정은 일부 다처주의와 끔찍한 살인을 낳고 서도 그것을 공개적으로 자랑하는 젊은이들을 보게 됩니다,범죄는 증가되고 타인에 대한 사랑이나 동정심은 가라지고 복수의 정신과 잔인성으로 자제력은 상실되고 이 기심에 빠져서 자기에게 불이익을 당하게 되면 살인을 사양치 않는 무자비한 세계입니다. 이같은 가인의 모든 진보, 모든 발전, 모든 문화와 교육, 기술,건축 등의 문화는 마침내 홍수로 말미암아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모든 것은 무가 치한 것이 되고 말았습니다. 결론 오늘 우리 민족이 지금까지 경제만을 부르짖고, 선진화만을 내세우며, 과학을 발달 기키며 보다 나은 내일을 추구하며 살아오는 동안 우리의 주변이 마치 에덴 동쪽의 놋 땅처럼 되어버리고 말았다는 것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바라보지 아니하고 이웃과 담을 높이 쌓고 사랑을 나누지 않으며 철문을 안으로 굳게 잠그고 돈이 다라고 생각하고 온갖 향락과 무신론의 문화를 즐 기며 살아간 결과가 인간이 이럴 수가 있을까 하는 무자비함과 부도적함과 흉포함 으로 세상을 불안하게 하며 살맛이 없는 세상이 되게 하는 근본 원인이 가정 교육의 부재와 물질만능주의이기 전에 하나님을 떠난 무신론의 가인의 문화 때문이라는 사 실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만일 인간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지옥을 두려워하지 않는다면 어찌 부모를 공경하며 생명을 귀중히 여기며 죽음을 두려워하겠습니까 정말 인간의 생명은 하나님으로부터 왔으며, 하나님은 공의로우신 분이며, 사람이 죽은 것으로 다 끝나는 것이 아니라 사후에는 반드시 심판이 있다는 것을 인간이 믿 을 때만이 생명에 대한 존엄성과 죄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게 됩니다. 인간의 문화가 노래나 시를 막론하고 하나님을 찬양하고 사랑의 고귀함을 노래하게 될 때만이 그 노래는 인간의 정서를 순화시키는 기능을 할 수 있지만 그렇지 못할 때는 인간을 더욱 나쁜 쪽으로 자극하는 역기능 역할을 하게 됩니다. 로마의 폭군이 나 히틀러와 같은 나치주의자들이나, 쏘련 공산주의자들도 얼마나 음악을 좋아했는 지 모릅니다. 인간의 모든 진보와 발전, 교육수준의 향상, 재미있고 매력적인 일들이라고 할지라 도 하나님을 떠나서는 만족이 없고, 공허하며, 평화가 없고, 불안하며, 안정이 없 고, 두려움에 가득찬 세상을 만들어 갈 뿐입니다.
그러므로 이 문제를 해결하는 열쇠는 오직 하나 뿐인데 (창4:26)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는 말씀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죄를 범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죄 때문에 어떤 사람은 하나님을 찾고 어떤 사람은 더 깊은 죄에 빠지기도 합니다. 인간에게 진정한 만족과 평화는 잘살고 못살고를 떠나서 하나님을 떠난 가인과 달 리 여호와의 이름을 부른 셋처럼
1)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예배를 드리고, 찬양을 드리고, 기도하고, 겸손히 자기 죄를 고백하며, 자신의 죄를 하나님이 씻어주시기를 진지하게 기도하며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를 맺는 일입니다.
2)만일 깨어진 꿈, 쓰라린 실망감,불행, 죄책감으로 살고 있다면 그 원인이 돈 때 문이거나 어느 누구 때문이라고 생각하지 말고 그 문제를 가지고 수고하고 무거운 짐진 자를 부르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에게로 나아와야만 합니다. 그리스도는 열린 문이 되시며 십자가는 문제 해결의 열쇠가 될 것입니다. 가인은 죄 때문에 하나님으로부터 분리되어 그와 교제를 끊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죄가 만든 죄책감이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친구가 되며 회개와 고백을 통 해서 사죄함을 맛보게 하며 인간의 생명의 고귀함을 깨닫게 하며 짧은 한 평생을 바 르게 살아야만 함을 깨우쳐 줍니다. 예화:1844년에 피지 섬을 방문했던 웨스팅이라는 학자는 7불로 사람 한 사람을 살 수 있었으며 식인종들이었었는데, 지금은 600만 불을 준다고 해도 사람을 살 수 없 으며 식인의 풍습도 사라지고 3000여개의 교회가 주일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아름다운 섬이 되었습니다.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이 세상이 전부가 아니며 이 세상은 영원에 이르는 하나 의 과정이며 중간 역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가인의 문화를 부러워하지도 말며 세 속에 빠져 하나님을 떠나서 살지 말아야만 합니다. 성경은 말할 것도 없고 지난 날의 역사를 살펴 보십시오. 하나님의 존재를 부인하 고 이간의 생명을 천대하며 가인처럼 살아간 정치, 군벌, 사상, 문화,종교, 경제가 결과적으로 망하고야 말았다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세계 역사를 통치하시는 변함없는 원칙입니다. 하나님 외에는 세상 그 무엇도 해 아래서 새것이 없으며, 영원할 수 없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만 합니다. 전12:13,14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 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 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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