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을 이긴 요셉 (창39:1-23)
본문
오늘 읽었던 창세기 39장은 보디발의 집에서의 요셉이 행한 일들에 대해서 말씀을 합니다. 1-6절은 보디발의 집에 팔려가서 일하는 모습을, 7-18절은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거절하므로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가는 모습과, 19-23절은 옥속에서 일어난 일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1.보디발의 집에 팔려간 요셉(1-6절)
2.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거절하는 요셉(7-18절)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을 때에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받는 모습과 그 유혹의 일들을 만났을 때에 요셉의 대처하는 모습, 그리고 그로 인하여 당하는 일들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통해서 우리들이 무엇을 알수 있겠습니까
1원치 아니하지만 당하는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을 보면 요셉이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당하여 감옥에 들어가게 되는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요셉이 유혹을 당하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는 것을 그가 원해서 그런 일들을 당한 것이 아님을 볼수 있습니다. 요셉은 원치 아니하지만 상황이 그렇게 되어갔고, 결국 원하지 아니하는 어려움에 직면하게 됨을 볼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길에 원하는 것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원치 아니하는 일들을 당하는 것을 봅니다. ㉮원하지만 이루어지지 않는 일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들은 믿음으로 살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살지 못하고, 원치 아니하는 불신앙의 길에 서 있는 모습을 봅니다. 우리들은 기도하며 응답을 받으면 살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원하는 기도의 삶과 응답보다는 그렇지 아니하는 일들을 만남을 볼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전도하며 영혼구원하는 일들을 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전도하여 영혼구원하는 일들 보다는 내 만족과 평안함으로 살아가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도 무엇이라 말씀하고 있습니까 (롬 7: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그런데 왜 우리가 원하는바는 행하지 않고 원치 아니하는 일들을 행하고 있는 것입니까 (롬 7:20)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 니라 (롬 7: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 로다 (롬 7:22)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롬 7: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우리 속에 있는 이 두법이 싸워 내 지체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끌고 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끌려가지 아니하려면 우리의 영성을 키워야 합니다. 영을 강하게 키워야 합니다. 그리하여 영으로 육신을 지배해야 합니다. ㉯또 우리들은 원치아니하지만 일들을 만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누가 그런 불행을 당하고 싶겠습니까
그런데도 불행을 당합니다. 누가 문제를 만나고 싶겠습니까
그런데 문제를 만난다는 것입니다. 누가 아프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아픈일이 일어 난다는 말입니다. 아니 어떻게 보면 믿음으로 살고자 함에도 더 어려운 일을 당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무엇이라 말씀하셨습니까 (마 5:10)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마 5:11)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마 5: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그런데 우리들이 그런 가운데서 가져야 할 자세가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나의 복을 위하여 주시는 사건이구나, 나를 복되게 하시기 위하여 나는 원치 아니하지만 이런 일을 만나게 하는구나 여기고 믿음으로 이겨 나아가야 합니다. 본문에 요셉의 경우가 그런 경우가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요셉이 열심히 일을 잘 하는데 곤란하게 만드려고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만나게 한 것이 아니고, 또 바로 했는데 누명을 씌워 감옥에 집어 넣은 것이 아닙다. 요셉을 그런 과정을 거쳐서 하나님께서 요셉을 복되게 하시려고 지금 요셉이 원치 아니하는 일들을 만난 것을 볼수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도 살아가면서 여러분들은 원치 아니하는 여러 일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원치 않는 여러 일들을 만났을 때에 거기에 하나님의 놀라우신 계획하심이 있음을 믿음의 눈으로 볼수 있기를 바랍니다. 반드시 있습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그런 엄청난 일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들이 그런 원치 않는 일들을 만났을 때에 갖는 자세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것이 복이 될 수도 있고, 화가 될 수도 있습니다.
2일을 당하였을 때에 어떤 자세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들이 원하지만 원치 않는 일들을 만나던, 원치 아니하지만 여러 일들을 만나던 그런 일들을 만났을 때에 우리들이 어떤 자세를 가지느냐 하는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요셉은 원치 않는 일들을 만났을 때에 어떻게 합니까 ㉮원치 아니하는 보디발 아내의 유혹의 일들을 잘 이겨 나갑니다. 즉 유혹의 일들을 만났을 때에는 그 유혹을 이겨 나가야 내가 원치 아니하는 일들을 만났을 찌라도 그것의 사건이 복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모양만 다를 뿐이지 이런 수많은 유혹의 사건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도 어떤 유혹을 당했습니까 (마 4:5)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마 4:6)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 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마 4: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 (마 4: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마 4:9)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럴 때에 예수님은 어떻게 이기셨습니까 (마 4: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 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우리들이 유혹의 일들을 이겨 나갈수 있는 길은 말씀위에 굳게 서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이긴다는 것은 곧 무엇을 말씀하는 것입니까 말씀은 곧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이기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마귀 사탄을 이길수 있게 합니다. 이렇게 마귀의 시험, 유혹을 잘 이겨 났더니 어떤 일들이 일어 났습니까 (마 4:1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그렇습니다. 원치 아니하는 유혹의 일들을 잘 이긴자가 복된 사건의 주인공이 되어집니다. ㉯원치 아니하는 감옥의 일들을 낙심하지 아니하고 믿음으로 받아 드립니다. 또 보십시오. 요셉이 원치 아니하는 감옥의 사건을 만났지만 그는 그런 일들을 만났다고 원망하거나, 불평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어진 현실을 받아 들이고, 그 속에서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앞에서 살아가려고 힘씀을 볼수 있습니다. 그 모습이 어떤 모습입니까 21절에 감옥에 있는 요셉에게 하나님은 함께 하셨다고 했고, 22절에 전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겼다고 말함을 볼때에 그가 낙심하거나 원망함이 아니라 얼마나 성실히 했는지를 볼수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이 원치 아니하는 일들을 만났을 때에 그 원치 아니하는 일로 인하여 실망이 일어날 수 있고, 원망이 일어날 수 있고, 불평이 일어 날수 있습니다. 왜요 원하는 바 선은 행치 않고 원치 아니하는 악을 행하니 그렇고, 원치 않는 힘든 일을 만났으니 그렇게 기분이 좋을리는 만무 합니다. 그러나 원치 아니하는 일들을 믿음으로 잘 이기는자는 주께서 주시는 큰 은혜 가운데 반드시 거할 것입니다.
3.감옥에 갇히는 요셉(19-23절) 요셉은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보디발 아내에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불법을 행한 사람이 감옥에 가는 것이 아니라 불의를 행하지 아니한 사람이 감옥에 들어가게 되어 집니다. 열심히, 부지런히 사는 사람이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대강 적당히 머리 굴리고 사는 곳이 이 세상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 믿지 아니하는 사람이 잘 사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런 모습을 보고 그 믿음의 길에, 정직한 길에, 열심의 길에서 벗어나 잘살아 보이는 그들의 무리들과 같이 살아 가려합니다. 여러분! 비록 열심히 했음에도 열심의 열매가 없다고 열심을 멈추어서는 안됩니다. 비록 예수를 잘 믿어 왔음에도 믿음의 결국이 눈에 보이는 좋지 않는 일들을 만나게 했다고 해서 믿음의 길에서 떠나서는 안됩니다. 비록 정직하게 행하였는데도 정직하게 행하지 않는 사람이 잘된다고 해서 정직을 버리고 정직하지 않는 길로 들어 서서는 안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고, 사람이 어떻게 보고 평가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이 땅에 행한 모든 것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갚아 주심의 일이 있다는 것과 그 하나님께서 보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세상의 사람들이 어떻게 보고, 어떻게 평가하는가 하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시고 평가하실 것인가를 생각하고 살아야 합니다. 당장 앞만 보지 말고 나중을 바라보고 살아야 합니다. 요셉이 이런 것을 생각했기에 억울한 일을 당하였어도 그는 억울한 일을 억울하게 풀지 아니함을 볼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아십니다. 하나님은 갚아 주십니다. 오늘 본문에 그 증표로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을 보여 주십니다. 여러분! 세상의 사람들이 다 불의와 불법을 행하여 가서 부자가 된다고 해도 우리들은 그 길로 가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의 사람들이 믿지 아니해도 잘살고, 잘 입는다고 해서 나도 그들과 같이 되리라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주님앞에서 삽시다. 주님이 반드시 갚아 주심의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1.보디발의 집에 팔려간 요셉(1-6절)
2.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거절하는 요셉(7-18절)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서 열심히 일하고 있을 때에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받는 모습과 그 유혹의 일들을 만났을 때에 요셉의 대처하는 모습, 그리고 그로 인하여 당하는 일들에 대해서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런 말씀을 통해서 우리들이 무엇을 알수 있겠습니까
1원치 아니하지만 당하는 일이 있다는 것입니다. 본문의 말씀을 보면 요셉이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당하여 감옥에 들어가게 되는 모습을 볼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요셉이 유혹을 당하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가는 것을 그가 원해서 그런 일들을 당한 것이 아님을 볼수 있습니다. 요셉은 원치 아니하지만 상황이 그렇게 되어갔고, 결국 원하지 아니하는 어려움에 직면하게 됨을 볼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들이 살아가는 길에 원하는 것은 잘 이루어지지 않고 원치 아니하는 일들을 당하는 것을 봅니다. ㉮원하지만 이루어지지 않는 일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우리들은 믿음으로 살기를 간절히 원합니다.
그런데 믿음으로 살지 못하고, 원치 아니하는 불신앙의 길에 서 있는 모습을 봅니다. 우리들은 기도하며 응답을 받으면 살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원하는 기도의 삶과 응답보다는 그렇지 아니하는 일들을 만남을 볼수 있습니다. 우리들은 전도하며 영혼구원하는 일들을 하며 살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전도하여 영혼구원하는 일들 보다는 내 만족과 평안함으로 살아가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그래서 바울도 무엇이라 말씀하고 있습니까 (롬 7:19) 내가 원하는 바 선은 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원치 아니하는 바 악은 행하는도다
그런데 왜 우리가 원하는바는 행하지 않고 원치 아니하는 일들을 행하고 있는 것입니까 (롬 7:20) 만일 내가 원치 아니하는 그것을 하면 이를 행하는 자가 내가 아니요 내 속에 거하는 죄 니라 (롬 7:21)
그러므로 내가 한 법을 깨달았노니 곧 선을 행하기 원하는 나에게 악이 함께 있는 것이 로다 (롬 7:22) 내 속 사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하되 (롬 7:23) 내 지체 속에서 한 다른 법이 내 마음의 법과 싸워 내 지체 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나를 사로잡아 오는 것을 보는도다 우리 속에 있는 이 두법이 싸워 내 지체속에 있는 죄의 법 아래로 끌고 가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렇게 끌려가지 아니하려면 우리의 영성을 키워야 합니다. 영을 강하게 키워야 합니다. 그리하여 영으로 육신을 지배해야 합니다. ㉯또 우리들은 원치아니하지만 일들을 만나는 경우도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누가 그런 불행을 당하고 싶겠습니까
그런데도 불행을 당합니다. 누가 문제를 만나고 싶겠습니까
그런데 문제를 만난다는 것입니다. 누가 아프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겠습니까
그런데 아픈일이 일어 난다는 말입니다. 아니 어떻게 보면 믿음으로 살고자 함에도 더 어려운 일을 당하는 것을 볼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무엇이라 말씀하셨습니까 (마 5:10) 의를 위하여 핍박을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라 (마 5:11) 나를 인하여 너희를 욕하고 핍박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스려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마 5:12)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을 이같이 핍박하였느니라
그런데 우리들이 그런 가운데서 가져야 할 자세가 있습니다.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나의 복을 위하여 주시는 사건이구나, 나를 복되게 하시기 위하여 나는 원치 아니하지만 이런 일을 만나게 하는구나 여기고 믿음으로 이겨 나아가야 합니다. 본문에 요셉의 경우가 그런 경우가 아닙니까 하나님께서 요셉이 열심히 일을 잘 하는데 곤란하게 만드려고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만나게 한 것이 아니고, 또 바로 했는데 누명을 씌워 감옥에 집어 넣은 것이 아닙다. 요셉을 그런 과정을 거쳐서 하나님께서 요셉을 복되게 하시려고 지금 요셉이 원치 아니하는 일들을 만난 것을 볼수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도 살아가면서 여러분들은 원치 아니하는 여러 일들을 만나게 됩니다. 그러나 원치 않는 여러 일들을 만났을 때에 거기에 하나님의 놀라우신 계획하심이 있음을 믿음의 눈으로 볼수 있기를 바랍니다. 반드시 있습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그런 엄청난 일들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다만 우리들이 그런 원치 않는 일들을 만났을 때에 갖는 자세에 따라 달라집니다. 그것이 복이 될 수도 있고, 화가 될 수도 있습니다.
2일을 당하였을 때에 어떤 자세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들이 원하지만 원치 않는 일들을 만나던, 원치 아니하지만 여러 일들을 만나던 그런 일들을 만났을 때에 우리들이 어떤 자세를 가지느냐 하는 것입니다. 본문에 보면 요셉은 원치 않는 일들을 만났을 때에 어떻게 합니까 ㉮원치 아니하는 보디발 아내의 유혹의 일들을 잘 이겨 나갑니다. 즉 유혹의 일들을 만났을 때에는 그 유혹을 이겨 나가야 내가 원치 아니하는 일들을 만났을 찌라도 그것의 사건이 복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날 우리들에게도 모양만 다를 뿐이지 이런 수많은 유혹의 사건을 만나게 됩니다. 예수님도 어떤 유혹을 당했습니까 (마 4:5) 이에 마귀가 예수를 거룩한 성으로 데려다가 성전 꼭대기에 세우고 (마 4:6) 가로되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 뛰어내리라 기록하였으되 저가 너를 위하여 그 사 자들을 명하시리니 저희가 손으로 너를 받들어 발이 돌에 부딪히지 않게 하리로다 하였느니라 (마 4:7) 예수께서 이르시되 또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을 시험치 말라 하였느니라 하신대 (마 4:8) 마귀가 또 그를 데리고 지극히 높은 산으로 가서 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마 4:9) 가로되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 이럴 때에 예수님은 어떻게 이기셨습니까 (마 4:10) 이에 예수께서 말씀하시되 사단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 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 우리들이 유혹의 일들을 이겨 나갈수 있는 길은 말씀위에 굳게 서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으로 이긴다는 것은 곧 무엇을 말씀하는 것입니까 말씀은 곧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이기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만이 마귀 사탄을 이길수 있게 합니다. 이렇게 마귀의 시험, 유혹을 잘 이겨 났더니 어떤 일들이 일어 났습니까 (마 4:11) 이에 마귀는 예수를 떠나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수종드니라 그렇습니다. 원치 아니하는 유혹의 일들을 잘 이긴자가 복된 사건의 주인공이 되어집니다. ㉯원치 아니하는 감옥의 일들을 낙심하지 아니하고 믿음으로 받아 드립니다. 또 보십시오. 요셉이 원치 아니하는 감옥의 사건을 만났지만 그는 그런 일들을 만났다고 원망하거나, 불평하거나 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어진 현실을 받아 들이고, 그 속에서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앞에서 살아가려고 힘씀을 볼수 있습니다. 그 모습이 어떤 모습입니까 21절에 감옥에 있는 요셉에게 하나님은 함께 하셨다고 했고, 22절에 전옥이 옥중 죄수를 다 요셉의 손에 맡겼다고 말함을 볼때에 그가 낙심하거나 원망함이 아니라 얼마나 성실히 했는지를 볼수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이 원치 아니하는 일들을 만났을 때에 그 원치 아니하는 일로 인하여 실망이 일어날 수 있고, 원망이 일어날 수 있고, 불평이 일어 날수 있습니다. 왜요 원하는 바 선은 행치 않고 원치 아니하는 악을 행하니 그렇고, 원치 않는 힘든 일을 만났으니 그렇게 기분이 좋을리는 만무 합니다. 그러나 원치 아니하는 일들을 믿음으로 잘 이기는자는 주께서 주시는 큰 은혜 가운데 반드시 거할 것입니다.
3.감옥에 갇히는 요셉(19-23절) 요셉은 보디발 아내의 유혹을 거절했다는 이유로 보디발 아내에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불법을 행한 사람이 감옥에 가는 것이 아니라 불의를 행하지 아니한 사람이 감옥에 들어가게 되어 집니다. 열심히, 부지런히 사는 사람이 잘 사는 것이 아니라 대강 적당히 머리 굴리고 사는 곳이 이 세상입니다. 예수 믿는 사람이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 믿지 아니하는 사람이 잘 사는 세상입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그런 모습을 보고 그 믿음의 길에, 정직한 길에, 열심의 길에서 벗어나 잘살아 보이는 그들의 무리들과 같이 살아 가려합니다. 여러분! 비록 열심히 했음에도 열심의 열매가 없다고 열심을 멈추어서는 안됩니다. 비록 예수를 잘 믿어 왔음에도 믿음의 결국이 눈에 보이는 좋지 않는 일들을 만나게 했다고 해서 믿음의 길에서 떠나서는 안됩니다. 비록 정직하게 행하였는데도 정직하게 행하지 않는 사람이 잘된다고 해서 정직을 버리고 정직하지 않는 길로 들어 서서는 안됩니다. 왜 그렇습니까 우리는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고, 사람이 어떻게 보고 평가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이 땅에 행한 모든 것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갚아 주심의 일이 있다는 것과 그 하나님께서 보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세상의 사람들이 어떻게 보고, 어떻게 평가하는가 하기 이전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보시고 평가하실 것인가를 생각하고 살아야 합니다. 당장 앞만 보지 말고 나중을 바라보고 살아야 합니다. 요셉이 이런 것을 생각했기에 억울한 일을 당하였어도 그는 억울한 일을 억울하게 풀지 아니함을 볼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아십니다. 하나님은 갚아 주십니다. 오늘 본문에 그 증표로 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을 보여 주십니다. 여러분! 세상의 사람들이 다 불의와 불법을 행하여 가서 부자가 된다고 해도 우리들은 그 길로 가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의 사람들이 믿지 아니해도 잘살고, 잘 입는다고 해서 나도 그들과 같이 되리라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주님앞에서 삽시다. 주님이 반드시 갚아 주심의 일들이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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