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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음, 인생, 신앙 (창3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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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5월에 가장 많이 소외되는 계층이 있습니다. 그것이 청년들입니다. 그래서 오늘은 청년에게 주는 말씀을 생각해 보기로 하겠습니다. 이 세상에는 몇 가지 소망을 주는 단어가 있는데 그 중에는 청년이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청년, 청춘, 처녀, 젊음.” 이 얼마나 가슴설레게 하는 단어들입니까 그래서 괴테는 “젊은이는 젊다는 것만으로도 취할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빅토르 위고는 “청년은 슬픔 속에서도 광택이 난다”고 했습니다. 분명 젊음은 인생에 있어서 가장 소중한 부분입니다. 인생에 있어서 무한한 자본이고 가능성이고 순수함입니다. 청년 시절은 이렇게 소중한 때입니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그 젊음의 시절을 소중하게 잘 가꾸어야 합니다. 본문을 보면 한 젊은이의 모형이 소개되어 있습니다. 그 사람은 우리들이 너무나 잘 아는 요셉이라는 청년입니다. 이 요셉의 삶을 통해서 우리는 젊은이의 상을 볼 수 있습니다. 오늘 성년이 되고 청년이 되는 젊은이들은 이 젊은이의 상을 주의 깊게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우선 요셉이라는 청년은 장래가 매우 불투명했던 청년입니다. 이 사람은 남의 나라에 노예로 팔려간 인생입니다. 남의 나라에서 종살이를 합니다. 처지가 아주 열악했습니다. 미래가 매우 비관스러웠습니다. 그래서 그는 고민스런 나날을 보내고 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마음 고생이 많았겠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요셉은 자신의 입지를 끝내 성공으로 바꾸어 놓았습니다. 우리는 요셉의 모습에서 몇 가지 남다른 점을 살펴볼 수가 있습니다.
1. 미래를 잘 가꾸었습니다. “(창39:4) 요셉이 그 주인에게 은혜를 입었다”고 했습니다. 요셉은 지금 노예 신분입니다. 당시 노예는 짐승 취급을 받고 살았습니다. 그만큼 노예는 무가치한 존재입니다. 그럼에도 그 주인은 요셉을 극진히 사랑했습니다. 그래서 그 주인은 요셉에게 자기의 소유를 다 맡겼습니다.
그렇다면 이 청년 요셉이 얼마나 신실하게 일을 했겠습니까 얼마나 믿음직하게 일을 했으면 노예에게 집안일을 다 맡겼겠습니까 이 말은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하루하루를 잘 가꾸어 나갔다는 말입니다. 청년에게는 이 같은 준비가 필요합니다. 미래를 위해서 자신을 가꾸어야 합니다. 강하고 실력 있는 나를 만들기 위해서 충분한 준비를 해야 합니다. 오늘날이 심각한 경쟁의 시대라고 하지만 실력만 있으면 두려울 것이 하나 없는 세상입니다. 젊은 시절에 충분한 준비만 해두면 살아가다가 잠시 파도가 치고 풍랑이 일어도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풍랑이 일고 파도가 거센 바다가 모두에게 반드시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파도 타는 사람에게는 파도가 높을수록 좋습니다. 그래야 맛이 있고 즐거움이 있고 재미가 있습니다. 요셉은 젊은 시절 원치는 않았지만 한때 거센 파도에 휩쓸리기도 했고 험한 바다를 항해하는 것 같은 험난한 시절을 보냈습니다. 그렇지만 그는 그런 어려운 시절을 자신의 창창한 미래를 우해서 인내하며 잘 가꾸어 나갔습니다. 그 결과 요셉은 그 어려운 순간들을 지혜 있게 잘 넘겼을 뿐만 아니라 자신의 이상을 현실로 바꾸어 놓는 지혜를 발휘했습니다. 이것이 우리들이 요셉에게서 눈여겨 볼 만한 점입니다.
2. 인생을 잘 가꾸었습니다. 1절 말씀을 보면 “(창39:1) 요셉이 이끌려 애굽에 내려가매 바로의 신하 시위대장 애굽사람 보디발이 그를 그리로 데려간 이스마엘 사람의 손에서 그를 사니라 ”고 했습니다. 요셉은 애굽의 노예 시장에 내놓여 졌습니다. 우리나라의 가축 시장에서 가축들을 내놓으면 사람들이 와서 마음에 드는 짐승을 골라서 사가듯이 노예 시장에서 요셉은 그렇게 팔려 갔습니다. 그때 그를 산 사람이 바로의 경호실장 보디발입니다. 그는 당시 그 나라의 고관입니다. 그가 많은 노예들 가운데서 요셉을 골랐습니다. 그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6절 말씀을 보면 “(창39:6) 주인이 그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임하고 자기 식료 외에는 간섭하지 아니하였더라 요셉은 용모가 준수하고 아담하였더라 ”고 했습니다. 그 말은 요셉이 자신의 인생을 잘 가꾸었다는 말입니다. 사람은 외모도 중요합니다. 사람의 외모가 단정하면 그의 내면도 단정합니다. 외모와 내면이 단정하다는 것은 그이 인생이 단정하다는 말입니다. 내면이 잘 가꾸어지면 그 모습이 외모로 표현됩니다. 사람의 외모는 곧 내면을 말합니다. 내면의 모습 그대로 외모는 거짓 없이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내면이 병들고 허약한 사람은 외모에 그대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사람은 내면을 잘 가꾸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인생이 단정하고 정결하고 아름다워집니다. 내면을 가꾸기 위해서는 먼저 밝고 건전하고 희망적인 마음과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건강하고 밝은 인생이 만드어지고 가꾸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젊은이가 항상 불만을 품고 불평하며 살아간다면 그 인생도 결코 건강하지 못할 것입니다. 그런 마음은 젊은이가 가질 마음이 아닙니다. 젊단는 것만으로도 충분하고 다 가진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불평과 불만을 가질 필요가 없습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인생은 참으로 엄숙한 것입니다. 진지하고 엄숙하게 살아야 합니다. 인생을 엄숙하게 살아가는 데는 정신도 중요하고 과정도 중요하고 절차나 상징이나 순서도 중요합니다.
그런데 오늘 젊은이들은 이 같은 절차나 순서를 생략하거나 무시하고 살아가는 경향이 있습니다. 한 예로 결혼을 들 수 있습니다. 요즘 젊은이들은 너무나 쉽게 순서를 바꾸고 절차를 무시하고 상징성을 도외시합니다. 이것은 좋지 않습니다. 그렇게 살다 보니까 젊은 부부들 사이에 갈등이 많고 괴리가 많습니다. 그래서 순결 서약이라는 것이 생겨났습니다. 순서를 무시하고 절차를 무시하고 상징성을 되외시하고 살아가다 보니까 그것이 아니라는 것을 뒤늦게 깨닫게 된 것입니다. 말하자면 이것은 인생을 좀더 엄숙하게 살고 순서를 지키며 살자는 뜻입니다. 옛날 사람들은 이 점에 있어서는 철저했습니다. 그러기에 옛날에는 부부가 파경에 이르는 경우가 적었습니다. 순서나 절차 그리고 상징성이나 과정을 무시하면 살아가기는 쉽고 간편한데 그 대신 인생의 엄숙성이 없어집니다. 그래서 그 인생이 경시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구타를 당하는 아내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조사를 해보았더니 혼전 임신자들이 그런 경우가 많더라는 것입니다. 매일 구타를 당하는 아내들도 22%나 되고 주 1회 당하는 경우는 32%나 되었다고 합니다. 그것은 시작이 잘못되어서 그렇습니다. 인생에 하나의 격이 없어져 버려서 그렇습니다. 그러니가 사람이 얻어맞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요셉은 그 많은 노예들 가운데서 우선적으로 선택되어 보디발의 집으로 갔습니다. 그것은 그의 인생이 잘 가꾸어져 그의 모습에 진실성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진실하고 그 모습이 잘 가꾸어지면 이렇게 사람들로부터 사랑을 받습니다.
3. 마음을 잘 가꾸었습니다. “(창39:6) 주인이 그 소유를 다 요셉의 손에 위임했다”고 했습니다. 이 말은 그 마음을 잘 가꾸었다는 말입니다. 요셉이 마음을 얼마나 잘 가꾸었으면 근본도 모르고 신분도 믿을 수 없는 일개 노예에게 자신의 재산을 모두 위임할 수가 있겠습니까 사람은 이렇게 다른 사람들이 믿어 주고 신뢰해 주고 알아 주어야 합니다. 사람이 신뢰할 만한 인생을 살아간다는 것은 그리 쉬운 일이 아닙니다. 사람이 사람들로부터 신뢰를 받으려면 무엇보다도 먼저 마음을 가꾸어야 합니다. 잘 가꾸어진 마음이어야 신뢰를 받고 은혜를 아는 삶을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사람은 적어도 세 가지의 은혜를 잊지 말아야 합니다. 첫 번째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과실나무가 저 혼자서 꽃을 피우고 열매를 맺는 것이 아닙니다. 거기에는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 즉 바람과 햇빛과 적당한 비가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농부의 일도 아니고 나무가 하는 일도 아닙니다. 순전히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농부는 이 같은 이치를 잘 압니다. 그러기에 절대로 경거망동을 하지 않습니다. 그것은 하늘의 힘을 알고 그 은혜를 알기 때문입니다. 사람 또한 절로 살아지는 존재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은혜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두 번째는 스승의 은혜입니다. 사람이 스승의 은혜를 아는 것은 성숙한 증거입니다. 탈무드를 보면 학교나 선생이 없는 곳에는 사람이 살지 못하게 하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스승과 부모가 함께 물에 빠졌을 때는 먼저 스승부터 건져내고 다음에 부모를 건져내라고 했습니다. 스승의 은혜는 그렇게 큰 것입니다. 세 번째는 부모의 은혜입니다. 부모는 아무리 무능해도 존귀한 존재입니다. 그것은 하늘이 맺어 준 관계입니다. 호주는 한국의 24배나 되는 큰 나라입니다.
그런데 인구는
1,500만밖에 되지 않습니다. 이 나라는 아주 건강한 도덕과 건전한 정신이 있는 나라입니다. 그것은 그 나라를 지탱하는 하나의 그룹이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바로
3, 4대가 함께 모여 살아가는 전통 있는 집안들입니다. 아직도 그 나라는 젊은이들이 부모를 깍듯이 모시는 전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부모의 자리에 앉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리고 주일날이면 연로한 부모님과 함께 교회에 가
3, 4대가 한자리에 앉아서 예배를 드리는 경건한 신앙적 전통을 아직도 이어가고 있다고 합니다. 그러니 그 나라가 얼마나 건강할 것이며 그 가정들이 또 얼마나 건전할 것이며 그 인생들은 또 얼마나 정중함이 있겠습니까 사람의 가치가 어디에 있습니까 그것은 은혜를 아는 데 있습니다. 거기에 인간의 무게가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은 마음을 가꾸는 일이 참으로 소중합니다. 그런 소중한 생각과 뜻과 정신들은 모두 마음에서 발생되고 만들어지며 우러나옵니다. 청년은 무엇보다도 이 마음을 가꾸어야 합니다. 그래야 그 인생이 복을 받습니다. 요셉은 그런 마음을 가꾸는 데 힘썼습니다. 형들에 대한 분노와 증오와 미움을 마음에서 삭이고 미래를 위해서 그 마음을 가꾸고 만들어 나갔습니다. 그래서 결국 그는 자신의 뜻을 아무런 장애 없이 잘 펼쳐 나갈 수 있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요셉이 그렇게 복을 받고 그 인생이 화려하게 전진해 갈 수 있었던 원인입니다.
4. 신앙을 잘 가꾸었습니다. “(창39:2)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창39:3)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 ”고 했습니다. 또 “(창39:5)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라고 했습니다. 얼마나 복된 말씀들입니까 요셉은 어디를 가나 염려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는 어디를 가든지 외롭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그와 함께하셨기 때문입니다. 또 그는 어디를 가든지 길이 막히질 않았습니다. 하나님이 그보다 앞서 가셔서 그의 길을 만드시고 장애물을 거두시고 거친 길을 평탄한 길로 만들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 원인은 하나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니” 그것 때문입니다. 이 말씀이 핵심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하셨더라” 이것이 요셉에게는 최대의 무기였습니다. 오늘 젊은이들은 참 약습니다. 야무지고 똑똑하기 그지 없습니다.
그런데 또한편으로 보면 오늘만을 중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현실 세계에만 관심을 두고 살아갑니다. 저 높은 곳, 저 위를 바라보는 눈이 없습니다. 그곳에는 관심도 없습니다. 그래서 때로 기고만장하기도 하고 자만하기도 하고 건방을 떨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평상시에는 별로 필요 없는 대상같이 생각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오히려 나를 속박하는 귀찮은 존재같이 여겨지기도 합니다. 사람이 건강할 때는 병원을 필요로 하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일단 병이 들면 병원이 얼마나 절실하게 필요한지를 비로소 깨닫게 됩니다. 사람이 물에 빠지면 나무 조각 하나가 얼마나 소중한가를 알게 됩니다. 또 배고픈 사람만이 누룽지 한 조각이 얼마나 소중한가를 압니다. 그래서 사람은 경험적인 존재입니다. 인간이 실존의 자리에 놓여 보아야 비로소 하나님의 존재가 얼마나 강력한가를 알게 됩니다. 오늘 부모들은 이 점을 명심하십시오. 세상에서 가장 귀한 존재는 자식입니다. 부모들은 자식 문제라면 목숨이라도 내놓을 만큼 헌신적입니다. 그래서 자식들에게 한푼이라도 더 물려 주려고 안간힘을 쓰고 또 그렇게 많이 물려 주면 다 되는 줄로 착각을 하고 있는데 그 점이 바로 문제입니다. 재물은 절대로 50년 100년 가지 않습니다. 한 가문이 영원히 부귀와 영화를 누릴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공평한 일이 아닙니다. 그래서 인간사를 보면 재물은 언제나 돌고 도는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어제의 영화가 내일에 가면 초라하게 변해 버리고 어제의 권세도 몇 년 가면 초라하게 퇴색하고 맙니다. 이것이 진리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인간사 새옹지마입니다. 우리 신앙인들은 이런 문제에 너무 집착해서는 안 됩니다. 그보다 더 소중한 부분을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것이 신앙의 유산입니다. 신앙의 유산은 대를 이어가면서 힘을 발휘합니다. 야곱이 인생을 살면서 산전수전 다 겪습니다. 야곱처럼 험악한 인생을 살아간 사람도 없습니다. 그런 과정을 겪으면서 야곱이 가장 힘있게 의지했던 것이 하나님입니다. 그가 돌베개를 베고 잠을 자던 광야에서 만난 하나님을 그는 평생 잊지를 못합니다. 그래서 야곱은 아들 요셉을 신앙으로 훈련시켰고 요셉은 어려서부터 신앙 교육을 받고 자랍니다. 그러던 어느 날 그는 노예로 팔려 가고 그 어려운 처지를 하나님에 대한 신앙으로 버텨 나갑니다. 그때 그 어렵고 험난한 시절을 까딱하지 않고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주어진 유산의 힘도 아니고 가정적인 배경도 아니고 순전히 신앙 때문입니다. 이것이 신앙 유산의 힘입니다. 청년기는 인생 가운데서 가장 소망적인 때입니다. 떠오르는 태양과도 같은 시절입니다. 그래서 청년은 미래를 가꾸어야 합니다. 인생도 가꾸어야 합니다. 마음도 가꾸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신앙을 가꾸어야 합니다. 그래야 창창한 미래를 하나님과 함께 살아갈 수 있으며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오늘 젊은이들은 요셉의 모습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가장 세련된 신앙을 지닌 젊은이의 이상형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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