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교회는 꿈을 파는 백화점입니다 (창35:9-15)

본문

꿈을 가진 성도가 됩시다. 지난주간에 좋은 경험을 했습니다. 저는 오래 전에 디스크로 고생하다가 척추수술을 했습니다. 그래서 허리를 보호하기 위해서 매일 아침 새벽기도회를 맞치고 나면 목욕을 가서 샤우나실에서 가벼운 운동을 합니다.
그런데 정기적으로 가는 목욕탕에서 한주간 휴업을 하게 되어 이웃의 다른 여러 목욕탕을 이용하면서 목회에 많은 아이디어를 얻었습니다.
첫째로 목욕탕의 생명은 물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물 좋은 목욕탕을 찾습니다. 다음으로는 이용하기에 편리해야 합니다. 주차문제를 비롯한 샤워시설에 불편함이 없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주인과 근무자들이 친절해야 합니다. 손님을 맞이하는 얼굴에 미소를 머금고 봉사정신이 충만해 있어야 합니다. 부흥하는 교회도 이와마찬가지입니다. 목욕탕에 물이 좋아야 하는 것처럼 예배 분위기와 목사의 설교가 좋아야 합니다. 예배는 설교를 담은 그릇이요 설교는 여호와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최고의 수단입니다. 다음으로는 신앙생활 하기에 편해야 합니다. 건물의 구조적인 문제도 중요하지만 그 보다는 영적인 문제이며 정신적인 문제입니다. 교회에 들어오면 마음에 평안을 얻을 수 있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는 교회의 일군들이 사명감을 가지고 일해야 합니다. 영혼을 가슴으로 사랑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 양무리의 아픔에 동참하는 목양의 심정이 있어야 합니다. 교회는 꿈을 파는 곳입니다. 이 땅 위에서 영원한 꿈을 파는 곳은 교회밖에 없습니다. 교회는 인생들에게 꿈을 파는 가계요, 수퍼마켓이요, 백화점입니다. 세상에서 죄와 사망권세 아래서 낭패와 좌절에 빠진 인생에게 교회가 꿈을 주어야 합니다. 교회는 인간의 삶의 가치관을 바꾸어 주는 꿈의 시장입니다. 인생에게 가장 소중한 것이 꿈입니다. 꿈이 있는 개인이나 가정이나 공동체는 결코 망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인생에게 가장 큰 불행은 꿈을 잃어버린 인생입니다.
첫째:꿈을 가지면 야곱에게도 희망이 있습니다. 읽을말씀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매 하나님이 야곱에게 나타나사 그에게 복을 주시고,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다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9-10) 이 땅 위에서 야곱만큼 고생한 자도 그리 가히 없을 것입니다. 그가 노후에 애굽의 바로 앞에 서서 그 인생을 회고할 때 “. 내 나그네 길의 세월이 일백삼십년이니이다 나의 연세가 얼마 못되니 우리 조상의 나그네 길의 세월에 미치지 못하나 험악한 세월을 보내었나이다”(창세기 47:9)라고 했습니다. 그는 지나온 그 일생을 돌이켜 볼 때 인생의 고비 고비를 넘길 때마다 사선을 넘는 체험들을 해 왔습니다. 특별히 그 인생에 있어서 영적인 삶의 전환이 이루어진 얍복 나루의 사건은 잊을 수 없는 사건입니다. 그때 야곱이 이스라엘로 변화를 받은 것입니다. 꿈을 가지고 살면 야곱에게도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언약과 약속을 붙들고 살면 야곱에게도 소망이 있습니다.
1 벧엘에서 지켜 주었습니다. 그가 형과 아비를 속이고 아비의 축복을 가로채었습니다. 윤리적으로나 도덕적으로 볼 때 야곱보다는 에서가 훨씬 선한 자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에서를 책망합니다. “.에서가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김이었더라”(창세기 25:34)고 합니다. 하나님은 거룩한 열정을 가진 그를 하늘의 천사들로 지켜 주었습니다(창세기 28:10-22).
2 길르앗 산에서 지켜 주었습니다. 그가 20년간 외삼촌댁의 종살이를 청산하고 야간 도주하듯이 그 처자와 양떼를 이끌고 나갔을 때 라반이 7일 길을 달려와 그를 잡아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 밤에 하나님이 라반에게 나타나서 “.너는 삼가 야곱에게 선악간에 시비하지 말라”(창세기 31:24)고 엄히 경계했습니다.
3 얍복강가에서도 지켜 주었습니다. 그는 고향을 목전에 두고 형에서의 400군대를 보았을 때 전능하신 하나님의 손을 의지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이 야곱을 이스라엘로 변화시키시며 에서의 침략군을 호위병으로 바꾸어 주신 것입니다. “에서가 달려와서 그를 맞아서 안고 목을 어긋맞기고 그와 입맞추고 피차 우니라”(창세기 33:4)고 했습니다. 이제 당신도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자연인 그대로는 하나님 앞에 쓰임 받을 수 없습니다. 야곱은 이스라엘로 변화를 받아야 합니다. 야곱이 구원역사의 반열에 서니 대단한 사람같으나 그도 역시 우리와 같은 사람입니다. 그는 이름 그대로 사귀꾼 약탈자 얌채꾼입니다. 자신의 유익을 위하여 형과 아비와 외삼촌을 속이기도 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야곱을 사랑하신 것입니다. 그가 언약을 받고자 하는 열정을 귀하게 보신 것입니다. 그가 얍복나루에서 자신의 최후에 보루였던 환도뼈가 일그러질 때 모든 것을 포기하고 전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했습니다. 그때 비로소 그 인격에 변화가 일어났습니다. “누그든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라 이전 것은 지나갔으니 보라 새것이 되었도다”(고린도후서 5:17)고 했습니다.
둘째:꿈을 가지면 환도뼈가 부러져도 승리합니다. 읽을말씀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니라 생육하며 번성하라 국민과 많은 국민이 내게서 나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리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하시고, 하나님이 그의 말씀하시던 곳에서 그를 떠나 올라 가시는지라”(11-13) 당신도 얍복나루를 통과해야 합니다. 얍복나루는 야곱에게 잊을 수 없는 삶의 현장입니다. 얍복나루를 통과하는 순간 야곱의 생애에 대전환이 일어났던 것입니다. 사도들이 마가의 다락방에서 오순절에 성령님을 충만히 받음으로 복음의 증인이 되었습니다. 사울은 다메섹을 통과하면서 부활의 주님을 만남으로 사도의 반열에 참여하는 특권을 얻었습니다. 당신에게 이러한 삶의 전환이 일어나야 합니다. 얍복나루를 통과하면서 나의 인간적인 삶의 지주였던 환도뼈가 일그러져야 당신의 허리에서 하나님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야곱의 허리는 왕의 허리입니다. 그 허리에는 하나님의 능력이 역사합니다.
1 야곱의 허리는 총칼을 다스리는 무기였습니다. 형 에서가 사백군대를 거느리고 야곱을 향해 공격해 올 때 야곱은 위골된 환도뼈로 인하여 절둑거리는 걸음으로 형에서 앞에 나타났습니다. 무력으로도 정복할 수 없는 형 에서의 강팍한 심령이 무장을 해제하고 달려와서 얼싸 안고 입을 맞추며 울게 하신 것입니다(창세기 33:3-4).
2 야곱의 허리는 왕들의 모판입니다. 그 허리에서 나온 열두 아들은 이스라엘 열두지파가 되었으며 그들을 통하여 약 속의 땅 가나안이 세워지게 되었습니다. 그 허리에서 나온 유다와 이스라엘의 모든 열왕들은 세계 왕들의 묘판이요 샘플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을 받는 삶과 하나님의 진노와 저주를 받는 사람을 보여주는 영적인 좋은 거울입니다. 다윗같은 왕은 의로운 성군의 표본입니다.
3 야곱의 허리는 메시야의 통로입니다. 주님이 이 땅 위에 세속역사를 구원하기 위하여 오실 때에 마태는 이렇게 기록했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마태복음 1:1)고 했습니다. 만왕의 왕되신 예수 그리스도가 독생자로서 이 땅위에 오실 때 야곱의 허리를 빌러서 오신 것입니다. 주님은 사망권세를 다스릴 만왕의 왕이십니다. 야곱의 허리는 기도의 교과서입니다. 성경에서 기도를 가르쳐 주는 실제적인 현장이 많습니다. 야곱이 기도했던 얍복강가가 기도의 훈련장입니다. 그곳에서 야곱의 허리를 보고 와야 합니다. 엘리야가 기도했던 갈멜산이 기도의 훈련장입니다. 당신의 이성적인 지각과 아이디어 성령님의 감화를 받는 영성을 회복하는 변화가 일어나야 합니다. 주님이 즐겨 기도했던 겟세마네 동산이 기도의 훈련장입니다. 당신이 져야 할 십자가를 앞에 놓고 겟세마네 동산을 통과하지 않고는 사명의 십자가를 질 수 없습니다. 기도는 노동입니다. 기도는 노동같이 하고 노동은 기도같이 해야 합니다. 당신이 기도의 세계에 들어가는 순간 놀라운 역사가 당신 앞에 펼쳐질 것입니다. 야곱이 얍복 나루에서 사생결단을 내린 목숨을 건 기도는 그 인생을 완전히 바꾸어 놓았습니다. 환도뼈가 일그러져 장애인이 되어도 주님을 만나면 새로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셋째:꿈을 가지면 빈들에도 역사가 일어납니다. 읽을말씀 “야곱이 하나님의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에 기둥 곧 돌기둥을 세우고 그 위에 전제물을 붓고 또 그 위에 기름을 붓고, 하나님이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의 이름을 벧엘이라 불렀더라”(14-15) 당신이 머물러야 할 곳은 벧엘입니다. 벧엘은 이전에 하나님과 약속하신 언약의 땅입니다.
그런데 마귀는 우리로 하여금 세겜에 머물게 합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변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오늘날 성도가 나아가는 삶의 여정에는 항상 우리를 미혹하는 세겜이 있습니다. 세겜의 유혹에 빠질 때 언약의 땅 벧엘을 잊어버리게 됩니다. 언약의 땅이 비록 거칠은 항무지 같이 보여도 하나님이 약속을 붙들고 나아가면 그곳에 벧엘이 되게 하십니다(시편 23:4). 꿈을 가지고 살면 하나님이 함께 하십니다. 도심지 궁궐같은 성전을 지어 놓아도 그곳에 하나님의 역사가 없으면 거칠은 황무지입니다. 그러나 빈들이라도 하나님이 함께 하시면 그곳은 벧엘입니다.
1 요셉은 빈들에 인생입니다. 그러나 그는 어디를 가든지 하나님과 함께 했습니다. “그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창세기 39:3)고 했습니다. 그는 옥중에서도 이러한 은총을 누렸습니다.
2 모세도 빈들의 인생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할 때 그의 눈이 열였습니다. “여호와께서 그가 보려고 돌이켜 오는 것을 보신지라.”(출애굽기 3:4)고 했습니다. 그는 비록 팔십먹은 노인으로 환도뼈가 일그러진 노인처럼 지팡이를 잡은 서편의 인생이었으나 옛적 꿈을 돌이켜 계시의 현장으로 나아갈 때 새로운 사명을 깨닫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출애굽을 위한 사명의 계기가 된 것입니다.
3 다니엘도 빈들의 인생입니다. 어린 몸으로 이방의 땅에 포로로 잡혀 왔으니 영적으로는 빈들의 인생입니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이 그와 함께 하심을 믿고 살았습니다. “다니엘이 뜻을 정하여 .”(다니엘 1:8) 하나님 편에 서기로 작정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와 그 무리들을 풀무불과 사자굴에서도 건지신 것입니다. 빈들에도 역사가 일어납니다. 환경보다 좋은 스승은 없습니다. 인생은 환경의 지배를 받고 사는 본능적인 존재가 아니라 환경을 지배하는 이성적 지각을 가진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야곱은 빈들에 단을 쌓고 벧엘이라 불렀습니다. 당신이 처한 곳이 비록 빈들이라도 낙심하지 맙시다. 그곳에 주님이 임하시면 놀라운 역사가 일어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얼마전에 국민일보에 연재된 강남대 총장 손종률 장로의 간증기사를 읽었습니다. 그는 16세(중1년)때 어머니가 급성 맹장염으로 돌아갔습니다. 1개월후 조부가 세상을 떠났으며, 3개월 후에 동생이 영양실조로 죽었습니다. 불과 4개월 사이에 엄청난 충격적인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러나 그는 이러한 어려움을 딛고 승리했습니다. 문제는 황무지가 아니라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772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