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과 그 실체 (창3:6,약1:13-15)
본문
모든 사람들의 자존심을 상하게 하는 말씀이 창세기 제 3장의 말씀일 것입니다. 더구나 사단이 가장 싫어하는 말씀이기도 할 것입니다. 성경의 어떤 부분은 기록이 빠졌으면 하는 부분도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인생의 모든 문제들을 다루고 있습니다. 그것이 몹시 죄 된 일이라서 다루기 어려운 일일 지라도 성경은 그대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성경의 말씀은 오늘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들에게도 동일하게 적용되는 말씀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의 말씀이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불필요한 말이 있다면 그것은 결코 살아 계신 하나님의 말씀이라 말할 수 없는 것입니다. 창세기 3장은 모든 인생들이 가지고 있는 죄의 문제점들을 적나라하게 다루고 있습니다. 교회에 나오게 되면 왜 모든 사람들이 죄인이라고 말하는가 구원이 왜 모든 사람들에게 필요하며,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인가 하는 기초적인 기독교 교리를 말하는 말씀이 곧 창세기 3장입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3장의 말씀을 통해 "나는 곧 죄인입니다"하는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전적인 하나님의 사랑과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인하여 구원되었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결코 여러분을 정죄 하거나 기를 죽이려고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3장은 인생의 본질적인 죄의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인생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 그리고 계속되는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사랑을 말씀하며, 인생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님의 노력을 보여주는 복된 말씀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창세기 3장은 사단의 모습을 보게 합니다. 사단의 존재와 그의 활동, 그리고 그의 유혹과 전략 등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담 이후로 오늘날까지 계속해서 사단은 우리들을 유혹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너무 믿음 생활에 대하여 무감각하게 살고 있는 우리들을 모습을 다시 한번 뒤 돌아 보는 기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유혹의 근원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 지라"(창 3:6) 이 말씀은 인간의 범죄의 과정을 잘 나타내 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어떠한 과정을 통하여 범죄하게 되느냐 하는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유혹하는 것을 성경은 세 가지로 말합니다. 이미 우리가 창세기 3장에서 살펴보았듯이 사단이 우리를 유혹합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사람들을 표적으로 삼고 계속해서 주시하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는 처음 사람 아담의 아내 하와에게 접근하여 그를 유혹하여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절대적인 명령을 어기고 타락하게 하였고,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을 잃게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로 죽음의 형벌을 받게 하고 말았습니다. 그의 작전은 성공적이었습니다. 인간에게 주었던 세상의 지배권을 접수하여 지금까지도 그의 활동무대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태어나는 모든 인간은 일단 사단의 지배하에 놓이게 됩니다. 그 스스로는 그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가, 모든 인간을 사단의 세력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습니다. 사단, 그는 우리 인간을 유혹하는 가장 위협적인 존재입니다. 사람을 유혹하는 두 번째 존재는 자기(自己) 마음입니다. 야고보서 1:13-15에서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는 욕심이 죄를 낳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속에는 욕심이 자리하지 못하도록 하여야합니다. 사람을 유혹하는 세 번째 존재는 세상입니다.
요한일서 2:16에서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항상 우리들을 유혹하는 곳입니다. 그것은 이미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이미 세상이 사단의 지배하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이 육신의 몸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그 유혹의 가능성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 유혹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능력이 주어졌습니다. 오히려 세상을 이길 뿐만 아니라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사단에 대해서도 그가 떠나도록 명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육신의 정욕 사람을 유혹하는 것, 세상에 속한 것을 보십시오. 사단이 인간들을 어떻게 유혹하는가, 무엇으로 유혹하는가 유혹의 종류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그것은 첫째, 육신의 정욕입니다. 육신의 정욕은 육신의 만족을 위한 불타는 욕망입니다. 육신(肉身)은 영(靈)과 반대되는 개념의 몸을 말하며, 성경에서는 인간 육신은 모든 약점을 가지고 있고 인간 육체 자체는 유혹에 가장 민감하고 약한 존재임을 말합니다. 육신의 강력한 열망, 또는 육신의 간절한 열정을 말할 때 육신의 정욕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대부분의 사람들은 육체적 쾌락과 만족을 추구합니다. 그리고 가장 쉽게 무너지는 것이 육체적인 욕구에 대한 유혹입니다. 육체적인 욕구를 극복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영적인 하나님의 사람으로 서지 못합니다. 성적인 욕정으로 가득한 사람이 영적인 하나님의 일을 행할 수 없습니다. 게으르지 마십시오. 육체적 욕망은 더 눕자, 더 자자라고 유혹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십시오. 하나님 전(殿)에 무룹을 꿇고 기도하십시오. 여러분의 상한 마음을 세상의 방법으로 해결하려하지 마십시오. 술, 담배, 심지어 마약은 여러분의 육체적 건강뿐만 아니라 영적인 판단을 흐리게 하고 끝내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멸로 이끄는 결과를 낳게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술집을 좋아하고, 노래방을 좋아하는 것도 결코 바람직한 일은 되지 못합니다. 육체적 욕망을 절제할 수 있는 것이 성숙된 그리스도인의 삶이며, 하나님의 백성의 참모습입니다. 육체의 정욕을 극복하고, 영적인 풍성함을 위해 관심을 가져보십시오.
우리의 삶은 훨씬 만족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제자공동체 가족여러분, 우리는 단 하루도 육체적 건강을 위해서는 식사를 거르지 않습니다. 단 한끼만 굶어도 육신의 괴로움을 느낍니다.
그런데 우리는 영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너무도 무감각해져 있습니다. 영적 건강을 위해서는 영의 식사도 걸러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매일 매일 물을 마시고 밥을 먹듯, 영적인 양식과 물을 마셔야합니다. 육체적으로는 나이가 많아지고 성숙해지면 스스로 많은 일들을 감당해 가며,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고,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면서, 신앙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항상 어린아이와 같습니까 교회를 출석한 기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신앙도 성숙되어야 합니다. 신앙의 성숙을 위해서는 어린아이일 때는 어머니의 도움이 필요하듯, 목회자의 지도와 훈계가 필요합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가르침이 가장 중요하듯, 목자의 목회 지침은 신앙 성숙의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사랑하는 제자공동체 가족 여러분, 저는 여러분들의 신앙 성장의 책임을 맡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영적인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과 사랑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적인 문제에 있어서 침묵하지 마십시오. 자녀들을 양육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때는 자녀가 아직 말을 못할 때, 아파하던 때인 것 같습니다. 불덩이 같은 아이를 데리고 새벽에 몇 시간을 이리 저리 데리고 다니며 가슴 조리던 때가 한 번 있었습니다. 신앙적인 어려움과 고민은 목자에게 말할 때 가장 빨리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영적 성장을 할 수 있습니다. 육체적 성장이 이뤄지지 않으면 기형아라고 말합니다. 그는 모든 부분에서 약해지고 홀로 세상을 살기 어렵습니다. 영적인 성장을 멈추지 마십시오. 영적으로 성숙되지 못하면 사단은 유혹의 손길을 늦추지 않습니다. 사단은 이렇게 성숙되지 못한 사람의 육신의 정욕을 자극하여 타락한 사람의 본성을 드러내게 하고, 결국 하나님을 대적하고 자기 만족을 취하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무엇을 통해 만족하십니까 육체적 쾌락을 통해 만족을 찾으려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세상에 속한 것입니다. 영의 만족이 여러분의 인생을 가장 풍요롭게 만듭니다. 어떠한 유혹에서도 여러분을 스스로 지키게 합니다. 안목의 정욕
둘째, 안목의 정욕입니다. 이것은 외적인 것을 봄으로 유혹을 일으키는 성적인 욕망은 물론 모든 사물을 탐닉하는 욕망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눈에 보이는 것들에 대하여 자신을 만족시키고자 하는 욕망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성들이라면 백화점을 들렀거나, 시장 등의 길을 가다가 아주 멋있는 옷을 본다거나, 귀한 보석을 보게 되면, 입고 싶고 치장하고 싶은 생각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성들은 그 생각으로 끝납니다. 남성들이라면 길을 가다가 아주 예쁜 여성을 보았을 때, 자세히 바라보게 됩니다. 대부분의 남성들도 그것으로 끝납니다. 요즈음 서울의 지하철에서는 성폭력에 대한 안내방송 문제를 놓고 여성 단체와 지하철 본부, 그리고 남성들 간의 논란이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몇몇 남성들의 안목의 정욕을 통제하지 못한 결과 많은 남성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방송을 출퇴근 시간마다 들어야 하는가 봅니다. 안목의 정욕을 통제하지 못하는 부류는 청소년들입니다. 그들의 눈에 비친 이 사회는 온통 그들의 눈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성적인 타락을 부추기는 어른들의 몰염치한 행동들은 이 땅의 젊은이들을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안목의 정욕 역시 하나님의 사람들로 하여금 영적인 교제를 가로막고 있는 큰 장애물입니다. 이 세상은 어차피 우리의 눈을 자극하고 그것을 취하고 싶어하는 강력한 욕망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눈이 세상을 향해 있지 마십시오. 세상에 있는 대부분의 것들은 여러분을 파멸로 이끄는 포장된 아름다움입니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아름다움과 쾌락, 그것은 끝이 있으며, 그 끝은 인생의 치욕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예수 믿는 것 때문에 핍박으로 난 상처자국이 더욱 아름답습니다. 예수를 믿는 믿음 때문에 절제된 삶으로 가난하게 사는 모습이 더욱 귀합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 인생의 보배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으며, 그의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모습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이생의 자랑 사단이 인간들로 하여금 자신의 소유하고 있는 물질뿐만 아니라 태도나 행위를 자랑하거나 혹은 과대 평가하여 허세를 부리게 합니다. 이것은 현세적인 것들에 애착을 가질 뿐 아니라, 그것이 곧 자신의 자랑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 자랑이 지나 처서 허풍을 떠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것에 대하여 대단한 긍지를 지니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것을 자랑해야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만남은 그것으로 끝나면 안됩니다. 살고 있는 아파트의 평수가 크다고 그것이 자랑이 될 수 없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산이 그 인생의 자랑이 되지 못합니다. 인간은 그것을 위해 이 땅에 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것들은 이 땅에서 육신이 머물기 위한 하나의 도구일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자랑은 영원한 생명이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내 인생이 가장 고귀하며, 내가 받은 복음과 복음을 순종하는 삶이 가장 큰 자랑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백성입니까 그것을 자랑하십시오. 여러분의 심령에 복음이 들어왔습니까 그것을 귀중히 여기고 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자랑하십시오. 그것은 모든 사람들을 살리는 가장 고귀한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사십시오. 그것을 위해 오늘 여러분들은 이 땅에 존재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사랑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그리고 이생의 자랑은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라, 세상, 곧 사단이 지배하는 타락한 사람들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요일 2:16).
그러므로 세상과 하나님 아버지는 절대로 공존할 수 없으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절대로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와는 사단의 말을 듣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보았습니다. 그때 그에게는 육신의 정욕이 발동했습니다. 선악과에 대한 탐심이 생긴 것입니다. 사단은 하와의 마음을 공격하여 그 마음속에 선악과가 먹음직하고 보암직하며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게 보이도록 했습니다. 사단의 유혹에 넘어간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실행에 옮기고 말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이전의 사람들은 이렇게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고, 육체의 마음의 원하는 것을 행하는 사람들입니다(엡 2:1-3).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면 육체의 욕심을 좇고 육체의 마음의 원하는 것을 행치 않습니다. 육체의 유혹에 대하여 절제된 삶을 살아야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선한 일을 위하여 새로 지으심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엡 2:10). 더구나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들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과 가까워지게 한 것은 원수 되었던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고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요 권속으로 삼으시기 위함이었습니다(엡 2:16-19). 그리고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으로 되어 가고 있습니다(엡 2:21-22). 하나님의 성전을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그리고 이생의 자랑으로 더럽힐 수는 없는 것입니다. 유혹, 그 자체는 죄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인생들이 사단의 유혹에 대하여 굴복하는 것이 죄가 되는 것입니다. 유혹에 굴복되었다고 즉각적인 행동으로 표출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유혹이 마음에서 갈등하고 있다는 것은 죄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갈등한다는 것은 곧 유혹에 맞서 싸우고 있다는 것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갈등의 상태가 아니라 이미 마음에 유혹이 정착하고 있는 상태는 죄에 빠져있는 상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단의 세 가지 유혹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적하였습니다(마 4:1-4). 사단의 유혹에 대한 가장 좋은 무기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사단은 가장 무기력하기 때문에 우리가 말씀으로 무장하는 것을 가장 싫어합니다. 성경을 가까이 하십시오. 그것이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첫 걸음입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3장의 말씀을 통해 "나는 곧 죄인입니다"하는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전적인 하나님의 사랑과 구세주 예수 그리스도를 인하여 구원되었음을 고백해야 합니다. 결코 여러분을 정죄 하거나 기를 죽이려고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3장은 인생의 본질적인 죄의 문제를 다루고 있으며, 인생의 죄에 대한 하나님의 저주, 그리고 계속되는 하나님의 인간을 향한 사랑을 말씀하며, 인생의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하나님의 노력을 보여주는 복된 말씀입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창세기 3장은 사단의 모습을 보게 합니다. 사단의 존재와 그의 활동, 그리고 그의 유혹과 전략 등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담 이후로 오늘날까지 계속해서 사단은 우리들을 유혹하고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또한 너무 믿음 생활에 대하여 무감각하게 살고 있는 우리들을 모습을 다시 한번 뒤 돌아 보는 기회가 되어야 할 것입니다. 유혹의 근원 "여자가 그 나무를 본즉 먹음직도 하고 보암직도 하고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기도 한 나무인지라 여자가 그 실과를 따먹고 자기와 함께한 남편에게도 주매 그도 먹은 지라"(창 3:6) 이 말씀은 인간의 범죄의 과정을 잘 나타내 주는 말씀입니다. 다시 말하면 인간이 어떠한 과정을 통하여 범죄하게 되느냐 하는 것을 말씀하시고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을 유혹하는 것을 성경은 세 가지로 말합니다. 이미 우리가 창세기 3장에서 살펴보았듯이 사단이 우리를 유혹합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사람들을 표적으로 삼고 계속해서 주시하고 있음을 보았습니다. 그는 처음 사람 아담의 아내 하와에게 접근하여 그를 유혹하여 그로 하여금 하나님의 절대적인 명령을 어기고 타락하게 하였고, 하나님의 거룩한 속성을 잃게 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로 죽음의 형벌을 받게 하고 말았습니다. 그의 작전은 성공적이었습니다. 인간에게 주었던 세상의 지배권을 접수하여 지금까지도 그의 활동무대로 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 땅에 태어나는 모든 인간은 일단 사단의 지배하에 놓이게 됩니다. 그 스스로는 그의 지배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피가, 모든 인간을 사단의 세력에서 벗어나게 할 수 있습니다. 사단, 그는 우리 인간을 유혹하는 가장 위협적인 존재입니다. 사람을 유혹하는 두 번째 존재는 자기(自己) 마음입니다. 야고보서 1:13-15에서 "사람이 시험을 받을 때에 내가 하나님께 시험을 받는다 하지 말찌니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아니하시고 친히 아무도 시험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오직 각 사람이 시험을 받는 것은 자기 욕심에 끌려 미혹됨이니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마음속에 내재되어 있는 욕심이 죄를 낳게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속에는 욕심이 자리하지 못하도록 하여야합니다. 사람을 유혹하는 세 번째 존재는 세상입니다.
요한일서 2:16에서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다 아버지께로 좇아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 좇아 온 것이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은 항상 우리들을 유혹하는 곳입니다. 그것은 이미 앞에서도 언급한 바와 같이 이미 세상이 사단의 지배하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인생이 육신의 몸으로 이 세상에 존재하는 한 그 유혹의 가능성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그 유혹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는 능력이 주어졌습니다. 오히려 세상을 이길 뿐만 아니라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 사단에 대해서도 그가 떠나도록 명령할 수 있는 것입니다. 육신의 정욕 사람을 유혹하는 것, 세상에 속한 것을 보십시오. 사단이 인간들을 어떻게 유혹하는가, 무엇으로 유혹하는가 유혹의 종류에 대하여 알아보겠습니다. 그것은 첫째, 육신의 정욕입니다. 육신의 정욕은 육신의 만족을 위한 불타는 욕망입니다. 육신(肉身)은 영(靈)과 반대되는 개념의 몸을 말하며, 성경에서는 인간 육신은 모든 약점을 가지고 있고 인간 육체 자체는 유혹에 가장 민감하고 약한 존재임을 말합니다. 육신의 강력한 열망, 또는 육신의 간절한 열정을 말할 때 육신의 정욕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오늘 대부분의 사람들은 육체적 쾌락과 만족을 추구합니다. 그리고 가장 쉽게 무너지는 것이 육체적인 욕구에 대한 유혹입니다. 육체적인 욕구를 극복하지 못하는 사람은 결코 영적인 하나님의 사람으로 서지 못합니다. 성적인 욕정으로 가득한 사람이 영적인 하나님의 일을 행할 수 없습니다. 게으르지 마십시오. 육체적 욕망은 더 눕자, 더 자자라고 유혹합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서십시오. 하나님 전(殿)에 무룹을 꿇고 기도하십시오. 여러분의 상한 마음을 세상의 방법으로 해결하려하지 마십시오. 술, 담배, 심지어 마약은 여러분의 육체적 건강뿐만 아니라 영적인 판단을 흐리게 하고 끝내 하나님과의 관계를 파멸로 이끄는 결과를 낳게 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서 술집을 좋아하고, 노래방을 좋아하는 것도 결코 바람직한 일은 되지 못합니다. 육체적 욕망을 절제할 수 있는 것이 성숙된 그리스도인의 삶이며, 하나님의 백성의 참모습입니다. 육체의 정욕을 극복하고, 영적인 풍성함을 위해 관심을 가져보십시오.
우리의 삶은 훨씬 만족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제자공동체 가족여러분, 우리는 단 하루도 육체적 건강을 위해서는 식사를 거르지 않습니다. 단 한끼만 굶어도 육신의 괴로움을 느낍니다.
그런데 우리는 영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너무도 무감각해져 있습니다. 영적 건강을 위해서는 영의 식사도 걸러서는 안됩니다. 우리가 매일 매일 물을 마시고 밥을 먹듯, 영적인 양식과 물을 마셔야합니다. 육체적으로는 나이가 많아지고 성숙해지면 스스로 많은 일들을 감당해 가며, 오히려 다른 사람들을 도와주고, 많은 사람들에게 영향을 끼치면서, 신앙적인 문제에 있어서는 항상 어린아이와 같습니까 교회를 출석한 기간이 많으면 많을수록 신앙도 성숙되어야 합니다. 신앙의 성숙을 위해서는 어린아이일 때는 어머니의 도움이 필요하듯, 목회자의 지도와 훈계가 필요합니다. 어린 시절 어머니의 가르침이 가장 중요하듯, 목자의 목회 지침은 신앙 성숙의 가장 중요한 요소입니다. 사랑하는 제자공동체 가족 여러분, 저는 여러분들의 신앙 성장의 책임을 맡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영적인 부모가 되어야 한다는 무거운 책임과 사랑을 가지고 있습니다. 영적인 문제에 있어서 침묵하지 마십시오. 자녀들을 양육하면서 가장 어려웠던 때는 자녀가 아직 말을 못할 때, 아파하던 때인 것 같습니다. 불덩이 같은 아이를 데리고 새벽에 몇 시간을 이리 저리 데리고 다니며 가슴 조리던 때가 한 번 있었습니다. 신앙적인 어려움과 고민은 목자에게 말할 때 가장 빨리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래야 영적 성장을 할 수 있습니다. 육체적 성장이 이뤄지지 않으면 기형아라고 말합니다. 그는 모든 부분에서 약해지고 홀로 세상을 살기 어렵습니다. 영적인 성장을 멈추지 마십시오. 영적으로 성숙되지 못하면 사단은 유혹의 손길을 늦추지 않습니다. 사단은 이렇게 성숙되지 못한 사람의 육신의 정욕을 자극하여 타락한 사람의 본성을 드러내게 하고, 결국 하나님을 대적하고 자기 만족을 취하게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무엇을 통해 만족하십니까 육체적 쾌락을 통해 만족을 찾으려하지 마십시오. 그것은 세상에 속한 것입니다. 영의 만족이 여러분의 인생을 가장 풍요롭게 만듭니다. 어떠한 유혹에서도 여러분을 스스로 지키게 합니다. 안목의 정욕
둘째, 안목의 정욕입니다. 이것은 외적인 것을 봄으로 유혹을 일으키는 성적인 욕망은 물론 모든 사물을 탐닉하는 욕망을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눈에 보이는 것들에 대하여 자신을 만족시키고자 하는 욕망을 말하고 있습니다. 여성들이라면 백화점을 들렀거나, 시장 등의 길을 가다가 아주 멋있는 옷을 본다거나, 귀한 보석을 보게 되면, 입고 싶고 치장하고 싶은 생각들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여성들은 그 생각으로 끝납니다. 남성들이라면 길을 가다가 아주 예쁜 여성을 보았을 때, 자세히 바라보게 됩니다. 대부분의 남성들도 그것으로 끝납니다. 요즈음 서울의 지하철에서는 성폭력에 대한 안내방송 문제를 놓고 여성 단체와 지하철 본부, 그리고 남성들 간의 논란이 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몇몇 남성들의 안목의 정욕을 통제하지 못한 결과 많은 남성들의 기분을 상하게 하는 방송을 출퇴근 시간마다 들어야 하는가 봅니다. 안목의 정욕을 통제하지 못하는 부류는 청소년들입니다. 그들의 눈에 비친 이 사회는 온통 그들의 눈을 자극하고 있습니다. 성적인 타락을 부추기는 어른들의 몰염치한 행동들은 이 땅의 젊은이들을 병들게 하고 있습니다. 안목의 정욕 역시 하나님의 사람들로 하여금 영적인 교제를 가로막고 있는 큰 장애물입니다. 이 세상은 어차피 우리의 눈을 자극하고 그것을 취하고 싶어하는 강력한 욕망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눈이 세상을 향해 있지 마십시오. 세상에 있는 대부분의 것들은 여러분을 파멸로 이끄는 포장된 아름다움입니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아름다움과 쾌락, 그것은 끝이 있으며, 그 끝은 인생의 치욕입니다. 그리스도인에게 있어서 가장 아름다운 모습은 예수 그리스도를 닮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예수 믿는 것 때문에 핍박으로 난 상처자국이 더욱 아름답습니다. 예수를 믿는 믿음 때문에 절제된 삶으로 가난하게 사는 모습이 더욱 귀합니다.
왜냐하면, 그 안에 인생의 보배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으며, 그의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아름다운 모습이 나타나기 때문입니다. 이생의 자랑 사단이 인간들로 하여금 자신의 소유하고 있는 물질뿐만 아니라 태도나 행위를 자랑하거나 혹은 과대 평가하여 허세를 부리게 합니다. 이것은 현세적인 것들에 애착을 가질 뿐 아니라, 그것이 곧 자신의 자랑이 되는 것입니다. 또한 그 자랑이 지나 처서 허풍을 떠는 것을 말하는 것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신의 것에 대하여 대단한 긍지를 지니고 살아갑니다. 그리고 그것을 자랑해야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만남은 그것으로 끝나면 안됩니다. 살고 있는 아파트의 평수가 크다고 그것이 자랑이 될 수 없습니다. 자신이 가지고 있는 재산이 그 인생의 자랑이 되지 못합니다. 인간은 그것을 위해 이 땅에 온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것들은 이 땅에서 육신이 머물기 위한 하나의 도구일수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자랑은 영원한 생명이어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내 인생이 가장 고귀하며, 내가 받은 복음과 복음을 순종하는 삶이 가장 큰 자랑이어야 하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백성입니까 그것을 자랑하십시오. 여러분의 심령에 복음이 들어왔습니까 그것을 귀중히 여기고 되도록 많은 사람들에게 자랑하십시오. 그것은 모든 사람들을 살리는 가장 고귀한 하나님의 선물이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따라 순종하는 삶을 사십시오. 그것을 위해 오늘 여러분들은 이 땅에 존재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세상을 사랑하지 말아야 하는 이유에 대하여,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그리고 이생의 자랑은 아버지께로 좇아온 것이 아니라, 세상, 곧 사단이 지배하는 타락한 사람들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밝히고 있습니다(요일 2:16).
그러므로 세상과 하나님 아버지는 절대로 공존할 수 없으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절대로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하와는 사단의 말을 듣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보았습니다. 그때 그에게는 육신의 정욕이 발동했습니다. 선악과에 대한 탐심이 생긴 것입니다. 사단은 하와의 마음을 공격하여 그 마음속에 선악과가 먹음직하고 보암직하며 지혜롭게 할만큼 탐스럽게 보이도록 했습니다. 사단의 유혹에 넘어간 하와는 선악과를 따먹음으로 실행에 옮기고 말았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기 이전의 사람들은 이렇게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고, 육체의 마음의 원하는 것을 행하는 사람들입니다(엡 2:1-3). 그러나 그리스도인이라면 육체의 욕심을 좇고 육체의 마음의 원하는 것을 행치 않습니다. 육체의 유혹에 대하여 절제된 삶을 살아야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선한 일을 위하여 새로 지으심을 받은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엡 2:10). 더구나 세상에서 소망이 없고 하나님도 없는 자들이었지만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하나님과 가까워지게 한 것은 원수 되었던 우리들로 하여금 하나님과 화평을 이루고 하나님 나라의 시민이요 권속으로 삼으시기 위함이었습니다(엡 2:16-19). 그리고 하나님의 거하실 처소가 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성전으로 되어 가고 있습니다(엡 2:21-22). 하나님의 성전을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그리고 이생의 자랑으로 더럽힐 수는 없는 것입니다. 유혹, 그 자체는 죄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인생들이 사단의 유혹에 대하여 굴복하는 것이 죄가 되는 것입니다. 유혹에 굴복되었다고 즉각적인 행동으로 표출되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유혹이 마음에서 갈등하고 있다는 것은 죄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갈등한다는 것은 곧 유혹에 맞서 싸우고 있다는 것을 말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갈등의 상태가 아니라 이미 마음에 유혹이 정착하고 있는 상태는 죄에 빠져있는 상태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사단의 세 가지 유혹에 대하여 하나님의 말씀으로 대적하였습니다(마 4:1-4). 사단의 유혹에 대한 가장 좋은 무기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서 사단은 가장 무기력하기 때문에 우리가 말씀으로 무장하는 것을 가장 싫어합니다. 성경을 가까이 하십시오. 그것이 그리스도인으로 사는 첫 걸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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