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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다의 수치와 영광 (창38:1)

본문

요셉이 애굽에 팔려간 내용을 기록한 후 성경은 잠시 요셉의 기록을 뒤로 미뤄두고 그리스도의 직계 조상이 된 유다 집안의 내용을 기록합니다. 그것은 인간사에 있어서도 참으로 추악한 범죄의 내용이었습니다. 유다의 죄악과 그에 따른 결과들이 기록되는데 여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개입되므로 추악한 범죄의 역사가 은혜의 역사로 바뀌어 진행됩니다.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하나님의 구원은 자연적인 혈육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니고(육의 방법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로만 된다는 것을 말합니다. 즉, 인간의 타락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은혜의 역사를 계속해서 이스라엘 민족을 보존하십니다. 그것은 이스라엘 밎족을 통해서 세상 구속주를 보내시겠다는 약속을 이루시기 위해서 입니다.
그러므로 세상 구원은 이스라엘 민족의 우월성 때문에 오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써만 온다는 것을 말해 줍니다. 야곱의 아들 유다는 어리석게도 가나안 사람과 친분을 맺었습니다. 더구나가나안 여자와 결혼까지 했습니다. 이 결혼은 아버지아 상의해서 맺어진 것이 아니고 가나안 사람인 친구 히라를 통해서 이루어졌습니다. 과거에 에서가 이방 여자와 결혼함으로 압지 이삭을 근심하게 하였고 결국 에서는 언약의 영역에서 추방을 당한 셈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제 유다가 에서와 동일한 위험에 직면하게 되었습니다. 언약백성이 이방인과 혼인을 하여 하나님의 언약을 보존해야 할 사명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유다는 가나안 여자를 통해서 세 아들을 얻었는데 엘과 오난과 셀라였습니다. 유다는 너무 일찍 결혼했고 아들들 역시 일찍 결혼을 시켰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잡다한 종족으로 부터 한 구별된 백성을 만드시려고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그리고 그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서 세상 구속주를 출생케 하시려고 작정하셨습니다. 글므로 아브라함에게 큰 민족을 이루시겠다는 언약을 맺으셨습니다. 그리고 그 언약을 이루는 일에 방해가 되는 모든 요소들을 제거하셨습니다.
첫째는 이방 백성들과의 관계를 끊으셨습니다.
둘째는, 자기 가족으로 부터도 분리시켰습니다. 세번째는 어떤 백성들의 문화라고 할찌라도 거기에 동화되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방인과 혼인하는 것을 철저하게 금하셨습니다.
왜냐하면 이방인가 혼인하는 것은 그 이방인이 섬기는 우상을 받아들이는 결과가 되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의 생애 가운데 이방인과 함께 거주한다거나 이방인들과 같은 문화 속에서 동화되어 살게도리 만한 일들이 수차례 있었습니다. 언약의 백성으로 선택된 자가 다른 이방인가 동화되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중대한 도전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조카 롯을 구출한 뒤에 그 지방이 족속들은 아브라함을 앙으로 섬기려 하였지만 아브라함은 그것을 거절하고 산지에 홀로 살았습니다. 아브라함이 애굽에 내려갔을 때 애굽왕 바로에게 아내를 빼앗길 뻔한 일이 두 번이나 있었지만 그 때마다 하나님은 간섭하시고 아브라함을 보호하셨습니다. 이삭도 그와 같은 경험을 통해 아내 리브가의 정절을 지킬 수가 있었습니다. 야곱은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20년간 종과 같은 생활을 함으로 그 땅에 정착할 의욕을 상실하고 언약의 땅을 사모하여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언약백성들이 이방의 풍습에 동화되지 않도록 지키심으로써 자신의 언약(백성)을 보존하셨습니다.
그런데 이제 야곱 집안에 중대한 위기가(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닥쳐온 것입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범죄하였습니다. 야곱의 아들들은 함께 공모하여 자기 형제 요셉을 죽이려 하다가 애굽에 팔아버리고 그 아들이 짐승에 물려 죽었다고 아버지를 속였습니다. 장자 르우벤은 서모 빌하와 근친상간의 범죄를 하였습니다. 유다는 이방인과 사귀며 이방 여자와 결혼하였습니다. 야곱 집안에 하나님의 언약을 저버리는 범죄가 계속되었습니다. 이렇게 계속되는 자녀들의 범죄로 인하여 경건한 야곱의 가슴은 끓었을 것입니다. 더구나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언약백성 안에서 일어나는 이와 같은 범죄를 그냥 묵과하실 수 없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언약이 파괴되는 중대한 위험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그들에게 간섭하셨습니다. “유다의 장자 엘은 여호와 보시기에 악하였으므로 여호와께서 그를 죽게 하신지라”(7절) 하나님은 하나님의 언약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언약백성의 울타리 안에서 행악하는 유다의 장자 엘을 죽이셨습니다. 그의 죽음은 여느 사람의 죽음과는 특이하게 하나님께로 부터 징벌을 받아 죽었다는 사실이 뚜렷이 나타난 죽음이었을 것입니다. 유다의
둘째 아들 오난은 관습에 따라 죽은 형의 씨를 보존키 위하여 형수와 결혼하였습니다. 형님이 후사가 없이 죽으면 동생이 후사를 이어야 됩니다. 그래서 신명기 25장 5절 이하에서 하나님이 명령한 것입니다. 죽음은 죄값인데 죽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구원약속이 성취될 것을 그렇게 대리자를 세우시는 방법으로 후사를 잇도록 하여 구원약속을 이루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 약속 때문에 동생이 형의 아내와 살 수 있는 것입니다. 그냥 윤리적인 차원에서 생각할 일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범죄한 백성 가운데서 당신의 구원약속을 이루고 계시는가를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약속이 형의 죽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대리자를 주심으로 그 이름이 끊어지지 않게 하십니다. 그러나 오난은 그 씨가 자기 이름으로 이어갈 후손이 되지 못하고 형의 후손이 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오난은 자신이 아버지의 모든 명예와 축복과 유산을 상속받으려는 욕심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난은 형의 자식을 낳지 않으려 했습니다. 이와 같은 행위는 그 집안의 수치일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도전이기도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오난도 죽게 하셨습니다. 이처럼 잇따라 두 아들을 잃은 유다는 자신과 자식들의 범죄로 인한 결과로 인하여 나타난 징계임을 생각하여 회개하지 못하고 오히려 하나님 앞에서 더 큰 범죄를 생각하게 됩니다. 며느리 다말에게 세째 아들 셀라를 주겠다고 약속하고 아직 셀라가 어리므로 친정에 가 있으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셀라가 장성하였어도 그 약속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다말은 시아버지의 허락이 없이는 재가를 할 수도 없었고 그렇다고 그냥 기다린다고 해도 아무 희망이 없는 세월을 보내야만 했습니다. 유다가 그렇게 한 것은 셀라도 다른 두 아들처럼 죽을까 두려워서 였습니다. 시아버지 유다에게 속은 며느리 다말은, 때가 되어도 씨의 후손을 출생토록 셀라를 남편으로 주지 않는 시아버지를 원망하게 되었고 결국 복수를 계획합니다. 이방 여인 다말이 그 집안에 시집와서 참으로 묘한 결혼을 하게 되었는데, 자기 남편이 죽었는데 그 동생과 함께 살라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런 결혼제도를 통해서 다말이 하나님의 구원약속에 대해서 배웠을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구원의 약속을 이루시려고 하는지를 깨달았을 것입니다. 아마도 자기 시아버지가 그렇게 말해줬을 것입니다. “우리 큰아들이 죽었다. 이제 우리 큰아들 이름이 끊어지게 되었다. 어떻게 하면 큰아들의 이름이 이어질 것인가 네가 형수에게 들어가서 형의 이름을 이어라.” 이렇게 동생에게 그리고 다말에게 설명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동생도 죽었고 남은 아들 하나 있는데 장성해서도 자기에게 줄 생각을 안합니다. 남편을 구할 생각이라면 얼마든지 다른 남자가 없었겠습니까 그러나 다말은 유다 집안에 시집와서 비록 유다의 타락한 모습에도 불구하고 그 집안에 내려온 하나님의 구원약속을 배웠습니다.
그러므로 다말의 마음에 유다 집안을 떠나서 다른 남자에게 시집갈 마음은 없습니다. 죽어도 유다 집안에 붙어서 하나님의 구원약속을 믿으므로 함께 구원에 들어가기를 원하였습니다.
그런데 자기 시아버지 유다가 자기를 멀리하고 아들을 주지 않습니다. 아들이 죽을 것 같아서 그랬는지 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가지 묘안을 생각했는데 자기 시아버지를 통해서 아들을 생산하고 하나님의 구원약속에 동참코자 했습니다.
그래서 변장해 가지고 시아버지한테 못된 일을 벌렸습니다. 그리고 증거품들을 맡아 놓았습니다. 족장의 지팡이와 도장을 담보물로 받아 둔 것입니다. 결국 그 일은 성공하였고 다말은 소원한대로 자식을 잉태하게 되었습니다. 유다가 소문을 들으니까 며느리가 아기를 가졌다는 소식이 들려요. 그래서 이런 죄인은 불태워 죽여야 된다 해서 죽이도록 명령했습니다.
그런데 붙들려 나가면서 다말이 자기 아이의 임자를 표시하는 증거품들을 내보입니다. 며느리를 불러서 정황을 살펴 보니까 “이 지팡이 임자가 누구입니까” 할 때 유다가 할말이 없습니다. 그래서 깨달았습니다. 자기가 자기 아들을 주지 않았습니다. 이 일로 인하여 유다는 간음 보다도 더한 죄악인 근친상간이라는 추악한 범죄에 빠지게 되었습니다. 다말 역시 복수에 성공하고 자식을 잉태하기는 했으나 시아버지와 관계한 불륜의 죄악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유다의 집안은 이방과 혼합하였고 근친상간까지 하는 극한 범죄에 빠지고 말았습니다. 이제 그들에게서 하나님의 언약에 대한 기대는 조금도 할 수가 없게 되고 말았습니다. 이들이 행한 범죄로 인하여 하나님은 그 얼굴을 돌리시고 그들에게 향했던 은총의 언약을 거두어 들이셔야 마땅했습니다. 그러나 놀랍게도 여기에 하나님의 은혜가 작용하였습니다. 도무지 은혜 받을 수 없는 범죄자들에게 하나님은 자신의 언약을 집중 시키시고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즉 근친상간의 범죄를 통해 출생된 다말의 쌍동이 아들 베레스를 통하여 다윗이 출생케 되었고 그 후손으로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좀 더 냉정하게 생각해 본다면, 유다와 다말 만이 범죄한 것이 아니라 그 시대의 모든 사람들이 이와 같은 죄악을 행하였던 것입니다. 즉 의인은 하나도 없었던 시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죄인을 부르시고 의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여기에 적용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그 많은 죄인들 속에서 특별히 유다와 다말이 선택되었다고 해서 하등 이상할 것이 없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모두가 하나님 앞에 죄인인 까닭입니다. 그러나 보다 중요한 것은 유다의 집안에 면면히 흐르는 하나님의 언약 입니다. 그들이 비록 그 시대의 죄악된 방식으로 살았지만 하나님의 구원약속에 대한 소망은 살아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인간의 힘이나 혈육의 자연적인 진행(혈통)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은혜로만 이루어진다는 사실이 여기서 분명히 드러납니다. 그렇게 큰 유다의 죄악도 하나님의 은혜로운 선택을 막을 수는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여 그리스도께 속하게 하시고 구원을 얻게 하시는 것도 우리의 어떤 자격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하신 뜻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구원을 은혜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에 따라 그리스도께서 유다의 후손으로 나타나신 것입니다. 다말이 이방 여인으로서 그리스도의 족보에 낄 수 있었던 것은 순전한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었습니다. 이렇게 인간의 타락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심으로 구원의 길을 내셨습니다. 이와 같은 하나님의 은혜의 선택에 대한 역사가 바로 유다와 다말의 사건에서 강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세상을 구원하셨습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도 하나님은 이렇게 부르시고 구원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은혜 입니다. 이렇게 우리가 은혜로 구원을 받았기 때문에 이 구원을 소홀히 할 수가 없고 앞으로 우리의 생애를 함부로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은혜로 받은 구원이 은혜의 결과로 맺어지도록 최선을 다해야 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향해 가지시는 선한 뜻을 분별하여 그 뜻에 순종하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고 자신의 생각이 앞서고 욕망대로 살면 하나님의 뜻은 이루어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을 따라 사는 길은 그 뜻에 순종하는 길 밖에 없습니다. 어찌됐든 하나님은 세상을 향하여 가지시는 구원약속의 뜻을 계속하여 이루어 가십니다. 그러나 세상은 어두움이어서 하나님의 사역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일을 이루시는 하나님의 사역 때문에 오늘 저와 여러분들이 여기 이 자리에 서있는 것입니다. 참으로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는 커서 찬송받으시기에 합당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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