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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겜에서 벧엘로 (창35:1-8)

본문

탈무드에 보면, 세상에는 너무 지나치게 쓰면 안 되는 것이 세 가지 있다고 했습니다. 바로 "빵의 이스트, 소금, 망설임"입니다. 이렇듯 망설임이 지나치면 일을 망칩니다. 베드로는 '닭이 세 번 울자 즉시로 회개하며 울었습니다. 반면에 가룟유다는 망설이고 오기를 부리다가 배가 터져 죽었습니다. 회개와 전환은 빠를수록 좋습니다. 신앙인이 유혹에 대해서는 가랑 잎이다가도, 회개에 대해서는 철근 콘크리트가 되는 겁니다. 유 혹에 대해서는 버들가지 보다 더 유연하면서도, 회개에 대해서는 뼈보다도 더 단단합니다. 유혹과 쾌락에 대해서는 망설여도 좋지 만, 회개와 결단은 빠를수록 좋습니다. 진짜 강한 사람이 어떤 사람일까요 탈무드에 보면, 강한 사람 자기를 억누를 수 있는 사람, 강한 사람 적을 벗으로 바꿀 수 있는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여기에 한 가지를 추가해야 합니다. 진 짜 강한 사람, '하나님께로 돌아갈 줄 아는 사람'입니다. 성경의 인물들을 보세요. 믿음의 사람이나 멸망한 사람이나 죄의 무게가 다릅니까 아닙니다. 오히려 믿음의 사람들이 죄의 무게는 더 큰 경우도 있었습니다. 보세요. 아브라함이 그러했습니다. 야곱이 그러했고, 다윗이 그러했습니다. 그리고 베드로도 그랬습니다. 실패가 문제가 아닙니다. 빨리 전환하는 사람 이 사람이 믿음의 사람입니다. 전환이 문제예요. 빠른 회개와 전환, 여기에 축복의 비결이 있는 겁니다. 오늘 본문은 이 진리를 아주 선명하 게 보여 주는 사건입니다. 야곱의 역정의 인생 역정은 파란 만장한 것입니다. 야곱의 고난 은 에서의 축복을 가로채고 밧단아람으로 도피의 길을 나서면서 시작되었습니다. 그 도피길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도피 처인 밧담아람에서의 결혼을 하고, 자녀도 낳고 재산도 모았습니다. 이제 형 에서와 화해하고 고향으로 돌아가는 일만 남았습니다. 드디어 야곱은 얍복강에서 하나님과의 담판을 벌인 후, 형에 서와 극적인 화해를 합니다.
그런데 이 모든 풍파가 지나간 후 이제는 가족끼리 오손도손 평화스러운 날을 누리는 일만 남은 것 같았습니다.
그런데 세겜에서 외동딸 디나가 강간을 당하는 사건 이 벌어졌습니다. 이 일로 자존심이 상한 야곱의 두 아들이 디나 를 강간한 세겜 족속의 남자들을 모두 죽입니다. 외동딸 디나는 강간을 당했고, 아들들은 대량살인의 피를 묻혔습니다. 야곱의 가족들은 가나안의 여러 부족들의 공격에 노출되어, 풍전등화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이제까지의 어떤 위기 보다 더 엄청 난 위기에 처하게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야곱은 과연 어떻게 대처했을 까요 심사숙고를 했을까요 자포자기 했을까요 상황을 탓하고 있었을까요 아닙니다.
야곱은 아주 빠르게 회개의 전환을 했습니다. 망설임 없이 자신을 정화하고 회개의 결단을 했습니다. 이방신상을 버리고 먼저, 야곱은 가족들에게 이방신상을 묻으라고 했습니다.(창 35:2,4) 이 때 까지는 이방 신도 섬겼다는 증거입니다. 우리는 먼저 벧엘로 올라가기 전에 이방신상을 묻어야 합니다. 과거의 부정한 행위를 묻어야 합니다. 죄악을 묻어야 합니다. 우상과 죄 악과 부정은 세겜에 묻고, 이제 새로운 결단의 장소 벧엘로 올라 가는 것입니다. 어릴적에 떠난 피난길, 피난처 밧단아람 외삼촌 집에서의 고난, 에서와의 화해를 향한 긴장, 얍복강에서의 투쟁, 야곱의 일생은 초긴장 상태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럴수록 바짝 하나님께 매달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역설적이게도 고난의 세월 깊이에서 하나님 을 더욱 바짝 붙잡은 것입니다. 그러나 문제가 해결되고 나서는 일종의 영적 해이감에 빠져 버렸습니다. 이제 야곱은 문제의 뿌리였던 형 에서와의 화해를 달성했습니다. 극도의 긴장으로 달려 왔던 세월이 안락해지는 순간이었습니다. 그때 가족의 대 참사가 벌어진 것입니다. 고난의 시절에는 야훼 하나님께 축복도 가로채고, 맹세도 하고, 전투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되고 나니 죄악에 둔감해 졌습니다. 이방 신상을 가지고 섬길 정도로 하나님에 대 해 간절함이 떨어졌습니다. 영적으로 둔감해 진 것입니다. 여기 에 세겜이 있은 것입니다. 야곱은 이미 숙곳에서부터 그런 조짐을 보였습니다. 숙곳에 도착 할 때 어린 딸이었던 디나가 세겜에 이르렀을 때는 장성한 처녀 였다는 것을 볼 때, 야곱의 가족들은 이미 숙곳에 수년간 머물렀 음이 분명합니다. 에서와의 극적인 화해를 달성한 야곱이, 요단 강을 이내 건너지 않고 숙곳에서 계속 머물렀다는 것은 어느 모 로 보나 큰 실수임에 틀림없습니다. 숙곳은 요단 동편입니다. 왜 야곱은 아직도 요단강을 건너 벧엘 로 향하지 않았을까요 급해야 하는 데. 보세요. 숙곳에서 수 년의 세월을 허비한 야곱은 또 세겜에다 텐트를 치는 겁니다. "야곱이 밧담아람에서부터 평안히 가나안땅 세겜 성에 이르러 성 앞에 그 장막을 치고"(창33:18) 세겜은 숙곳에 비해 번화한 성읍이었습니다. 번화한 곳, 인간의 측면에서의 편리함이 벧엘을 잊게 했습니다. 잘못 하고 있는 겁니다.
여기서 이미 불행은 싹이 트고 있었어요. 이미 하나님에 대한 서원은 잊혀져 가고 있었어요. 소홀해 지고 있었습니다. 급 하게 벧엘로 올라 가야 했습니다. 숙곳에서 그 만큼의 세월을 보 내고, 또 세겜에다 텐트를 치는 겁니까 벧엘에서 하나님과 서원 한 것이 무엇이었습니까 "나로 평안히 아비 집으로 돌아가게 하 시오면 내가 기둥으로 세운 이 돌이 하나님의 전이 될 것이 요"(창28:21-22) 베고 자던 돌을 하나님의 전으로 빨리 만들어야 하는 것 아닙니 까 그러기 위해 빨리 벧엘로 가야했습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야곱은 이 시점에서 야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엷어 져 있었습니다. 감사도 옅어지고 있습니다. 더구나 이방 신상을 섬깁니다. "여호와께서 나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요'(21절) 이 서 원에 대한 명백한 위반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은 엉뚱하게 지체하고 있지는 않는지요 여러분은 하나님과의 약속을 무관심하게 보류하고 있지는 않는지 요 그리고 여러분은 텐트를 어디에 치고 있습니까 깊이 살펴볼 일입니다. 일어나 벧엘로! 낭패 당한 세겜에서 벧엘로 올라가자는 것입니다. 세겜에서 벧엘 로! 하나님과의 약속을 미루던 삶에서 서원을 실행할 벧엘로 올라가 자는 것입니다. 우상의 삶에서 하나님의 삶으로 이동하자는 것입니다. 인간적이고 쾌락적인 삶에서, 거칠지만 영성 가득한 하나님의 삶으로 전환하자는 것입니다. '영적 전기를 마련하자'입니다. 이 영적 전기가 모든 것을 회복하게 해 줍니다. 누구나 인생의 전기가 있습니다. 위기는 바로 기회이기도 합니다. 그 중에서 신앙인이 민감해야 하는 것은 바로 영적인 전기입니다. 영적인 전기를 잘 마련하는 사람은, 계속 승리의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위기의 순간에 끊임없이 벧엘로 올라가니까요 이런 사람이 참으로 강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끊임없이 벧엘로 올라가야 합니다.
세겜에서 벧엘로! 여러분의 벧엘은 어디입니까 벧엘은(하나님의 집, House of God) 하나님의 지대입니다. 벧엘은 위기의 순간, 고난의 순간, 영적 침체의 순간,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집입니다. 때문에 우리는 벧 엘로 올라가야 합니다. "자 일어나 벧엘로 올라가자"(창35:3) 이 것은 위대한 전환점을 알리는 선언입니다. 인간의 방법에서 하나님의 방법으로! 인간의 집에서 하나님의 집으로! 인간의 경영 에서 하나님의 경영으로! 방종의 쾌락 삶에서 약속과 서원의 삶 으로! 이런 전환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 시간 즉시 결단을 해야 합니다. 세겜에서 벧엘 로! 결단은 빠를수록 좋습니다. 보류할수록 위기는 확대재생산 됩니다. 완전한 회복 야곱이 세겜의 실패를 딛고 온 가족과 함께 벧엘로 올라가자, 빠 른 회복이 왔습니다. "야곱이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매 하나님이 다시 야곱에게 나타나 서 그에게 복을 주시고" (창35:9) '돌아오매' '복을 주시고'입니다. 이제 다시 야곱은 이스라엘이 되었습니다. "그에게 이르시되 네 이름이 야곱이다마는 네 이름을 다시는 야 곱이라 부르지 않겠고 이스라엘이 네 이름이 되리라 하시고 그가 그의 이름을 이스라엘이라 부르시고 "(창35:10) 원래 야곱(야아콥)이란 이름은 '발뒷꿈치를 잡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나쁜 의미로 사용 될 때는 '남을 사취하는자'라는 뜻으로 쓰입니다. 이 이름에 걸맞게 에서를 사기 치고 남을 밟고 일어서 며 살아온 야망의 세월이었습니다. 그런 야곱이 하나님과 겨루어 이겼다는 '이스라엘'이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 목숨 걸고 기도하는 간구의 사람이 된 것입니다. 이 말은 지극히 인간적인 야곱 이, 철저한 믿음의 사람이 되었다는 말입니다. 이것이 회복입니다. 얍복강에서의 회복 이후에 두 번째의 회복입니다. 사실 벧엘에서 제단을 쌓는 것도 두 번째입니다. 이 '두 번째'가 중요합니다. 회복은 항상 늘 반복되어 합니다. 침체에 빠졌을 때 마다, 회복해야 합니다. 위기의 순간마다 회복해야 합니다. 회복 은 단 한 번하고 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는 반복되 어야 합니다. 천신만고 끝에 자신이 30년 전에 서원하던 곳에 이제야 도착하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위기를 맞아 벧엘에 도착하게 된 것입니다. 이제 그는 30년전의 하나님과의 서원을 시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야곱이 하나님의 자기와 말씀하시던 곳에 기둥 곧 돌 기둥을 세 우고 그 위에 전제물을 붓고 또 그 위에 기름을 붓고 " (창 35:14) 아주 감격스러운 장면입니다. 전에 말씀하시던 곳에서 기둥을 세 웠습니다. 돌기둥을 다시 세웠습니다. 이 돌기둥이 무엇입니까 30년전 도피의 길을 떠날 때 거친 광야에서 노숙을 할 때 베고 자던 돌베게가 아닙니까 이것이 회복입니다. 다시 기둥을 세운 것입니다. 기둥만 세운 것이 아니라 믿음도 세운 것입니다. 여기서 야곱은 '전제물'을 붓고 기름을 붓습니다. 기름은 하나님 의 소유라는 표시입니다. 전제물은 헌신의 표시입니다. 한마디 로 말하자면, 하나님의 소유, 하나님께 헌신된 자라는 표시입니다. 이 기둥, 이 땅이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그것을 행하는 야곱이 다시 하나님의 소유가 되었습니다. 다시 헌신의 사람 이 되었습니다. 완전한 회복입니다. 그리고 완전한 영적 회복은 필히 축복을 몰고 옵니다.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니라 ! 생육하며 번성하 라 ! 국민과 많은 국민이 네게서 나고 왕들이 네 허리에서 나오 리라. 내가 아브라함과 이삭에게 준 땅을 네게 주고 내가 네 후 손에게도 그 땅을 주리라 ! 하시고 " (창35:11) 생육, 번성, 땅은 고대부족 시대에 인간이 받을 수 있는 최대의 축복입니다. 물론 이 축복은 전혀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이미 30년전 벧엘에서 약속하신 축복입니다. 아주 완벽한 회복 아닙니 까 세겜에서 벧엘로 옮긴 결과입니다. 절대절명 위기의 순간, 야곱은 반역의 땅 세겜에서 과감하게 벧 엘로 올라갔습니다. 죄악과 실패의 땅 세겜에서, 믿음의 집 벧엘 로 올라갔습니다. 결과 아주 완벽한 회복과 축복이 왔습니다. 빠 른 전환과 회개가 변함없는 하나님의 축복을 누릴 수 있게 해 주 었습니다. 여러분의 위기의 순간에 이런 완벽한 회복을 이루시는 기쁨이 있 기를 바라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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