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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곱의 가을 (창35:27-29)

본문

우리는 이 시간 한 사람을 만나보려고 합니다. 사천년이라는 시간의 격차가 있는 오래 전 사람이면서도 마치 우리 이웃과도 같이 친근한 사람이기도 하고, 어떤 때는 도저히 같이 지낼 수 없는 몹쓸 사람처럼 보이고 또 어떤 때는 그가 바로 내 자신인 것처럼 느껴지는 그런 묘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누굴까요 그 사람은 바로 야곱입니다. 야곱. 친근한 이름이면서도 결코 친근해질 수 없는 야곱을 이 시간 만나보려고 합니다. 이 야곱을 만나면서 우리는 야곱이 다른 사람이 아닌 바로 우리 자신이라는 사실을 또한번 뼈저리게 느끼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야곱이 어떠한 삶을 살았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애굽에 내려가서 바로 앞에 선 야곱은 자신의 지난 삶이 험악한 삶이었다고 말합니다. 야곱의 이 말대로, 야곱의 일생은 참으로 험악했습니다. 그러나 야곱의 일생이 험악한 것은 그 누구의 탓도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야곱의 삶을 험악하게 만든 것이 아닙니다. 야곱의 삶을 험악하게 만든 것은 바로 야곱 자신이었습니다. 야곱은 자신의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 무리하게 행하다가 스스로 자신의 삶을 험악하게 만들면서 살았습니다. 이렇게 험악한 삶을 살았던 야곱의 파란만장한 생애는 봄,여름,가을,겨울 네 시기로 나눌 수 있습니다. 야곱의 봄. 야곱의 여름. 야곱의 가을. 그리고 야곱의 겨울. 장자권만 얻으면 온 세상을 얻을 것 같은 마음으로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다른 사람들은 생각지도 않고 장자권을 얻으려고 몸부림치던 야곱의 봄. 장자권을 빼앗긴 에서와의 불화로 인해서 온 가족이 어려움에 처하고 그래서 밧단아람으로 도망을 가고, 거기서 보낸 야곱의 여름. 다시 가나안땅으로 돌아와서 우여곡절을 겪는 나이든 야곱, 야곱의 가을. 그리고 애굽으로 내려가서 소경이 되고,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나는 야곱의 겨울. 야곱의 사계 중에서 오늘 우리는 야곱의 가을에 해당하는 시절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오늘 읽은 본문을 보면, 야곱은 헤브론으로 갑니다. 27절을 보십시오. 야곱이 기럇아르바의 마므레로 가서 그 아비 이삭에게 이르렀으니 기럇아르바는 곧 아브라함과 이삭의 우거하던 헤브론이더라. 우리는 이 구절을 읽으면서 주의를 기울여야 합니다. 야곱이 헤브론으로 내려간 사실을 말하면서 그곳이 기럇아르바의 마므레이고 또 기럇아르바는 아브라함과 이삭이 우거하던 곳이라는 설명을 붙이고 있습니다. 이것은 헤브론이 어떤 곳임을 분명히 보여주고 또 야곱의 선조들이 우거하던 곳임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우리는 헤브론을 강조하려는 의도를 알 수 있습니다. 헤브론은 어떤 곳입니까 헤브론이 어떤 곳이기에 이토록 강조하려고 할까요
첫째,헤브론은 야곱의 선조들이 살던 곳이었습니다. 27절 뒷부분을 보면,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기럇아르바는 곧 아브라함과 이삭의 우거하던 헤브론이더라. 여기에 기록된 것처럼, 헤브론은 아브라함과 이삭이 우거하던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이나 이삭이 처음부터 계속해서 헤브론에서 살았던 것은 아닙니다. 헤브론은 유랑생활을 하던 족장들의 삶의 종착지이며 정착지입니다.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던 아브라함은 말년을 헤브론에서 보냈습니다. 그리고 블레셋 땅에서 그 많은 어려움을 겪은 이삭도 말년을 헤브론에서 보냈습니다. 밧단아람으로 피신했다가 다시 가나안 땅으로 돌아온 야곱도 시므온과 레위가 세겜사람들을 죽인 이후로 여기저기를 돌아다니다가 그의 아버지 이삭이 살고 있는 헤브론으로 와서 애굽으로 이주하기까지 그곳에서 살았습니다. 창세기 37장 1절에는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야곱이 가나안땅 곧 그 아비의 우거하던 땅에 거하였더니. 우리는 이곳이 헤브론이라고 믿습니다. 이곳저곳을 떠돌아다니던 야곱이 정착한 곳은 바로 헤브론이었습니다. 야곱은 아브라함과 이삭의 뒤를 이어서 헤브론의 주인이 됩니다. 장자권을 얻었다는 것은 바로 이것을 의미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헤브론을 소유하는 것. 자신의 재물을 얻기 위해서 애를 쓴 야곱이지만, 그는 결국 모든 것을 버린 채 벧엘로 떠나야 했고, 그리고 결국 헤브론으로 갔습니다. 헤브론이 그의 소유였습니다. 야곱은 그가 추구하던 그 모든 것들이 아닌 헤브론이 바로 그의 소유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렇듯이 헤브론은 족장들의 삶의 정착지였습니다.
둘째,헤브론은 선조들의 묘지였습니다. 본문을 보면, 헤브론은 이삭이 묻힌 곳입니다. 28절과 29절에는 180년 동안 많은 일들을 겪다가 세상을 떠난 이삭의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삭의 나이 일백 팔심세라. 이삭이 나이많고 늙어 기운이 진하매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 이삭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창세기 35장에는 세 사람의 죽음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리브가의 유모 드보라의 죽음. 야곱의 아내 라헬의 죽음. 그리고 이삭의 죽음. 이 세 사람의 죽음이 35장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 35장은 죽음의 장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헤브론은 죽음이 있는 곳입니다. 오늘도 많은 일들이 일어납니다. 신문을 보면, 살아있는 사람들이 벌이는 일들이 수없이 많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자세히 들여다보면 살아있는 사람들의 이야기 사이사이에 죽음의 이야기들이 있습니다. 폭탄테러로 죽은 사람들. 총기난사로 죽은 아이들. 백혈병에 걸려서 고생하면서 자신이 얼마안되어 죽을 것을 알고 죽음의 고통 속에서 각막기증약속을 하고 세상을 떠난 11살짜리 초등학생의 이야기. 결혼식도 못올린 채 10년 동안 살다가 결혼식 올린 다음날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 사람. 이들의 이야기를 우리는 신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화려한 칼라로 채워진 신문. 앞으로도 영원히 살 것같은 기세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로 채워진 신문. 그 신문 곳곳에는 이렇듯이 죽음의 이야기들이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신문은 오늘도 살아서 내일을 준비하는 그런 사람들의 이야기로 가득차 있지만 그 사이사이에는 오늘을 최후의 날로 삼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구절을 기억해야 합니다. 나이많고 늙어 기운이 진하매 죽어 자기 열조에게로 돌아가매. 사람들은 누구나 나이가 들어가면 늙게 마련이고 그러면 기운이 쇠해서 이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런데 오늘도 살아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에 묻혀서 죽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눈에 잘 띄지 않듯이 사람들은 자신들이 나이많아 늙어 세상을 떠나게 될 것을 잊고 살아갑니다. 사람은 반드시 죽습니다.
그런데 이 사실을 잊고 살아갑니다. 그러다보니 사람들은 헛된 일에 바쁩니다. 그저 언제까지나 살 수 있는 듯이 그렇게들 살아가고 있습니다. 야곱처럼 그렇게 살아갑니다. 사천년전의 야곱의 모습을 너무도 잘 알면서도 우리는 또 다른 야곱이 되어서 사천년전이나 지금이나 인간의 내면이 변하지 않았음을 입증해주는 분명한 증거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에 영원히 봄과 여름만이 있는 것처럼 그렇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결코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에게도 인생의 가을과 겨울이 있습니다. 우리는 죽음에서 벗어날 수가 없습니다. 죽음은 우리 곁에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죽음과 무관한 것처럼 살아갑니다. 고속도로를 달리는 차처럼 사고가 난 것을 보고는 잠시 조심하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서 다시 엄청난 속도로 내달리는 것과 같습니다. 누군가가 죽는 모습에서 우리는 인간이 누구나 죽는다는 사실을 새삼스럽게 느끼지만, 그 순간이 지나면 우리는 다시 인간이 마치 영원히 사는 것같은 그런 신화같은 생각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렇지만 성경은 우리에게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는 사실을 계속해서 알려줍니다.
창세기 5장에는 족보가 기록되어 있는데, 어떤 사람이 몇년 동안 살다가 자녀들을 몇 낳고 몇세에 세상을 떠났다는 식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죽는다는 것을 반복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이땅은 산 사람들만의 땅이 아닙니다. 죽은 사람들의 땅이기도 합니다. 창세기 35장도 이것을 우리에게 말해줍니다. 인간은 반드시 죽는다. 헤브론은 이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헤브론은 이스라엘 백성이 처음 얻은 땅입니다. 아브라함은 사래를 장사지내기 위해서 헤브론을 삽니다. 헤브론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소유한 최초의 영토입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사람들이 얻은 최초의 땅 헤브론은 삶을 위한 곳이 아니었고 죽음을 위한 곳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애초에 그곳에서 살기 위해서 헤브론을 산 것이 아니고 사라를 장사하기 위해서 헤브론을 샀습니다. 헤브론은 선조들이 묻혀있는 곳입니다. 아브라함이 맨먼저 사라를 그곳에 장사했습니다. 그리고 아브라함이 그곳에 묻혔습니다. 이삭과 리브가도 그곳에 묻혔습니다. 또 야곱이 레아를 묻었습니다. 그리고 야곱의 아들들이 야곱을 헤브론에 묻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 부부가 묻힌 곳이 헤브론입니다. 헤브론은 죽음의 장소입니다. 이 헤브론에 야곱과 에서가 내려와서 함께 그의 아버지 이삭을 묻습니다. 야곱은 이삭을 장사지낸 후에 계속해서 헤브론에서 머뭅니다. 그러다가 레아를 장사지냅니다. 헤브론에는 모두 다섯개의 무덤이 있습니다. 야곱은 헤브론에 살면서 조부모의 묘와 부모의 묘. 그리고 부인인 레아의 묘를 돌보았을 것입니다. 그의 마음이 어떠했을까요 특히 그가 상처를 주었던 사람들의 묘 앞에서 야곱은 어떤 심정이었을까요 야곱은 그가 그토록 사랑했던 라헬을 헤브론에 묻지 않습니다. 베들레헴 가는 길에 묻습니다. 그리고 레아는 헤브론에 묻습니다. 우리는 야곱이 언제 레아를 헤브론에 묻었는지 모릅니다. 다만 야곱의 유언에서 알 수 있습니다. 야곱은 49장 29절에서 31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내 열조에게로 돌아가리니 나를 헷사람 에브론의 밭에 있는 굴에 우리 부여조와 함께 장사하라. 이 굴은 가나안 땅 마므레 앞 막벨라 밭에 있는 것이라. 아브라함이 헷 사람 에브론에게서 밭과 함께 사서 그 소유 매장지를 삼았으므로 아브라함과 그 아내 사라가 거기 장사되었고 이삭과 그 아내 리브가도 거기 장사되었으며 나도 레아를 그곳에 장사하였노라. 이 구절에 보면, 야곱은 레아를 헤브론에 묻었습니다. 레아를 묻을 때의 야곱의 심정을 우리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모두가 다 부질 없는 것을. 무엇을 위해서 그토록 안달부달하면서 다른 사람들 가슴에 못을 박으면서 살아왔던가. 내가 추구하던 것들은 도대체 무엇들이었는가 내가 찾아헤매던 그것들은 무엇들이었는가 이러한 야곱의 심정을 '야곱의 가을'이라는 제목으로 글을 써보았습니다. 저기던가 저 묘들인가 가을은 참 묘하구나 이렇듯 화려한 치장 속에 죽음을 감추고 있지 않는가 가을이라. 그래 이젠 가을이지. 그렇지. 험악한 세월 살아오면서 이처럼 모든 게 애닯아보이는 가을이라는 건 없었지. 에서의 발뒤꿈치 붙잡고 이 세상에 왔을 때 이미 가을은 삶 속에 들어와 있었던 것을. 그런 것을, 벧엘에서 돌베게 베고 누웠을 때에도 가을은 없다고 큰 소리 쳤었지. 얍복강 건너올 때에도 가을은 없을 거라고 그렇게 믿고 있었지. 가을이 없다고. 허허 지금이 가을인데. 세상이야 만들어가는 것인 줄 알았는데, 이렇듯 막을 기력도 없이 와버린 가을 속에 황당히 사로잡혀 있어야 할 줄은. 여름 푸르름에 가려있었지만, 묘는 여전히 여기에 있었지. 이젠 단풍들이 묘를 가리는구나. 저 산 아래서야 묘들이 보이기나 할라구. 눈덮인 겨울엔 보이려는지. 홀로 남은 가을엔 묘들도 정겨워라. 이게 누구던가. 저기는 또 누구던가. 이제는 친근한 얼굴 얼굴. 손을 마주 잡지 않아도 은은한 따뜻함과 가늘한 떨림. 이제는 느낄 수 있지. 이제는 이해할 수 있지. 포옹하지 않아도 이젠 끊을 수 있지. 가슴애리게 하는 아픔. 내 가슴 속에 되돌아와 가을이 된 아픔. 그래, 살다가 남는 건 한스러움인 것을. 풀뜯는 손끝에 묻힌 찬바람이 뼈 속으로 스며들어 텅빈 가슴을 휘몰아치는구나. 이게 설움이지. 이게 그리움이지. 그리움이지. 풀뜯다 묘를 안고, 이제는 보고픈 이들을 안고 한참이나 그러고 있었지. 가을, 가을이라. 그래 이제는 가을이지. 산천은 잘 보이지 않아도 단풍에 가려진 묘들은 눈에 선한 가을이지. 이 가을은 참 아름답구나. 저렇듯 화려한 치장 속에 죽음을 감싸고 있지 않은가. 우리가 버린 온갖 것들을 단풍으로 곱게 감싸고 있지 않는가. 이렇듯이 헤브론은 야곱의 선조들이 묻힌 묘지입니다. 그 묘지 앞에 서서 야곱은 우리에게 유한한 삶을 살아가면서 결코 헛된 일에 힘쓰지 말라고 당부합니다.
셋째,헤브론은 야곱과 에서가 만난 곳입니다.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헤브론은 야곱의 선조들과 아내인 레아가 묻힌 곳입니다. 그러나 헤브론은 죽은 자들의 땅만 아니고 산자들의 땅이기도 합니다. 야곱은 헤브론에서 에서를 만납니다. 그리고 둘은 이삭을 묻습니다. 29절 뒷부분을 보십시오. 그 아들 에서와 야곱이 그를 장사하였더라. 에서와 함께 이삭을 장사한 야곱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지난 일들이 얼마나 후회스러웠을까요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우리의 젊음을 보냈단 말인가 우리가 그 오랜 세월동안 헤어져서 살아야만 했던 이유는 무엇인가 부모에게 깊은 상처를 남기면서까지 우리는 무엇을 얻으려고 했던가 우리가 추구해야할 진정한 것은 무엇이었을까 우리가 열심을 내어야할 가치있는 일은 무엇이었을까 야곱은 헤브론에서 진정한 헌신을 배웠을 것입니다. 헛된 일에 분요하지 않는 법을 배웠을 것입니다. 죽음을 생각하면서도 삶을 지혜롭게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배웠을 것입니다. 장자권이라는 게 바로 헤브론을 소유하는 것임을 알았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약속해주신 땅과 후손의 약속을 철석같이 믿고 헛된 일에 힘쓰지 않고 진정 가치있는 일을 하면서 살아갔던 그 선조들의 신앙을 이어받는 것이 바로 장자권임을 알았습니다. 헤브론. 헤브론은 이처럼 우리의 발길을 멈추게 하는 곳입니다. 헤브론은 이처럼 참된 삶, 정말 가치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는 삶을 살게 해주는 곳입니다. 그 이후의 역사를 보면, 사울이 죽은 다음에 다윗이 유다의 왕이 되어서 수도로 정한 곳이 바로 헤브론입니다. 다윗은 왜 헤브론을 유다의 수도로 삼았을까요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특히 헌신예배를 드리면서 올해에도 하나님의 일을 열심을 다해서 하겠노라고 서약하는 남선교회 회원 여러분. 우리들의 헤브론은 어디입니까 우리가 죽은 자들로부터 교훈을 얻어야 하는 헤브론은 어디입니까 헛된 것을 추구하던 우리가 정착해야 할 그곳은 어디입니까 지금까지 어그러진 것들을 청산하고 우리들의 삶을 새롭게 시작해야할 그곳은 그 헤브론은 과연 어디입니까 성도 여러분. 헌신 예배를 드리는 남선교회 회원 여러분. 야곱은 이미 오래전 사람이지만 그래도 이 시간 우리를 찾아와 이렇게 말합니다. 헛된 일에 분요하지 맙시다. 진정한 가치있는 일에 우리의 모든 것을 바쳐서 일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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