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곱처럼 살 수 없을까 (창29:15-27)
본문
우리가 부르는 복음성가 가운데 “낮엔 해처럼 밤엔 달처럼 그렇게 살순 없을까 예수님처럼 바울처럼 그렇게 살 순 없을까”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오늘 설교의 제목은 “야곱처럼 살 수 없을까”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여러분에게 은혜를 주실 줄 믿습니다. 사람이 잘한다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누구에게든지 칭찬을 듣고 훌륭한 인물이 되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나쁜 사람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누구나 다 나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은 어제 엄청난 뉴스를 들으셨을 것입니다. 롯데그룹 신격호회장의 선친의 묘가 도굴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세상에 전무후무한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나라 정서문화적으로 보아도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돈 때문에 남의 조상의 무덤을 파해치고 협박 전하를 걸다니 도저히 믿으지지 않습니다. 사건도 희귀해 져가고 있습니다. 특히한 사건입니다. 그곳에 문화재를 묻으둔 것이 아닐진대 그럴수 있을까요 무엇을 믿을 수 있고 안심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이 잘하기가 참 어렵숩니다. 조금만 잘하면 되는데 그것이 쉽지 않습니다. 조금만 고치면 되는데 그것이 어려워서 좋은 사람이 못되는 것입니다. 야곱은 인류 역사상 하나님 앞에 최고의 스타입니다. 수십 세기를 지나오면서도 그 이름이 영원히 빛나는 훌륭한 인물입니다. 그는 우리 모든 인류가, 모든 성도들이 따라야 할 믿음의 삶을 살아온 사람입니다. 영적으로 승리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야곱을 사랑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이름도 바로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다시 저어주신 이름입니다. 야곱은 여러 면으로 특별한 사람입니다.
첫째, 그는 빈손으로 집을 떠났습니다. 부모 곁을 떠나 빈손으로 멀리 하란 땅에 갔다가 성공해서 최고의 부유함을 얻어 집으로 돌아온 사람입니다.
둘째, 그는 외삼촌 라반을 만납니다. 라반은 조카를 이용해서 자신의 재산을 늘리는 사기꾼입니다. 이런 외삼촌을 만났지만 야곱은 그곳에서 외삼촌의 딸과 결혼하여 기어이 행복을 얻고 많은 재산까지 얻어서 돌아온 사람입니다. 야곱은 외삼촌의 집에서 20년 동안 머슴살이를 합니다. 그 무더운 광야에서 20년을 지내면서도 낙심하지 않고, 물러서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기어이 승리하여 외삼촌의 양떼를 자기 소유의 양떼로 만듭니다. 그 광야는 45도가 넘는 곳입니다. 그런 곳에서 20년을 지내면서 넉넉히 이겨냈습니다. 대단한 사람입니다. 불리한 모든 조건을 넘어서서 어렵고 힘든 고비를 이겨냈습니다. 상대방을 이기는 것도 어렵지만 자연을 극복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자신을 극복하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이 모든 것을 넘어서서 그는 이스라엘이 되었고 최고의 축복을 받아 고향으로 돌아올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넘어야 합니다. 어떤 일이든지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만나든지 승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앞날도 쉬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의 삶을 쉽게 두시지 않습니다. 험산 준령이 우리를 가로막는다 할지라도 우리는 넘어서야 합니다. 내게 닥친 어떠한 조건도 넘어서야 합니다. 못 배우면 못 배운 대로 받는 ㅁ려시와 천대가 있습니다. 사람 차별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이겨내야 합니다. 건강하지 못하면 건강하지 못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불리한 조건이 너무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넘어야 합니다. 부모를 잘못 만났습니까 신체적인 결함이 있습니까 남들처럼 인물이 잘나지 못했습니까 돈이 없습니까 그러면 그럴수록 여러분은 야곱과 같이 넘어서야 합니다. 인생에 실패했습니까 가정에 실패했습니까 남편에게 문제가 있습니까 삶에 어려움이 있습니까 여러분에게 야곱처럼 엄청난 시련이 몰아닥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이겨내야 합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조금만 올라가려고 해보십시오. 얼마나 어려움이 옵니까 서류를 가지고 결재받으러 가면 과장, 부장들이 얼마나 거드름을 피우고 멸시합니까 이걸 손으로 했느냐 발로 했느냐 하면서 얼마나 모욕을 줍니까 그럴 때에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하냐”하면 그는 그 자리에서 끝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참아야 되고, 이겨야 됩니다. 감당해야 되고, 넘어서야 됩니다. 야곱과 같이 우리는 최후에 승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어려움이 우리를 실패하게 하지 않습니다. 자연 환경이 우리를 어렵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못난 것 때문에 불행해지지 않습니다. 키 작은 것 때문에 망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각오하면 반드시 이겨낼 수 있을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분이 자기 애인하고 동거 생활을 몇 년 했는데, 여자가 남자를 버리고 다른 곳으로 갔다고 합니다. 남자가 아무리 사정해도 안 살겠다는 것입니다. 요사이는 여자들이 이렇게 남자를 잘 차버립니다. 그래서 이 남자가 한강에 투신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빠질 때까지는인생이 막막해 뛰어들었는데 빠지고 보니 살고 싶더랍니다. “아이고 내가 살아야지”라는 생각으로 필사적으로 헤엄을 치면서 떠내려가다가 경찰에게 구조되어 살아났스니다. 살아야 합니다. 꽃이 호박꽃만 있습니까 진달래도 있는데 왜 죽습니까 그 여자가 떠났다고 죽습니까 자기가 싫다고 떠난 여자에게 무슨 미련을 가지고 낙심해서 인생을 포기합니까 살아야 합니다. 이겨야 합니다. 모든 것을 넘어서야 합니다. 성공해야 합니다. 모든 불리한 조건을 넘어서야 할 줄 믿습니다. 이것이 바로 야곱의 삶입니다. 야곱은 모든 어려움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었습니까
첫째, 라헬을 사랑했으므로 이겨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라헬을 주겠다고 했기 때문에 7년 동안 외삼촌 댁에서 머슴살이를 해주었는데 외삼촌이 레아를 줍니다. 외삼촌은 회유를 합니다. “네가 또 7년 동안 우리 집에서 일을 해준다면 라헬을 주겠다.” 그러나 야곱은 항의하지 않습니다. 라헬을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 크기 때문에 따지지 않고 레아와 혼인한 후에 또 7년 동안 머슴살이를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우리의 라헬이 누구입니까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라헬이 되는 줄 믿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면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야곱이 라헬을 사랑한 것처럼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어떠한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롬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 확실하게 분명하게 예수님만 사랑하는 사람은 다 이겨냅니다. 환난이나 시험이나 곤고나 위험이나 현재의 일이나 장래의 일이나 어떠한 어려움이라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길 수 있습니다. 바울은 또 “(엡6:2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 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라고 했습니다.
둘째, 야곱은 소망이 있고 꿈이 있었기 때문에 이겨냈습니다. 창세기 30장을 읽어 보면, 야곱이 외삼촌 댁에서 머슴살이를 한 후에 외삼촌과 타협한 일이 있습니다. “제가 외삼촌 댁에서 항상 빈손으로 일을 해서 되겠습니까 내 것이 있어야 내 집을 세우지 않겠습니까 외삼촌 댁에 있는 양떼들 가운데 앞으로 얼룩진 양이 태어나면 그것은 제 몫으로 주십시오.” 외삼촌 라반은 야곱의 제의를 받아들인 후 얼룩진 양은 미리 골라내어 모두 자기의 아들들에게 주고, 흰 양만 야곱에게 줍니다. 야곱의 양은 다 희기 때문에 얼룩양이 태어나지 않습니다. 얼룩진 양이 태어날 확률은 100분의 1도 안됩니다. 그러나 만약에 얼룩울룩한 양이 태어나면 그것은 모두 야곱의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외삼촌과 불리한 조건으로 타협했지만, 그래도 야곱은 소망을 갖습니다. 신풍나무, 버드나무, 살구나무 가지를 껍질을 벗겨 얼룩 무늬를 내서 양들이 물을 먹으러 오는 물구유에 꽂아 놓습니다. 껍질을 드문드문 벗기니까 얼룩얼룩합닏. 푸르고 희고 푸르고 희고 합니다. 양들이 종일 풀을 뜯어먹고 그곳에 와서 물 먹고 새끼를 뱁니다. 암놈이 세워 놓은 얼룩얼룩한 나뭇가지를 보고 새끼를 배는 것입니다. 그저라 영락없이 얼룩얼룩한 새끼양만 태어나는 것입니다. 야곱은 부자가 됩니다. 축복을 받습니다. 성공합니다. 우리가 꼭 대적해서 싸워야만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꿈을 가지고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무한한 축복을 바라면서 믿음으로 나아가면 승리할 줄 믿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이요, 소망이요, 꿈인 줄 믿습니다. 나폴레옹은 “이 세상은 환상을 가진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라고 말했습니다. 세상은 절망을 가진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가진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좋은 생각을 가지고 꿈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에 의해서 역사는 훌륭하게 발전해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래를 바라보아서는 안됩니다. 미국의 부흥목사 빌리 그레이엄은 이런 예화를 자주 사용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등산을 하다가 길을 잃고 헤매던 중에 불빛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불빛을 따라 올라갔더니 오두막집이 있었습니다. 그 오두막 주인이 “여기서 길을 잃어버린 사람은 거의 길을 찾지 못하고 산속에서 다 죽었는데 어떻게 여기까지 찾아왔습니까” 하며 몹시 놀라워했습니다. “예, 저는 불빛을 보고 찾아왔습니다.” 사람이 산에서 길을 잃어버렸을 때는 99%가 산 아래로 내려간다고 합니다. 산이 높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마을이 있다면 틀림없이 아래쪽에 있겠지 하고 내려간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라믄 기을 잃어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산에서 길을 잃어버렸을 때는 위로 올라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곳의 가장 높은 봉우리로 올라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어디에서 길을 잃어버렸는지 위에서 보아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려가는 길도, 마을도 높은 곳에서 봐야 보인다는 것입니다. 밑으로 내려가면 안 보인다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위로 올라가는 종교입니다. 우리에게 절망이 있을 때, 길을 잃어버렸을 때 낙심하고 원망하고 불평하면서 이 세상을 헤매면 안됩니다. 주님 앞으로 나아가 기도하면서 주님을 바라볼 때에 내 위치를 발견하게 됩니다. 내가 왜 이렇게 실패하고 불행하게 되었는지 원인을 알게 됩니다. 여호와는 선한 목자가 되셔서 길을 알려주십니다. 멀리 바라보아야 자기가 걸어가야 할 코스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낙심해서는 안됩니다. 세상을 바라보고 불평해서도 안됩니다. 등산을 하다가 길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올라가야 합니다. 위를 향하여 올라가야 길을 찾을 줄 믿습니다.
셋째, 야곱은 기도함으로 이겨냈습니다. 야곱은 외삼촌을 피해서 오다가 형을 만나게 됩니다. 형이 4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온다는 말을 듣고 야곱은 형을 만나기 전날 밤에 얍복 강가에서 천사와 씨름을 합니다. 이것은 바로 야곱의 기도입니다. 얍복 강가에서 이 마지막 여러움을 넘어서면서부터 야곱의 길은 형통하게 열리는 것입니다. 찬사와 씨름하는 것은 기도를 말합니다. 형을 만나게 될 내일은 절망입니다. 형 에서가 자기를 죽이려고 군사를 이끌고 오고 있다니 큰일입니다. 모든 것이 다 끝나려는 순간 그는 하나님 앞에 밤을 세워 기도하면서, 천사와 씨름하여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고 승리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막막할 때에, 어려울 때에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 앞에 부르짖으면 얍복 강을 무사히 건널 줄 믿습니다. 여러분도 기도하면 어떤 어려움이라도 넘어서서 야곱 같은 삶이 될 것입니다. 성공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마귀와의 싸움이 쉽지 않습니다. 어려움을 이겨내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야곱과 같이 라헬을 사랑하고, 꿈과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면 여러분의 모든 어려움은 야곱처럼 해결되어 하나님 앞에 최고의 축복을 받는 이스라엘이 될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에게 은혜를 주실 줄 믿습니다. 사람이 잘한다는 것이 참 어렵습니다. 누구에게든지 칭찬을 듣고 훌륭한 인물이 되는 것은 더욱 어렵습니다. 그렇지만 나쁜 사람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세계를 깜짝 놀라게 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닙니다. 누구나 다 나쁜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여러분은 어제 엄청난 뉴스를 들으셨을 것입니다. 롯데그룹 신격호회장의 선친의 묘가 도굴되는 사건이 일어났습니다. 세상에 전무후무한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 나라 정서문화적으로 보아도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사건이 아닐 수 없습니다. 돈 때문에 남의 조상의 무덤을 파해치고 협박 전하를 걸다니 도저히 믿으지지 않습니다. 사건도 희귀해 져가고 있습니다. 특히한 사건입니다. 그곳에 문화재를 묻으둔 것이 아닐진대 그럴수 있을까요 무엇을 믿을 수 있고 안심할 수 있겠습니까 사람이 잘하기가 참 어렵숩니다. 조금만 잘하면 되는데 그것이 쉽지 않습니다. 조금만 고치면 되는데 그것이 어려워서 좋은 사람이 못되는 것입니다. 야곱은 인류 역사상 하나님 앞에 최고의 스타입니다. 수십 세기를 지나오면서도 그 이름이 영원히 빛나는 훌륭한 인물입니다. 그는 우리 모든 인류가, 모든 성도들이 따라야 할 믿음의 삶을 살아온 사람입니다. 영적으로 승리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야곱을 사랑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 이스라엘이라고 하는 이름도 바로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다시 저어주신 이름입니다. 야곱은 여러 면으로 특별한 사람입니다.
첫째, 그는 빈손으로 집을 떠났습니다. 부모 곁을 떠나 빈손으로 멀리 하란 땅에 갔다가 성공해서 최고의 부유함을 얻어 집으로 돌아온 사람입니다.
둘째, 그는 외삼촌 라반을 만납니다. 라반은 조카를 이용해서 자신의 재산을 늘리는 사기꾼입니다. 이런 외삼촌을 만났지만 야곱은 그곳에서 외삼촌의 딸과 결혼하여 기어이 행복을 얻고 많은 재산까지 얻어서 돌아온 사람입니다. 야곱은 외삼촌의 집에서 20년 동안 머슴살이를 합니다. 그 무더운 광야에서 20년을 지내면서도 낙심하지 않고, 물러서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기어이 승리하여 외삼촌의 양떼를 자기 소유의 양떼로 만듭니다. 그 광야는 45도가 넘는 곳입니다. 그런 곳에서 20년을 지내면서 넉넉히 이겨냈습니다. 대단한 사람입니다. 불리한 모든 조건을 넘어서서 어렵고 힘든 고비를 이겨냈습니다. 상대방을 이기는 것도 어렵지만 자연을 극복하는 것도 어렵습니다. 자신을 극복하기는 더욱 어렵습니다. 이 모든 것을 넘어서서 그는 이스라엘이 되었고 최고의 축복을 받아 고향으로 돌아올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도 넘어야 합니다. 어떤 일이든지 감당해야 합니다. 우리는 무슨 일을 만나든지 승리해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의 앞날도 쉬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택하신 백성의 삶을 쉽게 두시지 않습니다. 험산 준령이 우리를 가로막는다 할지라도 우리는 넘어서야 합니다. 내게 닥친 어떠한 조건도 넘어서야 합니다. 못 배우면 못 배운 대로 받는 ㅁ려시와 천대가 있습니다. 사람 차별을 많이 합니다. 그러나 이겨내야 합니다. 건강하지 못하면 건강하지 못한 사람에게 주어지는 불리한 조건이 너무너무 많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넘어야 합니다. 부모를 잘못 만났습니까 신체적인 결함이 있습니까 남들처럼 인물이 잘나지 못했습니까 돈이 없습니까 그러면 그럴수록 여러분은 야곱과 같이 넘어서야 합니다. 인생에 실패했습니까 가정에 실패했습니까 남편에게 문제가 있습니까 삶에 어려움이 있습니까 여러분에게 야곱처럼 엄청난 시련이 몰아닥칠 수 있습니다. 그래도 이겨내야 합니다. 직장 생활을 하면서 조금만 올라가려고 해보십시오. 얼마나 어려움이 옵니까 서류를 가지고 결재받으러 가면 과장, 부장들이 얼마나 거드름을 피우고 멸시합니까 이걸 손으로 했느냐 발로 했느냐 하면서 얼마나 모욕을 줍니까 그럴 때에 “내가 왜 이런 일을 당하냐”하면 그는 그 자리에서 끝나는 것입니다. 우리는 참아야 되고, 이겨야 됩니다. 감당해야 되고, 넘어서야 됩니다. 야곱과 같이 우리는 최후에 승리하는 사람이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어려움이 우리를 실패하게 하지 않습니다. 자연 환경이 우리를 어렵게 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못난 것 때문에 불행해지지 않습니다. 키 작은 것 때문에 망하지 않습니다. 여러분이 각오하면 반드시 이겨낼 수 있을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분이 자기 애인하고 동거 생활을 몇 년 했는데, 여자가 남자를 버리고 다른 곳으로 갔다고 합니다. 남자가 아무리 사정해도 안 살겠다는 것입니다. 요사이는 여자들이 이렇게 남자를 잘 차버립니다. 그래서 이 남자가 한강에 투신 자살을 시도했습니다. 빠질 때까지는인생이 막막해 뛰어들었는데 빠지고 보니 살고 싶더랍니다. “아이고 내가 살아야지”라는 생각으로 필사적으로 헤엄을 치면서 떠내려가다가 경찰에게 구조되어 살아났스니다. 살아야 합니다. 꽃이 호박꽃만 있습니까 진달래도 있는데 왜 죽습니까 그 여자가 떠났다고 죽습니까 자기가 싫다고 떠난 여자에게 무슨 미련을 가지고 낙심해서 인생을 포기합니까 살아야 합니다. 이겨야 합니다. 모든 것을 넘어서야 합니다. 성공해야 합니다. 모든 불리한 조건을 넘어서야 할 줄 믿습니다. 이것이 바로 야곱의 삶입니다. 야곱은 모든 어려움을 어떻게 이겨낼 수 있었습니까
첫째, 라헬을 사랑했으므로 이겨냈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라헬을 주겠다고 했기 때문에 7년 동안 외삼촌 댁에서 머슴살이를 해주었는데 외삼촌이 레아를 줍니다. 외삼촌은 회유를 합니다. “네가 또 7년 동안 우리 집에서 일을 해준다면 라헬을 주겠다.” 그러나 야곱은 항의하지 않습니다. 라헬을 사랑하는 마음이 너무 크기 때문에 따지지 않고 레아와 혼인한 후에 또 7년 동안 머슴살이를 합니다. 그렇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 것입니까 우리의 라헬이 누구입니까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라헬이 되는 줄 믿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하면 모든 것을 이겨낼 수 있다는 말입니다. 야곱이 라헬을 사랑한 것처럼 우리가 예수님을 사랑한다면 우리는 어떠한 어려움도 이겨낼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롬8: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고 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뜨겁게 사랑하는 사람, 확실하게 분명하게 예수님만 사랑하는 사람은 다 이겨냅니다. 환난이나 시험이나 곤고나 위험이나 현재의 일이나 장래의 일이나 어떠한 어려움이라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길 수 있습니다. 바울은 또 “(엡6:24)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변함 없이 사랑하는 모든 자에게 은혜가 있을지어다 ”라고 했습니다.
둘째, 야곱은 소망이 있고 꿈이 있었기 때문에 이겨냈습니다. 창세기 30장을 읽어 보면, 야곱이 외삼촌 댁에서 머슴살이를 한 후에 외삼촌과 타협한 일이 있습니다. “제가 외삼촌 댁에서 항상 빈손으로 일을 해서 되겠습니까 내 것이 있어야 내 집을 세우지 않겠습니까 외삼촌 댁에 있는 양떼들 가운데 앞으로 얼룩진 양이 태어나면 그것은 제 몫으로 주십시오.” 외삼촌 라반은 야곱의 제의를 받아들인 후 얼룩진 양은 미리 골라내어 모두 자기의 아들들에게 주고, 흰 양만 야곱에게 줍니다. 야곱의 양은 다 희기 때문에 얼룩양이 태어나지 않습니다. 얼룩진 양이 태어날 확률은 100분의 1도 안됩니다. 그러나 만약에 얼룩울룩한 양이 태어나면 그것은 모두 야곱의 것이 된다는 것입니다. 외삼촌과 불리한 조건으로 타협했지만, 그래도 야곱은 소망을 갖습니다. 신풍나무, 버드나무, 살구나무 가지를 껍질을 벗겨 얼룩 무늬를 내서 양들이 물을 먹으러 오는 물구유에 꽂아 놓습니다. 껍질을 드문드문 벗기니까 얼룩얼룩합닏. 푸르고 희고 푸르고 희고 합니다. 양들이 종일 풀을 뜯어먹고 그곳에 와서 물 먹고 새끼를 뱁니다. 암놈이 세워 놓은 얼룩얼룩한 나뭇가지를 보고 새끼를 배는 것입니다. 그저라 영락없이 얼룩얼룩한 새끼양만 태어나는 것입니다. 야곱은 부자가 됩니다. 축복을 받습니다. 성공합니다. 우리가 꼭 대적해서 싸워야만 이기는 것이 아닙니다. 꿈을 가지고 소망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시는 무한한 축복을 바라면서 믿음으로 나아가면 승리할 줄 믿습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이요, 소망이요, 꿈인 줄 믿습니다. 나폴레옹은 “이 세상은 환상을 가진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진다”라고 말했습니다. 세상은 절망을 가진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희망을 가진 사람에 의해서 만들어지는 것입니다. 좋은 생각을 가지고 꿈을 가지고 앞으로 나아가는 사람에 의해서 역사는 훌륭하게 발전해 나가는 것입니다. 우리는 아래를 바라보아서는 안됩니다. 미국의 부흥목사 빌리 그레이엄은 이런 예화를 자주 사용했습니다. 어떤 사람이 등산을 하다가 길을 잃고 헤매던 중에 불빛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불빛을 따라 올라갔더니 오두막집이 있었습니다. 그 오두막 주인이 “여기서 길을 잃어버린 사람은 거의 길을 찾지 못하고 산속에서 다 죽었는데 어떻게 여기까지 찾아왔습니까” 하며 몹시 놀라워했습니다. “예, 저는 불빛을 보고 찾아왔습니다.” 사람이 산에서 길을 잃어버렸을 때는 99%가 산 아래로 내려간다고 합니다. 산이 높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마을이 있다면 틀림없이 아래쪽에 있겠지 하고 내려간다는 것입니다. 그런 사라믄 기을 잃어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산에서 길을 잃어버렸을 때는 위로 올라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곳의 가장 높은 봉우리로 올라가야 된다는 것입니다. 내가 어디에서 길을 잃어버렸는지 위에서 보아야 알 수 있다는 것입니다. 내려가는 길도, 마을도 높은 곳에서 봐야 보인다는 것입니다. 밑으로 내려가면 안 보인다는 것입니다. 기독교는 위로 올라가는 종교입니다. 우리에게 절망이 있을 때, 길을 잃어버렸을 때 낙심하고 원망하고 불평하면서 이 세상을 헤매면 안됩니다. 주님 앞으로 나아가 기도하면서 주님을 바라볼 때에 내 위치를 발견하게 됩니다. 내가 왜 이렇게 실패하고 불행하게 되었는지 원인을 알게 됩니다. 여호와는 선한 목자가 되셔서 길을 알려주십니다. 멀리 바라보아야 자기가 걸어가야 할 코스를 찾게 되는 것입니다. 어려운 일이 있을 때 낙심해서는 안됩니다. 세상을 바라보고 불평해서도 안됩니다. 등산을 하다가 길을 잃어버릴 수도 있는 것입니다. 그때 우리는 저 높은 곳을 향하여 올라가야 합니다. 위를 향하여 올라가야 길을 찾을 줄 믿습니다.
셋째, 야곱은 기도함으로 이겨냈습니다. 야곱은 외삼촌을 피해서 오다가 형을 만나게 됩니다. 형이 400명의 군사를 이끌고 온다는 말을 듣고 야곱은 형을 만나기 전날 밤에 얍복 강가에서 천사와 씨름을 합니다. 이것은 바로 야곱의 기도입니다. 얍복 강가에서 이 마지막 여러움을 넘어서면서부터 야곱의 길은 형통하게 열리는 것입니다. 찬사와 씨름하는 것은 기도를 말합니다. 형을 만나게 될 내일은 절망입니다. 형 에서가 자기를 죽이려고 군사를 이끌고 오고 있다니 큰일입니다. 모든 것이 다 끝나려는 순간 그는 하나님 앞에 밤을 세워 기도하면서, 천사와 씨름하여 이스라엘이라는 이름을 얻고 승리할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도 막막할 때에, 어려울 때에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 앞에 부르짖으면 얍복 강을 무사히 건널 줄 믿습니다. 여러분도 기도하면 어떤 어려움이라도 넘어서서 야곱 같은 삶이 될 것입니다. 성공하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마귀와의 싸움이 쉽지 않습니다. 어려움을 이겨내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야곱과 같이 라헬을 사랑하고, 꿈과 믿음을 가지고 기도하면 여러분의 모든 어려움은 야곱처럼 해결되어 하나님 앞에 최고의 축복을 받는 이스라엘이 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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