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서 지시하신곳에이르라 (창22:1-2)
본문
신구약 성경을 통하여 많은 인물중에서 하나님의 택한 백성 이스라엘이 자랑스럽게 여기는 인물이 있습니다. 그분이 바로 본문의 주인공되는 아브라함입니다. 하나님께서도 그를 “복의 근원이 되라” 크게 축복 해 주셨고 또 하나님 말씀대로 천하만민의 복의 근원이 되엿습니다. 사실 아브라함때문에 이스라엘은 위대한 민족이 되였으며 하나님의 축복을 전하는 백성이 됏습니다.
그런데 아브람함은 원래 그렇게 훌륭한 사람은 아니였습니다. 세상적으로 자랑스런 인물도 아니였습니다. 능력있고 문벌 좋은 사람도 아니였습니다. 오히려 갈대아 우르에서 우상을 섬기는 데라의 아들이였습니다. 이런 아브라함을 하나님은 그토록 자랑스런 인물로 만들었을까요 오늘 본문의 내용이 바로 그를 그토록 훌륭하게 만든 절정의 이야기 입니다. 100세나 잡순 노인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이삭을 낳았습니다. 그에게는 생명처럼 소중한 아들이였습니다. 아마도 그가 이삭을 낳은후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아들 이삭을 더 많이 생각하고 사랑하게 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청천벽력과 같은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2절에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는 것이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조금도 거역함이없이 아침 일찍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함께 번제에 쓸 나무를 이삭에게 지워가지고 3일길을 걸어서 모리아 산-하나님이 지시하신곳으로 갔습니다 지시하신곳에 이르러 단을 쌓고 나무를 벌려놓고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칼로 그를 잡아 제사를 드리려 하였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사자가 급히 아브라함의 칼날을 막아세웠습니다. “아브라함아,-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라 아무일도 그에게 하지말라 네 아들 독자까지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눈을 들어보니 수양 한마리가 가시덤불에 걸려 있어 대신잡아 제사를 드렷습니다. 16절에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씨로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복중의 큰 복을 내리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지시하신곳-모리아산에 이르렀기에 믿음의 조상이 되였고 축복의 사람이 되였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이르라 하신 곳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여기에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이 있고 신앙이 있고 죽음을 넘는 생명의 극치가 있습니다. 이기적인 나에게서 벗어나는 자유함이 있고 시간에서 영원에 이르는 감격이 있습니다.
1.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사랑의 산정-모리아산에 이르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보다 더 하나님을 사랑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모리아산정까지 오르게 하여 사랑을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사랑의 모리아산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나타나 말씀하시기를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배와 그물을 가리키며 옆에 있는 동료를 가리키며 이것들 보다 이 사람들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물으셨습니다. 베드로는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사랑을 고백하고 평생을 주님을 위하여 살았고 주님을 위하여 죽고 지금은 분명히 주님의 사랑의 품안에 안겨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친히 말씀하시기를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다”고 하셨습니다. (마10:37) 또 누가복음 14:26에 “무릇 네게 오는 자는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하였습니다. 사랑의 산정 모리아산에 이르도록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사랑을 위해 사랑을 더하는 것입니다. 에로스 사랑과 아가페 사랑의 대결에서 에로스,필로사랑에다 아가페사랑을 더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인간적인 사랑에 하나님의 사랑을 더하였습니다. 우리는 종종 이런 산에 오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때가 있습니다. 중공치하에 있던 황쳉목사는 중공감옥에 수감되었을때 그는 심한 고문을 당하고 투옥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건너방 창살너머에서는 갈기 갈기 찢어진 옷을 걸치고 쇠사슬에 묶인 체 신음하고 있는 아들이 보였습니다. 자세히 보니 정말 하나밖에 없는 자기 아들이었습니다. 무지막지한 놈들이 사랑하는 아들을 유혹의 미끼로 삼는 것이였습니다. 잠시후 아들을 거꾸로 매달아 고문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공산주의자는 챙 목사에게 물었습니다. “만일 네가 예수님을 부인하고 오늘 네 믿음의 형제들이 있는 곳을 알려 주면 네 아들을 살려 주마 ” 쳉목사는 조용히 눈을 감고 기도 드렸습니다. “독자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번제로 드리려했던 아브라함의 하나님,독생자를 십자가에 처형하시던 하나님,이 종에게 긍휼을 베푸소서 그후에 아들에게 조용히 물었습니다. 아들아 어떻게 하랴 그때 어린 아들은 아버지 나는 아버지가 아들 때문에 예수님을 부인했다는 말을 들으며 살고 싶지 않습니다. 만일 아버지가 주님을 배반하면 그순간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아버지,우리아버지에게 굳센 믿음을 주옵소서” 하고 눈을 감고 하늘나라에 갔습니다. 롬8:35에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란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러나 이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제일이나 장래일이나 능력이나 죽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주예수안에 있는 0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말씀을 기억 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하나님이 원하시는恪사랑의 산정 모리아산에 이르는 체험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들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사랑의 산정 모리아산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종 우리들도 사랑의 산정 모리아산에 이르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도 이런 모리아 산상에 오를수 있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믿음의 산정-모리아산에 이르기를 원하셨습니다. 모리아산은 아브라함의 믿음의 절정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평소에는 잘 모릅니다. 시련속에서 참 믿음을 알수 있습니다. 3일길을 걷던 아브라함이 사환에게 이르기를 “여기서 기다려라 네가 아이와 함께 저기가서 하나님께 경배하고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에게 조금도 원망이나 불평,초조함 없이 찬송과 영광으로 예배드릴 것을 말하고 그가 죽더라도 다시 돌아올것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롬4장에서 아브라함의 훌륭한 신앙을 이렇게 말합니다. 1 죽어도 산다는 믿음의 사람이였습니다. 17절에 “그의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은 죽은자도 살리는 하나님 아버지 이심을 조금도 의심치 않고 믿은 위대한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2 바랄수 없는 중에도 바라고 믿는 믿음의 사람이였습니다. 18절“아브라함이 바랄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3 믿음이 약해지지 않는 믿음의 사람이였습니다. 그가 100세나 되어 자기몸의 죽은 것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 지지 아니하였습니다.(19절) 약해지지 않는 믿음입니다. 4 믿음이 견고한 믿음의 사람이였습니다.20절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이 견고하여 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어떤절망 어떤 위기에 부딪쳐도 믿음이 파손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견고한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흔들린적이 없었습니다. 5약속하신것을 능히 이룰줄 확신하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이삭이 묻기를 “아버지! 불과 나무는 있는데 번제할 양은 어디에 있습니까” 아브라함이 답하기를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신다” 고 대답했습니다. 이것은 약속하신것을 하나님께서 능히 이루실줄을 확신한것이었습니다.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믿음의 산정-모리아산에 이르기를 바랍니다.
3.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순종의 산정-모리아산에 이르기를 원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일생은 하나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일생이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믿음은 순종으로 실천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곧 순종입니다. 순종은 의요 불순종은 죄입니다. 롬5:9에 “한사람이 순종치 아니하므로 많은 사람이 죄인된 것 같이 한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히11:8에도“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쌔 갈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다”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순종의 사람입니다. 1아브라함은 즉시 순종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아침일찍 일어나 모리아 산으로 향했습니다. 시119:60에 “주의 계명을 지키기에 신속히 하고 지채치아니하였다”는 것을 그대로 실천하였습니다. 베드로가 갈릴리 바다에서 부름을 받았을 때에 그물을 버려두고 곧 예수를 쫒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즉시 순종해야 합니다. 지체하면 지체한것 만큼 손해가 옵니다. 아브라함은 지체하지 않았습니다. 즉시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순종하기 위하여 아내와 의논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아들 이삭과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침 일찍 일어 났던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 명령을 순종하는데 아주 단호하였습니다. 2온전한 순종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순종의 발걸음을 알고 계셨습니다만 이삭을 장작더미 위에 묶어 놓고 칼을 목에 댈때까지 하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온전한 순종을 기다리신 것입니다. 온전히 순종해야 큰 축복이 있습니다. 3기쁨으로 순종했습니다. 억지로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즐거움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순종은 예수그리스도로 하여금 죽기까지 순종한 일생을 묘사하기도 합니다. 4모리아산은 예수님을 만나는 산이었습니다. 18절에“네씨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얻으리라”한 말씀이 요8:56에서 “너희 아브라함은 나의 때에 볼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에서 이루어 졌습니다. 아브라함은 모리아산에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았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본것이었습니다. 모리아산은 장차 일류를 구원할 갈보리 산상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독자이삭을 제물로 삼았듯이 하나님이 독자예수를 제물로 삼으실것을 보았습니다. 이삭이 자기 제물로 번재드릴 나무장작을 지고 모리아산을 올라간 것처럼 예수님이 나무십자가를 지고 갈보리산에 올라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을 것을 보았습니다. 이삭이 죽음 직전에 죽음에서 살아난 것처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고 3일만에 다시 살아날것을 보았습니다. 이삭이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죽기까지 순종한것은 하나님 아버지 뜻에 순종하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삭이“번재할 양이 어디 있나이까”묻고 자신이 번재할 양인것을 알았을때 아버지의 뜻에 순종한것처럼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아버지여 이잔을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고 순종하였습니다. 이삭이 제단의 제물로 바쳐진것처럼 예수님도 제물로서 십자가상에 묶이어달리셨습니다. 모리아산은 갈보리 산입니다. 아브라함은 모리아산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보았습니다.
대상3:1에 ”솔로몬이 예루살렘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 아비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다윗이정한 곳이라“하였습니다. 모리아산은 예루살렘 성전터전이 되였습니다. 뿐아니라 인류를 구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산상-갈보리산상이 되였습니다. 누구든지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고 순종할때 그리스도를 만나고 십자가에서 죽고 다시사는 신앙의 체험을 맛보게 됩니다. 우리는 언제나 예배드리러 올 때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산을 올라가는 마음과 축복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복의 근원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의 산정,믿음의 산정,순종의 산정-모리아산상에 올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하나님의 영광을 보고,전하는 우리 일신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아브람함은 원래 그렇게 훌륭한 사람은 아니였습니다. 세상적으로 자랑스런 인물도 아니였습니다. 능력있고 문벌 좋은 사람도 아니였습니다. 오히려 갈대아 우르에서 우상을 섬기는 데라의 아들이였습니다. 이런 아브라함을 하나님은 그토록 자랑스런 인물로 만들었을까요 오늘 본문의 내용이 바로 그를 그토록 훌륭하게 만든 절정의 이야기 입니다. 100세나 잡순 노인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이삭을 낳았습니다. 그에게는 생명처럼 소중한 아들이였습니다. 아마도 그가 이삭을 낳은후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보다 아들 이삭을 더 많이 생각하고 사랑하게 되였을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날 청천벽력과 같은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졌습니다. 2절에 “하나님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는 것이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조금도 거역함이없이 아침 일찍 나귀에 안장을 지우고 두 사환과 함께 번제에 쓸 나무를 이삭에게 지워가지고 3일길을 걸어서 모리아 산-하나님이 지시하신곳으로 갔습니다 지시하신곳에 이르러 단을 쌓고 나무를 벌려놓고 아들 이삭을 결박하여 칼로 그를 잡아 제사를 드리려 하였습니다. 이때 하나님의 사자가 급히 아브라함의 칼날을 막아세웠습니다. “아브라함아,-그 아이에게 손을 대지 말라 아무일도 그에게 하지말라 네 아들 독자까지 아끼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눈을 들어보니 수양 한마리가 가시덤불에 걸려 있어 대신잡아 제사를 드렷습니다. 16절에 “네가 이같이 행하여 네 아들 독자를 아끼지 아니하였은즉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씨로 크게 번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복중의 큰 복을 내리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지시하신곳-모리아산에 이르렀기에 믿음의 조상이 되였고 축복의 사람이 되였습니다. 우리도 하나님께서 이르라 하신 곳까지 이르러야 합니다. 여기에 진정한 하나님의 사랑이 있고 신앙이 있고 죽음을 넘는 생명의 극치가 있습니다. 이기적인 나에게서 벗어나는 자유함이 있고 시간에서 영원에 이르는 감격이 있습니다.
1.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사랑의 산정-모리아산에 이르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을 알고 계십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자기 아들보다 더 하나님을 사랑하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모리아산정까지 오르게 하여 사랑을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들에게 사랑의 모리아산에 이르기를 원하십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나타나 말씀하시기를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배와 그물을 가리키며 옆에 있는 동료를 가리키며 이것들 보다 이 사람들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물으셨습니다. 베드로는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사랑을 고백하고 평생을 주님을 위하여 살았고 주님을 위하여 죽고 지금은 분명히 주님의 사랑의 품안에 안겨 있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친히 말씀하시기를 “아비나 어미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자는 내게 합당치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치 아니하다”고 하셨습니다. (마10:37) 또 누가복음 14:26에 “무릇 네게 오는 자는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및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나의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 하였습니다. 사랑의 산정 모리아산에 이르도록 원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은 사랑을 위해 사랑을 더하는 것입니다. 에로스 사랑과 아가페 사랑의 대결에서 에로스,필로사랑에다 아가페사랑을 더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인간적인 사랑에 하나님의 사랑을 더하였습니다. 우리는 종종 이런 산에 오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때가 있습니다. 중공치하에 있던 황쳉목사는 중공감옥에 수감되었을때 그는 심한 고문을 당하고 투옥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건너방 창살너머에서는 갈기 갈기 찢어진 옷을 걸치고 쇠사슬에 묶인 체 신음하고 있는 아들이 보였습니다. 자세히 보니 정말 하나밖에 없는 자기 아들이었습니다. 무지막지한 놈들이 사랑하는 아들을 유혹의 미끼로 삼는 것이였습니다. 잠시후 아들을 거꾸로 매달아 고문을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공산주의자는 챙 목사에게 물었습니다. “만일 네가 예수님을 부인하고 오늘 네 믿음의 형제들이 있는 곳을 알려 주면 네 아들을 살려 주마 ” 쳉목사는 조용히 눈을 감고 기도 드렸습니다. “독자 이삭을 모리아산에서 번제로 드리려했던 아브라함의 하나님,독생자를 십자가에 처형하시던 하나님,이 종에게 긍휼을 베푸소서 그후에 아들에게 조용히 물었습니다. 아들아 어떻게 하랴 그때 어린 아들은 아버지 나는 아버지가 아들 때문에 예수님을 부인했다는 말을 들으며 살고 싶지 않습니다. 만일 아버지가 주님을 배반하면 그순간 나는 아버지의 아들이 아닐 것입니다. 하나님아버지,우리아버지에게 굳센 믿음을 주옵소서” 하고 눈을 감고 하늘나라에 갔습니다. 롬8:35에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란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그러나 이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제일이나 장래일이나 능력이나 죽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주예수안에 있는 0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습니다.”말씀을 기억 하시기 바랍니다. 여기에 하나님이 원하시는恪사랑의 산정 모리아산에 이르는 체험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아들보다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사랑의 산정 모리아산에 이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의종 우리들도 사랑의 산정 모리아산에 이르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도 이런 모리아 산상에 오를수 있기를 바랍니다.
2.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믿음의 산정-모리아산에 이르기를 원하셨습니다. 모리아산은 아브라함의 믿음의 절정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믿는 믿음은 평소에는 잘 모릅니다. 시련속에서 참 믿음을 알수 있습니다. 3일길을 걷던 아브라함이 사환에게 이르기를 “여기서 기다려라 네가 아이와 함께 저기가서 하나님께 경배하고 너희에게 돌아오리라” 하였습니다. 하나님에게 조금도 원망이나 불평,초조함 없이 찬송과 영광으로 예배드릴 것을 말하고 그가 죽더라도 다시 돌아올것을 확신하고 있었습니다. 바울은 롬4장에서 아브라함의 훌륭한 신앙을 이렇게 말합니다. 1 죽어도 산다는 믿음의 사람이였습니다. 17절에 “그의 믿은바 하나님은 죽은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것 같이 부르시는 이시니라” 아브라함은 죽은자도 살리는 하나님 아버지 이심을 조금도 의심치 않고 믿은 위대한 신앙의 사람이었습니다. 2 바랄수 없는 중에도 바라고 믿는 믿음의 사람이였습니다. 18절“아브라함이 바랄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3 믿음이 약해지지 않는 믿음의 사람이였습니다. 그가 100세나 되어 자기몸의 죽은 것같음과 사라의 태의 죽은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 지지 아니하였습니다.(19절) 약해지지 않는 믿음입니다. 4 믿음이 견고한 믿음의 사람이였습니다.20절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치 않고 믿음이 견고하여 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어떤절망 어떤 위기에 부딪쳐도 믿음이 파손되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은 견고한 믿음의 소유자였습니다. 흔들린적이 없었습니다. 5약속하신것을 능히 이룰줄 확신하는 믿음의 사람이었습니다. 이삭이 묻기를 “아버지! 불과 나무는 있는데 번제할 양은 어디에 있습니까” 아브라함이 답하기를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신다” 고 대답했습니다. 이것은 약속하신것을 하나님께서 능히 이루실줄을 확신한것이었습니다. 우리도 아브라함처럼 믿음의 산정-모리아산에 이르기를 바랍니다.
3. 하나님은 아브라함이 순종의 산정-모리아산에 이르기를 원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일생은 하나님 말씀에 전적으로 순종하는 일생이었습니다. 하나님을 향한 사랑과 믿음은 순종으로 실천되는 것입니다. 믿음은 곧 순종입니다. 순종은 의요 불순종은 죄입니다. 롬5:9에 “한사람이 순종치 아니하므로 많은 사람이 죄인된 것 같이 한사람의 순종하심으로 많은 사람이 의인이 되었다”고 하였습니다. 히11:8에도“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쌔 갈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다”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순종의 사람입니다. 1아브라함은 즉시 순종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아침일찍 일어나 모리아 산으로 향했습니다. 시119:60에 “주의 계명을 지키기에 신속히 하고 지채치아니하였다”는 것을 그대로 실천하였습니다. 베드로가 갈릴리 바다에서 부름을 받았을 때에 그물을 버려두고 곧 예수를 쫒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즉시 순종해야 합니다. 지체하면 지체한것 만큼 손해가 옵니다. 아브라함은 지체하지 않았습니다. 즉시 순종했습니다. 아브라함은 순종하기 위하여 아내와 의논하지 않았습니다. 더구나 아들 이삭과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아침 일찍 일어 났던 것입니다. 그는 하나님 명령을 순종하는데 아주 단호하였습니다. 2온전한 순종을 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순종의 발걸음을 알고 계셨습니다만 이삭을 장작더미 위에 묶어 놓고 칼을 목에 댈때까지 하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온전한 순종을 기다리신 것입니다. 온전히 순종해야 큰 축복이 있습니다. 3기쁨으로 순종했습니다. 억지로 순종하는 것이 아니라 즐거움으로 순종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순종은 예수그리스도로 하여금 죽기까지 순종한 일생을 묘사하기도 합니다. 4모리아산은 예수님을 만나는 산이었습니다. 18절에“네씨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얻으리라”한 말씀이 요8:56에서 “너희 아브라함은 나의 때에 볼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에서 이루어 졌습니다. 아브라함은 모리아산에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보았고 그리스도의 부활을 본것이었습니다. 모리아산은 장차 일류를 구원할 갈보리 산상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이 독자이삭을 제물로 삼았듯이 하나님이 독자예수를 제물로 삼으실것을 보았습니다. 이삭이 자기 제물로 번재드릴 나무장작을 지고 모리아산을 올라간 것처럼 예수님이 나무십자가를 지고 갈보리산에 올라가 십자가에 못박혀 죽을 것을 보았습니다. 이삭이 죽음 직전에 죽음에서 살아난 것처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고 3일만에 다시 살아날것을 보았습니다. 이삭이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죽기까지 순종한것은 하나님 아버지 뜻에 순종하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이삭이“번재할 양이 어디 있나이까”묻고 자신이 번재할 양인것을 알았을때 아버지의 뜻에 순종한것처럼 예수님은 겟세마네 동산에서“아버지여 이잔을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마시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고 순종하였습니다. 이삭이 제단의 제물로 바쳐진것처럼 예수님도 제물로서 십자가상에 묶이어달리셨습니다. 모리아산은 갈보리 산입니다. 아브라함은 모리아산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보았습니다.
대상3:1에 ”솔로몬이 예루살렘전 건축하기를 시작하니 그곳은 전에 여호와께서 그 아비 다윗에게 나타나신 곳이요 여부스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다윗이정한 곳이라“하였습니다. 모리아산은 예루살렘 성전터전이 되였습니다. 뿐아니라 인류를 구원하는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산상-갈보리산상이 되였습니다. 누구든지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을 사랑하고 믿고 순종할때 그리스도를 만나고 십자가에서 죽고 다시사는 신앙의 체험을 맛보게 됩니다. 우리는 언제나 예배드리러 올 때마다 아브라함이 모리아산을 올라가는 마음과 축복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복의 근원이 되기를 바랍니다. 사랑의 산정,믿음의 산정,순종의 산정-모리아산상에 올라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하나님의 영광을 보고,전하는 우리 일신성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댓글목록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