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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성의 현주소 (창24:1-9)

본문

심리학자들은 인간 혹은 물건과의 사이의 사람이 두는 거리를 개인공간, Personal-space라고 부릅니다. 이 개인공간이라는 것은 그 사람을 둘러싼 공간 중에서 다른 사람이 들어오지 못하는 범위의 공간을 의미합니다. 이 공간을 네 종류로, 네 단계로 이렇게 구별해서 설명합니다.
첫째단계가, 첫째종류가 뭐냐하면 밀접 거리입니다. 아주 가까운 거리, 마치 연인의 관계처럼 서로 사랑하고 밀착된, 그런 마음의 거리를 말하는 것이올시다. 왜 흔히 젊은 사람들이 말하지 않습니까 하나 더하기 하나는 하나다. 둘이 아니다. 바로 그게 사랑이요, 그것이 믿음입니다. 그러니까 이 믿음의 관계, 이 사랑의 관계라고 것은 완전히 하나가 되는, 밀착된, 그런 밀접 관계인 것입니다. 여기에 진정한 행복이 있고 신뢰가 있고, 참 평안이 있습니다. 내가 저를 완전히 믿을 때, 또 저가 나를 완전히 믿어준다는 것을 알 때, 거기에 진정한 행복이 있습니다. 이것은 밀접 공간입니다. 밀접 거리. 그 다음 거리는 개인의 거리입니다. 개인거리라고 하는 것은 손을 뻗으면 닿을 수 있는 정도의 거리입니다. 내가 마음을 열면 됩니다. 그러나 열지 않습니다. 한 평생 같이 살지마는 아직 믿을 수가 없습니다. 믿을 수 있을 것 같은데 믿을 수 없고요, 꼭 일치된 것 같은데 보니까 그게 아니에요. 그야말로 동상이몽입니다. 손이 닿는 듯, 닿는 듯하나 이것은 완전히 하나가 된 그런 관계는 아닙니다.
유감스럽게 이런 일이 너무 많습니다. 한 평생 살을 대고 살면서도 못 믿어요. 왜요 거리가 있기 때문예요. 이 거리가 바로 개인거리입니다. 또 하나는 사교 거리가 있습니다. 세상을 살다보면 부득불 우리는 원하건, 원치 아니하건 많은 사람과 만나야 됩니다. 필요에 의해서, 사업상으로 또 여러 가지 이유에 의해서 서로 만나며 삽니다. 그것은 함께 만나는 것 같지마는 전적으로 신뢰하는 것은 아닙니다. 그야말로 사교적으로 필요에 따라서 적당한 거리를 유지하며 살아가는 그런 거리가 있고요. 또 하나의 네 번째 거리는 공중거리입니다. 저는 무슨 생각이 드는고 하니 이것은 선거 운동할 때 지방 유세하는 사람을 생각하게 됩니다. 여기에 입후보하는 사람이 유권자들 앞에서 마이크를 대고 소리 지르는데 보니까 저기 사람들이 뭐 듣는 것 같지 않아요. 그 자리에 나와 앉아 있기는 하지마는 어쩌나 보자 하고 앉아 있는 것이지 거기에 진정한 신뢰는 없습니다. 이런 공중거리, 공간적으로는 가까이 있는 것 같지마는 마음은 전혀 멀리 있습니다. 이러한 거리, 먼 거리에서 우리가 세상을 서로 이렇게 알고 사귀며 살아가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스스로 얼마만의 거리를 두고 삽니까 내가 남을 얼마나 믿을 수 있으며 저는 나를 얼마나 믿어 준다고 생각하십니까 이것은 대단히 중요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뢰성이라는 것입니다. 신뢰성은 마음의 거리입니다. 온전히 믿으면, 혹은 나 자신처럼 믿을 수 있다면 그것이 행복이요, 사랑입니다. 우리는 사랑과 믿음을 별도로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그것은 거짓말입니다. 사랑하면 믿어지고요, 믿으면 사랑하게 됩니다. 믿음 없이 사랑한다고 한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닙니다. 그것은 자기사랑일 뿐입니다. 그것은 인격적 관계가 아닙니다. 믿음 없이 사랑하는 것은 애완동물 입니다. 내가 그를 믿지 못한다면 그것을 사랑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고로 그런 사랑을 받을 때에 우리 마음은 평안 할 수도 없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 믿음이라고 하는 것은 세 가지 말로 흔히들 정리합니다. Three Totality라고요. 전적으로, 전적으로 수락하고, 전적으로 따르고, 전적으로 위탁합니다. Total Acceptance, Total Discipline, TotalCommitment. 이것이 믿음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얼마나 믿습니까 전적으로 믿고 보면 아무 걱정도 없습니다. 그것을 믿음이라고 할 것이에요. 또 내가 나를 믿을 때, 내가 나를 전적으로 믿을 수 있을 때에 그것을 진실이라고 합니다. 내가 다른 사람을 전적으로 믿을 수 있을 때에 그것이 신뢰요, 그것을 정직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다른 사람이 나를 전적으로 믿어 준다고 생각해서 그 믿음에 대해서 내가 감사한 마음으로 응답할 때에 그것이 충성입니다. 이것이 진정한 충성입니다.
여러분, 여러분 자신을 얼마나 믿고 있습니까 여러분의 믿음, 여러분의 지식을 믿고 있습니까 내가 아는 것이 확실합니까 세월은 자꾸 변해서 뭐 옛날에 뭐 좀 알던 것도 요새는 다 모르겠고요, 내 지식을 내가 믿을 수가 없어요. 또는 내 의지, 그거 믿을 수 없어요. 내가 결심을 했다 하더라도 내 결심을 내가 믿을 수 있습니까 그래서 어떤 사람은 결심을 안 해요. 해 보나마나 하니까. 언젠가 한번 저희 손녀가 제 집에 와서는 그 꼬마가 놀다가 무슨 생각이 났는지 밤에 엄마가 가는데 "저 오늘 할머니하고 잘래요." 그래요. 그래서 엄마는 가고 빠이빠이하고 집에서 할머니하고 잤어요. 밤중에 깨 가지고 엄마 찾고 우는 거예요. 엄마한테 가야한다고 소리를 질러요. 할 수 없이 밤중에 제가 데려다 주었어요. 그 다음에 와서 또 하는 말이 "오늘은 진짜 할머니하고 잘 거예요." 그래서 내가 "너는 그렇게 잔다고 하다가 밤중에는 깨나서 자꾸 우니 어떡하면 좋으냐! 내가 너를 믿을 수가 없다."그러니까 애 하는 말이 "나도 나를 못 믿어요."그래요. 여러분 믿을 수 있습니까! 여러분의 결심을 여러분이 믿을 수 있느냐고요. 이런데 어떻게 남의 결심을 여러분이 못 믿는다, 믿는다 비판하는 겁니까! 나도 나를 못 믿으면서 말이에요. 그뿐 아니라 내 감성을 믿을 수 있습니까 내 감정을 내가 얼마나 다스릴 수 있느냐 하는 거예요. 요새 뭐 우리 화재에 오르고 있는 박세리양, 대단한 아가씨예요. 그 아가씨가 어젯밤에도 보니까 18 언더파를 쳤어요. 대단한 선수예요.
그런데 이 사람이 가진 철학이 있어요. "내 사전에는 신경질이란 없습니다." 어떻게 이해했던 간에 이게 무슨 말입니까 옆에서 누가 칭찬하던지 말던지, 나를 골탕 먹이던지 뭘 하던지, 잘 되던지 안되던지 내 마음은 흔들림이 없다―이 말입니다. 신경질이 없다, 이 얼마나 굉장한 얘기입니까! 그건 나폴레옹에게서 듣던 말 같은데…… 그러나 그건 위대한 얘기예요. 주위 환경에 흔들리지 않는다. 여러분 차를 몰고 가다가 어떤 사람이 기분 나쁘게 내 앞으로 싹 지나치면은 '야 이놈 봐라' 그러고 따라가다가 꽝 하잖아요. 이게 바로 이건 박세리양하고 틀린 거예요 이거는. 남이야 날더러 뭐라고 하던 말던 나는 조용히 내 길을 가는 거예요. 내 감정 흔들리지 않아요. 내 감성은 고요하게 지켜지는 거예요. 여러분 내 기분 내가 믿을 수 있어요 그 얼마간의 능력도 지혜도 있건만 주위 환경에 이끌려 가지고 칭찬한다고 뭐 잘 됐다고 기고만장했다가 뭐 좀 잘 안 된다고 죽어 가지고 살고 이렇게 흔들려 가지고야 그것, 그 놈을 믿을 수가 있나, 도대체 그 여자를 믿을 수가 있나 기분대로 사는 거예요. 세상이 어떻게 기분대로 삽니까!
자 그러면 여러분 자신이 여러분의 감성을 어느 정도라고 EQ가 어느 정도라고 생각하십니까 그런가 하면 내 능력, 뭘 좀 안다고 하지만 그게 실천 능력이 있습니까 그래 여러분 자신을 여러분은 얼마나 믿습니까 요새 우리는 아주 새로운 용어를 많이 배우고 있습니다. 신용평가, 신용등급, 신용지수 이런 말을 합니다. 우리 나라의 경제를 놓고 말을 합니다. 우리 나라의 경제를 놓고 신용 평가하는 그런 국제기구가 있다고 합니다. 전혀 듣지도 보지도 못하던 '무디스(Moody's)' 라던가 '스탠더드 앤 푸어스'라던가, 혹은 영국의 '피치-
IBCA' 같은 이러한 기관들이 각 나라의 경제, 각 나라의 신용을 저들이 평가하고 있는 겁니다. 아주 면밀히 조사 분석해 가지고 신용등급을 맞추는데 어떤 데는 19단계로, 복잡하기도 합디다요. 19단계, 어떤 데는 22단계로 나누어 가지고 이 등급을 만듭니다. 이 사람들은 믿을 수 있다, 어느 정도 믿을 수 있다, 아 믿을 수 없다. 신용등급을 올렸다 낮추었다 한단 말이에요. 이게 무얼 말하는 겁니까. 내가 믿어 달란다고 믿을 수 있는 겁니까, 결심한다고 믿을 수 있는 겁니까 도장을 찍는다고, 맹세하고 혈서를 쓴다고 믿을 수 있는 겁니까 그런가 하니 그 진실도 중요하지만 문제는 능력이요. 그 사람의 능력, 그 나라의 경제력을 믿을 수 있어야 되고, 또 하나는 오늘 아무리 큰 소리 쳐도 소용없어요. 오랜 경력, 축적된 신용이 있어야 한다는 겁니다. 우리 나라 사람들이 큰 실수를 합니다. 주로 외국에 가서 미국에 이민간 사람들은 돈 가지고 갔으니까 돈 있는 거 가지고 그저 한꺼번에, 까짓 거 이자 높을 것 할거 뭐 있나 월부 할거 없다―우리 식대로 사는 거지요. 그냥 확 내가지고 2만불 내고 일시불을 내고 차를 사요. 물론 차야 팔지요. 그러나 그렇게 되면 신용이 없습니다. 오히려 월부로 사고 3년 동안을 꼬박 꼬박 돈을 냅니다. 정확하게 정확한 날짜에 이렇게 3년을 내고 나면 이게 credit이 됩니다. 신용지수가 올라갑니다. 그래서 그는 담보 없이도 얼마의 돈을 꿔줍니다. 이 사람은 믿을 수 있어요. 그러나 일시불로 돈을 콱 내는 이 부자 집 아들은 믿을 수 없어요. 저 돈은 믿을 수 없는 돈이요. 그러나 꼬박 꼬박 정직하게 3년을 이렇게 불입을 하면 그것이 바로 신용이 되는 것이에요.
신용이라는 것은 쌓아 올리는 것이지 하루아침에 금 덩어리를 맡겼다고 해서 신용지수가 올라가는 건 아닙니다. 돈이 문제가 아니요, 인격의 문제요. 그리고 오랜 경력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돈만 있다고 신용지수를 높이 평가해 주는 것이 아니에요. 그 점을 생각해야 되요. 우리는 지금 개인적으로나 국가적으로나 이 신용지수 문제를 놓고, 이 등급 문제를 놓고 고민합니다. 바로 이것은 우리 민족의 인격을 말하는 것이올시다. 이걸 잊지 말아야 되요. 오늘 본문은 아브라함의 가정에 있었던 이야기인데 읽을 때마다 우리 마음을 뜨겁게 하는, 아주 감격스러운 내용입니다. 아브라함의 가정에 아들이 하나 있습니다. 이건 백세에 얻은 소중한 아들입니다. 이 아들을 하나님께 바치라고 해서 모리아산까지 다녀왔습니다. 아주 귀하고 소중한 생명보다 소중한 아들입니다. 이 아들이 커서 이제 장가를 보내야겠는데 며느리를 맞을 때 그는 지금 이방 땅에 살고 있기 때문에 그 이방족속들 중에서 며느리를 택할 수가 없어서 자기 고향, 갈데아우르에 사람을 보냅니다. "늙은 종 하나를 보내서 거기서 처녀 하나를 데려 오라."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면 "어떤 여자 데려 올까요 키가 커야 될까요, 작아야 될까요 인물이 어때야 될까요" 전혀 아무 조건도 없습니다. "나는 너를 믿는다. 가서 하나 데려 와라. 나는 너를 믿는다. 하나님이 인도해 주실 것이다." 그리고 가서 그야말로 사진 한 장도 본 일이 없고 편지 한 장 본 일이 없는데 그 종을 믿고 보내고, 종이 리브가라고 하는 아리따운 여자를 데려 옵니다. 이래서 이삭과 사이에 결혼을 합니다. 도대체 이게 어떤 믿음입니까 이런 믿음, 요새는 볼 수가 없지요.
아브라함은 그 종을 믿습니다. 종은 또 아브라함을 믿습니다. 아브라함이 자기를 전적으로 믿고 있다는 것을 믿고 그는 감사해야 합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깊은 뜻을 이해하고 '우리 주인 아브라함은 이런 여자를 좋아할 것이다. 이런 아가씨라야 될 것이다.', 나름대로 깊이 생각하고 충성 것 진실하게 아가씨를 선택합니다. 신앙 중에, 기도하는 중에 그래서 가정이 이루어지는 모습이 여기 본문에 나타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분명히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인도해 줄 줄로 믿었습니다. 또한 아브라함의 늙은 종, 아브라함은 그 종을 믿습니다. 이 믿음은 하루아침에 된 일이 아닙니다. 믿음은 심어 나가는 것이요, 축적해 나가야 되는 것이올시다. 보세요. 노예는 어디까지나 노예입니다. 어느 기회에 이 집에 팔려 왔는지 모르겠습니다. 노예는 노예입니다. 어떻게 주인이 노예를 믿을 수 있다는 겁니까 팔려온 사람입니다. 그러나 이 아브라함의 집에 살면서 그도 아브라함으로부터 믿음을 배워 왔습니다. 경건한 생활을 배워 왔습니다. 신앙적 가치관을 배워 왔습니다. 신앙적 판단력을 배워 왔습니다. 아브라함과 한 평생 같이 하면서 믿음 안에서, 신앙생활 안에서 늙어 갑니다. 그는 믿음의 사람이 됐습니다. 이 진실은 여러 가지 사건에서 이미 경험되고 실험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많은 시간 지내오면서 '저 종은 충성되다. 저 종은 내 마음을 잘 안다. 내 성향도 알고 내 취미도 알고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다 알고 있다. 나는 저 종을 믿는다' 하는 것이에요. 특별히 그 능력을 믿습니다. 그의 판단력을 믿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일 입니까!
저는 언젠가 한 번 이런 중매를 해 봤어요. 중매하면서 자 이제 그 아가씨가 결혼을 하게 되는데 이상하게 서로 사귀어서 알게 된 그 중매에서 알게 된 사이가 누구인고 하니 신랑은 좀 나이도 많고 좀 여러 가지 여건에서 이 아가씨하고 맞지 않아요. 일반적으로 생각할 때는 맞질 않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결혼하겠다고 그래요.
그런데 이게 문제는 있습니다. 그래 그 아가씨에게 제가 이렇게 말할 수 밖에요. "너희 둘이 좋아하고 신앙적으로 결합됐으니까 뭐 좋다. 그러나 이 친정 아버지, 어머니의 허락을 받아내는 것이 이건 난감하다. 일방상식으로는 될 수가 없는 사이야. 저거 어떡하면 좋을까. 나도 너희 아버지한테 이 결혼 성사시키도록 합시다 라는 말을 할 수가 없구나. 그거 어떡하면 좋으냐" 했더니 그 아가씨 생글생글 웃으면서 하는 말이 "걱정 마세요. 그건 내가 알아서 할께요." 그리고 가서 며칠만에 부모님 허락을 다 받아 냈어요. 그래 너무 기가 차서 "어떻게 네가 아니 아직도 신랑을 보지도 않았는데 허락을 받아 냈냐" 했더니 하는 말이 아버지가 이렇게 말씀하시더라고 그래요. "너는 이 나이 이 때까지 한 번도 나를 실망시킨 일이 없다. 네가 어련히 생각했겠냐! 기도하면서 많이 생각하고 결정했을 텐데 나는 너를 믿는다. 끝." 이렇게 된 거예요. 여러분 얼마나 아름다운 얘기입니까! 얼마나 복 찬 얘기입니까! 여러분은 자식을 얼마나 믿습니까 한 평생 키워 놓고 가르쳐 놓고도 결정적인 시간에 가서 "내가 널 어떻게 믿어" 이것 때문에 가정 불화가 오는 거예요. 전적으로 믿어 준다는 것을 자식들이 알면은요 조심합니다. 그 믿음 배반하지 않기 위해서 여러 가지로 충성하고 진실되게 행하겠건만 하나도 안 믿어 준다 이거죠. 그러니까 사랑한다는 말도 거짓말이죠. 이렇게 생각하기 때문에 의심과 불신, 불신과 불신이 그대로 쌓여서 점점 반항하게 되는 것이에요. 나는 너를 믿는다. 자 보세요. 오늘 아브라함은 아들도 아니에요. 늙은 종을 믿었어요. 노예를 믿었습니다. 전적으로 믿었습니다. "어떤 아가씨든지 좋으니까 네가 알아서 잘 선택해서 데려와라. 그게 내 며느리다." 얼마나 얼마나 귀한 믿음입니까. 뿐만 아니라 이 두 사람이 다 같이 하나님을 믿었습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을 믿습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실 것이다. 이 늙은 종도 하나님께 기도하며 갑니다. 순간순간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모습을 이 성경을 읽으면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인도하십니다. 그래서 자 아브라함이 이 종을 믿었지요. 리브가도 이 종을 믿었어요. "하나님이 하시는 역사이기에 나는 가부(可否)를 말할 수 없노라." 그 라반도 이렇게 말합니다. 이렇게 해서 신앙 안에서 서로 신뢰하게 되고 리브가와 이삭 사이에 아름다운 가정이 이루어지게 됩니다. 여러분, 특별히 이 종은 아브라함이 자기를 이처럼 믿어준다는데 대해서 너무 감격합니다. 그리고 감사해서 충성을 다 합니다. 이것이 바로 신뢰의 관계요, 완전한 신뢰성이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사랑하는 제자들을 믿었습니다. 형편없는 제자들인데. 예수를 세 번이나 모른다고 하는 베드로를 비롯해서 십자가를 질 때에 다 도망가는 이런 시시한 제자들인데도 불구하고 예수님은 그 제자들을 믿었습니다. 전적으로 믿어주었습니다. 그들은 다같이 주님을 위하여 순교합니다. 사도 바울, 그의 믿음의 아들 디모데를 믿습니다. 언제나 디모데를 추천할 때마다 "나는 저를 믿고 저를 대할 때 나를 대하듯이 대하시오. 저가 하는 말은 내가하는 말과 꼭 같소." 이렇게 말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의 자제 능력을 믿고, 관리 능력을 믿고, 지도력을 믿었습니다. 판단 능력을 몽땅 믿었어요. 이 신뢰, 얼마나 아름답고 얼마나 능력 있고, 얼마나 행복한 것입니까!
저는 참 마음 아픈 경험을 했는데 늘 잊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말 한마디 잘못해서 한 사람을 죽인 것 같은 가책이 있는 제 경험입니다. 제가 고향에서 나올 때에 바로 제 아래윗집에 사는 그런 자리에 거기에는 제 동생같이 여기는 청년이 하나 있었어요. 이건 4대 독자예요.
그런데 피난을 나와서 지내는 가운데도 이 아들을 부모님이 그냥 돈 멀어서 얼마나 치닥거리하고 잘 해 주었는지 그만 이 아들은 좀 방탕하게 됩니다. 대학 다닐 때에 술 마시고, 뭐 불량한 사람들과 어울리고, 심지어는 등록금까지 다 술 먹어 버렸어요. 그리고 아주 못 되게 노는데, 뭐 거침없이 이건 뭐, 할 수가 없어요. 그러다가 그래도 본인은 이래선 안되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결심을 하고 이 나쁜 친구들과 관계를 끊기 위하여 군대에 나가는데 자진해서 입대해 가지고 그 강한 훈련을 받고 일선에 배치를 받았습니다. 배치 받은 후 얼마 후에 처음으로 휴가를 나왔습니다. 휴가 나와 가지고 보름동안 너무너무 좋았던 거예요. 오랫동안 이렇게 군대에 가서 갇혀 있다가 나오니까 좋아서 친구들하고 같이 먹고 마시고 놀고 그랬어요. 언젠가 나한테 와서 하는 말이 "목사님! 돈 좀 꿔 주세요.왜 아버지가 주지 않겠냐아니에요, 안 줍니다.왜" 아니고 내가 휴가 정신없이 놀다가 사흘 지났어요. 귀대 날짜가 지났거든요. 이제 나 이대로 들어가면 매 맞아 죽습니다. 돈을 좀 많이 가지고 가서 상관들한테 어떻게 좀 잘 보이도록 해야 되겠는데 돈 좀 달라고 했더니 아버지, 어머니 말씀이 '네 말을 어떻게 믿냐!'" 그러더래요. 돈 안 준 거예요. 나한테 와서 또 귀대 날짜가 사흘이나 지났는데 좀 도와 줘야겠습니다. 나 또 하는 말이 "네 말을 어떻게 믿냐!" 그랬어요. 내 그전에도 용돈 많이 줬거든요. 많이 빼앗겼거든요. 그래서 "안 믿는다" 그래버렸지요. "알았습니다" 그리고 갔어요. 매를 많이 맞았어요. 유서를 써 놓고 자살해 버렸어요.
그 아버지, 어머니는 이 상처 때문에 줄줄이 다 돌아 가셨어요. 여러분 그 마지막 한마디는 진실이었는데 "너 휴가증 보자" 그랬으면 되는 건데 그 한마디를 제가 안 했습니다. 여러분 아무리 한 평생 거짓말을 했더라도 이 마지막 한마디만은 진실인데 이 한마디를 믿어 주면 사는 것이고, 그것까지도 안 믿어주면은 죽는 거예요. 그걸 알아야 됩니다. 신뢰란 이렇게 중요합니다. 아무도 나를 안 믿어 준다면 살아서 무얼 하겠습니까! 그처럼 불행한 일이 어디 있습니까! 달란트 비유에 볼 것 같으면 착하고 신실한 종아, 작은 일에 충성했기 때문에 주인의 기쁨에 참여하라고 합니다. 충성, 신실이 중요합니다. 그리고야 많은 것으로 맡기겠다고 말씀하십니다.
신용은 자본입니다. 돈이 자본이 아닙니다. 기술 노하우가 자본이 아닙니다.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신용자본입니다. 여러분 가끔가다가 무슨 물건을 놓고도 "국산이야!" 이렇게 말해 버립니다. 그 무슨 뜻입니까! 국산이기 때문에 못 믿겠다는 거죠. 그럼 내가 못 믿는 국산, 다른 사람이 믿어 주겠습니까! 내가 안 믿는 말을 누가 믿어 주겠습니까! 내가 안 믿는 자식을 누가 믿겠습니까! 뒤늦었지마는 다시 우리는 믿음을 세워가야 됩니다. 믿음은 쌓아 올리는 것입니다. 믿음은 심어야 됩니다. 하루하루 심어 나가는 것이요. 말한다고 되고 맹세한다고 되는 게 아닙니다. 이제부터 다시 시작을 해서 믿고 또 신뢰하고 또 믿고 신뢰하고 이것이 기본 능력이요, 기본 자본입니다. 여기에 창조력이 있고, 새로운 지혜와 능력이 함께 하는 것이올시다.
기도하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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