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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삭을 축복하신 하나님 (창25:1-27:46)

본문

오늘 말씀은 하나님께서 이삭을 여러 모로 축복해 주신 사건입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은 축복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자기 형상대로 창조하시고, 무한한 자유와 행복을 누릴 수 있도 록 축복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아담은 하나님의 축복을 감당하지 못하 고, 낙원을 상실하게 되었습니다. 이만큼 하나님의 축복은 받기를 쉬 워도 감당하기는 어렵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축복의 샘"을 판 개척자라면, 이삭은 아브라함이 닦아 놓은 터 위에서 백 배의 결실을 맺은 "축복의 계승자"였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서 이삭을 축복하신 하나님을 만나고, 축복을 감당하는 믿음을 배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I. 기도를 들어주신 하나님(25:1-34) 사라가 죽은 후 아브라함은 38년을 더 살면서 그둘라를 취하여 6명 의 아들을 낳았습니다(25:7). 이는 하나님께서 백 세가 넘은 아브라함 의 젊음을 회복시켜 주신 증거였습니다. 아브라함은 후처가 낳은 자식 들을 어느 정도의 재산을 주어 내 보내고, 약속의 자식 이삭에게 모든 소유를 상속시켜 주었습니다. 그리고 175세에 죽어 열조에게로 돌아가 막벨라 굴에 장사되었습니다(25:8).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장 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갔습니다(창 15:15). 11절에 보면 아 브라함이 죽은 후에 하나님께서는 그 아들 이삭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12-18절은 아브라함의 첩 하갈이 낳은 이스마엘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12방백을 낳고 137세에 죽은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창 17:20). 19절을 보십시오. 이삭은 40세에 결혼하였습니다. 이삭은 독자로 노 총각이 되어 결혼을 했습니다. 그 아비 아브라함도 늙었습니다. 하나님의 구속 역사는 반드시 이삭을 통해서 계승되어져야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루 속히 리브가가 아들을 낳도록 희망했습니다. 그러나 1년이 지나고 2년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습니다. 10년이 지나도 소식이 없었 습니다. 이 때 이삭은 리브가를 구박하고, 아브라함과 같이 첩을 얻을 수도 있었습니다. 또 결혼을 중매한 아브라함이나 아브라함의 종을 원 망하고, 하나님의 주권과 사랑을 의심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21 절을 보십시오. "이삭이 그 아내가 잉태치 못하므로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간구하매 여호와께서 그 간구를 들으셨으므로 그 아내 리브가가 잉태하였더니" 이삭은 인간적인 방법을 모색하지 않고, 그 아내 리브 가를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였습니다. 이삭이 60세이 아들을 낳 을 것을 보면 20년 동안 줄기차게 기도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삭 은 리브가가 잉태할 때까지 20년 동안 기도에 힘썼습니다.
그랬을 때 하나님께서 그의 기도를 응답해 주셨습니다. 한 가지 기도 제목을 가 지고 20년 동안 줄기차게 기도한다는 것은 놀라운 믿음입니다. 이삭은 인내와 끈기로 하나님께 간구하는 기도의 사람이었습니다. 이삭도 불 신을 심어 기도를 포기하게 하는 사단의 시험을 많이 받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믿음으로 모든 불신을 물리치고 줄기차게 기도했습니다. 그리하였을 때 하나님께 낙망치 않는 기도를 들으시고, 쌍둥이를 잉태케 하셨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믿는 자들을 기도를 들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특히 가정 문제를 두고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자식이 없는 문제나, 자식을 교육하는 문제나, 구직 문제나, 고부 간의 갈등 문제나 우리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 앞에서 절망하 지 않고, 기도해야 합니다. 하루 이틀, 1년 2년 10년이 넘어도 낙망치 않고 줄기차게 기도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 믿음이 있을 때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보시고, 기도를 응답해 주십니다. 특히 캠퍼스 선교와 세계 선교 사역에 부르심을 받은 우리의 간절한 기도 제목은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계승할 영적인 자녀를 잉태하는 것입니다. 몇 년을 수고 해도 뚜렷한 후계자 한 사람 세우지 못했을 때 마음에 낙심이 되고, 많은 사단의 참소를 받게 됩니다. "나는 캠퍼스 선교 체질이 아니다 .", "헛고생만 하지 말고 일찌감치 다른 길을 찾아야 하지 않는가"하는 생각이 꼬리를 물고 일어납니다. 도망간 양을 미워하기도 하고, 목 자를 원망하기도 하고, 단체를 불신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 때야말 로 마음의 불신을 물리치고 기도에 힘써야 할 때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긴 세월 동안 힘든 훈련을 주신 것은 이삭을 때문이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항상 가장 좋은 것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본질이 사랑이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상황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의심치 않고 줄기차게 기도해야 합니다. 낙망치 않고, 끈질기게 기도 할 때 하나님께서 반드시 들어주십니다(눅 19:1-7). 리브가는 하나님의 은혜로 쌍둥이를 잉태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이 태중에서 서로 싸웠습니다. 태중의 아이는 5개월만 되면 뛰 놀기 시작합니다.
그런데 리브가의 경우는 뛰노는 것이 이상하고, 고 통이 너무나 컸습니다. 리브가는 이 문제를 들고 하나님께 나가 기도 했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응답했습니까 23 절을 보십시오.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국민이 네 복중에서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23)" 이 말씀은 신탁을 내리는 문체로서 시(詩) 형식으로 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리브가가 쌍둥이를 잉태하고 있으며, 이 쌍둥이는 각자 다른 민족의 조상이 될 것을 계시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두 민족 중 하나가 다른 민족보다 강하게 될 것이며, 먼저 나온 자가 나중 나온 자를 섬 기게 될 것을 예언해 주셨습니다. 리브가는 기도를 통해서 태중에 쌍 둥이가 싸우고 있기 때문에 잉태의 고통을 겪고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나중 태어날 동생이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자임을 깨닫 게 되었습니다. 리브가는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뜻과 섭리를 깨달 았습니다. 해산할 기한이 차서 리브가는 쌍둥이를 낳았습니다.
그런데 먼저 나 온 자는 붉고 전신이 갖옷 같아서 이름을 에서라 했습니다. "에서"란 "털이 많은 자" 곧 털보라는 뜻이었습니다(25).
그런데 쌍둥이가 태어 날 경우는 5에서 15분 정도의 간격을 두고 태어나는 것이 보통입니다. 동생이 형의 발꿈치를 잡고 뒤쫓아 태어나는 경우는 없습니다.
그런데 야곱은 형의 발꿈치를 잡고 동시에 태어났습니다. 아마 뱃속에서 먼저 나가려고 싸우다가 기회를 놓쳐 형이 못 나가도록 발꿈치를 잡고 당기 다가 따라나왔는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동생의 이름을 "야곱"이라 지 었는데 이는 "발꿈치를 잡은 놈"이라는 뜻이었습니다(26). 에서는 장 성하여 훌륭한 사냥꾼이 되었습니다. 그는 남성답고, 씩씩하게 자랐습니다. 만능 스포츠맨 감이었습니다. 그러나 동생 야곱은 성격이 조용 하고 내성적이었으며 장막에 거하기를 좋아했습니다. 이삭은 장남이 요, 씩씩한 에서가 사냥해 온 고기를 좋아했으므로 에서를 사랑했습니다. 그러나 리브가는 야곱을 더 사랑했습니다. 대개 어머니들은 장남 을 사랑합니다. 리브가도 장남이요, 씩씩하고 남성다운 에서를 사랑하 고 싶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리브가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쓰시기로 작정하신 야곱을 사랑했습니다. 리브가는 하나님 편에서 자 녀들을 양육하는 성숙한 믿음의 여성이었습니다. 실제로 리브가의 특 별한 사랑을 받은 야곱은 장자의 명분을 귀히 여겼으며, 영적인 축복 을 귀히 여기는 사람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31). 그러나 에서는 장 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겼습니다(32-3
4). 이상을 볼 때 이삭의 가정은 기도하는 가정이었습니다. 모든 문제를 기도로 하나님께 아뢰며, 하나님의 뜻을 찾았습니다. 특히 리브가는 영적인 자녀 교육에 특별한 관 심을 가지고 야곱을 양육하였으며,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숨은 기도의 노동을 감당하는 성숙한 믿음의 여인이었습니다.
Ⅱ. 백 배의 축복을 주신 하나님(26:1-15) 1절을 보십시오. 당시 이삭은 브엘라헤로이 근처에 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는데 그 땅에 또 극심한 흉 년이 들었습니다. 이삭은 그랄로 내려갔습니다. 이는 식량 문제와 가 축들의 먹이 문제로 기름진 애굽 땅으로 내려가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래서 가나안 땅 최 남쪽에 자리 잡은 그랄 지방까지 내려 왔습니다. 이제 이곳만 벗어나면 약속의 땅을 벗어나게 됩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무슨 명령을 하셨습니까 2절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하라."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는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 로 가라"고 명령하셨습니다(창 12:1). 그러나 이삭에게는 "내가 네게 지하는 땅에 거하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삭이 극심한 기근 속에서도 가나안을 떠나지 말고, 그 땅에 거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어떤 어려운 형편 가운데서도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땅을 떠나지 않고 그곳에서 믿음의 훈련을 받으며, 거기에 믿음으로 거하도록 방향 을 주셨습니다. 이 방향은 참으로 순종하기 어려운 방향이었습니다. 이삭이 계속 기근이 심한 가나안 땅에 머물다가는 굶어 죽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절대적인 순종을 요구하셨습니다. 그리하면 어떤 축복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까
3,4절을 보십시 오. "이 땅에 유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비 아브라함에게 맹세 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며,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을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하나님께서는 이삭이 순종하여 그 땅에 거하면, 복을 주시고, 땅을 기업으 로 주시고,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신 것처럼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케 하시고, 복의 근원이 되게 하여 천하 만민이 그 자손을 인하여 복음을 받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계명과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니라" 아브라 함은 순종의 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은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했을 때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순종했습니다.
또 이스마엘을 보내라고 했을 때 순종하여 내 보냈습니다. 또 이삭을 바 치라고 했을 때 아침에 일찍이 일어나서 이삭을 데리고 지시하신 산에 가서 번제로 드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순종을 기뻐하시 고, 그 아들 이삭을 크게 축복하고자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삭이 하나님의 축복을 받으려면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땅에 믿음으로 거해야 합니다.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이삭은 어떻게 했습니까 6절을 보십 시오. 이삭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 땅에 거하였습니다. 그가 말씀에 순종하고자 했을 때 많은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흉년을 만나 굶어 죽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도 있었습니다. 또 불신 사회에 살면서 이방인들이 자기를 해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 때문에 아내를 누이라 속이고 살아야 했습니다(26:7). 그러나 아비멜렉이 높은 곳에서 이삭 이 리브가를 껴안은 것을 보게 되어 들통이 났습니다(26:8,9). 하나님 은 이를 통해서 이삭과 리브가를 그 땅의 강포로부터 보호하셨습니다. 이런 어려운 일들이 있었지만 이삭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랄에 거하였습니다. 그랬을 때 하나님께서 어떻게 축복하셨습니까 12-14절을 보십시오. 이삭이 그 땅에서 농사를 지었는데 그 해에 백 배나 얻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축복하시니 흉년이라도 백 배의 수확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뿐만 아닙니다. 여호와께서 이삭을 축복하셔서 이삭이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었습니다. 양과 소가 떼 를 이루고, 노복이 심히 많아 블레셋 사람들의 시기를 불러 일으킬 정 도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약속의 땅에 우거하는 그 믿음을 보시고 이 삭을 놀랍게 축복해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일시적인 유익을 좇아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곳 을 떠나지 않고, 믿음으로 거할 때 백 배의 축복을 주십니다. 가끔 철 새처럼 이 교회 저 교회, 이 단체 저 단체를 떠돌아 다니면서 신앙 생활을 하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분들의 특징은 신앙의 뿌리가 없다는 것입니다. 자기 유익을 따라서 이곳 저곳을 기웃거리는 기회주의적인 삶을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삭이 극심한 기근이 있는 가나안 땅에 거하게 하심으로써 이삭의 믿음을 연단하시고, 신앙의 뿌리를 내 리도록 도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택하시고, 성서 한국과 세 계 캠퍼스 선교 사역을 감당하도록 지시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 선교 사들은 선교 일선에서 극한 가난과 싸우면서, 남의 집에 가정부 일을 하면서 복음을 전파하고 있습니다. 또 강도의 위험과 말라리아의 위험 을 무릅쓰고 제자 양성에 전념하고 있습니다. 공안 당국의 감사 하에 서 숨을 죽이며 제자 양성에 힘쓰고 있습니다. 국내서도 평신도 목자 들은 보수가 좋은 직장을 마다하고 물질적인 손해를 감수하며, 캠퍼스 선교 사명을 감당하고 있습니다. 좋은 인간 조간을 가진 사람과의 혼 인도 거절하고 가난한 목자와 결혼을 하기도 합니다. 시간제 아르바이 트를 하면서 양들을 위해서 건강을 해칠 만큼 자신을 희생하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런 삶을 통해서 신앙의 뿌리가 견고히 박히게 되며, 백 배의 결실을 맺을 수 있는 튼튼한 기둥으로 서게 되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분들의 믿음을 보시고, 백 배의 축복을 주실 것을 믿습니다. 이분들을 통해서 제자 양성의 풍성한 열매를 맺게 하시고, 이분 들을 통해서 세계 선교 역사를 이루실 것을 믿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주와 복음을 위해 재물과 가족을 버린 자는 이 땅에서 백 배의 축복을 받고, 내세에 영생을 얻지 못할 자가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막 10:29,30).
Ⅲ. 승리를 주신 하나님(26:16-35) 이삭이 블레셋 땅에서 하나님의 축복으로 거부가 되자 시기하는 자 들이 많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블레셋 사람들은 시기하여 아브라함 때 파 놓은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워 버렸습니다(15). 아비멜렉은 이삭을 시기하여 그 지방에서 쫓아 내었습니다(16). 그러나 이삭은 싸우지 않 고 그 땅을 떠나 그랄 골짜기로 옮겨 갔습니다(17). 그리고 아브라함 이 팠던 우물들을 다시 팠습니다.
그런데 그랄 사람들이 그 곳까지 찾 아와서 그 곳도 자기들의 땅이요, 그 우물도 자기들의 것이라고 떼를 썼습니다(20). 그래서 이삭은 그곳을 "에섹(다툼)"으로 이름을 짓고 다시 다른 곳으로 가서 우물을 팠습니다. 그러자 또 블레셋 사람들이 다투었으므로 그 곳을 "싯나(대적함)"라 이름 지었습니다(21). 그래서 다시 다른 곳으로 장막을 옮겨 우물을 팠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다 투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곳 이름을 '르호봇'이라 이름 지었는데 이는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의 장소를 넓게 하였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는 뜻이었습니다(22). 이삭은 믿음으로 축복을 잘 감당하며 믿음의 중심을 지켰습니다. 그러나 계속되는 희생으로 그 마음에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이삭이 브엘 세바로 올라갔을 때 하나님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말씀하셨습니다. 24 절을 보십시오. "나는 네 아비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니 두려워 말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어 네 자손으로 번성케 하리라" 하나님께서는 믿음으로 양보하는 생활을 감당하다가 심히 지쳐 있는 이 삭을 찾아오셔서 위로하시고 언약을 새롭게 하셨습니다. 언약을 굳게 하심으로 두려움을 극복하도록 도와주셨습니다. 이삭은 그 곳에 단을 쌓고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습니다. 그곳에 장막을 치고 다시 우물을 팠습니다. 이삭은 환난의 날에 두려움에 짓눌리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붙들고 두려움을 극복했습니다. 만일 이삭이 이 마음에 파고드는 두려움을 물리치지 못했다면 그의 삶은 불신자들에게 짓눌려 맛 잃은 소금과 같이 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26-29절을 보십시오.
아비멜렉 은 계속 심술을 부리다가 도리어 두려움이 생겼습니다. 핍박하면 할수 록 더욱 강성하여 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 친구 아훗삿과 군대장 관 바골과 함께 이삭을 찾아왔습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 이삭과 함께 계시며, 여러 가지로 축복해 주시는 것을 보고 화친 조약을 맺자고 청 해 왔습니다(28). 그리고 도리어 "너는 우리를 해하지 말라. 이는 우리가 너를 범하지 아니하고 선한 일만 네게 행하여 너로 평안히 가게 하였음이니라.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니라(29)." 결국 아비 멜렉은 이삭에게 항복했습니다. 이삭은 아비멜렉을 위하여 풍성한 잔 치를 배설하고, 서로 맹세하고 평안히 거하게 되었습니다. 그날에 이 삭의 종들이 또 우물을 파고 샘의 근원을 얻었습니다. 그 이름을 세바 라고 하여 오늘까지 그 성 이름을 브엘세바라고 불렀습니다. 이삭은 선으로 악을 이겼습니다(롬 12:31). 이삭은 연약한 자 같으나 강한 자 요, 실패한 자 같으나 승리자였습니다(롬 12:19-21). 이삭은 좋은 믿음의 영향력의 소유자였습니다. 이삭이 이렇게 우물을 양보하고, 불신자들과 싸우지 않은 것은 하나님의 축복을 믿는 믿음이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삭은 욕심과 시기 심이 많은 자들과 싸우지 않았습니다. 그는 하나님을 믿고 생명의 젖 줄과 같은 우물을 세 번이나 말없이 양보했습니다. 당시 우물은 중동 지방에서는 생명과 같이 귀한 재산이었습니다. 사실 사막에서 샘의 근 원을 얻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또 여간 깊이 파지 않으면 물이 나오지 않습니다. 이렇게 힘들여 파 놓은 우물을 생트집을 잡으 며 빼앗아 갈 때 같이 싸우기는 쉬워도 양보하기란 참으로 어렵습니다. 또한 번도 아니고 계속적으로 괴롭히면 맞아 죽을 때 죽더라도 싸우고 싶습니다. 그러나 이삭은 싸우지 않았고 양보했습니다. 이런 이삭은 인간적인 눈으로 볼 때 너무나 무능하고 나약해 보입니다. 그러나 이는 이삭이 나약해서가 아니라 축복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을 믿 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삭은 이미 극심한 기근 속에서 백 배로 넘치 도록 축복해 주시는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러므로 모든 재산을 잃는 다 해도 조금도 두렵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축복의 근원이 되 시는 하나님을 믿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축복 그 자체에 집착하기보다 축복을 주시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축복을 감당하는 비결이었습니다. 대개 사람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좀 받으면 교만해집니다. 또 눈에 보이는 조그마한 축복을 잃지 않으려고 싸웁니다.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도 물질 때문에 싸우고, 배반하고, 불신하고, 의심하고, 원수가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과 그 진리의 말씀을 버린 자요, 악을 악으로 갚는 불신자와 다를 바가 없습니다. 이런 자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감당할 믿음이 없는 자들입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하나님의 축복을 믿는다면 계속하여 양보하고, 힘들지만 우물을 파는 십자가를 감당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불신자들이 괴롭힐 때 하나님 주시는 훈련으로 생각하고, 계속 양보하고 손해 보는 생활을 감당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도 네 원수를 사랑하며, 너희를 핍박하는 자를 위하여 기도하라고 하셨습니다(마 5:44).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저희가 땅을 기업으로 얻는다고 하셨습니다(마 5:5). 온유한 자는 이삭과 같 이 결국 땅을 기업으로 얻고, 원수를 동역자로 얻게 됩니다. 우리 신 자들은 이삭과 같이 선으로 악을 이기는 믿음의 영향력의 소유자가 되 어야 합니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마 5:16)." 영적인 세계에서는 지는 것이 이기는 것입니다. 부드러운 사람이 강한 사람입니다. 양보하는 사람이 결국 축복의 근원 되시는 하나님을 얻게 됩니다. 우리가 이삭과 같이 불신 세상에 살면서 믿음으 로 양보하고 손해볼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그래서 선으로 악을 이길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선을 행하다가 낙심치 아니하면 하나님께서 반 드시 승리를 주실 것을 믿습니다(갈 6:9).
Ⅳ. 이삭의 약점을 감당해 주신 하나님(27:1-46) 어느 덧 이삭은 늙었습니다. 나이 많아 눈이 어두워 앞을 잘 보지 못했습니다. 당시 이삭의 나이는 137세 정도 되었으며, 야곱과 에서는 77세 정도 되었습니다. 이삭은 죽음이 가까이 온 것을 알고, 하나님의 축복을 그 자식에게 물려주고자 했습니다. 이삭은 자기가 축복하면 하나님께서 그 사람의 일생을 자기가 축복한 대로 축복해 주실 것을 믿 었습니다. 한 시간 앞도 예측할 수 없는 인간이 장차 올 일에 대하여 축복한다고 하는 것은 굉장한 믿음입니다. 이 믿음은 하나님께서 자기 를 복의 근원으로 세우셨다는 확신에서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이 삭은 누구를 축복하고자 했습니까 1-4절을 보십시오. 이삭은 에서를 불러 축복을 약속했습니다. 사냥하여 별미를 만들어 외서 먹게 하면 마음껏 축복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이삭은 영적 눈이 어두워 분별력을 상실하고, 하나님의 뜻보다 전통적인 습관을 좇아 에서를 축복하고자 하였습니다. 에서는 그 때 이미 두 명의 가나안 여자와 결혼을 했습니다(26:34,35). 또 장자의 명분을 경홀히 여기고 야곱에게 팥죽 한 그 릇에 팔아먹은 망령된 자였습니다(25:31-34, 히 12:16). 또 하나님의 선택받지 못한 자였습니다(25:23). 그러나 이삭은 에서에게 축복을 물 려 주고자 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 앞에서 볼 때 큰 죄악이었습니다. 리브가는 이삭이 에서를 축복하기로 결심한 말을 듣고 마음에 큰 충 격을 받았습니다. 에서는 휘파람을 불며 사냥하러 나갔습니다. 에서가 돌아오게 되면 그가 축복을 받는 것이 분명합니다. 망령된 에서, 하나님에 대한 경외심이 없는 에서가 후계자가 되면 그 후손들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러므로 이 상황은 하나님 편에서 볼 때 큰 영적인 위기 의 상황이었습니다. 이런 급박한 상황 속에서 리브가가 남편을 어떻게 돕는 것이 옳게 돕는 것입니까 그냥 어쩔 수 없다고 자포자기할 수도 없습니다. 남편이 하나님의 뜻을 거스르는 것을 두 눈으로 보면서 남 편의 권위에 눌려 순종할 수도 없었습니다. 그렇다고 이삭에게 가서 설득을 한다고 해서 들을 일도 아니었습니다.
아마도 리브가는 이 문제에 대해서 이삭에게 여러 번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을 전했을 것이 며, 그 동안 여러 모로 야곱을 축복하도록 도왔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에서가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 절박한 상황에 이삭을 설득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었습니다. 그래서 리브가는 차선의 길을 택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 길은 야곱을 설득시켜 이삭의 축복을 가로채도록 돕는 것이었습니다. 내성적인 야곱은 실패가 두려워서 안절부절 했습니다. 그러나 리브가는 야곱이 두려움을 극복하고 적극적으로 축복을 쟁취하 도록 도왔습니다. 13절을 보십시오. "내 아들아, 너의 저주는 내게로 돌리리니 내 말만 좇고 가서 가져 오라." 리브가는 야곱이 하나님의 축복을 쟁취하도록 돕는데 저주도 불사했습니다. 그리고 믿음으로 양 고기로 별미를 만들었습니다. 야곱에게 에서의 옷을 입혔습니다. 염소 새끼 가죽으로 야곱의 매끈매끈한 손과 목을 꾸미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야곱을 이삭의 방으로 밀어넣었습니다. 눈이 어두운 남편을 속여 에서 대신하여 축복을 받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꾸민 들 아비가 그 음성을 모르겠습니까 이삭은 야곱을 처음부터 의심했습니다. 그리고 계속 그가 참으로 에서인지 거듭 확인했습니다(20-22, 2
4). 그러나 야곱은 자신이 참으로 에서라고 거듭 확인시켰습니다. 결 국 이삭은 야곱을 축복하게 되었습니다. 27-29절을 보십시오. 물질적 인 풍요를 누리게 될 것, 만민 중에 섬김을 받게 될 것, 복의 근원이 되어 그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받게 될 것을 축복했습니다. 이상에서 리브가의 행동은 윤리적인 면에서 보면 용납하기 어렵습니다. 동양의 가부장적인 윤리관으로 볼 때 리브가는 정죄 받는 것이 마 땅합니다. 남편을 속이고, 자식끼리 원수를 만들고, 가정을 파탄으로 몰아넣었기 때문이었습니다. 아마 우리 조상들은 이런 모습을 보고 "암탉이 울면 집안이 망한다"하더니 그 말이 맞다고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창세기 저자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창세기 저자는 리브가의 이야기를 아주 세밀하게 기록했습니다. 이는 그를 정 죄하기 위해서가 아니었습니다. 또 하나님께서는 리브가와 야곱의 행 동에 대해서 책망하시지 않았습니다. 이삭도 야곱을 책망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므로 이 사건은 신앙적인 차원에서 이해해야 합니다. 리브 가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절대적인 뜻에 순종하고 자 인간적인 모순과 윤리적인 모순을 감당하였습니다.
이는 마치 애굽 의 히브리 산파들이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왕의 명을 어기고 거짓말을 한 것과 같습니다(출 1:15-20). 또한 라합이 정탐꾼들을 숨겨 주고 동 족을 배신한 행위와 같습니다(수 2:3-6). 하나님께서는 그 산파들에게 은혜를 베푸셨고, 라합을 구원해 주셨습니다(수 6:22,23). 이처럼 리 브가는 믿음으로 남편을 동역하고자 했으며, 어떤 희생도 감당하고자 작정했습니다. 리브가 자신도 그 결과가 어떻게 될 것이라는 것쯤은 짐작하였을 것입니다. 많은 희생과 아픔을 치러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리브가는 저주를 고사하고, 그 어려운 일을 적극 적으로 감당했습니다. 이 길만이 영적인 눈이 흐려진 남편 이삭을 바 로 동역하는 길이었습니다. 또 야곱을 믿음의 조상으로 세우는 길이었 습니다. 이 때 만일 리브가가 생명을 내놓고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 해 남편을 동역하지 않았다면 이삭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게 되었을 것입니다. 에서를 후계자로 세워 놓고 더욱 큰 불행과 슬픔에 빠졌을 가능성이 많습니다. 또한 하나님의 구속 역사의 판도가 달라졌을 것입니다. 망령된 에서가 하나님의 구속 역사를 어떻게 계승할 수 있었겠 습니까
그러므로 리브가는 진정한 의미에서 남편을 내조한 것입니다. 한편 이삭은 에서가 왔을 때 야곱에게 속은 줄을 알고 심히 떨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으로 영접하고 회개하였던 것 같습니다 (39,40). 그리고 리브가의 청을 받아들여 야곱을 에서에게서 보호하기 위하여 처가집으로 보냈습니다. 리브가는 이삭을 주장하거나 무시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축복하는 믿음을 인정하고, 이삭의 마음을 움직여 (46) 야곱을 축복하여 보내도록 동역하였습니다(28:1-3). 결국 이삭은 믿음의 동역자 리브가의 도움을 받아 야곱을 축복하게 되었고, 하나님 의 뜻을 순종하게 되었습니다. 축복의 물줄기를 바로 잡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 기자도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오는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다고 기록했습니다(히 11:20). 그래서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 되신 것입니다. 리브가는 이삭이 믿음으로 자식을 축복하는 그 일에 동역을 하 였습니다. 결론. 하나님께서는 지시하신 곳에 믿음으로 우거하는 자들을 백배로 축복해 주실 것을 믿습니다. 우리가 이삭과 같이 가정 문제를 하나님 께 온전히 맡기고 기도하는 기도의 종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또한 불신자들과 물질 문제로 싸우지 않고, 믿음으로 양보하고, 선으로 악을 이기는 사랑의 종이 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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