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도의 삶의 기준 (창21:22-34)
본문
본문의 배경 ; 아브라함이 블레셋 그랄 지방에 내려가서 부인을 누이 동생이라고 하였다가 곤욕을 치렀다. 하나님의 은혜로 거기서 무사히 구출되어 나왔다. 하나님께서 무사히 구출해 줄 그정도가 아니고, 얼마나 아브라함에게 하나님이 축복했던지, 그 축복하시는 것을 주변의 사람들이 다 확인했다. 아비멜렉과 그 장관들이 다 확인하였다. 틀림없이 저 사람은 하나님이 함께하는 사람이다. 그 사실을 보고 아브라함에게 사과하면서 앞으로 잘 지내자, 동맹을 맺자고 하였다. 아브라함이 잘 되니까. 이것이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기준이다. 오늘 우리 성도들이 붙잡아야 할 기준이다. 불신자들이 이렇게 움직이게 되어있다. 성경에 보면, 인물 인물들마다 전부 이런 역사들이 다 일어났다.
그러므로 지금 다른 것을 말하지 말고,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증거, 이것이 나타나야 된다.
왜냐하면, 아비멜렉이 틀림없이 아브라함의 약점을 알았다. ‘저게 겁이 많아서 부인을 누이 동생이라고 속였구나!’ 인간이 부족한 것을 알았다. 아비멜렉도 잘 압니다. 아브라함이 어떤 수준인줄을 알았다. 수준 때문에, 수준이 너무 훌륭해서 온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함께하시는 것을 보고 왔다. 그것이 기준이다. 여러분의 수준이 자꾸 드러나면 그것은 망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잘 안되고 있는 것이다. ‘저 사람은 참 성실하다!’ 이것이 자꾸 드러나면 안된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이다! 이것이 드러나야 한다. 성경은 철저히 이것을 강조하고 있다.
1. 불신 이방인 왕과 장군이 하나님이 주신 아브라함의 복을 눈으로 보게 되었다. 이것이 성도의 삶의 기준이다.
1)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보았다(22) (창21:22)“때에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우리가 보니 당신이 재주 있는 것같이 보인다. 그런 말이 아니다. 아브라 함 당신은 아주 모범적이더라! 그래서 온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심 을 보고 왔다고 하였다. 이것이 핵심이다. 왜 이렇게 보였느냐 하나님께 본래 그렇게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였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를 부르실때 아브라함과 같은 약속을 하였다. 하나님이 약속한 대로 붙잡아야지, 자꾸만 다른 것을 붙잡으면 안된다.
2) 아브라함을 부르실때 동행을 약속하셨다. 아브라함을 창12:1-6절에서 부르실때 어떻게 불렀는가 ‘여호와께서 이르 시대,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축복하 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 내가 저주하리라!’고 하였다. 믿음의 사람은 저 주도 함부로 하지 않는다. 다 하나님께서 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아 브라함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다고 되어있다. 말씀을 믿고 말씀 대로 갔다.
2. 불신자가 간접적으로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깨달았다
1) 속이지 않기로 맹세했다(23) 그래서 불신자가 먼저 와서 제시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증거를 주셨다. 행1:8절에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다. 너희가 열심히 일해라!가 아니라 내 증인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니까, 불신자들이 먼저 찾아보는 것이 기준이다.
2) 응답이 있을때, 하나님이 함께하심이 증거된다.
그러므로 전도란 다락방이 언제 어디서 잘되느냐 ‘그 사람 참으로 말을 잘 하더라!’ 이렇게 되어지면 좀 있으면 가지 않는다 . 말만 잘 해가지고는 안된다. 말잘하는 것으로는 힘이 생기지 않는다. 기도응답이 있어야 되고 힘이 생 기고 그래야 된다. 말은 좀틀리고 그래도 기도 응답이 있어야 된다
3. 브엘세바의 언약 아브라함이 샘 7군데를 회복하였다. 브엘세바의 샘을 왜 달라고 하였는가 하나님의 언약(약속)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창13:15절에 보니까, ‘네 눈으로 보는 땅을 다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이 말은 아비멜렉과 언약을 맺었지만, 아비멜렉과 언약으로서는 충분한 보증이 안된다는 뜻이다. 이것을 확실히 알고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는 모습이다. 너무 사람을 믿지 말라! 세상적인 것은 하루 아침에 배신당하기도 한다. 아브라함이 그것을 잘 알았다. 그래서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았던 것이다.
4. 오늘날의 증거 이 언약을 얼마나 분명하게 믿었던지 지금은 복음으로 세상을 몇바퀴를 돌았다.
그런데 이삭은 더욱더 분명하다.
1) 창28:28 ; 이삭 창26:28절에 보면, 똑같은 지역인 그랄입니다만, 거기 역시 아비멜렉 이름은 똑같으나, 아마 다른 아비멜렉일 것이다. 아브라함 아들 이삭 때에도 그랄 지방의 아비멜렉과 또 문제가 있었다.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부전자전으로 같은 실수를 하였다. 나중에 시비를 하다가 우물을 메꾸고, 또 파고 그랬다.
그런데 우물을 자꾸 메꾸다가 보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 너무 확실하거든요. 그래서 창26:28절에(창 26:28)“그들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의 사이에 맹세를 세워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라고 한다. 여호와께서 너와함께 하심을 분명히 보았다고 한다. 얼마나 확실한가 불신자들이 찾아와서 잘지내자고 한다. 아브라함과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오늘, 이런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란다. 이것이 하나님의 기준이다.
2) 창31장 ; 야곱 그 외삼촌이 얼마나 악한 자인가 일삸을 몇번이나 떼어먹지만 결국 야곱이 승리한다. 얼마나 재산이 많았던지, 야곱이 살짝 도망쳐 나온다. 외참촌은 추격해서 나온다. 그 외삼촌 란반이 볼때 야곱이 하나님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보았다면 빨리 깨달아야 될 것이다. 아비멜렉 같은 사람은 빨리 깨달았다. 깨닫고 잘지내자! 이렇게 나와야 되는데, 야곱의 외삼촌은 하나님이 야곱을 너무너무 축복하셨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또 잡으러 온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이때, 음성으로! ‘너는 야곱을 함부로 건드리지 말라!’고 하시며 나타났다. 정 안되는 것은 하나님이 역사한다. 하나님이 막으니까, 안되는 것이다. 이것이 성도의 증거이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증거이다.
3) 창39장 ; 요셉 요셉은 더욱 분명하다. 창39:1-6절에 보니까,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라고 되어있다. 요셉이 너무너무 성실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요셉이 하나님과 함께 하였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 주인 불신자 보디발이 여호와께서 함께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고 한다. 요셉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았다, 그런 말이 아니다. 성경에 없는 말을 하지말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말씀을 해야 된다. 다른 것을 본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불신자가 ‘우리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보고서 나타나 지기를 원하신다.’ 이래서 증거를 보여야 된다. 이것이 기준이다. 얼마나 보디발이 감동을 받았는지 모른다. 사람이 착하고 성실한 것 가지고는 감동을 받지 않는다. 불신자들도 하나님이 함께 하는 그것을 보고 감동받는다. 보디발은 열쇠 모두를 다 맡겨버렸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그것을 맡기고 나서 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다. (창39:5)“그가 요셉에게 자기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여러분에게 처한 장소마다 이런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란다. 바로 이것이 먼저이다. 일단은 먼저 힘을 얻고, 먼저 은혜를 받고, 일단은 먼저 여러분들이 축복을 받아야 된다.
4) 마16:13-21; 베드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다’라고 베드로가 고백하고 나자, 베드로에게 무엇을 먼저 주셨는가 이름이다. ‘너는 베드로라! 반석이다!’ 이 말은 무슨 말인가 일단 베드로가 반석같이 든든한 삶을 살 수 있도록 그 삶에 축복을 주시겠다는 것이다. 그래야 증거가 나타날 것이 아닌가 든든하게 만들어서 너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 갈 것이다. 복음이 전파되는 내 교회를 세울 것이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단 여러분의 삶이 가는데마다 역사가 일어나야 된다. 하였튼 복음을 제대로 깨달은 다락방 멤버가 한 사람 들어갔다고 그러면 회사가 그 사람 때문에 살고, 학교가 그 학생 때문에 살아야 한다. 그 사람이 있는 교회가 살게 되어있다. 복음은 왜 하필 나를 여기에 보내어 놓았는가 그 답을 찾아야 된다. 바로 이 자리서 증거를 보이기 위해서이다. 거기서 조용히 계속 증거를 보이면 된다. 하나님이 역사한다. 어디 다른데 이사부터 가서 피할려고 하지말고, 그 자리에서 해야된다. 살기좋고, 학군좋고 이런 것을 너무 찾아서 다니지 말고, 하나님의 계획이 어디 있는가 그것을 먼저 보고 움직이라! 좋은 조건 보고 가지말고, 어디 또 좇겨나지 말라! 한 직장에 한달을 못있을 정도로 좇겨 다닌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다. 너무 일을 잘해서 픽업이 되어 다른데 가는 것은 몰라도, 밀려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5. 성도에 대한 하나님의 기준 4가지 언제든지 나오는 절대 축복의 기준 4가지이다. 이스라엘이 왜 포로로 잡혀갔고, 어려움을 당했는가 바로 이 4가지 기준을 모를때이다. 오늘날도 성도들이 왜 어려움을 당하느냐 교회가 왜 어려움을 당하느냐 바로 이 4가지 이유 때문이다.
1) 개인에 대한 영원한 약속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실때, 아브라함을 구원하시기로 약속을 주셨다.
2) 가족과 후손들에 대한 약속 “주 예수를 믿어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16:31) 믿음 의 조상이 되는 것이다.
3) 지역, 민족, 나라 구원에 대한 약속 4) 열방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행1:8, 마28:20) 이 하나님의 계획과 항상 보조를 같이 하시기를 바란다. 6. 현장에서 회복되아야 할 하나님이 축복
1) 신분을 확인하고 누려라!
(1) 하나님 자녀에 대한 축복(요1:12)을 누려라! 자녀에 대한 권세를 누리는 것이 강조되고 있다. 권세라는 것은 누림을 강조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의심하지 말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면 여러분의 모든 문제가 해결 받았다.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 을 뿐 아니라, 주님이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신다.
그러므로 구원은 모든것 을 다 주신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제 구원받았으니, 다른것 좀 해 보자!’ 이것이 잘못된 것이다. 구원은 다 얻은 것이다. 따라서 남은 것은 누리는 것이다.
그런데, 어디로 그렇게 찾으러 다니는가 무엇을 그렇게 찢고, 보여주고 그러는가 구원받은 자가 무엇을 자꾸 찾는가 누리는 자 인데. 무엇을 자꾸 얻으려고 하는가 그래서 복음 전하는 것은 누리는 것이다. 복음 속에는 모든 누림의 축복이 다 들어있다.
(2) 성령님동행의 축복을 누려라! 우리는 다 질그릇 같은 존재들이지만, 우리 안의 내용물이 달라졌다.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신다. 그래서 성령님의 실제성, 영원성, 현재성을 늘 믿 어야 된다. 이것을 믿으면 인본주의가 다 없어진다.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이 말은 고전2:10절에 보니까, 모든 것이 끝났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 든 것을 통달하신다‘고 그랬다. 아무 문제가 없다.
(3) 기도 응답의 축복을 누려라! 우리 신분이 바뀌어 졌는데, 이것을 누리는 길이 바로 기도의 열쇠이다. 기도응답의 축복을 누려야 된다. 그냥 기도하면 틀림없이 신비주의 된다. 그래서, 복음을 제대로 깨닫고, 기도하라! 그러니까, 오직 전도 뿐이구나 하는 사실을 알고, 그것 때문에 기도하면 완전한 축복의 사람이 된다. 복음, 전도, 기도 이것은 아주 중요한 공식이다. 복음을 제대로 알았다면, ‘전도만 하면 된다. 따라서, 기도하면 완전한 축복이 온다!’ 이것이 안되면, 지성주의로 빠지든지, 불건전한 신비주의 로 빠지든지 될 것이다.
2) 권능과 권세를 누리라!
(1) 사단, 귀신 추방을 전도로 통해서 누려야 한다. 전도하러 갈때 귀신이 결박된다! 이것이 키이다. 두드리고 할 것이 없다. 가면 결박된다. 돈 염려, 재정 염려하지 말라! 가면 된다. 남은 것은 주 님이 다 해 놓았기 때문에 누리면 된다.
(2) 영권, 천사 동원을 복음 운동의 비밀을 통해서 누려라! 하나님이 히1:14절에, 천사를 만들때, ‘우리는 제한을 받는 인간들이기 때문에 제한을 받지 않는 인간들을 돕도록 천사를 만든 것이다’
(3) 성령님의 인치심을 세상권세 이김을 통해서 누려야 한다. 우리가 세상 속에 살지만 죽지 않는다.
(4) 전도의 축복을 증거를 통해서 누려야 되겠다. 7. 축복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
1) 확신이 없어서이다-(마16:13-20)절에 5대 확신이 나온다.
(1) ‘주는 그리스도시요’-모든 것을 다 해결하셨다. ; 구원의 확신
(2)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부활, 함께 계신다. ; 동행의 확신 (=인도의 확신; 잠3:5-6)
(3) 기도 응답의 확신-(요:16:24) ; 기도이 열쇠를 주심
(4) 승리의 확신-(고전10:13) ;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함
(5) 사죄의 확신-저주에서 해방 (요일1:9) 성도들이 지금 굉장히 무기력한 자들이 있다. 지금 사단에게 지고 있다. 성도가 무기력할 이유가 없다. 이 세상은 그냥 세상이 아니다. 사단이 역사하고 있는 세상이다. 그러니, 확신이 없으면 염려하게 된다. 염려는 병이다. 자꾸 병하면 정신병 걸린다. 염려가 정신병 시초다. 염려체질은 돌 가능성이 많다.
그러므로 절대 염려하지 말아야 된다. 염려에 빠지면 자동적으로 인본주의 쓴다. 진짜 하나님의 능력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일에 생명을 건다. 진짜 하나님의 능력을 아는 사람은 복음 뿐이구나! 확신하고 완전히 여기에 다 걸어버린다. 이제 틈만 나면 기도하고 누리시기 바란다. 기도는 세계를 움직이고, 만사를 이룬다. 조건은, 복음을 이해한 사람, 전도를 이해한 사람이다. 기도는 두가지 형태가 있다.
첫째, 하나님께 간구하는 형태
둘째, 명령하는 형태 천사와 사탄을 향하여 명령하는 형태이다. ’우리가 명령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고, 행3장에 보니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으켜 주옵소서!’가 아니라, ‘걸으라!’고 명령하였다. 바울도 바로 명령하였다. 무슨 말이냐 하면,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고, 그 주님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주님이기 때문에 그분의 이름으로 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러분의 이름으로 하면 되지 않고, 항상 예수 이름으로이다. 단순한 형식이 아니다. 마귀는 더 잘 안다. ‘저게 말로만 저런다!’ 더 잘 안다. 진짜, 이 권세를 알고, 나와 함께 하심을 알고, 예수 이름으로 가면, 떠들것도 없고, 고함칠 것도 없다. 밤새도록 떠들고 할 필요가 없다. 확신에 넘쳐서 명령하는 것이다. 믿는 것만큼 역사한다.
그러므로 완전히 믿기를 바란다. 정말로 이 멧세지 속에서 항상 하나님을 만나도록 해 주어라!
그러므로 지금 다른 것을 말하지 말고,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증거, 이것이 나타나야 된다.
왜냐하면, 아비멜렉이 틀림없이 아브라함의 약점을 알았다. ‘저게 겁이 많아서 부인을 누이 동생이라고 속였구나!’ 인간이 부족한 것을 알았다. 아비멜렉도 잘 압니다. 아브라함이 어떤 수준인줄을 알았다. 수준 때문에, 수준이 너무 훌륭해서 온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아브라함과 함께하시는 것을 보고 왔다. 그것이 기준이다. 여러분의 수준이 자꾸 드러나면 그것은 망하고 있는 것이다. 그것은 잘 안되고 있는 것이다. ‘저 사람은 참 성실하다!’ 이것이 자꾸 드러나면 안된다. 하나님이 함께 하는 사람이다! 이것이 드러나야 한다. 성경은 철저히 이것을 강조하고 있다.
1. 불신 이방인 왕과 장군이 하나님이 주신 아브라함의 복을 눈으로 보게 되었다. 이것이 성도의 삶의 기준이다.
1) 하나님의 동행하심을 보았다(22) (창21:22)“때에 아비멜렉과 그 군대 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가로되 네가 무슨 일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 우리가 보니 당신이 재주 있는 것같이 보인다. 그런 말이 아니다. 아브라 함 당신은 아주 모범적이더라! 그래서 온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심 을 보고 왔다고 하였다. 이것이 핵심이다. 왜 이렇게 보였느냐 하나님께 본래 그렇게 함께 하시겠다고 약속하였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를 부르실때 아브라함과 같은 약속을 하였다. 하나님이 약속한 대로 붙잡아야지, 자꾸만 다른 것을 붙잡으면 안된다.
2) 아브라함을 부르실때 동행을 약속하셨다. 아브라함을 창12:1-6절에서 부르실때 어떻게 불렀는가 ‘여호와께서 이르 시대,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내가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 축복하 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 내가 저주하리라!’고 하였다. 믿음의 사람은 저 주도 함부로 하지 않는다. 다 하나님께서 하시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아 브라함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 갔다고 되어있다. 말씀을 믿고 말씀 대로 갔다.
2. 불신자가 간접적으로 하나님이 함께하심을 깨달았다
1) 속이지 않기로 맹세했다(23) 그래서 불신자가 먼저 와서 제시했다. 하나님이 함께하시는 증거를 주셨다. 행1:8절에 “내 증인이 되리라!”고 하셨다. 너희가 열심히 일해라!가 아니라 내 증인이 될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니까, 불신자들이 먼저 찾아보는 것이 기준이다.
2) 응답이 있을때, 하나님이 함께하심이 증거된다.
그러므로 전도란 다락방이 언제 어디서 잘되느냐 ‘그 사람 참으로 말을 잘 하더라!’ 이렇게 되어지면 좀 있으면 가지 않는다 . 말만 잘 해가지고는 안된다. 말잘하는 것으로는 힘이 생기지 않는다. 기도응답이 있어야 되고 힘이 생 기고 그래야 된다. 말은 좀틀리고 그래도 기도 응답이 있어야 된다
3. 브엘세바의 언약 아브라함이 샘 7군데를 회복하였다. 브엘세바의 샘을 왜 달라고 하였는가 하나님의 언약(약속)이기 때문이다. 이 말은 창13:15절에 보니까, ‘네 눈으로 보는 땅을 다 주겠다!’고 약속하셨다. 이 말은 아비멜렉과 언약을 맺었지만, 아비멜렉과 언약으로서는 충분한 보증이 안된다는 뜻이다. 이것을 확실히 알고 하나님의 약속을 바라보는 모습이다. 너무 사람을 믿지 말라! 세상적인 것은 하루 아침에 배신당하기도 한다. 아브라함이 그것을 잘 알았다. 그래서 하나님의 언약을 붙잡았던 것이다.
4. 오늘날의 증거 이 언약을 얼마나 분명하게 믿었던지 지금은 복음으로 세상을 몇바퀴를 돌았다.
그런데 이삭은 더욱더 분명하다.
1) 창28:28 ; 이삭 창26:28절에 보면, 똑같은 지역인 그랄입니다만, 거기 역시 아비멜렉 이름은 똑같으나, 아마 다른 아비멜렉일 것이다. 아브라함 아들 이삭 때에도 그랄 지방의 아비멜렉과 또 문제가 있었다.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부전자전으로 같은 실수를 하였다. 나중에 시비를 하다가 우물을 메꾸고, 또 파고 그랬다.
그런데 우물을 자꾸 메꾸다가 보니까, 하나님이 함께 하심이 너무 확실하거든요. 그래서 창26:28절에(창 26:28)“그들이 가로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으므로 우리의 사이 곧 우리와 너의 사이에 맹세를 세워 너와 계약을 맺으리라 말하였노라”라고 한다. 여호와께서 너와함께 하심을 분명히 보았다고 한다. 얼마나 확실한가 불신자들이 찾아와서 잘지내자고 한다. 아브라함과 똑같은 일이 벌어졌다. 오늘, 이런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란다. 이것이 하나님의 기준이다.
2) 창31장 ; 야곱 그 외삼촌이 얼마나 악한 자인가 일삸을 몇번이나 떼어먹지만 결국 야곱이 승리한다. 얼마나 재산이 많았던지, 야곱이 살짝 도망쳐 나온다. 외참촌은 추격해서 나온다. 그 외삼촌 란반이 볼때 야곱이 하나님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보았다면 빨리 깨달아야 될 것이다. 아비멜렉 같은 사람은 빨리 깨달았다. 깨닫고 잘지내자! 이렇게 나와야 되는데, 야곱의 외삼촌은 하나님이 야곱을 너무너무 축복하셨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또 잡으러 온 것이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이때, 음성으로! ‘너는 야곱을 함부로 건드리지 말라!’고 하시며 나타났다. 정 안되는 것은 하나님이 역사한다. 하나님이 막으니까, 안되는 것이다. 이것이 성도의 증거이다. 하나님이 함께 계시는 증거이다.
3) 창39장 ; 요셉 요셉은 더욱 분명하다. 창39:1-6절에 보니까,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으로.’라고 되어있다. 요셉이 너무너무 성실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요셉이 하나님과 함께 하였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그 주인 불신자 보디발이 여호와께서 함께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범사에 형통케 하심을 보았더라!’고 한다. 요셉의 아름다운 모습을 보았다, 그런 말이 아니다. 성경에 없는 말을 하지말라! 하나님이 원하시는 말씀을 해야 된다. 다른 것을 본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불신자가 ‘우리가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것을 보고서 나타나 지기를 원하신다.’ 이래서 증거를 보여야 된다. 이것이 기준이다. 얼마나 보디발이 감동을 받았는지 모른다. 사람이 착하고 성실한 것 가지고는 감동을 받지 않는다. 불신자들도 하나님이 함께 하는 그것을 보고 감동받는다. 보디발은 열쇠 모두를 다 맡겨버렸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그것을 맡기고 나서 더 놀라운 역사가 일어났다. (창39:5)“그가 요셉에게 자기 집과 그 모든 소유물을 주관하게 한 때부터 여호와께서 요셉을 위하여 그 애굽 사람의 집에 복을 내리시므로 여호와의 복이 그의 집과 밭에 있는 모든 소유에 미친지라” 여러분에게 처한 장소마다 이런 역사가 일어나기를 바란다. 바로 이것이 먼저이다. 일단은 먼저 힘을 얻고, 먼저 은혜를 받고, 일단은 먼저 여러분들이 축복을 받아야 된다.
4) 마16:13-21; 베드로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다’라고 베드로가 고백하고 나자, 베드로에게 무엇을 먼저 주셨는가 이름이다. ‘너는 베드로라! 반석이다!’ 이 말은 무슨 말인가 일단 베드로가 반석같이 든든한 삶을 살 수 있도록 그 삶에 축복을 주시겠다는 것이다. 그래야 증거가 나타날 것이 아닌가 든든하게 만들어서 너의 삶을 통해서 하나님의 나라가 확장되어 갈 것이다. 복음이 전파되는 내 교회를 세울 것이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일단 여러분의 삶이 가는데마다 역사가 일어나야 된다. 하였튼 복음을 제대로 깨달은 다락방 멤버가 한 사람 들어갔다고 그러면 회사가 그 사람 때문에 살고, 학교가 그 학생 때문에 살아야 한다. 그 사람이 있는 교회가 살게 되어있다. 복음은 왜 하필 나를 여기에 보내어 놓았는가 그 답을 찾아야 된다. 바로 이 자리서 증거를 보이기 위해서이다. 거기서 조용히 계속 증거를 보이면 된다. 하나님이 역사한다. 어디 다른데 이사부터 가서 피할려고 하지말고, 그 자리에서 해야된다. 살기좋고, 학군좋고 이런 것을 너무 찾아서 다니지 말고, 하나님의 계획이 어디 있는가 그것을 먼저 보고 움직이라! 좋은 조건 보고 가지말고, 어디 또 좇겨나지 말라! 한 직장에 한달을 못있을 정도로 좇겨 다닌다면 그것은 무엇인가 잘못된 것이다. 너무 일을 잘해서 픽업이 되어 다른데 가는 것은 몰라도, 밀려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5. 성도에 대한 하나님의 기준 4가지 언제든지 나오는 절대 축복의 기준 4가지이다. 이스라엘이 왜 포로로 잡혀갔고, 어려움을 당했는가 바로 이 4가지 기준을 모를때이다. 오늘날도 성도들이 왜 어려움을 당하느냐 교회가 왜 어려움을 당하느냐 바로 이 4가지 이유 때문이다.
1) 개인에 대한 영원한 약속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실때, 아브라함을 구원하시기로 약속을 주셨다.
2) 가족과 후손들에 대한 약속 “주 예수를 믿어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얻으리라!”(행16:31) 믿음 의 조상이 되는 것이다.
3) 지역, 민족, 나라 구원에 대한 약속 4) 열방 구원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행1:8, 마28:20) 이 하나님의 계획과 항상 보조를 같이 하시기를 바란다. 6. 현장에서 회복되아야 할 하나님이 축복
1) 신분을 확인하고 누려라!
(1) 하나님 자녀에 대한 축복(요1:12)을 누려라! 자녀에 대한 권세를 누리는 것이 강조되고 있다. 권세라는 것은 누림을 강조하는 말이다.
그러므로 의심하지 말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다면 여러분의 모든 문제가 해결 받았다. 모든 문제가 해결되었 을 뿐 아니라, 주님이 지금 우리와 함께 하신다.
그러므로 구원은 모든것 을 다 주신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이제 구원받았으니, 다른것 좀 해 보자!’ 이것이 잘못된 것이다. 구원은 다 얻은 것이다. 따라서 남은 것은 누리는 것이다.
그런데, 어디로 그렇게 찾으러 다니는가 무엇을 그렇게 찢고, 보여주고 그러는가 구원받은 자가 무엇을 자꾸 찾는가 누리는 자 인데. 무엇을 자꾸 얻으려고 하는가 그래서 복음 전하는 것은 누리는 것이다. 복음 속에는 모든 누림의 축복이 다 들어있다.
(2) 성령님동행의 축복을 누려라! 우리는 다 질그릇 같은 존재들이지만, 우리 안의 내용물이 달라졌다. 하나님이 내 안에 계신다. 그래서 성령님의 실제성, 영원성, 현재성을 늘 믿 어야 된다. 이것을 믿으면 인본주의가 다 없어진다. 하나님과 동행한다는 이 말은 고전2:10절에 보니까, 모든 것이 끝났다는 것이다. ”하나님은 모 든 것을 통달하신다‘고 그랬다. 아무 문제가 없다.
(3) 기도 응답의 축복을 누려라! 우리 신분이 바뀌어 졌는데, 이것을 누리는 길이 바로 기도의 열쇠이다. 기도응답의 축복을 누려야 된다. 그냥 기도하면 틀림없이 신비주의 된다. 그래서, 복음을 제대로 깨닫고, 기도하라! 그러니까, 오직 전도 뿐이구나 하는 사실을 알고, 그것 때문에 기도하면 완전한 축복의 사람이 된다. 복음, 전도, 기도 이것은 아주 중요한 공식이다. 복음을 제대로 알았다면, ‘전도만 하면 된다. 따라서, 기도하면 완전한 축복이 온다!’ 이것이 안되면, 지성주의로 빠지든지, 불건전한 신비주의 로 빠지든지 될 것이다.
2) 권능과 권세를 누리라!
(1) 사단, 귀신 추방을 전도로 통해서 누려야 한다. 전도하러 갈때 귀신이 결박된다! 이것이 키이다. 두드리고 할 것이 없다. 가면 결박된다. 돈 염려, 재정 염려하지 말라! 가면 된다. 남은 것은 주 님이 다 해 놓았기 때문에 누리면 된다.
(2) 영권, 천사 동원을 복음 운동의 비밀을 통해서 누려라! 하나님이 히1:14절에, 천사를 만들때, ‘우리는 제한을 받는 인간들이기 때문에 제한을 받지 않는 인간들을 돕도록 천사를 만든 것이다’
(3) 성령님의 인치심을 세상권세 이김을 통해서 누려야 한다. 우리가 세상 속에 살지만 죽지 않는다.
(4) 전도의 축복을 증거를 통해서 누려야 되겠다. 7. 축복을 누리지 못하는 이유
1) 확신이 없어서이다-(마16:13-20)절에 5대 확신이 나온다.
(1) ‘주는 그리스도시요’-모든 것을 다 해결하셨다. ; 구원의 확신
(2)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니이다’-부활, 함께 계신다. ; 동행의 확신 (=인도의 확신; 잠3:5-6)
(3) 기도 응답의 확신-(요:16:24) ; 기도이 열쇠를 주심
(4) 승리의 확신-(고전10:13) ;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함
(5) 사죄의 확신-저주에서 해방 (요일1:9) 성도들이 지금 굉장히 무기력한 자들이 있다. 지금 사단에게 지고 있다. 성도가 무기력할 이유가 없다. 이 세상은 그냥 세상이 아니다. 사단이 역사하고 있는 세상이다. 그러니, 확신이 없으면 염려하게 된다. 염려는 병이다. 자꾸 병하면 정신병 걸린다. 염려가 정신병 시초다. 염려체질은 돌 가능성이 많다.
그러므로 절대 염려하지 말아야 된다. 염려에 빠지면 자동적으로 인본주의 쓴다. 진짜 하나님의 능력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일에 생명을 건다. 진짜 하나님의 능력을 아는 사람은 복음 뿐이구나! 확신하고 완전히 여기에 다 걸어버린다. 이제 틈만 나면 기도하고 누리시기 바란다. 기도는 세계를 움직이고, 만사를 이룬다. 조건은, 복음을 이해한 사람, 전도를 이해한 사람이다. 기도는 두가지 형태가 있다.
첫째, 하나님께 간구하는 형태
둘째, 명령하는 형태 천사와 사탄을 향하여 명령하는 형태이다. ’우리가 명령할 수 있단 말인가’ 그렇게 단순하게 생각할 것이 아니고, 행3장에 보니까, ‘나사렛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일으켜 주옵소서!’가 아니라, ‘걸으라!’고 명령하였다. 바울도 바로 명령하였다. 무슨 말이냐 하면, 주님이 나와 함께 계시고, 그 주님이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신 주님이기 때문에 그분의 이름으로 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러분의 이름으로 하면 되지 않고, 항상 예수 이름으로이다. 단순한 형식이 아니다. 마귀는 더 잘 안다. ‘저게 말로만 저런다!’ 더 잘 안다. 진짜, 이 권세를 알고, 나와 함께 하심을 알고, 예수 이름으로 가면, 떠들것도 없고, 고함칠 것도 없다. 밤새도록 떠들고 할 필요가 없다. 확신에 넘쳐서 명령하는 것이다. 믿는 것만큼 역사한다.
그러므로 완전히 믿기를 바란다. 정말로 이 멧세지 속에서 항상 하나님을 만나도록 해 주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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