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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덴동산의 가정 (창2:18-25)

본문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가장 축복된 안식처로 가정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자녀를 양육하여 건전한 민족문화를 계승하고 국가와 사회의 초석이 되도록 가정을 우리에게 맡겨 주신 것입니다. “그 나라와 사회를 알려면 그 나라의 가정을 보면 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자녀를 낳고, 기르고, 교육을 시키는 것은 부모의 책임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좀 더 깊이 생각해 보면 부모에게는 더 큰 책임이 있는데, 그것은 자녀들이 좋은 가정을 이루도록 부모가 도와주는 일입니다. 자녀가 좋은 배우자를 만나서 행복한 가정을 이루기 전까지 부모는 그 책임을 다하지 못한 것 같이 느끼는데, 이것은 가정이야말로 우리 삶의 기초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이 행복하고 즐거운 가정은 누가 창조한 것일까요 구약의 창세기에 나오듯 가정의 창시자는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름다운 가정을 창조해 주셨습니다. 아담을 창조하시고는 아담이 홀로 고독하게 지내는 것이 좋지 못해서 아담의 갈비를 취하여 돕는 배필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여자 하와를 아내로 맞이하게 될 때에 아담은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다!”라고 외치며 최초로 가정을 이룬 기쁨을 나타냈습니다. 둘이 하나가 되었습니다. 성경은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움을 알지 못했다”고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이 말씀은 온전한 사랑이 있는 온전한 가정에는 하나님께서 부끄러움을 모르는 아름다운 성의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축복해 주셨다하는 말씀입니다. 가장 행복한 동산은 에덴동산의 가정입니다. 부끄러움도 없이 둘이 하나가 되어서 서로 돕고 행복하게, 하나님께서 만들어 주신 모든 생물을 다스리면서 살아가는 완전한 가정이 에덴동산의 가정인 것입니다. 벨기에의 작가 마테르링크의 소설 “파랑새”에서 주인공은, 온 세상을 돌아다녔지만 찾지 못했던 행복의 파랑새를 자신의 집 처마 밑에서 찾게 됩니다. 오늘날 사람들이 가정 밖에서 참된 행복을 찾으려 하지만, 가정 밖에서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주신 참된 행복을 찾지 못하고 방황합니다. 자녀들의 행복한 삶도 부모들의 행복한 가정생활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우리들은 에덴동산의 가정으로 돌아가야 하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우리 가정이 행복한 가정이 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문제를 가지고 에덴동산을 통하여 몇 가지 교훈을 얻고자 합니다.
1. 애정을 지속적으로 개발해야 합니다. 애정을 계속해서 개발하시기를 바랍니다. 사랑은 보다 깊고 넓고 높아서 누구든지 성숙한 경지에까지 이룰 수는 없습니다. 또한 사랑은 자연스럽게 저절로 찾아오는 것이 아닙니다. 날마다 사랑하는 훈련을 해야 합니다. 중년을 지나 노년기가 되면 부부간의 애정이 별문제가 되지 않을 것같이 보이지만, 실상은 그러한 상태에서도 애정을 무궁무진하게 개발할 수가 있습니다. 중년 후반기의 나이 많은 부부라고 할지라도 이십대 갓 결혼한 부부와 같은 애정생활을 하면서 보다 행복한 축복의 삶을 살아 갈 수가 있다고 합니다. 고대 철학자 플라톤은 결혼생활을 양쪽으로 오를 수 있는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는 것에 비유했습니다. 두 사람이 하나 하나 함께 올라갈 때에 성공적인 결혼생활과 애정의 정상에 이르게 된다고 말합니다. 두 사람이 함께 노력할 때 행복을 차지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행복은 어떤 순간에 성취되는 것이 아니라 끝없는 여정 속에 존재하는 것입니다. 가정의 애정생활은 끝없는 여정의 갈이지 한 순간에 성취하고 끝내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2. 정중한 관계를 지속해야 합니다. 행복한 가정일수록 예절바른 생활을 지속해야 합니다. 서로 존경해야 합니다. 결혼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는 부부간에 허물이 없어져 서로 무례해지기가 쉽고 존중함을 잃어버리기가 쉽습니다. 그러나 피차에 자기의 마음을 가꾸고 자기의 외모를 가꾸어서 마치 결혼하기 전에 데이트를 하는 것처럼 만날 때마다 늘 새로운 예절과 몸가짐으로 언제나 조심스럽게 정중한 태도로 관계를 맺어야만 행복이 계속됩니다. 아담이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다!”라고 한 것은 그 아내 하와가 “가장 아름답고 가장 존귀하고 가장 사랑스러운 내 아내”라는 말입니다. 허물없는 사이라고 해서 무례하기 짝이 없고 정중함과 존경도 없이 그냥 살아가다 보면, 나중에는 불행한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는 것입니다. 오래 지날수록 예절바르고 존경하는 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가정은 피차에 돕는 관계로서 서로 존중해 줄 때 행복해지는 것입니다. “좋은 남편을 만들기 위해서 여자에게는 천재의 재능이 요구된다”는 말이 있습니다. 좋은 남편을 만들기 위해서는 아내가 천재적인 노력을 해야하고, 남편은 아내에게 친절을 다해서 정중한 관계를 유지해 나갈 때에 늘 참신한 애정생활을 향유할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3. 감사의 표현을 잃지 말아야 합니다. 성경은 “범사에 감사하라”고 말합니다. 감사는 가정의 덕입니다. 최근에 발생하는 가정의 불행은 부부간에 감사하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자식과 부모 사이의 경우에도, 자식이 부모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지 않기 때문에 우리의 가정이 삭막해질 때가 많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담이 독처(獨處)하는 것이 좋지 못했기 때문에 돕는 배필을 만들어 주셨습니다. 부부는 서로 돕는 배필입니다. 아내는 남편의 도움이 필요하고 남편은 아내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이렇게 서로 도우면서 살아가기 때문에 부부는 피차에 감사하는 마음을 가져야 합니다. 제 아내가 시집을 조카들과 거느리고 부모님을 섬기는 것을 가만히 보면 감사하기 이를 데 없었고, 지금도 그렇습니다. 무슨 대가를 바라고 그렇게 섬기는 것이겠습니까 며느리로서 피가 섞인 것도 아니지만, 어떤 때는 친정 부모님 이상으로 시부모님의 마음을 즐겁게 해드리려고 애쓰는 것을 보면 참으로 감사합니다. 마음속에 감사한 마음을 늘 가지고 또 그것에 대한 표현이 있어야만 애정이 계속되게 됩니다. 때로 말로 표현하기 어려울 때 꽃다발을 준비해와서 조용히 안겨 준다거나, 아내가 좋아하는 캔디나 초코렛 등을 가져다주면서 감사의 표현을 하게 될 때에 그 가정을 언제나 행복하게 됩니다.
4. 자제를 배워야 합니다. “부부가 동시에 성을 내지 않아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결혼생활이 얼마간 지속되면 우리의 감정을 자제하지 못하고 큰 소리를 지를 때가 있고, 그로 인해 애정이 식어갈 때가 많이 있습니다. 남태평양에 솔로몬 군도가 있는데 이 군도의 사람들은 독특한 방법으로 나무를 벌채합니다. 톱이라든지 도끼를 사용해서 나무를 자르는 것이 아닙니다. 이른 새벽에 벌채할 나무들이 있는 곳에 와서 큰 고함을 지른다고 합니다. 그렇게 고함지르기를 삼십 일 동안을 계속하면, 아무리 크고 튼튼한 나무라도 다 죽고 쓰러진다고 합니다. 생명이 있는 곳에 고함을 지르면 그 생명이 말라죽는다는 말입니다. 하물며 예민한 감성을 가진 인간이 매일 화를 내고 그 화를 받게 된다면 그 육신이 온전하겠습니까 우리가 가지고 있는 감정과 지성과 모든 의지들을 성숙하게 처리할 수 있게 될 때 그 가정은 행복해지게 됩니다. 민주주의는 가정에서부터 훈련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민주화를 외치며, 민주화를 위한 고통과 어려움을 경험하였습니다. 민주화를 이루기가 이렇게 어려운 까닭은 민주주의는 가정에서 받은 훈련, 즉 자신을 자제할 줄 알고 남을 위할 줄 아는 자세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가정에서부터 시작되어야만 사회의 민주주의도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자제할 줄 모르고 포악하고 사악한 사람들이 다수라면 그 사회의 민주주의는 결코 완성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 자녀들에게 자제하는 법을 가르쳐야 합니다. 부모님들이 화를 내지 말아야 합니다. 부모들이 늘 자제하는 것으로 자녀들이 애정의 풍요를 누릴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5. 서로 신뢰해야 합니다. 참 행복은 부부가 서로 신뢰할 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극히 작은 일을 가지고도 서로 믿고 신뢰하는 가정에 행복이 찾아옵니다. 미국을 걸어서 횡단한 사람에게 “무엇이 가장 괴로웠느냐”고 사람들이 물었습니다. 그 사람은 다른 거창한 무엇이 아니라 신발 속에 들어간 조그마한 모래알이 자신을 끊임없이 괴롭혔다고 말했습니다. 마찬가지로 가정에서도 조그마한 모래알처럼 작은 일에 부관심하고, 작은 일부터 신뢰하지 못하기 때문에 가정이 파괴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상담직을 맡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가정이 파괴되고 이혼하는 가장 큰 원인은 갑자기 그 가정에 닥친 이길 수 없는 고난이나 가정을 파괴시키는 이상한 큰 일이 아니라, 지극히 보잘 것 없어서 관심도 두지 않았던 일들이 가정을 파괴시키고 이혼을 낳게 하는 원인이 된다고 합니다. 우리는 서로 진실해야 하고 양심적이어야 합니다. 내 아내와 내 남편을 전적으로 믿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서로 신뢰하는 행복한 가정이 되는 것입니다. 6. 늘 함께 거해야 합니다. 애정의 풍요는 늘 동고동락하는 데서 비롯됩니다. 어떤 이유에서든지 부부가 떨어져서 오래 있으면 애정에 금이 가기 쉽고 시험에 들기가 쉽습니다. 남편이 하루종일 일하다가 퇴근해 왔을 때에 부인이 준비하고 기다리면서 영접해주면, 남편은 모든 피곤이 풀리고 그저 기쁘고 고마울 뿐입니다. 서로 함께 지내야 합니다. 부부는 어떤 이유에서든지 늘 같이 지내야 합니다. 둘이 서로 늘 함께 하려는 마음이 생기는 까닭은 아담의 말대로 배우자는 “살 중의 살이요 뼈 중의 뼈”가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하기에 하나가 되고자 하는 마음을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7. 오늘을 마지막 날처럼 살아야 합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이고, 좀 안된 비유이지만, 앞으로 24시간이 흐르고 나면 내 배우자가 세상을 떠나갈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늘”이 그렇게 소중할 수가 없을 것입니다. 24시간 동안에 어떻게 하면 배우자를 즐겁게 해주고 행복을 누릴 것인가를 생각할 것입니다. 싸우거나 다툴 시간이 전혀 없습니다. 사로를 만족하게 해주기 위해 오늘 최선을 다하려는 마음을 가지고 가정생활을 계속해 나가야 한다는 말입니다. 언젠가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세상을 떠나 장례식 치르는 이야기를 들어본 것이 있습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은 부인과 함께 생활하다가 부인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운명하기 직전 아니많은 자기 부인의 손을 꼭 잡고 “여보” 내가 당신을 사랑하오“(I love you, darling) 이 말 한마디를 했다고 합니다. 다른 거창한 말이 아니라
I love you, darling 이 한마디를 했다는 말을 전해듣고, 저는 부부가 어떠한 삶을 살든지 피차에 오늘을 마지막 날처럼 풍족한 애정을 가지고 살아야 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8. 생명력있는 신앙으로 함께 생활해야 합니다. 기독교 신앙은 단순히 교리를 인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형식적으로 교회에 오고 가는 것만이 아닙니다. 부부생활과 가정생활에 생명을 주고 행복을 창조해 주는 하나의 힘이 되어주는 것이 믿음입니다. 둘이 서로에게 속해 있습니다. 아내는 남편에게 속해 있고, 남편은 아내에게 속해 있습니다. 또 이 둘이 함께 하나님께 속해 있을 때에 우리는 일치된 마음으로 믿음 안에서 행복을 이룰 수 있습니다. 서로 신앙이 다른 사람들은 젊었을 때에는 어느 정도 행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육체적인 감정의 즐거움을 누릴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중년기에 들게 되면 마음이 조화가 이루어져야 하는데, 종교가 서로 다르게 되면 제각기 서로를 끌어당기는 작용을 하게 됩니다. 그때마다 불편이 생깁니다. 더 나아가서 영혼의 일치점을 찾지 못하기 때문에 중년기 이후에 가서는 그 가정이 불행해 지는 경우가 많고, 그저 되는대로 살아갈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내외간이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면서 신앙 안에서 행복을 창조해 나가고, 하나님의 뜻과 경륜에 따라서 살아나가는 가정이야말로 행복한 가정입니다. 그러기에 믿음이 있는 가정은 믿음이 없는 가정보다 여섯 배나 더 행복하다는 말이 있습니다. 공통된 신앙을 가진 중년가정이 그렇지 않은 이십 대의 젊은 부부들보다도 행복한 삶을 살아가게 된다는 말입니다. 주께서 세우지 아니하시면 세우는 자의 수고가 헛됩니다. 우리가 무엇을 많이 소유했다고 해서 행복한 것은 아닙니다. 우리가 무슨 지위를 가졌다고 해서 행복이 보장되는 것도 아닙니다. 소유에 의해서 행복이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가 어떤 존재가 되고, 배우자가 어떤 존재가 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존재가 될 때 그 기초 위에 행복한 가정이 세워지는 것입니다. 어느 시골에 아름다운 연못이 하나 있었습니다. 소와 말들이 와서 그물을 마십니다. 그 연못에는 많은 고기들이 뛰놀고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 연못에 있던 고기들이 다 죽었습니다. 소와 말이 와서 그 물을 먹을 수가 없습니다. 그 연못에는 많은 고기들이 뛰놀고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그 연못에는 이상한 독초가 돋아나게 되었습니다. 그러자 그 연못에 있던 고기들이 다 죽었습니다. 소와 말이 와서 그 물을 먹을 수가 없습니다. 그 연못은 결국 독초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농약전문가가 와서 약을 뿌려봤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 그때 어떤 사람이 말하기를 연못가에 버드나무를 심어보자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그 연못가에 버드나무를 빙 둘러 심었습니다. 버드나무가 자라면서 나물의 뿌리가 못 밑에까지 이르러 독초가 자랄 수 없을 만큼 영양분을 모두 섭취했습니다. 그러자 독초는 점점 줄어들고 물이 맑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붕어가 살게 되고 맑은 샘물이 다시 솟아나고 소와 말들이 다시 와서 물을 마시게 되었습니다. 때때로 우리 가정에 독초가 자라날 때가 있습니다. 이러할 때에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의 뿌리를 깊이 내리면, 모든 독초가 사라지고 행복한 가정이 이루어질 것입니다. 여러분의 가정이 신앙 안에서 행복한 가정이 되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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