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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국 같은 가정 (창2:18-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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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우리는 무주 리조트 자연의 품속에서 자리를 옮겨서 예배 를 드리고 있습니다. 교회는 장소를 옮겨도 전혀 지장을 받지 않 습니다. 왜요 교회는 건물이 아니고 바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백성들이 모여서 교회를 이루지 건물이 교회가 아 니기 때문입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부부로 오신 분은 가정(home)을 여기로 옮긴 것입니다. 그러나 여러분의 집(house)은 구미에 있습니다. 그러니 참으로 중요한 것은 집이 아니라 가정이지요. 그 러기에 여러분의 집을 꾸미지 말고 가정을 잘 꾸밀 일입니다. "돈으로 침대를 살 수 있지만, 잠은 살 수 없다"는 말 있지요 돈으로 집은 살 수 있지만 가정은 살 수 없습니다. 프랑스 사상가 몽테뉴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결혼은 새 장과 같다. 밖에 있는 새들은 안으로 들어가려 애쓰지만 안에 있는 새들은 빠져나가려 몸부림친다.딱 맞는 말인 것 같습니다. 미혼들은 결혼을 하려고 여간 힘을 쓰는 게 아닙니다.
그런데 결 혼한 분들은 뭐 적과의 동침이니, 젖은 낙엽이니 하면서 탈출하 지 못해 안달입니다. 세상적 결혼과 세속적인 가정의 풍속은 여 기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나라의 이혼율이 지난 70년에는 4.3% 정도였다가 최근 에는 18.1%로 껑충 뛰었다고 합니다. 우리 나라의 이혼률은 경제 발전 속도만큼 빨라, 일본(1.27%),프랑스(1.87%),네덜란드(1.90%) 보다 높게 되었습니다. 바야흐로 자본주의의 병폐현상이 만연하 고 있습니다.
그러면 21세기의 사회는 어떻게 될까요 아마 예측하기에 21세 기는, 가정이 인간 행복의 측정의 기본단위가 될 것입니다. 삶의 질도 가정에서 측정될 것입니다.
왜냐하면, 가정에는 현대 사회의 문제가 다 농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부부문제, 자녀교육 문제, 청소년 문제, 노인문제, 세대갈등 문제, 현대 사회의 모든 문제가 가정에 응축되어 있습니다. 20세기가 저물어 가는 1996년 유엔은 그 해를 "세계 가정의 해"로 선포한 것은 이런 현상을 반영한 것 입니다. 그런 까닭에 가정의 문제가 풀리면 현대 사회의 문제는 다 풀 릴 것입니다. 만약 가정이 어그러지고 가정이 문제를 양산해 내 면 국가든 세계든 감당을 할 수 없을 정도가 될 것입니다. 문제 해결 불능의 상태에 빠지게 됩니다. 가정의 자가 치유나 예방이 없다면 사회는 감당을 못할 것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정은 21 세기 인류 삶의 문제의 핵심이 될 것입니다. 가정이 모든 운동의 중심이 될 것이고, 가정이 인간의 삶의 질을 결정하는 바로미터 가 될 것이고, 가정이 문제 해결의 열쇠가 될 것입니다. 때문에 어느 나라 어떤 정권이든, 어떤 사상이든, 어떤 주의나 이즘이든, 가정의 문제를 해결해지 못하면 무너질 것입니다. 21세기를 낙관 적으로 전망하느냐, 비관적으로 전망하느냐는 전부 이 가정에 달 려 있습니다. 가정의 행복은 사회의 행복이요, 국가의 행복이 될 것입니다. 일본에서는 노년이혼이 날로 증가하고 있다고 합니다.
정년퇴 직을 하고 퇴직금을 받은 남편은 아내에게 '그동안 수고했다'는 인사를 기대하며, 집으로 종종걸음을 쳐 들어 온다고 합니다. 그 렇지만 이렇게 들어온 남편에게 아내는 먼저 절을 하면서 '그동 안 신세 많이 졌다'고 하직 인사를 한다고 합니다. 한평생 소리없 이 불만을 참다가 남편이 퇴직금을 받았을 때 위자료를 듬뿍 받 고 헤어지려는 아내들이 늘고 있다고 합니다. 이게 저물어 가는 20세기의 끝을 사는 우리 가정의 현실입니다. 그러면 이런 어그러지고 추한 가정이 아닌 참으로 아름다운 천 국 같은 가정은 어떻게 가능할까요 어디서부터 시작하면 좋을까 요 국가도 해결 못해줘요. 윤리나 도덕도 해결 못해 줘요. 어떤 캠페인이 해결 못 해 줘요. 그러면 뭐가 남았습니까 바로 신앙 입니다. 그런 까닭에 우리 믿음의 사람들은 말씀의 가정을 다시 세우지 않으면 안될 절박한 시점 에 와 있습니다. 오늘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여 봅시다. 파라다이스, 에덴 동산의 가정은 어떠 했습니까요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실 때, 매번 원더플을 연발하셨습니다. 엿세 동안 천지를 창조하셨는 데, 하루도 '하나님 보시기에 좋았더라'가 빠 진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모든 창조 사역을 하시고 1장 31절에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고 감탄사를 발하십니다. 전적으로 완 벽하고 아름답다는 말입니다.
그런데 이제 처음으로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못하니'가 나오는 겁니다. 뭐가 그리 좋지 않았을 까요 뭐가 그리 하나님 보시기 에 못 마땅하고 성이 차지 않았을 까요 독처(獨處)하는 것입니다. 좋지 못한 것은 혼자사는 것입니다. 물론 이 독처하는 게 좋 지 않다고 해서 무조건 '독신은 죄악이다'라고 말하는 게 아닙니다.
다만 남녀가 짝을 이루고 가정을 만드는 것이 하나님의 자연 스런 법칙이라는 것입니다. 보시기에 좋지 않은 독처를 해결하기 위해 하나님은 아담의 아 내 하와를 짝지어 주셨고 그래서 가정이 생겨 났습니다. 그랬더 니 하나님 보시기에 심히 좋았습니다. 그래서 가정이 생겨 난 것 입니다. 엿세 동안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이레 되는 날, 인간 을 창조하셨지요.
그런데 마지막 손 마무리가 불만족 스러웠다는 겁니다. '화룡점정'을 하는 데, 그게 뭔가 어렵다는 겁니다. 그래서 아담을 잠들게 하고, 갈비뼈를 취하고 그 갈비뼈로 하와를 창조합니다. 하와의 창조로 하나님의 창조의 사역은 마지막 완성 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 아담과 하와의 가정은 하나님 창조작업 의 완성입니다. 가정은 천국의 완성입니다. 창조의 기쁨, 에덴 동 산의 행복을 누리는 곳도 가정입니다. 하나님이 세상에 허락하신 기관중에 교회 보다 가정이 먼저 있은 것입니다. 그러니 가정의 우위가 얼마나 높은지 명심할 일입니다. 교회를 통해서 천국이 완성되지만, 가정을 통해서도 천국은 완성됩니다. 그러니 교회 열 심인 것 만큼 더 가정에 열심이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생각해 봐야할 것이 있습니다. 가정이 있어도 독처하는 것이 있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부부의 연을 맺 고 함께 살기는 하지만, 남남이나 다를바 없이 사는 경우가 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부부는 결혼을 했지만 독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못하니'입니다. 어그러진 가정입니다. 조화롭 지 못한 가정입니다. 하나님 보시기에 좋지 못합니다. 그
런데, 유혹에 빠지기 전 에덴 동산시절의 아담과 하와 가정 은 어떤 모습이었을까요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벌거벗었으나 부 끄러워 않을 정도의 모습입니다. 25절의 말씀입니다. "아담과 그 아내 두 사람이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아니하니라" 창조의 질서 가 고스란히 살아 있으니 모든게 자연스럽고 조화스럽습니다. 하 늘을 우러러 한 점 부끄러움이 없는 순수한 아름다움입니다. 가 릴것도 없고 숨길 것도 없고, 은폐할 것도 없습니다. 부정직할 것 도 없습니다. 부부 서로가 서로에게 투명합니다. 그러니 벗어도 부끄러움이 없습니다. 아담과 하와 두 부부관계가 그렇고, 두 부 부와 하나님과의 관계가 그러했습니다. 이런 가정은 하나님의 말씀 법칙이 완전히 살아 있는 가정입니다. 이런 가정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렇듯, 에덴 동산의 원래 부부 아담과 하와는 아름다웠습니다. 그러나 이 아름다운 창조의 질서를 깨고 범죄하게 되자 두 부부 사이에도 갈등이 왔습니다. 그리고 그의 아들은 비행 청소년이 되어 끔찍한 일을 저지르지 않습니까 바로 가인이 아우 아벨을 쳐 죽이는 살인 사건입니다. 이렇듯 깨어진 가정에서는 언제나 깨어진 자식이 나오는 겁니다. 그 뿌리는 인류역사 만큼 깊습니다. 문제 청소년의 배후에는 어그러진 가정이 있습니다. 교육부 집계에 따르면 청소년자살은 증가하는 추세라고 합니다. 한 해에 약 백여명의 청소년이 목숨을 끊는 다고 합니다.
자 살원인 중 가족내 갈등이 42%로 가장 크다고 합니다. 어그러진 청소년은 어그러진 가정의 산물입니다. 어그러진 가정은 자녀들 을 벼랑 끝으로 내 몰고, 그 결과 폭발 직전의 자녀들은 남을 죽 이거나 아니면 자신이 죽거나 둘 중에 하나를 선택하게 되는 겁니다. 이게 하나님 말씀에서 떠난 범죄하고 어그러진 가정의 현 상입니다. 아담의 가정 이래로 20세기 오늘날 까지 이 원리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어그러진 가정의 현상이 어떤지 말씀으로 더 들어 가 보십시다. 창3:7 "그들의 눈이 밝아 자기들의 몸이 벗은 줄을 알고 무화 과 나무 잎을 엮어 치마를 하였더라" 창3:10 "내가 벗었으므로 두려워 하여 숨었나이다" 창3:11 "누가 너의 벗었음을 네게 고하였느냐" 타락한 인간의 모습은 주로 '옷을 벗는 것'으로 묘사됩니다. 타 락한 인간과 하나님과 대화의 주제도 '벗는 이야기'입니다. 그런데 타락하기 전의 '벗음'은 자연스러움의 상징이지만, 타락하고 나서의 '벗음'은 두렵고 수치러운 것의 상징입니다. 부끄러움과 자연스럽지 못함이 타락한 인간의 모습이 되었다는 것이지요. 가 정의 어그러짐은 제일 먼저 부끄러움으로 나타납니다. 떳떳하지 못함으로 나타납니다. 아내된 하와의 범죄, 남편된 아담의 범죄 참여는 가정 의 파괴로 까지 이어집니다. 아담과 하와의 가정은 에덴 동산의 천국에서 추방을 당합니다. 그리고 저주가 선포 됩니다. 그 저주는 고스란히 아담과 하와의 가정에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을 떠난 가정, 하나님께 범죄한 가정, 하나님의 말씀 명 령이 사라진 가정은 그렇습니다. 이것이 어그러진 가정입니다. 그러나 야훼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는 가정은 에덴 동산의 가정 입니다. 유혹이 물러간 가정입니다. 떳떳한 가정, 하나님의 말씀 이 살아있는 가정은 천국입니다. 에덴 동산입니다. 선악과가 아직 살아 있는 가정, 하나님을 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가정은 에덴 동 산의 가정입니다. 이런 타락하기전 아담과 하와의 가정을 회복하 자는 것입니다.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가득하고 다 투는 것 보다 나으니라"(잠17:1) "미련한 아들은 그 아비의 재앙이요, 다투는 아내는 떨어지는 물방울이니라. 집과 재물은 조상에게서 상속하거니와 슬기로운 아내는 여호와께로 말미암느니라"(잠19:13-14) 하나님의 질서가 살아있는 가정의 중요성은 성경에서도 이렇게 누차 강조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가정을 통해서 천국의 그림자를 보게 됩니다. 최초의 가정은 천국에 있었습니다. 이 에덴 동산의 가정, 천국의 가정을 모든 가정은 꿈을 꾸는 것입니다. 마치 모든 교회가 오순절의 초대 교회를 꿈꾸듯이 말이지요. 이런 타락하기 전 아담과 하와의 가정을 회복하자는 것입니다.
어떤 아버지와 어린 아들의 대화입니다. 아들이 아버지에게 묻 습니다. "아빠 천국은 도대체 어떻게 생겼어" 아버지가 따뜻하 고 다정스런 모습으로 대답을 합니다. "응 사랑하는 아들아! 천국 은 말이야, 마치 우리 집과 같단다" 사랑하는 자녀에게 가정을 통해서 천국을 볼 수 있게 해야 합니다. 이런 정도가 되면 아름다운 가정입니다. 멋있는 가정입니다. 이것을 위해 하나님의 질서를 우리의 가정에 울려 퍼지게 해 야 합니다. 천지 창조는 혼돈에 질서를 준 것입니다. 혼돈에 질서를 부여 하신 것이 창조이니 이게 '보시기에 심히 좋았다'는 말입니다. 마 찬 가지로 어그러진 우리 가정에 창조 동산 에덴의 아름다움이 넘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질서를 부여 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질서는 언제나 혼돈에 질서를 부여 합니다. 그러면 정말 아름다 워집니다. 자신이 보기에도 좋고 남들이 보기에도 좋습니다. 우리 가 올해 촛점 중심 질서를 강조 합니다만, 여기서 질서는 하나님 의 질서입니다. 하나님의 질서가 우리 삶에 울려 퍼지면 아름다 워 집니다. 하나님의 질서가 울려 퍼지면 혼돈이 말끔히 해결됩니다. 추한 모습이 아름다운 모습으로 바뀝니다. 갈등이 멋있는 조화로 바뀝니다. 음악에서 혼돈은 여러 음들이 아무렇게나 막 석여 있는 것입니다. 이게 갈등이지요. 이게 음악적 혼돈입니다. 그러나 이런 혼돈 의 음들에게 질서를 부여하면 영혼을 치유하는 아름다운 음악이 됩니다.
마찬가지입니다. 혼돈과 갈등의 요소들에 하나님의 말씀 의 질서를 부여하면 에덴의 천국이 됩니다. "보시기에 심히 좋 았더라"가 될 것입니다. 그러니다 제자리 찾기입니다. 창조의 과 정도 그렇습니다. 빛과 어둠을 나누시고, 궁창이 있어 물과 물로 나뉘게 하시고, 궁창에 광명이 있어 주야로 나뉘게 하시고. 다 무엇입니까 제자리 찾기입니다. 혼돈과 갈등의 요소들을 제자리 찾기에 놓으니, 아름다운 창조의 질서-에덴 동산이 되었다는 겁니다. 남편이 제자리에, 아내가 제자리에, 자녀가 말씀의 자리에 이렇게 있으면 질서입니다. 질서는 조화이지요. 이게 아름다움입니다. 그러니 갈등과 혼돈에 실망하지 맙시다. 지금 그대의 가정적인 갈등에도 하나님 말씀의 질서를 부여하면 천국 같은 가정이 될 것입니다. 갈등과 혼돈은 창조질서의 도구가 되고 에너지가 될 것입니다. 이걸 믿으시기 바랍니다. 창조의 질서가 울려 퍼지는 아름다운 가정이 되기 위해서는 은 혜의 공동체, 빚진자의 감격이 살아 있어야 합니다. 가정의 한 사람 한 사람이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한 사람이라도 이런 질서가 울려 퍼지지 못하면 창조의 작업은 상당한 진통을 겪게 됩니다. 가정에 괴로움이 있는 것은 대개 은혜의 감격이 사라졌거나, 은 혜의 감격을 함께 누리지 못하고 있거나 하는 경우입니다. 가정은 기본적으로 은혜의 공동체 라야 합니다. 모든 가족 구 성원 모두가 이걸 느껴야 은혜의 공동체가 됩니다. 부부관계이든, 부모 자식 간의 관계이든, 시부모, 장인장모의 관계이든 다 그렇 습니다. 사랑과 용서의 두 기둥이 서 있어야 한다는 말입니다. 남편과 아내를 교회와 그리스도의 관계로 수차 강조한 것을 봐 도 그렇습니다.
가정은 구원받은 자의 감격이 있어야 천국이 될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에게서 속량을 받은 교회 처럼 말이지요. 그리스도가 몸이 되고 그리스도의 말씀이 살아 있고 그리스도 처 럼 사랑이 있는 가정은 에덴 동산입니다. 천국입니다. 벌거벗어도 부끄럼이 없는 가정입니다. 여기에는 파라다이스-인류의 이상향 이 있습니다. 행복의 극치가 있습니다. 우리가 지상에서 천국을 경험하는 두 기관이 있습니다. 가정 과 교회입니다. 물론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 있고 주님의 지배가 달성되는 곳이니 천국의 그림자입니다. 마찬가지로 가정 을 통해서도 천국을 경험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런 천국 가정에는 전제가 있습니다. 타락하기 전의 가정일 것! 즉 하나님의 말씀이 살아있고 선악과가 살아 있고 주님의 지배가 달성되는 가정 이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말씀의 법칙, 선악과의 법칙을 굳게 잡아야 합니다. 이 것이 에덴 동산의 가정을 지키는 길입니다. 부부의 관계, 남편의 도리, 아내의 도리, 부모와 자녀와의 관계에서 부모의 도리, 자녀 의 도리, 노인에 대한 도리 이런 말씀의 법칙 들이 살아 숨쉬고 말씀의 철칙이 살아 움직이는 가정은 에덴 동산의 가정입니다. 벌거벗었으나 부끄러워 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지옥 같은 죽음과 파멸의 가정을 만들 것인가, 살아있는 천국 에덴 동산의 가정을 만들 것인가 이제 믿음의 결단에 달려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제일 아름다운 풍경화는 가정에서 온 가족이 함께 둘어 앉아 예배를 드리는 모습입니다. 제일 평화로운 사진은 부 부가 아이들을 거느리고 주일 예배를 드리러 가는 모습입니다. 청소년 문제, 고부문제, 부부 문제도 부끄러움 없이 극복될 여지는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이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가정에 하나님의 창조 질서가 부여된 가정, 자신이 보기에도 좋고, 자녀 가 보기에도 좋고, 남들이 보기에도 좋고, 하나님 보기에는 심히 좋은 에덴 동산의 천국 같은 가정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 의 말씀의 질서가 울려 퍼지면 가능합니다. 이런 축복이 가정에 가득 흘러 넘쳐 진정, 너와 너 집에 구원이 이르렀다는 말씀을 누리며 사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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