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을 부르시는 하나님 (창22:1-19)
본문
사람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늘 편안하고 행복하면 좋을 것 같지만 삶에 시 련과 고통 없이는 더 많은 문제가 생깁니다. 시인 바이런은 "역경은 진리로 통하는 으뜸가는 길"이라고 했습니다. 스펄젼은 그의 설교에서 "하나님은 우리를 보다 더 좋은 그리스도인이 되게 하기 위해서 종종 우리에게 특전과 위로와 소망을 빼앗아 가신다"라고 했습니다. 베드로전서 1장 7절에서도 "너희 믿음의 시련이 불로 연단하여도 없어질 금보다 더 귀하여 예수 그리스도의 나타나실 때에 칭찬과 영광과 존귀를 얻 게 하려 함이라"고 말합니다. 이 말은 고난과 역경은 우리에게 유익을 가져 다 준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고난과 역경은 무의미하고 손해가 되는 것이 아니라 성공과 승리로 통하는 길이 됩니다. 그일 후에 본문 1절에 보면"그 일 후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시험하시려고 그를 부르 시되"라는 말씀이 나옵니다. '그 일 후에'라는 것은 좁은 의미로 보면 창세기 21장의 사건이 있은 후에 라는 말입니다. 21장에 어떤 사건이 있습니까 거기에 보면 하나님께서 약 속하신 대로 아브라함에게 이삭이라는 아들을 주셨습니다.
여러 해를 지나 서 이삭이 젖을 떼고 잔치를 할 때에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므로 아브라 함은 이스마엘과 그의 어머니 하갈을 쫓아냈습니다. 그리고는 이삭 중심의 가정으로 만듭니다. 그리고 나서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거처를 두고 블레 셋 족속의 땅에서 살아가는 사건이 있습니다.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는 창세기 12장1절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시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셔서 가나안 땅에서 살아가면서 온갖 인생의 풍상과 고통을 겪은 이후에 아브라함을 부르셨다는 뜻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시는 하나님 아브라함을 믿음의 인정도 받았고 기도 응답도 받았으며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과 보호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실수도 많았고 범죄한 일도 많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었지만 잘한 일보다는 잘못한 일이 더 많았고 넘어지기도 하고 자빠지기도 했습니다.이러한 생활을 하던 아브라함이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셨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은 '엘로힘의 하나님'이라고 히브리 성경은소개 합니다. '엘로힘'은 '무에서 유을 창조하시는 전능하신 능력의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모든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신 그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시험'이라는 말은 '닛시'라는 말인데'입증하고 증명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영어성경에서 이 말은 '그 성능이 정말 좋은가, 그 순도가 정확한가를 검사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의 순도를, 그의 신앙이 진짜냐 가짜냐하는 것을 분별해 보시려고 신앙의 연단을 위해 서 그를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실 때 종종 우리의 신앙의 옳고 그름을 분석해 보시려고, 신앙의 순도를 분석해 보시려고, 신앙을 한 차원 더 높게 만들어 주시기 위해서 연단하시고자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연단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께서 그의 신앙을 어떤 방법으로 연단하셨습니 까본문 2절에서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고 한 것을 볼 때 하나님께서는 헌신을 신앙 연단의 도구로 사용하 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태리 자동차 중에 푼토라는 차가 있는데 '푼토'는 '마침표'라는 뜻입니다. 문장을 쓰고 마침표를 찍는 것과 같이 이 자동차는 모든 기계 설비와 디자인에 있어서 완벽하다는 뜻에서 푼토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신앙의 마지막 마침표가 무엇입니까 예수 믿고 복받는 것입니까 그것은 한 과정 에 지나지 않습니다. 신앙의 마지막 마침표는 하나님 앞에 나의 모든 것을 드리는 헌신의 생활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아브라함의 아들 사랑하사는 독자 이삭을 하나님 앞에 드림으로 써 헌신을 통하여 연단하도록 하신 것입니다.하나님은 시간을 바치라고, 물 질을 바치라고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단 하나 밖에 없는 외아들을 번제로 바치라고 요구하셨던 것입니다. 인간 편에서 보면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억지 요구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아브라함에게 있어서는 크나큰 시험이 아 닐 수 없습니다. 최상의 헌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고 가정이 평안하고 모든 일에 축복받는 것이 신앙생활의 전부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나의 전부를 드리는 헌신의 생활이 있어야 참 신앙의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헌신 을 요구하셨듯이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종종 이런 감당하기 어려운 헌신을 요구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평소에는 신앙적으로 잘 하는 것 같으면서도 정말 몸과 마음을 헌신해야 할 때는 시험에 들어서 넘 어지는 사람이 많이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들을 참 신앙으로 인 정해 주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최고의 헌신,최사의 헌신을 드려야 합니다. 쓰다 남은 일 부를 드린다든지, 인색하게 드리는 것, 정성없이 드리는 것은 헌신이 아닙니다. 아브라삼이 그의 인생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외아들을 하나님께 드 렸듯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을 최상급으로 드릴 때 하나님은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넘치도록 받았으니 그분 앞에 넘치도록 드림이 당연한 것입니다. 왜 헌신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십자가입니까 그 헌신은 우리에게 있어 우리의 삶의 일부분을 도려내는 십자가의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나이 백세에 얻은 아들 이삭, 이제 그의 나이 겨우 열일곱 살 정도입니다. 이삭은 아브라함 가문의 대를 이을 수 있는 유일한 소망인데 그 아들을 바 치라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었다면 아브라함이 얼마나 큰 시험을 받았겠습 니까 어떻게 하면 우리를 연단시키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충족시킬 수가 있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헌신을 아브라함처럼 할 수가 있겠습니까 좋은 믿음, 참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헌신도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드리는 헌신을 통해서 그 사람의 믿음이 좋으냐 나쁘냐, 믿음이 많으냐 적으냐 가 분별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은 후로부터 십칠세에 이르기까지 자기의 생명과 시 간과 온갖 정성과 물질을 아낌없이 이삭에게 쏟아부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삭은 자기의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바로 그 생명같은 이삭을 하나님께서 요구하셨을 때 아브라함이 기꺼이 헌신할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좋 은 믿음, 올바른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좋은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부활의 신앙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9절의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고 한 말씀처럼 아브라함은 하나님게서 자기 아들 이삭을 다시 살리신 줄로 믿었 던 것입니다. 이러한 부활의 신앙이 아브라함에게 온전한 헌신을 할 수 있 게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물질과 시간과 정성과 인생의 모든 것을 드리면 그 분은 더할 수 없는 축복으로 넘치도록 주시는 분이심을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8절에 "여호와 이레"라는 말은 "하나님이 준비하시리라"는 뜻보다는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역사하시리라"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은 여호와 이레의 신앙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헌신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가정과 사업에 우리의 생활 속에 나타나셔서 역사하시고 일하실 것이라는 여호와이 레의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 앞에 온전한 헌신을 할 수 있습니다. 헌신의 결과 우리가 온전한 헌신을 할 때 어떠한 결과가 생깁니까 16절에 보면 "아끼 지 아니하였은즉" 아깝지 않게 하나님께 바칠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는 사 실이빈다. 진정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부활의 신앙을 가진 사람은, 그 믿음 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아깝지 않게 모든 것을 바칠 수 있게 하십니다. 이렇 게 될 때에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이삭이 다시 살아가는 부활의 역사가 있었 던 것처럼 우리의 삶에도 놀라운 축복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 올바른 헌신을 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놀라운 축복을 주시는데 첫 째는 하나님이 나를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12절에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다른 말로 하면 "네 신앙이 진짜인 것을 알았 다"는 말입니다.
둘째는 축복을 주십니다. 17절-18절에 보면 "네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얻으 리니"라고 했습니다. 이런 큰 복은 온전한 헌신을 통해서 온다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여러 해를 지나 서 이삭이 젖을 떼고 잔치를 할 때에 이스마엘이 이삭을 희롱하므로 아브라 함은 이스마엘과 그의 어머니 하갈을 쫓아냈습니다. 그리고는 이삭 중심의 가정으로 만듭니다. 그리고 나서 아브라함은 브엘세바에 거처를 두고 블레 셋 족속의 땅에서 살아가는 사건이 있습니다. 그러나 넓은 의미에서는 창세기 12장1절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시고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셔서 가나안 땅에서 살아가면서 온갖 인생의 풍상과 고통을 겪은 이후에 아브라함을 부르셨다는 뜻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시는 하나님 아브라함을 믿음의 인정도 받았고 기도 응답도 받았으며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과 보호도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실수도 많았고 범죄한 일도 많았습니다. 아브라함은 믿음의 조상이었지만 잘한 일보다는 잘못한 일이 더 많았고 넘어지기도 하고 자빠지기도 했습니다.이러한 생활을 하던 아브라함이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를 부르셨던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은 '엘로힘의 하나님'이라고 히브리 성경은소개 합니다. '엘로힘'은 '무에서 유을 창조하시는 전능하신 능력의 하나님'이라는 말입니다. 모든 인생의 문제를 해결하실 수 있는 능력을 소유하신 그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시험'이라는 말은 '닛시'라는 말인데'입증하고 증명한다'는 뜻이 있습니다. 영어성경에서 이 말은 '그 성능이 정말 좋은가, 그 순도가 정확한가를 검사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믿음의 순도를, 그의 신앙이 진짜냐 가짜냐하는 것을 분별해 보시려고 신앙의 연단을 위해 서 그를 부르셨다는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실 때 종종 우리의 신앙의 옳고 그름을 분석해 보시려고, 신앙의 순도를 분석해 보시려고, 신앙을 한 차원 더 높게 만들어 주시기 위해서 연단하시고자 부르신다는 것입니다. 신앙의 연단 아브라함을 부르신 하나님께서 그의 신앙을 어떤 방법으로 연단하셨습니 까본문 2절에서 "여호와께서 가라사대 네 아들 네 사랑하는 독자 이삭을 데리고 모리아 땅으로 가서 내가 네게 지시하는 한 산 거기서 그를 번제로 드리라"고 한 것을 볼 때 하나님께서는 헌신을 신앙 연단의 도구로 사용하 신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이태리 자동차 중에 푼토라는 차가 있는데 '푼토'는 '마침표'라는 뜻입니다. 문장을 쓰고 마침표를 찍는 것과 같이 이 자동차는 모든 기계 설비와 디자인에 있어서 완벽하다는 뜻에서 푼토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신앙의 마지막 마침표가 무엇입니까 예수 믿고 복받는 것입니까 그것은 한 과정 에 지나지 않습니다. 신앙의 마지막 마침표는 하나님 앞에 나의 모든 것을 드리는 헌신의 생활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을 아브라함의 아들 사랑하사는 독자 이삭을 하나님 앞에 드림으로 써 헌신을 통하여 연단하도록 하신 것입니다.하나님은 시간을 바치라고, 물 질을 바치라고 요구하지 않으셨습니다. 단 하나 밖에 없는 외아들을 번제로 바치라고 요구하셨던 것입니다. 인간 편에서 보면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억지 요구인 것입니다. 그러기에 아브라함에게 있어서는 크나큰 시험이 아 닐 수 없습니다. 최상의 헌신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얻고 가정이 평안하고 모든 일에 축복받는 것이 신앙생활의 전부가 아닙니다. 하나님 앞에 나의 전부를 드리는 헌신의 생활이 있어야 참 신앙의 사람이라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인간의 생각으로는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헌신 을 요구하셨듯이 오늘날 하나님께서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종종 이런 감당하기 어려운 헌신을 요구하신다는 사실입니다. 평소에는 신앙적으로 잘 하는 것 같으면서도 정말 몸과 마음을 헌신해야 할 때는 시험에 들어서 넘 어지는 사람이 많이 있는데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사람들을 참 신앙으로 인 정해 주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최고의 헌신,최사의 헌신을 드려야 합니다. 쓰다 남은 일 부를 드린다든지, 인색하게 드리는 것, 정성없이 드리는 것은 헌신이 아닙니다. 아브라삼이 그의 인생의 전부라고 할 수 있는 외아들을 하나님께 드 렸듯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을 최상급으로 드릴 때 하나님은 기뻐하신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넘치도록 받았으니 그분 앞에 넘치도록 드림이 당연한 것입니다. 왜 헌신하는 것이 그렇게 어려운 십자가입니까 그 헌신은 우리에게 있어 우리의 삶의 일부분을 도려내는 십자가의 고통이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의 나이 백세에 얻은 아들 이삭, 이제 그의 나이 겨우 열일곱 살 정도입니다. 이삭은 아브라함 가문의 대를 이을 수 있는 유일한 소망인데 그 아들을 바 치라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었다면 아브라함이 얼마나 큰 시험을 받았겠습 니까 어떻게 하면 우리를 연단시키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계획을 충족시킬 수가 있겠습니까
어떻게 하면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헌신을 아브라함처럼 할 수가 있겠습니까 좋은 믿음, 참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그렇게 되면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헌신도 기쁜 마음으로 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드리는 헌신을 통해서 그 사람의 믿음이 좋으냐 나쁘냐, 믿음이 많으냐 적으냐 가 분별되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이삭을 낳은 후로부터 십칠세에 이르기까지 자기의 생명과 시 간과 온갖 정성과 물질을 아낌없이 이삭에게 쏟아부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삭은 자기의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바로 그 생명같은 이삭을 하나님께서 요구하셨을 때 아브라함이 기꺼이 헌신할 수 있었던 것은 그에게 좋 은 믿음, 올바른 믿음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좋은 믿음은 어떤 믿음입니까 부활의 신앙입니다. 히브리서 11장 19절의 "저가 하나님이 능히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실 줄로 생각한지라"고 한 말씀처럼 아브라함은 하나님게서 자기 아들 이삭을 다시 살리신 줄로 믿었 던 것입니다. 이러한 부활의 신앙이 아브라함에게 온전한 헌신을 할 수 있 게 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물질과 시간과 정성과 인생의 모든 것을 드리면 그 분은 더할 수 없는 축복으로 넘치도록 주시는 분이심을 믿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8절에 "여호와 이레"라는 말은 "하나님이 준비하시리라"는 뜻보다는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역사하시리라"는 말입니다. 아브라함의 신앙은 여호와 이레의 신앙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헌신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가정과 사업에 우리의 생활 속에 나타나셔서 역사하시고 일하실 것이라는 여호와이 레의 신앙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 앞에 온전한 헌신을 할 수 있습니다. 헌신의 결과 우리가 온전한 헌신을 할 때 어떠한 결과가 생깁니까 16절에 보면 "아끼 지 아니하였은즉" 아깝지 않게 하나님께 바칠 수 있는 용기가 생긴다는 사 실이빈다. 진정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부활의 신앙을 가진 사람은, 그 믿음 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아깝지 않게 모든 것을 바칠 수 있게 하십니다. 이렇 게 될 때에 죽을 수 밖에 없었던 이삭이 다시 살아가는 부활의 역사가 있었 던 것처럼 우리의 삶에도 놀라운 축복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 올바른 헌신을 하게 되면 하나님께서 놀라운 축복을 주시는데 첫 째는 하나님이 나를 인정해 주는 것입니다. 12절에 "내가 이제야 네가 하나님을 경외하는 줄을 아노라." 다른 말로 하면 "네 신앙이 진짜인 것을 알았 다"는 말입니다.
둘째는 축복을 주십니다. 17절-18절에 보면 "네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만민이 복을 얻으 리니"라고 했습니다. 이런 큰 복은 온전한 헌신을 통해서 온다는 사실을 믿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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