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생각하는 사람 (창19:29)
본문
소돔과 고모라는 음란한 도시의 대명사입니다.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실 때에 롯과 그의 가족만 간신히 살아 남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천사를 보내셔서 롯의 가족을 유황불속에서 끌어 내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롯의 가정을 살려 주신 것은 롯이 하나님 앞에 잘 해서가 아닙니다. 아브라함을 생각해서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생각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생각한다는 말은 “자카르”라고 되어 있는데 이는 관심을 가진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이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납니까“
1. 기도응답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기도응답이 있습니다. 한나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아들을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삼상 1:19을 보니 하나님께서는 한나를 생각하사 아들 사무엘을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되지 않기 위하여 6번이나 중보기도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의인 50명만 있으면 멸망시키지 말아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의인 50명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큰 도시에 그래도 의인 50명쯤은 넉넉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던 것같습니다. 다음은 45명으로 5명 줄였습니다. 그 다음은 40명 그리고 나서는 10명씩 줄여 나갔습니다. 30명, 20명, 10명으로 줄였으나 의인 10명이 없어서 소돔과 고모라는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도 10명 이하의 사람이 모이면 예배를 드리지 않습니다. 유대인이 없는 외국에서만 빼고 언제든지 10명을 채워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기도는 끊기있는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이 들의 성들을 멸하실 때 곧 롯의 거하는 성을 엎으실 대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 보내셨더라(창19:29)”.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롯을 향환 중보기도를 들으시고 롯을 살려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기도의 능력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의 능력을 아는 이를 크게 들어 사용하셨습니다. 요한 웨슬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에게 오직 죄만 두려워하고 하나님만 사모하는 기도의 사람 백명을 달라. 그들이 목사이든 평신도이든 상관없다. 그러한 사람 100명만 있으면 지옥의 문을 깨뜨리고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란 한 가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이다.” 스펄젼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위대한 일을 행하실 때마다 하나님은 먼저 기도의 사람을 세우신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사람들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스펄젼이 그렇게 위대한 목회를 할 수 있었던 것은 평신도들 중에서 300명 가량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대부분은 문맹자였다고 합니다. 기도는 평범한 사람을 비범한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기도는 불가능에 대한 도전정신도 선물도 줍니다. 1924년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 산을 정복하였던 팀 이야기입니다. 두 번에 걸쳐 도전하였으나 실패하였습니다. 대원중 두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런던으로 돌아간 대원들이 기자회견을 하였습니다. 두명이 죽게된 경위를 국민들에게 알리는 기자회견이었습니다. 그들 뒤에는 에베레스트 산 사진이 걸려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우리는 다시 도전할 것입니다. 힘차게 기도할 것입니다. 끊임없이 기도할 것입니다. 에베레스트 산은 더 이상 자랄 수 없지만 우리는 계속 자랄 수 있습니다.” 드디어 이들은 세 번째로 에베레스트 산 도전에 승리하였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도 바꿀 수가 있습니다. 기도는 운명을 바꾸는 능력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기도는 롯의 가정의 운명을 바꾸었습니다. 아브라함 한 명이 후에 이스라엘 민족이 된것처럼 롯의 두 딸이 모압과 암몬 두 민족을 이루었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의 기도가 없었다면 롯의 가정은 죽었고, 롯의 가정이 멸망되었다면 모압과 암몬 두 민족이 없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 한 명의 기도가 이렇게 엄청난 결과를 가져 왔습니다. 하나님이 생각하는 이에게는 하나님께서 기도응답의 선물을 허락하십니다.
2. 저주 보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저주 보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는 솔로몬을 지혜로운 왕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정치 말년은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솔로몬은 왕같은 제사장입니다. 솔로몬은 왕만이 아닙니다. 제사장만이 아닙니다. 왕이며, 제사장이었습니다. 왕으로서의 기름부음(왕상1:38-40)과 제사장으로의 기름부음(대상29:22)을 따로따로 받았습니다. 말하자면 목사이며 대통령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 넷을 섬겼습니다.(왕상 11:5-7). 아스다롯신, 그모스신, 밀곰신, 몰록신이 그것이었습니다. 그리고 1,000명의 여인을 데리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직접 두 번 나타나셔서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듣지 않았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왕상11:11)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시되 네게 이러한 일이 있었고 또 네가 나의 언약과 내가 네게 명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결단코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복에게 주리라 (왕상11:12) 그러나 네 아비 다윗을 위하여 네 세대에는 이 일을 행치 아니하고 네 아들의 손에서 빼앗으려니와 (왕상11:13) 오직 내가 이 나라를 다 빼앗지 아니하고 나의 종 다윗과 나의 뺀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네 아들에게 주리라 하셨더라” 하나님은 솔로몬을 저주하려다가 다윗을 생각하시고 아들 솔로몬에게 내릴 저주를 보류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사람은 그래서 능력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하나님이 생각나게 신앙생활하면 자녀가 어그러진 길로 갈 때 저주하여야 마땅한데 저주를 보류하여 주십니다. 박지만은 어머니가 총에 맞아 죽고 아버지마저 총에 맞아 죽는 불운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게다가 아버지 박정희를 향한 욕설은 대단하였습니다. 정말 견기기 힘든 시련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충격을 이기지 못하여 마약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네 번 교도소에 가야 했습니다. 갈 때마다 “네 아버지를 봐서”라는 명목으로 풀려 나곤하였습니다. 아버지 때문에 아들의 벌이 보류된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보고 솔로몬에게 내릴 저주를 보류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생각하는 이를 통하여 주변 사람의 주주를 보류시켜 주십니다. 미국의 남복 전쟁은 너무나 유명한 전쟁입니다. 전쟁중에 링컨 대통령 참모가 링컨에게 말했습니다. “이번 전쟁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셔서 승리하게 해주시겠지요” 이 말을 듣고 링컨이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 주기를 먼저 바라지 말고 내가 하나님 편에 서 있는가를 먼저 생각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링컨이 있는 편을 링컨을 생각하사 승리하게 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생각하는 이는 저주를 면하게 하십니다.
3. 당시 소돔과 고모라는 제법 큰 도시였습니다.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당시 기록에는 10,000명 가량이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한명도 남김없이 모두 유황불속에서 죽었습니다. 그런중에 롯의 가족만 생명을 얻었습니다. 성경은 그 이유를 분명히 제시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구해내셨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생각하는 이에게는 주변 사람의 사망을 면하게 하는 능력을 주십니다. 아브라함은 롯을 아주 사랑하였습니다. 성경에 아브라함이 롯을 사랑한 두 증거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고향을 떠나라고 하실 때 친척을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모든 친척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롯만은 데리고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서까지 롯을 데리고 나온 것을 보면 아브라함이 롯을 퍽 사랑하였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롯을 사랑한 두 번째 증거가 있습니다. 롯의 목자와 아브라함의 목자가 서로 싸울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창 13:8-9)” 롯은 자기보다 윗 사람인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했어야 예의가 있는 이입니다. “삼촌! 그런 말씀마세요. 저가 지금 누구 덕에 살고 있나요 삼촌 때문이 아닙니까 삼촌이 먼저 선택하시고 나머지를 제가 갖겠습니다.” 그러나 롯은 자기가 먼저 좋은 땅 소돔과 고모라를 선택하였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아브라함은 롯을 끔찍히 사랑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사랑하였습니다. 롯을 사랑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 아브라함이 사랑하는 롯을 사랑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놀라운 것이 됩니다. 이같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사랑과 기도 때문에 롯을 소돔과 고모라에서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누군가가 나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다는 것은, 그리고 내가 누군가를 위하여 기도한다는 것은 중요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보고 롯에게 내릴 사망을 면제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생각하는 이를 통하여 주변 사람의 저주를 면제시켜 주십니다. 이같이 하나님이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세 가지 선물을 주십니다.
1. 기도 응답을 주십니다.
2. 저주 보류가 있습니다.
3. 사망 면제가 있습니다.
나는 우리 성도님들 모두가 하나님이 생각하는 사람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옆 사람을 지키는 이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노아와 같이 온 가족의 생명을 지키는 파수군이 되기를 원합니다. 아브라함과 같이 친척의 생명을 지키는 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엘리사와 같이 국가를 지키는 군병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기도응답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기도응답이 있습니다. 한나는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 아들을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삼상 1:19을 보니 하나님께서는 한나를 생각하사 아들 사무엘을 주셨다고 하였습니다. 아브라함은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되지 않기 위하여 6번이나 중보기도 하였습니다. 처음에는 의인 50명만 있으면 멸망시키지 말아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의인 50명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아브라함은 이렇게 큰 도시에 그래도 의인 50명쯤은 넉넉히 있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던 것같습니다. 다음은 45명으로 5명 줄였습니다. 그 다음은 40명 그리고 나서는 10명씩 줄여 나갔습니다. 30명, 20명, 10명으로 줄였으나 의인 10명이 없어서 소돔과 고모라는 망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금도 10명 이하의 사람이 모이면 예배를 드리지 않습니다. 유대인이 없는 외국에서만 빼고 언제든지 10명을 채워서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기도는 끊기있는 기도였습니다. “하나님이 들의 성들을 멸하실 때 곧 롯의 거하는 성을 엎으실 대에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 보내셨더라(창19:29)”.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롯을 향환 중보기도를 들으시고 롯을 살려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기도의 능력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기도의 능력을 아는 이를 크게 들어 사용하셨습니다. 요한 웨슬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에게 오직 죄만 두려워하고 하나님만 사모하는 기도의 사람 백명을 달라. 그들이 목사이든 평신도이든 상관없다. 그러한 사람 100명만 있으면 지옥의 문을 깨뜨리고 이 세상에 하나님의 나라를 세울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이란 한 가지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것이다.” 스펄젼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위대한 일을 행하실 때마다 하나님은 먼저 기도의 사람을 세우신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사람들로 하여금 기도하게 하시는 것입니다. 스펄젼이 그렇게 위대한 목회를 할 수 있었던 것은 평신도들 중에서 300명 가량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대부분은 문맹자였다고 합니다. 기도는 평범한 사람을 비범한 사람으로 변화시켜 주는 능력이 있습니다. 기도는 불가능에 대한 도전정신도 선물도 줍니다. 1924년 세계 최고봉인 에베레스트 산을 정복하였던 팀 이야기입니다. 두 번에 걸쳐 도전하였으나 실패하였습니다. 대원중 두 명이 목숨을 잃었습니다. 런던으로 돌아간 대원들이 기자회견을 하였습니다. 두명이 죽게된 경위를 국민들에게 알리는 기자회견이었습니다. 그들 뒤에는 에베레스트 산 사진이 걸려 있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결론을 내렸습니다. “우리는 다시 도전할 것입니다. 힘차게 기도할 것입니다. 끊임없이 기도할 것입니다. 에베레스트 산은 더 이상 자랄 수 없지만 우리는 계속 자랄 수 있습니다.” 드디어 이들은 세 번째로 에베레스트 산 도전에 승리하였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의 마음도 바꿀 수가 있습니다. 기도는 운명을 바꾸는 능력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의 기도는 롯의 가정의 운명을 바꾸었습니다. 아브라함 한 명이 후에 이스라엘 민족이 된것처럼 롯의 두 딸이 모압과 암몬 두 민족을 이루었습니다. 그때 아브라함의 기도가 없었다면 롯의 가정은 죽었고, 롯의 가정이 멸망되었다면 모압과 암몬 두 민족이 없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 한 명의 기도가 이렇게 엄청난 결과를 가져 왔습니다. 하나님이 생각하는 이에게는 하나님께서 기도응답의 선물을 허락하십니다.
2. 저주 보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저주 보류의 역사가 일어납니다. 우리는 솔로몬을 지혜로운 왕으로 생각합니다. 그러나 솔로몬의 정치 말년은 우상을 섬기며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솔로몬은 왕같은 제사장입니다. 솔로몬은 왕만이 아닙니다. 제사장만이 아닙니다. 왕이며, 제사장이었습니다. 왕으로서의 기름부음(왕상1:38-40)과 제사장으로의 기름부음(대상29:22)을 따로따로 받았습니다. 말하자면 목사이며 대통령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 넷을 섬겼습니다.(왕상 11:5-7). 아스다롯신, 그모스신, 밀곰신, 몰록신이 그것이었습니다. 그리고 1,000명의 여인을 데리고 살았습니다.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직접 두 번 나타나셔서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나 솔로몬은 듣지 않았습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왕상11:11) 여호와께서 솔로몬에게 말씀하시되 네게 이러한 일이 있었고 또 네가 나의 언약과 내가 네게 명한 법도를 지키지 아니하였으니 내가 결단코 이 나라를 네게서 빼앗아 네 신복에게 주리라 (왕상11:12) 그러나 네 아비 다윗을 위하여 네 세대에는 이 일을 행치 아니하고 네 아들의 손에서 빼앗으려니와 (왕상11:13) 오직 내가 이 나라를 다 빼앗지 아니하고 나의 종 다윗과 나의 뺀 예루살렘을 위하여 한 지파를 네 아들에게 주리라 하셨더라” 하나님은 솔로몬을 저주하려다가 다윗을 생각하시고 아들 솔로몬에게 내릴 저주를 보류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생각하시는 사람은 그래서 능력있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부모님이 하나님이 생각나게 신앙생활하면 자녀가 어그러진 길로 갈 때 저주하여야 마땅한데 저주를 보류하여 주십니다. 박지만은 어머니가 총에 맞아 죽고 아버지마저 총에 맞아 죽는 불운을 맛보아야 했습니다. 게다가 아버지 박정희를 향한 욕설은 대단하였습니다. 정말 견기기 힘든 시련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충격을 이기지 못하여 마약을 하기 시작하였습니다. 네 번 교도소에 가야 했습니다. 갈 때마다 “네 아버지를 봐서”라는 명목으로 풀려 나곤하였습니다. 아버지 때문에 아들의 벌이 보류된 것처럼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보고 솔로몬에게 내릴 저주를 보류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생각하는 이를 통하여 주변 사람의 주주를 보류시켜 주십니다. 미국의 남복 전쟁은 너무나 유명한 전쟁입니다. 전쟁중에 링컨 대통령 참모가 링컨에게 말했습니다. “이번 전쟁에서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셔서 승리하게 해주시겠지요” 이 말을 듣고 링컨이 말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 주기를 먼저 바라지 말고 내가 하나님 편에 서 있는가를 먼저 생각하여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링컨이 있는 편을 링컨을 생각하사 승리하게 하셨을 것입니다. 하나님이 생각하는 이는 저주를 면하게 하십니다.
3. 당시 소돔과 고모라는 제법 큰 도시였습니다. 성경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당시 기록에는 10,000명 가량이 살고 있었다고 합니다. 한명도 남김없이 모두 유황불속에서 죽었습니다. 그런중에 롯의 가족만 생명을 얻었습니다. 성경은 그 이유를 분명히 제시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구해내셨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생각하는 이에게는 주변 사람의 사망을 면하게 하는 능력을 주십니다. 아브라함은 롯을 아주 사랑하였습니다. 성경에 아브라함이 롯을 사랑한 두 증거가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고향을 떠나라고 하실 때 친척을 떠나라고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모든 친척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롯만은 데리고 나왔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어기고서까지 롯을 데리고 나온 것을 보면 아브라함이 롯을 퍽 사랑하였다는 것을 알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롯을 사랑한 두 번째 증거가 있습니다. 롯의 목자와 아브라함의 목자가 서로 싸울 때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는 한 골육이라 나나 너나 내 목자나 네 목자나 서로 다투게 말자. 네 앞에 온 땅이 있지 아니하냐 나를 떠나라 네가 좌하면 나는 우하고 네가 우하면 나는 좌하리라(창 13:8-9)” 롯은 자기보다 윗 사람인 아브라함에게 이렇게 말했어야 예의가 있는 이입니다. “삼촌! 그런 말씀마세요. 저가 지금 누구 덕에 살고 있나요 삼촌 때문이 아닙니까 삼촌이 먼저 선택하시고 나머지를 제가 갖겠습니다.” 그러나 롯은 자기가 먼저 좋은 땅 소돔과 고모라를 선택하였습니다. 이런 것을 보면 아브라함은 롯을 끔찍히 사랑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사랑하였습니다. 롯을 사랑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 아브라함이 사랑하는 롯을 사랑하였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사람의 사랑을 받는다는 것은 놀라운 것이 됩니다. 이같이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의 사랑과 기도 때문에 롯을 소돔과 고모라에서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누군가가 나를 위하여 기도하고 있다는 것은, 그리고 내가 누군가를 위하여 기도한다는 것은 중요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보고 롯에게 내릴 사망을 면제하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이 생각하는 이를 통하여 주변 사람의 저주를 면제시켜 주십니다. 이같이 하나님이 생각하는 사람에게는 세 가지 선물을 주십니다.
1. 기도 응답을 주십니다.
2. 저주 보류가 있습니다.
3. 사망 면제가 있습니다.
나는 우리 성도님들 모두가 하나님이 생각하는 사람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옆 사람을 지키는 이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노아와 같이 온 가족의 생명을 지키는 파수군이 되기를 원합니다. 아브라함과 같이 친척의 생명을 지키는 이가 되기를 바랍니다. 엘리사와 같이 국가를 지키는 군병이 다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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