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 (창1:6-8)
본문
지난 몇 년 동안 우리나라에서는 민주화가 진행되었다. 그와 동시에 질서 에는 큰 변화가 생겼다. 권위가 사라졌다는 것이다. 사회 전체에서, 직장이건 학교이건 웃사람에 대한 존경이 없어졌다. 그만큼 새로운 사회는 전의 질서를 잃게 되었다. 그 질서는 어른을 존경하고 이웃을 존중하는 것이었는데 이제는 돈이 많거나 말을 선동적으로 하는 사람들이 힘을 쓰게 되었다. 나는 87년 88년 학생운동이 가장 심할 때 대학의 교무처장 일을 맡아보고 있었다. 학생들은 민주화를 부르짖으며 교수나 학생이나 다 똑같은 존재들로 주장하였다. 그리하여 학교 운영이나 교수 임용이나 교과목이나 강의 내용까 지 모든 면에서 동등한 권리를 요구하였다. 등록금은 얼마 받으라, 강의는 어 떻게 하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피교육자로서의 위치는 완전히 잊은 것이다. 이러한 태도는 요즘에 와서도 달라지지 않은채로 무질서한 형태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지난 학기의 경우였다. 학장이 주차하는 자리에 학생들이 차를 세워두었다. 말리는 직원에게 주차하는데 교수건 학생이건 무슨 차이가 있냐고 계속 똑같은 권리를 외치고 있었다. 성균관대학에서는 교수가 같은 문제로 학생에게 맞는 사건도 있었다.
세계 어느 곳에 이런 일이 있으랴. 이러한 현상은 사회의 전반에 퍼지게 되었다. 직장에 가보라. 전처럼 권 위를 존중해 주고 있는가. 심지어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모인 교회에까지 비슷 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다 같이 신자이고 세례교인이니까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겠다고 한다면 모든 회의는 난장판이 되고 말 것이다. 다행히 우리 교회는 그런 추태가 보이지 않아서 감사하다. 이 점에서 나는 감사한다. 우리는 신자의 가장 중요한 원리를 알아야 한다. 그것은 남을 존경해 주는 것이다. 모두가 서로 존경하는 사회는 되지 못해도 서로 존경하는 교회, 서로 존경하는 가정은 최소한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시작해서 사 회를 그렇게 비칠 수 있다. "사람은 남을 존경하는만큼 자기도 존경을 받는다." 랄프 에머슨의 말이다. 대단히 신앙적이고 성경적인 말씀이다. 존경은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윗사람, 가족 그리고 친구에 대해서, 법과 정부나 통치자에 대해서, 이웃과 타인에게 대해서, 심지어는 자기의 삶과 자 연에 대해서 존경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모두가 진짜로 존경해 야 할 대상에 대한 그림자일뿐이다. 이런 모든 존경을 다 합하고 더 완전한 존경은 나와 세상 모든 것을 만드신 하나님을 향해서 가져야 한다. 이러한 존경은 그 원동력이 사랑이다. 존경에는 세 가지가 있다. 무서워 서 하는 존경이 있다. 그리고 무엇을 기대해서 드리는 존경이 있다. 이것들은 외형상의 존경일뿐이다. 우리가 관심을 갖는 것은 존경은 다르다. 사랑하기 때문에 드리는 존경이다. 진실한 사랑은 불쌍히 여기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존경을 포함해야 참된 사랑이 된다. 존경하지 않는다면 사랑도 없다.(피히테) 모든 형태의 존경의 핵심에는 '내가 대우받기를 원하는대로 남을 대우한 다'(마 7:12)는 근본적인 원리가 자리 잡고 있다. 존경은 남에게 베풀어준만 큼 댓가를 받게 되어 있다. 만약 우리가 존경을 모든 사람을 대하는 나의 원 리로 삼는다고 한다면 그로부터 나오는 댓가는 내 삶을 참으로 복되게 만들 것이다. 우리나라 속담에도 "존대하고 뺨맞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모든 존재에는 하나님의 모습이 심기어져 있다. 자연을 보라. 하나님처럼 숭고하지 않은가. 하늘도 땅도 바다도 그리고 모든 피조물들 심지어는 작은 개미 한 마리에도 신앙의 눈으로 보면 하나님의 모습이 비쳐나오지 않는 것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 그 자체를 바라볼 때 하나님을 존경하면서 그들을 존중해야 한다.
특별히 생명은 무엇이건 소중하지 않은게 없다. 사람에는 하나님의 형상이 찍여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참으로 존 중되어야 한다. 특별히 사람은 누구나 존경할 대상을 가지게 된다. 사람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심기어져 있다고 해도 인격과 신앙에 따라 풍기는 맛이 똑같 지 않은 것이다. 그리스도에 의해서 중생하고 더 거룩해진 사람들에게는 더욱 분명하게 하나님의 모습이 비쳐나올 것이다. 거룩한 능력도 그러하다. 하지만 인간의 눈은 영적이지 못해서 하나님의 형상보다는 외형적인 모습 특히 직위나 재산, 유명도등으로 사람들을 존경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 까지도 하나님은 존중하신다. 세상은 영원한 나라의 그림자요 모형이기 때문 이다. 세상의 의가 하나님의 의의 그림자인 것처럼, 세상의 존경은 하나님을 아는데 도움이 된다. 그래서 어떤 존경이건 인간에게는 필요한 것이다.
세상에서도 세상적인 의가 높은 사람들은 존경을 받는다. 그리고 기술이 높다거나 인격이 훌륭하다거나 희생심을 나타낼 때 이것을 기리고 존경한다. 훌륭한 예술가나 선생들도 존경을 받아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순신 장군이 나 안중근 의사가 존경을 받는 것이다. 그들의 애국심, 남을 위한 희생정신, 뛰어난 도덕율은 세상의 질서를 위해서 있는 것이며 신자들도 존경해야 한다. 그러나 신자들이 여기서 그쳐서는 않된다. 이러한 아름다운 삶은 완전한 덕의 모형이요 그림자임을 알고 더 나은 덕을 사모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완전한 의와 사랑을 발견하며 그것들을 사모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에는 하나님 안에 모든 덕의 완전한 형태가 들어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참된 존경을 하나님께 드리게 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한다면 세상의 모든 존경할 대상들은 하나님의 모습을 부분적으 로 그림자처럼 비추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을 존경하면서 하나님을 경외 하는 것을 훈련을 받게 되어있다. 정말로 제대로 생각이 똑바로 된 사람이라 면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사랑하며 존경하는 것을 배운다. 그리고는 그것들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배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은총을 받게된다. 교만으로 뭉친 세상 사람들은 남을 존경하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그래서 남을 멸시하고 악을 행하기에 하나님은 세상에 권위 가진 자를 많이 주신 것이다. 부모를 모시고 스승도 수도 없이 많다. 학교에도 선배가 있고 직장에 가도 높은 사람들이 있다. 대통령이 있고 각종 관헌들이 있다. 하다못해 통반 장도 때에 따라서는 우리 위에 있다. 교회에 와도 어른들이 있다. 아니 이렇게 직접적인 존재가 아니라도 존경할 대상이 얼마든지 있다.
사 회적으로 존경받는 각 분야의 인물들도 있다. 나는 모든 분야에서 저명해 지 고 뛰어난 작품을 내는 모든 사람들을 진실로 존경한다. 디자이너들을 참으로 존경하고 사업 잘하는 사람들, 글 잘쓰는 사람들, 아무 것도 없어도 하나님을 참으로 경외하고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 모두가 존경의 대상들이다. 이 모두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그림자로 부분적인 은혜로 주신 대상들이다. 여기서도 존경심을 배우지 못한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을 경외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가망 없는 존재들은 아니다. 그들과의 관계를 잘 보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잘 이해하고 있지 않은가. 하나님을 아버지요, 친구요, 스승이요, 배우자요, 왕이요, 재판관으로 깨닫고 존경하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교육시키는 방법이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실 때 땅이 아니라 하늘을 먼저 만드셨다. 그러니까 빛을 만드시고 하늘을 만드 셨다. 모두가 하나님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하늘이 주는 것이 무엇인가 땅을 감싸주며 빛을 주고 단비를 준다. 그리하여 땅이 수확을 할 수 있게 만 든다. 하늘이 없이 땅은 황량한 곳이 된다. 언제나 하늘은 땅 위에 있다. 그리하여 땅으로 하여금 그리고 땅의 모든 존재들로 하여금 우러러 보게 만든다. 언제나 하늘을 보려면 고개를 들어야 한다.
그리고는 하늘에 계신 존재를 생각하게 된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도 하늘에 있는 신을 가리켜 하늘 님 또는 하나님하고 말했다. 하늘을 보는 사람들은 저절로 경외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는 계속 성장할 것을 다짐한다. 하늘이 있는 동안에는.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그것으로 끝이다. 그들은 하늘을 보아도 그 하나님 을 알지도 그 하나님과 대화하지도 못한다. 오로지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에 게만 참된 존경이 가능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 분을 향해서 기도할 수 있게 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가. 세상에서 들을 수 있는 말중에서 이보다 더 빛나는 말이 어디 있는가! 우리는 하나님을 참으로 존경할 수 있는 특권이 주 어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존귀히 여김을 받게 되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이 아신다.(고전 8:3) 그리고 누구든지 하나님을 존 귀히 여기면 하나님도 그를 존귀히 여기신다.(삼상 2:30) 놀랍지 않은가! 세상사람들에게 어찌 하나님이 아버지가 될 것인가! 어찌 남편이 되고 아 내가 되며 어찌 친구가 되겠는가. 어찌 스승이 될 수 있으며 보호자가 될 수 있겠는가! 그들에게는 단지 무서운 심판자요 이상한 운명을 주는 알 수 없는 신이시요 저주를 베푸는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일뿐이요 만나려고 해도 만날 수 도 없는 분이시다. 그들은 참된 권위를 못보도록 영적인 눈이 먼 상태이다. 자 이제 우리는 참된 권위의 대상을 찾은 이들이다.
어떤 전함이 북쪽으 로 순항하고 있었다. 앞에 반짝이는 불빛이 다가 오고 있었다. 그대로 가면 반드시 충돌할 것이었다. 그래서 함장은 급히 신호를 보냈다. "남쪽으로 10도 방향을 바꾸라." 그러자 회답이 왔다. "북쪽으로 10도 방향을 바꾸라." 함장 은 다시 신호를 보냈다. "여기는 함장, 남쪽으로 10도 방향을 바꾸라." 다시 회답이 왔다. "여기는 삼등 수병, 북쪽으로 10도 방향을 바꾸라." 함장은 불같이 화가 났다. 그래서 신호를 다시 보냈다. "마지막 신호, 여기는 전함이다. 남쪽으로 10도 방향을 바꾸라." 다시 회답이 왔다. "마지막 신호, 여기는 등대이다. 북쪽으로 10도 방향을 바꾸라." 아무리 전함이 커도 등대 앞에서는 복종해야 한다. 하나님은 하늘에 이러한 권위를 주셨다. 그리고 모든 존경할 대상에게 이러한 권위를 주셨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들은 존경할 대상을 진실로 존경한다. 그들은 세상의 질서를 위해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세상에 존재하는 이들이다. 존 경의 대상으로 우리 앞에 있다. 우리는 그들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뜻을 보며 우리의 겸손을 표현한다. 그리고 우리가 받고 싶은 대접을 그들에게 드린다. 존경, 존경할 대상이 있고 존경할 마음이 얼마나 행복한가. 아직도 나는 성장할 가능성이 있고 아직도 나는 더 아름다울 수 있다. 내가 바치는 영원한 존경은 하나님을 향한 것이다. 그리고 그 하나님으로부터 사람들을 사랑하되 존경을 가지고 하도록 명령과 능력을 받았기에 그렇게 한다. 나는 동료 인간 들을 존중한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을 나보다 낫게 여겨 존경하리라.
벤 아뎀은 어느 날 밤 깊은 잠에서 깨어나 달빛이 스며든 그의 방에서 한 천사가 황금의 책에 글을 쓰는 것을 보았다. 아뎀은 물었다. "무엇을 쓰고 있 습니까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름이니라.내 이름도 있습니까아니, 없느니라." 아뎀은 생각했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말했다. "간구하노 니, 형제를 사랑하고 어른을 존경하는 사람으로 내이름을 적어 주소서." 천사는 그렇게 쓰고 사라졌다. 며칠 뒤 천사는 눈부신 빛과 평안으로 다 시 나타났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축복받은 사람들의 이름을 보여주었다. 오, 보라! 벤 아뎀의 이름이 맨 위에 있지 않은가! (레이 헌트)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웃에게 표현된다. 하나님의 형상들은 존경되어야 한다. 비록 가난하고 병들고 주책덩어리라도. 그리고 어른들은 더욱 존경되어야 한다. 가정에도 직장에도 사회에도 여러 사람들이 있고 어른들이 있다. 교회에 도 여러 어른이 있다. 누가 어른인가 모두가 어른이다. 모두 사랑하고 존경 할 대상이다. 사업가나 전문가나 높은 경지에 있는 이들도 모두 존경할 대상 이다. 인간인고로 모든 면에서 완벽하지 못하다. 또 그럴 필요도 없다. 하지 만 그들이 얼마나 무서운 역경을 딛고 얼마나 인내를 가지고 나갔던가. 어른을 존경함으로 나는 하나님이 만드신 질서를 사랑한다. 그리하여 나는 완전하게 하나님의 질서 속에 있음을 즐긴다. 집에서 회사에서 그리고 사 회에서 나는 사람들을 존경한다. 그들을 섬기고 배운다. 하나님의 은혜와 성 장하는 생명력은 내 속에서 흘러나온다. 하늘을 바라보면서 나는 자라는 것이다. 나는 모든 사람들을 존경하고 어른들은 모두 어른으로 모실 것이다. 부드럽게 말하자. 두려움보다는 사랑이 강하다. 어린 아이들에게 친절하 게 말하고 그 안에 완성될 하나님을 존경하라. 젊은이들에게 인생을 힘껏 살 도록 친절히 대하자. 약한자, 실수가 많은자에게 부드럽게 대하자. 나이든 자 에게 아픈 인생의 사막길에 위로를 주자. 어른들에게 존경스러운 이들에게 보 이는 하나님을 경배하자. 모두를 사랑하고 어른에게 참된 존경을 표하자.
세계 어느 곳에 이런 일이 있으랴. 이러한 현상은 사회의 전반에 퍼지게 되었다. 직장에 가보라. 전처럼 권 위를 존중해 주고 있는가. 심지어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모인 교회에까지 비슷 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다 같이 신자이고 세례교인이니까 하고 싶은 말을 다 하겠다고 한다면 모든 회의는 난장판이 되고 말 것이다. 다행히 우리 교회는 그런 추태가 보이지 않아서 감사하다. 이 점에서 나는 감사한다. 우리는 신자의 가장 중요한 원리를 알아야 한다. 그것은 남을 존경해 주는 것이다. 모두가 서로 존경하는 사회는 되지 못해도 서로 존경하는 교회, 서로 존경하는 가정은 최소한 만들 수 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시작해서 사 회를 그렇게 비칠 수 있다. "사람은 남을 존경하는만큼 자기도 존경을 받는다." 랄프 에머슨의 말이다. 대단히 신앙적이고 성경적인 말씀이다. 존경은 여러 형태로 나타난다. 윗사람, 가족 그리고 친구에 대해서, 법과 정부나 통치자에 대해서, 이웃과 타인에게 대해서, 심지어는 자기의 삶과 자 연에 대해서 존경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이런 것들은 모두가 진짜로 존경해 야 할 대상에 대한 그림자일뿐이다. 이런 모든 존경을 다 합하고 더 완전한 존경은 나와 세상 모든 것을 만드신 하나님을 향해서 가져야 한다. 이러한 존경은 그 원동력이 사랑이다. 존경에는 세 가지가 있다. 무서워 서 하는 존경이 있다. 그리고 무엇을 기대해서 드리는 존경이 있다. 이것들은 외형상의 존경일뿐이다. 우리가 관심을 갖는 것은 존경은 다르다. 사랑하기 때문에 드리는 존경이다. 진실한 사랑은 불쌍히 여기는 것이 아니다. 반드시 존경을 포함해야 참된 사랑이 된다. 존경하지 않는다면 사랑도 없다.(피히테) 모든 형태의 존경의 핵심에는 '내가 대우받기를 원하는대로 남을 대우한 다'(마 7:12)는 근본적인 원리가 자리 잡고 있다. 존경은 남에게 베풀어준만 큼 댓가를 받게 되어 있다. 만약 우리가 존경을 모든 사람을 대하는 나의 원 리로 삼는다고 한다면 그로부터 나오는 댓가는 내 삶을 참으로 복되게 만들 것이다. 우리나라 속담에도 "존대하고 뺨맞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 않은가! 모든 존재에는 하나님의 모습이 심기어져 있다. 자연을 보라. 하나님처럼 숭고하지 않은가. 하늘도 땅도 바다도 그리고 모든 피조물들 심지어는 작은 개미 한 마리에도 신앙의 눈으로 보면 하나님의 모습이 비쳐나오지 않는 것이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자연 그 자체를 바라볼 때 하나님을 존경하면서 그들을 존중해야 한다.
특별히 생명은 무엇이건 소중하지 않은게 없다. 사람에는 하나님의 형상이 찍여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참으로 존 중되어야 한다. 특별히 사람은 누구나 존경할 대상을 가지게 된다. 사람에게 하나님의 형상이 심기어져 있다고 해도 인격과 신앙에 따라 풍기는 맛이 똑같 지 않은 것이다. 그리스도에 의해서 중생하고 더 거룩해진 사람들에게는 더욱 분명하게 하나님의 모습이 비쳐나올 것이다. 거룩한 능력도 그러하다. 하지만 인간의 눈은 영적이지 못해서 하나님의 형상보다는 외형적인 모습 특히 직위나 재산, 유명도등으로 사람들을 존경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 까지도 하나님은 존중하신다. 세상은 영원한 나라의 그림자요 모형이기 때문 이다. 세상의 의가 하나님의 의의 그림자인 것처럼, 세상의 존경은 하나님을 아는데 도움이 된다. 그래서 어떤 존경이건 인간에게는 필요한 것이다.
세상에서도 세상적인 의가 높은 사람들은 존경을 받는다. 그리고 기술이 높다거나 인격이 훌륭하다거나 희생심을 나타낼 때 이것을 기리고 존경한다. 훌륭한 예술가나 선생들도 존경을 받아야 한다. 이런 의미에서 이순신 장군이 나 안중근 의사가 존경을 받는 것이다. 그들의 애국심, 남을 위한 희생정신, 뛰어난 도덕율은 세상의 질서를 위해서 있는 것이며 신자들도 존경해야 한다. 그러나 신자들이 여기서 그쳐서는 않된다. 이러한 아름다운 삶은 완전한 덕의 모형이요 그림자임을 알고 더 나은 덕을 사모하게 되는 것이다. 그러면 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완전한 의와 사랑을 발견하며 그것들을 사모하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 결국에는 하나님 안에 모든 덕의 완전한 형태가 들어있음을 알게 된다. 그리하여 참된 존경을 하나님께 드리게 되는 것이다. 간단히 말한다면 세상의 모든 존경할 대상들은 하나님의 모습을 부분적으 로 그림자처럼 비추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그들을 존경하면서 하나님을 경외 하는 것을 훈련을 받게 되어있다. 정말로 제대로 생각이 똑바로 된 사람이라 면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사랑하며 존경하는 것을 배운다. 그리고는 그것들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배하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은총을 받게된다. 교만으로 뭉친 세상 사람들은 남을 존경하지 못하게 되어버렸다. 그래서 남을 멸시하고 악을 행하기에 하나님은 세상에 권위 가진 자를 많이 주신 것이다. 부모를 모시고 스승도 수도 없이 많다. 학교에도 선배가 있고 직장에 가도 높은 사람들이 있다. 대통령이 있고 각종 관헌들이 있다. 하다못해 통반 장도 때에 따라서는 우리 위에 있다. 교회에 와도 어른들이 있다. 아니 이렇게 직접적인 존재가 아니라도 존경할 대상이 얼마든지 있다.
사 회적으로 존경받는 각 분야의 인물들도 있다. 나는 모든 분야에서 저명해 지 고 뛰어난 작품을 내는 모든 사람들을 진실로 존경한다. 디자이너들을 참으로 존경하고 사업 잘하는 사람들, 글 잘쓰는 사람들, 아무 것도 없어도 하나님을 참으로 경외하고 참으로 행복한 사람들 모두가 존경의 대상들이다. 이 모두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그림자로 부분적인 은혜로 주신 대상들이다. 여기서도 존경심을 배우지 못한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을 경외할 수 없다.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가망 없는 존재들은 아니다. 그들과의 관계를 잘 보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잘 이해하고 있지 않은가. 하나님을 아버지요, 친구요, 스승이요, 배우자요, 왕이요, 재판관으로 깨닫고 존경하는 것이다. 그것이 하나님이 우리를 교육시키는 방법이다. 하나님은 천지를 창조하실 때 땅이 아니라 하늘을 먼저 만드셨다. 그러니까 빛을 만드시고 하늘을 만드 셨다. 모두가 하나님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하늘이 주는 것이 무엇인가 땅을 감싸주며 빛을 주고 단비를 준다. 그리하여 땅이 수확을 할 수 있게 만 든다. 하늘이 없이 땅은 황량한 곳이 된다. 언제나 하늘은 땅 위에 있다. 그리하여 땅으로 하여금 그리고 땅의 모든 존재들로 하여금 우러러 보게 만든다. 언제나 하늘을 보려면 고개를 들어야 한다.
그리고는 하늘에 계신 존재를 생각하게 된다.
그러므로 세상 사람들도 하늘에 있는 신을 가리켜 하늘 님 또는 하나님하고 말했다. 하늘을 보는 사람들은 저절로 경외심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그리고는 계속 성장할 것을 다짐한다. 하늘이 있는 동안에는. 그러나 세상 사람들은 그것으로 끝이다. 그들은 하늘을 보아도 그 하나님 을 알지도 그 하나님과 대화하지도 못한다. 오로지 그리스도를 믿는 신자들에 게만 참된 존경이 가능하게 된다. 그리하여 그 분을 향해서 기도할 수 있게 된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이름이 거룩히 여김을 받으시오며 나라이 임하옵시며 뜻이 하늘에서 이룬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말인가. 세상에서 들을 수 있는 말중에서 이보다 더 빛나는 말이 어디 있는가! 우리는 하나님을 참으로 존경할 수 있는 특권이 주 어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으로부터 존귀히 여김을 받게 되었다. 누구든지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이 아신다.(고전 8:3) 그리고 누구든지 하나님을 존 귀히 여기면 하나님도 그를 존귀히 여기신다.(삼상 2:30) 놀랍지 않은가! 세상사람들에게 어찌 하나님이 아버지가 될 것인가! 어찌 남편이 되고 아 내가 되며 어찌 친구가 되겠는가. 어찌 스승이 될 수 있으며 보호자가 될 수 있겠는가! 그들에게는 단지 무서운 심판자요 이상한 운명을 주는 알 수 없는 신이시요 저주를 베푸는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일뿐이요 만나려고 해도 만날 수 도 없는 분이시다. 그들은 참된 권위를 못보도록 영적인 눈이 먼 상태이다. 자 이제 우리는 참된 권위의 대상을 찾은 이들이다.
어떤 전함이 북쪽으 로 순항하고 있었다. 앞에 반짝이는 불빛이 다가 오고 있었다. 그대로 가면 반드시 충돌할 것이었다. 그래서 함장은 급히 신호를 보냈다. "남쪽으로 10도 방향을 바꾸라." 그러자 회답이 왔다. "북쪽으로 10도 방향을 바꾸라." 함장 은 다시 신호를 보냈다. "여기는 함장, 남쪽으로 10도 방향을 바꾸라." 다시 회답이 왔다. "여기는 삼등 수병, 북쪽으로 10도 방향을 바꾸라." 함장은 불같이 화가 났다. 그래서 신호를 다시 보냈다. "마지막 신호, 여기는 전함이다. 남쪽으로 10도 방향을 바꾸라." 다시 회답이 왔다. "마지막 신호, 여기는 등대이다. 북쪽으로 10도 방향을 바꾸라." 아무리 전함이 커도 등대 앞에서는 복종해야 한다. 하나님은 하늘에 이러한 권위를 주셨다. 그리고 모든 존경할 대상에게 이러한 권위를 주셨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이들은 존경할 대상을 진실로 존경한다. 그들은 세상의 질서를 위해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 세상에 존재하는 이들이다. 존 경의 대상으로 우리 앞에 있다. 우리는 그들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뜻을 보며 우리의 겸손을 표현한다. 그리고 우리가 받고 싶은 대접을 그들에게 드린다. 존경, 존경할 대상이 있고 존경할 마음이 얼마나 행복한가. 아직도 나는 성장할 가능성이 있고 아직도 나는 더 아름다울 수 있다. 내가 바치는 영원한 존경은 하나님을 향한 것이다. 그리고 그 하나님으로부터 사람들을 사랑하되 존경을 가지고 하도록 명령과 능력을 받았기에 그렇게 한다. 나는 동료 인간 들을 존중한다. 그리고 모든 사람들을 나보다 낫게 여겨 존경하리라.
벤 아뎀은 어느 날 밤 깊은 잠에서 깨어나 달빛이 스며든 그의 방에서 한 천사가 황금의 책에 글을 쓰는 것을 보았다. 아뎀은 물었다. "무엇을 쓰고 있 습니까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이름이니라.내 이름도 있습니까아니, 없느니라." 아뎀은 생각했다. 그리고 용기를 내어 말했다. "간구하노 니, 형제를 사랑하고 어른을 존경하는 사람으로 내이름을 적어 주소서." 천사는 그렇게 쓰고 사라졌다. 며칠 뒤 천사는 눈부신 빛과 평안으로 다 시 나타났다.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으로 축복받은 사람들의 이름을 보여주었다. 오, 보라! 벤 아뎀의 이름이 맨 위에 있지 않은가! (레이 헌트)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은 이웃에게 표현된다. 하나님의 형상들은 존경되어야 한다. 비록 가난하고 병들고 주책덩어리라도. 그리고 어른들은 더욱 존경되어야 한다. 가정에도 직장에도 사회에도 여러 사람들이 있고 어른들이 있다. 교회에 도 여러 어른이 있다. 누가 어른인가 모두가 어른이다. 모두 사랑하고 존경 할 대상이다. 사업가나 전문가나 높은 경지에 있는 이들도 모두 존경할 대상 이다. 인간인고로 모든 면에서 완벽하지 못하다. 또 그럴 필요도 없다. 하지 만 그들이 얼마나 무서운 역경을 딛고 얼마나 인내를 가지고 나갔던가. 어른을 존경함으로 나는 하나님이 만드신 질서를 사랑한다. 그리하여 나는 완전하게 하나님의 질서 속에 있음을 즐긴다. 집에서 회사에서 그리고 사 회에서 나는 사람들을 존경한다. 그들을 섬기고 배운다. 하나님의 은혜와 성 장하는 생명력은 내 속에서 흘러나온다. 하늘을 바라보면서 나는 자라는 것이다. 나는 모든 사람들을 존경하고 어른들은 모두 어른으로 모실 것이다. 부드럽게 말하자. 두려움보다는 사랑이 강하다. 어린 아이들에게 친절하 게 말하고 그 안에 완성될 하나님을 존경하라. 젊은이들에게 인생을 힘껏 살 도록 친절히 대하자. 약한자, 실수가 많은자에게 부드럽게 대하자. 나이든 자 에게 아픈 인생의 사막길에 위로를 주자. 어른들에게 존경스러운 이들에게 보 이는 하나님을 경배하자. 모두를 사랑하고 어른에게 참된 존경을 표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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