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약속과 요구 (창17:1-14)
본문
여러분께서 기도하여 주셔서 지난 주간 미국 시애틀 연합성회를 은혜증에 마치고 돌아오게 된 것을 감사드럽니다. 멀리 캐나다 벤쿠버에서, 그리고 오레곤주 포틀랜드에서까지 성도들이 오셨습니다. 그분들이 시애틀까지 오시려면 자동차로 세시간 반 정도 걸리는데 열심히 참석하셨고 은혜도 많이 있었습니다. 우리 교회에서 이민 가셔서 사시는 분도 여러 가정을 만나 뵙고 여러분 에게 안부를 전해 드렸습니다. 그분들은 미국에 사시면서도 우리 갈보리교회를 잊지 못하고 늘 기도하고 설교카세트를 듣고 듣고 또 들어서 카세트가 돌아가지 않게 될 때까지 듣는다는 말을 하 시는 것을 들었습니다. 어디든 어려운 이민 생활 속에서도 믿음으로 굳게 서서 열심히 사시는 모습을 볼 때 얼마나 감사한지 모르겠습니다. 요사이 미국 의 경제 시정이 좋지 않아서 특수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내외가 직 장에 다니든지, 조그마한 사업을 해도 같이 하지 않으면 살아가기 가 어려운 지경입니다. 아무쪼록 미국이나 그 밖에 다른 나라에 이 민가신 우리 동포들이 이민생활의 성공을 위해서 기도해드려야겠 습니다. 우리 한국교회가 선교 lOO년 역사 속에서 많은 부홍과 성장을 가져온 것을 기쁘게 생각하고 하나님께 감사드컵니다.
그런데 우리 자신을 한번 살펴볼 때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것 이 또한 사실입니다. 신앙고백과 우리의 삶의 괴리 현상이 그 하나 입니다. 신앙을 고백은 하는데 그 고백을 뒷받침 할만한 삶의 내용 이 우리에게 부족하다는 지적입니다. 이것은 어느 누구에게만 해 당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인 모두에게 해당하는 문제인 것입니다. 기독교를 교리적으로 이해하는 것과 기독교의 내용을 우리 삶에 수용하는 데는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하니닙은 사랑이십니다.' 이것을 고백하기는 쉽지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셨다는 엄청난 사실을 깨닫고 그 사랑에 감격하여 내 주님을 사랑하는 삶 속에 들어가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그 삶 속에서 사랑의 하나님을 몸으로 체험하는 그 순간이 반드시 찾아을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공부를 통해서 하나님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공부 하는 것은 머리로 하는 것입니다. 머리로 하나님을 안다는 것과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운다는 것에는 큰 간격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서 배우는 하니에 대한 지식과 깨달 음, 이것이야말로 어떤 의미에서는 하나님을 가장 진실하고 분명 하게 배우는 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과 그에게 요구하신 것을 생각할 때 은혜 주시기를 바랍니다.
1. 하나님의 첫번째 약속이 무엇입니까 오늘 주신 말씀에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하나님 자신을 아브라함에게 나타내시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주신 말 창세기 17장 1절 말씀에 보세요 ' 아브람의 99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 이전에도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알 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합에게 있어서 중요 한 시기에 새롭게 자신의 모습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 함은 새롭게 '아,그렇구나, 하나님은 정말 전능하시구나.'라는 사 실을 온 인격으로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한지 해를 거듭해서 lo년, 20년, 아니 평생을 예수 믿으면서 설교를 듣고 많은 성경지식을 축적해 가고 있는데, 여전히 우리의 삶은 제자리 걸음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고민이_9, 갈등이었습니다. 아니 이것은 오늘을 살아 가고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고민입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고민하고 있을 때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를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전능한 하나님이다' 그걷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 말씀을 하신 때를 자세히 보세요. 창세기 17장 1절에 의하면 아브라함이 99세때에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16장 마지막 절에는 뭐랬어요 하갈이 아브람에 게 이스마엘을 낳을 때에 아브람이 86세였더라' 했습니다. 여러분, 연로한 아브라함이 얼마나 아들 갖기를 원했겠습니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분명히 약속하셨으니까 기다리고 또 기다 렸는데 아무런 징표가 없으니까 더이상 참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사라의 몸종인 하갈을 통해서 이스마엘을 얻은 사건을 이미 말씀 드린 바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인간의 방법으로 얻은 아들을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내가 너에게 준 그 여인 사라를 통해서 아들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더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창세기 16장과 17장사 이의 기간인 13넌을 기다린 것입니다. 그 13년 동안 아브라함이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하나님,그러면 주셔야죠 이스마엘을 인정할 수 없다고 선언하 셨으면 빨리 사라를 통해서 아들을 주셔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안주십니다. 나이는 점점 더 들어가지요, 기력은 점점 없어지지 요 아브라함이 얼마나 초조했겠습니까
그런데 99세가 됐을 때입니다. 이제는 인간적으로 희망이 다 사 라졌습니다. 더 이상 자식을 낳을 능력이 없는 완전절망상태가 된 것입니다. 그 때입니다. 바로 그 순간에 하니께서 개입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상황이 하니닙이 전능하신 것을 가르치기에 가 장 적절한 때였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나를 도와주세요" 인간의 능력이 한계점에 도달했을 때 히니닙이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인간의 역사가 끝날 때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섭이 잘됩니다. 그러나 마음속에 '물론 하나닙이 도와주 시지 않을리 없지 그러나 내가 새벽부터 밤까지 땀홀리며 열심히 일한 때문이지.'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도우심을 인정하십니까 우리의 삶에서 우리의 사업에서, 우리의 문제와 씨름하고 있는 그 격전의 장에서 하나님의 그 전능하신 능력으로 도와주셨다고 전적으로 믿으십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말은 하지만 사실 땀흘리고 수고 한 것은 난데'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 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 아브라함의 상황을 보세요. 이제 인간적으로 말하면 자식을 낳을 가능성이란 전혀 없게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완전 히 절망상태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위대한 창조를 통해서 하니이 전능하신 분인 것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주신 말씀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이란 말은 하나님이 우리 삶 속에 개입 하셔서 어떤 중대한 역사를 나타낼 때 사용되는 말입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 다시 말하면 아브라함의 인간적인 불가능의 상황을 취하셔서 그 속에서 하나님 자신을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때는 삶을 통해서 가르치십니다. 내가 할 수 없을 때, 그래서 내가 절망했을 때 내 삶 속에 나 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이 일을 통해서 내가 전능자라는 사실을 알기 바란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은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하십니다. 내가 할 수 없을 때가 바로 하니닙의 위대하시고 전능히심을 배울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때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서양속담에 '인간의 극한 상황은 하니님의 기회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낙심하고 절망할 때, 우리가 이제는 아무런 소망이 없다고 포기할 때. 이때야말로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하나님을 우리 체험으로 배울 수 있는 놀라운 기회라는 사실을 믿으시 기 바랍니다. 얼마나 은 사람들이 고통스러운 삶을 통해서 신앙 을 갖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게 되고, 하나님을 가까이하게 되었습니까. 인생은 하나님을 배우는 학교라고 말해도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과정을 통해서 자신을 가르치십니다. 하나닙은 자신의 전능하심을 가르치기 위해서 아브라함의 불가 능한 상황을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하나님을 배우십 니까
2.하나님의 두번째 약속은 무엇입니까 오늘 주신 말씀 창세기 17장 4, 5절을 보세요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이름을 바꿔주셨습니다. 본래의 이름인 '아브람' 의 뜻은 '으신 아버지'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이름 때문에 교만 한 마음이 있었는지 모르=K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자신의 전능 하심을 나타내시면서 네 이름을 이제는 아브라함이라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뜻은 열국의 아버지, 많은 민족의 아버지입니다. 이 것은 아브라함의 힘이 세어진다는 그 정도가 아닙니다. 영향을 미 치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냥 몇 사람에게 높임과 존경을 받는다는 정도가 아니라 가족과 민족의 국경선을 넘어 많은 민족 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숱한 민족의 신앙의 아버지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모든 민족들의 아버지 열국의 아버지가 되리라' 이것은 아브라함의 삶에 변화에 대한 하나님의 놀라운 가능성에 대한 제시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무슨 약속을 하셨습니까 '네 삶은 너 혼자만을 위한 삶이 되지 않을 것이다. 너는 변할 것이다. 전능한 나와의 동행을 통해서 너의 삶은 주변의 은 사람 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삶이 될 것이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여러분. 우리의 삶의 진정한 가치가 여기에 있습니다. 아브라함 의 이야기를 하면 우리는 언제나 '복의 근원'이라고 해서 그를 복 받은 사람으로 압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받은 복을 우리에제도 주시기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그러나 사실 아브라함이 복받은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 하나닙의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창세기 12장 에서 이미 그것이 분명히 나타나 있습니다. '복을 받으리라'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복의 근원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12장 2절에서 보면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라고 말씀하셨 습니다. 여러분, 하나닙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나에게 이 복이 머물러 있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은 아닙니다. 내가 받은 복을 가지고 이웃들을 섬기며 이웃에게 영향을 끼 치기 위함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얼마나 주변의 사람들에게 영 향을 끼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위대한 사람만이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게 맡겨주신 자녀 하나를 바로 양육하는 일이 얼마 나 큰 일인지 아십니까 모니카는 아들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하 고,또 기도하고, 10년이 넘도록 기도해서 방탕하던 아들이 돌아와 기독교 역사의 큰 발자취를 남긴 어거스틴이 되지 않았습니까. 수산나라는 한 부인이 있었습니다. 교회에 가서 예배할 때마다 마음에 부담스러운 것이 있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위해 무슨 일 을 할까 그래서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그러나 괴로울 때마다 수 산나는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나는 별로 할 것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주께서 맡기 신 내 자녀들을 성실하게 기르겠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 을 심고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겠습니다. 이 아이들 중에서 이 세계 를 혼드는 사람이 나올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하나님, 내가 네 자 녀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위해 사는 거룩한 삶의 영향을 끼치기 를 원합니다.' 이 부인이 누구입니까 바로 요한 웨슬레, 찰스 웨슬레의 어머 니 수산나 웨슬레였습니다. 이 부인의 자녀들은 위대한 전도자들 이었을뿐 아니라 영국을 도덕적인 파탄에서부터 구출하여 엉국사 회의 혁명을 가져온 위대한 지도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3천명을 회개시키는 베드로가 될 수는 없어도 그 베드로 를 주님 앞으로 인도한 사람인 안드레는 될 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이웃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까 아브람이란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바꾸신 하나님은 그의 아내의 이름도 바꾸셨습니다. 창세기 17장 15. 13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 래라 하지 말고 그 이름을 사라라 하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 로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열국 의 어미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열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아브라함이 열국의 아버지라면 그 아내 사라는 열국의 어머니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영향은 그 가족에게만 머물러 있는 젓이 아니라 유대 민족을 뛰어 넘어서 세계의 모든 민족들에게 영향을 끼칠 것이며, 따라서 그들은 열국의 부모가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 습니다. 이 약속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오늘 유대인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우리도 아브라함의 신앙을 기억하면서 교훈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우리의 삶에는 뜻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그저 먹고 입고 십고 살다가 갈 것인가, 아니면 이웃에게 어떤 구체적인 영향을 남기면서 살아갈 것인가 하는 것이 오늘 우리에게 던져진 질문입니다. '내가 나의 뜻을 이루겠다' 아브라함에게 전능하신 하나님을 나타내신 다음에 '네 속에 나의 뜻을 이루며 너로 하여금 이에게 영향을 끼치는 나의 .사람 이 되게 하겠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3. 하나님의 세번째 약속이 무엇입니까 오늘 주신 말씀 7절에 '내가 네 하나님이 되겠다' 하셨습니다. 여러분,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의 하니님'이라고 할 때 문제는 달 라러니다. 하나님이 나의 하니님이라고 하실 수 있습니까 이 우 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실 때 내 삶의 의미는 완전 히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전혀 소망이 보이지 않는 절망적인 상 황,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상황에 처하여 있는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의 하나님이 되리라' 약속을 하시면서 하나님은 아브라함 에게 두가지 요구를 하셨습니다.
첫째 요구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 17장 1절에 '아브람의 9s세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 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요에서 행 하여 완전하라' 하셨습니다. 요한 빈은 이 말씀에서 자기 일생의 좌우명을 정했습니다. 칼 빈의 일생의 삶의 모토는 바로 '하나님 앞에서'입니다. 이것이 바른 신앙생활입니다. 신앙생활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무를 보십니까 하나님 앞에서 살림하 십니까 하나님 앞에서 장사하십니까 하나님 앞에서 일하십니 까 여러분, 하나닙이 나를 보십니다. 내 삶을 감찰하십니다. 요셉 은 어디서나 하나님 요에서 살았기 때문에 성공적이고 승리적인 삶을 살지 않았습니까 많은 사람 앞에 나타나는 모습을 가장 진실한 그 사람의 모습이 아닐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가장 진실된 모습은 아무도 없을 때. 다른 사람을 전혀 의식하지 않은 그 시간에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 을 말하는가에 나타납니다 그것이 진짜 그의 모습입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앞에서가 아니면 우리의 삶은 바뀌지 않습니다. '너는 내 앞에서 행하라 그리고 완전하라' 하십니다. 왜 우리가 죄를 범합니까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이 조금도 지치지 않으시고 나를 감찰하십니다. 여기 '완전하라 하는 말은 우리가 보퉁 말하는 차원에서의 완전 이란 말이 아닙니다. 여기서는 결정적인 실수가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름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는 적어도 하나님의 빛을 가리는 결정적인 실수는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두번째 요구는 '할례를 받으라 했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 창세기 17장 9 1o절 말씀에 '히니이 또 아브 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 로 지키라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할례를 받으라는 요구입니다. 할례는 요샛말로 쉽게 하면 포경수술입니다. 이스라엘 사람에 게 할례는 하나닙의 백성의 표시였습니다.
그러므로 그 당시에 할 례는 이스라엘백성과 그 백성이 아닌 사람, 하나님의 사람과 하나님의 사람이 아닌 사람을 구별하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할례를 받으면 '너희들은 구별된 사람이야. 다르게 살 아야 해.'라는 요구가 뒤따른 것입니다. 할례를 받은 사람은 자기 변화의 의미를 확인하고 성결한 삶에 대한 도전을 계속하고 있었 던 것입니다. 그러나 육체의 할례를 받았다고 해서 끝난 것은 아넙니다.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것은 사실 단순한 육체의 할례가 아니 라 마음의 할례였습니다. 신명기 S0장 6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 며 성품을 얻게 하실 것이며' 했습니다. 여기서 강조한 할례가 무 엇입니까 육체의 할례가 아니라 마음의 할례입니다. 그래서 마음 올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며 살아가도록 요구하신 하니의 의도가 있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아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그리스도인 이라는 할례의 흔적이 나의 마음에, 나의 삶 속에 나타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 앞에서 행하라 그리고 그리스도의 표적을 지닌 삶을 살아라' 예배당에 와서 찬양하고 기도하고 예배드리는 우리와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업의 터전에서, 이웃사람들과 실갱이를 하는 우리는 어떻게 다릅니까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그리고 내 백성임을 나타내라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고 그분의 요구대로 살아 하나님의 자 녀답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 자신을 한번 살펴볼 때 많은 문제를 안고 있는 것 이 또한 사실입니다. 신앙고백과 우리의 삶의 괴리 현상이 그 하나 입니다. 신앙을 고백은 하는데 그 고백을 뒷받침 할만한 삶의 내용 이 우리에게 부족하다는 지적입니다. 이것은 어느 누구에게만 해 당하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인 모두에게 해당하는 문제인 것입니다. 기독교를 교리적으로 이해하는 것과 기독교의 내용을 우리 삶에 수용하는 데는 커다란 차이가 있습니다. '하니닙은 사랑이십니다.' 이것을 고백하기는 쉽지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셨다는 엄청난 사실을 깨닫고 그 사랑에 감격하여 내 주님을 사랑하는 삶 속에 들어가는 데는 많은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참된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그 삶 속에서 사랑의 하나님을 몸으로 체험하는 그 순간이 반드시 찾아을 것입니다. 우리가 성경공부를 통해서 하나님을 배울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성경을 공부 하는 것은 머리로 하는 것입니다. 머리로 하나님을 안다는 것과 마음으로 하나님을 배운다는 것에는 큰 간격이 있습니다. 우리의 삶을 통해서 배우는 하니에 대한 지식과 깨달 음, 이것이야말로 어떤 의미에서는 하나님을 가장 진실하고 분명 하게 배우는 길이라고 말할 수 있을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과 그에게 요구하신 것을 생각할 때 은혜 주시기를 바랍니다.
1. 하나님의 첫번째 약속이 무엇입니까 오늘 주신 말씀에 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알 수 있도록 하나님 자신을 아브라함에게 나타내시는 사건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오늘 주신 말 창세기 17장 1절 말씀에 보세요 ' 아브람의 99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하셨습니다. 이 말씀 이전에도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알 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브라합에게 있어서 중요 한 시기에 새롭게 자신의 모습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 함은 새롭게 '아,그렇구나, 하나님은 정말 전능하시구나.'라는 사 실을 온 인격으로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신앙생활한지 해를 거듭해서 lo년, 20년, 아니 평생을 예수 믿으면서 설교를 듣고 많은 성경지식을 축적해 가고 있는데, 여전히 우리의 삶은 제자리 걸음입니다, 이것이 바로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고민이_9, 갈등이었습니다. 아니 이것은 오늘을 살아 가고 있는 모든 그리스도인의 고민입니다. 바로 이것 때문에 고민하고 있을 때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자신이 어떤 존재인가를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전능한 하나님이다' 그걷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 말씀을 하신 때를 자세히 보세요. 창세기 17장 1절에 의하면 아브라함이 99세때에 하나님이 나타나셨습니다. 16장 마지막 절에는 뭐랬어요 하갈이 아브람에 게 이스마엘을 낳을 때에 아브람이 86세였더라' 했습니다. 여러분, 연로한 아브라함이 얼마나 아들 갖기를 원했겠습니까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분명히 약속하셨으니까 기다리고 또 기다 렸는데 아무런 징표가 없으니까 더이상 참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사라의 몸종인 하갈을 통해서 이스마엘을 얻은 사건을 이미 말씀 드린 바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인간의 방법으로 얻은 아들을 인정하지 않으십니다. '내가 너에게 준 그 여인 사라를 통해서 아들이 있을 것이다" 그래서 더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창세기 16장과 17장사 이의 기간인 13넌을 기다린 것입니다. 그 13년 동안 아브라함이 어떤 생각을 했을까요
'하나님,그러면 주셔야죠 이스마엘을 인정할 수 없다고 선언하 셨으면 빨리 사라를 통해서 아들을 주셔야 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안주십니다. 나이는 점점 더 들어가지요, 기력은 점점 없어지지 요 아브라함이 얼마나 초조했겠습니까
그런데 99세가 됐을 때입니다. 이제는 인간적으로 희망이 다 사 라졌습니다. 더 이상 자식을 낳을 능력이 없는 완전절망상태가 된 것입니다. 그 때입니다. 바로 그 순간에 하니께서 개입하신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상황이 하니닙이 전능하신 것을 가르치기에 가 장 적절한 때였습니다. '전능하신 하나님, 나를 도와주세요" 인간의 능력이 한계점에 도달했을 때 히니닙이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인간의 역사가 끝날 때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사섭이 잘됩니다. 그러나 마음속에 '물론 하나닙이 도와주 시지 않을리 없지 그러나 내가 새벽부터 밤까지 땀홀리며 열심히 일한 때문이지.'라고 생각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도우심을 인정하십니까 우리의 삶에서 우리의 사업에서, 우리의 문제와 씨름하고 있는 그 격전의 장에서 하나님의 그 전능하신 능력으로 도와주셨다고 전적으로 믿으십니까 우리가 하나님께 감사하다고 말은 하지만 사실 땀흘리고 수고 한 것은 난데'라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 은 전능하신 하나님을 말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런데 이 아브라함의 상황을 보세요. 이제 인간적으로 말하면 자식을 낳을 가능성이란 전혀 없게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완전 히 절망상태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나타나셨습니다. '아브라함아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위대한 창조를 통해서 하니이 전능하신 분인 것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런데 오늘 주신 말씀에서 전능하신 하나님이란 말은 하나님이 우리 삶 속에 개입 하셔서 어떤 중대한 역사를 나타낼 때 사용되는 말입니다.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다' 다시 말하면 아브라함의 인간적인 불가능의 상황을 취하셔서 그 속에서 하나님 자신을 가르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자신을 우리에게 가르치실 때는 삶을 통해서 가르치십니다. 내가 할 수 없을 때, 그래서 내가 절망했을 때 내 삶 속에 나 타나셔서 말씀하십니다. '네가 이 일을 통해서 내가 전능자라는 사실을 알기 바란다'`
사랑하는 여러분, 사람은 할 수 없으나 하나님은 하십니다. 내가 할 수 없을 때가 바로 하니닙의 위대하시고 전능히심을 배울 수 있는 가장 적절한 때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서양속담에 '인간의 극한 상황은 하니님의 기회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우리가 낙심하고 절망할 때, 우리가 이제는 아무런 소망이 없다고 포기할 때. 이때야말로 우리가 하나님을 알 수 있는, 하나님을 우리 체험으로 배울 수 있는 놀라운 기회라는 사실을 믿으시 기 바랍니다. 얼마나 은 사람들이 고통스러운 삶을 통해서 신앙 을 갖게 되고,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게 되고, 하나님을 가까이하게 되었습니까. 인생은 하나님을 배우는 학교라고 말해도 될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과정을 통해서 자신을 가르치십니다. 하나닙은 자신의 전능하심을 가르치기 위해서 아브라함의 불가 능한 상황을 사용하셨던 것입니다. 여러분은 이 하나님을 배우십 니까
2.하나님의 두번째 약속은 무엇입니까 오늘 주신 말씀 창세기 17장 4, 5절을 보세요 '내가 너와 내 언약을 세우니 너는 열국의 아비가 될지라 이제 후로는 네 이름을 아브람이라 하지 아니하고 아브라함이라 하리니 이는 내가 너로 열국의 아비가 되게 함이니라' 했습니다. 하나님이 그의 이름을 바꿔주셨습니다. 본래의 이름인 '아브람' 의 뜻은 '으신 아버지'입니다. 아브라함은 그 이름 때문에 교만 한 마음이 있었는지 모르=K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자신의 전능 하심을 나타내시면서 네 이름을 이제는 아브라함이라 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의 뜻은 열국의 아버지, 많은 민족의 아버지입니다. 이 것은 아브라함의 힘이 세어진다는 그 정도가 아닙니다. 영향을 미 치는 사람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냥 몇 사람에게 높임과 존경을 받는다는 정도가 아니라 가족과 민족의 국경선을 넘어 많은 민족 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숱한 민족의 신앙의 아버지가 될 것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모든 민족들의 아버지 열국의 아버지가 되리라' 이것은 아브라함의 삶에 변화에 대한 하나님의 놀라운 가능성에 대한 제시입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무슨 약속을 하셨습니까 '네 삶은 너 혼자만을 위한 삶이 되지 않을 것이다. 너는 변할 것이다. 전능한 나와의 동행을 통해서 너의 삶은 주변의 은 사람 들에게 영향을 끼치는 삶이 될 것이다.'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여러분. 우리의 삶의 진정한 가치가 여기에 있습니다. 아브라함 의 이야기를 하면 우리는 언제나 '복의 근원'이라고 해서 그를 복 받은 사람으로 압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받은 복을 우리에제도 주시기를 위해서 기도합니다. 그러나 사실 아브라함이 복받은 사람이 되게 하는 것이 하나닙의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창세기 12장 에서 이미 그것이 분명히 나타나 있습니다. '복을 받으리라'에서 끝난 것이 아니라 '복의 근원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 12장 2절에서 보면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라고 말씀하셨 습니다. 여러분, 하나닙이 우리에게 복을 주시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나에게 이 복이 머물러 있게 하는 것이 하나님의 목적은 아닙니다. 내가 받은 복을 가지고 이웃들을 섬기며 이웃에게 영향을 끼 치기 위함인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얼마나 주변의 사람들에게 영 향을 끼치는 삶을 살고 있습니까 위대한 사람만이 주변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이 내게 맡겨주신 자녀 하나를 바로 양육하는 일이 얼마 나 큰 일인지 아십니까 모니카는 아들을 위해서 눈물로 기도하 고,또 기도하고, 10년이 넘도록 기도해서 방탕하던 아들이 돌아와 기독교 역사의 큰 발자취를 남긴 어거스틴이 되지 않았습니까. 수산나라는 한 부인이 있었습니다. 교회에 가서 예배할 때마다 마음에 부담스러운 것이 있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위해 무슨 일 을 할까 그래서 마음이 괴로웠습니다. 그러나 괴로울 때마다 수 산나는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나는 별로 할 것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주께서 맡기 신 내 자녀들을 성실하게 기르겠습니다. 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 을 심고 진리의 말씀을 가르치겠습니다. 이 아이들 중에서 이 세계 를 혼드는 사람이 나올 수도 있지 않겠습니까 하나님, 내가 네 자 녀들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위해 사는 거룩한 삶의 영향을 끼치기 를 원합니다.' 이 부인이 누구입니까 바로 요한 웨슬레, 찰스 웨슬레의 어머 니 수산나 웨슬레였습니다. 이 부인의 자녀들은 위대한 전도자들 이었을뿐 아니라 영국을 도덕적인 파탄에서부터 구출하여 엉국사 회의 혁명을 가져온 위대한 지도자가 될 수 있었습니다. 우리가 3천명을 회개시키는 베드로가 될 수는 없어도 그 베드로 를 주님 앞으로 인도한 사람인 안드레는 될 수 있지 않습니까 우리는 이웃에게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습니까 아브람이란 이름을 아브라함으로 바꾸신 하나님은 그의 아내의 이름도 바꾸셨습니다. 창세기 17장 15. 13절에 이런 말씀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네 아내 사래는 이름을 사 래라 하지 말고 그 이름을 사라라 하라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 로 네게 아들을 낳아 주게 하며 내가 그에게 복을 주어 그로 열국 의 어미가 되게 하리니 민족의 열왕이 그에게서 나리라' 아브라함이 열국의 아버지라면 그 아내 사라는 열국의 어머니입니다. 아브라함과 사라의 영향은 그 가족에게만 머물러 있는 젓이 아니라 유대 민족을 뛰어 넘어서 세계의 모든 민족들에게 영향을 끼칠 것이며, 따라서 그들은 열국의 부모가 될 것이라고 약속하셨 습니다. 이 약속은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오늘 유대인과 아무런 상관이 없는 우리도 아브라함의 신앙을 기억하면서 교훈을 받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 우리의 삶에는 뜻이 있습니다. 이 세상에 태어나서 그저 먹고 입고 십고 살다가 갈 것인가, 아니면 이웃에게 어떤 구체적인 영향을 남기면서 살아갈 것인가 하는 것이 오늘 우리에게 던져진 질문입니다. '내가 나의 뜻을 이루겠다' 아브라함에게 전능하신 하나님을 나타내신 다음에 '네 속에 나의 뜻을 이루며 너로 하여금 이에게 영향을 끼치는 나의 .사람 이 되게 하겠다' 이것이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3. 하나님의 세번째 약속이 무엇입니까 오늘 주신 말씀 7절에 '내가 네 하나님이 되겠다' 하셨습니다. 여러분, 전능하신 하나님이 '나의 하니님'이라고 할 때 문제는 달 라러니다. 하나님이 나의 하니님이라고 하실 수 있습니까 이 우 주를 창조하신 하나님이 나의 하나님이실 때 내 삶의 의미는 완전 히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전혀 소망이 보이지 않는 절망적인 상 황,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상황에 처하여 있는 아브라함에게 내가 너의 하나님이 되리라' 약속을 하시면서 하나님은 아브라함 에게 두가지 요구를 하셨습니다.
첫째 요구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 17장 1절에 '아브람의 9s세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 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요에서 행 하여 완전하라' 하셨습니다. 요한 빈은 이 말씀에서 자기 일생의 좌우명을 정했습니다. 칼 빈의 일생의 삶의 모토는 바로 '하나님 앞에서'입니다. 이것이 바른 신앙생활입니다. 신앙생활이 무엇입니까 하나님 앞에서 사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사무를 보십니까 하나님 앞에서 살림하 십니까 하나님 앞에서 장사하십니까 하나님 앞에서 일하십니 까 여러분, 하나닙이 나를 보십니다. 내 삶을 감찰하십니다. 요셉 은 어디서나 하나님 요에서 살았기 때문에 성공적이고 승리적인 삶을 살지 않았습니까 많은 사람 앞에 나타나는 모습을 가장 진실한 그 사람의 모습이 아닐 수 있습니다. 한 사람의 가장 진실된 모습은 아무도 없을 때. 다른 사람을 전혀 의식하지 않은 그 시간에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 을 말하는가에 나타납니다 그것이 진짜 그의 모습입니다. 우리의 삶이 하나님 앞에서가 아니면 우리의 삶은 바뀌지 않습니다. '너는 내 앞에서 행하라 그리고 완전하라' 하십니다. 왜 우리가 죄를 범합니까 아무도 나를 보지 않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보고 계십니다. 그 하나님이 조금도 지치지 않으시고 나를 감찰하십니다. 여기 '완전하라 하는 말은 우리가 보퉁 말하는 차원에서의 완전 이란 말이 아닙니다. 여기서는 결정적인 실수가 없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름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는 적어도 하나님의 빛을 가리는 결정적인 실수는 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할 것입니다.
두번째 요구는 '할례를 받으라 했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 창세기 17장 9 1o절 말씀에 '히니이 또 아브 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 로 지키라 너희 중 남자는 다 할례를 받으라 이것이 나와 너희와 너희 후손 사이에 지킬 내 언약이니라' 할례를 받으라는 요구입니다. 할례는 요샛말로 쉽게 하면 포경수술입니다. 이스라엘 사람에 게 할례는 하나닙의 백성의 표시였습니다.
그러므로 그 당시에 할 례는 이스라엘백성과 그 백성이 아닌 사람, 하나님의 사람과 하나님의 사람이 아닌 사람을 구별하는 기준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할례를 받으면 '너희들은 구별된 사람이야. 다르게 살 아야 해.'라는 요구가 뒤따른 것입니다. 할례를 받은 사람은 자기 변화의 의미를 확인하고 성결한 삶에 대한 도전을 계속하고 있었 던 것입니다. 그러나 육체의 할례를 받았다고 해서 끝난 것은 아넙니다. 하나님이 기대하시는 것은 사실 단순한 육체의 할례가 아니 라 마음의 할례였습니다. 신명기 S0장 6절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마음과 네 자손의 마음에 할례를 베푸사 너로 마음을 다하 며 성품을 얻게 하실 것이며' 했습니다. 여기서 강조한 할례가 무 엇입니까 육체의 할례가 아니라 마음의 할례입니다. 그래서 마음 올 다하고 성품을 다하여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며 살아가도록 요구하신 하니의 의도가 있으신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피로 구원받아 그리스도인이 되었다면 그리스도인 이라는 할례의 흔적이 나의 마음에, 나의 삶 속에 나타나야 하지 않겠습니까. 주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내 앞에서 행하라 그리고 그리스도의 표적을 지닌 삶을 살아라' 예배당에 와서 찬양하고 기도하고 예배드리는 우리와 가정에서, 직장에서. 사업의 터전에서, 이웃사람들과 실갱이를 하는 우리는 어떻게 다릅니까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그리고 내 백성임을 나타내라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지고 그분의 요구대로 살아 하나님의 자 녀답게 살아가는 우리 모두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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