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아브라함의 하나님 (창13:)

본문

아브라함이 애굽에서 나올 때 많은 은금과 재산을 가지고 나오게 된 것은 순전히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하나님의 간섭하심이 없었던들 아브라함은 얘굽에서 자기 아내와 헤어지는 슬픔을 맛보았거나 아니면 애굽 사람들의 환대에 의해 그곳에 주저앉아 땅의 향락을 누리며 살았을 것입니다. 그렇게 되었더라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향하신 선택과 구원의 계획은 실패하였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는 구원의 일은 중대한 위기를 만났던 것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의 은혜로우신 개입이 있었기에 아브라함은 위기 속에서 구출 되었고 오히려(화를 복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역사로) 애굽 왕 바로로 부터 많은 은금과 재산을 선물로 받았을 뿐만 아니라 애굽 왕의 통치 영역이 미치는 곳에서는 그 어디서나 아브라함은 참으로 두려운 이름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애굽 왕의 통치 영역 안에서 아브라함은 안전하게 보호를 받고 유유히 애굽을 떠나올 수 있었습니다. 이와 같은 일은 아브라함 자신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니라 순전한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진 일이었습니다.이렇게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는 것은 자신이 아담과 하신 언약(3:15)때문이기도 하였고(그것은 하나님 나라 건설에 목표가 있었으므로) 특별한 선택을 아브라함에게 집중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신(12:12;복의 근원) 것을 이루시려는 하나님의 신실하심 때문이었습니다. 우리의 생애에도 아브라함과 같은 위기의 순간은 항상 찾아옵니다.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거룩한 백성으로 부르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나라를 이루시는 도구로(일군, 자녀) 삼으시고 하나님의 역사진행에 부합하도록 우리를 항상 이끌어 가고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무지몽매하여(아직 깨우침 받지 못한 연고로) 하나님의 역사진행의 뜻을 파악하지 못하고 범죄한 인생들과 같이 행하다가 하나님 나라의 완성에 이르는 길목을 가로막아 서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대한 중대한 반역이고 훼방입니다. 그 때마다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세세한 부분에까지 간섭하시고 일을 바꾸어서 하나님의 영광에로 이르도록 주장하십니다. 때마다 일마다 우리는 패역하고 하나님의 권위에 대하여 반발하고 내 뜻과 내 주장을 세우는데 그래도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다시 돌아설 길을 마련하시고 제자리로 돌아오기를 촉구하시며(징계도 하시며) 바르고 합당한 길을 알도록 깨우쳐 주십니다.
Ⅱ.이제 아브라함은 애굽에서 나와 남방
1)으로 올라 갔습니다. 아브라함은 한곳에 정착하지를 못하고 떠돌아 다니는 떠돌이였습니다. 계속해서 길을 떠나 벧엘에 이르렀습니다. 그리고 이전에 장막을 치고 단을 쌓은 곳에 이르렀습니다(12:8). 그리고 그곳에서 하나님께 참되고도 순수한 예배를 드렸습니다. 당시 아브라함이 살던 땅에는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불경된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예배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므로 다른 불신자들과 항상 구별된 표를 나타내 보이며 살았습니다. 사실은 이것도 그렇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불신자들 가운데서 신자인 것을 드러내며 산다는 것은 상당한 용기와 믿음이 없이는 할 수 없는 것입니다.
Ⅲ.아브라함이 애굽에서 나올 때 조카 롯도 함께 나왔는데 그도 역시 많은 재산을 얻어가지고 나왔습니다.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나올 때 데리고 온 단 하나의 골육친척 입니다.
그런데 이 두(숙질간) 사람 사이에 불화의 싹이 트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지닌 많은 재산 때문이었습니다. 그들의 주산업은 목축인데 여기에는 풍부한 초장과 쉴 수 있는 그늘과 물(오아시스)이 확보되어야 했습니다.
그런데 그들의 육축이 풍부하므로(포화상태) 그들이 거할 곳이 부족하게 되었습니다. 더구나 그곳에는 가나안 사람과 브리스 사람들도 살고 있었기 때문에 땅은 더욱 비좁았습니다. 이제 짐승들을 기르는 일에 종종 마찰이 일어나고 있었습니다. 아브라함의 가축의 목자와 롯의 가축의 목자가 서로 다투는 일이 빈번하게 되었습니다. 아브라함과 롯 사이의 분쟁은 슬픈 일이었습니다. 전에 재산이 별로 많지 않았을 때는 이런 일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많은 재산을 유지하고 지키려다 보니까 불화가 생긴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분쟁이기도 합니다. 재산 때문에 싸우는 가족들이 세상에는 많이 있습니다. 한 가족인데도 재산이 많으면 그것을 차지하려는 욕심 때문에 싸우는 일이 많은 것입니다. “마른 떡 한 조각만 있고도 화목하는 것이 육선이 집에 가득하고 다투는 것보다 나으니라”(잠17:1)는 말씀이 우리에게 큰 교훈을 줍니다.
Ⅳ.아브라함과 롯의 분쟁은 아브라함 개인에게도 큰 위기였지만 하나님 나라의 건설에도 중대한 위기였습니다. 그것은 사탄이 그들의 부요함 가운데 심은 욕심 때문이었습니다. 여기에 대처하는 아브라함의 경건한 행동이 어떠했는지를 살펴봅시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을 불러 말했습니다. “우리는 한 형제간이지 않냐 친척간에 싸울 수야 없지 않냐 자, 봐라! 얼마나 넓은 땅이 우리 앞에 펼쳐져 있는지를! 이제 너는 좋은 곳을 네 마음껏 선택하라. 그대로 해주마” 그러자 롯이 요단 들을 바라보니 소알까지 온 땅이 기름지고 풍부한 것을 보았습니다. 롯이 그 땅을 보니 여호와의 동산 같고 애굽 땅과 같았습니다. 얼마나 기름진 땅이었으면 그렇게 표현했겠습니까 롯은 그렇게 좋은 땅을 차지하고 떠나갔습니다. 떠나가는 롯을 바라보면서 아브라함은 착잡한 마음을 금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머나먼 타향에서 단 하나 함께 있던 골육친척을 떠나보내는 아브라함의 마음이 편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어쨌든 아브라함은 조카 롯에게 매우 너그러운 행동으로 모범을 보였습니다. 어른으로서 믿음의 사람으로서 도량을 보였습니다. 좋은 땅을 조카에게 선택하도록 하고 자신은 가나안에 더하였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서로 상반된 두 행동을 봅니다. 결과적으로 말하자면 아브라함은 영적인 선택을 했고 롯은 육적인 선택을 했다는 것입니다. 이 땅의 것에 소망을 둔 사람 롯은 물질의 풍부한 때문에 삼촌 아브라함의 하나님을 향한 경건함을 보지 못하고 오히려 물질의 풍요를 위하여 죄악된 사람들이 모여 사는 것도 개의치 않고(13절) 소돔과 고모라 땅으로 나아갔습니다. 성경은 소돔 사람들이 악하여 여호와 앞에 큰 죄인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 큰 죄인들 곁으로 가서 사는 것도 개의치 않고 그저 육신의 안락만을 추구하는 롯의 선택은 어쩌면 우리 자신들의 모습인지도 모릅니다. 하늘에 소망을 두지 않고 육에 소망을 두면 영의 눈은 자꾸 어두워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하나님을 향한 경건성을 망각하면 불신자들과 함께 같은 범죄를 하게 됩니다. 경제적으로 조금 더 나은 이득을 추구하기 위하여 믿음의 길을 포기하는 어리석은 사람들이 종종 있습니다. 잠시 잠간 남을 속여서 자기의 이득을 챙기는 것이 그 당시에는 좋게 보일지 모르지만 지내놓고 보면 그때나 지금이나 사는 형편은 마찬가지인데 그렇게 아둥바둥 손에 쥐어볼려고 애썼는가 싶어서 후회할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생활에서 선택의 기로에 설 때가 많습니다. 아브라함의 선택과 롯의 선택 어느쪽을 택하시겠습니까
Ⅴ.여기서 이제 우리는 아브라함 개인에게서 눈을 돌려 하나님 편에로 가 봅시다.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선택하시고 그를 통하여 세상 구속을 이루실려고 작정하셨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에게 임하는 모든 위험들을 제거하시고 아브라함을 보호하셨습니다. 애굽에서의 아브라함의 성숙하지 못한 믿음으로 행한 부족한 행위 때문에 큰 위기를 만났을 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목표하심을 이루시기 위하여 아브라함의 행사에 간섭하셔서 위기를 호기로 반전(反轉)시키셨습니다. 그리고 많은 재산을 그에게 허락하시고 당시 시대상황에 부합하도록(재산이 없이는 도무지 생명을 부지하기가 어려운 상황) 하여 그의 생명을 보존하셨습니다. 또한 조카 롯과의 불화로 부터 건져내시고 아브라함으로 하여금 하늘에 소망을 두게 하시고 참된 경건으로 조카에게 너그럽게 대할 수 있게 하셨습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이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이 의자할 만한 모든 것을 거둬가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고향을 떠나면서 데려온 마지막 혈육마저 떠나가게 하시므로 아브라함이 전적으로 하나님 만을 의존하도록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구원은 인간의 어떠한 노력이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 나타내 보이셨습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모든 것(생명과 재산 등)을 하나님께 의존해야만 했습니다. 그렇게 만드실려고 하나님의 훈련시키심이 아브라함에게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하신 하나님께서 우리가 하나님 나라의 거룩한 백성으로 설 수 있도록 하실려고 계속적인 훈련을 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믿음의 장성한 분량(주 예수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 까지 이르도록 연단을 받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의 어려운 고비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를 거룩한 백성 만드실려고 연단하시는구나” 하고서 기쁨으로 시련들을 극복해야 할 것입니다. 어떤 때는 우리의 잘못된 생각 때문에 큰 시련을 만날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은혜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잘못된 길에서 돌이켜 회개하고 돌아올 것을 기다리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위기를 바꾸시고 하나님을 향한 참된 경건에 이르도록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생명이 하나님께 온전히 의존되어 있음을 알게하시는 것입니다. 우리 피조물은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의존되어 있어야 진정한 생명의 풍성함을 누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피조물의 특색입니다.
반복된 언약
 
1'롯은 아브라함과 헤어지는 일에 쾌히 동의 하고서 눈에 좋은대로 나아갔습니다. 아브라함은 조카 롯과 헤어지면서 너무도 마음이 쓰리고 아팠습니다. 이제 인생에 의지할 무엇 하나 남지 않았습니다. 아브라함과 사래만이 광야를 유리하며 방랑의 길을 걸어야만 했습니다. 깊은 고독이 그들을 사로잡았을 것입니다. 이러한 시기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인생의 의지할 만한 모든 것을 끊어내시고 하나님 만을 의지하도록 하시려고 아브라함에게 그와 같은 시련을 주신 것입니다. 그런 연후에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새로운 용기를 북돋아 주십니다. 인간은 연약한지라 조금만 괴로움을 당해도 쉽게 낙망하고 맙니다. 그런 인간의 연약성을 아시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실망하지 않도록 그리하여 하나님 만을 온전히 신뢰할 수 있도록 하시려고 새로운 용기를 주시는 것입니다.

2'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말씀은 전혀 새로운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이미 주셨던 약속의 말씀을 다시 반복하시는 것 뿐이었습니다. 인간은 잘 잊어버리는 존재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인데도 늘 기억하고 있어야만 할 말씀인데도 잘 잊어버리고 맙니다. 그런 인간의 연약성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재차 언약을 주셔서 아브라함이 용기를 잃지 않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나아갈 수 있게 하셨습니다. 세상에서 믿음의 순례길을 가는 모든 성도들에게 하나님께서는 계속된 약속의 말씀을 주시고 새 힘을 주셔서 용기있게 세상을 살아가도록 하십니다. 우리는 세상의 다른 어떤 것에서 힘을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복된 약속의 말씀을 믿으므로 힘을 얻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인간의 연약성으로 힘을 상실할 때마다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나아가도록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우리들이 약속의 말씀을 신뢰하지 못하고 연약해서 넘어질 때마다 우리가 돌아가서 위로와 힘을 얻을 곳은 신실하신 하나님의 말씀 뿐입니다. 세상의 참된 소망은 변함이 없고 다함이 없는 하나님의 신실하신 말씀 뿐입니다.

3'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은 자손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물론 그것은 육신의 자손을 잇는 것이기도 하지만 하나님 나라의 구원된 백성으로서의 영적인 자손의 번성도 내포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나 아직 아브라함의 형편은 그렇게 밝은 것만은 아니었습니다. 아직도 아브라함에게는 아들이 없었고 그 땅에서 정착도 하지 못한 상태였습니다. 아무것도 소망할 것이 없는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약속하시고 그 약속을 믿고 나아가라고 하셨습니다. 그와 같은 약속 만을 붙들고 나아가는 이것은 바로 믿음이었습니다. 그래서 히브리서에서도 말하기를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11:1)이라고 한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무것도 없는 상황에서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믿고 나아갈 수 밖에 없었습니다. 이것은 그에게 믿음의 행동이 되었고 결국 믿음의 조상이라 칭함을 받게 되었습니다.

4'아브라함에게 약속된 후손은 단순하게 아브라함의 자식만이 아니라 온 땅을 구속할 구세주에 대한 약속이었습니다. 이 약속은 아담에게서 시작하여(창3:15) 셋을 통해서 그리고 노아를 통하여, 계속해서 셈의 후손을 통하여, 에벨을 통하여 이어져 왔고 이제 이 약속이 아브라함에게로 연결된 것입니다. 이 약속은 후에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성취될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으로 부터 받은 계시를 통하여 이와 같이 세상 구속주가 자기의 몸을 통해서 난 씨로부터 이루어질 것을 믿었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하나님으로 부터 말씀을 받을 때 크게 기뻐하였던 것입니다. 단순히 자기 아들 하나 얻는 것 때문에 기뻐한 것이 아니라(물론 그 기쁨도 말할 수 없이 컸겠지만) 세상 구속주를 인하여 더욱 크게 기뻐한 것입니다.

5'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복된 약속의 말씀을 받고 새로운 기쁨으로 자기에게 주어진 길을 갈 수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헤브론에 있는 마므레 상수리 나무 숲에 장막을 쳤습니다. 이곳은 후에 아브라함의 가족들이 안장되는 묘지가 된 곳이기도 합니다. 아브라함은 그곳에서 자기 신앙의 행위를 계속 나타냅니다. 그곳에 단을 쌓고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렸습니다. 이방인들은 우상을 숭배하였지만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섬겼습니다. 이와 같은 아브라함의 행동에는 그의 마음 속에 항상 하나님을 섬기는 마음의 제단이 있었음을 암시해 줍니다. 그러나 이런, 마음 속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정신이 겉으로 나타날 때 더욱 영광이 된다는 것을 말해줍니다.우리 믿음의 사람들도 우리 안에 와 계셔서 항상 경배와 찬송을 받으시기를 원하시는(성령님의 내주하심) 하나님께 참된 경배를 바쳐드리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6'롯은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에 대하여 소홀히 생각하여 떠나갔습니다.
그러므로 약속된 기업은 아브라함의 후손을 통해 이루어졌고 롯은 거기서 제외되었습니다. 일체의 인간의 개입은 제거되었고 하나님 홀로 구원을 위하여 일하셨습니다.
그러므로 구원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값 없는 선물입니다. 우리의 감사와 찬송의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가 아브라함의 순례행진에 동참하는 자들 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영적인 아브라함의 후손들 입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으로 우리도 믿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가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아브라함에게 약속했던 믿음의 백성들이 온 땅에 편만하게 성취되어 갑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781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