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신 하나님 (창15:1-11)
본문
하나님은 쉬지 않고 우리를 도와주시고 지켜 주십니다. 그래서 성경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시 121:4절에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자는 졸지도 아니하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 이런 하나님께서 구약 성경 창세기에 보면 이스라엘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과 함께 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약정을 맺으시면서 까지 아브라함과 함께 하시고 우리들과 함께 하십니다. 본문 말씀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서 하나님께서 무엇 때문에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셔서 약속하셨는가를 살펴봅시다. 이 말씀을 통하여 우리들은 과연 어떠한 하나님을 믿고 섬길 것인가를 살펴보려고 합니다.
1.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아브라함의 오해(1-4절) 창세기 12:1절에서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명령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말씀하신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은 가나안 이었습니다. 지금 아브라함이 서 있는 곳이 하란 입니다. 그 하란에서 가나안까지는 무려 1600㎞나 되는 거리입니다. 서울서 부산까지 무려 3배 반 정도나 되는 거리를 걸어서 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아브라함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려고 그를 불렀고 아브라함을 인도 해 주셨습니다. 12:5절에 보면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밟고 있는 아브라함에게 그 땅을 그 자손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했습니다.(12:7). 아브라함은 이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나안 땅이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 흉년을 피해 애굽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곳 애굽 사람이 아브라함의 아내의 아리따움을 보고 그를 취하기 위하여 아브라함을 죽일까 봐 아브라함은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지켜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체험했다. 그 이후 15장 1절에서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셨습니다. 1절에 보면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고 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말씀에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나는 자식을 낳을 수 없는데 자꾸 “네 자손”에게 이 땅을 주시겠다고 하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두려워 말라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방패가 되어 주시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어떻게 오해 했느냐면 자신은 이제자식을 낳을 수 없기 때문에 자기 집에 있는 종이 자기 집의 상속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3절). 그러나 하나님은 그 종이 아브라함의 집에 상속자가 될 수 없고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4절)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네자손”(12:7)이라고 했고 “네 몸에서 날 자”라고 분명히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당장 자신의 현실을 보고있는 것입니다. 어떤 현실인가 자식을 낳을 수 없다는 현실 입니다. 여기 아브라함의 문제는 오늘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현실만 보고 쉽게 판단하여 버리고 결정지워 버리는 성급함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으로 주실 현실을 바라보는 영안이 열려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오해하면 안됩니다. 믿지 못해 불신하면 안됩니다. 믿음으로 나가야 한다. 사업을 하든 직장 생활을 하든 “안되고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못합니다. 그러나 믿음에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주안에서 할 수 있다는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심니다. 마가복음 9:23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2. 아브라함과 맺은 약속을 재 확인시켜주신하나님(5-7절)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오해하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해 주신 약속을 재확인시켜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하여 이루시고자 하신 그 뜻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끝까지 참으시고 우리들을 설득시키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자꾸 그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서 벗어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밖으로 끌고 나가십니다. 그러면서 하신 말씀이 5절에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셀 수 없는 하늘의 별을 가리키시면서 마치 네 자손이 이같이 많을 것을 약속해 주십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6, 7절에서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로라.”고 확신을 심어 주십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어보면 언제나 피부로 느낄 정도로 우리들에게 다가온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들과 늘 함께 해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약속의 말씀을 확인해 주는 확인의 연속 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등을 보십시요. 하나님께서 언제나 함께 해 주신다는 약속은 물론 그 약속을 믿을 수 있도록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모세에게 애굽에 내려가서 “내 백성”을 구출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그러나 모세는 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함께 해 주시겠다고 하시면서 기적들을 통하여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구약의 모든 역사가 다 이렇게 우리들과 함께 해 주신다는 하나님의 확인의 역사였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이런 약속은 유효합니다. 하나님께 등을 돌리지 않는 한 하나님은 우리들과 함께 해 주실 것입니다. 불순종에는 징계가 임합니다. 그러나 순종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3. 아브라함과 맺은 약속을 보증하신 하나님(6-11절) 구체적으로 언약을 통해서 어떠한 하나님을 우리들에게 소개하고 있는지를 봅시다. 8절에 보면 아브람은 자신에게 나타난 하나님께 약속의 징표를 보여 달라고 합니다. 이런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약속을 이행할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나서 그 같은 약속이 틀림없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므로 보증하고 있습니다. 이 언약식을 보면 먼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삼년된 암소와 삼년된 암염소, 삼년된 숫양, 그리고 산비둘기 집비둘기 새끼를 취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대로 이들을 취하여 그 중간을 쪼개어 마주 보게 놓습니다. 짐승을 쪼개어 놓고 계약의 당사자가 그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갑니다. 지나가면서 우리 둘 중에 어느 누구라도 너와 내가 맺은 이 언약을 파기할 때는 이 짐승이 잔인하게 찢기운 것처럼 될 것이라는 의식이었습니다. 이 같은 의식은 당시 고대 근동 지방에서 널리 사용된 계약체결식 이었습니다. 본문에 보면 쪼갠 짐승 사이로 계약의 두 당사자인 하나님과 아브라함이 지나가야 하는데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횃불만 지나갑니다.(17절).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스스로 저주를 자청하시면서 언약을 맺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식이 보여주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이라는 것이 자신의 희생을 담보로 하여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희생된 구원의 사건입니다. 우리들의 죄를 위해서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으신 것 입니다. 마 27:46절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했던 것입니다. 바울께서는 이 사건을 갈 3:13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 위에 교회가 세워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우리들에게 나타났던 것입니다. 우리들이 무엇인가 남다르기 때문에 우리들을 구원해 주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만이 우리들의 살길입니다.
4. 말씀에로의 초청 오늘 본문 말씀은 언약의 하나님을 보여 주십니다. 본문 말씀을 모세로 하여금 기록하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는 이같은 언약을 체결하는 장면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무엇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언약을 체결하는 방식을 통하여 나타내어 보여주고자 하신 하나님의 계시가 어디에 있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언약이란 한마디로 “나는 너희들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들은 나의 백성이다”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줍니다. 따라서 언약을 통해서 우리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알게 합니다.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 입니다. 왕과 그의 백성의 관계 입니다. 우리는 그 분의 백성이기 때문에 경배를 드려야 하고 그 분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분은 우리들의 하나님 여호와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께 충성하고 복종할 때 우리들에게 복이 임합니다. 그렇게 하지 아니할 때 징계가 임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언약을 맺은 이유 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꼭 확인해야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먼저 택한 자기 백성들에게 찾아와 주셔서 관계를 맺어 주셨습니다. 우리 인간이 먼저 하나님을 찾았기 때문에 그 정성이 갸륵해서 우리들을 만나 주신 것은 결코 아닙니다. 우리들은 거룩하신 하나님 근처에도 갈 수 없는 존재 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모두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용납해 주셔서 우리들을 만나 주셨습니다. 죄를 짓고 숨어 있는 아담에게 아담아 아담아라고 부르시며 먼저 찾아와 주시는 자비로운 하나님이 오늘 본문에서도 변함없이 아브람에게 찾아와 주셔서 언약과 약속을 맺으셨습니다. 죄와 그 죄로 인하여 고통 가운데 있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가 찾아와 주셨습니다. 사업의 실패와 쓰라린 고통 가운데 있는 우리들 곁에 주님이 찾아와 주셔서 평화를 주셨습니다. 이런 주님을 발견한 사도 바울은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딤후 4:16-17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저희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 나이 많은 바울의 생애 말년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곁을 다 떠나가 버렸습니다. 그러나 떠나버린 그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강건케 하심으로 힘있게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그때 우리 하나님께서 바울을 인도하시고 보호해 주셨습니다. 이런 보호하심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1.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아브라함의 오해(1-4절) 창세기 12:1절에서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는 명령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아브라함에게 나타나 말씀하신 것 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주신 땅은 가나안 이었습니다. 지금 아브라함이 서 있는 곳이 하란 입니다. 그 하란에서 가나안까지는 무려 1600㎞나 되는 거리입니다. 서울서 부산까지 무려 3배 반 정도나 되는 거리를 걸어서 갔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아브라함을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려고 그를 불렀고 아브라함을 인도 해 주셨습니다. 12:5절에 보면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가나안 땅을 밟고 있는 아브라함에게 그 땅을 그 자손에게 주시겠다고 약속했습니다.(12:7). 아브라함은 이 약속을 믿었습니다.
그런데 그 가나안 땅이 흉년이 들었습니다. 그 흉년을 피해 애굽으로 갔습니다.
그런데 그곳 애굽 사람이 아브라함의 아내의 아리따움을 보고 그를 취하기 위하여 아브라함을 죽일까 봐 아브라함은 자기 아내를 누이라고 속였습니다. 그러나 그곳에서도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을 지켜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보호하심을 체험했다. 그 이후 15장 1절에서도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전능의 하나님으로 나타나셨습니다. 1절에 보면 “이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이상 중에 아브람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아브람아 두려워 말라 나는 너의 방패요 너의 지극히 큰 상급이니라.”고 했습니다. 이런 하나님의 말씀에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나는 자식을 낳을 수 없는데 자꾸 “네 자손”에게 이 땅을 주시겠다고 하는가 그러나 하나님은 두려워 말라고 합니다. 여호와께서 방패가 되어 주시겠다고 합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어떻게 오해 했느냐면 자신은 이제자식을 낳을 수 없기 때문에 자기 집에 있는 종이 자기 집의 상속자가 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3절). 그러나 하나님은 그 종이 아브라함의 집에 상속자가 될 수 없고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4절)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분명히 “네자손”(12:7)이라고 했고 “네 몸에서 날 자”라고 분명히 하셨습니다. 그러나 아브라함은 당장 자신의 현실을 보고있는 것입니다. 어떤 현실인가 자식을 낳을 수 없다는 현실 입니다. 여기 아브라함의 문제는 오늘 우리에게도 있습니다. 현실만 보고 쉽게 판단하여 버리고 결정지워 버리는 성급함이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약속으로 주실 현실을 바라보는 영안이 열려 있어야 합니다.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오해하면 안됩니다. 믿지 못해 불신하면 안됩니다. 믿음으로 나가야 한다. 사업을 하든 직장 생활을 하든 “안되고 못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여전히 못합니다. 그러나 믿음에 사람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주안에서 할 수 있다는 신앙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심니다. 마가복음 9:23절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2. 아브라함과 맺은 약속을 재 확인시켜주신하나님(5-7절)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오해하자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해 주신 약속을 재확인시켜 주십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하여 이루시고자 하신 그 뜻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의도가 숨어 있습니다. 끝까지 참으시고 우리들을 설득시키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우리들은 자꾸 그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에서 벗어나려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밖으로 끌고 나가십니다. 그러면서 하신 말씀이 5절에 기록되어있습니다. “하늘을 우러러 뭇별을 셀 수 있나 보라 또 그에게 이르시되 네 자손이 이와 같으리라.” 셀 수 없는 하늘의 별을 가리키시면서 마치 네 자손이 이같이 많을 것을 약속해 주십니다. 이 때 하나님께서 6, 7절에서 “아브람이 여호와를 믿으니 여호와께서 이를 그의 의로 여기시고 또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이 땅을 네게 주어 업을 삼게 하려고 너를 갈대아 우르에서 이끌어 낸 여호와로라.”고 확신을 심어 주십니다. 우리가 성경을 읽어보면 언제나 피부로 느낄 정도로 우리들에게 다가온 말씀은 하나님께서 우리들과 늘 함께 해 주시겠다는 약속의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와 같은 약속의 말씀을 확인해 주는 확인의 연속 입니다. 아브라함, 이삭, 야곱, 요셉, 모세 등을 보십시요. 하나님께서 언제나 함께 해 주신다는 약속은 물론 그 약속을 믿을 수 있도록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모세에게 애굽에 내려가서 “내 백성”을 구출하라는 명령을 내립니다. 그러나 모세는 할 수 없다고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함께 해 주시겠다고 하시면서 기적들을 통하여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구약의 모든 역사가 다 이렇게 우리들과 함께 해 주신다는 하나님의 확인의 역사였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에게도 이런 약속은 유효합니다. 하나님께 등을 돌리지 않는 한 하나님은 우리들과 함께 해 주실 것입니다. 불순종에는 징계가 임합니다. 그러나 순종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실 것입니다.
3. 아브라함과 맺은 약속을 보증하신 하나님(6-11절) 구체적으로 언약을 통해서 어떠한 하나님을 우리들에게 소개하고 있는지를 봅시다. 8절에 보면 아브람은 자신에게 나타난 하나님께 약속의 징표를 보여 달라고 합니다. 이런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약속을 이행할 것을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나서 그 같은 약속이 틀림없이 이루어진다는 사실을 아브라함과 언약을 맺으시므로 보증하고 있습니다. 이 언약식을 보면 먼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삼년된 암소와 삼년된 암염소, 삼년된 숫양, 그리고 산비둘기 집비둘기 새끼를 취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대로 이들을 취하여 그 중간을 쪼개어 마주 보게 놓습니다. 짐승을 쪼개어 놓고 계약의 당사자가 그 쪼갠 고기 사이로 지나갑니다. 지나가면서 우리 둘 중에 어느 누구라도 너와 내가 맺은 이 언약을 파기할 때는 이 짐승이 잔인하게 찢기운 것처럼 될 것이라는 의식이었습니다. 이 같은 의식은 당시 고대 근동 지방에서 널리 사용된 계약체결식 이었습니다. 본문에 보면 쪼갠 짐승 사이로 계약의 두 당사자인 하나님과 아브라함이 지나가야 하는데 하나님의 임재의 상징인 횃불만 지나갑니다.(17절).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이름을 걸고 스스로 저주를 자청하시면서 언약을 맺고 있습니다. 이러한 의식이 보여주고 있는 것은 하나님의 언약이라는 것이 자신의 희생을 담보로 하여 이루어진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이 바로 신약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서 희생된 구원의 사건입니다. 우리들의 죄를 위해서 하나님의 독생자이신 예수님은 하나님의 저주를 받으신 것 입니다. 마 27:46절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질러 가라사대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는 곧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했던 것입니다. 바울께서는 이 사건을 갈 3:13에서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저주를 받은바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 하였음이라.”고 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의 공로 위에 교회가 세워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가 예수 그리스도의 희생으로 우리들에게 나타났던 것입니다. 우리들이 무엇인가 남다르기 때문에 우리들을 구원해 주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만이 우리들의 살길입니다.
4. 말씀에로의 초청 오늘 본문 말씀은 언약의 하나님을 보여 주십니다. 본문 말씀을 모세로 하여금 기록하게 하신 하나님의 섭리는 이같은 언약을 체결하는 장면을 통해서 우리들에게 무엇인가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과 언약을 체결하는 방식을 통하여 나타내어 보여주고자 하신 하나님의 계시가 어디에 있는지를 확인해야 합니다. 언약이란 한마디로 “나는 너희들의 하나님이 되고 너희들은 나의 백성이다”라는 사실을 확인시켜 줍니다. 따라서 언약을 통해서 우리들은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알게 합니다.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 입니다. 왕과 그의 백성의 관계 입니다. 우리는 그 분의 백성이기 때문에 경배를 드려야 하고 그 분에게 순종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그 분은 우리들의 하나님 여호와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분께 충성하고 복종할 때 우리들에게 복이 임합니다. 그렇게 하지 아니할 때 징계가 임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언약을 맺은 이유 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꼭 확인해야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먼저 택한 자기 백성들에게 찾아와 주셔서 관계를 맺어 주셨습니다. 우리 인간이 먼저 하나님을 찾았기 때문에 그 정성이 갸륵해서 우리들을 만나 주신 것은 결코 아닙니다. 우리들은 거룩하신 하나님 근처에도 갈 수 없는 존재 입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은 모두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들의 죄를 용서해 주시고 용납해 주셔서 우리들을 만나 주셨습니다. 죄를 짓고 숨어 있는 아담에게 아담아 아담아라고 부르시며 먼저 찾아와 주시는 자비로운 하나님이 오늘 본문에서도 변함없이 아브람에게 찾아와 주셔서 언약과 약속을 맺으셨습니다. 죄와 그 죄로 인하여 고통 가운데 있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예수 그리스도가 찾아와 주셨습니다. 사업의 실패와 쓰라린 고통 가운데 있는 우리들 곁에 주님이 찾아와 주셔서 평화를 주셨습니다. 이런 주님을 발견한 사도 바울은 이런 고백을 했습니다. 딤후 4:16-17 “내가 처음 변명할 때에 나와 함께한 자가 하나도 없고 다 나를 버렸으나 저희에게 허물을 돌리지 않기를 원하노라 주께서 내 곁에 서서 나를 강건케 하심은 나로 말미암아 전도의 말씀이 온전히 전파되어 이방인으로 듣게 하려 하심이니 내가 사자의 입에서 건지웠느니라.” 나이 많은 바울의 생애 말년에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곁을 다 떠나가 버렸습니다. 그러나 떠나버린 그 사람들을 원망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의 강건케 하심으로 힘있게 복음을 증거했습니다. 그때 우리 하나님께서 바울을 인도하시고 보호해 주셨습니다. 이런 보호하심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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