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삶 (창1:26-31)
본문
오늘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는 책 가운데 “오체 불만족”이라는 책이 있습니다. 이 책은 일본의 23세된 청년 “오도다케 히로타다”라는 젊은이가 쓴 책입니다. 이 청년은 발도 없고 팔도 없고 몸통만 있는 중증 불구자로 태어났습니다. 그런 사람을 “선천성 사지 절단성 불구자”라고 부릅니다. 얼마나 불행한 청년입니까 다리 하나 없는 것도 아니고, 팔 하나 없는 것이 아닙니다. 팔 다리는 하나도 없고 몸통만 있습니다. 사람들은 이 청년을 참 불행한 사람일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이 청년은 불구자인데도 불구하고 참 만족스럽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한창 외모를 생각하고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고 결혼을 생각해야 할 나이인데, 외모는 고사하고 팔도 없고 다리도 없이 몸통만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을 비판하고 부모를 원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지금 누구보다도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청년이 쓴 자서전이 벌써 300만 부나 팔려나갔다고 합니다. 이 청년은 그런 환경인데도 신체가 건강한 사람과 똑같은 과정을 거쳐서 지금 와세다대학에 재학 중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은 어떻게 태어났느냐 보나 어떻게 살아가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나는 신체적으로 불만족이지만 그러나 인생은 대만족이다.” 이 청년은 오늘 건강한 사람들을 참으로 부끄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정말 세상을 비관하고 자신을 비관할 사람은 행복해 하며 살고, 정작 세상을 행복하게 살아가야 할 건강한 사람들은 세상을 기관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을 비관하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모두 육신이 건강한 사람들이고, 얼마든지 뛰어다니며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런 사람들이 문제입니다. 그렇게 보면 행복의 기준은 건강도 아니고 부함도 아니고 좋은 환경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건강한 삶이 참 중요합니다. 몸이 건강하다고 반드시 건강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또 몸은 건강한데 정신적인 장애자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또 돈은 많은데 경제적인 장애자들도 참 많습니다. 문제는 정신입니다. 사람은 정신이 건강해야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건강한 정신이 사람으로 하여금 건강한 삶을 살게 합니다. 건강한 삶을 위한 자세 본문에서는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건강한 삶인가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은 미완성 상태였습니다. 완전하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은 모든 것이 완벽한데 갖추어진 낙원으로 이 세상을 만드신 것이 아니라 미완성 상태로 여지를 남겨두신 것입니다. 그 세상을 인간에게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고 가꾸고 다스리고 정복하고 관리하라”고 하셨습니다. 완전한 세상을 만들어 주시며 “너희는 아무 일도 하지 말고 편히 살아가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생육하고 가꾸고 다스리고 관리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 속에는 이 세상을 아름답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몇 가지 정신이 들어 있습니다.
1. 열심히 일하며 살라. 열심히 일하고 가꾸고 관리하고 살아가는 삶, 여기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열심히 땀흘리며 일하는 모습이 가장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이 일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요즘 실직해서 할 일 없는 분들이나 은퇴한 분들은 사람이 할 일 없이 산다는 것이 얼마나 고욕스러운 일인가를 실감할 것입니다. 그래서 톨스토이는 “지옥이란 할 일이 없는 곳”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이 일한다는 것은 이렇게 소중한 생활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열심히 일하며 살아가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일하는 사람은 새벽에 일찍 일어납니다. 아마 우리 나라 사람처럼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일터로 나가는 민족도 없을 것입니다. 어느 외국인이 새벽에 남대문 시장을 둘러보고 소감을 피력하기를 “한국은 소망이 있는 나라다. 더 이상 부리런할 수가 없다”라고 했습니다. 새벽 일찍부터 일터로 나가는 그 인생이 얼마나 활기가 있습니까 삶에 목적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람에게는 사명감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이기도 합니다. 이런 삶이 의미가 있고 건강한 삶이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음식을 만들어 파는 사람은 “많은 사람들이 내가 만든 음식을 먹으러 온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얼마나 기쁜 일이겠습니까 이것이 사명감입니다. 이런 사명감을 가지고 살아가면 일하되 기쁨으로 하게 됩니다. 내가 만든 음식을 먹어줘서 기쁘고 돈 벌어서 기쁘고 일할 수 있다는 것이 기쁜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을 보면 이런 사명감이 없습니다. 아무렇게 만들어서 돈만 벌려고 합니다. 언젠가 제가 “만일 제가 붕어빵을 만들어 판다면 최고로 좋은 재료를 넣어서 정성껏 만들어 팔겠다”고 했더니 어떤 분이 말씀하시기를 “목사님이 붕어빵을 그렇게 만들어 팔면 남는 것이 없어서 한 달이면 망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왜 망합니까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주방장이 주인에게 꾸지람을 들었습니다. 화가 난 주방장은 이 집 망하라고 음식에 재료도 더 많이 넣고 고기도 더 많이씩 넣어주었다고 합니다. 그랬으면 망해야 하는데 손님이 더 많이 몰려와서 부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삶에는 하나의 사명감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늘이 복을 주고 사람들이 돕고 삶에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그 삶에 진지한 면에 없어져 버립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만들되 완성된 세상을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미와선 상태의 세상을 만들어서 인간에게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고 세상을 가꾸고 다스리고 관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부족한 부분은 너희가 수고함으로 채우고 이루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살아가야 마음도 정신도 건강하고 몸도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오늘 이렇게 살아가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문제가 많은 것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지를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이 주시는 교훈입니다.
2. 이끌어가며 살라.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해서 세상을 가꾸고 관리하며 살라.” 이 말씀은 “이끌어가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삶은 누가 다 만들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삶은 우리들 스스로 만들어 가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부모가 다 만들어준 집에 들어가 살면 당장은 편안해서 좋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삶에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기쁨과 행복은 스스로 만들고 가꾸고 성취해가며 살아가는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때로 “기쁘다. 행복하다. 보람있다”는 말을 하는데 그것은 스스로 만들고 가꾸고 성취하는데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완성이라는 것이 참 좋은 것입니다. 음식도 준비하고 차릴 때 즐거운 것이지 다 먹고 나면 재미가 없습니다. 산도 힘들게 오를 때가 재미있습니다. 내려올 때는 오히려 쉬울 것 같지만 재미는 반감됩니다. 사람들은 정상정복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땀흘리며 수고할 때 거기서 보람을 느끼고 만족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여행도 준비할 때가 마음이 설레고 즐거운 것이지 갔따 온 다음에는 피곤하기만 합니다. 어찌 인생인들 다르겠습니까 부모가 아이들에게 다 만들어진 장난감을 사다주는 것은 별로 효과가 없습니다. 장남감의 재료를 사다 주고 스스로 장난감을 만들어 놀라고 하는 것이 훨씬 유익합니다. 그것을 가지고 수고해서 만들어 가지고 노는 것을 아이들은 휠씬 재미있어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완성품 세상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넓은 들, 산, 땅, 바다를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시키고 정복하고 다스리고 관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스스로 행복을 일구어 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인류 역사를 보면 하나씩 만들어가며 살아가는 역사입니다. 사람들은 그동안 시행착오를 일으켜가며 하나씩 하나씩 생활의 이기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세상에 만들어진 물건들 어느 것 하나도 그냥 우연히 쉽게 만들어진 것이 없습니다. 물건 하나를 만드는 과정을 보면 숱한 어려움, 수고, 때로는 실패도 겪으면서 여러 번 만들었다 부수었다 해서 하나의 물건을 완성시킨 것입니다. 그러는 동안 인류문명이 발전되어 왔습니다. 하나도 그냥 쉽게 만들어진 것이 없습니다. 베이브 루드라는 야구선수는 생애 통산 714번의 홈런을 쳤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홈런을 위해서 스트라이크 아웃을
1,330번이나 당했다고 합니다. 꿀벌이 한 숟가락의 꿀을 모으는데 4,200개의 꽃을 찾아 돌아다녀야 얻어진다고 합니다. 요셉 하이든이라는 음악가는 평생 800개의 작품을 만들었는데 800개의 작품 중에서 작품다운 작품은 66세에 가서 작곡한 “천지창조” 하나라고 했습니다. 그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800개의 습작을 만든 것입니다. 미켈란젤로라는 작가는 “최후의 만찬”이라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8년 동안
2,000번의 스케치를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세상을 쉽게 살려고 하는 것은 죄입니다. 세상을 쉽게 살면서 큰 것을 가지려고 하니 그것이 죄가 아닙니까 쉽게 변칙적으로 번 돈을 가지고 고급 옷가게나 기웃거리고, 누가 대신 옷 값 내주지 않나 바라고, 그러니까 서민들이 분노하는 것입니다. 남들 모두 죽도록 일하며 열심히 살아가는데 그렇게 살면 죄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람들에게 다 만들어주시지 않고 스스로 만들어 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다 만들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형통만이 복이 아닙니다. 인생을 편안하고 쉽게 살아가는 것만이 복이 아닙니다. 때로는 내가 죽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 때가 있고, 내가 고생하고 아픈 것이 하나님의 뜻을 때가 있습니다. 어떤 때는 내가 실패하고 벽에 부딪혀 좌절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개념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6,25때 공산당에게 한 목사님 가족이 붙잡혔습니다. 구덩이에 넣어 생매장 시켜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회유하기를 “지금까지 선한 것이 다 거짓이다. 하나님은 없다”고 말하면 살려주겠다고 했습니다. 자녀들은 옆에서 무섭다고 떨며 울부짖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목사님은 갈등과 먼빈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자기가 죽는 것은 할 수 있는데 곁에 있는 아이들을 차마 죽일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망설이고 있는데 옆에 있던 아내가 옆구리를 쿡 찌릅니다. 그러면서 대담하게 나섰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구차하게 살고 싶지 않습니다.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습니다.” 라고 말하더니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들아, 조금만 참아라. 오늘밤에는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식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서 그 가족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찬송을 부르면서 생매장 당해 죽어갔습니다. 우리 생각 같아서는 그때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나서 살려주셨어야 합니다. 그것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기적이고 형통입니다. 영화를 보면 그렇지 않습니까 사람이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숨어있던 구원자가 기적같이 나타나서 구원해줍니다. 또 누가 악당들 앞에서 목숨이 위태로워질 때면 어디선가 슈퍼맨이 날아와 구해줍니다. 그래서 그 광경을 본 관람객들이 박수를 치지 않습니까 지금까지 우리는 그럴 때 살려주시는 것이 기적이고 형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매양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형통만이 하나님의 축복이아니고 기적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그 목사님의 가정이, 아이들을 포함한 일가족 모두가 구덩이에서 생매장 당해서 죽었습니다. 그렇게 찬송을 부르며 장렬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본 많은 사람들은 그 목사님 가족이 기적같아 살아 나온 것보다 더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나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데도 하나님이 만사를 다 해결해 주시는 것, 그것이 형통이거나 축복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세상의 신앙인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 했고, 더 수고하라고 했고, 더 땀 흘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해서 세상을 가꾸고 관리하고 다스리라”고 했습니다.
3. 하나님과 함께 살라 26절을 보면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 하고 사람을 만드셨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우리와 함께 살아갈 인간을 만들자“ 라는 말입니다. 즉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야 할 존재“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이것이 결론입니다. 이것이 모든 것의 결론입니다. 이것이 가장 이상적인 삶의형태입니다. 오늘 사람들이 돈이면 다 되는 줄 알고 별 장난을 다하고 있습니다. 돈이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되는 줄 알고 너무 돈에 집착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디있느냐”고 까지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은 교만의 극치입니다. 여러분, 정말 돈이면 다 입니까 진정 돈으로 모든 것을 살 수 있다는 말입니까 물론 돈으로 침대는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돈으로 깊고 편안한 잠도 살 수 있습니까 요즘 그 비싸다는 이태리제 상아 침대도 돈만 있으면 살 수 있지만 거기에 눕는다고 반드시 숙면이 보장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돈이 있으면 빵은 살 수 있지만 돈으로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입맛까지 살 수는 없는 것입니다. 또 돈으로 좋은 집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돈으로 행복한 가정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돈으로 행복이라는 가치는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돈으로 번쩍번쩍 빛나는 황금십자가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목에 걸고 다닐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 돈으로 예수까지 살 수가 있습니까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좀 깊이 숙고하면서 근본적인 문제들을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정말 하나님 없이 살아갈 수 있는지, 돈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지를 말입니다. 물론 돈으로많은 것을 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돈은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돈으로 인간의 가장 근본적이고 궁극적인 문제들을 해결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인간의 행복은 ‘하나님과 함께’ 할 때 주어집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며 살아갈 때 진정한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고, 행복과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여기서 건강한 삶이 주어집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이 주시는 말씀이고 교훈입니다.
그런데 이 청년은 불구자인데도 불구하고 참 만족스럽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지금 한창 외모를 생각하고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고 결혼을 생각해야 할 나이인데, 외모는 고사하고 팔도 없고 다리도 없이 몸통만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자신의 삶을 비판하고 부모를 원망할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지금 누구보다도 만족스러운 삶을 살아가고 있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이 청년이 쓴 자서전이 벌써 300만 부나 팔려나갔다고 합니다. 이 청년은 그런 환경인데도 신체가 건강한 사람과 똑같은 과정을 거쳐서 지금 와세다대학에 재학 중입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사람은 어떻게 태어났느냐 보나 어떻게 살아가느냐 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나는 신체적으로 불만족이지만 그러나 인생은 대만족이다.” 이 청년은 오늘 건강한 사람들을 참으로 부끄럽게 만들고 있습니다. 정말 세상을 비관하고 자신을 비관할 사람은 행복해 하며 살고, 정작 세상을 행복하게 살아가야 할 건강한 사람들은 세상을 기관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을 비관하는 사람들을 보십시오. 모두 육신이 건강한 사람들이고, 얼마든지 뛰어다니며 살아갈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런 사람들이 문제입니다. 그렇게 보면 행복의 기준은 건강도 아니고 부함도 아니고 좋은 환경도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 데는 건강한 삶이 참 중요합니다. 몸이 건강하다고 반드시 건강한 삶을 사는 것은 아닙니다. 또 몸은 건강한데 정신적인 장애자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또 돈은 많은데 경제적인 장애자들도 참 많습니다. 문제는 정신입니다. 사람은 정신이 건강해야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건강한 정신이 사람으로 하여금 건강한 삶을 살게 합니다. 건강한 삶을 위한 자세 본문에서는 우리에게 어떻게 살아가는 것이 건강한 삶인가에 대해 말씀하고 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창조하신 세상은 미완성 상태였습니다. 완전하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은 모든 것이 완벽한데 갖추어진 낙원으로 이 세상을 만드신 것이 아니라 미완성 상태로 여지를 남겨두신 것입니다. 그 세상을 인간에게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고 가꾸고 다스리고 정복하고 관리하라”고 하셨습니다. 완전한 세상을 만들어 주시며 “너희는 아무 일도 하지 말고 편히 살아가라”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생육하고 가꾸고 다스리고 관리하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 속에는 이 세상을 아름답고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는 몇 가지 정신이 들어 있습니다.
1. 열심히 일하며 살라. 열심히 일하고 가꾸고 관리하고 살아가는 삶, 여기에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이 열심히 땀흘리며 일하는 모습이 가장 아름다운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이 일할 수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요즘 실직해서 할 일 없는 분들이나 은퇴한 분들은 사람이 할 일 없이 산다는 것이 얼마나 고욕스러운 일인가를 실감할 것입니다. 그래서 톨스토이는 “지옥이란 할 일이 없는 곳”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람이 일한다는 것은 이렇게 소중한 생활입니다. 그래서 사람은 열심히 일하며 살아가야 할 사명이 있습니다. 일하는 사람은 새벽에 일찍 일어납니다. 아마 우리 나라 사람처럼 새벽에 일찍 일어나서 일터로 나가는 민족도 없을 것입니다. 어느 외국인이 새벽에 남대문 시장을 둘러보고 소감을 피력하기를 “한국은 소망이 있는 나라다. 더 이상 부리런할 수가 없다”라고 했습니다. 새벽 일찍부터 일터로 나가는 그 인생이 얼마나 활기가 있습니까 삶에 목적이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람에게는 사명감이 있어야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이기도 합니다. 이런 삶이 의미가 있고 건강한 삶이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음식을 만들어 파는 사람은 “많은 사람들이 내가 만든 음식을 먹으러 온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렇다면 이것이 얼마나 기쁜 일이겠습니까 이것이 사명감입니다. 이런 사명감을 가지고 살아가면 일하되 기쁨으로 하게 됩니다. 내가 만든 음식을 먹어줘서 기쁘고 돈 벌어서 기쁘고 일할 수 있다는 것이 기쁜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을 보면 이런 사명감이 없습니다. 아무렇게 만들어서 돈만 벌려고 합니다. 언젠가 제가 “만일 제가 붕어빵을 만들어 판다면 최고로 좋은 재료를 넣어서 정성껏 만들어 팔겠다”고 했더니 어떤 분이 말씀하시기를 “목사님이 붕어빵을 그렇게 만들어 팔면 남는 것이 없어서 한 달이면 망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왜 망합니까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떤 주방장이 주인에게 꾸지람을 들었습니다. 화가 난 주방장은 이 집 망하라고 음식에 재료도 더 많이 넣고 고기도 더 많이씩 넣어주었다고 합니다. 그랬으면 망해야 하는데 손님이 더 많이 몰려와서 부자가 되었다고 합니다. 삶에는 하나의 사명감이 있어야 합니다. 그러면 하늘이 복을 주고 사람들이 돕고 삶에 기쁨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없으면 그 삶에 진지한 면에 없어져 버립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만들되 완성된 세상을 만드신 것이 아닙니다. 미와선 상태의 세상을 만들어서 인간에게 주시며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고 세상을 가꾸고 다스리고 관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부족한 부분은 너희가 수고함으로 채우고 이루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살아가야 마음도 정신도 건강하고 몸도 건강해지는 것입니다. 오늘 이렇게 살아가면 문제가 없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문제가 많은 것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아가지를 않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이 주시는 교훈입니다.
2. 이끌어가며 살라.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해서 세상을 가꾸고 관리하며 살라.” 이 말씀은 “이끌어가며 살라”는 말씀입니다. 삶은 누가 다 만들어주는 것이 아닙니다. 삶은 우리들 스스로 만들어 가며 살아가는 것입니다. 부모가 다 만들어준 집에 들어가 살면 당장은 편안해서 좋을 것입니다.
그런데 그 삶에 무슨 재미가 있겠습니까 기쁨과 행복은 스스로 만들고 가꾸고 성취해가며 살아가는데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들이 때로 “기쁘다. 행복하다. 보람있다”는 말을 하는데 그것은 스스로 만들고 가꾸고 성취하는데서 얻어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미완성이라는 것이 참 좋은 것입니다. 음식도 준비하고 차릴 때 즐거운 것이지 다 먹고 나면 재미가 없습니다. 산도 힘들게 오를 때가 재미있습니다. 내려올 때는 오히려 쉬울 것 같지만 재미는 반감됩니다. 사람들은 정상정복이라는 목표를 가지고 땀흘리며 수고할 때 거기서 보람을 느끼고 만족을 얻게 되는 것입니다. 여행도 준비할 때가 마음이 설레고 즐거운 것이지 갔따 온 다음에는 피곤하기만 합니다. 어찌 인생인들 다르겠습니까 부모가 아이들에게 다 만들어진 장난감을 사다주는 것은 별로 효과가 없습니다. 장남감의 재료를 사다 주고 스스로 장난감을 만들어 놀라고 하는 것이 훨씬 유익합니다. 그것을 가지고 수고해서 만들어 가지고 노는 것을 아이들은 휠씬 재미있어 합니다. 하나님은 인간에게 완성품 세상을 주신 것이 아닙니다. 넓은 들, 산, 땅, 바다를 주시며 “생육하고 번성시키고 정복하고 다스리고 관리하라”고 하셨습니다. 그 말씀은 “스스로 행복을 일구어 살라”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인류 역사를 보면 하나씩 만들어가며 살아가는 역사입니다. 사람들은 그동안 시행착오를 일으켜가며 하나씩 하나씩 생활의 이기들을 만들어 냈습니다. 세상에 만들어진 물건들 어느 것 하나도 그냥 우연히 쉽게 만들어진 것이 없습니다. 물건 하나를 만드는 과정을 보면 숱한 어려움, 수고, 때로는 실패도 겪으면서 여러 번 만들었다 부수었다 해서 하나의 물건을 완성시킨 것입니다. 그러는 동안 인류문명이 발전되어 왔습니다. 하나도 그냥 쉽게 만들어진 것이 없습니다. 베이브 루드라는 야구선수는 생애 통산 714번의 홈런을 쳤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많은 홈런을 위해서 스트라이크 아웃을
1,330번이나 당했다고 합니다. 꿀벌이 한 숟가락의 꿀을 모으는데 4,200개의 꽃을 찾아 돌아다녀야 얻어진다고 합니다. 요셉 하이든이라는 음악가는 평생 800개의 작품을 만들었는데 800개의 작품 중에서 작품다운 작품은 66세에 가서 작곡한 “천지창조” 하나라고 했습니다. 그 하나를 만들기 위해서 800개의 습작을 만든 것입니다. 미켈란젤로라는 작가는 “최후의 만찬”이라는 작품을 만들기 위해서 8년 동안
2,000번의 스케치를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세상을 쉽게 살려고 하는 것은 죄입니다. 세상을 쉽게 살면서 큰 것을 가지려고 하니 그것이 죄가 아닙니까 쉽게 변칙적으로 번 돈을 가지고 고급 옷가게나 기웃거리고, 누가 대신 옷 값 내주지 않나 바라고, 그러니까 서민들이 분노하는 것입니다. 남들 모두 죽도록 일하며 열심히 살아가는데 그렇게 살면 죄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가람들에게 다 만들어주시지 않고 스스로 만들어 살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축복은 다 만들어 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형통만이 복이 아닙니다. 인생을 편안하고 쉽게 살아가는 것만이 복이 아닙니다. 때로는 내가 죽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 때가 있고, 내가 고생하고 아픈 것이 하나님의 뜻을 때가 있습니다. 어떤 때는 내가 실패하고 벽에 부딪혀 좌절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 때가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의 개념을 다시 한 번 생각해 볼 필요가 있습니다.
6,25때 공산당에게 한 목사님 가족이 붙잡혔습니다. 구덩이에 넣어 생매장 시켜 죽이려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회유하기를 “지금까지 선한 것이 다 거짓이다. 하나님은 없다”고 말하면 살려주겠다고 했습니다. 자녀들은 옆에서 무섭다고 떨며 울부짖었습니다. 그 모습을 본 목사님은 갈등과 먼빈에 휩싸이게 되었습니다. 자기가 죽는 것은 할 수 있는데 곁에 있는 아이들을 차마 죽일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망설이고 있는데 옆에 있던 아내가 옆구리를 쿡 찌릅니다. 그러면서 대담하게 나섰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구차하게 살고 싶지 않습니다. 차라리 죽음을 택하겠습니다.” 라고 말하더니 아이들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얘들아, 조금만 참아라. 오늘밤에는 천국에서 주님과 함께 식사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나서 그 가족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찬송을 부르면서 생매장 당해 죽어갔습니다. 우리 생각 같아서는 그때 하나님의 기적이 나타나서 살려주셨어야 합니다. 그것이 사람들이 생각하는 기적이고 형통입니다. 영화를 보면 그렇지 않습니까 사람이 위기에 처해 있을 때 숨어있던 구원자가 기적같이 나타나서 구원해줍니다. 또 누가 악당들 앞에서 목숨이 위태로워질 때면 어디선가 슈퍼맨이 날아와 구해줍니다. 그래서 그 광경을 본 관람객들이 박수를 치지 않습니까 지금까지 우리는 그럴 때 살려주시는 것이 기적이고 형통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매양 그렇게 하지 않으십니다. 형통만이 하나님의 축복이아니고 기적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그 목사님의 가정이, 아이들을 포함한 일가족 모두가 구덩이에서 생매장 당해서 죽었습니다. 그렇게 찬송을 부르며 장렬하게 죽어가는 모습을 본 많은 사람들은 그 목사님 가족이 기적같아 살아 나온 것보다 더 큰 감동을 받았다고 합니다. 나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는데도 하나님이 만사를 다 해결해 주시는 것, 그것이 형통이거나 축복은 아닙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은 세상의 신앙인들에게 더 열심히 일하라고 했고, 더 수고하라고 했고, 더 땀 흘리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해서 세상을 가꾸고 관리하고 다스리라”고 했습니다.
3. 하나님과 함께 살라 26절을 보면 ‘하나님이 가라사대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자“ 하고 사람을 만드셨다고 했습니다. 이 말씀은 ”우리가 우리와 함께 살아갈 인간을 만들자“ 라는 말입니다. 즉 ”인간은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야 할 존재“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과 함께.“ 이것이 결론입니다. 이것이 모든 것의 결론입니다. 이것이 가장 이상적인 삶의형태입니다. 오늘 사람들이 돈이면 다 되는 줄 알고 별 장난을 다하고 있습니다. 돈이면 모든 것이 다 해결되는 줄 알고 너무 돈에 집착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하나님이 어디있느냐”고 까지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이것은 교만의 극치입니다. 여러분, 정말 돈이면 다 입니까 진정 돈으로 모든 것을 살 수 있다는 말입니까 물론 돈으로 침대는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돈으로 깊고 편안한 잠도 살 수 있습니까 요즘 그 비싸다는 이태리제 상아 침대도 돈만 있으면 살 수 있지만 거기에 눕는다고 반드시 숙면이 보장된다고 말할 수는 없습니다. 돈이 있으면 빵은 살 수 있지만 돈으로 음식을 맛있게 먹을 수 있는 입맛까지 살 수는 없는 것입니다. 또 돈으로 좋은 집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돈으로 행복한 가정을 만들 수는 없습니다. 돈으로 행복이라는 가치는 살 수가 없는 것입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돈으로 번쩍번쩍 빛나는 황금십자가도 살 수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목에 걸고 다닐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고 그 돈으로 예수까지 살 수가 있습니까 어림도 없는 일입니다. 좀 깊이 숙고하면서 근본적인 문제들을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정말 하나님 없이 살아갈 수 있는지, 돈으로 모든 것을 할 수 있는지를 말입니다. 물론 돈으로많은 것을 할 수는 있을 것입니다. 인간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돈은 꼭 필요한 것입니다. 그러나 돈으로 인간의 가장 근본적이고 궁극적인 문제들을 해결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인간의 행복은 ‘하나님과 함께’ 할 때 주어집니다. 하나님과 함께 하며 살아갈 때 진정한 삶의 의미를 발견할 수 있고, 행복과 기쁨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또한 여기서 건강한 삶이 주어집니다. 이것이 오늘 본문이 주시는 말씀이고 교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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