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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조와 인생 (창1:1,사43:1-7,계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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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하늘 은하수 하얀 쪽배엔 계수나무 한 나무 토끼 한 마리 돛대도 아니 달고 삿대도 없이 가기도 잘도 간다 서쪽 나라로 어린 시절에 많이 불리던 동요였습니다. 보름달을 보면 달 표면에 보이는 그림은 흔히 토끼 가 방아를 찧는 모습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1969년 7월 20일 미국인 암스트롱과 올드린이 달에 첫발을 내디디면서 동요의 낭만도, 토끼그림에 대한 상상도 사라지게 하였습니다. 지구 의 유일한 자연위성인 달에 인간이 도착하던 날 온 지구는 감격하였습니다.
그런데 달은 지구 의 한 위성 일뿐입니다. 지구는 태양계(太陽系, solar system)의 9개 행성인 수성, 금성, 지구, 화성, 목성, 토성, 천왕성, 해왕성, 명왕성 가운데 하나이며, 태양계에는 9개의 행성 외에 그중 7개의 행성에 속해있는 약 50개의 위성, 그리고 약
3,000개의 소행성,
1,000개의 혜성, 유성과 운석, 그리고 옅은 구름을 이루고 있는 행성간 물질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여기에서 오늘날 학자들이 정의하는 태양계의 규모는 천문단위로 약 10만 AU라고 합니다.
그런데 1AU는 지구 궤도의 반지름과 같은 약 1억 4,960만Km이므로 태양계의 규모는 인간의 계산으로 상상하기 어 려운 규모입니다. 우주(宇宙, Cosmos)는 천문학적으로 관측되거나 가정되는 모든 천체와 현상 으로 이루어진 물리적 우주(universe)라고 정의하고 있습니다. 또한 우주에는 확실하게 알려진 태양계(太陽系)외에도 또 다른 행성계(行星係)가 많이 있다고 알려지고 있습니다. 어린 시절, 달에 인간이 아폴로 11호를 타고 도착했을 때, 토끼가 방아를 찧고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그곳이 인간이 갈 수 있는 가장 먼 곳으로 생각되었습니다. 사실 천문학자가 아닌 이상 우주에 대한 지식이 실제 생활에서 그리 중요하게 여겨지지는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 주의 규모에 대하여 지식이 있든 없든 실제 생활에서는 큰 문제가 될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창세기의 말씀이 먼 옛날의 이야기로 접어둘 수만은 없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무엇을 위해 시 작의 책인 창세기를 주셨을까요 창세기는 나에게 무엇을 교훈하고 있습니까 현대를 사는 인생들에게 창세기의 메시지는 무엇입니까 우주와 인생 오늘 우리에게 창세기의 말씀이 주어졌습니다. 창세기는 우리가 지금까지 가지고 있었던 우 주관(宇宙觀)에 대하여 대단한 도전을 주리라 여겨집니다. 더 나아가 현대 과학자들의 진화론 적 우주관에 대하여 논박할 수 있는 폭넓은 지식과 여호와 하나님의 창조에 대한 굳은 믿음을 갖게 할 것입니다. 사실 우주에 관하여 말하고있는 책이나 글을 읽어보면 보통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단어와 그 규모에서 무지함을 느끼곤 합니다. 또한 우주를 인생들이 완전히 이해한다는 것 자체가 불가능한 일이며,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세계를 안다는 것도 인생들이 가지고 있는 지식의 폭과 이해의 넓이에 따라 그 범위가 다를 수 있습니다. 오늘 창세기의 말씀은 현존하는 우주의 신비스럽고 거창한 모습들을 설명하거나 그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기 위해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현대의 천문학자들도 완전히 정복하지 못 한 분야입니다. 단지 우리는 하나님과 자연 만물을 포함한 인간과의 관계적 측면에서 창세기 의 말씀을 해석해 나갈 것입니다. 이러한 태도는 고대 히브리인들의 우주관이었습니다. 그들 은 지적이며 탐구적인 그리스인들과는 달리 다분히 종교적이며 직관적이었습니다. 고대 히브 리인들의 기본적인 우주관은 평평한 땅이 있고 그 위에는 궁창과 하늘이 있으며 땅 아래에는 깊은 심연이 형성되어 있다고 보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땅은 인간을 위시한 각종 생축들이 사는 곳이며, 궁창 위에는 하나님과 천상의 존재들이 거하고, 땅 아래 심연(음부)에는 죽은 영들이 들어간다고 믿었습니다. 궁창에 대한 그들의 생각은 궁창을 표현한 히브리어의 (라키아)라는 말을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라키아는 두둘겨 넓게 편 판 을 말합니다. 히 브리인들의 생각에는 궁창이 단단한 고체형 판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래야 궁창 위의 많은 물 을 받치고 있을 수 있으니까요. 히브리인들이 생각했던 궁창은 대기권의 하늘뿐만 아니라 가시권의 천계(天界)와 비가시권의 하늘까지도 포함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하늘은 3 층권의 하늘이 있는 것으로 믿었습니다. 그래서 제 1층은 땅위의 가장 가까운 위쪽인 대기권 의 하늘로, 새가 날고, 비, 바람, 이슬이 내려오는 곳으로 이해되었습니다(욥 38:29;시 147:8). 다음에 제 2층 천은 일월성신(日月星辰)이 붙어 있으며 그 위에는 거대한 양의 물이 저장되어 있다고 믿었습니다. 이것은 좀더 광대한 우주 공간으로서의 하늘을 의미하고 있습니다(욥 9:9; 시 33:6). 제 3층 천은 하나님과 천사들의 거처로서의 하늘을 가리켰습니다(시33:14;사 57:15). 창조와 현대인 성경의 우주관을 이해함에 있어서 우리가 먼저 명심해야 할 것은 성경에 나오는 우주에 관 한 표현들을 오늘날의 자연 과학적 개념으로서만 그 진위 여부를 단정적으로 판단하려 한다면 성경에 대한 바른 이해에 오히려 더 장애 요인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전에 우리는 성경에 기록 된 우주에 관한 기록들이 인간의 지식과 이해의 폭을 넘어서는 기록을 할 수 없었다는 것을 전제해야합니다.
더욱 중요한 것은 성경의 근본 목적은 우주에 관한 과학적 지식을 제공하는 천문학과 자연과학에 관련된 교과서가 아니라, 인간을 포함한 우주 만물의 존재 근거와 목적, 그리고 인생의 구원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기 위해 기록된 하나님의 신령한 계시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연 과학이 증거하고 있는 진화론적 논리에 대하여, 성경은 침묵하고 있지 않 습니다. 성경의 본문은 삼라만상(森羅萬象)의 창조와 존재 사실에 대하여 부분부분 설명하고 있습니다. 인생들에게 천지 창조에 대한 과학적 지식을 전달하려는 의도로 창세기가 기록되었 다면 그 장엄한 우주의 탄생을 좀더 실감나게 이해할 수 있었을텐데 하는 아쉬움이 있지만, 성경의 기록 목적에 벗어나지 않은 해석을 통해서도 우리는 충분히 창조의 사실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가 있습니다. 그리고 인간을 포함한 만물의 존재 근거와 목적, 인생을 향한 하나님 의 은혜인 구원계획과 성취를 이해하다보면 현대인이 가져야 할 우주관에 대하여 깊은 통찰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물들의 탄생 그 자체에도 의미가 있지만 그보다는 더 그 만물을 통한 하나님의 계획과 만물의 최고의 영장으로 만드신 인간과의 관계, 만물들의 창조를 통해 하나님은 인간에게 무엇을 허락하셨는가 라는 질문에 이해가 있어야합니다.
그것이 창세기 연구의 기본이 되어야합니다. 그리고 그것을 벗어나면 아무런 의미가 없습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인간들의 과학적 논리에 대하여 그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하기 위해 기록된 논문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창세기는 나와 가장 직접적으로 연관된 말씀입니다. 우주의 창조자 되시는 위대하신 하나님께서 현대를 사는 나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사랑하는 제자공동체 가족 여러분! 우주의 창조와 지금까지의 역사는 오늘을 사는 우리를 위해 시작되고 계획되었음을 믿으십시오. 바로 여러분들을 위해 만물의 창조가 있었고, 그 역 사는 유구한 세월 진행되었습니다. 그리고 오늘에 이르러 그 만물의 창조와 존재의 목적이 여러분 개인 개인을 통해 성취되었습니다. 곧 인생들을 향한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인 하나님의 은혜가 구체적으로 여러분의 인생가운데 성취된 것입니다. 그것은 곧 여러분의 구원입니다. 구원받은 여러분이 곧 하나님 창조의 목적이었습니다. 이제 하나님의 사랑을 보십시오. 여러분의 인생을 관여하시는 하나님의 경험하십시오. 그는 엘로힘 하나님이십니다. 창조주와 인생 성경은 먼저 절대 변할 수 없는 사실을 선언합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창 1:1).
천지 창조의 주체가 하나님이신데 그를 성경은 (Elohim, 엘로힘)이라고 말 하고 있습니다. (Elohim, 엘로힘)은 하나님으로서의 하나님을 말합니다. 신명기 10:17에 서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신의 신이시며… 라고 기록되어있습니다. (El)은 전능한 또는 강한 의 뜻을 가진 말로 두려워해야 할 강하고 능력 있는 자 , 경외해야 할 최고의 존재 란 의미입니다.이는 전능하신 하나님을 포함하여 신들을 말할 때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여호와 란 명칭이 언약을 지키시는 자 , 택한 백성을 구속하자 란 의미로 쓰였다면(출 6:3) 이 엘로 힘 이란 명칭은 성경에서 주로 하나님의 주권과 능력을 강조할 때 쓰였습니다(출 20:1; 신 6:4; 삼하 22:32). 또한 구약성경에서는 가장 많이 엘로힘으로 하나님의 이름이 표현되고 있으며, 그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천지(天地)를 지으신 것입니다. 창 1:1에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을 천지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문자적으로는 하늘과 땅 , 즉 지구를 지칭하고 있지만 지구를 포함한 은하계가 자리잡고 있는 전 우주를 가리킵니다. 다시말해 이것은 존재하는 모든 것을 포괄적으로 지칭하는 것으로 우주(unierse)와 같은 뜻입니다. 히브리어에서 우주(宇宙)를 나타내는 단어가 없기 때문에 이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창조는 태초에 시작되었습니다. 태초에(, 베레쉬트)라는 말을 70인 역에서는 요 1:1과 같이 영원부터 란 뜻을 지닌 엔 아르케 로 번역했으나 원래의 뜻은 하나님 이 천지 창조를 개시(開始)함으로써 시작된 역사적 시간의 출발점 을 가리킵니다. 이는 창세 기가 영원 전사건을 다루는 것이 아니라 우주 및 인류가 탄생하는 시점으로부터 시작되는 태 고사(太古史)에 관한 서술임을 암시하고 있는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공동 번역에서는 이 말 을 한 처음에 라고 번역하고 있는데 여기서 한 은 천지 창조의 단회성을 말하고, 처음 은 만 물의 출발점을 각각 강조하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창조가 신적인 완전한 창조라는 사실을 밝히는 단어가 또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창조하시니라 에서 창조(, 바라)입니다. 여기에 사용된 창조(, 바라)는 오직 하나님과 하나님의 활동을 묘사하는 데만 사용되는 용어입니다. 이것은 어떤 재료를 가지고 만드는 행 위가 아니라 무(無)에서 유(有)를 만들어 내는 행위를 말합니다(사 45:12). 또한 이 단어는 창 1:21에서는 생물에게 생명의 근원을 주시는 창조 행위를 가리킬 때 사용되었고, 창 1:27에서는 그전까지 없었던 영적 존재의 창조를 가리킬 때만 사용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이렇게 창 1:1에 선언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의 해설을 통해 하나님의 창조 사역을 의미와 그 기사의 정확성을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창조는 하나님의 자유로운 의지에 의한 단독사역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창조의 능력은 제한적이거나 부차적인 것이 아니라 무 에서 유에로의 창조인 새롭고 신비한 성격의 것입니다.
셋째, 창조주 하나님은 모든 피조물의 주인이며, 모든 것을 자신의 기쁘신 뜻을 따라 만드셨습니다(시 33:6-9, 렘 10:12).
넷째, 성경 기록이 비논리적이거나 비과학적이라는 주장을 일소시켜 줍니다. 그것은 창조 라는 개념조차 도 무에서 유에로의 창조와 기존물질을 변형하여 새롭게 제작하는 것과를 명확히 구분하고 있 을 정도로 성경은 합리적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우주 만물을 만드셨을까요 더구나 창조의 절정을 이룬 인간 창조 의 목적은 무엇일까요 이것은 우리 인생들에게 대단히 중요한 질문입니다. 만물의 존재이유 에 대하여 생각해 보셨습니까 분명한 것은 인간들이 살고 있는 지구를 비롯한 공간적 개념 의 우주와, 인간이 활용하고 있는 질적 개념의 우주의 물질들이 단지 인간의 욕구 성취와 그로 인한 만족을 위해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성경은 이에 대하여 정확한 견해를 밝히고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환상을 통해 하늘의 모습을 보았습니다(계 4:11). 이십 사 장로들이 보좌에 앉으 신 하나님을 찬양하는데 하나님께서 영광과 존귀와 능력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이유를 주께서 만물을 지으신지라 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지으신지라 에 해당하는 헬라어 (에크티사스)가 바로 히브리어 창조(, 바라)에 해당하는 동사로(창1:1) 무(無)에서 유(有)로 의 창조를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처럼 창조는 하나님의 모든 역사 가운데서 가장 기본적인 것 이며 모든 피조물들의 감사의 기초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물의 창조 목적을 이렇게 밝히고 있습니다. 만물이 주의 뜻대로 있었고 또 지으심을 받았나이다 하더라 여기서 주의 뜻대로 있었고는 하나님의 뜻을 위해 있었고 라는 말로 모든 만물이 하나님의 뜻을 위해 창조되었음을 말하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만물은 하나님의 뜻을 위해 존재하며, 창조되었습니다. 인간도 예외가 될 수 없습니다. 이사야 43장에서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이제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조성하신 자가 이제 말씀하시느니라…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내가 너를 보배롭고 존귀하게 여기고…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사 43:1,3,4,7)라고 말씀하시므로 인간 창조의 목적을 분명히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인간을 창조하셨습니다. 인생/ 하나님의 영광 오늘 여러분들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여러분이 이 땅에 존재하는 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영광(, 독사)이란 정확한 의견이나 평가를 제시하는 것 으로 내가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이 나에 대해 생각하는 것으로서의 대개 좋은 명망이나 평판을 의 미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생애가 곧 하나님의 영광이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소경을 보고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이 사람이 소경으로 난 것이 뉘 죄 로 인함이오니까 자기오니까 그 부모오니이까 (요 9:2) 그 질문에 대한 예수님의 대답은 이 사람이나 그 부모가 죄를 범한 것이 아니라 그에게서 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 이니라 (요 9:3)라는 것이었습니다. 그후 진흙을 눈에 바르고 예수의 명령대로 실로암 못에 가 서 눈을 씻고 눈을 뜨게 되었습니다(요 9:11). 그 소경이 곧 하나님의 영광이었습니다. 당시의 유대인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를 부인했지만 그는 하나님께로부터 오신 예수를 시인했습니다. 부모들 조차 유대인들의 강압적 행동에 두려워하여 자식이 눈을 뜬 기쁨을 숨기고 있지만 소 경이었던 그 자신은 위협적인 유대인들의 질문에 대하여 이렇게 대답하고 있습니다. 그가 죄 인인지 내가 알지 못하나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소경으로 있다가 지금은 보는 그것 이니이 다 (요 9:25). 여러분의 삶은 곧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타인으로부터의 좋은 평가,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대담한 고백, 그것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입니다. 그것을 통해 인생들은 우주 만물을 창조하시고 오늘도 살아 계신 하나님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소경이었던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은혜를 입고, 주변의 상황들로 인해 정확한 판단을 내릴 수는 없었지만 한 가지 아는 것은 내가 소경으로 있다가 지금은 보는 그것 이니 이다 라고 고백한 것처럼, 여러분의 변화된 삶을 증거 하십시오. 그것을 하나님께서는 기뻐하 십니다. 그것으로 여러분은 이 땅에 존재할 충분한 가치가 있으며, 하나님 창조의 목적이 실 현된 것입니다. 태초에 행하신 하나님의 창조 사역, 그것은 바로 오늘 우리를 위한 것이었으며, 우리의 존재 이유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입니다. 우주의 신비가 어떻고, 우주의 엄청난 규모가 어떻게 밝혀지든 그것은 우리의 삶에 있어 그리 중요한 부분이 될 수 없습니다. 우주 만물은 인간들 이 정확하게 이해하든 못하든 이미 존재하는 것이고, 그 존재의 근거와 목적이 하나님의 계획 하에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인간을 포함한 우주 만물의 창조가 곧 하나님의 인간 사랑에 초점이 맞추어져 있음을 감격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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