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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아 (창12:1-9)

본문

요사이 젊은 사람들의 의식 구조를 조사한 바에 의하면 97%가 “돈만 있으면 모든 것을 할 수 있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고 합니다. 이것은 참으로 위험한 생각입니다. 이 나라의 미래를 바라볼 때 우리의 마음을 어둡게 하는 조사 결과가 아닐 수 없습니다. 얼마나 많은 사고와 얼마나 많은 불행과 얼마나 많은 실수가 돈으로 인하여 일어납니까 결코 돈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살아가면서 우리는 돈의 중요함을 늘 경험하고 있습니다. 미국에 가보면 돈이 얼마나 귀한지를 정말 경험할 수 있습니다. 미국에는 돈 많은 사람들만 사는 마을이 따로 있답니다. LA에도, 뉴욕에도, 시카고에도, 샌프란시스코에도 가난한 사람은 함부로 들어갈 수조차 없는 마을이 따로 있습니다. 목사가 심방을 하려고 해도 사전에 알려야 됩니다. 몇 명이 간다는 연락이 되어야 승용차가 통과할 수 있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대학에 입학하려면 시험을 치르고 실력에 맞추어 실력대로 들어갑니다. 실력이 없으면 대학에 못 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미국은 그렇지 않습니다. 돈만 있으면 학교에서 요구하는 만큼 기부금을 내고 대학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우리 나라는 아직까지 그 정도는 아닌데 돈을 최고로 여긴다는 젊은 사람들의 의식이 정말 염려스럽습니다. 교인은 그렇게 생각하면 안됩니다. 그러면 올바른 교인이 될 수 없습니다. 우리는 돈이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에게는 귀한 것이 따로 있습니다. 우리의 모든 문제를 해결하시는 분은 하늘에 계십니다. 땅에 계시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에게 제일 귀한 것이 무엇입니까 특히 교인에게 제일 소중한 것이 무엇입니까 모든 것을 할 수 있게 하는 하나님의 부르심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대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부르실 때 아브라함에게는 아무런 소망이 없었습니다. 나이는 이미 일흔이 넘은 노인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자녀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 앞에 부름을 받은 그 순간부터 아브라함의 일생은 인류 역사에서 가장 축복받고 존경받는 귀한 삶이 된 것입니다. 우리를 부르신 분이 모든 것을 주장하십니다. 아브라함은 보잘것없는 인물이었지만 하나님 앞에 부름을 받은 다음 그의 이름이 만대에 창대케 되었습니다. 능력은 부르신 이에게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일생 동안 어딘가에 부름을 받아 살아갑니다.
일제 시대 때, 한국 사람 170만 명이 일본 징용에 부름을 받았다고 합니다. 전쟁에 부름을 받아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고 가치 없이 죽어갔습니까 아직까지도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러시아나 중국이나 일본에 머물러 있는 한국 사람들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16, 17살에 정신대에 부름을 받아서 만신창이가 되고 나중에 버림을 받은 노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면서 우리도 가슴이 미어지지 아니할 수가 없습니다. 사람은 다 누군가에 의해서 부름을 받아 살아가고 있습니다. 곳곳에서 우리를 불러주는 일들이 참 많습니다. 그러나 그 부름은 대체로 이기적입니다. 그 부름의 효과는 오래갈 수 없습니다. 우리 역사에서도 나라의 부름을 받아 높은 자리에 올라갔다가도 얼마되지 않아 곧 물러나야만 했던 분들이 얼마나 많았습니까 이 세상에서의 부름은 끝까지 아름답게 이어주지 못하는 삶이라는 것을 우리는 많이 보아왔습니다. 사람에게는 모든 것이 부름입니다. 결혼도 부름입니다. 정치도 부름입니다. 사업도 부름입니다. 학문도 부름입니다. 우리는 여러 가지 부름을 받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부름은 영원하지 못합니다. 아름답지 못합니다. 계속적으로 우리를 불러주지 못합니다. 부른 사람이나 부름을 받은 사람이나 다 삶의 허무함을 경험하면서 살아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하늘에서 부르시는 전능자의 부르심은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삶을 책임지시고 모든 것을 예비하시고 우리를 불러주십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롬11:29) 하나님의 은사와 부르심에는 후회하심이 없느니라” 하셨습니다. 복 있는 자가 누구입니까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부름을 받은 자입니다. 우리 인간은 하나님께로부터 왔습니다. 그래서 하늘에서 불러야만 우리에게 은혜와 축복이 있는 줄 믿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도 다 부름을 받았습니다. 부름받은 자가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야, 여호수아야, 이사야야, 예레미야야”하고 부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베드로야, 삭개오야”하고 부르셨습니다. 부름을 받지 않고는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습니다. 기독교는 부름받은 종교입니다.
교회란 어떤 곳입니까 교회는 헬라 어로 “에클레시아”라고 합니다. 에클레시아는 “부름을 받은 자의 무리”라는 뜻입니다. 부름을 받아야 교회에 옵니다. 하늘에서 불러야 나올 수 있는 것이지 안 부르면 못 나옵니다. 하늘에서 안 부른 분은 교회에 나와도 재미가 없습니다. 부름받은 자들이 모여서 불러주신 하나님 앞에 예배를 드리고 경배하는 곳이 교회입니다. 그러나 이 세상의 모든 종교는 부름을 받아 가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가 가고 싶어 가는 것입니다. 우상이 사람을 불렀다는 기록이 어디에 있습니까 전혀 없습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부르는 것입니다. 오늘날까지 저를 불러주셨고, 우리를 불러주셨고, 우리 선조들을 불러주신 줄 믿습니다. 하나님께 부름받은 사람은 모두 존귀한 자요 복된 자요, 좋은 것들을 모두 받아 누리는 지상 최고의 행복한 사람인 줄 믿습니다. 여호와께 부름을 받은 자는 복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부름을 받았습니다. 사무엘이 부름을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부르신 사람은 한 사람도 쭉정이로 만드시지 않고 알곡으로 만드시며, 존귀하게 하시는 줄 믿습니다. 우리는 자녀를 낳아도 다 잘 기를 수 없습니다. 다 잘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부모에게 이렇게 말하는 아이도 있습니다. “왜 나를 낳았어요” 이렇게 키우려면 왜 낳았어요“ 부모에게 불만을 갖고 있는 자녀가 참 많습니다. 그래서 반항적으로 아주 잘못된 길로 나아가는 아이들도 있고 심지어는 자살하는 아이들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부모는 어떤 목적을 가지고 자녀를 낳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를 낳기는 하지만 그들의 앞날을 좌우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마음은 잘 기르고 싶지만 마음대로 잘 안되는 일들이 많습니다. 사람의 복은 사람을 창조하신 능력의 하나님 앞으로 부름을 받아야 길이 열리는 것이지 사람을 의지하면 안됩니다. 사람의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모든 종교는 부름받는 종교가 아닙니다. 이 세상의 어떤 종교도 창시자가 사람입니다. 공자, 석가, 마호메트입니다. 모두 사람에게 찾아가는 것입니다. 부름받아서 가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부름을 받지 않으면 나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어떻게 우리를 부르십니까 질병을 통해서 부르시는 일이 많습니다. 이래도저래도 하나님의 음성을 듣지 못할 때는 질병을 통해서도 부르시는 것입니다. 질병을 통해서 “교회에 나가야 되겠구나”하는 감동이 옵니다. 그래서 발걸음이 교회로 향하게 되는 것입니다. 질병을 통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듣습니다. 하나님은 환난을 통해서도 부르십니다.
하나님 앞으로 오라는 것입니다. 사방으로 욱여싸인 환난을 통하여 모든 길이 막히면 위의 길을 찾아내게 됩니다. 모든 불빛이 꺼졌을 때 하나님의 빛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하늘의 별빛을 찾아내는 것입니다. 하늘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그래서 주님 앞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감옥에서 주님 앞으로 나오는 사람도 많습니다. 백범 김 구 선생은 감옥에서 예수를 믿기로 작정한 사람입니다. 김현희 씨도 죄책감으로 인한 고통 중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것입니다. 그가 살아서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그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할렐루야. 실패를 통해서도 부르십니다. 그러나 실패했다고 다 예수 믿는 것은 아닙니다. 실패했다고 다 하늘의 음성을 듣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한강에서 부르는 귀신의 음성을 듣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래서 그곳에서 자살하는 사람도 너무 많습니다. 나쁜 길로도 나갑니다. 그러나 택함받은 사람은 위의 음성을 듣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불러주심을 고마워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꿈을 통하여 하나님께 부름을 받습니다.
택시를 타고가다 운전기사한테 들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어느 날 꿈을 꾸는데 천국 간다는 버스가 한 대 서 있더랍니다. 꼭 타야 하는데 문은 닫혀 있고 뒤에는 지옥 가는 버스만 늘어서 있습니다. 애태우고 있는데 어떤 남자가 다가오더니 성경책을 주더라는 것입니다. 그것을 받으니까 버스 문이 열려서 올라탔다는 것입니다. 꿈을 통하여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그는 다음 주일날 교회에 나가게 되었답니다. 그렇습니다. 꿈을 통해서도 많은 분들이 돌아옵니다. 친구를 통해서도 돌아옵니다. 자녀를 통해서도 돌아옵니다. 어떤 분은 술에 취해 비틀거리면서 밤늦게 집으로 돌아왔는데 어린아이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또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그때 아버지 눈에서 눈물이 흘렀습니다. 그래 하나님을 떠난 삶은 무거운 짐을 지고 죄악 가운데 헤매는 삶이지, 너 따라 교회에 나가야겠구나 하고 깨닫게 되어 어린아이에게 이끌려 나온 분도 있습니다. 주님께서 우리를 부르십니다. 우리는 주님의 음성을 들으며 따라가야 합니다. 하늘의 음성을 들으며 따라가는 삶이 바로 기독교의 생명입니다. 김활란 박사는 처녀 때 하나님께서 불러주셨습니다. 그는 불러주신 그분을위해서 일생 동안 살았고 마지막 이 땅을 떠날 때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어떻게 부르십니까 부름받은 자의 삶이 끝날 때는 이 땅보다 더 좋고 거룩하고 영원한 하나님 나라에서 같이 살기 위해서 오라고 부르시는 것입니다. 이것을 “소천”이라고 합니다. 소천은 교인들을 하늘에서 불렀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사명으로 부르시고 마지막에 부르시는 것은 소천입니다. 위에서 또 부르시는 것입니다. “하늘 가는 밝은 길이 내 앞에 있으니 슬픈 일을 많이 보고 늘 고생하여도 하늘 영광 밝음이 어둔 그늘 헤치니 예수 공로 의지하여 항상 빛을 보도다.”(찬송가 545 장).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나를 부르신 그분과 동행하다가 또 부르시면 이 땅의 삶을 끝내고 아멘 하고 하나님 나라에 가는 것입니다. 그래서 김활란 박사는 돌아가시면서 “울지 마라. 주님께서 저곳에서 나를 부르신다. 내가 이 땅을 떠날 때는 찬송가를 불러라.”고 했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교인들은 누구든지 처음에 위로부터 음성을 듣고 불러주신 분을 의지하면서 이 세상을 살아야 합니다. 그러다가 이 땅을 떠날 때에도 하나님께서 불러주시면 하나님 나라에 가서 영원히 살아야 할 줄 믿습니다. 우리 인간은 하늘에 속해 있습니다. 하나님 없이 사는 사람은 마귀에게 부름을 받아서 마귀가 주는 죄와 괴로움과 불행 가운데 살다가 마지막에 마귀에게도 또 불려갑니다. 마귀가 부르기 때문에 안 믿는 사람은 죽음을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절대로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롬8:35)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 (롬8: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롬8: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수 없으리라 ” 우리는 하나님 나라로 가기 때문에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는 줄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왜 우리를 부르셨습니까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부르신 것은 복을 주시기 위해서라고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은 크게 네 가지로 나타납니다.
첫째, “너로 하여금 큰 민족을 이루겠다”는 것입니다. 자손의 복을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손이 없는데 하나님께서 자손의 복을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살아 있는 동안은 자녀들이 잘하는 것 같지만 죽은 뒤에 아무도 돌보지 않는 무덤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하나님 앞에 부름을 받지 아니하고 이 땅을 떠나면 축복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이 땅을 떠난 지 4천 년이 되었어도 그의 무덤은 막벨라굴에 아직도 보존되어 있습니다. 그의 자손들이 지금까지 온 세계에서 가장 축복받은 민족으로 사는 것을 볼 때에, 하나님 앞에 부름을 받아야 하나님 앞에 영원히 복을 받는 줄 믿습니다.
둘째, “네 이름을 창대케 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의 이름을 거룩하게 하시고, 아브라함의 이름을 높이시고, 아브라함의 이름을 창대케 하셨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불러주시므로 그의 이름이 온 땅위에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지금도 이 땅위에 살아가는 세계 인구의 70%가 아브라함의 영향을 받은 기독교, 카톨릭교도들입니다. 유대교도 아브라함의 자손입니다. 아랍에 있는 이슬람교도들도 자기들이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합니다. 아브라함의 이름이 창대케 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부름을 받는 자의 이름은 창대케 되는 줄 믿습니다. 흙에 새겨지는 것과 돌에 새겨지는 것이 다르듯이 여러분의 이름은 반석에 새겨져서 복될 줄 믿습니다.
셋째, “너를 복의 근원이 되게 하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부름을 받은 자는 복의 근원이 됩니다. 내가 축복을 받아야 남에게도 복을 주는 복된 삶이 될 줄 믿습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 앞에 부름을 받음으로 많은 사람들이 아브라함의 덕을 보았듯이 부름받은 사람의 주변에 있으면 덕을 봅니다. 그 사람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유익을 얻을 수 있는 것입니다.
넷째, “너를 축복하는 자에게는 내가 복을 내리고 저주하는 자에게는 저주를 내리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무슨 말씀입니까 내가 너를 평생 동안 보호하겠다는 말씀입니다. 사람은 누군가가 보호해 주어야 합니다. 우리는 자신을 보호해야 합니다. 운동으로 안됩니다. 잘먹는 것만으로도 안됩니다. 우리에게 닥치는 갖가지 문제 앞에 누군가 우리의 방패가 되어주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을 지켜주어야 합니다. 우리의 사업을 누군가 보호해 주어야 합니다. 곡식도 누군가가 잡초라도 뽑아주고 보살펴야 잘 자랄 수 있듯이 하나님의 자녀가 복되게 살아가는 길은 하나님의 보호를 받는 것입니다. 누군가 여러분의 직장을, 여러분의 권력을, 여러분의 삶과 가정을 보호해 주어야 하는데, 하나님께서 부름받은 여러분을 보호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누가 너를 사랑하면 나도 그를 사랑하고, 너를 지켜주면 나도 그를 지켜주고, 너를 도와주면 나도 그를 도울 것이다. 그렇지만 누가 너를 대적하면 내가 그를 대적하고, 너를 해치면 내가 그를 해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축복받기를 원하십니까 하나님 앞에 부름받은 자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부름받은 자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고향과 아비 집을 떠나서라도 불러주신 분을 향하여 따라가야 됩니다. 아브라함이 살던 갈대아 우르 지방을 고고학자들이 발굴해 냈는데 걸프 만에 있는 지금의 이라크 지역입니다. 하나님은 우상숭배가 많은 그곳으로부터 아브라함을 부르셔서 내가 너를 축복할 테니 너는 아비와 고향을 떠나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기독교는 떠나는 종교입니다. 죄악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그 자리에 머무르면 잘 믿을 수 없습니다.
옛사람에서 떠나야 합니다. 불의에서 떠나야 합니다. 악한 일에서 떠나야 합니다. 잘못된 곳에서 떠나야 합니다. 잘못된 습관, 옳지 못한 친구에게서 떠날 때 우리는 하나남께서 예비하신 축복과 은혜를 받을 줄 믿습니다. 우리를 불러주신 분이 위에 계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위를 향하여 귀를 기울이고, 위를 향하여 바라보고, 위를 향하여 우리의 입술을 사용해야 할 줄 믿습니다. 큰 인물이 되려면 부르신 분을 향하여, 하나님을 바라보면서 따라가야 합니다. 다른 것을 들으면 안됩니다. 신령한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골3:1)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엣 것을 찾으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골3:2) 위엣 것을 생각하고 땅엣 것을 생각지 말라 (골3:3) 이는 너희가 죽었고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취었음이니라 ”고 했습니다. 우리는 위로부터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의 소명은 위에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를 불러주신 그분을 바라보면서 나아가야 합니다. 그를 믿음으로 바라보면서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오늘날 위로부터 부름을 받았는데도 땅의 것을 바라보고, 땅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이야기를 듣고, 땅의 것을 말하다가 버림을 받는 일이 참 많습니다.
진돗개는 13살 정도가 되면 사람을 보고 짖어야 될 사람인지 안 짖어야 될 사람인지 잘 압니다. 함부로 부르짖지 않습니다. 참 신기합니다. 그래서 밤중에라도 그 개가 짖으면 주인이 쫓아 나온다고 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짖어야 할 일이 있어서 짖기 때문에 나와 봐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떤 개는 분별력이 없습니다. 아무때나 마구 짖어대는 것입니다. 개는 먹이를 주면서 5일만 함께 지내면 친해진다고 합니다. 주인의 뜻을 모르고 짖는 개는 주인의 사랑을 받지 못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부름을 받았으면 아무때나 짖으면 안됩니다. 아무 말이나 하면 안됩니다. 입은 그릇입니다. 그릇은 좋은 것을 담는 그릇이 있는가 하면 쓰레기를 담는 그릇도 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의 입은 여호와의 영광을 찬양하는 입이 되고 감사하는 입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그러면 여러분의 삶이 좋은 그릇이 될 줄 믿습니다. 이말 저말 함부로 하면 안됩니다. 부름을 받기는 받았는데 입을 잘못 사용하는 교인들은 복을 못 받습니다. 눈도 위를 바라보아야 합니다. 제가 늘 말씀드리지만 물을 건널 때는 물을 내려다보지 말고 위를 보고 건너야 합니다. 건너편에 한 가지 목표물을 정해 놓고 그것만 쳐다보면서 건너야 하는 것입니다.
어떤 분은 건널 때 자꾸 물을 내려다봅니다. 우리도 세상에서 살지만 세상을 보면 안됩니다. 세상은 물 흐르듯이 다 흘러갑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도 계속 흐릅니다. 그러니까 현대인들은 얼마나 머리가 복잡한지 모릅니다. 다 돕니다. 정상이 아닙니다. 왜 그렇습니까 땅을 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동물이 아닙니다. 피조물 가운데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을 받은, 위를 바라보아야 할 인간입니다. 눈은 주님을 바라보고, 귀는 신령한 음성을 들으면서, 또 입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하시기를 바랍니다. 젊잖지 못한 시시한 말만 골라서 하는 분은 복을 못 받습니다. 쓰레기는 언제나 한곳으로 몰리는 것입니다. 그래서 자꾸 나쁜 말하는 사람은 복을 못 받습니다. 아브라함은 복받았지만 조카 롯은 복을 못 받았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롯은 불러주신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시시한 곳, 소돔 성을 바라보다가 하나님 앞에 불의 심판을 받았습니다. 부름받은 사람은 위를 향하여 나아가야 할 줄 믿습니다. 우리는 눈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고 옛 생각에서 벗어난 새사람이 되어서 하나님께서 지시하시는 곳으로 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택한 백성에게 언제나 지시하십니다. “(행16:6) 성령님이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지 못하게 하시거늘 브루기아와 갈라디아 땅으로 다녀가 ”라고 했습니다.
또 “(행13:2) 주를 섬겨 금식할 때에 성령님이 가라사대 내가 불러 시키는 일을 위하여 바나바와 사울을 따로 세우라 하시니 ”라고 했습니다. 성령님은 오늘도 지시하시고 말씀해 주십니다. 여러분의 사업의 방향을 성령님께서 지시해 주십니다. 기도하고 기다려 보십시오. 자녀들이 결혼을 앞두고 있습니까 지시해 주십니다. 성령님은 우리의 삶을 지시하시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이사하기를 원합니까 성령님께서 이사할 곳을 지시해 주실 줄 믿습니다. 지시하시지 않으면 그대로 있어야 합니다. 지금도 하나님께서는 여러분들을 구름기둥으로 인도하시고 불기둥으로 인도하시는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아브라함은 부름을 받은 후에 불러주신 그분을 향하여 단을 쌓았습니다. 제단을 쌓았습니다. 부름을 받은 자가 해야 되는 일은 우리를 불러주신 그분을 향하여 감사와 경배와 찬양의 제단을 쌓는 일입니다. 아브라함은 불러주신 분을 향하여 따라갈 때 최고의 축복을 받았습니다. 대통령의 부인이 되는 것이 축복입니까 부자 오나시의 부인이 되는 것이 축복입니까 아닙니다. 여호와께 부름을 받고 불러주신 분을 따라갈 때 모든 축복이 넘칠 줄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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