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좀더 일찍 순종했었으면 (창12:1-9)

본문

오늘 우리는 아브라합에 대한 말씀을 읽었습니다. 로마서 4장 11절에 보면 아브라함을 '믿는 모든 자의 조상'이라고 했습니다. 사실 신약성경의 첫장은 아브라함과 더불어 시작합니다. 마 태복음 1장 1절에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 라'는 말로 시작했습니다. 그리고 사도 바울도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아브라함의 영적인 후손이며, 아브라함이 받 았던 복이 우리의 복이 된다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더구나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말할 때 성경은 '아브라함의 하니닙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아브라함의 하나님이 우리의 하나님이라고 설명합니다. 아브라함에게 붙여진 많은 별명들이 있지만 그 중에도 가장 영광스러운 별명은 '하나님의 친구'라고 하는 별명입니다. 신약성경 에 보면 아브라함의 이름을 무려 일흔네번씩이나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아브라함은 분명히 우리 믿음의 본보기가 된 것입니다. 그러면 믿음의 본보기가 된 아브라함은 어떤 사람입니까그는 아무런 실수도 흠도 없는 사람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아브라함의 삶을 있는 그대로 말하고 있는 것이 바로 성경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경을 좋아합니다. 성경은 어느 사람에 대해서 말씀해도 수정하지 아니하고 있는 그대로를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어떤 사람도 미화시키거나 신격화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있는 그대로의 사람을 조명합니다. 성경에는 특별한 인물이 없습니다. 성경에는 그저 보통사람만 등장합니다. 아브라함도 그 런 보통사람 중에 한사람이었습니다. 아브라함에 대해서 말할 때 성경에서 대표적으로 읽히는 구절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히브리서 11장 8절입니다. 히브리서 기 자는 11장에서 믿음이 무엇인가를 정의하고 믿음으로 산 사람들 을 언급하다가 아브라함에 대해서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 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새 갈 바 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라고 말했습니다. 이 구절을 생각할 때 마다 우리는 아브라함이 얼마나 믿음과 순종에 있어서 우리의 모 범이 되었는가를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약속의 땅에 가라 하니까 그 땅에 대한 사전 지식도 없이 순전히 하니께서 말씀하셨다는 사실 하나만을 믿고 모든 것을 정리하고 떠나간 아브라함 그는 얼마나 믿음으로 산 사람인가, 얼마나 순종한 사람인가 하고 감탄하게 됩니다.
그런데 이 말씀이 증거하고 있는 아브라함의 믿음은 사실 나중 에 그의 삶을 총괄정리하면서 본 믿음이지. 처음부터 그의 생애 속에 나타난 믿음은 아니라는 것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이 말씀속에는 아브라함이 그 믿음과 순종에 도달하기 위해서 얼마나 많 은 갈등을 겪었는지 그 과정이 설명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여기에 훌륭한 믿음의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그 사람이 되기까지의 모든 과정을 무시한 채 결론부터 보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여러분,우리가 어떻게 아브라함과 같은 사람이 될 수 있습니 까 그래서 우리는 아브라함의 생애를 볼 때 나중부터 보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부터 보는 것입니다. 아브라함을 처음부터 보면 그 렇게 특별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도 우리처럼 신앙문제 때문에 많 은 갈등을 하고, 살아가는 동안에 실수를 하고, 약점과 어려움을 경험합니다. 그러나 그는 그 갈둥과 몸부림을 통해서 마침내 우리 믿음의 본보기가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이 처음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갈대아 우르를 떠나 가나안에 들어가는 그 장면에서 우리는 아브라함이 우리와 다름이 없는 사람이었던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1. 아브라함은 처음부터 온전히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 창세기 12장 1절에 보세요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이 말씀을 읽으면서 아브라함이 즉시로 갔다는 생각을 하기 쉽습니다.
그런데 오늘 주신 말씀 4절에 뭐랬어요 '이에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 '라고 말씀했습니다.아브라함은 이 말씀을 히나님의 말씀으로 믿었습니다. 그 말씀을 믿고 가나안 땅 을 향해서 출발을 시작한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만 가지고는 아브라함이 어떻게 이 말씀을 순종했는지 자세히 알 수가 없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의 전후문맥을 살펴보게되면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나게 된 과정을 짐작할 수가 있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 1절에는 본토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 할 땅으로 가라' 했습니다. 그러나 이 말씀을 사도행전과 비교해 보세요 먼 훗날 사도행전 기자는 아브라함의 사건을 조명하면서 좀더 자세히 아브라함이 첫번째 하나님께로부터 명령받았던 상황 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사도행전 7장 1-3절에 '우리 조상 아브라 함이 하란에 있기 전 메소보다미아에 있을 때에 영의 하나닙이 그에게 보여 가라사대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 으로 가라' 했습니다. 여기서 '고향과 친척을 떠나라는 말씀을 보세요
그런데 과연 아브라함이 자기의 고향과 친척을 다 버리고 떠난 것으로 창세기 기록되어 있습니까오늘 주신 말씀 4절을 보세_2_ '이에 아브라 함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갔고 롯도 그와 함께 갔으며' 했습니다. 이것은 사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불순종입니다. 아브라함이 떠 나기는 했지만 친척을 다 버리고 떠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온 전히 순종하지 못했습니다. 아브라함의 생애를 계속 살펴보면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해서 온전히 순종하지 못한 것 때문에 그 속에 얼마나 고생 이 많았는지 모릅니다. 창세기 11장 31절에 보면 '데라가 그 아들 아브람과 하란의 아들 그 손자 롯과 그 자부 아브람의 아내 사래 를 데리고 갈대아 우르에서 떠나 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했습니다. 아브라함이 흔자 간 것이 아니라 굉장히 많은 사람을 데리고 떠났던 모습을 여기서 볼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왜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까 그로 하여금 복의 근원이 되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오늘 주신 말씀 2절을 보세요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케 하리니 너는 복의 근원이 될지라' 했습니다. 아 브라함에게만 복을 주신 것이 아니라 다른 많은 사람들도 아브라 함을 통하여 복을 나누는 그런 축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그 다음절에 보게 되면 '땅의 모든 족속이 그로 인하여 복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니까 네가 먼저 복종하고 떠나라는 명령입니다. 하나님이 어떤 사람을 선택하시는데 그 사람만 선택하고 다른 사람은 버린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러나 선택함을 받은 사람이 먼저 순종하면 다른 사람이 축복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히나닙은 아브라함을 불러쌔셨습니다. 모든 것 다 버리고 떠나라 고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모든 것을 다 버리고 떠난 것이 아닙니다. 친척과 같이 떠났습니다 이것은 온전한 순종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더러 가라고 지시하신 땅이 어떤 땅이었습니 까 가나안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이 가나안 땅으로 직접 갔다고 했습니까 창세기 11장 31절에 보면 '하란에 이 르러 거기 거하였으며' 했습니다. 가나안으로 가는 중간 지역에서 아브라함이 상당히 오랜 시간을 보낸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왜요 지리적으로 살펴볼 때 갈대아 우르에서 하란까지 오는 길은 좋 은 길입니다. 지리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유브라데스 강을 끼고 서 쪽으로 돌아오는 그 길은 굉장히 평탄하고 좋은 길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가나안까지 오는 길에 정말 어려운 길은 하란에서부터 시작됩니다. 왜 아브라함이 하란에서 머물렀을까요 아브라함은 고생하기가 싫었습니다. 아브라함은 고향과 친척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온전히 떠난 것은 아니었습니다. 떠나라고 할 때 그냥 바로 떠난 것도 아닙니다. 사람이 사는 것이 그렇게 간단한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우리는 아브라함의 생애를 통해서 볼 수가 있습니다. 얼마나 주저하고. 망설이고, 갈등하고 있었습니까 그것이 바로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의 형편이 아닙니까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하긴 했는데 온전히 순종하지를 못했습니다.
2.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향해 오래 참으셨습니다. 하나닙의 말씀에 바로 순종하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얼마나 오래 참으셨습니까 아브라함이 머뭇거린 이유 중 하나가 미련 때문이었을 것입니다. 옛것에 대한 집착 때문이었습니다. 정든 사람들과 관계를 끊는 다는 것이 쉬운 것이 아닙니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는 사실을 잘 압니다. 그리고 순종 하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쉽지 않습니다. 이제 하란에서부터 걸어가야 할 그 사막길을 생각하면 솔직히 우리는 이 고생스러 운 길을 피하고 싶은 것입니다. 조금만 더 가면 하나닙이 나를 위해서 준비하신 약속의 땅 가나안이 있다는 사실을 압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서 천국을 예비 하셨고 우리 삶의 미래에 놀라운 약속을 갖고 계시다는 사실을 믿 습니다. 그러나 당장 고생하는 것이 싫습니다. 여기에 아브라함의 주저함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의 발걸음은 하란에서 머물 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아브라함이 메소보다미아 갈대아 우르를 떠나서 하란을 떠나기까지 얼마나 걸렸는지 아세요 아브라함이 갈대아 우르를 떠날 때의 나이가 60세였습니다.
그런데 그가 하란을 떠날 때의 나이는 75세였습니다. 그러니까 갈대아 우르를 떠나서 중간에 머 물렀던 하란을 떠나기까지 걸렸던 시간이 모두 15년입니다. 15년 동안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그대로 두셨습니다. 하니은 이렇게 오래오래 참으십니다. 이 15년이란 기간은 바로 아브라함을 향한 하나님의 계획과 목적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 루어지지 못함을 안타까워하시면서 인내하시는, 하나님의 참으시는 기간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니은 아직도 우리를 향하여 기다리고 계십니다. 아브라함을 향하신 기대를 포기하지 않으셨던 것처럼 우리를 향하 신 하나님의 기대가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하니닙은 우리를 향해서그 기대의 시선을 거두지 아니하시고 주목하시고 계십니다. 주께서 지금도 기다리네 기다리네 기다리네 죄짐을 가지고 다 나오라 어서 주 앞에 오라 지금 오라 지금 오라 자비한 주께로 지금 곧 나아오라 여러분. 아브라함의 인생의 방향이 변한 것이 사실입니다. 그가갈대아 우르를 떠났습니다. 그의 머리가 가나안 땅을 향해 있는 것도 1밀입니다.하나님 없이 살던 내가 하나님을 바라보고 있는 것 도 사실입니다. 주님을 향해 가고 싶은 마음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내 인생관이 변했습니다. 내 가치관이 변했습니다. 내 세계관 이 변했습니다. 내 인생의 목표가 변했습니다. 그러나 인생의 방향이 변했음에도 불구하고 내 인격의 밑바탕에서 나를 붙들고 있는 그 끈끈한 소유욕과 이기심은 여전합니다. 그래서 우리의 발걸음 이 아직도 하란에 붙어있습니다. 우리의 하란이 어디입니까 아브라함의 생애를 살펴보면 갈대아 우르를 떠나기 전부터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었던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성경에 보면 아브 라함은 갈대아 우르에서 우상을 섬기고 있었던 집안 출신이라고 했습니다. 이런 환경 가운데서 지내던 아브라함이 하나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음성을 듣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하란 땅에 머물 렀던 이유 중의 하나가 어쩌면 아직 우상 숭배에 대한 미련을 버 리지 못했기 때문이었는지 모르겠습니다. 여러분. 하나닙을 섬기면서도 아직 버리지 못한 내 욕심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향해 내 마음을 드린 것이 사실입니다. 그 하나닙 을 위해 살고 싶어하는 내 마음의 열망이 있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내 마음 속에 버릴 수 없는 인간적인 욕망이 아직도 자 리잡고 있으면서 나를 지배하고 있는 것도 어쩌면 사실인지 모릅니다. 그래서 우리의 발걸음이 아직도 하란에 머물러 있지 않습니 까
그런데도 하나닙은 참으십니다.말씀없이 기다리십니다.그래서 15년이 흘러가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에베소서 4장 22절에서 말씀했습니다. '너희는 유혹 의 욕심을 따라 썩어져가는 구습을 쫓는 옛 사람을 벗어버리라' 이 것은 믿지 않는 사람에게 하는 말씀이 아닙니다. 이 메시지는 에베 소 교회 성도들을 위하여 주신 것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걸치고 있는 옛 사람의 누더기가 있었습니다.그래서 바울은 '옛 사람을 벗으라'고 말씀했습니다. 본래 이 말을 그대로 직역하면 '옛 사람을 계속 벗 으라'는 말입니다. 내가 그리스도인이 되었지만 아직까지 걸치고 있는 옛 사람의 누더기가 있습니다. 내 행동 속에 옛 사람이 있습니다. 내 습관 속에 옛 사람이 있습니다. 내 성질 속에 옛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래도 참으십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옛 사람을 벗으라 새 사람을 입으라" 계속해서 새 사람을 입으라고 하십니다. 온전치 못한 나의 불순종에도 불구하고, 자라나지 못하는 내 모습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나에게 벌을 내리지 아니하시고 계속해 서 말으로 권고하시는 이유는 아직도 우리를 향하신 기대를 포 기하지 않으셨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닙이 참으시는 것은 고통일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은 고통하시면서 기다리십니다. 여러분, 하니께서 아브라함을 향하여 얼마나 참으셨습니까그러나 하나님이 이렇게 참고 기다리신다고 해서 나는 마음대로 살아도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은 오래 기다리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내가 마음 대로 이 정도의 차원에서 계속 살아도 아무런 일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3. 온전치 못한 순종의 대가는 무엇입니까. 세월을 잃어버렸습니다.하란에서 보낸 15년간의 세월은 완전히 낭비였습니다. 버린 세월이었습니다. '하란이란 말의 뜻은 '열매가없다'는 입니다. 황폐한 땅 하란에 머물러 있는 동안 아브라함이 어떤 의미있고 보람된 창조적인 일을 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거 기서 살긴 살았지만 그냥 내버린 세월이었습니다. 히니닙 앞에 인 정받을 수 없는 세월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을 떠나 사는 삶은 아무런 의미도 보람도 없습니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왜 못합니까 주님 없이도 일을 계획하고, 일올 벌이는 데요 사업도 벌이고, 친구도 사귀고, 결혼도 하고, 야망의 땅을 향해 걸어가는데요. 그러나 성경은 계속해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하나님과 의논하지 않은 그 어떤 것도 하나님께서 인정할 수 없는 사역입니다. 결국은 어느 날 내 삶을 돌이켜 보면서 내가 허우적거렸던 그 시 간이 헛된 낭비였음을 가슴 아프게 뉘우치며 참회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 때는 너무 늦은 때입니다. 세월을 잃어버리지 않아 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데라가 하란에서 죽었습니다.데라는 아브라함의 아 버지입니다. 우리가 얼른 생각하면 205세를 향수하고 죽었으니 죽 을 때가 되어서 죽었겠지라고 단순한 자연사로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은 이 죽음에 특별한 의미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7장 2절 이하에 보면 '스데반이 가로되 여러분 부형들이여 들으소서 우리 조상 아브라함이 하란에 있기전 메소보다미아 에 있을 때에 영광의 하나님이 그에게 보여 가라사대 네 고향과 친척을 떠나 내가 네게 보일 땅으로 가라 하시니 아브라함이 갈대 아 사람들의 땅을 떠나 하란에 거하다가 그 아비가 죽으매 하나님 이 그를 거기서 너희 시방 거하는 이 땅으로 옮기셨느니라'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말씀에 의하면 아버지가 세상을 떠났을 때 비로소 아브라함 이 하란 땅을 떠날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 때까지는 떠나지 못한 것입니다. 이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아브라함이 하란을 떠나지 못한 가 장 큰 원인이 아버지 데라에게 있었던 것 같습니다. 데라 때문에 아브라함의 발걸음이 묶여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 데라가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젓은 불행입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로는 디이었 습니다.
왜냐하면 그 죽음을 통해서 비로소 아브라함이 자기의 생 애의 목표를 향해 전진할 수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영적으로 말하면 데라는 우리 신앙의 전진과 성숙을 가로막고 있는 우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과 나 사이에 개입되는 무엇입니다. 그것 때문에 눈이 가리워서 하나님이 보이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보지 못하도록 내 눈을 가로막고 있는 모든 것이 우상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의 우상은 무엇입니까 돈입니까 지위입니까 그것 때문에 내가 하나님을 향해 가는 발걸음이 지체되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상입니다. 우상이 아브라함의 삶을 가로막기 시작한 어느 날 하나님이 아 브라함을 사랑하시므로 그 우상을 깨뜨리는 작업을 시작하십니다. 내 힘으로 우상을 헐지 않으면 하나님이 허십니다. 이 우상이 무너 지는 요란한 소리와 함께 그 때에야 내가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하나님을 향해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오늘 주신 말씀 5절을 보세요. '아브라함이 그 아내 사래와 조 카 롯과 하란에서 모은 모든 소유와 얻은 사람을 이끌고 가나안 땅으로 가려고 떠나서 마침내 가나안 땅에 들어갔더라,고 말씀했 습니다. 성경은 간단하게 말했지만 그 때까지의 과정이 얼마나 기 가 막힙니까. 이젓은 하나님이 그를 사랑하시므로 그를 통해서 마침내 하나님 의 뜻을 이루기를 원하시는 하니님의 사랑입니다. 그 때 비코소 아 브라함은 하나님을 위해서 단을 쌓았습니다. 그는 이제 알았습니다. 내 의 주인이 하니님이신 짓을 알았습니다. 그 때 비로소 아 브라한은 온전히 순종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므 로 믿음과 순종의 자러까지 오게 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좀더 일찍 순종했었으면 1잣!이단 세윌을 잃어버리지 않아도 되었을 것입니다. 좀더 인찍 중했었으면 15년이란 세월 을 창조적으로, 영광스러운 순간으로, 갑겨의 세월로 만들 수 있었 을 것입니다. 여러분, 좀더 일찍 순종함으로 큰 축복 받으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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