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절

TOP
DOWN

축복의 발원지가 되라 (창12:1-4)

본문

사람들은 축복의 대상이 되려고 합니다. 모든 종교는 축복의 대 상이 되는 것을 최고의 목표로 삼습니다. 그래서 기를 쓰고 축복 의 수혜자가 되려고 합니다. 미신의 일차적인 목표는 재앙을 면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피할 수 없는 재앙이면, 액을 면하는 방법을 택합니다. 액땜을 하거나, 굿을 합니다. 부적을 써 붙입니다. 그 다음, 미신의 이차적인 목 표는 복을 받는 것입니다. 건강, 물질, 가정, 자녀, 사업 이런 복 을 구합니다. 축복이 나에게 쏟아지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여기 까지는 고등종교와 저등종교의 차이가 없습니다. 기독교와 일반 종교의 차이도 그리 확연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진짜 문제는 그 다음에 있습니다. 복을 받은 다음에가 문제입니다. 미신에서는 복을 받게 되면 그걸로 끝입니다. 그 다음 코스는 없지요. 복을 가두어 두는 데서 끝이 납니다. '복의 사용 '이라는 개념이 없습니다. 그래서 더 열심히 점을 칩니다. 더 열심히 부적을 붙여서 자꾸 복을 산더미처럼 쌓습니다. 이것이 지 상 최고의 목적이 됩니다.
그런데 성경의 가르침은 다릅니다. 복을 받은 다음 행동을 강조 합니다. 복을 받으면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복을 받은 다음에 바 야흐로 본 게임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기독교 축복의 핵 심입니다. 요즈음 신앙인들, 이점을 또한 소홀히 하고 있습니다. 미신을 좇아가고 있습니다. 성경이 제시한 복의 개념은 원래 '복 은 나눠주기 위한 것'입니다. 나눔이 시작되어야 복이 제대로 사 용되기 시작하는 것입니다. 이것을 복의 근원이 되는 삶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참된 축복이란 무엇입니까 창12:2-3 사이에서 가장 강조되고 있는 말은 축복이라는 말입니다. 무려 두 구절에서 다섯 번, 복이라는 말을 언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2절에서 복에 대한 중요한 가르침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너는 복의 근원이 될 것'이라고 한 말씀입니다. 복을 주기는 주는 데, 근원이 되는 복을 주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은 축복의 근원으로 서의 복을 누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 반대의 복만 자꾸 추구합니다.
자 보세요. 축복과 관련된 세 가지 비뚫어진 모습을! 그 첫 번째는 복조리 신앙입니다. 복조리처럼 성경을 집안에 모 셔 놓으면 복이 오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십자가 걸고 다니면 복 이 오는 것으로 생각합니다. 예수 믿으면 복이 와요. 그래서 복조 리 사듯이 신앙을 사서 걸어 놓습니다. 하나님은 인격도 없고, 책 망도 없습니다. 그저 복조리처럼 벽에 걸려, 잘되게만 해 주면 그 걸로 끝입니다. 두 번째는 자판기 신앙입니다. 제가 아는 독일 신부님이 한 분 계신 데, 대화를 하다가 아주 재미있는 말씀을 하는 거예요. "요 즈음 개신교 사람들, 하나님을 자판기로 알아요" 이럽니다. 동전 만 넣으면 커피 자판기는 무조건 커피를, 음료수 자판기는 무조 건 음료수 캔을 토해냅니다. 자판기는 의지가 없습니다. 누르면 복을 배출할 뿐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봉사든, 헌금이든, 헌신이 든 복을 뽑기 위해 집어넣습니다. 하나님은 자유의지가 없습니다. 세 번째는 저수지 신앙입니다. 아마 이것이 가장 물들기 쉬운 신 앙인의 복 개념입니다. 사람들은 복을 무조건 가두어 놓습니다. 나에게 어렵게 온 이 복 덩어리, 다른 데로 굴러가면 안되지. 부 정타면 안 되지. 흘러가면 안 되지. 이렇게 꼭꼭 가두어 놓습니다. 만수위가 되면 둑을 더 쌓습니다. 복이 홍수가 나고 둑이 터 져 일대 재앙이 오더라도, 꼭꼭 가두어 놓습니다. 복은 쌓아 놓고 가두어 놓는 것이라는 생각뿐입니다. 이렇게 복에 대해서 비성경적인 복의 개념들이 횡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참 아름다운 복이 사라지고 있습니다. 요즈음 무소유를 가르치는 가르침이 불가에도 있고, 기독교에도 있습니다. 참으로 아름다운 운동입니다. 필요한 것 이상으로 가지 지 않는 운동입니다. 얼마나 우리 마음을 맑고 향기롭게 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이 무소유도, 하나님이 복의 근원이 되라는 원 칙에는 부족한 운동입니다. 무조건 가지지 않는 것이 최고라면, 서울역전의 노숙자가 제일 무소유에 가까울 것입니다. 아무 것도 가지지 않고 메마른 발원지가 되는 것, 이거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뜻은 더 적극적입니다. 많은 물을 발원시켜 흘려 보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복의 근원된 삶입니다. 복의 근원은 무엇입니까 "네 이름은 남에게 복을 끼쳐 주는 이름이 될 것이다"(창12:2,공동번역) 남에게 복을 끼치는 것이 복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히브리말의 원래 뜻은 "헤예 베라카" 즉 '너는 복이 될지라'(you will be a blessing)는 말입니다. 더 정 확하게 말하자면, "당신은복 그 자체이다"라는 말입니다. 복의 대상이 아니라, 바로 복 그 자체가 되는 겁니다. 복된 삶이 문제 가 아니라, 내가 바로 복 그 자체가 되는 것입니다. 복이 나를 통 해 들락날락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아무개 내가, 바로 축복 그 자체라는 말입니다. 이거 엄청난 말씀입니다. 빵 부스러기 를 줍는 게 아니라, 아예 빵 공장을 송두리째 갖는 것입니다. 이 걸 믿으세요. 그러니 한 번 선포해 보세요. '나는 축복 그 자체이다.' '내가 바로 축복이다' 축복의 대상이 아닙니다. 축복 그 자체 입니다. 참된 축복은 축복의 대상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축복의 근원이 되는 것입니다. 축복의 근원을 설명할 때마다 저는 태백에 있는 황지 연못을 떠 올립니다. 태백에 가면 황지라는 연못이 있습니다. 낙동강의 발원 지로 알려져 잇습니다. 아무리 가물어도 물이 마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정작 낙동강 1300리의 발원지인 이 황지 연못은 면적이 50평도 채 안됩니다. 아무리 극심한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샘이 지만, 정작 자신이 담고 있는 물은 채 50평이 안됩니다. 이것이 발원지의 역할입니다. 복의 근원은 이래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니 내가 발 딛는 모든 현장은 복의 현장입니다. 내가 굴러가 면 복이 굴러가는 겁니다. 내가 없어지면 복이 없어지는 겁니다. 이렇게 말하면 여러분은 정말 신나 하겠지요 뻐기고 싶겠지요 그러나 엄중한 책임이 있습니다. 내가 복 자체이니 가두어 놓으 면 안됩니다. 사장 시켜서도 안됩니다. 복 덩어리인 내가 굴러 다 녀야 다른 사람이 복을 받습니다. 모든 민족이 너로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 이렇게 되어야 합니다. 그렇게 되지 않으면 직무 유기입니다.
달란트 비유는 잘 아시지요 이거 복 나누기 비유입니다. 다섯 달란트 가진자는 다섯 달란트의 복을 나누어주었습니다. 정말 잘 한 일입니다. 두 달란트 가진자는 두 달란트 복을 이웃들에게 나 누어주었습니다. 복 그자체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 트 가진 자는 자신의 복을 이웃에게 나누어주지 않고 사장 시켰 습니다. 복의 근원 샘물을 막아 버린 것입니다. 그래서 책망을 받 았습니다. 오늘 3절을 한 번 보세요.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3절) 바로 인하여의 축복입니다. 원래 뜻은 '네 안에서'입니다. 나 때문에 축복을 받는 사람들. 나와 접촉하는 사람들은 축복이 전염이 되는 것입니다. 얼마나 멋있는 말이예요 악은 전염성이 있다고 합니다. 악한 사람이 있으면 금방 그 집단 은 악의 풍습으로 물이 듭니다. 이것은 저주스러운 삶입니다. 반 대로 축복된 사람이 있는데 그 집단이 축복의 지대로 확산되지 않는 것, 이거 수치입니다. 복의 근원이 된 사람은, 접촉하는 모 든 사람이 축복된 삶으로 변해야 합니다. 축복을 전염시키지 못 하면 하나님에게 부끄러운 사람입니다. 때문에 "인하여"의 축복 이 울려 퍼져야 합니다. 새해에는 이런 축복이 흘러 넘치도록 합 시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내가 축복의 근원이 되겠습니까 어떻게 하 면 나와 접촉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축복된 삶을 나눠줄 수 있을 까요 그것은 복음증거 사랑의 실천입니다. 우선은 복음증거입니다. 생명을 나누어주면 영적인 축복을 주는 것입니다. 이것이 가장 큰 축복입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을 것이니라"(창12:3) "너희는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마28:19-20) 자 보세요. 모든 족속입니다. 창세기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내 린 축복은, '모든 족속이 너를 인하여 복을 얻는 축복'입니다. 예수님이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내린 축복의 명령은, 모든 족속 으로 제자를 삼는 축복입니다. 이것이 구약과 신약을 꿰뚫고 있는 축복입니다. 나를 인하여 모든 족속이 제자 되어 예수님의 말씀을 지키게 되는 축복, 이 축복이 바로 생명의 축복입니다. 보세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을 나눠 받은 사람 치고 행복한 삶 으로의 변화가 일어나지 않은 적이 있습니까 올해 우리 교회에 서는 참 이런 축복이 있었습니다., 어그러졌던 개인이 일어섰습니다. 갈지자 걸음, 무질서한 삶이 바로 잡혔습니다. 갈등과 무질서 의 가정에 평화가 찾아 왔습니다. 죽음 같은 삶의 현장에 서광이 비취기 시작했습니다. 다 무엇입니까 생명을 얻은 축복 아닙니 까 예수 그리스도의 새 생명을 얻으니 이렇게 삶이 변하는 겁니다. 우리가 나눠줄 최대의 축복은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입니다. 나를 인하여 복음이 흘러 들어가고, 복음이 묻어나면 그것은 복의 근 원이 되는 겁니다. "당신은 나의 생명의 은인"이라는 고백을 하는 영적 형제를 두지 않은 그리스도인은 사실 죽은 신앙인입니다. 살아있는 복의 근원이된 사람은 복을 끼칩니다. "에수 그리스도 안에서 당신을 기필코 성공시키고 말겠다는 열망" 이것이 생 명의 열망, 복음 증거의 열망입니다. 이것이 바로 영적 출산과 양 육의 열망입니다. 이것이 가장 큰 축복의 근원이 되는 삶이 아니 고 무엇이겠어요
그 다음은 사랑의 실천입니다. 육신의 필요를 섬깁니다. 그러면 참으로 복이 나눠집니다. 함께 희망을 갖게 됩니다. 함께 따뜻한 가슴을 가지게 됩니다. 이렇게 사랑의 실천은 나의 땀방울과, 나 의 물질과 나의 관심과 나의 배려를 나누는 것입니다. 학식이 있는 사람은 학식의 복을 나눠줍니다. 재산의 복이 있는 사람은 재 산의 복을 나눕니다. 재능의 복이 있는 사람은 재능의 복을 나눕니다. 이것이 복의 근원이 되는 삶입니다. 어떤 교회는, 단지 큰 교회를 자랑합니다. 교인이 많이 모이는 걸 자랑합니다. 헌금 많이 나오는 걸 자랑합니다. 큰 건물을 자랑합니다. 이것은 다 쌓아 놓은 걸 자랑하는 것입니다. 쌓아 놓은 걸 자랑하는 것은 참으로 하나님 앞에서 부끄러운 행위입니다. 우편 배달부가 우편물을 쌓아 놓고 자랑하는 것과 같습니다, 우편 배 달부는 열심히 배달하고 빈 우편 가방을 보여야 정상입니다. 교회는 빈 가방을 자랑할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새해에는 빈 가방을 자랑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공동체도 빈 가방을 자랑할 수 있기를 위해 기도합시다. 발원지가 물 모아 놓은 걸 자랑해서는 안됩니다. 황지 연못이 솟 아 나오는 물을 전부 일년 동안 가둬 놓고 나서, 년 말에 이걸 자랑했다고 칩시다. 이거 망할 일입니다. 낙동강 물이 말라죽어, 1300리 500만의 사람들이 농사도 못 짓고, 물도 못 마시고 죽어 가고 있다고 생각해 보세요. 이것 심각한 것 아닙니까 살인행위 아닙니까 자랑할 일이 아닙니다. 주님은 우리를 축복의 발원지로 택하셨습니다.
축복의 대상이 아 니라, 축복의 근원으로 선택하셨습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우리 를 인하여 복을 받도록 하기 위해" 우리에게 복을 주셨습니다. 땅의 모든 족속이 나로 인하여 복을 받지 않으면 나에게 쏟아 부 어진 복은 아무 의미가 없습니다. 세속의 기준은 돈벌어서 남주나 내가 쓸 돈 열심히 벌자는 주의 입니다. 세속의 기준은 공부해서 남주냐 다 입신 양명해서 제 한 몸 편하게 지낼 수 있는 공부를 하라고, 그렇게 자녀를 윽박 질러 댑니다. 사람들은 '잘났어 정말' 합니다. 제 잘난 맛에 살고, 잘나서 뻐기고 뽐내는 데, 재능을 사용합니다. 그러나 믿음의 사람은 재물이든, 학식이든, 재능이든 주자는 데 있습니다. 그게 최 고의 목적이요, 유일한 정당성입니다. 그래서 공부해서 남주자! 돈벌어서 남주자! 잘나서 남주자! 이것이 우리 사랑실천의 표어 가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 저는 나눠줄 것이 이렇게 적습니다., 많이 나눠주고 가게 해 주세요. 더 많이 나눠주게 해 주세요. 더 크게 나눠주게 해 주 세요. 이렇게 기도해야 합니다. 이것이 99년의 목표가 되어야 합니다. 이런 생명을 나눠주는 복음증거의 발원지, 사랑을 나눠주는 사랑 실천의 발원지가 되어 축복의 근원이 되시기 바랍니다. 새해에는 마르지 않는 축복의 발원지가 되어, 이웃을 적시고, 일터를 적시 기 바랍니다.

댓글목록 0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전체 29,555 건 - 1783 페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