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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주의 성례관 (겔36:25-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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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교도의 신앙관과 개혁주의의 신앙관이 같은 것처럼 청교도의 성례관도 개혁주의의 성례관과 같습니다. 청교도들은 이민 초기에는 성례식을 매주일 행하다가 나중에는 매월 행하였고, 역사가 흐름에 따라 스코틀랜드 교회의 영향을 받아 1년에 4번씩 계절적으로 행하였습니다. 그러나 우리 한국교회에서는 1년에 봄 가을로 두 번씩 거행하고 있습니다. 세례나 성찬은 개신교의 2대 축전입니다. 옛날부터 그 교회의 영성은 교인들의 성례 참여정신을 보아서 알 수 있다고 했습니다.
1. 세례 세례는 무엇입니까 창세기 17:11에 의하면,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백성 사이에 맺어진 구원의 계약입니다. 이 계약의식을 구약시대에는 할례로 표시했고 신약시대에는 세례로 표시했습니다. 골로새서 2:11에서는, “그 안에서 너희가 손으로 하지 아니한 할례를 받았으니 곧 육적 몸을 벗는 것이요 그리스도의 할례니라”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요한복음 1:33에 의하면, 세례 요한이 요단강에서 성별된 백성들에게 이 의식을 행하였고 예수님께서도 이 예식에 참여하셨습니다.
1) 세례의 의미 세례는 여러 가지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만, 이 시간에는 간략히 몇 가지만 살펴보겠습니다.
(1) 세례는 하나님의 백성된 표시입니다(요 3:26,27). 요한계시록 7:4에 언급된 바 각 지파에서 이마에 인 맞은 14만 4천 명을 말합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사 43:1).
(2) 육신의 몸의 일을 벗고 그리스도와 접붙임을 받은 표시입니다(요 15:5).
(3)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된 표시입니다(마28:19). 1980년대 이후에 교회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용어는 ‘제자’라는 용어였습니다. 서점에서 잘 팔리는 책도 제자란 말이 붙은 책이었습니다. 심지어는 교회 명칭까지도 ‘제자교회’, ‘제자화교회’, ‘제자되는 교회’, ‘제자삼는 교회’,‘제자만든 교회’ 등으로 부르고 있습니다. 예수의 제자가 되는 길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님의 이름으로 신령한 세례를 받아야 합니다. 사도행전 2:37,38에 의하면,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서 회개한 많은 무리들이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할 때, 베드로는 기탄없이 저들에게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고 명하였습니다. 세례를 받으면 예수님의 제자가 되는 것이요, 예수의 제자가 되려면 세례를 받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례는 예수님의 제자된 표시입니다.
2) 세례의 의식
(1) 세례의 의식에 대해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세례를 줄 때 물을 사용한다는 것입니다. 물의 의미는 무엇입니까 물은 씻는 것입니다. 물은 정결케 하는 것입니다. 에스겔 36:25을 보면, “맑은 물로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케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을 섬김에서 너희를 정결케 할 것이며”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구약시대에는 제사장들이 성전에 제사하러 들어갈 때 성전 안에 있는 물두멍에서 자신을 씻지 않고는 결코 성전에 들어갈 수가 없었습니다.
(2) 그러나 물만 가지고는 우리의 죄를 깨끗이 제할 수 없습니다. 이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을 상징할 뿐입니다. 그 물은 우리 죄를 씻기 위해 뿌려진 예수 그리스도의 피입니다(히 12:24). 모세는 번제물의 피를 양푼에 담고 제단에 뿌렸습니다(출 24:6).
3) 세례의 특전 세례는 단순히 죄를 씻는 표로서 시행하는 의식의 의미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칼빈에 의하면, 세례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목적은
첫째로 하나님에 대한 우리의 신앙을 돕기 위함이며, 두 번째로는 우리의 신앙을 사람들 앞에 고백하는 것을 돕기 위함입니다. 세례를 통하여 우리 주님과의 연합이 확인됨으로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에게 바르게 세례를 주어야 합니다. 세례를 통하여 우리는 영적 공동체인 교회의 일원이 됩니다. 세례를 받음으로 성도들과 동일한 천국 시민이 되며 하나님의 권속이 됩니다. 이때부터 교회의 영적 공동체의 일원이 되어서 서로 협력하고 협동하며 일치하는 신앙생활을 하게 됩니다.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은 자는 성령님을 선물로 받습니다. 세례 요한은 자신은 물로 세례를 주지만 예수님께서는 성령님과 불로 세례를 주신다고 하셨습니다. 성령님충만한 사람은 믿음이 성숙하게 되고 성령님의 열매를 맺습니다.
4) 세례의 조건과 의무 세례를 받고 특권을 얻은 자는 그와 함께 의무도 뒤따릅니다. 그리스도께서 분부하신 모든 것을 지켜야할 의무가 있습니다(마28:20). 이는 기도생활, 성경공부, 주일성수, 십일조, 감사, 구제, 열심히 기도하는 것, 교회 봉사하는 일 등을 의미합니다. 세상에서도 한 나라의 국민이 되면 적어도 몇 가지 의무를 행해야 합니다. 세례를 받는 자는 반드시 자기의 믿음을 고백한 후에 받아야 합니다. 성경에 의하면 모든 세례자들은 세례를 받기 전에 자신들의 믿음을 고백하였습니다(행 8:36; 10:48; 16:15; 16:33) 신앙고백 없이 신자생활을 하는 사람은 그리스도의 참 제자가 아닙니다. 세례는 성부 성자 성령님의 이름으로 교단의 안수를 받은 목사가 주어야 합니다. 교단은 신앙과 신조와 신학이 분명해야 합니다. 세례는 반드시 삼위일체 되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주어져야 합니다. 이는 예수님의 최후의 부탁입니다. 간혹 초대교회에서는 예수의 이름만 가지고 세례를 베푸는 일도 있었습니다(행 2:38). 삼위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는 일은 교리적으로 신학적으로 매우 중대한 의미가 있습니다. 한 생명이 영적으로 태어남에 있어서 삼위 하나님께서 함께 역사 하시는 것은 크고 풍성한 의미가 있습니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죄에서 불러내시고 구원의 반열에 참여하게 하신 이로서 나의 세례에 절대적으로 필요하신 분이십니다. 성자 하나님은 우리를 구속하시기 위해서 십자가를 지신 이로서 나의 세례에 절대적으로 필요하신 분이십니다. 성령님 하나님은 나를 믿게 하시고 세례를 받게 하시고 믿음을 고백하게 하신 분이시며 도한 영원한 구원에 이르도록 인도하신 분이기 때문에 나의 세례에 절대적으로 필요하신 분이십니다.
2. 성찬 성찬은 우리 주님이 직접 집행하셨던 기독교 최대의 예전으로, 영어로는 유카리스트(Eucharist) 또는 'Holy Communion’이라고 부릅니다.
1) 성찬에 관한 네 가지 주장
(1) 천주교의 주장 천주교에서는 화체설(化體說)을 주장합니다. 떡과 잔이 참으로 예수님의 몸과 피로 변한다고 주장합니다. 이는 사제가 미사를 집례할 때에 떡과 포도즙이 곧 예수의 살과 피가 된다는 교리입니다. 이 설은 중세 스콜라 신학자 롬바르트의 주장을 따른 것입니다.
(2) 마틴 루터의 주장 종교개혁자 루터는 천주교의 화체설 보다는 공재설(共在說)을 주장했습니다. 이는 화체설의 변형으로, 성찬식을 집행할 때에 주님께서 육신으로 함께 계신다는 주장입니다. 주님께서 성찬의 떡 위에,아래 그리고 옆에 육체로 와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3) 쯔빙글리의 주장 쯔빙글리는 기념설을 주장하였습니다. 쯔빙글리는 성찬 때 주님이 우리와 영으로만 함께 하신다고 주장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는 루터와 신학적 입장을 달리했습니다.
(4) 칼빈의 주장 칼빈은 개혁주의의 모든 신학을 완성한 사람으로서 임재적 기념설을 주장했습니다. 이는 성찬 때 주님이 영적으로 우리와 함께 계시며 동시에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구원하심을 주님이 오실 때까지 기념한다는 뜻입니다(고전 11:25,26) 하나님은 성찬을 통해서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와의 교제(communion)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친히 우리의 연약함에까지 자신을 낮추사, 그의 말씀에 보이는 표식(visible signs)을 더해주시고, 우리를 모든 의심과 불확실함에서 건지십니다. 성만찬을 제정하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칼빈은 세 가지 이유를 제시합니다.
첫째, 보이는 표식을 통해서 약속의 실체를 나타내시기 위해서입니다. 우리의 영적 둔감함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능력이 수용하는 정도에 맞추어 우리를 이해시키고자 하십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와 교제한다는 이 ‘신비’를 이해할 수 있도록 성찬을 제정하셨습니다.
둘째로, 성찬을 통해 우리는 하나님의 크신 자비를 깨닫고 하나님을 보다 온전히 찬양하게 됩니다. 세째로, 성찬을 통해 우리는 우리가 그리스도의 지체임을 알고 모든 성결에 힘쓰게 됩니다.
2) 떡과 잔의 의미
(1)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의미합니다. 성찬은 우리를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인도하여 우리에게 무슨 불의가 있든지 주님은 우리를 의롭게 하신다는 것과, 우리에게 어떠한 비참함이 있든지 지복(至福)으로 우리를 채우신다는 사실을 우리로 확신케 합니다. 칼빈은 말하기를 “성찬이 우리에게 하나의 거울로 주어졌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그 거울을 통해서 우리를 정죄함에서 구하기 위해 십자가에 달리시고 우리에게 의와 영생을 주시기 위해 다시 살아나신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자”라고 했습니다. 또한 성찬의 유익은 우리가 거룩하게 살게 하고, 특히 우리 안에 사랑과 형제애을 지키도록 강력히 촉구하는 데 있습니다. 성찬에서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머리되신 그와 하나가 됩니다. 따라서 우리는 동일한 몸의 지체가 가져야 할 그런 사랑과 일치를 서로 가져야만 합니다.
(2) 그리스도의 영적 임재를 의미합니다. 주님의 영적 임재는 임마누엘 신앙의 근거가 됩니다. 성찬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임재를 강하게 경험합니다. 따라서 성찬에 참여하는 신자는 믿음으로 나아와야 합니다. 성찬의 올바른 사용에 대해서 칼빈은 이렇게 말했습니다:“누구든지 이 성찬에 업신여김이나 무관심으로 접근하여 우리 주님이 부르시는 곳으로 따라가는 데 그다지 관심을 갖지 않는 자는 성찬을 사악하게 능욕하는 자요 더럽히는 자이다. 하나님이 그토록 거룩하게 하신 것을 더럽히고 오염시키는 것은 참을 수 없는 신성모독이다. 칼빈에 의하면, 하늘과 땅위에 주님의 몸과 피보다 더 귀하고 더 존엄한 것이 없을진대, 경망스럽고 준비없이 성찬에 참여하는 것이 사소한 실수일 수는 없습니다. 또한, 주님의 성찬에서 합당한 영양을 얻기 위해선 마땅히 우리 영혼은 기근으로 고통 당하여 먹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야 합니다. 뿐만 아니라, 교회에서 하나가 된 그리스도인을 미워하거나 그에게 원한을 품고서 성찬을 대하려 해서는 결코 안될 것입니다. 만일 우리가 서로 싸우고 다툰다면 우리는 그리스도를 여러 조각으로 찢게 되며 하나님을 모독한 죄를 범하게 되는 것입니다.
(3) 주님과의 새생명의 교제가 이루어짐을 의미합니다. 성찬의 떡과 포도즙은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의미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믿음으로 성찬의 떡과 잔에 참예해야 합니다. 칼빈에 의하면, 성찬은 우리의 허약함을 돕고 우리의 믿음을 강건케 하며 우리의 사랑을 증가시키고 더욱 거룩한 삶으로 인도하기 위한 하나님의 치료책입니다. 따라서 우리가 질병으로 억압된 느낌을 받으면 받을수록 성찬을 삼가하기 보다 더욱 활용해야 한다고 했습니다. 연약함이 우리를 억누르면 누를수록 우리는 우리의 신앙을 확고히 해주고 순결한 삶으로 우리를 이끌어갈 수 있는 이 성찬에 의지함이 더욱 더 필요한 것입니다. 개신교회의 성례는 세례와 성찬 두 가지입니다. 이 성례는 주님께서 친히 제정하신 성례들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좇아 그리고 믿음으로 이 복된 성례에 참여함으로 주님이 베푸시는 은혜를 받아 누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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