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족과 나라들 (창10:1-5)
본문
오늘 우리는 좁게는 이웃과의 아파트 벽과 철문 사이를 두고 대화를 잃은 채 담을 쌓고 살아가고 있으며, 좀더 나아가서 지역감정으로 동서가 갈등하며, 이델로르기라는 명분으로 물보다 더 진하다고 하는 혈육지간이 남북으로 분단 대치 상황에서 반 세기를 지나가고 있습니다. 이것만이 아니라 세계화를 주창하고 있지만 세계 무대는 냉혹하게 자국의 권익보호 를 위해 강대국이 약소국을 짓밟고 패권 제국주의와 영토 분쟁, 인종 분규, 경제제 재등으로 말미암아 온난화에도 불구하고 세계는 갈 수록 냉각되어만 가고 있습니다. 또한 현대 과학자들은 다윈 이후로 줄곳 진화론을 주장하며 차원 높은 인간의 위상 을 동물에서 진화된 동물적인 존재로 격하시키고 물질이나 과학을 앞세우는 유물론 이나 과학 지상주의가 판을 치고 있는 세상에서 점차
1)인간 상호간의 사랑의 교제 와 평화와
2)인간 생명의 고귀함의 인식과 인간의 생명 존중 등은 기대하기 어려운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과연 이같은 세상에서 인간 상호간의 호혜와 가치 회복의 문제에 대한 바람직한 해 답은 어떤 것일까요
1.노아의 세 아들들 지금 이 지구상의 오대양 육대주에는 피부색과 언어가 다른 3000여 종의 수많은 부 족과 나라들이 현존하고 있습니다. 또한 각 나라들마다 그 나라가 어떻게 세워졌는가 하는 민족의 기원에 대해서는 대부분이 비현실적이며 또한 비도덕적인 신화나 전설로 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한 예가 우리나라의 건국 신화로 어떻게 동물인 곰과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태 어난 인간이 우리 민족의 시조라고 하는 비도덕적인 신화가 마치 역사적인 정설처럼 미화시켜 그것을 건국의 역사로 삼고 개천절을 국경일로 정하기까지 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아무리 천만년이 지난다고 할지라도 결코 신이나 동물과의 관계 속에서 태 어날 수 없는 지상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은 하나님의 피조물 로 인간은 인간에게서 태어나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라면 과거에도 그랬으며 앞으로 도 그럴 수밖에 없는 불변의 진리입니다.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 인류는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 의 자손으로서 땅위에서 번성하다가 죄로 말미암은 홍수 심판으로 노아의 여덟 식구 만 남게 되었다는 사실을 성경 말씀을 통해서 살펴 보았습니다. 이에 대해서 (벧후2:5) 옛 세상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라고 한 말씀과 같이 불과 여덟 식구였으며 그 가운데 세 아들에게서 오늘날의 인류가 번 성하게 된 것을 오늘 성경이 구체적으로 계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노아의 세 아들인 셈과 함과 야벳의 후손이 어떻게 번성하였는가 하는 것을 잘나 타내 보여주고 있는데
1)야벳은 (창10:2) 야벳의 아들은 고멜과 마곡과 마대와 야완과 두발과 메섹과 디 라스요 라는 말씀과 같이 일곱명의 아들을 낳았고 그 아들들은 다시 자식을 낳아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이들이 바로 머리칼이 물결치듯 구불구불하고 콧날이 높고 피부가 흰 코카사스 백 인종으로 그들의 문화권은 흑해와 카스피해 연안으로 스페인에 이르는 유럽 중심 민족의 조상으로 아리안족, 게르만 족들로 신앙과는 무관한 지적 우월성을 과시하는 민족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2)함은 (창10:6) 함의 아들은 구스와 미스라임과 붓과 가나안이요 라고 한 말씀처 럼 네 명의 아들을 낳았는데 그 자손들이 번성해서 오늘에 이르렀는데 그들은 바로 머리칼이 나사 모양으로 곱슬 곱슬하며 코가 낮고 입술이 두터우며 피부가 검은 니 그로이드 흑인으로 더운 지방에서 잘 견디게 되어있는 사람들로 그들의 문화권은 아 프리카를 중심한 흑인의 조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3)셈은 (창10:22) 셈의 아들은 엘람과 앗수르와 아르박삿과 룻과 아람이요 라는 말씀처럼 다섯명의 아들을 낳아 그의 후손이 번성하였는데 그들은 황갈색의 피부에 머 리칼이 직모이며 콧날이 중간인 몽골리안 황인종으로 그들의 문화권은 오늘날 근동 과 아시아 중심으로 보며 그의 후손을 통해서 메시아가 오시기로 되어있는 것입니다. 이 지구상에 모든 인류는 바로 이 세 계통의 자손 중에 하나라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대해서 소개하는 누가복음의 말씀을 보면 (눅3:36) 그 이상은 가이난 이요 그 이상은 아박삿이요 그 이상은 셈이요 그 이상은 노아요 그 이상은 레멕이요 (눅3:38) 그 이상은 에노스요 그 이상은 셋이요 그 이상은 아담이요 그 이상은 하나님이시니라 고 말씀하고 있는 것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인간은 신화적인 존재나 진화된 존재가 아니라 분명히 하나님의 지으심을 받은 피조물임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중에는 셈과 함과 야벳이 한 사람 노아의 자손 이라면 어떻게 그의 후손들이 각각 피부색과 외모가 그렇게 다를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함의 자손이 피부색이 검다는 것을 가지고 그것은 함이 아버지의 수치 를 드러낸 죄값으로 인한 하나님의 저주 때문이라고 하며 피부색을 가지고 인종 차 별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같은 해석이 얼마나 하나님에 대한 오해와 왜곡된 인상을 갖도록 만들어 주는지 잘 알지 못하고 하는 소립니다. 오늘날에는 냉난방 장치가 잘되어서 추위와 더위를 잘 피해갈 수 있지만 옛날에는 그렇치 못하고 자연에 순응하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가운데서 열대 지방에 사는 사람들이 만일 머리칼이 곱슬거리지 않고 셈의 후손 처럼 직모라고 하면 뜨거운 복사열을 견디지 못해 다 해아래서 졸도할 것이며, 피부 가 멜라닌 색소가 많은 검은색이기 때문에 도리어 강한 자외선에서도 잘 적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비교적 추운 지방에 사는 야뱃 족속은 몸집이 크고 지방질을 많이 섭취하지 않으면 적응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백인들이나 황인종은 열대 지방에서 견디어 살 수 없으며, 흑인들은 한대 지방에 적응하기 어려운데 우리나라의 6.25 사변 때 참전했던 흑인들이 비교적 많이 동상에 걸리거나 얼어 죽은 것도 바로 이같은 원인에서 였습니다.
그렇다면 피부색이나 신장이나 몸의 크기는 진화의 산물이 아니라 그 지역에 적응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의 결과로 열대의 사는 사람들은 피부가 검은 흑 인 된 것이 저주가 아닌 생존을 위해 감사한 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가치는 그 피부색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피부를 가지고 있든지 그가 사람이라고 하는 한 가지 만으로도 얼마든지 대접을 받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피부색의 차이가 없이 해부학적으로 피는 붉고 염새체수가 동일하며 수혈을 하고 장기를 이식할 수 있지만 유인원과는 결코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 세계에는 어디를 가든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나름대로의 종교를 가지 고 있으나 동물의 세계에는 절대자에 대한 두려움과 종교가 없는 것입니다. 인간을 정의할 때 결코 동물처럼 보여지는 육체보다는 보여지지 아니하는 마음과 정신력과 내적인 생명에다 더 가치를 두는 이유는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며 동물들의 세계에서는 그같은 영적인 진화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는 야벳 자손 14명, 함 자손 30명, 셈 자손 26명 도합 70명의 이름이 나오는데, 오늘날 지구를 덮고 있는 수많은 종족들과 인류는 거슬러 올라가면 어느 한 사람도 예외가 없이 다 노아의 세아들 중에 한 사람의 자손이지 미개한 동물에서 진화된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창10:5) 이들로부터 여러 나라 백성으로 나뉘어서 각기 방언과 종족과 나라대로 바닷가의 땅에 머물렀더라 (창10:32) 이들은 노아 자손의 족속들이요 그 세계와 나라대로라 홍수 후에 이들에게서 땅의 열국백성이 나뉘었더라 물론 외형상으로 지리적이나 환경 여건에 특성과 기질이 다소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은 진화의 결과라기 보다는 인간이 그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게하 시는 하나님의 섭리의 결과로 감사해야만 할 조건들인 것입니다.
3.교훈과 사명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간을 이처럼 평등하게 지으시고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고 협력 하면서 살아가게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지구는 그렇게 되어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누구를 막론하고 빈손으로 태어나 또한 빈손으로 세상을 떠나가야만 할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그동안 생존을 위해 어떤 사람에게는 지식을 어떤 사람에게는 물질을 어떤 사람에게는 권력을 나누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욕심을 부리며 그것을 독점하려고 합니다. 또한 그것이 마치 자신의 힘으로 얻은 영원한 자신의 소유처럼 생각을 하면서 가졌 다고 없는 자를 멸시하고 안다고 무식한 자를 멸시하고 권력이 있다고 그것으로 약 자를 억압하는 오만을 범하면서 하나님을 근심되게 하며 살아갑니다. 또한 나라들은 패권 제국주의, 국수주의에 빠져서 자기 민족만을 우월하게 생각하 고 힘이 없는 약소국을 무력으로만이 아니라 문화와 경제적인 침략을 일삼고 전쟁과 인종차별을 일삼과 어떤 시대에는 수백만명을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이데오르기가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 없이 무고한 양민들 을 학살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 말씀을 통해서 깨닫고 보면 결코 하나님앞에서는 어느 민족이라 고 더 우월할 수 없는 다같이 평등한 노아의 자손들이라는 것입니다. 피부색 때문에 인종 차별을 당하는 함의 자손들은 마치 저주를 받은 사람들처럼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지만 사실 상 그들보다 더 많은 고난을 겪은 종족은 하나님의 택 함을 받았다는 자부심과 교만으로 가득찼던 셈의 후손인 유대인들입니다. 아마도 역 사적으로 유대인만큼 가혹한 시련을 겪은 민족은 또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민족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으며 가장 많이 노벨상 을 수상하였으며 세계 경제의 큰 손으로 막강한 실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13배가 되는 아랍 세력들과 대치를 하고 있으면서도 그 민족은 살아남아 있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같은 세계 민족을 보면서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의 약속의 신실하심입니다. 인간은 아무리 인감 도장을 찍어가면서 약속한 것도 세월이 흐르고 상황이 바뀌게 되면 그것을 지키지 못하는 믿기 어려운 세상이기에 갈 수록 불신만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 번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심을 오늘 성경에서 다시 한번 재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아담 한 사람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은 그 명령이 이루어지도록 섭리하시는 하나님으로 많은 인류가 땅위에서 번 성하였으나 홍수 심판으로 땅위에 남은 유일한 노아의 가정에게 똑같이 생육하고 번 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말씀하신 것과 말씀은 동일한 것 같지만 상황은 정반대였습니다. 아담과 말씀하실 때는 에덴 동산이었으나 노아에게 말씀하실 때는 심판 후에 척박 한 대지위에서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창9:7). 그같은 말씀에 대해서 인간들은 지구라는 거대한 땅위에서 한 가정이 산다는 것을 생각하면 과연 그 가정을 통해서 지구에 사람들이 오늘날처럼 가득하게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날 인구폭발이라는 말로 대신하는 지구상의 인구증가는 산아제한을 필 요로 할 만큼 번성하고 있는 사실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으 약속의 신실하신 성취 임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그 하나님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여전히 신실하시며 한 번 하신다고 하면 반드시 하 시고야마는 하나님이십니다. 문제는 인간의 가능성이 아니라 (마24:35)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막13:31)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눅21:33)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임을 믿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2) 한 영혼의 귀중함에 대한 인식입니다. 오늘 우리는 산업화된 사회에서 대량 생산, 속성 재배등으로 인해 인간이 원하는 것들이 산같이 백화점에 쌓여 돈만 있으면 구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하나에 대한 귀중성을 잘 깨닫지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대량 생산과 속성재배를 하는 사회라고 할지라도 인간의 태어남은 하나님이 정하신 창조의 질서를 따라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코 오늘의 인류는 노아의 가족이 작다고 해서 하나님이 인간을 대량 생산하셔서 오대양 육대주에 쏟아 부으신 것이 아니라 한 생명이 모태에서 열달을 채우고 태어 나 온갖 질병과 싸우고 치열한 생존 경쟁의 과정으로 현존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명은 그 하나에 정성과 사랑이 없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귀중한 존재 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인간 한 영혼의 가치는 (마16:26) 사람이 만일 온 천 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 꾸겠느냐 고 하신 말씀처럼 존귀한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 하나님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기록케 하셨습니다. 오늘의 세계는 바로 그 한 사람 한 사람들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므로 우리는 한 영혼 한 사람 의 가치를 귀하게 여겨야만 합니다. 셈 한 사람이 아니라 그에게 전 아시아인들이. 함 한 사람이 아니라 그에게 전 유 색인이들이, 애벳 한 사람이 아니라 전 유럽인들이 나오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을 때 한 사람의 가치와 귀중성을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3)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비젼을 발견하게 됩니다. 세상 나라는 무슨 구실이 생기면 그것을 물고 늘어지며 그로 말미암아 끝없는 분쟁 과 분열을 가져오는 싸움과 전쟁이 끊이지 아니하는 나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서로 하나가 되는 평화의 나라이며 화목의 나라입니다. 과연 그것이 가능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기도 합니다. 노아의 세 아들 중에서 함의 자손 가운데는 (창10:8)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처음 영걸이라(창10:9) 그가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군이 되었으므 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은 특이한 사냥군이로다 하더라는 말씀처럼 자기 힘을 유하고 영웅소리를 듣는 니므롯이 하나님을 대적하기도 하였 습니다. 그 후손들의 나라는 아수르와 니느웨라느 대 제국을 이루기도 하였지만 하나님의 축복이 약속된 셈의 자손들은 (창10:30) 그들의 거하는 곳은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편 산이었더라는 말씀처럼 보잘 것 없이 미약한 존재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가는 동안 함의 자손이 세운 나라들은 자취조차 찾기 어렵게 되 었으나 셈의 자손들은 (창9:26) 또 가로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 안은 셈의 종이 되고 라는 말씀처럼 그 후손을 통해서 아브라함이 선택함을 받고 다윗 왕국이 건설되고 약속된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인류의 육신이 불과 한 사람 아담과 노아의 세아들을 통해서 오늘 이 지구상에 세상 나라로 편만하게 되었다면 하나님의 나라도 역시 시작은 미약하지만 바로 그 아 브람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땅위에 충만하게 될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시37:29) 의인이 땅을 차지함이여 거기 영영히 거하리로다 (시118:15) 의인의 장 막에 기쁜 소리,구원의 소리가 있음이여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며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단절된 하나님과의 화해와 형제와 부부의 갈등과 반목, 동족간의 분쟁, 국가간의 전쟁과 이 데오르기의 대립의 장벽을 헐어 버리기 위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 일이 바로 선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주인과 종이 하나가 되고 피부색이 나 언어의 장벽이 없이 다 하나가 되어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으 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사랑인 것입니다. (엡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 결론 가정과 직장과 사회와 민족과 세계 어디를 가든지 분쟁과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는 오늘 우리가 이웃에게 전도하고 세계에 나아가서 선교해야만 할 이유도 바로 이 때 문입니다. 이슬람교가 가는 곳에는 성전이라는 이름으로 무자비한 테러와 전쟁이 있습니다. 기독교를 빙자하여 그와 똑같은 전쟁을 벌리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리스도는 전 쟁이 아니라 평화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히셨습니다. 우리가 살고있는 이 지구상에 출신지 파벌 사상 등으로 서로간에 담을 쌓고 있는 인류에게 화해와 평화를 위해서 평화의 복음은 확장되어가야만 합니다. 바울 사도가 선교 여행을 하는 중에 정치 경제사상 철학 예술등 찬란한 문화를 자 랑하며 하나님 대신에 우상을 숭배하고 쾌락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쾌락을 추구하는 에페큐러스 와 인간의 이성과 윤리를 제일로 앞세우는 스토아 학파가 판을 치는 아테네에 간적이 있습니다.
그 때 바울이 외친 설교의 주제는 바로 오늘 성경 말씀을 주제로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행17:24)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행17:25)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 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 심이라(행17:26)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 희의 년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행17:27)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행17:28)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너희 시인 중에도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행17:29) 이와 같이 신의 소생 이 되었은즉 신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비록 종족과 문화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하나가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바로 이것 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신 까닭이 바로 이 때문입니다. 바로 이 복음이 부부간에 고부간에 형제간에 반목하는 가정을 하나가 되게 하며 민족을 하나가 되게 하며 세계를 하나가 되게하는 유일한 길임을 깨닫고 사람들에게 두려움이 없이 인간은 진화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으심을 받은 신의 소생이 며, 세상에서 무엇보다 귀한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으로 하나님은 그 가치 를 천하와도 바꿀수 없다고 말씀하셨음을 깨닫고 무엇보다 인간의 생명을 귀하게 여 기고 자신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종족과 이기심으로 갈등하며 대립 반목하는 형제와 이웃과 민족과 세계를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 안에서 통일되게 하시려고 세상에 오신 것이며 그것 이 바로 세계 선교의 사명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피부색에 상관이 없이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복음을 차별화 하지 말고 땅 끝까지 전파하라고 하시는 까닭은 그 안에서만이 진정한 평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1)인간 상호간의 사랑의 교제 와 평화와
2)인간 생명의 고귀함의 인식과 인간의 생명 존중 등은 기대하기 어려운 세상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과연 이같은 세상에서 인간 상호간의 호혜와 가치 회복의 문제에 대한 바람직한 해 답은 어떤 것일까요
1.노아의 세 아들들 지금 이 지구상의 오대양 육대주에는 피부색과 언어가 다른 3000여 종의 수많은 부 족과 나라들이 현존하고 있습니다. 또한 각 나라들마다 그 나라가 어떻게 세워졌는가 하는 민족의 기원에 대해서는 대부분이 비현실적이며 또한 비도덕적인 신화나 전설로 되어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그 한 예가 우리나라의 건국 신화로 어떻게 동물인 곰과 인간과의 관계 속에서 태 어난 인간이 우리 민족의 시조라고 하는 비도덕적인 신화가 마치 역사적인 정설처럼 미화시켜 그것을 건국의 역사로 삼고 개천절을 국경일로 정하기까지 하고 있습니다. 인간은 아무리 천만년이 지난다고 할지라도 결코 신이나 동물과의 관계 속에서 태 어날 수 없는 지상에서 유일하게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으심을 받은 하나님의 피조물 로 인간은 인간에게서 태어나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라면 과거에도 그랬으며 앞으로 도 그럴 수밖에 없는 불변의 진리입니다.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통해서 인류는 최초의 인간인 아담과 하와 의 자손으로서 땅위에서 번성하다가 죄로 말미암은 홍수 심판으로 노아의 여덟 식구 만 남게 되었다는 사실을 성경 말씀을 통해서 살펴 보았습니다. 이에 대해서 (벧후2:5) 옛 세상을 용서치 아니하시고 오직 의를 전파하는 노아와 그 일곱 식구를 보존하시고 경건치 아니한 자들의 세상에 홍수를 내리셨으며 라고 한 말씀과 같이 불과 여덟 식구였으며 그 가운데 세 아들에게서 오늘날의 인류가 번 성하게 된 것을 오늘 성경이 구체적으로 계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노아의 세 아들인 셈과 함과 야벳의 후손이 어떻게 번성하였는가 하는 것을 잘나 타내 보여주고 있는데
1)야벳은 (창10:2) 야벳의 아들은 고멜과 마곡과 마대와 야완과 두발과 메섹과 디 라스요 라는 말씀과 같이 일곱명의 아들을 낳았고 그 아들들은 다시 자식을 낳아 오늘에 이르렀습니다. 이들이 바로 머리칼이 물결치듯 구불구불하고 콧날이 높고 피부가 흰 코카사스 백 인종으로 그들의 문화권은 흑해와 카스피해 연안으로 스페인에 이르는 유럽 중심 민족의 조상으로 아리안족, 게르만 족들로 신앙과는 무관한 지적 우월성을 과시하는 민족들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2)함은 (창10:6) 함의 아들은 구스와 미스라임과 붓과 가나안이요 라고 한 말씀처 럼 네 명의 아들을 낳았는데 그 자손들이 번성해서 오늘에 이르렀는데 그들은 바로 머리칼이 나사 모양으로 곱슬 곱슬하며 코가 낮고 입술이 두터우며 피부가 검은 니 그로이드 흑인으로 더운 지방에서 잘 견디게 되어있는 사람들로 그들의 문화권은 아 프리카를 중심한 흑인의 조상으로 보고 있습니다.
3)셈은 (창10:22) 셈의 아들은 엘람과 앗수르와 아르박삿과 룻과 아람이요 라는 말씀처럼 다섯명의 아들을 낳아 그의 후손이 번성하였는데 그들은 황갈색의 피부에 머 리칼이 직모이며 콧날이 중간인 몽골리안 황인종으로 그들의 문화권은 오늘날 근동 과 아시아 중심으로 보며 그의 후손을 통해서 메시아가 오시기로 되어있는 것입니다. 이 지구상에 모든 인류는 바로 이 세 계통의 자손 중에 하나라는 것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에 대해서 소개하는 누가복음의 말씀을 보면 (눅3:36) 그 이상은 가이난 이요 그 이상은 아박삿이요 그 이상은 셈이요 그 이상은 노아요 그 이상은 레멕이요 (눅3:38) 그 이상은 에노스요 그 이상은 셋이요 그 이상은 아담이요 그 이상은 하나님이시니라 고 말씀하고 있는 것과 일치하는 것입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인간은 신화적인 존재나 진화된 존재가 아니라 분명히 하나님의 지으심을 받은 피조물임을 증거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의문을 제기하는 사람들중에는 셈과 함과 야벳이 한 사람 노아의 자손 이라면 어떻게 그의 후손들이 각각 피부색과 외모가 그렇게 다를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어떤 사람은 함의 자손이 피부색이 검다는 것을 가지고 그것은 함이 아버지의 수치 를 드러낸 죄값으로 인한 하나님의 저주 때문이라고 하며 피부색을 가지고 인종 차 별을 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같은 해석이 얼마나 하나님에 대한 오해와 왜곡된 인상을 갖도록 만들어 주는지 잘 알지 못하고 하는 소립니다. 오늘날에는 냉난방 장치가 잘되어서 추위와 더위를 잘 피해갈 수 있지만 옛날에는 그렇치 못하고 자연에 순응하는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가운데서 열대 지방에 사는 사람들이 만일 머리칼이 곱슬거리지 않고 셈의 후손 처럼 직모라고 하면 뜨거운 복사열을 견디지 못해 다 해아래서 졸도할 것이며, 피부 가 멜라닌 색소가 많은 검은색이기 때문에 도리어 강한 자외선에서도 잘 적응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비교적 추운 지방에 사는 야뱃 족속은 몸집이 크고 지방질을 많이 섭취하지 않으면 적응하기 어렵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백인들이나 황인종은 열대 지방에서 견디어 살 수 없으며, 흑인들은 한대 지방에 적응하기 어려운데 우리나라의 6.25 사변 때 참전했던 흑인들이 비교적 많이 동상에 걸리거나 얼어 죽은 것도 바로 이같은 원인에서 였습니다.
그렇다면 피부색이나 신장이나 몸의 크기는 진화의 산물이 아니라 그 지역에 적응 할 수 있도록 하나님의 특별한 섭리의 결과로 열대의 사는 사람들은 피부가 검은 흑 인 된 것이 저주가 아닌 생존을 위해 감사한 일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인간의 가치는 그 피부색이 아니라 그 사람이 어떤 피부를 가지고 있든지 그가 사람이라고 하는 한 가지 만으로도 얼마든지 대접을 받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누구를 막론하고 피부색의 차이가 없이 해부학적으로 피는 붉고 염새체수가 동일하며 수혈을 하고 장기를 이식할 수 있지만 유인원과는 결코 그렇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인간 세계에는 어디를 가든지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이지 나름대로의 종교를 가지 고 있으나 동물의 세계에는 절대자에 대한 두려움과 종교가 없는 것입니다. 인간을 정의할 때 결코 동물처럼 보여지는 육체보다는 보여지지 아니하는 마음과 정신력과 내적인 생명에다 더 가치를 두는 이유는 인간은 영적인 존재이기 때문이며 동물들의 세계에서는 그같은 영적인 진화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는 야벳 자손 14명, 함 자손 30명, 셈 자손 26명 도합 70명의 이름이 나오는데, 오늘날 지구를 덮고 있는 수많은 종족들과 인류는 거슬러 올라가면 어느 한 사람도 예외가 없이 다 노아의 세아들 중에 한 사람의 자손이지 미개한 동물에서 진화된 존재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창10:5) 이들로부터 여러 나라 백성으로 나뉘어서 각기 방언과 종족과 나라대로 바닷가의 땅에 머물렀더라 (창10:32) 이들은 노아 자손의 족속들이요 그 세계와 나라대로라 홍수 후에 이들에게서 땅의 열국백성이 나뉘었더라 물론 외형상으로 지리적이나 환경 여건에 특성과 기질이 다소 차이가 있는 것이 사실이지만 그것은 진화의 결과라기 보다는 인간이 그 환경에 잘 적응할 수 있게하 시는 하나님의 섭리의 결과로 감사해야만 할 조건들인 것입니다.
3.교훈과 사명 창조주 하나님께서 인간을 이처럼 평등하게 지으시고 서로 존중하고 사랑하고 협력 하면서 살아가게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지구는 그렇게 되어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개인적으로는 누구를 막론하고 빈손으로 태어나 또한 빈손으로 세상을 떠나가야만 할 사람들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그동안 생존을 위해 어떤 사람에게는 지식을 어떤 사람에게는 물질을 어떤 사람에게는 권력을 나누어 주셨음에도 불구하고 욕심을 부리며 그것을 독점하려고 합니다. 또한 그것이 마치 자신의 힘으로 얻은 영원한 자신의 소유처럼 생각을 하면서 가졌 다고 없는 자를 멸시하고 안다고 무식한 자를 멸시하고 권력이 있다고 그것으로 약 자를 억압하는 오만을 범하면서 하나님을 근심되게 하며 살아갑니다. 또한 나라들은 패권 제국주의, 국수주의에 빠져서 자기 민족만을 우월하게 생각하 고 힘이 없는 약소국을 무력으로만이 아니라 문화와 경제적인 침략을 일삼고 전쟁과 인종차별을 일삼과 어떤 시대에는 수백만명을 인종이 다르다는 이유 하나 때문에, 이데오르기가 다르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아무런 양심의 가책이 없이 무고한 양민들 을 학살을 하기도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성경 말씀을 통해서 깨닫고 보면 결코 하나님앞에서는 어느 민족이라 고 더 우월할 수 없는 다같이 평등한 노아의 자손들이라는 것입니다. 피부색 때문에 인종 차별을 당하는 함의 자손들은 마치 저주를 받은 사람들처럼 사람들이 오해하고 있지만 사실 상 그들보다 더 많은 고난을 겪은 종족은 하나님의 택 함을 받았다는 자부심과 교만으로 가득찼던 셈의 후손인 유대인들입니다. 아마도 역 사적으로 유대인만큼 가혹한 시련을 겪은 민족은 또 없을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민족 가운데서 예수 그리스도가 오셨으며 가장 많이 노벨상 을 수상하였으며 세계 경제의 큰 손으로 막강한 실력을 행사하고 있으며 13배가 되는 아랍 세력들과 대치를 하고 있으면서도 그 민족은 살아남아 있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가 아닐 수 없습니다. 이같은 세계 민족을 보면서 우리가 깨달을 수 있는 교훈은 무엇입니까
1) 하나님의 약속의 신실하심입니다. 인간은 아무리 인감 도장을 찍어가면서 약속한 것도 세월이 흐르고 상황이 바뀌게 되면 그것을 지키지 못하는 믿기 어려운 세상이기에 갈 수록 불신만이 늘어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한 번 약속하신 것을 반드시 지키시는 신실하신 하나님이심을 오늘 성경에서 다시 한번 재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음 아담 한 사람에게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말씀하신 하나님은 그 명령이 이루어지도록 섭리하시는 하나님으로 많은 인류가 땅위에서 번 성하였으나 홍수 심판으로 땅위에 남은 유일한 노아의 가정에게 똑같이 생육하고 번 성하여 땅에 충만하라고 말씀하신 것과 말씀은 동일한 것 같지만 상황은 정반대였습니다. 아담과 말씀하실 때는 에덴 동산이었으나 노아에게 말씀하실 때는 심판 후에 척박 한 대지위에서 말씀하신 것이었습니다(창9:7). 그같은 말씀에 대해서 인간들은 지구라는 거대한 땅위에서 한 가정이 산다는 것을 생각하면 과연 그 가정을 통해서 지구에 사람들이 오늘날처럼 가득하게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믿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날 인구폭발이라는 말로 대신하는 지구상의 인구증가는 산아제한을 필 요로 할 만큼 번성하고 있는 사실이 우연이 아니라 하나님으 약속의 신실하신 성취 임을 깨달아야만 합니다. 그 하나님은 오늘 우리들에게도 여전히 신실하시며 한 번 하신다고 하면 반드시 하 시고야마는 하나님이십니다. 문제는 인간의 가능성이 아니라 (마24:35)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막13:31)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 (눅21:33) 천지는 없어지겠으나 내 말은 없어지지 아니하리라는 하나님의 약속임을 믿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2) 한 영혼의 귀중함에 대한 인식입니다. 오늘 우리는 산업화된 사회에서 대량 생산, 속성 재배등으로 인해 인간이 원하는 것들이 산같이 백화점에 쌓여 돈만 있으면 구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기 때문에 하나에 대한 귀중성을 잘 깨닫지 못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대량 생산과 속성재배를 하는 사회라고 할지라도 인간의 태어남은 하나님이 정하신 창조의 질서를 따라 인간이 세상에 태어나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결코 오늘의 인류는 노아의 가족이 작다고 해서 하나님이 인간을 대량 생산하셔서 오대양 육대주에 쏟아 부으신 것이 아니라 한 생명이 모태에서 열달을 채우고 태어 나 온갖 질병과 싸우고 치열한 생존 경쟁의 과정으로 현존하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생명은 그 하나에 정성과 사랑이 없이 세상에 존재할 수 없는 귀중한 존재 임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인간 한 영혼의 가치는 (마16:26) 사람이 만일 온 천 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사람이 무엇을 주고 제 목숨을 바 꾸겠느냐 고 하신 말씀처럼 존귀한 것입니다. 오늘 성경에 하나님은 한 사람 한 사람의 이름을 기록케 하셨습니다. 오늘의 세계는 바로 그 한 사람 한 사람들을 통해서 이루어진 것이므로 우리는 한 영혼 한 사람 의 가치를 귀하게 여겨야만 합니다. 셈 한 사람이 아니라 그에게 전 아시아인들이. 함 한 사람이 아니라 그에게 전 유 색인이들이, 애벳 한 사람이 아니라 전 유럽인들이 나오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을 때 한 사람의 가치와 귀중성을 깨달을 수 있는 것입니다.
3)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비젼을 발견하게 됩니다. 세상 나라는 무슨 구실이 생기면 그것을 물고 늘어지며 그로 말미암아 끝없는 분쟁 과 분열을 가져오는 싸움과 전쟁이 끊이지 아니하는 나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서로 하나가 되는 평화의 나라이며 화목의 나라입니다. 과연 그것이 가능할 수 있을까 하는 의문을 갖기도 합니다. 노아의 세 아들 중에서 함의 자손 가운데는 (창10:8) 구스가 또 니므롯을 낳았으니 그는 세상에 처음 영걸이라(창10:9) 그가 여호와 앞에서 특이한 사냥군이 되었으므 로 속담에 이르기를 아무는 여호와 앞에 니므롯 같은 특이한 사냥군이로다 하더라는 말씀처럼 자기 힘을 유하고 영웅소리를 듣는 니므롯이 하나님을 대적하기도 하였 습니다. 그 후손들의 나라는 아수르와 니느웨라느 대 제국을 이루기도 하였지만 하나님의 축복이 약속된 셈의 자손들은 (창10:30) 그들의 거하는 곳은 메사에서부터 스발로 가는 길의 동편 산이었더라는 말씀처럼 보잘 것 없이 미약한 존재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세월이 흘러가는 동안 함의 자손이 세운 나라들은 자취조차 찾기 어렵게 되 었으나 셈의 자손들은 (창9:26) 또 가로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 안은 셈의 종이 되고 라는 말씀처럼 그 후손을 통해서 아브라함이 선택함을 받고 다윗 왕국이 건설되고 약속된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세상에 오셨습니다. 인류의 육신이 불과 한 사람 아담과 노아의 세아들을 통해서 오늘 이 지구상에 세상 나라로 편만하게 되었다면 하나님의 나라도 역시 시작은 미약하지만 바로 그 아 브람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땅위에 충만하게 될 것을 믿을 수 있습니다. (시37:29) 의인이 땅을 차지함이여 거기 영영히 거하리로다 (시118:15) 의인의 장 막에 기쁜 소리,구원의 소리가 있음이여 여호와의 오른손이 권능을 베푸시며 예수님이 세상에 오신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인간의 죄로 말미암아 단절된 하나님과의 화해와 형제와 부부의 갈등과 반목, 동족간의 분쟁, 국가간의 전쟁과 이 데오르기의 대립의 장벽을 헐어 버리기 위해 세상에 오신 것입니다. 그 일이 바로 선교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안에서 주인과 종이 하나가 되고 피부색이 나 언어의 장벽이 없이 다 하나가 되어 하나님을 찬양하며 그리스도 예수의 사랑으 로 사랑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의 사랑인 것입니다. (엡4:13) 우리가 다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것과 아는 일에 하나가 되어 온전한 사람을 이루어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데까지 이르리니 결론 가정과 직장과 사회와 민족과 세계 어디를 가든지 분쟁과 갈등이 끊이지 않고 있는 오늘 우리가 이웃에게 전도하고 세계에 나아가서 선교해야만 할 이유도 바로 이 때 문입니다. 이슬람교가 가는 곳에는 성전이라는 이름으로 무자비한 테러와 전쟁이 있습니다. 기독교를 빙자하여 그와 똑같은 전쟁을 벌리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그리스도는 전 쟁이 아니라 평화를 위해서 십자가에 못박히셨습니다. 우리가 살고있는 이 지구상에 출신지 파벌 사상 등으로 서로간에 담을 쌓고 있는 인류에게 화해와 평화를 위해서 평화의 복음은 확장되어가야만 합니다. 바울 사도가 선교 여행을 하는 중에 정치 경제사상 철학 예술등 찬란한 문화를 자 랑하며 하나님 대신에 우상을 숭배하고 쾌락이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쾌락을 추구하는 에페큐러스 와 인간의 이성과 윤리를 제일로 앞세우는 스토아 학파가 판을 치는 아테네에 간적이 있습니다.
그 때 바울이 외친 설교의 주제는 바로 오늘 성경 말씀을 주제로 하는 내용이었습니다. (행17:24) 우주와 그 가운데 있는 만유를 지으신 신께서는 천지의 주재시니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행17:25) 또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사람의 손으로 섬 김을 받으시는 것이 아니니 이는 만민에게 생명과 호흡과 만물을 친히 주시는 자이 심이라(행17:26) 인류의 모든 족속을 한 혈통으로 만드사 온 땅에 거하게 하시고 저 희의 년대를 정하시며 거주의 경계를 한하셨으니(행17:27) 이는 사람으로 하나님을 혹 더듬어 찾아 발견케 하려 하심이로되 그는 우리 각 사람에게서 멀리 떠나 계시지 아니하도다(행17:28) 우리가 그를 힘입어 살며 기동하며 있느니라 너희 시인 중에도 어떤 사람들의 말과 같이 우리가 그의 소생이라 하니(행17:29) 이와 같이 신의 소생 이 되었은즉 신을 금이나 은이나 돌에다 사람의 기술과 고안으로 새긴 것들과 같이 여길 것이 아니니라 비록 종족과 문화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하나가 될 수 있는 유일한 길이 바로 이것 이며 예수 그리스도가 세상에 오신 까닭이 바로 이 때문입니다. 바로 이 복음이 부부간에 고부간에 형제간에 반목하는 가정을 하나가 되게 하며 민족을 하나가 되게 하며 세계를 하나가 되게하는 유일한 길임을 깨닫고 사람들에게 두려움이 없이 인간은 진화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지으심을 받은 신의 소생이 며, 세상에서 무엇보다 귀한 것은 하나님의 형상을 닮은 인간으로 하나님은 그 가치 를 천하와도 바꿀수 없다고 말씀하셨음을 깨닫고 무엇보다 인간의 생명을 귀하게 여 기고 자신의 가치를 재발견하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종족과 이기심으로 갈등하며 대립 반목하는 형제와 이웃과 민족과 세계를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랑 안에서 통일되게 하시려고 세상에 오신 것이며 그것 이 바로 세계 선교의 사명인 것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피부색에 상관이 없이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복음을 차별화 하지 말고 땅 끝까지 전파하라고 하시는 까닭은 그 안에서만이 진정한 평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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