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대가와 대속 (겔4:1-8)
본문
요즘도 그 사람이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이전에는 이상한 복장 을 입고, 이상한 훈장같은 것을 가슴에 주렁 주렁 달고, 이상한 제스쳐와 말씨로 전도하는 전도자가 있었습니다. 그런 사람을 볼 때 차라리 저런 방법으로는 전도하지 말았으면 하는 생각을 가지 게 하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서 그 사람도 나름대로 철학이 있었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이상한 행동을 하는데 에 스겔서를 읽어보면 이런 이상한 행동을 종종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백성들의 시선을 집중시킨 다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본문의 줄거리 에스겔 선지자가 취한 이상한 행동은 첫번째는 1-3절에 박석이라는 토판에 그림을 그렸는데 예루살렘 성을 그리고 이방 군대들이 이 성을 포위하고 공격을 하는 그립입니다. 두번째는 4-8절에서 오른 쪽으로 누어 390일, 왼 쪽으로 누어 40일간을 지냅니다. 세 번째는 9-17절에 밀과 보리와 콩 등 여러가지 잡곡을 석어 음식 을 만들되, 쇠똥 말린 것으로 구워 먹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행동을 요구하신 하나님은 종종 그의 종들에게 상상을 초월 하는 행동을 요구하시고 이런 행동을 통하여 말씀을 주실 때가 있었습니다. 이런 것을 행동 예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호세아 서를 보면 하나님은 선지자에게 기와 같은 음란한 여성을 아내로 맞으라고 하시고, 그에게 자녀가 출생하자 그 이름을 이 스르엘, 혹은 로루하마, 혹은 로암미라는 이름을 붙혀 줍십니다. 이스르엘이란 뜻은 이스라엘 국가를 폐지하시겠다는 뜻이고, 로 루하마란 하나님이 다시는 이스라엘 백성을 긍휼히 여기지 않으 시겠다는 뜻이고, 로암미는 너희는 나의 백성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런 것은 선지자 개인에게는 큰 아픔이었지만 하나님은 이 런 행동을 통하여 백성들에게 말씀과 교훈을 주시는 것입니다. 인간의 힘으로 부족하다. 이제 에스겔의 이상스런 행동을 통하여 주시려는 하나님의 교훈 을 살펴 보십시다. 첫번째는 예루살렘 성의 함락입니다. 유대인들 은 이런 국가의 위기를 맞으면 흔히 남쪽에 있는 강대국 애굽과 동맹을 맺고 공동으로 국난을 해결하려고 했고, 애굽도 많은 군 대를 동원하여 유대를 도왔습니다. 그러나 바벨론의 마지막 공격 에는 애굽의 도음도 소용이 없이 유대는 함락되고 맙니다. 이를 가르켜 이사야 선지자는 애굽을 의지하지 말라. 애굽은 "상한 갈 대 지팡이"(사36:06)에 불과하다고 하였습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도 큰 교훈을 주십니다. 인간은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자신을 위한 완벽한 성을 구축하려고 합니다. 돈과 지 식과 기술과 권력, 하면 된다는 자신의 적극적인 의지까지를 총 동원하여 자신의 성을 쌓아 올리고 그렇게 하면 성공하는 줄 알 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을 합니다. 인간의 바벨탑은 결국 무너지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악인의 소행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고 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의지할 것을 의지하지 않고 갈대 지 팡이인 자신들의 힘과 능력으로 인생의 철옹성을 쌓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는 이런 인간의 바벨탑이 무너지는 소 리가 요란스럽게 들려 오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강하게 도전을 주십니다. 그런 함정에 빠져 들어가 자신을 의지하는 어리석은 인간이 되지 말라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 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라"(마6:33)고 하십니다. 우리 인간은 먼저 주님을 의지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인간의 여러 조건들을 활용하여야 합니다. 이 것이 정상적인 생활 방법입니다. 이럴때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더하시겠다고 하신다고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이런 순서를 알고 인생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죄의 대가 인간이 스스로 쌓아 올린 것이 무너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것은 인간 스스로 범한 죄때 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두번째
부분은 죄로 인한 이스라엘의 무너짐과 당하는 고통을 예언하 였고 죄의 값은 반드시 지불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겔04:04 "너는 또 좌편으로 누워 이스라엘 족속의 죄악을 당하되 네 눕는 날 수대로 그 죄악을 담당할지니라" 그리고 오늘의 말씀은 단순히 죄의 댓가를 지불한다는 차원이 아 니라 좀더 구체적으로 죄는 그 경중에 따라 댓가도 다르게 지불 된다는 것을 보여 주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죄를 위해서는 390일을, 유다의 죄를 위해서는 40일을 담당하라고 한 것이 바로 그런 교훈입니다. 겔04:05-06 "내가 그들의 범죄한 햇수대로 네게 날수를 정하였나 니 곧 삼백 구십일이니라 너는 이렇게 이스라엘 족속의 죄악을 담당하고 그 수가 차거든 너는 우편으로 누워 유다 족속의 죄악 을 담당하라 내가 네게 사십일로 정하였나니 일일이 일년이니라" 그 다음 죄의 댓가는 어떤 것으로 지불되는 것도 명시를 하셨는 데 고통과 부자유로 지불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스겔이 오른 쪽으로 누어 390일간, 왼쪽으로 누어 40일간을 지냅니다. 한쪽으 로만 누어있는 것은 고통과 부자유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에서도 지극히 평범한 거짓 말 한마디가 나의 행동을 속박하고, 양심을 억매이게 하고, 삶에 고통을 줄때가 허다합니다. 눈에 띠지도 않는 작은 부정한 일이 영적으로 부자유하게 하 고, 정신적으로 큰 중압감을 주고, 양심적인 생활에 억매임과 고 통을 줄 때가 있습니다. 겔04:08 "내가 줄로 너를 동이리니 네가 에워싸는 날이 맞도록 몸을 이리 저리 돌리지 못하리라" 죄는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고통으로 그 댓가를 치르게 하는 것 입니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하지 아니하면 죄에서 자유함은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다시 한 번 나를 얽매는 죄를 찾아 철저하게 회개하고 주님이 주시는 자유함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다음, 죄의 댓가는 영적인 고통만 아니라 생존에도 위협을 주는 것입니다. 인간이 생존을 위해서는 음식을 먹어야 하고, 배불 리 음식을 먹을 때 사람은 만족과 기쁨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의 댓가를 치루는 이스라엘에게는 먹을 음식과 마실 물이 핍절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밀과 보리와 콩과 팥과 조와 귀리 등 6가지 잡곡을 석어 "떡을 만들어" 먹으라는 하였습니다. 잡곡만으로 떡을 만들어 먹는 것도 고통스런 일이지만, 분량도 넉넉한 것이 아니라 저울에 달아 "하루 이십 세겔 중씩"으로 제 한하였습니다. 이 분량은 평소의 1/3에 해당되는 분량입니다. 그 리고 물도 "힌 육분 일씩 되어서 때를 따라 마시"는데 "힌 육분 일"의 물은 3홉정도의 물입니다. 그리고 더욱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음식을 만드는 연료입니다. 그것은 "인분으로 불을 피워 구"워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아라비 아인들은 짐승의 분뇨를 말려서 연료로 사용하였다고 합니다만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짐승의 분뇨가 아니라 인분을 말려서 그것 을 땔감으로 사용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13절을 보십시다. 겔04:13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내가 열국으로 쫓아 흩을 이스 라엘 자손이 거기서 이와 같이 부정한 떡을 먹으리라 하시기로"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버림을 받고 열국으로 분산되는 것도 서러 운데, 먹는 것도 흡족하지 못하고, 누추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음식을 고생의 떡과 고생의 물이라고 성경은 표현하 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욱 괴로운 것은 그런 음식은 자 신의 영혼까지 더럽게 하고 인격과 품격에 손상을 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스겔은 다음과 같이 부르짓습니다. 겔04:14 "내가 가로되 오호라 주 여호와여 나는 영혼을 더럽힌 일이 없었나이다" 이 말은 "배곱은 것은 참을 수 있지만 인격이 더럽혀 지고, 영혼 이 손상되는 것은 참을 수 없습니다"라는 뜻입니다. 죄의 궁국적 인 댓가는 그 사람의 인격이 무너지고 더럽혀지는 것입니다. 대속의 원리 그러면 죄의 문제는 영원히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미제의 안건 으로 남는 것입니까 아니면 또 다른 해결 방안이 있습니까 마지 막으로 오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큰 교훈에 귀를 기울려 주시기 바랍니다. 에스겔은 이스라엘 백성의 죄 때문에 430일을 누어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민족의 죄를 대신 감당한 것이 아니라 모의적으로 감당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면 에스겔 선지자처럼 백성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그들이 당 해야할 고통과 저주를 대신 담당해 주시는 분은 없으십니까 그 분이 곧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모의 적으로 담당해 주었으나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 지셨고, 십자가에서 죄인들이 당해야할 모든 고통을 친히 당하셨 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위해 하나님이 마련한 구원의 길이요, 이 것을 나의 것으로 받고 믿는 것이 속죄입니다. 믿으시라. 구원을 누리시라. 결론 이제 결론을 내리겠습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사함을 받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우리의 죄의 댓가를 대신 지불해 주셨기 때문이며 그 사실 을 나의 받아 드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성도들은 죄를 마음대 로 지어도 괜찮습니까 예수님이 우리 죄의 댓가를 다 지불하셨 기 때문에 그렇게 해도 괜찮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것이 아닙니다. 성도들은 죄의 댓가로 지옥의 형벌은 받지를 아니합니다. 그러나 성도가 성도다운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 성도들이 죄를 지을때 하나님은 가혹할 정도로 징계의 채찍을 가하는데 이것은 피할 수 없습니다. 만일 성도에게 징계가 없으면 그는 "내가 하나님의 자 녀인가하나님이 나를 과연 사랑하시는가"를 물어야 하는 것 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성도들이 하나님보다 인간인 자신을 더 의 지하거나, 교만하지 못하도록 하십니다. 죄를 지으면서 양심의 가책을 못 느끼고, 하나님보다 인간을 의지하는 것이 자유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깨우치기 위해서 때로는 390일간든, 40일간이든 철저하게 낮아 질때까지 부자유하게 묶어 두시고, 때로는 생활의 문제 뿐 아니라 인격의 손상까지 주시면서 철저하게 회개시키고, 낮아지게 하고, 겸손하게 하고, 전적으로 신뢰하는 사람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런 고통은 저주가 아니라 축복입니다. 이런 고통을 통하여 사람다워 지고, 신자다워지고, 하나님의 자녀 다워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오늘의 말씀을 통하여 깨져야 할 것이 무엇 이고, 세워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를 살피도록 하십니다. 그리고 말씀 중심의 삶을 통하여 여러분의 성화의 삶이 세워져 주님의 은총과 축복을 받는 성도들이 되고, 그래서 진정한 축복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의 행동 예언을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의 죄에 대하여 경고를 내리며, 아울러 구원의 도리를 가르치고 있다. 그가 행동으로 보인 예언은 오른쪽으로 누어 390일간, 왼쪽으 로 누어 40일간을 지내며 음식도 극히 소량을 먹는다. 이 사실은 그들이 범죄한 날 수를 계산하여, 고통과 부자유 그리고 생활의 핍절 뿐 아니라 인격의 손상으로 징계하실 것을 경고하시는 것이다. 이런 선지자의 고통과 예언을 보면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돌아았어야 했다. 이런 선지자의 행동 예언은 신약적인 의미를 더 강하게 가지고 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고통과 죽음을 당하신으로 완전한 속죄를 이루시며, 아 사실을 나의 것으로 받아 들일 때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에 스겔의 행동 예언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매우 이상한 일이었지만 이 예언은 앞으로 오실 메시야의 역할을 백성들에게 보여 주시는 사건이기도 하였다. 우리는 에스겔이 취한 이상한 행동을 보면서 나를 위해 고난을 당하시는 예수님을 발견하고 그의 구속을 나의 것으로 삼아야 하 겠다.
그런데 오늘 말씀을 보면서 그 사람도 나름대로 철학이 있었구나 하는 것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하나님의 지시에 따라 이상한 행동을 하는데 에 스겔서를 읽어보면 이런 이상한 행동을 종종 발견하게 됩니다. 그것은 백성들의 시선을 집중시킨 다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기 위해서 였습니다. 본문의 줄거리 에스겔 선지자가 취한 이상한 행동은 첫번째는 1-3절에 박석이라는 토판에 그림을 그렸는데 예루살렘 성을 그리고 이방 군대들이 이 성을 포위하고 공격을 하는 그립입니다. 두번째는 4-8절에서 오른 쪽으로 누어 390일, 왼 쪽으로 누어 40일간을 지냅니다. 세 번째는 9-17절에 밀과 보리와 콩 등 여러가지 잡곡을 석어 음식 을 만들되, 쇠똥 말린 것으로 구워 먹는 것이었습니다. 이런 행동을 요구하신 하나님은 종종 그의 종들에게 상상을 초월 하는 행동을 요구하시고 이런 행동을 통하여 말씀을 주실 때가 있었습니다. 이런 것을 행동 예언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호세아 서를 보면 하나님은 선지자에게 기와 같은 음란한 여성을 아내로 맞으라고 하시고, 그에게 자녀가 출생하자 그 이름을 이 스르엘, 혹은 로루하마, 혹은 로암미라는 이름을 붙혀 줍십니다. 이스르엘이란 뜻은 이스라엘 국가를 폐지하시겠다는 뜻이고, 로 루하마란 하나님이 다시는 이스라엘 백성을 긍휼히 여기지 않으 시겠다는 뜻이고, 로암미는 너희는 나의 백성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이런 것은 선지자 개인에게는 큰 아픔이었지만 하나님은 이 런 행동을 통하여 백성들에게 말씀과 교훈을 주시는 것입니다. 인간의 힘으로 부족하다. 이제 에스겔의 이상스런 행동을 통하여 주시려는 하나님의 교훈 을 살펴 보십시다. 첫번째는 예루살렘 성의 함락입니다. 유대인들 은 이런 국가의 위기를 맞으면 흔히 남쪽에 있는 강대국 애굽과 동맹을 맺고 공동으로 국난을 해결하려고 했고, 애굽도 많은 군 대를 동원하여 유대를 도왔습니다. 그러나 바벨론의 마지막 공격 에는 애굽의 도음도 소용이 없이 유대는 함락되고 맙니다. 이를 가르켜 이사야 선지자는 애굽을 의지하지 말라. 애굽은 "상한 갈 대 지팡이"(사36:06)에 불과하다고 하였습니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도 큰 교훈을 주십니다. 인간은 자신의 힘과 능력으로 자신을 위한 완벽한 성을 구축하려고 합니다. 돈과 지 식과 기술과 권력, 하면 된다는 자신의 적극적인 의지까지를 총 동원하여 자신의 성을 쌓아 올리고 그렇게 하면 성공하는 줄 알 고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을 합니다. 인간의 바벨탑은 결국 무너지는 것이라고 말입니다. 그래서 악인의 소행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다고 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의지할 것을 의지하지 않고 갈대 지 팡이인 자신들의 힘과 능력으로 인생의 철옹성을 쌓으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 사회는 이런 인간의 바벨탑이 무너지는 소 리가 요란스럽게 들려 오고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의 말씀은 오늘 우리에게 강하게 도전을 주십니다. 그런 함정에 빠져 들어가 자신을 의지하는 어리석은 인간이 되지 말라고 말입니다. 그러면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 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라"(마6:33)고 하십니다. 우리 인간은 먼저 주님을 의지하여야 합니다. 그리고 나서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인간의 여러 조건들을 활용하여야 합니다. 이 것이 정상적인 생활 방법입니다. 이럴때 하나님은 이 모든 것을 더하시겠다고 하신다고 약속을 하신 것입니다. 이런 순서를 알고 인생을 살 수 있기를 바랍니다. 죄의 대가 인간이 스스로 쌓아 올린 것이 무너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 것은 인간 스스로 범한 죄때 문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의 두번째
부분은 죄로 인한 이스라엘의 무너짐과 당하는 고통을 예언하 였고 죄의 값은 반드시 지불된다는 것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겔04:04 "너는 또 좌편으로 누워 이스라엘 족속의 죄악을 당하되 네 눕는 날 수대로 그 죄악을 담당할지니라" 그리고 오늘의 말씀은 단순히 죄의 댓가를 지불한다는 차원이 아 니라 좀더 구체적으로 죄는 그 경중에 따라 댓가도 다르게 지불 된다는 것을 보여 주십니다. 그래서 이스라엘의 죄를 위해서는 390일을, 유다의 죄를 위해서는 40일을 담당하라고 한 것이 바로 그런 교훈입니다. 겔04:05-06 "내가 그들의 범죄한 햇수대로 네게 날수를 정하였나 니 곧 삼백 구십일이니라 너는 이렇게 이스라엘 족속의 죄악을 담당하고 그 수가 차거든 너는 우편으로 누워 유다 족속의 죄악 을 담당하라 내가 네게 사십일로 정하였나니 일일이 일년이니라" 그 다음 죄의 댓가는 어떤 것으로 지불되는 것도 명시를 하셨는 데 고통과 부자유로 지불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스겔이 오른 쪽으로 누어 390일간, 왼쪽으로 누어 40일간을 지냅니다. 한쪽으 로만 누어있는 것은 고통과 부자유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우리들의 삶에서도 지극히 평범한 거짓 말 한마디가 나의 행동을 속박하고, 양심을 억매이게 하고, 삶에 고통을 줄때가 허다합니다. 눈에 띠지도 않는 작은 부정한 일이 영적으로 부자유하게 하 고, 정신적으로 큰 중압감을 주고, 양심적인 생활에 억매임과 고 통을 줄 때가 있습니다. 겔04:08 "내가 줄로 너를 동이리니 네가 에워싸는 날이 맞도록 몸을 이리 저리 돌리지 못하리라" 죄는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고통으로 그 댓가를 치르게 하는 것 입니다. 진리가 우리를 자유케 하지 아니하면 죄에서 자유함은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러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 다시 한 번 나를 얽매는 죄를 찾아 철저하게 회개하고 주님이 주시는 자유함을 얻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 다음, 죄의 댓가는 영적인 고통만 아니라 생존에도 위협을 주는 것입니다. 인간이 생존을 위해서는 음식을 먹어야 하고, 배불 리 음식을 먹을 때 사람은 만족과 기쁨을 느끼는 것입니다. 그러나 죄의 댓가를 치루는 이스라엘에게는 먹을 음식과 마실 물이 핍절했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밀과 보리와 콩과 팥과 조와 귀리 등 6가지 잡곡을 석어 "떡을 만들어" 먹으라는 하였습니다. 잡곡만으로 떡을 만들어 먹는 것도 고통스런 일이지만, 분량도 넉넉한 것이 아니라 저울에 달아 "하루 이십 세겔 중씩"으로 제 한하였습니다. 이 분량은 평소의 1/3에 해당되는 분량입니다. 그 리고 물도 "힌 육분 일씩 되어서 때를 따라 마시"는데 "힌 육분 일"의 물은 3홉정도의 물입니다. 그리고 더욱 고통스럽게 하는 것은 음식을 만드는 연료입니다. 그것은 "인분으로 불을 피워 구"워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아라비 아인들은 짐승의 분뇨를 말려서 연료로 사용하였다고 합니다만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짐승의 분뇨가 아니라 인분을 말려서 그것 을 땔감으로 사용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13절을 보십시다. 겔04:13 "여호와께서 또 가라사대 내가 열국으로 쫓아 흩을 이스 라엘 자손이 거기서 이와 같이 부정한 떡을 먹으리라 하시기로" 죄로 인하여 하나님의 버림을 받고 열국으로 분산되는 것도 서러 운데, 먹는 것도 흡족하지 못하고, 누추하게 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 음식을 고생의 떡과 고생의 물이라고 성경은 표현하 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욱 괴로운 것은 그런 음식은 자 신의 영혼까지 더럽게 하고 인격과 품격에 손상을 시키는 것입니다. 그래서 에스겔은 다음과 같이 부르짓습니다. 겔04:14 "내가 가로되 오호라 주 여호와여 나는 영혼을 더럽힌 일이 없었나이다" 이 말은 "배곱은 것은 참을 수 있지만 인격이 더럽혀 지고, 영혼 이 손상되는 것은 참을 수 없습니다"라는 뜻입니다. 죄의 궁국적 인 댓가는 그 사람의 인격이 무너지고 더럽혀지는 것입니다. 대속의 원리 그러면 죄의 문제는 영원히 인간이 해결할 수 없는 미제의 안건 으로 남는 것입니까 아니면 또 다른 해결 방안이 있습니까 마지 막으로 오늘의 말씀을 통하여 우리에게 주시는 가장 큰 교훈에 귀를 기울려 주시기 바랍니다. 에스겔은 이스라엘 백성의 죄 때문에 430일을 누어 있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민족의 죄를 대신 감당한 것이 아니라 모의적으로 감당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면 에스겔 선지자처럼 백성의 죄를 대신 짊어지고 그들이 당 해야할 고통과 저주를 대신 담당해 주시는 분은 없으십니까 그 분이 곧 우리의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모의 적으로 담당해 주었으나 예수 그리스도는 인간의 죄를 대신 짊어 지셨고, 십자가에서 죄인들이 당해야할 모든 고통을 친히 당하셨 습니다. 이것이 우리를 위해 하나님이 마련한 구원의 길이요, 이 것을 나의 것으로 받고 믿는 것이 속죄입니다. 믿으시라. 구원을 누리시라. 결론 이제 결론을 내리겠습니다. 성도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죄사함을 받습니다. 그 이유는 그가 우리의 죄의 댓가를 대신 지불해 주셨기 때문이며 그 사실 을 나의 받아 드렸기 때문입니다. 그러면 성도들은 죄를 마음대 로 지어도 괜찮습니까 예수님이 우리 죄의 댓가를 다 지불하셨 기 때문에 그렇게 해도 괜찮지 않습니까 그러나 그것이 아닙니다. 성도들은 죄의 댓가로 지옥의 형벌은 받지를 아니합니다. 그러나 성도가 성도다운 삶을 살도록 하기 위해, 성도들이 죄를 지을때 하나님은 가혹할 정도로 징계의 채찍을 가하는데 이것은 피할 수 없습니다. 만일 성도에게 징계가 없으면 그는 "내가 하나님의 자 녀인가하나님이 나를 과연 사랑하시는가"를 물어야 하는 것 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의 성도들이 하나님보다 인간인 자신을 더 의 지하거나, 교만하지 못하도록 하십니다. 죄를 지으면서 양심의 가책을 못 느끼고, 하나님보다 인간을 의지하는 것이 자유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깨우치기 위해서 때로는 390일간든, 40일간이든 철저하게 낮아 질때까지 부자유하게 묶어 두시고, 때로는 생활의 문제 뿐 아니라 인격의 손상까지 주시면서 철저하게 회개시키고, 낮아지게 하고, 겸손하게 하고, 전적으로 신뢰하는 사람이 되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이런 고통은 저주가 아니라 축복입니다. 이런 고통을 통하여 사람다워 지고, 신자다워지고, 하나님의 자녀 다워지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오늘의 말씀을 통하여 깨져야 할 것이 무엇 이고, 세워야 할 부분이 무엇인지를 살피도록 하십니다. 그리고 말씀 중심의 삶을 통하여 여러분의 성화의 삶이 세워져 주님의 은총과 축복을 받는 성도들이 되고, 그래서 진정한 축복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의 행동 예언을 통하여 이스라엘 민족의 죄에 대하여 경고를 내리며, 아울러 구원의 도리를 가르치고 있다. 그가 행동으로 보인 예언은 오른쪽으로 누어 390일간, 왼쪽으 로 누어 40일간을 지내며 음식도 극히 소량을 먹는다. 이 사실은 그들이 범죄한 날 수를 계산하여, 고통과 부자유 그리고 생활의 핍절 뿐 아니라 인격의 손상으로 징계하실 것을 경고하시는 것이다. 이런 선지자의 고통과 예언을 보면서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돌아았어야 했다. 이런 선지자의 행동 예언은 신약적인 의미를 더 강하게 가지고 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를 대신 짊어지시고 고통과 죽음을 당하신으로 완전한 속죄를 이루시며, 아 사실을 나의 것으로 받아 들일 때 구원을 얻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에 스겔의 행동 예언은 당시 사람들에게는 매우 이상한 일이었지만 이 예언은 앞으로 오실 메시야의 역할을 백성들에게 보여 주시는 사건이기도 하였다. 우리는 에스겔이 취한 이상한 행동을 보면서 나를 위해 고난을 당하시는 예수님을 발견하고 그의 구속을 나의 것으로 삼아야 하 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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