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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전 문지방 (겔47:6-12)

본문

지나간 주일에도 성전 문지방에 대하여 말씀을 드렸습니다. 다섯 가지에 대하여 말씀을 드린 것으로 생각합니다.
1 우선 성전 문지방은 높아서는 안 된다는 말을 드렸고
2 물이 홀러내리는 근원은 성전 문지방이었고
3 그 믈은 고여있지 않고 계속 흘러 내렸으며
4 그 물은 점점 불어나서 나중엔 건널 수 없는 큰 강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5또, 에스겔은 그 물을 거슬러 올라가지 않고 물이 흘러 내리는 방향으로 따라갔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면서 저는 우리들의 신앙 체험. 은혜 체험이 발목보다는 무릎이, 무릎보다는 허리가, 허리보다는 온 몸이 물에 잠기어 헤엄치도록 하자고 말씀드렸습니다. 오늘도 계속해서 그 물에 관한 말씀을 드리려고 합니다.
1. '건너지 뭇할 강 이라는 말씀을 좀 더 깊이 생각해야겠습니다. 본문 3절을 자세히 보면 '나로 그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이 발목에 오르더니'라는 말이 있고, 4절을 보면 '나로 물을 건너게 하시니 물 이 무릎에 오르고 다시 건너니 물이 허리에 오르고U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4절을 보면 물이 강이 되었을 때 헤엄할 물이요 사람이 능히 컨 너지 못할 물이라'고 했을 뿐 '건너라'는 말씀을 안 하였습니다. 즉, '건너가라' 흑은 '혜엄쳐서 건너가라고 하시더라'는 말이 없습니다. 왜 발목이 잠겼을 때. 무이 잠겼을 때, 허리가 잠겼을 때는 '건너 가라'고 하시고 강이 된 다음엔 건너가라고 안하셨을까요 저는 거기에 몇 가지 뜻이 있다고 봅니다.
첫째는 강은 아무나 건널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인 가운데 한 강을 혜엄쳐 컨너갈 수 있는 분은 몇 사람이 안 되리라고 생각합니다. 수영에 자신이 있어야 컨널 수가 있습니다.
둘째는 믈에서는 누구든지 겸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제 아무리수 영에 자신이 있다고 하더라도 물에선 겸손해야 합니다. 알피니스트는 산에서 죽고, 물을 좋아하는 사람은 물에서 죽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사실은 수영을 잘하면 잘 할수록 물에서 조심을 하는 법 입니다.운 전경력이 많은 분들 일수록 자동차의 핸들을 잡을 때마다 겸손하고 조 심을 하게 됩니다. 위험을 알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말씀 드린쌔로 은 혜도 그렇습니다. 초보자가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정말 깊은 은혜를 체험한 분들은 자신을 드러내거나 자랑하거나 교만하지 않습니다. 예를 들면 창경원 안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창경원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이 그다지 신기하질 않습니다만 모처럼 서울에 올라 온 시골 아 이들한테는 신기한 일들이 아닐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창경원을 떠나 집으로 돌아가서도 창경원 에기가 떠나질 않게 됩니다.
셋째는 크고 넓은 강은 배를 타야 컨너 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수영에 자신있는 사람이 태평양을 수영으로 횡단하기 위해 뛰어들었읍니다. 거센 파도를 헤치며 헤엄쳐 나가는 그의 모습은 마치 거인이나 영응처럼 위대해 보였습니다, 그러나 얼마 가지못해 그는 지치기 시 작했습니다. 그토록 빠르고 여유있게 움직이던 손과 발에 가픈 해 초만 감겨도 털어버릴 수 없는 지경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무슨 뜻입 니까 사람이 자신을 믿는 것은 한계가 있다는 애깁니다. 그래서 바울사도는 빌럽보서 4장 13절에서 '나는 모든 것을 할 수 있다 그러나 내게 능력주시는 주님 안에서'라고 말씀했습니다 '노병은 죽지 않는다 다만 사라질 뿐이라'고 말하던 맥아더 장군도 그의 말처럼 사라졌습니다. 야고보서 4장 16절을 보면 '이제 너희가 허탄한 자랑을 자랑하니 이러한 자랑은 다 악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어떤 분은 건강 자랑만 했다하면 그 다음날 몸이 아프게 된다고 합니다. 건강이라는 것도 장담할 것은 아닙니다. 더우기 신앙이란 자랑해 선 안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넓은 강을 건널 수 있습니까 배를 타면 됩니다. 이 세상엔 쌔가 내 힘으로 건너지 못하는 강이 얼마나 많이 있습니까 건너다가 빠지는 강, 도무지 건널 수 없는 강들이 얼마나 많습니 까 배는 무엇을 상징합니까 구약성경 창세기 6장을 보면 노아가 잣나무를 켜서 배를 만든 얘기가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홍수로 세상 의 죄악을 심판하시기 전에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라고 명령하셨읍니다. 명령을 받은 노아는 아라랏 산 위에서 배 만드는 작업을 시작했고 흥수가 시작되자 노아의 식구들은 그 배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온 지면에 물이 가득 찼을 때 배를 탄 노아의 식구들과 그 안에 들 어 간 동물들만 목숨을 건졌습니다. 즉. 배를 탄 사람들만 구원을 받았습니다. 그 때도 홍수가 시작되기 전 상당기간 당시의 세상사람들에게 앞으로 큰 수가 있을 터인데 아 라랏 산에 만들어 놓은 배안으로 들어가면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요즘 말로 P.R을 했습니다만 아무도 믿지를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태복음 24장 37-39절을 보면 주님께서 노아 흥수시대를 예로 들어서 하신 말씀이 나오고 있습니다. '노아의 때와 이 인자의 임함도 그러하리라. 흥수 전에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 가들고 시집가고 있으면서 흥수가 나서 저희를 다 멸하기까지 깨닫지 못하였으니 인자의 임함도 이와 같으리라'고 구약시대의 이 배는 신약시대에 와서의 교회를 의미하게 되었고,결국은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 인생들의 방주. 구원의 배가 되신 것입니다. 결국 우리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서 우리의 모든 삶의 불 안. 초조. 번뇌, 고통, 죽음을 해결할 수가 있습니다. 예수라는 배를 타야 태평양보다 대서양보다 더 멀고 먼 험한 인생 의 바다를 항해해 나갈 수 있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7장을 보면 로마로 가던 '알렉산드리아' 라는 이름을 가진 배에 r6명의 선객이 타고 있었습니다. 항해도중 큰 랑을 만나 배가 침몰 직전의 위기에 처하게 되었을 때 =7장 18-19절을 보면 짐을 바 다에 풀어 버리고 배의 기구들도 저희 손으로 내어 버렸다'고 했옵니다. 그 배는 무역선이였기 때문에 값진 보물과 로마로 가져가는 상품 들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다 내 버렸습니다. 배에서 사용하는 기구들 도 다 내 버렸습니다. 다 내 버리고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만을 기다렸 을 때 저들은 기적적인 구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교우 여러분 ! 돈이 내 인생을 행복하게 만들어 준다고 착각하지 마십시요. 사회 적 신분이나 지위가 내게 평안과 기쁨을 가져다 준다고 오해하지 마십 시요. 오히려 그런 것들 때문에 인생이 더 괴롭고 고독할 때가 있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라는 배, 예수호를 타야 합니다. 예수 호의 선장도, 선주도, 기관사도, 갑판장도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그 배만 타면 무사히 바다를 항해할 수가 있습니다. 네째는 수영은 힘이 들기 때문입니다. 저는 수영을 잘못합니다만 수영은 힘이 좋아야 합니다. 이른바 스테미너가 좋아야 합니다. 그래 야 빨리 멀리 오래 수영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수영을 잘 하려면 폐활량이 커야 합니다. 즉 건강해야 합니다. 여러분 ! 어떻게 강을 런널 수 있습니까 능력을 받아야 합니다. 영적인 힘이 있어야 합니다. 우리의 영이 건강해야 합니다. 그래서 사도행전 1장 8절을 보면 '오직 성령님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고 세상을 살아나가 려면 힘든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지칠대로 지치게 됩니다. 그럴 때 힘이 되시는 주님의 손을 잡아야 합니다. 내가 강하다고 느낄 때 주님을 필요로 하지 않게 됩니다. 그러나 내가 약하다고 느낄 때. 내 가 넘어졌다고 느낄 때. 내가 고독하다고 느낄 때 주님을 필요로 하게 됩니다. 그때 주님의 손을 붙잡고 주님의 도움을 요청해야 합니다. 그러면 주님은 나를 도와 줍니다. 나와 같이 동행해 주시는 것입니다.
2. 강 좌우에는 나무가 많았습니다. 지금까지는 강의 흐름에 대해 말씀을 드렸습니다만 이제부터는 강 물이 흐르고난 결과에 대하여 말씀드리겠습니다. 7절을 보면 '내가 돌아간 즉 강 좌우편에 나무가 심히 많더라'고 했 습니다. 또 12절을 보면 '강 좌우 가에는 각종 먹을 실과 나무가 자라 서 그 잎이 시들지 아니하며 실과가 끊치지 아니하고 달마다 새 실과를 맺으리니 그 물이 성소로 말미암아 나옴이라 그 실과는 먹을만 하 고 그 잎사귀는 약 재료가 되리라'고 했습니다. 마치 신약성경의 요한 계시록 22장1-2절을 읽는 기분입니다. 왜 이처럼 나무가 많고 실과가 성하게 열렸을까요 그것은 강물이 좋기 때문입니다. 세계 문화의 발상지는 모두가 강이었습니다. 시편 1편 3절을 보면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 지 아니함 같으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영원한 생명강 가에 내 인생의 뿌리가 내리면 내 인생은 요한 삶 을 누리게 됩너다. 새로운 문화, 새 역사. 새 인생이 발상하게 됩니다.
3. 이 강물이 흘러감에 따라 바닷믈이 소성했습니다. 8-9절을 보면 '이 흘러 네리는 물로 그 바다의 물이 소성함을 얻을 지라. 이 강물이 이르는 곳마다 번성하는 모든 생물이 살고 또 고기가 심히 많으리니 이 물이 흘러들어 가므로 바닷물이 소성함을 얻겠고 이 강이 이르는 각처에 꼬든 것이 살 것이며'라고 했습니다. 복음의 강물이 홀러 들어가는 곳에 새 역사가 일어납니다. 썩은 바다에 이 강물이 흘러 들어감으로 바다가 살아 납니다. 죽어 가던 고기떼들이 다시 살아나 뛰놀게 되고 어항으로서도 필요 가치가 없어져서 폐항 위기에 놓였던 그 바다도 어부들이 모여들어 성시를 이 루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개인의 심령에 들아가면 개인 의 영흔이 살아납니다. 가정에 들어가면 가정이 삽니다. 그 사회나 국 가가 복음을 받아드리면 썩은 바다가 소성하는 것처럼 새 역사가 창조 됩니다. 교인이 많은 나라가 잘 사는 것이 아니라 예수를 믿는 사람이 많은 나라가 잘 살게 됩니다. '죄짐을 지고서 곤하거든 네 맘 속에 주 영접하며 새 사람되기를 원하거든 네 구주를 영접하라 의심을 다 버리고 구주를 영접하라 맘 문 다 열어놓고 네 구주를 영접하라.'
4. 진펄과 개펄은 소성하지 못하고 소금 땅이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진펄과 개펄은 예수 냄새만 맡었을 뿐 은혜의 강물 에 뛰어들지 않은 사람들 ! 은혜의 강가에서 구경만 했지 발을 들여 놓지 않은 사람들을 의미합니다. 히브리서 12장 15절을 보면 '너희는 돌아보아 하나님의 은혜에 이르지 못하는 자가 있는가 두려워하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예수를 아는 것은 지식입니다. 구원은 지식으로 받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은 믿음으로 얻습니다. 아무리 알아도 믿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소금 땅이 된다는 것은 쓸모 없는 땅을 의미합니다. 분이 있는 땅 에서는 식물도 자라질 못 합니다. 농사도 할 수가 없습니다. 교우 여러분 은혜의 강가로 나갑시다. 그 강 속에 발목. 무릎, 허리를 담급시다. 그리고 그 은혜의 바다에 서 헤 엄칩시다. 헤엄치기 위해 힘을 얻읍시다. 그리고 내 힘으로 헤엄 치지 못할 때 예수호를 탑시다. 그리하여 고달픈 인생의 바다를 항해 나갑시다. 460장 찬송을 불러 보십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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