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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의 파수꾼이 되자 (겔3:16-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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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국민들은 1968년 1월 21일에 일어난 간첩 김신조 일당이 청와대를 습격하던 일들을 잘 알고 있습니다. 김신조 일당이 북한에서 남파되어 서울 중심가를 활보하며, 청와대를 습격할 때까지 군인들이나 경찰들에게 검문 검색을 한 번도 받지 아니했습니다. 그가 체포된 후에 심문을 통해 고백된 사실은 당시 파수를 보았던 군인들이 한결같이 임무에 대해 태만히 했다는 사실입니다. 파수꾼이 그 사명을 다하지 못했던 일로 인해 우리 나라가 엄청난 불행을 당할 뻔했습니다. 또 십여년 전 최전방에서 있었던 사건인데, 밤중에 모든 소대원이 잠든 상태에서 파수를 보던 병사가 지루함을 이기지 못하여 잠시 근무지를 이탈했습니다. 그 사이 남파한 간첩에 의해 막사에서 잠자고 있던 소대원 전원이 화염 방사기로 몰사를 당하였습니다. 이처럼 군사 경계선을 지키는 파수꾼의 사명은 모든 사람의 생과 안전에 직접적인 연관이 있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도 하나님 나라의 파수꾼입니다. 덴마크의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말하기를 “살아 있는 교회는 전투하는 교회”라고 하였습니다. 교회는 전투적인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만약 교회가 전투를 중단하거나 파수하는 사람들이 잠들어 버리면 교회는 악한 세력에 의해 잠식당하며, 고통 당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세상의 악한 영들과 영적으로 전투하기 위해 항상 깨어 있으면서 싸울 준비를 갖추어야 합니다. 사단과 대치한 상태에서 늘 전투하며 살아가야 하는 긴박한 상황에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교회에 속한 파수꾼으로 살아가야 하듯이 에스겔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대에 하나님께서 파수꾼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1. 에스겔은 하나님께 파수꾼으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 쳐들어와서 유다 백성들을 잡아 갈 때에(왕하24:10-14) 에스겔 선지자도 함께 끌려갔습니다. 이들이 끌려가게 된 것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바로 살지 못하고 범죄하며, 타락하며, 하나님보다 주변 강대국을 더 의지하며, 가까이 계신 하나님보다 먼 나라에서 수입해 온 우상들을 섬기고, 물질에 탐욕과, 불의한 재판과, 토색과 착취로 살아왔기 때문입니다. 선지자들로부터 하나님의 말씀들을 많이 들었으나 새겨듣지도 아니하였고 받아들이지 아니하였으며, 귀를 즐겁게 해주는 좋은 말들만을 듣기를 원하였던 것입니다. 그리고 바벨론에 끌려와서도 정신을 차리지 못하였습니다. 영적으로 바로 서고 신앙이 회복되어 고국으로 돌아가려는 마음보다는 바벨론의 그발 강가에서 앉아서 “여기도 좋사오니”하며 살려고 한 백성들이었습니다. 처음에는 회개하기도 했으나 곧 낙담에 빠져 소망이 없었으며, 하나님을 만홀히 여겼으며, 영적으로는 소경과 귀머거리가 되어 선포되어지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하였던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우리는 아브라함의 자손이요, 하나님의 선민이라는 우월감에 빠져 하나님의 은총과 복을 받을 것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러나 에스겔은 민족과 나라를 위하여 그발 강가에서 눈물을 흘리며 기도했으며, 백성들의 안일 무사주의의 모습을 보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탄식하며, 이 민족이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살기를 원했으며, 그 원하는 것이 간절한 소원과 열정으로 바뀌었던 것입니다. 에스겔은 바벨론의 그발 강가에서 정착하여 포로 생활하던 5년째 되는 해에 "하나님의 뜻이 임하여" 예언을 하게 되었는데, 그 예언 중 본문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파수꾼으로서 사명을 주셨던 것입니다. 사실 에스겔은 유다 나라가 바벨론에게 멸망된 시대를 살아가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사명을 다하지 못한 자책감에 빠져서 늘 괴로워하고 있었습니다. 백성들의 영적인 모습을 보며 괴로워하고 있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파수하는 사명을 주시는 것입니다.
2. 하나님은 왜 에스겔에게 파수꾼의 사명을 주셨습니까 그들은 말씀을 듣지 아니했기 때문입니다. 유다 백성들이 바벨론에 끌려간지 5년이 지나면서 절망에 빠져 있을 때에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사명을 주셨고, 사명을 받은 에스겔은 그때부터 열심히 하나님의 말씀을 외쳤습니다. 그러나 외치는 소리에 백성들은 잠시 말씀을 듣는 듯하다가 계속되는 고난 속에서 곧 실망을 하며, 선민으로서의 삶의 의미를 잃어버렸습니다. 사람들은 왜 사는지를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아니한 그들은 이방 땅에서, 이방인들을 위하여, 고통을 당하는 민족이 되어 버렸습니다. 하나님의 선민인지 아닌지 구별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선민이면서도 선민인지 아닌지도 구분이 없어졌다는 것은, 거룩한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자격이 없어졌다는 것입니다. 모든 꿈들이 사라지기 시작했으며 고국으로 돌아가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점점 줄어들었습니다. 이방인들과 결혼하며, 이방 종교로 개종하며, 바벨론 나라로 국적을 옮겨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더 이상 거룩한 선민이 아니라 이방 민족 중에 한 민족에 불과했습니다. 영적으로 나태해 질 때에 원수 마귀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마귀는 언제나 우는 사자 같이 삼킬 자를 찾고 있으며, 범죄의 올무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파수꾼은 백성의 생명과 재산을 보호하며, 평안을 유지하기 위하여 필요합니다.
그러므로 파수꾼은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마24:42에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하였으니 우리가 나라와 민족과 교회를 파수해 나가는 사람이라면 우리의 영이 항상 깨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 파수꾼으로 살아온 사람들은 누구입니까 아브라함은 나약한 신앙을 가진 롯과 부패하고 타락한 소돔을 향하여 높은 산 위에 올라가서 날마다 기도하였습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공의가 사라지고 부패 타락한 민족을 향하여 날마다 외치며 열정적으로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제사장, 레위인, 종교 지도자들, 정치인, 상인, 남자들, 심지어 부녀자들까지 타락하여 방탕하며, 사치 가 극에 달하는 망국 병에 빠져 있는 민족과 사회를 향하여 외치는 자의 사명을 다하였습니다. 미가 선지자는 눈 어두운 파수꾼은 평강을 외치지만 그러나 백성들에게 무엇인가를 채워 주지 못한다면서 소리 높여 외 쳤습니다. 백성들을 바로 이끌어 가야 할 지도자들이 백성들에게 뇌물을 요구하고, 뇌물의 금액에 따라서 특혜를 베풀어주거나 재판하고, 종교 지도자들은 돈을 받기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교훈하며 주의 이름을 빙자하여 거 짓을 행하였던 그 불의한 시대를 향하여 오직 진실한 파수꾼의 역할을 다 하였던 것입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북방에서 기울어지는 끓는 가마의 환상을 보았는데, 이는 우연한 환상이 아니라 불의한 예루살렘과 타락한 백성들이 하나님 앞에서 바로 살지 못할 때 하나님의 징계는 곧 다가올 것이며, 눈 어둡고 완악하고 불 신앙적인 백성들의 영적 상태를 바로잡기 위해 눈물을 흘리면서까지 말씀을 전하고 외쳤던 사람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세우신 파수꾼은 하나님의 말씀을 분명하고도 정확하게 전하였습니다. 자신에게 어려운 일들이 다가와도 그 시대에 자기를 들어 쓰시는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 말씀을 외쳤던 것입니다. 미가야는 거짓 선지자 시드기야의 뺨을 맞고도 말씀을 외쳤습니다. 예레미야는 시드기야와 방백들이 진흙 구덩이에 던져 죽이려 해도 불타는 의지로써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 하였으며, 종일토록 조롱과 모욕과 치욕을 당해도 말씀을 외쳤던 것입니다. 렘20:9에 "내가 다시는 여호와를 선포하지 아니하며 그 이름으로 말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나의 중심의 불붙는 것 같아서 골수에 사무치니 답답하여 견딜 수 없구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이 그의 심정이요, 열심이요 파수하는 사람의 신앙과 신념이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파수하는 사명을 주시고 백성들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의 나라를 잘 지켜 나가기를 원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말씀대로 바로 사는가를 살펴보게 하셨습니다. 또 말씀을 백성들에게 전달하게 하셨습니다.
3. 우리는 이 시대에 어떠한 파수꾼이 되어야 합니까 이 시대를 바로 볼 줄 알아야 합니다. 110여년전 한국을 찾았던 초기 선교사들은 깊고 경건한 영성을 소유하며 하나님 앞에서 산 사람들이었습니다. 복음의 확신을 가지고 분명한 신앙을 강조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한국에 복음을 전파하고 미개하고도 잠자고 있는 이 민족을 깨워서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것이 자기들의 사명임을 깨달았습니다. 이들은 잠자는 한국에 파수꾼으로서 살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윌리엄 고스포스” 선교사는 본국에 선교보고 하기를 “지금 코리아에서는 엄청난 회개를 동반한 성령님의 역사가 휘몰아치고 있는데 이는 마치 사도행전에 나타난 오순절 사건의 반복인 것처럼 느껴집니다. 엄청난 힘이 교회를 뒤엎고 있습니다”라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 교회를 바라볼 때 선교사들이 전해 주었던 신앙의 분위기를 얼마나 유지하고 있습니까 정통 신앙을 고수한다고 하면서도 한국 교회들은 영적으로 냉담하며, 생활은 세속화되어 가고 있으며, 예배는 형식화되어 가고, 대부분의 성도들은 뜨거운 열정들이 식어 가고 있습니다. “내 집은 만민이 기도하는 집”이라고 하면서도 기도가 사라져서 이제는 기도하는 교회가 아니라 기도 없는 교회로 변해 가고 있으며, 성도는 영적으로 갈망해서 교회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예배에 참여하고 교제하기 위해서 나오고 있으며, 말씀이 선포되어도 참회하며 각성하는 사람들을 보기가 힘들며, 설교하는 사람이나 듣는 사람들이 죄에 대한 깊은 도전들을 점점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이렇게 시대에 따라 신앙이 변하고 신학이 변하고 열정이 식어지며 어두움과 죄의 밤은 깊어 갈 때에 이 시대를 살아가는 파수꾼으로서 세움받은 성도라면 외쳐야 합니다. 우리는 이 시대에 내게 주신 하나님의 뜻과 사명을 바로 알고, 바로 보고, 바로 판단하여 분명한 신앙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성도가 파수꾼의 책임과 임무에 충실할 때만이 교회나 사회나 민족 앞에서 제사장의 나라가 될 수 있으며, 하나님의 백성이 될 수가 있으며, 미래의 한국교회가 비전있는 것입니다. 파수꾼은 높은 곳에 올라서는 소망이 있어야 합니다. 파수꾼이 서야할 위치는 산밑이 아니라 산 위에 입니다. 낮은 곳이 아니라 높은 곳입니다. 세상이라는 밑바닥에서 이리저리 뒹굴며 스스로 떨어져서 고뇌하고 갈등을 느끼며 고통 하는 삶이 아니라 주 하나님을 바라보며 높은 곳에 올라서야 합니다. 성도는 가만히 앉아서 편안히 쉴 수가 없습니다.
자기의 소욕대로 살아가는 깨끗치 못한 세상에서 우리마져 더러워져서는 안됩니다. 세상은 더럽고 추하게 변해 간다 해도 우리는 세상에서 정결하고 깨끗한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고개를 밑으로 떨구고 살아갈 것이 아니라 위를 향하여 바라보며 힘있게 살아가는 성도가 되어야 합니다. 지혜의 임금으로 알려진 솔로몬이 하루는 성전 건축 현장을 방문하고 일꾼들을 돌아보았다. "왜 당신은 여기서 일을 합니까" 한 일꾼이 대답을 했다. "아 그야 뭐 배운 것도 없고 이럭저럭 살아가려니 죽지 못해서 하고 있지요." 얼마쯤 가서 다른 일꾼에게 똑같이 물었다. "배운 도둑질이 일하는 것뿐이니 놀고먹을 수가 있나요, 그럭저럭 한세월 보내는 것이죠" 왕은 얼마쯤 가다가 또한 청년에게 같은 질문을 했다. "왜 여기서 일을 하느냐구요 정말 난 기뻐서 죽을 지경이지요 자, 보세요 나는 지금 하늘나라의 영광을 이 땅위에 드러내는 성전을 바로 이 손으로 돌을 쌓고 있지 않나요“ 이 손으로 쌓는 벽돌 한 장이 이 위대한 성전 의 작은 부분일지언정 큰 일을 이룬다는 것은 소명을 가지고 일하는 자 와 그렇지 못한 자의 엄청난 차이를 나타낸다는 것이다. 이처럼 우리가 서야 할 곳은 깊고 낮은 곳이 아니라 높은 곳입니다. 다 같은 예수를 같은 교회를 다니고 같이 봉사를 해도 낮은 곳에 선 자와 높은 곳에 선 자의 신앙이 다릅니다. 낮은 곳에 선 자는 자신의 선 위치를 비관하거나 그럭 저럭 한세월 보내는 신앙으로 살지만 높은 곳에 있는 성도는 자신을 살피며, 기쁨을 가지며,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해서 오늘도 최선을 다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는 파수꾼으로 살면서 주께서 말씀하신 뜻대로 살아갑시다.
눅21:34-36에 "너희는 스스로 조심하라 그렇지 않으면 방탕함과 술취함과 생활의 염려로 마음이 둔하여 지고 뜻밖에 그날이 덫과 같이 너희에게 임하리라 이날은 온 지구상에 거하는 모든 사람에게 임하리라, 이러므로 너희는 장차올 이 모든 일을 능히 피하고 인자 앞에 서도록 항상 기도하며 깨어 있으라"고 했습니다. 죄로 물든 세상 속에서도 비관하지 아니하며 거룩하신 주님을 사모하며 하나님의 거룩한 성품들을 덧입기 위해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오늘 우리는 하나님 앞에 파수꾼으로 꼭 필요한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예레미야나 에스겔 같이 영안이 열리고 말씀의 귀가 열려서 위를 바라보고 살아가는 성도가 되시기를 바랍니다. 파수꾼의 책임은 오늘 우리의 책임이요,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가 감당해야 할 사명임을 깨닫고 열심히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파수꾼은 주변에 불의한 것이 있는가를 세밀히 살펴야 합니다. 파수꾼은 자기에게 속한 사람들이 안전하게 살게 하기 위해서 남들이 잘 때에도 깨어서 살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방심해도 자기는 정신 바짝 차려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은 가까운 곳만 바라보더라도 자기는 먼 곳까지 멀리 바라보아야 합니다. 파수꾼은 자기의 생각이나 짐작 정도로 머물어서는 안됩니다. 현실뿐만 아니라 미래까지 내다보는 통찰력을 가져야 합니다. 교회가 언제나 조심할 것은 세상이라는 불의에 같이 놀아나서는 안됩니다. 교회는 세상의 요구에 민감하기 보다 하나님 앞에서 더 민감해야 합니다. 불의한 일들이 다가올 때 교회는 교회로서의 삶과 방향과 요구에 충실해야 합니다. 성도들은 세상의 불의한 것을 바라볼 때, 우리의 사명을 다하지 못한 자책감을 느끼고 눈물을 흘리며 통곡해야 합니다. 마치 예레미야 선지자가 불의한 백성과 민족을 보고 눈물을 흘리며 통곡했듯이 말입니다. 시대를 향하여 온몸을 적시면서까지 기도해야 합니다. 죄악 되고 타락한 요소가 우리에게나 교회에 들어오지 못하도록 세밀히 살피고 들어오지 못하도록 막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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