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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기다려야만 하는가? (겔36:22-38)

본문

"당신은 구원받았습니까" 아마도 여러분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예, 그럼요!" 그러면 구원이 무슨 뜻인가 대부분의 사람들은 이렇게 대답할 것이다. "암요, 하나님의 심판으 로부터 구원받고 천국 가는 길이랍니다." 더 나아가 영혼의 구원, 즉 죄사함과 새 마음과 새영을 포함시켜 말하기도 한다. 물론 천국 가는 것과 영혼 구원이 신앙에 있어서 두드 러진 요소들이긴 하지만, 그것이 '구원'의 전부라고 할 수 있을까 에스겔 36장에서는 '구원'이 그보다 훨씬 더 심오하고 많은 의미를 내포한다는 것을 보 여주고 있다. 구원이 우리의 육체를 포함한다는 것과 우리의 육체가 천국가는 것으로 끝 나는 것이 아니라 언젠가 부활하여 새로 창조된 새 땅에 우리가 살게 된다는 것까지 포 함한다고 밝히고 있다. 배 경 에스겔 36장에서 우리는 에스겔서 전체적으로 새로운 부분이 전개되고 있는 것을 발견 할 수 있다.
33장까지의 모든 예언들은 심판, 최후의 심판과 멸망에 대한 것이었다. 그런데 34장부터 갑자기 소망, 구원 그리고 회복과 같은 말로 메세지가 바뀌어진다. 이스라 엘이 바벨론을 떠나 본토로 돌아올 것이며 완전히 회복되리라고 선포한다. 이러한 변화를 가능케 한 33장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졌는가 33:21을 보자, "그 성이 함락되었다." 예루살렘은 멸망 당했다. 따라서 에스겔의 심판의 메세지는 성취되었다. 더 이상 경고할 필요가 이제 없어진 셈이다. 이스라엘은 회개하지 않았고 그래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았다.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났는가 아니다. 절대 아니다! 에스겔 1장에서 살 펴본 하나님의 영광의 계시가 기억나는가 그 계시의 일부분을 우리는 아직 공부하지 않 았다. 그 계시는 무지개이다(1:28). 무지개의 계시는 하나님의 영광과 신실하심의 상징 이다.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완전히 멸망시키진 않으실 것이다. 사랑과 은혜를 쏟아 부 으셔서 항상 남은 자가 있게 하신다. 그래서 에스겔은 마지막 34-48장에서 소망, 구원, 회복의 메세지 외에는 다른 어떤 것도 전하고 있지 않다. 어떻게 예언을 해석할 것인가 우리가 어떻게 36장을 설명할 수 있을까 이스라엘 백성이 약속의 땅을 회복한다는 말씀이 완전히 성취된다는 것인가 그렇지 않다.

왜냐하면 26-28절을 보시오. 이와 유사 한 구절을 에스겔과 同時代人인 예레미야가 예레미야 31-33장에 기록한 것을 보게 된다. 그럼 우리는 어디에서 예레미야 31장의 성취를 발견할 수 있겠는가 구약에서 뿐만 아니라 신약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예를 들자면 히 8:8-12 같은 것이다. 신약시대 교회 에서 더 완전한 성취를 발견하게 된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충만하고 완성된 성취 가 있는가 아니다. 이 예언은 우리 교회에서 아직 완전히 성취되지 않았다. 완전한 성취는 예수님의 재림 때, 새 땅 위에 새 예루살렘에서 이루어진다. 여기서 우리는 구약 예언의 점진적인 성취를 볼 수 있다. '성취'(fulfillment )는 가장 완전한 것으로 가득 채우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이 사실을 한 컵의 물을 예로 들어 설명할 수 있다.
이스라엘의 신약시대 교회의 성취 새 땅에서의 성취 (과거) (현재) (미래) 그러면 어떻게 에스겔 36:22-38이 오늘날 성취되어가고 있으며, 또 완전한 성취가 미래에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지 알아보도록 하자. 그것은 "구원의 현재적 의미가 무엇이 며 미래에 어떻게 완성될 것인가" 에 대한 이해이다. 완성된 구원, 하나님의 백성의 회복 약속한 땅으로의 회복 (24절) "고토에 들어가서"라고 24절은 시작된다. 신약에서 이것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그 림이다. 억압의 땅으로부터 우리는 해방의 땅, 하나님의 땅으로 들어간다(바벨론에서 이 스라엘로 ).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이것을 언젠가 가게 될 天國에 대한 約束으로 받아들인다. 이것이 바른 인식일까 우리가 이미 그 나라에 들어간다고 믿는 순간, 우리가 천국 시민이 되었다고 믿는 순간(빌 3:20을 참조), 하나님의 나라는 현재 이 지상에 임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여전히 이렇게 기도한다. "나라이 임하옵시며" 라고 하나님 나라는 아직 도 도래하고 있는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보이지도 않고, 하나님의 영광은 여전히 구름 에 덮여 있다(겔 1장 참조). 예수께서 재림하실 때 그의 王國은 눈에 보일 것이며 새 땅 위에 새 예루살렘에서 그의 백성들 가운데서 그는 統治하실 것이다. 하늘과 땅이 한 나라가 된다(계 21, 22장을 보라). 罪로부터의 구원 (25절)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 나라에서 부정과 죄에 덮여서 살 순 없다. 하나님은 거룩하신데 우리는 불의하여 하나님 앞에 설 수는 없는 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피로 씻 겨져야 하고 죄의 도말하심을 받아들어야 한다(요일 1:9). 얼마나 엄청난 특권인지요! 다 른 어떤 종교도 죄사함의 확신을 제공해 주지 못한다. 다만 그리스도인들만이 그러한 확 신을 가진다. 이것은 우리가 언젠가 흰 옷을 입고 정결하게 될 때 완전히 눈 앞에 나타 날 것이다(계 7:9-14). 육체의 구원(26, 27절)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여기서 멈춘다.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서 죄를 사하시는 구주 예수님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멈추어 버린다. 그러나 구원은 거기에서 중단되지 않는다. 예수님은 우리의 왕이 되셔야 한다. 매일의 삶 가운데서 마음을 새롭게 하고(즉 우리의 가치 관이 세상적인 가치관에서 하나님 나라 가치관으로 바뀌어야 한다. 만약에 바뀌지 않는 다면 성경묵상이 잘 안되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 수가 없다. 로마서 12:2에서도 바울은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고 하였다)하나님 말씀에 복종할 뿐만 아니라, 주님을 따르는 삶을 살기 위해 새 마음과 새 영을 받아들인다. 정결케 되는 것은 구원의 당연한 열매이다.
여러분의 삶에 변화가 없다면 구원의 사실성을 의심해 보아야 한다(마 7:18-20참조) 여기에 완전한 쇄신이 있어야 한다. 우리는 여전히 '옛사람'이고, 여전히 죄와 싸우고 있다. 우리가 새 마음과 새 靈을 받았음에도 한편으로 여전히 회복되지 못한 부분들이 있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육체이다. 롬 8:23에서 우리는 알 수 있다. ".우리 곧 성령님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한탄하여 養子될 것 곧 우리 몸의 구 속을 기다리느니라." 모든 기적적인 치유와 의학적인 치유는 예수님의 재림의 날에 있을 육체적 회복의 상징으로 이해할 수 있다. 따라서 구원은 영적인 것만이 아니라 전인(全 人), 곧 육체까지 포함하는 것이다. 共同體의 구원(28절) 거기에서 구원이 그치나요 아니다. 하나님은 여기저기의 개인만을 구원하시지 않고, 새 백성을 소유하길 원하신다. 20절과 렘 31:31-33을 보면 '하나님의 백성'이 새 언약 즉 신약시대의 교회를 의미함을 알게 된다. 따라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개인주의'를 주 의해야 한다(서구의 영향). 오순절 이후의 교회를 보라. "믿는 사람이. 모든 물건을 서 로 통용하고"(행 2:42-47). 바울은 교회를 몸에 비유한다. 어떤 지체도 몸에서 떨어져선 살 수가 없다. 죽게 된다. 우리의 교회는 '한 몸'을 어느 정도 이루어가고 있는지 참된 '성도들의 교제'를 얼마나 힘써 행하고 있는지 특히 대형 교회의 개인주의는 커다란 장 벽이다. 우리 모두 주의하자! 물론 우리 교회들은 아직 완전하지 못하다. 완전한 성취는 새 예루살렘, 하나님의 백성 들의 새로운 공동체에서 이루어질 것이다. 피조물과 세상의 구원(29, 30, 34, 35절) 교회를 사용하시는 하나님의 구원은 끝나지 않았다. 그건 훨씬 더 확장되었다. 그래서 피조물, 이세상도 구원되어 회복될 것이다. 땅은 다시 에덴 동산과 같이 될 것이다(35절 참조). 지금 이러한 회복의 징조를 볼 수 있다.
수많은 질병, 환경오염, 환경파괴 등은 죄악된 삶의 방식에 의해 초래되었다(탐욕, 性的인 罪에 빠진 상태 등). 그래서 우리는 상당히 많은 경우 그리스도께로 돌아온 사람들에게서 그들의 외부적 환경까지 변화, 회복됨을 보게 된다. 성경적인 삶의 방식은 건강한 삶의 방식, 즉 피조물의 창조 목적을 유지하고 또 발전시키는 것으로 나타난다.
그런데, 완전한 성취는 좀더 기다려야 한다. 롬 8:19-23을 보라. "피조물도 썩어짐의 종 노릇한 데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의 자유에 이르는 것이니라." 이것이 바로 우리의 소망이다. 이 땅이 하나님의 창조물이기 때문에 어떻게 개발, 보호해 나가야 하는 지 그 동기를 부여해 주고, 나아가 낙원으로 새롭게 되고 회복될 것이다. 그리고 모든 악 과 파괴, 불완전은 소멸될 것이다. 이 소망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른다. 이 소망에 대해서 크게 세 부류의 시각이 있다. 첫 째는 천국에 갈 것만 소망하고 그래서 이 세상과 사회적 관심, 곤경에 대해 주의를 기울 이지 않는 사람들이다.
둘째는 밝은 미래에 대한 소망의 상실로 인해 폭력, 혁명의 방법 으로 개혁하려는 입장이다. 새 하늘과 새 땅의 도래를 믿는 세번째 시각은 동시에 이 땅 이 계속 영원히 살 장소이기에 이 땅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진다. 여기에는 사회적, 정치 적, 환경적 행동을 포함한다. 그렇지만 동시에 인내와 자기 절제를 수반한다.
왜냐하면 완전한 회복은 마지막 날 주님의 재림에 의해서만 도래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소망은 우리를 현실주의적으로 만들고 타락과 고난 가운데에서 긍정적인 태도룰 취하게 한다. 왜 우리는 기다려야만 하는가 아마도 여러분은 우리가 왜 완전한 성취를 기다려야만 하는지에 대해 궁금할 것이다. 만약 십자가 위에서 예수님이 사탄의 죽음과 죄의 세력을 깨부수었다면, 우리는 왜 여전 히 사탄과 죄에 대항해 싸워야 하며, 왜 우리는 병들고 또 죽어야 하는가 하나님은 예수의 부활 이후에 이미 완전한 구원을 가져올 순 없었는가 그 대답을 신약의 "오직 너희를 대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벧 후 3:9)에서 발견할 수 있다. 완전한 성취는 양면적이다. 한 면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의 마지막날 완전한 부활을 말한다. 다른 한 면은 믿지 않는 사람들의 마지막의 완전한 심판이다. 어떤 불신자에게도 회개하고 구원을 받아들일 더 이상의 시간이 남아 있지 않을 것이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이 기다리시는 이유이다. 하나님은 여러분의 부모, 남편, 자녀, 친구들이 예수께로 나아오길 기다리신다. 우리가 여전히 갈등과 고난에 직면 하게 되는 것은 바로 그런 의미에서인 것이다. 아직 예수님을 알지 못하는 모든 사람들 의 구원을 위해서, 우리의 고난과 불완전은 영광스러운 의미와 목적이 있는 것이다. 우리의 구원의 목표 우리는 왜 하나님이 바로 나를 구원하셨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러면 두 가지 이유를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참다운 회개 우리를 참다운 회개로 인도하기 위해서이다(31, 32절). 구원은 우리를 하나님의 넓으신 사랑과 은혜, 우리 자신의 죄인됨을 깨닫게 한다. 선한 행위에 대해 무능하고 왜소한 우리 자신을 보여 준다. 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은혜이다. 따라서 구원은 영적교만(이스라 엘의 죄처럼)의 이유가 될 수 없으며, 단지 참된 회개와 겸손을 요구한다. 하나님의 榮光 두번째 이유는 열국 가운데서 하나님을 거룩하게 하려는 것이다(22, 23, 36, 38절). 여기서 우리는 에스겔 1장에서 출발했던 중요한 주제로 다시 돌아오게 된다. 하나님의 영광! 하나님은 여러분을 축복하셨다. 그래서 여러분은 열국을 축복할 수 있게 된다. 하나님은 당신의 영광을 여러분을 통해 드러내길 원하신다. 또한 하나님은 여러분의 가족, 캠퍼스, 사회 안에서 세상 끝날까지 당신의 영광이 나타나길 원하신다. 사람들이 여러분 안에서 하나님의 영광을 보는가 하나님은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여러분을 구원하셨다. 언젠가 하박국의 예언은 실현될 것이다. "대저 물이 바다를 덮음같이 여호와의 영광을 인정하는 것이 세상에 가득하리라"(합 2: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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