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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앙의 방해자 (출5:5-14)

본문

신앙을 갖기까지 넘어야 할 방해물은 무엇인가 또 가로되 이제 나라에 이 백성이 많거늘 너희가 그들로 역사를 쉬게 하는도다 하고 바로가 당일에 백성의 간역자들과 패장들에게 명하여 가로되 너희는 백성에게 다시는 벽돌 소용의 짚을 전과 같이 주지 말고 그들로 가 서 스스로 줍게 하라 또 그들의 전에 만든 벽돌 수효대로 그들로 만들게 하고 감하지 말라 그들이 게으르므로 소리 질러 이르기를 우리가 가서 우리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자 하나니 그 사람들의 노역을 무겁게 함으로 수 고롭게 하여 그들로 거짓말을 듣지 않게 하라 간역자들과 패장들이 나가서 백성에게 일러 가로되 바로의 말씀에 내가 너희에게 짚을 주지 아니하리니 너희는 짚을 얻을 곳으로 가서 주우라 너희 일은 조금도 감하지 아니하리 라 하셨느니라 백성이 애굽 온 땅에 흩어져 곡초 그루터기를 거두어다가 짚을 대신하니 간역자들이 그들을 독촉하여 가로되 너희는 짚이 있을 때와 같이 당일 일을 당일에 마치라 하며 바로의 간역자들이 자기들의 세운 바 이스라엘 자손의 패장들을 때리며 가로되 너희가 어찌하여 어제와 오늘에 만드는 벽돌의 수효를 전과 같이 채우지 아니하였느냐 하니라(출 5:5-14). 주여 어찌하여 이 백성으로 학대를 당케 하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보내 셨나이까(출 5:22).
이 탄식의 물음은 하나님을 향한 행진의 첫 시도에서 방해자를 만나 그 자 리에 주저앉아 버린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며 모세가 하나님께 고한 것입니다.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예배하러 광야로 나아가자,앞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하시리라는 모세의 말을 믿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아울러 이들은 모세를 따라 하나님께로 나아갈 마음의 준비를 하였습니다.모세와 아론은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께로 인도하는 대표로서 이스라 엘 백성들을 다스리는 바로에게 이렇게 청원을 합니다.우리가 사흘 길 쯤 광야에 가서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희생을 드리려 하오니 가기를 허락 하소서(출 5:3).그러나 바로는 이스라엘 군중이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는 일을 도와주기는커녕 그런 발상 자체를 꾸짖습니다.그들을 고역으 로 더욱 지치게 만듭니다.이스라엘 민족은 바로라는 방해자를 만나 행동 의 첫걸음도 떼지 못한 채 그 자리에 주저앉게 됩니다.소망에 부풀었던 새 마음이 낙심과 원망으로 변합니다.이들의 낙심과 원망이 모세로 하여 금 하나님께 탄식 섞인 질문을 던지게 하였습니다.모세는 하나님과의 첫 대면에서 신앙의 첫걸음을 내디딜 때 분명히 방해자를 만날 것이라는 주의 를 받았습니다.그러나 모세는 방해자가 어떻게 구체적으로 방해할 것인가 에 대해서는 무지했습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이스라엘 민족이 바로에게 방 해를 받아 낙심과 원망 가운데 있을 때,그들에게 방해를 이겨 나갈 길을 제시하기보다는 도리어 하나님께 원망 섞인 질문을 하였던 것입니다.오늘 날의 그리스도인들도 신앙 생활에 방해가 있을 것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그러나 방해의 구체적인 내용이 무엇인지 모르기 때문에 방해에 부 딪혔을 때 적절하게 대처하지 못하고 당황합니다.그래서 결국 신앙 생활 에 정진하던 것을 멈추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초신자들이 신앙의 마음을 행동화할 때에 맞닥뜨리는 방해의 구체적 모습이 무엇인지 를 알고 있기를 원하고 계십니다.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신앙의 행동 을 하지 못하게 하며 낙심과 원망에 빠지게 하였던 자는 애굽 왕입니다.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앞으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고 주저앉게 만든 방 해의 장본인입니다.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신앙의 방해가 되는 요소 들이 있습니다.그 내부적인 요소는 자신 속에 들어 있는 육신의 기질이고 외부적인 요소는 영적인 악의 세력 사단,마귀의 권세입니다.이 두 가지 요소 중 이 시간 우리가 신앙의 방해자로 연결시켜 생각하려고 하는 것은 외부적 존재,곧 마귀의 존재입니다.다시 성경을 보면 바로는 이스라엘 민족을 방해하기 위하여 그들의 마음과 생활에 자극을 주었습니다 .바로는 그 입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게으르다(8절)고 꾸짖었습니다.이스라엘 백성들이 고귀한 소망으로 간직했던 생각을 게으름의 결과 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 마디로 묵살했습니다.이것은 바로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짓밟는 처사였습니다.애굽 왕의 입술을 통하여 나온 게 으르다는 말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을 흔들어 놓을 만한 것이었습니다.또한 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고역을 무겁게 함으로 그들을 더욱 수고롭게 만들었습니다.이스라엘 백성들이 생활이 편해서 그러니 더욱 많 은 일로 딴 생각을 못 하게 하라는 명령이었습니다.애굽 왕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신앙의 행진을 해 나가지 못하도록 마음과 생활에 방해 요소를 유발시켰습니다.이 일은 오늘날 초신자들에게도 외부적 요소로서의 방해 자,곧 마귀의 권세가 두 가지 방법으로 그들의 신앙 생활을 방해하고 있 음을 가르치는 것입니다.그러면 마귀의 권세가 초신자들의 마음 속에 어 떠한 방법으로 방해의 손길을 펼치며 생활 속에는 어떠한 방법으로 간섭하 고 있는지 살펴봅시다.
'' 마음의 방해 요소 = 8절 말씀을 보십시오. 또 그들의 전에 만든 벽돌 수효대로 그들로 만들게 하고 감하지 말라 그 들이 게으르므로 소리 질러 이르기를 우리가 가서 우리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자 하나니.여기서 주목해야 할 구절은 그들이 게으르므로라는 바로 왕의 말입니다.이 말은 하나님께 희생을 드리자,곧 하나님께 나아가자는 하나님을 향한 마음에 대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이 생각하는 것과 바로가 생각하는 관점이 매우 다름을 보여 줍니다.이스라엘 백성들 은 자신들이 품고 있는 마음을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해 주신 마음이며 벽 돌을 굽고 바로의 명(命)을 준행하는 것보다 더 소중한 마음이라고 여겼 습니다.즉,하나님을 향한 새 마음에 최고의 가치를 두었습니다.그 러기에 그들은 바로에게 우리는 하나님께로 나아가야겠다고 담대히 청 원했던 것입니다.그러나 바로는 이스라엘 사람들의 새 마음은 고려해 볼 만한 가치가 없는 것이며 게으름 때문에 갖게 된 생각이라고 판단했습니다.게으르다는 말은 히브리어로 라파입니다.
그런데 이 단어의 근본적인 뜻은 아무 것도 아니다 혹은 무익하다입니다.당시 이스 라엘 사람들은 사람들을 분류하기를 좋아했습니다.지혜로운 사람,명철한 사람,교만한 사람,거만한 사람,게으른 사람 등등으로 말입니다.이 중 에 지혜로운 사람이란 말을 듣는 것이 최고로 영광스런 일이었습니다 .가장 불명예스러운 칭호는 게으른 사람이라는 것입니다.가장 무가 치함을 드러내는 말이기 때문입니다.바로는 이스라엘 사람들을 게으르 다고 말해 그들 마음에 들어 있는 하나님을 향한 새 마음을 무가치한 것 으로 정의(定義)하였습니다.왜 무가치하다고 합니까 애굽에서 하루 몇 시간 일하면 좋은 벽돌을 만들고 그 벽돌을 생활의 도구로 얻는데,광 야에 가서 예배하면 무엇이 나오느냐는 것입니다.벽돌 한 장 안 나오는 그 일,하나님을 향한 희생,바로 그 일이 무가치하다는 것입니다.일상 생활에 전혀 무익하다는 것입니다.이스라엘 사람들이 희생을 드리러 광야 로 나아가지 않고 애굽 땅에서 벽돌을 구우면 당장 애굽의 현실 생활에 큰 유익이 있는데,광야로 나가서 희생을 드리는 행위는 전혀 생활에 유익이 없다는 것입니다.벽돌을 굽는 일은 오늘날의 현실 생활을 의미합니다.우리는 바로의 언사를 통해 마귀의 방해가 어떤 것인지를 분명히 알게 됩니다.신앙 생활이 나의 현실 생활에 무슨 가치가 있단 말인가,나 에게 무슨 유익을 가져다 주는가라는 회의적 질문이 마음에 떠오르는 것,바로 그 마음이 마귀의 권세가 가져오는 신앙의 방해 요소입니다 .애굽 왕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신앙의 새 마음을 무가치한 것이라고 꾸짖었듯이,오늘날도 마귀의 존재는 하나님을 향하여 신앙의 새 마음을 품고 있는 그리스도인들에게 신앙이 현실 생활에 무슨 가치가 있느냐 무슨 유익을 가져다 주느냐 그것은 무익한 일이다라며 방해하고 있습니다.사람들은 자기가 행동하고자 하는 일의 가치를 먼저 따집니다.그 가치의 기준은 철저히 현실주의적인 것입니다.이 일이 나에게 어떤 도 움이 될까,무슨 유익이 있을까,어떤 대가를 얻을 수 있을까 그 가치가 크다고 느낄 때 사람들은 시간과 노력과 물질을 투자합니다 .
수고를 아끼지 않습니다.그러나 가치가 없다고 판단되면 그 일을 포기 하고 맙니다.마찬가지로 오늘날 신앙 생활을 하고자 하는 그리스도인들에 게 갑자기 신앙 생활이 과연 나의 현실에 무슨 유익을 주느냐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습니다.예배에 그렇게 열심히 참석하면 무슨 유익이 있느냐,무슨 대가가 있느냐,성경을 보고 기도하면 무엇을 얻느냐 ,하나님을 이렇게 사모한다고 해서 무슨 이득이 있느냐그리고 즉시 현실로 눈을 돌리게 됩니다.지금 내 생활에 유익이 되는 것이 무 엇이냐기다림의 여유가 없는 현대인의 모습입니다.당장 자기가 한 일 의 결과를 보고자 합니다.그러기에 마귀도 그리스도인들에게 네가 열심 히 예배드리고 기도하고 성경 배우는 데 열심이라고 해서 당장 현실로 나 타나는 유익이 무엇이냐고 물어 옵니다.몇 시간 일하면 돈이 나온다.그러나 그 몇 시간을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데 쓰면 네 생활에 무슨 도 움이 되느냐고 묻습니다.몇 시간 자면 피로가 풀리고 건강한 몸으 로 활동하면 더 잘 일할 수 있는데,피곤한 몸으로 기도하면 네 생활에 무 슨 이득이 있느냐고 묻습니다.주일 예배에 꼭 참석하면 매상고가 열 배로 오른다고 한다면,교회는 전도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누구든지 하루에 성경 한 장읽고 기도 한 시간씩 꼭 두 달만 하면 직장인은 모두 자동 으로진급하고 입시생은 모두 시험을 잘 친다고 한다면,온 동네가 저녁마 다 기도 소리로 시끄러울 것입니다.이처럼 이 세상 사람들 대부분의 가치 기준은 생활 속에서 얻는 즉각적인 유익의 결과들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그 때문에 마귀의 권세가 그리스도인의 마음 속에 네가 하고자 하는 그 신앙 생활이 너의 현실에 무슨 유익과 가치가 있느냐고 질문하는 것입니다.마태복음 4장 8,9절은,그리스도인들로 하여금 세상의 유익과 영광에 눈을 돌리도록 유혹의 손길을 뻗치며 믿음을 흔들어 놓는 마귀의 권세를 묘사하고 있습니다.천하 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 가로되 만일 내 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사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로 나가 하나님께 희생을 드린다 할지라도 벽돌 한 장 얻지 못하듯, 신앙 생활에서 즉각적으로 얻어지는 유익들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그러므로 마귀의 권세가 초신자들의 마음을 공격해 오면,새 마음에 붙잡혀 힘찬 신앙의 발걸음을 내딛던 그리스도인들이 주저앉고 쓰러지고 뒤로 물러서게 됩니다.그러면 신앙 생활의 가치는 무엇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벽돌 한 장 나오지 않더라도 광야로 나가기 원했던 것은,광야에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새 삶의 역사가 준비되어 있기 때문이었습니다.하나님께서 함께하 시는 삶,바로 이것이 벽돌의 유익보다 더 귀중하고 가치 있는 삶입니다. 빌립보서 4장 9절은 그리스도인의 신앙 생활의 최고 가치는 무엇을 소유 하고 성취하는 것에 있지 않고 하나님께서 함께하여 주시는 데 있음을 밝 히고 있습니다.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그리스도인이 신앙 생활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최고의 가치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약속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에 의해 당신의 생활 가운데 하나님 의 역사가 나타나는 모습을 보는 것입니다.그러나 안타깝게도 사람들은 삶의 가치를 무엇을 얻느냐,무엇을 소유했느냐,어느 자리에 있느냐에 둡니다.철저히 세상적인 가치관으로 사람을 평가하고자 합니다.이천 년 전 예수께서 이 세상에 오셨을 때,이스라엘 백성들은 메시야를 대망하고 있 었습니다.그러나 자신들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님을 눈앞에 두고도 영접하 지 못하는 역사의 불행아(不幸兒)들이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적 가 치관에 의하여 메시야를 기대하며 예수님을 보았기 때문입니다.목수의 아 들,마구간에서의 탄생,참으로 예수께는 세상적인 가치가 없었습니다.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구세주로 세상에 보내실 때 권력의 자리로,영 화(榮華)의 자리로,세상이 우러러볼 만한 자리로 보내지 않으셨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수께 주신 것이 있었습니다.곧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약속이었습니다.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마 1:23).
우리 주 예수께서는 이 세상에 세상적인 부(富)와 권력과 영화와 현실적인 유익을 갖고 오지 않았습니다.오직 하나님께서 함께하신다는 약속만 을 갖고 오셨습니다.우리는 예수님을 영접할 때,오직 예수님 안에 주어 진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는 삶의 약속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한 그리스도인이 예수님을 믿고 신앙의 길을 간다고 즉각적으로 현실에 유익이 따 르고 일이 잘 풀리고 높임을 받는 자리로 나아가는 은총이 따르는 것이 아 닙니다.오히려 현실적으로는 아무런 유익을 얻지 못할지도 모릅니다.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따르는 그리스도인에게 즉각적으로 현실의 유익을 주시지는 않지만,그가 처한 환경에서 섬세하고 세미한 손길로 동 행하고 계십니다.그리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때에 그를 들어 높이는 역 사의 손길을 펴십니다.그 높이시는 때에 대하여 성경은 이렇게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하신 손 아래서 겸손하라 때가 되면 너희 를 높이시리라(벧전 5:6).
그러므로 신앙의 힘찬 발걸음을 내딛는 데 마음 속에 신앙 생활의 유익이 무엇이냐라는 생각이 솟아오르면 ,즉시 마귀의 방해 화살임을 알아차리십시오.그리고 눈을 높이 들어 환 경이,생활이,처지가,위치가 어떠하든 오직 창조주 하나님께서 함께하 심을 바라보십시오.그리고 앞에 놓인 삶을 향해 하나님의 때에,하나님의 시간에,하나님의 방법으로 역사의 손길을 보리라고 명령하십시오 .신앙 생활은 벽돌을 얻는 것,곧 현실 생활의 유익에 즉각적 결과가 오는 것이 아니라,창조주 하나님께서 당신의 삶 속에 함께하신다는 것 ,하나님과 함께산다는 것그 자체에 최고의 의미가 있음을 명심하십시오.
생활의 방해 요소 바로의 두번째 명령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일을 갑절로 힘들게 하는 것이었 습니다.그 사람들의 고역을 무겁게 함으로 수고롭게 하여 그들로 거짓 말을 듣지 않게 하라(9절).예전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짚과 진흙 을 주고 벽돌을 만들라고 하였는데,수고를 더하기 위하여 짚은 주지 말고 사방에 흩어진 곡식 그루터기들을 스스로 주어다가 만들라는 것입니다.짚 을 주으러 다니려면 시간이 많이 소요되는데,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요구하는 벽돌량은 이전과 같습니다.그들을 독촉하여 가로되 너희는 짚이 있 을 때와 같이 당일 일을 당일에 마치라(13절).바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시간이 남아도니까 여유가 있고 생각할 시간이 있어 하나님께 희 생을 드리러 가자는 마음을 가졌다고 생각했습니다.그는 이스라엘 백성 들을 더욱 바쁘게 만들어 하나님께 대한 생각을 행동에 옮길 수 없도록 했 습니다.이것은 오늘날 마귀의 권세가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어떤 식으로 방해하는지를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생활로 다가오는 신앙의 방해 요소는 생활을 바쁘게 만들어 신앙의 마음을 잃게 하는 것입니다.마귀의 권세는 한 사람이 하나님을 향한 신앙의 마음을 소유하면 그 마음을 스스 로 잃게 만들도록 역사합니다.이 일이 잘 안 되면 그 사람의 생활을 바쁘 게 만듭니다.아니면 그 마음이 공연히 바쁘다는 생각에 붙잡히도록 만들 어 신앙의 마음을 잃게 합니다.오늘날 신앙 생활을 하고자 하는 신앙인에 게 다가오는 외부적인 최고의 방해는 핍박이 아닙니다.핍박을 받으면, 옛 성도들은 더 큰 핍박을 받았다는데 하며 오뚝이처럼 일어섭니다.어 려운 사건들이나 복잡한 문제도 신앙을 방해하지 못합니다.어려움을 당하 면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기도하랬지 하고 기도를 시작합니다.그러나 바쁜 상황에 처하면 여지 없이 쓰러집니다.이 일 마치고 신앙 생활 열심히 해야지란 말이 입버릇이 됩니다.그러나 이 일 다하고 기도 해야지 하며 1년 동안 기도 한 번 못하고 지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일단 들어온 신앙의 마음은 이 일,저 일 하고난 후면 이미 시들어 힘을 잃고 맙니다.
그러므로 바쁜 세상 속에서 신앙의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사람들을 위하여 에베소서 5장 15,16절은 이렇게 권면하고 있습니다.그런즉 너희가 어떻게 행할 것을 자세히 주의하여 지혜 없는 자 같이 말고 오직 지혜 있는 자 같이 하여 세월을 아끼라 때가 악하니라 .오늘날 바쁜 사람들은 세 부류로 나눌 수 있습니다.이들은 바쁘다는 이유 때문에 신앙의 마음을 싹도 피우기 전에 잃어버리는 사람들입니다.
첫째로,참으로 바쁜 일 속에 사는 사람들입니다.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신앙의 새 마음을 주시며 그 마음을 행동할 수 있는 환경도 함께 허락하십니다.그러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이 하고 있는 일 가운데서 신앙 생활을 우위에 두기는커녕 맨 밑에 둠으로써 영과 육이 약해져 마음 속에 싹 튼 신앙의 새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둘째로,쓸데없는 일 에 바쁜 사람들입니다.하나님께서 주신 신앙의 귀한 마음은 받았지만 쓸 데없는 일에 얽매여 있으며 결단을 내리지 못해 신앙의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지 못하는 사람들입니다.이들은 쓸모 없는 일 속에서 허송 세월하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공연히 마음이 바빠서 바쁜 나날을 보내는사람들 입니다.하나님께서 주신 신앙의 마음과 자기 마음의 의식을 들여다볼 줄 아는 냉철한 절제력이 없어서 행동에 옮기지 못하고 공연한 부산스러움에 빠져서 생명의 기회를 잃어버리는 이들입니다.마귀가 꾀하는 신앙의 방해 요소는 바로 바쁜 마음과 바쁜 환경입니다.
그러므로 현재 당신의 마음이 바쁘다는 생각으로 가득 차 있으면 바로 그것이 신앙의 방해 요소임 을 깨달으십시오.그 바쁨 속에서 우선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 알아내십시 오.자신이 맡고 있는 일들을 정리하며 신앙의 마음을 성장시키고 있는지 확인하십시오.신앙의 마음은 현재 놓인 자리에서 그 환경이 어떠하든 곧 장 행동으로 옮기지 않으면 시들고 사라진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당신의 마음 속에 싹 텄던 신앙의 마음,곧 예배에 성실히 참석하고 기도에 열심 을 내고 성경 말씀을 꾸준히 읽겠다는 마음들이 다른 일들로 인해 뒤로 미 뤄지는 때는 없는지 확인해 보십시오.무엇보다도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신앙의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는 것임을 명심하십시오.가장 먼저 해야 할 일,가장 중요한 일,가장 소중한 일은 바로 신앙의 마음을 행동에 옮기는 것입니다.신앙의 실천을 최우선으로 하면 생활에 매인 자,환경에 끌려가는 자가 아니라 생활을 창조하는 자,환경을 지배하는 자가 될 것입니다.하나님께서 당신을 향하여 이렇게 권고하십니다.너를 향해 날아 오는 마귀의 공격의 화살,마음을 향한 화살과 생활을 향한 화살을 잊지 마라! 그리고 그 화살들을 꺾어 버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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