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과 꿀이 흐르는 땅 (출3:16-18)
본문
예루살렘을 방문한 그리스도교도인 관광객이 유대사원의 예배 식을 참관하고는 유대인에게 물었습니다. "참으로 엄숙하고 좋 았지만 기도할 때 모세의 이름이 나올적 마다 신도들이 무어라 고 투덜거리는데, 곡절을 모르겠군요. 모세는 유대교의 예언자로 서 존경을 받고 있을 텐데요." 유대인은 불만스러운 얼굴로 대 답하더랍니다. "천만에요. 그 사람 인기, 요새 땅에 떨어졌어요. 그 자가 안내해 준 덕분에 우리 유대인은 오렌지가 잘 되는 가나 안 땅에 도착하기는 했지만 사실은 석유가 나오는 땅이 더 나을 텐데 말입니다." 앉아서 오일달러를 벌어들이는 중동의 국가들을 보면서 부럽기도 했겠지요. 이스라엘인들의 속 마음이 이런 우스개를 말들어 냈는지도 모릅니다.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은 중동에 위치해 있지 만 석유도 나오지 않습니다. 만대로 땅은 척박한 땅이라 할 수 있습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이스라엘은 거의 2천년 동안 나라 없이 떠도는 유랑민의 신세가 되었습니다. 이 나라없는 2천 년 동안 유대인들의 구호는 '내일은 예루살렘에서(next year Jerusalem)'라고 합니다. 이 열망이 작은 나라지만 사막을 녹 색지대로 바꾸고 감사하며 삽니다. 그러기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어디에 있습니까 오일달러가 쏟아지는 중동의 산유국입니까 삼천리 금수강산 대한민국입니 까 척박한 땅 팔레스틴입니까 결론적으로 말하자면 믿음의 눈 을 가지고 믿음의 고백을 하는 사람의 땅이 바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겁니다.
삶의 윤기는 어디서 나옵니까 어떤 분들은 정말 Peace maker입니다. Thank you maker입니다. 평화는 커녕 치고 받고 싸워도 직성이 풀리지 않는 상황이예요.
그런데 이상하게 평화를 제조해 내는 거예요. 어떤 분들 보면 도저히 감사할 상황 이 아닙니다. 불평과 원망이 늘어져도 시원치 않을 그런 상황이 예요.
그런데 가만히 보면 감사를 생산해 내는 거예요. 신기합니다. 삶의 윤기가 흘러요. 이런 분들의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이라 할 수 있지요. 젖이 흐른다는 말은 가축이 풍요하다는 표현입니다. 유목민에 게 가축의 젖과 치즈는 음식이요 상품입니다. 꿀도 양식입니다. 고급양식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말은, 젖을 내는 가축 을 많이 생산 할 수 있는 목초지와 꿀을 채취할 꽂과 화초가 많 은 곳이라는 말입니다. 광야를 유랑하던 이스라엘에 비친 풍요 의 땅이 바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시적 표현을 낳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나안 땅 지금의 이스라엘은 과연 젖과 꿀 이 흐르는 땅입니까 이스라엘의 지형과 기후는 매우 다양합니다. 지중해를 끼고 남 북으로 길게 뻗은 기름진 해안 평야가 물론 있습니다. 블레셋 평 야, 샤론평야, 이스르엘 평야 등이 지중해 연안을 따라 펼쳐져 있습니다. 그러나 평야는 이게 다입니다. 지중해를 면해 있는 해안 평야만 벗어 나면, 나머지 땅은 곧장 척추 처럼 남북으로 뻗어 내린 중앙 산악 지역이 800m 이상의 고원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 중앙 산맥 오른 쪽은 급한 경사를 이루는 계곡입니다. 지구에서 가장 깊은 단층을 형성하고 있는 요르단 계곡이지 요. 여기에 요단강이 실줄기 처럼 흘러 갑니다. 그래도 강이라고 요단강 주변은 초목이 무성하고 땅이 기름집니다.
그런데 이것 도 계곡을 따라 좁은 폭입니다. 그렇게 넓은 초원이 아닙니다. 저는 이스라엘을 생각하면 우리나라 강원도의 비유가 참 적절하 다는 생각을 합니다. 강원도는 배부분이 산지이고 바닷가 쪽에 나 조금 평지가 있어 논 농사를 해 볼 수 있는 정도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스라엘은 강원도 보다 더 척박합니다. 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막도 있기 때문이지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하는 가나안 땅에 이해 못할 것은 광야와 사막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60% 가량이 불모지인 사막(미드바 르)입니다. 현재 이스라엘 인구의 약 7% 만이 이 지역에 거주 하고 있습니다.
불모지 박토입니다. 이 사막이라는 것이 브엘세 바 남쪽은 네게브라 해서 진짜 사막이고, 또 이스라엘 땅 한가운 데도 사막이 있습니다. 이걸 광야라고 부릅니다. 중앙 산악지방 바로 옆에 베델에서 헤브론 까지, 북에서 남으로 사막이 있습니다. 이걸 유대광야라 부릅니다. 네게브든 광야든 민둥산에 풀 한포기 없습니다. 광야는 농사가 불가능한 지역, 물과 음식이 없는 곳이란 뜻도 있습니다. 그러니 전 국토의 60%인 사막과 죽 음의 바다 死海가 있는 가나안은 오히려 죽음의 땅이라 해야 마 땅할 것입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이 쓸모 없는 땅 사막 마져 젖 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갈릴리 호수로부터 350km의 송수관을 통해 물을 끌어들여 농사를 짓고 있기 때문 이지요. 이스라엘의 초대 수상인 벤 구리온은 브엘세바 남쪽 사 막에서 키부츠 운동을 일으켜 사막을 녹색지대로 바꾸는 데 기여 를 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약속으로 받은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창세기부터 신명기 까지에는 이 표현이 15회 나타납니다. 땅의 비옥함을 나타내는 문학적인 표현입니다. 민16:13을 제외 하면 전부 가나안 약속의 땅을 말합니다. 약속으로 받았으니 약속의 땅입니다. 약속하실 때, 젖과 꿀이 흐 르는 땅이라고 했으니 젖과 꿀이 흐르는 것입니다. 거칠은 땅에 있을 때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약속을 받아야 합니다. 약속 을 믿어야 합니다. 약속을 누려야 합니다. 아무리 풍요롭고 기름 진 땅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이 주시지 않은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은 아닙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말 제일 처음 등장하는 것은, 출애 굽기 3장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을 때 하나님이 약 속하신 땅입니다. 이스라엘이 부르짖는 것을 들었은즉 내가 에굽 인의 손이서 이스라엘을 구해내고 너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 로 인도하겠다고 합니다.(출3:8) 그러니 하나님과 부르짖음과 응답의 관계에서 얻은 땅이 약속의 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법칙이 살아 움직여서 얻은 땅은 약속의 땅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말과 '약속의 땅'이라는 말은 뗄 수 없는 관계 입니다. 꼭 같이 붙어 다니는 말입니다. 이삭은 약속의 아들입니다. 사무엘도 약속의 아들입니다.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했던 아브라함의 가나안도 약속의 땅 이었습니다. 조카 롯과의 땅 나누기에서 믿음의 방식으로 선택했 던 땅 헤브론도 약속의 땅이었습니다. 전부 하나님과 약속의 산 물입니다. 하나님이 내린 약속의 산물이 지리멸렬하거나 황폐한 적이 있습 니까 하나도 없었습니다.
사람이든 땅이든 다 그렇습니다. 아브 라함의 헤브론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되었습니다. 반면에 조 카 롯은 언뜻 보기에는 풍요의 땅 같은 소돔과 고모라를 선택했 지만 결국은 황폐의 땅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니 문제는 약속입니다. 촛점은 하나님의 말씀지배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지속 여부입니다. 기도 끝에 얻은 것이냐의 여 부, 부르짖음 끝에 얻은 것이냐의 여부가 관건입니다. 말씀의 관 계에서 얻은 땅, 주님이 주신 땅은 약속의 땅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받은 약속의 땅은 과연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받은 젖 과 꿀이 흐르는 땅은 과연 어떤 것입니까 잘 한 번 묵상해 보 세요. 많을 것입니다. 그런까닭에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것이라 생각하면 하나도 버릴 게 없습니다. 하나도 소홀할 게 없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지금의 삶의 자리를 주셨어요. 그 이전은 몰라도 기도하고 말씀 안에 살고 주님과 동행하고난 이후에 것은, 모두 약속의 응답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의 땅이라 믿어도 좋습니다. 이건 숙명론 운명론 사주팔자 관상 하고는 차원이 다른 겁니다. 팔자소관은 어쩔 수 없어 포기 하고 에라 팔자소관이려니 이렇게 체념하는 겁니다. 그러나 약속의 땅이라고 고백하는 사람은 자신 의 땅을 약속의 땅으로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 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기어코 젖과 꿀이 흐르는 땅 풍요의 땅으로 바꿉니다. 운명 개척의 적극적인 활동이 있습니다. 그리고 감사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니까 하나님의 능력으로 성취하는 거죠. 이게 믿음의 역사입니다. 이건 숙명론 끝에 나오는 체념하고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겁니다. 사실 이스라엘을 객관적으로 평가하자면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 의 땅도 아니요, 그렇다고 몹쓸 불모의 땅도 아니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입니다. 여기에 오묘한 뜻이 있는 것 같에요. 산악지 방이나 사막을 보면 도저히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말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해안평야나 갈릴리 저지대, 요단강을 따라 펼 쳐진 강변의 땅들을 보면 어느정도 비옥한 땅이니 젖과 꿀이 흐 른다 말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습니다.
축복의 땅이라 할 수도 있고, 저주의 땅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겁니다. 그러니까 믿음의 고백에 달려 있는 겁니다. 해 안 평야를 보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고백하면 축복의 땅 입니다. 그러나 사막이나 산지를 보면 척박한 땅이니 불평스런 저주의 땅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 영적인 고백이 중요합니다.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러니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의 의미를 찾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믿음의 고백이 없으면, 약속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풍요의 땅도 척박한 땅이 될 수 있습니다. 풍요이냐 기근이냐는 믿음의 고백 에 달려 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비젼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할 때 꼭 앞에 수식어가 붙습니다. "에굽의 고난에서 인도하여 내어" 이말입니다. 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말은 에굽에서 모세가 소명을 받을 때 즉 이스라엘 이 탈출의 약속을 받을 때부터 시작해서 광야 기간 내내 사용됩니다. 그리고 모세의 마지막 설교 때 까지 사용됩니다.(신 31:20) 그러니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말은 비젼의 땅입니다. 앞 으로 이뤄질 비젼의 땅입니다. 비젼이 있으면 망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비젼은 꿈과 다릅니다. 꿈은 허망된 꿈도 있기 때문입니다. 비젼은 환상도 아닙니다. 환상은 욕망의 환상이 있기 때문 입니다. 비젼은 자신도 살고 이웃도 살리는 그런 올바른 것입니다. 그 비젼이 하나님이 보여주신 비젼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비젼이 없는 신앙인은 출애굽을 감행 할 수 없습니다. 비젼이 없는 신앙인은 광야의 생활을 견딜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젖과 꿀 이 흐르는 땅, 비젼의 땅을 가지고 있습니까 기도하고 바라보는 땅이 있습니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열망하는 땅이 있습니 까 하나님이 주신 풍요로운 믿음의 계획들이 있습니까 열망하 고 바라보십시다. 불가능과 체념을 뚫고 한 번 바라보십시다. 이 미지(상)를 만들고 비젼을 품어 보십시다. 거창한 것이 아니라도 좋습니다. 우리의 일상 시시콜콜한 것 까지 우리 주님이 개입하 실 미래를 바라보는 것은 비젼입니다. 지금 땅이 사막이라고 주 저 앉아 있지 말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비젼으로 바라 봅시다. 주님께서 틀림 없이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누리고 가꾸는 땅 이스라엘은 약속을 잘 받았습니다. 그래서 에굽에서 탈출을 했 습니다. 또 이스라엘은 비교적 약속을 잘 믿었습니다. 광야 생활 동안 젖과 꿀의 땅 가나안을 열망하고 믿었습니다. 사실상 광야 생활 시작부터 끝까지입니다. 이스라엘은 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붙 잡고 에굽을 탈출했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붙잡고 광야 사십년을 견뎠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가나안 땅을 밟게 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게 하나 있습니다. 정작 약속의 땅을 받은 이스 라엘이 어떠 했느냐는 것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열망한 만큼 그 풍요를 잘 누렸느냐 이 말입니다. 아무래도 아닌 것 같 에요. 사사시대에 반역, 징계, 회개, 구출 시스템이 계속 반복 되는 것을 보면 그렇습니다. 그러니 제일 중요한 것은 약속을 누리는 것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의 약속을 받았어요. 그리고 그 약속을 믿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작 그 받은 약속을 누리지 못한다면 이거 전부 헛된 것 입니다. 중요한 것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믿음으로 받았으면 누리라는 겁니다. 받고 나서도 누리지 못할 거라면 왜 받습니 까 마지막이 중요합니다. 행복은 대단한 데 있는 게 아닙니다. 그렇게 믿고 그렇게 누리 고 그렇게 가꾸면 그게 축복의 땅이 됩니다. 행복은 열망할 때 보다 차지하고 누리고 가꾸는 태도가 더 중요합니다. 이게 무슨 축복이야, 이게 무슨 젖과 꿀이야, 이러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러면 끝입니다. 은혜는 받은 떡의 크기에 있는 게 아니라, 그 걸 먹는 사람의 입맛에 달려 있습니다. 그 빵을 들고 있는 사람 생각의 크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땅이다. 여기에 뜻 이 있어' 그렇게 믿고 그걸 누리고 가꾸면 축복의 땅이 되는 겁니다. 약속을 받았으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고백하는 것이 중 요합니다. 믿음으로 받고 믿음으로 인정하면 축복이 됩니다. 척 박한 땅이지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왜요 야훼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땅이기 때문입니다. 왜요 야 훼 하나님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 받은 축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이 걸 바라십니다. 하나님의 최대 관심사는 믿음의 자녀들이 공 급한 축복의 땅을 누리고 풍성해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도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고 했습니다.
또 천국은 열망하는 것입니다. 천국은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천국을 유지하는 하는 것입니다. 천국을 누 리는 일입니다. 원하는 대학에 들어 갔어요. 원하는 직장에 들어 갔어요. 원하는 집을 얻었어요.
그런데 누리지 못한다면 불행한 일입니다. 새로 집을 사가지고 들어가면 그동안 얼마나 고생을 했습니까 그렇게 소원하고 갈망하던 때를 생각하면 잘 누려야 지요. 집을 아름답게 꾸미고 잘 가꾸고 연출하는 게 중요해요. 그렇게 열망하고 소원하던 집 쓰레기통으로 만들어 버리고 무덤 덤하게 방치하고 그러면 뭣하러 들어가요. 그냥 옛날 집에 사는 것과 하나도 다른 것이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들어가는 것 보다, 받고 나서 누리고 가꾸는 것이 중요합니다. 누리고 가꿀 줄 아는 사람은 감사도 할 줄 압니다. 은혜도 압니다. 제가 선물을 했어요. 저에게는 아까운 물건이지만 선물 했는 데, 그냥 버려둬요. 꼭 필요하다고 해 놓고는 받아서 그냥 방치 해 버려요. 고맙다는 마음도 그리 많은 것 같지 않아요. 속상한 일입니다. 제가 어떤 분에게 선물을 했어요. 제가 생각한 것 보 다 열배나 더 효용성 있게 사용하고 물건의 가치를 열배나 올려 놨어요. 아주 소중한 물건으로 간직을 하고 있는 거예요. 신나는 일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열망하면 무얼합니까 비젼을 가지면 무얼합 니까 받고 나서가 중요합니다. 얻고 나서가 중요합니다. 누리고 가꾸지 못할 것이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누리고 가꾸는 땅입니다. 그런 까닭에 기도하고 받은 거라면, 말씀의 응답으로 받은 거라 면,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선한 계획이라면, 누리고 가꾸세요. 그것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진짜 만들어 버리세요. 사막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하나님이 주셨다' 이렇게 믿고 풍요로 운 사막의 지대로 바꾸어 버리세요.
여러분 지금의 자리가 어떤 자리입니까 사막입니까, 사해입니 까 유다 산악입니까, 에브라임 산지입니까 절망입니까, 불만 족의 자리입니까 어떤 자리이든 주께서 약속하신 자리는 축복 의 땅입니다. 주께서 축복하신 자리는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의 땅입니다. 흔들리지 마십시다. 기도하고 받은 것, 말씀에 따라 얻은 것, 믿음으로 받은 것, 모 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그 땅이 척박하냐 마냐는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있는 일터가, 지금의 가정이, 나의 자녀가, 지금 의 상황이 믿음 위에 선 것이라면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입니다. 이걸 믿읍시다. 척박한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바 꿀 수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지금 우리의 자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믿 고, 가꾸로 누립시다. 하나님께서 이 땅을 주셨으니, 풍요가 넘 치는 땅으로 바꾸는 것은 이제 우리 손에 달렸습니다. 여기에 천 국이 있습니다. 어떤 것이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선포를 합 시다. 축복의 땅으로! 이런 축복이 여러분에게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기도문) 하나님 저희들이 가진 것 불평한 적 많았습니다. 말씀의 지배 끝에 주님과 동행하면서 가는 길에도 회의와 좌절이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기도하고 받았는 데도 불만족한 적 많았습니다. 하나님 이제 믿음으로 고백하고 믿음으로 받은 것, 어떤 것이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선포하게 해 주옵소서. 주님, 저희에게 주 실 약속이 무엇입니까 저희는 그걸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이제 믿겠습니다. 더 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사모하게 해 주 옵소서. 열망하게 해 주옵소서. 그러나 무엇보다 한 걸음 더 나 아가 주께서 주신 지금의 자리를 젖과 꿀의 땅으로 변화시키게 하옵소서. 누리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그리스도이름으로기도드립니다.
삶의 윤기는 어디서 나옵니까 어떤 분들은 정말 Peace maker입니다. Thank you maker입니다. 평화는 커녕 치고 받고 싸워도 직성이 풀리지 않는 상황이예요.
그런데 이상하게 평화를 제조해 내는 거예요. 어떤 분들 보면 도저히 감사할 상황 이 아닙니다. 불평과 원망이 늘어져도 시원치 않을 그런 상황이 예요.
그런데 가만히 보면 감사를 생산해 내는 거예요. 신기합니다. 삶의 윤기가 흘러요. 이런 분들의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이라 할 수 있지요. 젖이 흐른다는 말은 가축이 풍요하다는 표현입니다. 유목민에 게 가축의 젖과 치즈는 음식이요 상품입니다. 꿀도 양식입니다. 고급양식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란 말은, 젖을 내는 가축 을 많이 생산 할 수 있는 목초지와 꿀을 채취할 꽂과 화초가 많 은 곳이라는 말입니다. 광야를 유랑하던 이스라엘에 비친 풍요 의 땅이 바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시적 표현을 낳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가나안 땅 지금의 이스라엘은 과연 젖과 꿀 이 흐르는 땅입니까 이스라엘의 지형과 기후는 매우 다양합니다. 지중해를 끼고 남 북으로 길게 뻗은 기름진 해안 평야가 물론 있습니다. 블레셋 평 야, 샤론평야, 이스르엘 평야 등이 지중해 연안을 따라 펼쳐져 있습니다. 그러나 평야는 이게 다입니다. 지중해를 면해 있는 해안 평야만 벗어 나면, 나머지 땅은 곧장 척추 처럼 남북으로 뻗어 내린 중앙 산악 지역이 800m 이상의 고원을 형성하고 있습니다. 이 중앙 산맥 오른 쪽은 급한 경사를 이루는 계곡입니다. 지구에서 가장 깊은 단층을 형성하고 있는 요르단 계곡이지 요. 여기에 요단강이 실줄기 처럼 흘러 갑니다. 그래도 강이라고 요단강 주변은 초목이 무성하고 땅이 기름집니다.
그런데 이것 도 계곡을 따라 좁은 폭입니다. 그렇게 넓은 초원이 아닙니다. 저는 이스라엘을 생각하면 우리나라 강원도의 비유가 참 적절하 다는 생각을 합니다. 강원도는 배부분이 산지이고 바닷가 쪽에 나 조금 평지가 있어 논 농사를 해 볼 수 있는 정도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스라엘은 강원도 보다 더 척박합니다. 산만 있는 것이 아니라 사막도 있기 때문이지요.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하는 가나안 땅에 이해 못할 것은 광야와 사막이 있다는 것입니다. 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60% 가량이 불모지인 사막(미드바 르)입니다. 현재 이스라엘 인구의 약 7% 만이 이 지역에 거주 하고 있습니다.
불모지 박토입니다. 이 사막이라는 것이 브엘세 바 남쪽은 네게브라 해서 진짜 사막이고, 또 이스라엘 땅 한가운 데도 사막이 있습니다. 이걸 광야라고 부릅니다. 중앙 산악지방 바로 옆에 베델에서 헤브론 까지, 북에서 남으로 사막이 있습니다. 이걸 유대광야라 부릅니다. 네게브든 광야든 민둥산에 풀 한포기 없습니다. 광야는 농사가 불가능한 지역, 물과 음식이 없는 곳이란 뜻도 있습니다. 그러니 전 국토의 60%인 사막과 죽 음의 바다 死海가 있는 가나안은 오히려 죽음의 땅이라 해야 마 땅할 것입니다.
그런데 요즈음은 이 쓸모 없는 땅 사막 마져 젖 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변하고 있습니다. 갈릴리 호수로부터 350km의 송수관을 통해 물을 끌어들여 농사를 짓고 있기 때문 이지요. 이스라엘의 초대 수상인 벤 구리온은 브엘세바 남쪽 사 막에서 키부츠 운동을 일으켜 사막을 녹색지대로 바꾸는 데 기여 를 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약속으로 받은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 창세기부터 신명기 까지에는 이 표현이 15회 나타납니다. 땅의 비옥함을 나타내는 문학적인 표현입니다. 민16:13을 제외 하면 전부 가나안 약속의 땅을 말합니다. 약속으로 받았으니 약속의 땅입니다. 약속하실 때, 젖과 꿀이 흐 르는 땅이라고 했으니 젖과 꿀이 흐르는 것입니다. 거칠은 땅에 있을 때 약속하신 것입니다. 그러니 약속을 받아야 합니다. 약속 을 믿어야 합니다. 약속을 누려야 합니다. 아무리 풍요롭고 기름 진 땅이라 하더라도 하나님이 주시지 않은 땅은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은 아닙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말 제일 처음 등장하는 것은, 출애 굽기 3장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을 때 하나님이 약 속하신 땅입니다. 이스라엘이 부르짖는 것을 들었은즉 내가 에굽 인의 손이서 이스라엘을 구해내고 너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 로 인도하겠다고 합니다.(출3:8) 그러니 하나님과 부르짖음과 응답의 관계에서 얻은 땅이 약속의 땅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의 법칙이 살아 움직여서 얻은 땅은 약속의 땅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말과 '약속의 땅'이라는 말은 뗄 수 없는 관계 입니다. 꼭 같이 붙어 다니는 말입니다. 이삭은 약속의 아들입니다. 사무엘도 약속의 아들입니다.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고 했던 아브라함의 가나안도 약속의 땅 이었습니다. 조카 롯과의 땅 나누기에서 믿음의 방식으로 선택했 던 땅 헤브론도 약속의 땅이었습니다. 전부 하나님과 약속의 산 물입니다. 하나님이 내린 약속의 산물이 지리멸렬하거나 황폐한 적이 있습 니까 하나도 없었습니다.
사람이든 땅이든 다 그렇습니다. 아브 라함의 헤브론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 되었습니다. 반면에 조 카 롯은 언뜻 보기에는 풍요의 땅 같은 소돔과 고모라를 선택했 지만 결국은 황폐의 땅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러니 문제는 약속입니다. 촛점은 하나님의 말씀지배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 지속 여부입니다. 기도 끝에 얻은 것이냐의 여 부, 부르짖음 끝에 얻은 것이냐의 여부가 관건입니다. 말씀의 관 계에서 얻은 땅, 주님이 주신 땅은 약속의 땅입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이 받은 약속의 땅은 과연 무엇입니까 여러분이 받은 젖 과 꿀이 흐르는 땅은 과연 어떤 것입니까 잘 한 번 묵상해 보 세요. 많을 것입니다. 그런까닭에 하나님이 나에게 주신 것이라 생각하면 하나도 버릴 게 없습니다. 하나도 소홀할 게 없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지금의 삶의 자리를 주셨어요. 그 이전은 몰라도 기도하고 말씀 안에 살고 주님과 동행하고난 이후에 것은, 모두 약속의 응답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의 땅이라 믿어도 좋습니다. 이건 숙명론 운명론 사주팔자 관상 하고는 차원이 다른 겁니다. 팔자소관은 어쩔 수 없어 포기 하고 에라 팔자소관이려니 이렇게 체념하는 겁니다. 그러나 약속의 땅이라고 고백하는 사람은 자신 의 땅을 약속의 땅으로 변화시키는 힘이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 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받아 기어코 젖과 꿀이 흐르는 땅 풍요의 땅으로 바꿉니다. 운명 개척의 적극적인 활동이 있습니다. 그리고 감사가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니까 하나님의 능력으로 성취하는 거죠. 이게 믿음의 역사입니다. 이건 숙명론 끝에 나오는 체념하고 질적으로 완전히 다른 겁니다. 사실 이스라엘을 객관적으로 평가하자면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 의 땅도 아니요, 그렇다고 몹쓸 불모의 땅도 아니라는 표현이 적절할 것입니다. 여기에 오묘한 뜻이 있는 것 같에요. 산악지 방이나 사막을 보면 도저히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말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해안평야나 갈릴리 저지대, 요단강을 따라 펼 쳐진 강변의 땅들을 보면 어느정도 비옥한 땅이니 젖과 꿀이 흐 른다 말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럴 수도 있고 저럴 수도 있습니다.
축복의 땅이라 할 수도 있고, 저주의 땅이라 할 수도 있습니다. 이런 겁니다. 그러니까 믿음의 고백에 달려 있는 겁니다. 해 안 평야를 보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고백하면 축복의 땅 입니다. 그러나 사막이나 산지를 보면 척박한 땅이니 불평스런 저주의 땅이 되는 겁니다. 그러니 영적인 고백이 중요합니다. 어떻게 바라보느냐가 중요합니다. 그러니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의 의미를 찾는 것이 중요할 것입니다. 믿음의 고백이 없으면, 약속에 대한 확신이 없으면 풍요의 땅도 척박한 땅이 될 수 있습니다. 풍요이냐 기근이냐는 믿음의 고백 에 달려 있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비젼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할 때 꼭 앞에 수식어가 붙습니다. "에굽의 고난에서 인도하여 내어" 이말입니다. 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말은 에굽에서 모세가 소명을 받을 때 즉 이스라엘 이 탈출의 약속을 받을 때부터 시작해서 광야 기간 내내 사용됩니다. 그리고 모세의 마지막 설교 때 까지 사용됩니다.(신 31:20) 그러니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는 말은 비젼의 땅입니다. 앞 으로 이뤄질 비젼의 땅입니다. 비젼이 있으면 망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비젼은 꿈과 다릅니다. 꿈은 허망된 꿈도 있기 때문입니다. 비젼은 환상도 아닙니다. 환상은 욕망의 환상이 있기 때문 입니다. 비젼은 자신도 살고 이웃도 살리는 그런 올바른 것입니다. 그 비젼이 하나님이 보여주신 비젼이라면 더욱 그렇습니다. 비젼이 없는 신앙인은 출애굽을 감행 할 수 없습니다. 비젼이 없는 신앙인은 광야의 생활을 견딜 수 없습니다. 여러분의 젖과 꿀 이 흐르는 땅, 비젼의 땅을 가지고 있습니까 기도하고 바라보는 땅이 있습니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열망하는 땅이 있습니 까 하나님이 주신 풍요로운 믿음의 계획들이 있습니까 열망하 고 바라보십시다. 불가능과 체념을 뚫고 한 번 바라보십시다. 이 미지(상)를 만들고 비젼을 품어 보십시다. 거창한 것이 아니라도 좋습니다. 우리의 일상 시시콜콜한 것 까지 우리 주님이 개입하 실 미래를 바라보는 것은 비젼입니다. 지금 땅이 사막이라고 주 저 앉아 있지 말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비젼으로 바라 봅시다. 주님께서 틀림 없이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누리고 가꾸는 땅 이스라엘은 약속을 잘 받았습니다. 그래서 에굽에서 탈출을 했 습니다. 또 이스라엘은 비교적 약속을 잘 믿었습니다. 광야 생활 동안 젖과 꿀의 땅 가나안을 열망하고 믿었습니다. 사실상 광야 생활 시작부터 끝까지입니다. 이스라엘은 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붙 잡고 에굽을 탈출했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붙잡고 광야 사십년을 견뎠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가나안 땅을 밟게 됩니다.
그런데 중요한 게 하나 있습니다. 정작 약속의 땅을 받은 이스 라엘이 어떠 했느냐는 것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열망한 만큼 그 풍요를 잘 누렸느냐 이 말입니다. 아무래도 아닌 것 같 에요. 사사시대에 반역, 징계, 회개, 구출 시스템이 계속 반복 되는 것을 보면 그렇습니다. 그러니 제일 중요한 것은 약속을 누리는 것입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의 약속을 받았어요. 그리고 그 약속을 믿기도 합니다.
그런데 정작 그 받은 약속을 누리지 못한다면 이거 전부 헛된 것 입니다. 중요한 것은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믿음으로 받았으면 누리라는 겁니다. 받고 나서도 누리지 못할 거라면 왜 받습니 까 마지막이 중요합니다. 행복은 대단한 데 있는 게 아닙니다. 그렇게 믿고 그렇게 누리 고 그렇게 가꾸면 그게 축복의 땅이 됩니다. 행복은 열망할 때 보다 차지하고 누리고 가꾸는 태도가 더 중요합니다. 이게 무슨 축복이야, 이게 무슨 젖과 꿀이야, 이러면 아무것도 아닙니다. 이러면 끝입니다. 은혜는 받은 떡의 크기에 있는 게 아니라, 그 걸 먹는 사람의 입맛에 달려 있습니다. 그 빵을 들고 있는 사람 생각의 크기에 달려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땅이다. 여기에 뜻 이 있어' 그렇게 믿고 그걸 누리고 가꾸면 축복의 땅이 되는 겁니다. 약속을 받았으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고백하는 것이 중 요합니다. 믿음으로 받고 믿음으로 인정하면 축복이 됩니다. 척 박한 땅이지만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왜요 야훼 하나님이 주신 축복의 땅이기 때문입니다. 왜요 야 훼 하나님이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 받은 축복을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도 이 걸 바라십니다. 하나님의 최대 관심사는 믿음의 자녀들이 공 급한 축복의 땅을 누리고 풍성해 지는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도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10:10)고 했습니다.
또 천국은 열망하는 것입니다. 천국은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천국을 유지하는 하는 것입니다. 천국을 누 리는 일입니다. 원하는 대학에 들어 갔어요. 원하는 직장에 들어 갔어요. 원하는 집을 얻었어요.
그런데 누리지 못한다면 불행한 일입니다. 새로 집을 사가지고 들어가면 그동안 얼마나 고생을 했습니까 그렇게 소원하고 갈망하던 때를 생각하면 잘 누려야 지요. 집을 아름답게 꾸미고 잘 가꾸고 연출하는 게 중요해요. 그렇게 열망하고 소원하던 집 쓰레기통으로 만들어 버리고 무덤 덤하게 방치하고 그러면 뭣하러 들어가요. 그냥 옛날 집에 사는 것과 하나도 다른 것이 없습니다. 그런 까닭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들어가는 것 보다, 받고 나서 누리고 가꾸는 것이 중요합니다. 누리고 가꿀 줄 아는 사람은 감사도 할 줄 압니다. 은혜도 압니다. 제가 선물을 했어요. 저에게는 아까운 물건이지만 선물 했는 데, 그냥 버려둬요. 꼭 필요하다고 해 놓고는 받아서 그냥 방치 해 버려요. 고맙다는 마음도 그리 많은 것 같지 않아요. 속상한 일입니다. 제가 어떤 분에게 선물을 했어요. 제가 생각한 것 보 다 열배나 더 효용성 있게 사용하고 물건의 가치를 열배나 올려 놨어요. 아주 소중한 물건으로 간직을 하고 있는 거예요. 신나는 일입니다. 마찬가지입니다. 열망하면 무얼합니까 비젼을 가지면 무얼합 니까 받고 나서가 중요합니다. 얻고 나서가 중요합니다. 누리고 가꾸지 못할 것이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은 누리고 가꾸는 땅입니다. 그런 까닭에 기도하고 받은 거라면, 말씀의 응답으로 받은 거라 면, 이것이 하나님이 주신 선한 계획이라면, 누리고 가꾸세요. 그것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진짜 만들어 버리세요. 사막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다' '하나님이 주셨다' 이렇게 믿고 풍요로 운 사막의 지대로 바꾸어 버리세요.
여러분 지금의 자리가 어떤 자리입니까 사막입니까, 사해입니 까 유다 산악입니까, 에브라임 산지입니까 절망입니까, 불만 족의 자리입니까 어떤 자리이든 주께서 약속하신 자리는 축복 의 땅입니다. 주께서 축복하신 자리는 젖과 꿀이 흐르는 풍요의 땅입니다. 흔들리지 마십시다. 기도하고 받은 것, 말씀에 따라 얻은 것, 믿음으로 받은 것, 모 두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 그 땅이 척박하냐 마냐는 문제가 아닙니다. 지금 있는 일터가, 지금의 가정이, 나의 자녀가, 지금 의 상황이 믿음 위에 선 것이라면 젖과 꿀이 흐르는 축복의 땅입니다. 이걸 믿읍시다. 척박한 땅을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바 꿀 수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지금 우리의 자리를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믿 고, 가꾸로 누립시다. 하나님께서 이 땅을 주셨으니, 풍요가 넘 치는 땅으로 바꾸는 것은 이제 우리 손에 달렸습니다. 여기에 천 국이 있습니다. 어떤 것이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선포를 합 시다. 축복의 땅으로! 이런 축복이 여러분에게 있으시기를 바랍니다. (기도문) 하나님 저희들이 가진 것 불평한 적 많았습니다. 말씀의 지배 끝에 주님과 동행하면서 가는 길에도 회의와 좌절이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기도하고 받았는 데도 불만족한 적 많았습니다. 하나님 이제 믿음으로 고백하고 믿음으로 받은 것, 어떤 것이든 젖과 꿀이 흐르는 땅으로 선포하게 해 주옵소서. 주님, 저희에게 주 실 약속이 무엇입니까 저희는 그걸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 이제 믿겠습니다. 더 큰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을 사모하게 해 주 옵소서. 열망하게 해 주옵소서. 그러나 무엇보다 한 걸음 더 나 아가 주께서 주신 지금의 자리를 젖과 꿀의 땅으로 변화시키게 하옵소서. 누리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그리스도이름으로기도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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