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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아닌가? (출17:1-7)

본문

이성(理性)을 가진 사람들의 사고 중에는 존재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됩니다. 만나고 경험하는 문제들에 대한 질문을 하게 됩니다. 보통 누구든지 다 가지고 있는 보편 타당한 지식이 있습니다. 이것을 우리는 상식이라고 합니다. 예컨대 배가 고프다고 느낄 때 빵을 먹으면 된다, 목이 마르다고 느낄 때 물을 마시면 된다는 지식이 있습니다. 해가 뜨는 곳을 동쪽이라 부르고, 해가 지는 쪽을 서쪽이라 부릅니다. 해가 떠 있는 밝은 시기를 낮이라 하고, 해가 사라져 버린 캄캄한 시기를 밤이라 부릅니다. 사실상 이런 문제들을 우리는 보통 상식이라 부릅니다. 상식적인 지식 이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이 세상을 살아가는 절대다수의 사람들은 이 상 식이라고 하는 범주의 지식 속에서 인생을 살고 있습니다. 그 만큼 한평 생 짧은 인생의 여로는 일반적인 상식의 범주에서 관계되는 것이 많기 때 문입니다. 그럼에도 이 보편 타당한 상식 범주의 지식을 갖지 못한 자를 우리는 상식 이하라고 말하게 됩니다. 상식 이하의 범주에 속하는 사람들은 보통 저능아라든지 무식한 사람으로 여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에는 이 계층의 사람들이 삶의 저변에 두꺼운 계층을 이루고 살아갑니다.
그런데 사람은 상식적 지식에서 만족하지 아니합니다. 상식에서 더 나 아가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상식을 질문하게 됩니다. 예컨대 '목이 마를 때는 물을 마시면 시원하다.
그렇다면 이 물이 무엇인가'라고 질문하게 됩니다. 그때 '물은 H2O이다'라고 대답을 하게 됩니다. 우리는 그것을 과학적 지식이라고 이름합니다.
그렇다면 상식을 묻게 되는 질문에 대답을 가져 오는 것이 과학입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여기에 만족하지 않고 다시 과학을 질문하게 됩니다. 예컨대 '물(H2O)은 어디로부터 왔는가' 하는 물의 근원(arche)을 묻게 됩니다. 이때 그 물의 근원을 대답해 주는 것이 이른바 철학적 지식의 단 계입니다. 더 나아가 인간의 존재를 질문하게 될 때, 그 인간의 근원을 대답해 주는 학문적 분야를 철학이라고들 합니다. 그럼에도
2,600여 년의 기나긴 철학의 역사는 오늘까지 존재세계의 근 원(arche)을 대답해 주지 못하고 있습니다. 의문으로 일관해 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사실상 존재의 근원은 철학문제라기보다는 신학적 문제라고 해 야 옳겠습니다. 존재 자체(근원)에 대한 과학의 질문에 대한 확실하고 뚜 렷한 명답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했다. 하나님이 인간을 창조했다.'고 하는 하나님 자신의 선언(성경)입니다. 그래서 애굽의 바로 왕 같은 사람은 "여호와가 누구인가"라고 모세와 아론에게 질문을 한 일이 있습니다(출 5:2). 그는 이스라엘의 여호와를 전혀 알지 못한 자였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이 말 곧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아닌가 하는 말은 바로 저 엄청난 출애굽의 구원역사를 친히 경험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이 발한 소리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중에 계신가, 아닌가
I. 저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향하여 제기한 고소의 소리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세와 다투면서 토해낸 소리입니다. 그 장소는 광 야 르비딤이라고 하였습니다. 다툼의 원인은 백성이 마실 물이 없어 죽음 의 곤경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때 백성들은 모세와 다투었다고 성경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다투다'라는 말이 본문 7장 2절에 두 번이나 나옵니다. 나중에 이 고소 사건이 끝이 났을 때, 모세가 그곳을 '므리바' 곧 '다투다', '불평하다'라고 부르기까지 했습니다(출 17:7). 여기 '다투다'라는 말은 극에 달한 불평과 불만으로 나타나는 '싸움', '투쟁'을 뜻하는 말입니다. 그 다툼의 정도가 어디에까지 이르렀는고 하 니 모세가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의 내용에서 알 수 있습니다. …그들 이 얼마 아니면 내게 돌질하겠나이다 라고 할 정도였습니다(출 17:4). 정말 살벌한 광야교회였습니다. 문제는 '물'이었습니다. 사막의 물은 바로 생명과 직결된 것이었습니다. 물이 없어 저들의 생존에 위협이 오고, 생축에도 위협을 느꼈기 때문 입니다(출 17:3).
그렇다면 저들의 다툼은 죽음과 직결하고 있는 것이었 습니다. 여기 '다투다' 하는 말은 소송제도에서 사용하는 일종의 법률 용어입니다. 성경에는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겼을 때, 하나님 편에서 이스라엘을 향하여 다투겠다(쟁변)고 할 때 쓴 말입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배신하고, 배약하고, 배은할 때 하나님께서 원고가 되고, 범죄한 이스라엘을 피고로 세우고, 작은 산들과 땅의 견고한 지대들을 배심원으 로 삼아서 다투실 것이라, 곧 쟁변(변론)할 것이라, 소송을 제기할 것이 라고 할 때 쓴 말입니다(미 6:1-8).
그런데 본문의 사태는 정반대입니다. 지금 르비딤광야에서는 이스라엘 이 원고가 되고, 하나님을 피고로 삼아 소송(고소)을 제기하고 있다는 사 실입니다. 이 다툼은 모세를 민족 반역자로 규정하고 돌에 쳐죽이는 것이 당연하 다고 하는 데로 진행되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 이유는 그가 저들을 애굽 에서 인도하여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인도한다고 약속했기 때 문입니다(출 17:3). 이런 경우 마땅히 모세는 민족 공동체의 공적(公敵) 으로서, 저들에 의해 돌로 쳐죽임을 당하는 사형선고가 당연한 줄 여겼습니다. 그때 저들은 합심하여 소리지르기를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 가, 아닌가"라고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들의 공격은 사실상 모세가 아니고 하나님이 된 것입니다. 모세도 이 사실을 가리켜 나와 다투는 이 일은 하나님을 시험하는 일이요 하나님과 다투는 일이라고 하였습니다(출 17:2). 하나님이 저들과 다툰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이 하나님과 다투었던 것 입니다. 그 다툼은 '과연 하나님이 계신가, 안 계신가' 하는 하나님의 존재여부를 시험하는 일종의 송사행위가 되고 말았습니다.
Ⅱ. 이스라엘의 고소에 대한 판결입니다. 하나님이 우리 중에 계신가, 아닌가 이것은 사실상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자신을 시험하는 소송행위(다툼)였다고 하였습니다. 하늘의 하나님이 광야교회의 이 살벌한 소송(다툼)의 현장을 친히 목격하였습니다. 하나님은 부르짖고 있는 모세에게 메시지를 주었습니다. 너는 백성 앞 을 지나서 이스라엘 장로들을 대동하라고 하였습니다. 이것은 증인을 삼 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리고 하수를 치던 네 지팡이를 손에 잡고 가라고 하였습니다(출 17:5). 내가 거기서 호렙산 반석 위에 너를 대하여 서리니… 라고 하였습니다(출 17:6). 이 말은 '내가 네 앞에 서리니…'라는 의미입니다. 하나님 께서 그 시내산 반석에까지 내려오신다는 말입니다. 너는 반석을 치 라 , 그것에서 물이 나리니 , 백성이 마시리라 고 하였습니다(출 17:6). 여러분! 지금 이스라엘의 하나님은 지팡이를 잡고 있는 모세의 면전에 서 계십니다. 그것도 죄인처럼 피고의 자리에 서 계십니다. 참 어처구니 없는 장면입니다. 그럼에도 하나님을 향한 저들의 다툼(쟁변, 소송)에 대 답(판결)을 하셔야만 하였습니다. 모세는 지팡이로 반석을 쳤습니다. 반석은 모세의 지팡이에 맞았습니다. 모세는 두 번이나 반석을 내려쳤습니다. 그는 하나님 명령 이상을 행 하는 과오까지 범하고 말았습니다. 모세가 반석을 친 결과 반석이 갈라지 면서 많은 물이 펑펑 솟아나고 말았습니다. 그때 목마름에 미친 군중과 그들의 짐승은 그 반석에서 솟아 나온 물을 마셨습니다. 이 반석은 바로 하나님 자신을 의미했습니다. 모세는 신명기 32장 4절 에 …그는 반석이시니 그 공덕이 완전하고… 라고 하였습니다. 신명기 32장 31절에는 대적의 반석이 우리의 반석과 같지 못하니 대적도 스스 로 판단하도다 라고 하였습니다. 이 므리바의 사건을 회상하는 시편의 글들에서도 하나님을 우리 구원 의 반석 이라고 반복하고 있습니다(시 78:15, 20, 35, 95:1). 다시 신약에 와서 바울은 이 반석을 그리스도라고 하였습니다. 고린도전서 10장 4절에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고 하였습니다.
그렇다면 모세는 지팡이로 하나님을 친 셈이 됩니다. 하나님은 피고로 서 모세가 치는 지팡이에 맞았습니다. 백성의 장로들은 이 일에 증인입니다. 하나님과 쟁변한 원고들인 이스라엘은 모세의 지팡이로부터 침을 당 하시는 하나님(반석)을 현장에서 목도하던 중입니다. '
※바로 그 순간 모세의 지팡이에 맞은 반석(하나님)은 갈라지면서 많 은 물을 쏟아 놓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때 백성들은 솟아나오는 물을 마시 느라고 하나님이 우리 중에 계신가, 아닌가 하는 쟁변(다툼)할 겨를을 찾지 못했습니다. 아니 이제 하나님과 쟁변(다툼)할 마음이 없어져 버리 고 말았습니다. 그 물을 마시는 순간 모든 것이 해결나 버렸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저들에게 생수로 목을 축여주심으로 하나님을 향한 어리석은 쟁변을 중단시킨 것입니다. 백성들은 과연 우리 중에 하나님이 계신다 고 믿게 된 것입니다.
Ⅲ. 오늘 우리 중에 계신 그리스도를 봅니다. 구약의 모세는 반석이신 하나님을 그 지팡이로 쳤습니다. 이것은 장차 인류를 사망에서 구원하기 위하여 치심을 당할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웅변적인 예언행위가 되고 말았습니다. 유대인들은 로마의 권력과 합세하여 예수를 십자가의 사형수로 넘겼습니다. 저들은 사실상 예수를 쳤습니다. 뺨을 치고, 등을 치고, 옆구리를 쳤습니다. 머리를 치고, 손목을 치고, 발목을 쳤습니다. 그리스도는 치심 을 당하셨습니다. 요한복음 19장 34절에 그 중 한 군병이 창으로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나오더라 고 하였습니다. 그때 요한복음 19장 30절에 내가 다 이루었다 라고 하는 예수 자신의 최후 승리의 개가가 들려왔습니다. 구약의 율법이 요구하는 사망의 값을 완불했다는 율법 성취의 개가입니다. 구약의 모든 선지자들이 열망하던 메시야 구원의 예언 성취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인류구원을 완성하는 속죄 성취의 개가였습니다. 인류는 원고가 되고 예수는 죄인인 피고가 되었습니다. 사람들은 예수 를 때려쳤습니다. 그리고 이르기를 "네가 엘리야냐", "네가 하나님의 아 들 그리스도냐", "네가 우리 중에 선지자냐"라고 하였습니다. 치심을 당한 예수의 대답은 '피와 물'이었습니다. 이는 많은 사람을 위 하여 흘린 그의 대속의 피로서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요, 죄인의 구세주임 을 대답해 주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아닌가 이것은 저 이스라엘의 광야교회 를 이루던 백성들이 하나님께 제기한 쟁변(다툼, 소송)의 내용입니다. 르비딤에서 물 때문에 일어난 쟁변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그들 중 에 계셨습니다. 모세의 지팡이에 맞은 반석이 갈라지면서 토해낸 맑은 생 수가 하나님 자신이 살아계심을 입증해 주었습니다. 저들이 배가 고플 때는 만나와 메추라기로 하나님의 존재하심을 입증해 주었습니다(출 16:). 수르광야에서는 쓴 물 때문에 절망하던 저들에게 하나님의 지시하심을 받은 모세가 한 나무를 던져 물에 떨어지니 그 물이 달게 되어 백성의 원망을 중단시켰습니다(출 15:22-27). 그때 하나님께서는 저들을 치료하시는 분으로 나타났습니다. 저들 중에 하나님이 계셨습니다. 불기둥, 구름기둥으로 계셨습니다(출 13:21-22). 그래서 살벌한 광 야의 낮과 밤에 저들을 지켰습니다. 오늘 우리 세대 중에도 하나님이 우리 중에 계십니다. 하나님이 사람이 되어 33년간 함께 계셨습니다. 지금은 우리 중에 성령님의 생수로 임재해 계십니다. 그래서 목마른 인생들은 그의 배에서 솟는 생수의 강물을 마시 면서 쾌감을 느끼며 살아가고 있습니다(요 7:37-38). 오늘 여호와께서 우리 중에 계신가, 아닌가 살아계신 하나님의 큰집인 이 교회 중에 그 분이 임재해 계십니다. 이 세상에 자리잡은 교회야말로 부활 승천하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그의 영으 로 세상에 다시 오사 우리 중에 계신 위대한 표적 중에 표적입니다. 구약 광야의 성소에나 예루살렘 성전에는 거룩한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 하였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그 곳에서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경외의 마음을 가졌습니다. 신약의 교회는 거룩한 주의 영으로 충만한 곳입니다. 충만한 주의 영은 바로 기록된 말씀(성경)으로 우리를 무장시키고 계십니다. '
※하나님이 교회라고 하는 당신의 집을 통하여 우리 중에 계십니다. 그 명백한 증거는 사람들 중에 '하나님의 집'(교회)을 출입하는 자들의 그 인생이 달라짐에서 나타납니다. 그 삶의 의미와 내용과 목적이 새로워 집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에게 축복의 영향력을 행사합니다. 그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집에서 하나님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 바로 그 사람들이 시대의 별들입니다. 많은 사람을 옳은 데로 돌아오게 하는 별들의 전쟁에서의 전사(戰士)가 되어 버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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